[380] 제33장. 감응(感應)/ 4.화맥(火脈)의 폭(幅)

작성일
2022-06-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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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 제33장. 감응(感應) 


4. 화맥(火脈)의 폭(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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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은 여러 사람이 잘 보라는 듯이 한 손으로 버들가지를 쥐었다. 우창은 그 모습을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지켜봤다. 나중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자, 이번에는 아(丫)자를 복(卜)자로 만들면 된다네. 이렇게 말이지.”

지광은 말하면서 실제로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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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간단했다. 버드나무의 아래쪽을 앞으로 해서 한쪽 가지를 손에 움켜쥐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지광이 다시 말을 이었다.

“옆으로 나온 가지를 살짝 휘어서 최대한 직각(直角)이 되도록 하면 되는데 다른 나무와 달리 비교적 부드러운 버드나무를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네. 중요한 것은 가지가 손아귀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네. 그러니까 땅에 떨어지지만 않을 정도로 여유 있게 쥐어야 한다는 것이지.”

지광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서 하자 모두 어렵지 않게 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준비가 되자 다시 지광을 보면서 다음엔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우창이 물었다.

“형님께서 시키는 대로 된 것 같습니다. 다음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우창의 말에 다른 사람들의 지맥봉도 살펴본 지광이 말했다.

“오, 잘 이해하셨군. 그렇다면 이번에는 종대(縱隊)로 줄을 서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 되네. 아마도 좌우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니까 어느 지점에서 좌(左)로 가고, 또 어느 지점에서 우(右)로 가는지를 잘 살피면서 걷도록 하게.”

지광이 시키는 대로 모두 줄을 지어서 천천히 걸었다. 그러자 지맥봉은 정말 지광의 말대로 좌로 가거나 우로 가거나 혹은 전면을 가리키기도 했다. 그러한 것을 겪자 다들 신기해하면서 끝까지 가자 지광은 다시 그대로 돌아서 반대편으로 걷도록 했다. 그렇게 한 번 왕복을 한 다음에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 것을 보고서 지광이 말했다.

“어떤가?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지?”

지광의 말에 우창이 자신이 느낀 것을 말했다.

“형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이것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체험했으니 설명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 이치가 매우 궁금합니다.”

우창의 말에 다른 세 사람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일제히 지광을 바라봤다. 그러자 지광이 우창의 지맥봉을 받아서 직접 잡고서 말했다.

“자, 잘 보시게. 여러분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으면서 설명하겠네.”

이렇게 말을 한 지광이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네 걸음을 움직이자. 앞을 가리키고 있던 가지는 바깥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설명했다.

“만약에 왼손을 쓰는 사람이라도 같이 생각하면 되네. 버들가지는 세 가지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몸의 바깥으로 향하면 원형(圓形)이라고 생각하고, 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이번에는 차형(叉形)이 된다는 뜻이네. 그리고 이것은 이와 같은 의미라네.”

이렇게 말한 지광이 두 팔로 크게 원형(圓形)을 만들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오호~! 그렇다면 좋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왠지 그렇게 느껴집니다.”

“당연하지, 이렇게 몸쪽으로 방향을 바꿨을 적에는 교차(交叉)되므로 수맥이 지나가고 있다는 뜻이라네. 그러니까 이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하기 위해서 작은 돌을 놓거나 땅이 무르다면 나뭇가지를 꽂아놔도 된다네.”

“아, 그것이 좋겠습니다. 지나가고 나면 그 지점이 어디인지 혼동될 수도 있으니까요.”

우창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지광이 다시 말했다.

“만약에 화맥과 수맥이 보일 정도가 된다면 물론 필요 없는 일이네. 그러나 우선은 그것이 쉽지 않으므로 버들가지를 이용해서 활용하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지?”

“에구~ 언제나 형님의 능력의 근처라도 도달하겠습니까? 그것은 먼 훗날의 일이거나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이러한 방법으로라도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 대해서 잘 알아놔야 하겠습니다. 하하~!”

“물론 이렇게 알아서 활용하는 것도 보통의 인연은 아니라고 하겠네.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도 흔치는 않으니까.”

지광의 말에 모두 잘 이해하고는 기억해 뒀다. 그렇지만 별로 어려운 방법은 아니었다. 다들 잘 이해한 것을 확인하고 그대로 서너 걸음을 옮기자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향하고 있던 막대기의 끝이 정면을 향했다. 그러자 다시 그 자리에 작은 돌을 하나 놓으면서 말했다.

“자, 여기까지가 화맥이 통하는 폭이라고 이해하면 되네. 세 걸음이면 제법 넓은 공간으로 봐야지. 적어도 묘로 사용한다면 쌍분은 될 것이고, 만약에 한 걸음만큼이 화맥이라고 한다면 한 분의 고인을 모시는 자리는 된다고 하겠네.”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정 사부께서 말씀하신 대로 대부분은 하나의 묘지이지만 어떤 곳은 쌍분이기도 한데 그러한 경우에는 이 정도의 화맥이 흘러가면 가능한 것이지요?”

“그렇다네. 물론 화맥을 알고 묘를 조성했을 경우라고 전제를 달아야 하겠지? 그냥 상황에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 좋으라고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일 테니 말이네.”

“정말 그렇겠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지광이 염재의 물음에 답을 하자, 이번에는 우창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형님의 말씀은 잘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지맥봉에 교감이 된다면 그렇게 세 걸음의 화맥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들고 있던 지맥봉을 우창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그게 궁금하셨구나. 그렇다면 직접 해 보면 되지. 다 모두 아까처럼 다시 해보도록 하게.”

지광의 말에 모두 한 줄로 늘어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정확하게 그 지점에 도달하자 모두의 지맥봉은 약속이나 한 듯이 따라서 움직였다. 그것을 본 지광이 말했다.

“어떤가? 그만하면 신뢰할 만하지 않은가? 다만 오늘은 내가 옆에서 안내하기 때문에 화맥이나 수맥이 잘 수용할 수도 있네. 어떤 경우에는 아무리 정확하게 잡으려고 해도 제대로 되지 않고 갈팡질팡할 때도 있으니까 말이네. 그런 경우에는 탐사(探査)를 중지하고 지신(地神)께 기도하는 것이 좋다네. 언제나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자연이라는 것을 알고 시행하면 더욱 좋을 것이네. 실로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제대로 전수(傳授)했다고 하겠지?”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지광에게 물었다.

“참, 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예전에 듣기를 천하제일의 지관(地官)이 멋진 자리를 찾아서 산소를 모시도록 했는데 그 후손들이 역적의 누명을 쓰고 자손이 끊겼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풍수지리를 믿을 수가 있느냐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형님과 함께 이와 같은 경험을 하고 보니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는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확실한 것이야 현장을 보고 전후의 사정을 들어봐야 하겠지만, 이러한 정황만으로도 그 연유를 유추(類推)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와 거산도 지광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화상이 어디로 갔다 오는데 손에는 밝은 등불이 두 개가 들려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두워진 것이 마음에 쓰였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창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불빛 아래에서 지광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우님이 참으로 적절한 요소마다 질문을 잘해 주니 염재와 거산도 큰 복을 쌓은 것이 틀림없겠네. 실로 지맥을 알아보는 사람은 적고 대략 짐작으로 주면의 지형만 살펴서 묘터를 잡거나 집터를 살피는 얼풍수는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러다 보니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자신에게도 속고 땅에도 속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곤 한다네. 그래서 확실하게 모른다면 시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것도 삶에 여유가 있을 적에나 해당하는 말이잖은가? 당장 끼니가 없다면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했잖은가, 달리 어쩌는 수가 없어서 의뢰자가 생기면 나경(羅經)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지.”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 숙연해졌다.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와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는 것의 문제에는 아무도 속단(速斷)을 할 수가 없는 복잡한 정황이 있겠다는 짐작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조용하게 생각하느라고 아무런 말이 없자. 지광이 다시 말을 이었다.

“차라리 모르면 짓지 않아도 될 허물을 어설프게 알기 때문에 범하기도 한다네. 그렇지만 그것조차도 한발 물러나서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의 운명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왜냐면 그러한 풍수가를 만나서 그렇게 조상을 모시고 몰락하는 것도 또한 운명일 테니까 말이지.”

지광의 말에 우창도 탄식하면서 말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는 상황에서 화맥도 수맥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도 겸허한 마음으로 지신께 올바른 안내를 할 수가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하면서 조심스럽게 살얼음을 밟듯이 한다면 실수는 최소한으로 할 수가 있을 것이네. 그런데 오만한 마음으로 함부로 시행한다면 그 허물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가 있겠느냔 말이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렇게 형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지기와 교감하는 공부하게 된 것은 삼생(三生)의 복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모쪼록 잘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지광이 숙연해진 분위기가 이어지면 공부의 열정이 식어버릴 것을 생각하고는 다시 일어나서 지맥봉을 잡고 말했다.

“자, 공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네. 계속 앞으로 갈 테니까 지켜보시게.”

이렇게 말하고 다시 서너 걸음을 옮기자 이번에는 지맥봉의 끝이 안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지광은 그 자리에 다시 돌을 하나 놓게 했다. 거산이 얼른 시키는 대로 주변에서 돌을 하나 집어다가 놓고는 다시 손에 하나의 돌을 쥐고는 지광이 앞으로 걷기를 기다렸다. 보나 마나 어느 지점으로 가면 다시 정면을 향할 것을 이미 짐작한 까닭이었다.

다시 다섯 걸음을 옮기자 역시 모두의 예상대로 지맥봉의 끝이 다시 정면을 향했다. 그러자 거산이 재빠르게 돌을 하나 갖다가 그 자리를 표시했다. 그것을 보면서 지광이 말했다.

“자, 여러분이 본대로 이번에는 수맥이 얼마나 넓은 폭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네. 이러한 자리에는 음기(陰氣)가 발동하기 때문에 잠시 앉아서 쉬는 것은 몰라도 여기에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된다면 아마도 질병에 걸릴 가능성도 있을 것임을 알아두면 좋겠네.”

그러자 화상이 합장하고서 말했다.

“실로 오늘 우리 통인사에는 귀인이 당도하셨습니다. 실은 이 자리에 장경각(藏經閣)을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맥을 살펴주시는 공덕주(功德主)를 만났으니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또 있겠나 싶습니다. 부디 오늘 저녁은 본사에서 편히 쉬시고 내일 아침에 좀 더 상세하게 살펴봐 주시기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화상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도 말없이 수락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이렇게 화맥과 수맥을 구분하는 것은 어디에서라도 열심히 익히면 점점 밝아지게 될 것이므로 오늘의 공부는 매우 중요한 기초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네. 물론 각자의 개성에 따라서 좀 빠르거나 늦을 수는 있겠지만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모두 쓸 만큼의 감응은 얻게 될 것이므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네. 하하하~!”

지광은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유쾌해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것을 보면서 우창이 물었다.

“인연이란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오늘 다시 깨달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통인사에 인연이 되어서 지맥의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렇게 하룻밤을 머물게 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우창이 인사를 하자 화상도 합장으로 답례했다. 우창이 말을 이었다.

“공부가 깊어질수록 양날의 검(劍)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형님의 말씀만으로도 이미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저절로 알겠습니다. 한 인간에게조차도 그래서는 안 될 텐데 하물며 대자연의 질서 앞에서 어찌 경거망동(輕擧妄動)할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저들로 들었습니다. 풍수지리의 공부만으로도 과분(過分)한데 이제 지맥까지 살펴볼 연장을 얻었으니 앞으로는 반드시 요긴하게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늘의 가르침을 베푼 형님께 대한 작은 보답이 되겠습니다.”

“아무렴. 그래서 고인들도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고 하지 않았겠나? 다행히 모두가 심성의 바탕이 선량한 인연들이니 내가 기꺼이 전수(傳授)한 것이라네. 그러니 멋지게 잘 활용해서 누군가의 삶에 희망을 나눠주면 된다네. 하하~!”

이렇게 해서 오늘의 공부는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공부하기로 하고 화상이 안내하는 대로 저마다의 침소에서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우창은 산 새소리에 잠이 깼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인시(寅時)의 말쯤 되었나 싶었는데 어딘가에서 낭랑한 독경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 잠이 달아나고 마음이 상쾌해졌다. 천천히 일어나서 세면장에서 낯을 씻고는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더니 대웅전에서 한 여인이 경을 읽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웅전을 보자 우창도 옆문으로 들어가서 향을 태우고 108배를 올렸다. 마음도 상쾌하고 몸도 가벼웠다. 그래서 기분이 좋게 절을 하는데 약 일각(一刻)이 지났다. 그러자 어느 사이에 나왔는지 거산과 염재가 같이 나와서 절을 하고 있었다. 조용히 대웅전을 나와서 마당을 거닐었다. 목단과 작약이 만발해서 꽃향기가 진동했다.

마당가에는 나무의 둥치를 잘라서 만든 의자가 있어서 조용히 앉았다. 통인사는 위치가 상당히 높은 절인지라 전망이 확 트여서 마음도 더없이 넓게 열리는 듯했다. 어제 올라올 적에는 미처 몰랐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경치가 참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풍경에 취해있는데 대웅전에서 경을 읽던 여인이 옆에 다가와서는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우창도 얼떨결에 인사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경치가 참 좋은 곳에 살고 계시네요. 하하~!”

“소녀는 100일 기도를 마치고 오늘 아침에 하산하게 되었어요. 조용하던 사찰이라서 기도를 잘했는데 낯선 처사님들이 오셔서 절간이 가득 찬 느낌이 들어서 좋네요. 호호~!”

“아, 그러셨습니까? 무슨 간절한 소원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부디 원하시는 일이 뜻과 같이 잘 이루어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합장하자 여인도 마주 합장하고 허리를 굽혔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해 보였으나 미소는 해맑았다. 그 애절해 보이는 표정을 보니 우창도 뭔가 도와줄 것이 있었으면 돕고 싶었다. 그렇지만 초면에 묻지도 않는 일에 대해서 말을 하기도 뭣해서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여인이 다시 물었다.

“눈빛을 봐하니 예사로운 분이 아니시네요. 산(山)을 공부하시는가 봐요?”

“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우창이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그러자 여인이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산천의 경계가 좋은 곳으로 기도하러 다니다가 보면 그 정도의 안목은 산신령님께서 주시나 봐요. 호호~!”

“그럼 낭자께서는 기도수행을 하시는 분이셨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혜안을 얻으셨으니 얼마나 나날이 행복하시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지나가는 말로 덕담 삼아서 말했다. 그러자 여인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하~”

우창은 호기심이 부쩍 생겼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용모는 아니라도 수수한 모습이 한숨을 쉴 정도로 힘들게 살아온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서였다. 무엇보다도 이 여인이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자 보다 적극적으로 말을 해보기로 작정했다.

“혹 말하지 못할 고민이라도 있으신 듯합니다. 고운 용모에 한숨을 쉬시니 어울리지 않으시네요. 하하하~!”

우창이 무거워지는 듯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여인도 엷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소녀는 전생에 지은 업이 지중(至重)하여 현생의 삶이 자유롭지 못하답니다. 아무에게나 드릴 말씀은 아니나 처사님을 뵙고 보니까 문득 속에 숨겨놓은 말씀을 드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젯밤에 꾼 꿈도 있었고요. 혹 바쁘지 않으시다면 소녀에게 시간을 조금만 내어 주실 수가 있으실지요?”

“아, 그야 어려울 일이 아닙니다. 다만 무슨 도움이 될 수가 있을지 그것이 염려될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듣고 보니 궁금하기는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말씀해 보시지요.”

우창이 허락하자 여인은 한숨을 다시 쉬고는 말을 이었다.

“휴~! 실은 소녀를 사모하다가 절명(絶命)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원혼(寃魂)이 항상 제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데 다행히 절에서 기도할 때는 감히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산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소녀가 나가면 다시 빙의(憑依)되어서 괴롭힌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도 없으시지요?”

“저런~!”

우창은 놀라서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다는 말은 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러한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갑자기 호기심이 부쩍 커졌다. 더욱 궁금해졌던 것은 영혼(靈魂)의 빙의와 지기의 감응(感應)이 어떻게 다를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했다. 오히려 우창이 물어볼 참이었는데 여인이 다가와서 이야기해 주니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랄 밖에.

“사연이야 어떻든 자의반타의반(自意半他意半)으로 명산(名山)의 고찰(古刹)을 찾아서 기도하다가 보니까 약간의 영감(靈感)이 생겼어요. 처사님을 뵈었을 적에 바로 알아봤던 것도 영감의 덕분입니다. 어쩌면 제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도 있겠다는 희망의 빛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이렇게 말하면서 여인은 다시 허탈하게 웃었다. 우창은 여태까지 이렇게 기묘한 웃음을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많은 여인을 만나지는 못했으나 우창이 알고 있는 여인들의 웃음은 항상 신선하고 희망적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만난 여인의 웃음에서는 삶에 대한 애착(愛着)이 전혀 없어 보이는 표정이어서 느낌으로도 기이(奇異)했다.

“실은 영혼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어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다만, 제가 형님으로 모시는 분이 있는데 혹 그분께 도움을 청해보면 어떻게라도 도움을 드릴 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해 봅니다.”

우창이 아무래도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은근슬쩍 지광을 언급했다. 그러자 여인이 오히려 반기면서 말했다.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요. 그렇게 수고로움을 끼쳐도 괜찮다면 좀 뵙게 해 주셨으면 고맙겠어요.”

우창이 생각해도 영감(靈感)과 기감(氣感)의 차이는 그리 멀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이 되었다. 영혼(靈魂)의 도움을 받거나, 지기(地氣)의 도움을 받거나 그 본질적인 면에서는 서로 소통(疏通)이 되는 부분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말을 꺼냈는데 이렇게 반가워하니 우창으로야 혹을 뗀 느낌과 함께 새로운 공부를 할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내심 설레기조차 했다.

“그러시다면 아침 공양을 마치고 다시 여기서 뵙도록 하지요. 형님께도 의향을 여쭤봐야 하니까 혼자만 결정할 수는 없지 싶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아, 당연하죠. 그럼 공양을 마치고 여기에서 기다릴게요. 잘 부탁드리겠어요. 호호~!”

다시 예의 그 허허로운 분위기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공수하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지광도 이미 일어나서 염재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우창을 보자 반갑게 말했다.

“아우님도 일찍 일어나셨군. 잠자리는 편안하셨나?”

“물론입니다. 형님도 잘 쉬셨나 봅니다. 표정이 더욱 밝아보시시네요.”

우창의 표정을 살피던 지광이 말했다.

“그런데, 뭔가 물어볼 말이 있나? 아니면 잠을 자다가 궁금한 점이 생겼나? 무슨 말인지 어서 해보시게.”

우창은 내심 깜짝 놀랐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로 궁금한 마음이 생긴 것을 이렇게나 정확하게 읽어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기감의 세계는 도대체 얼마나 깊고 넓은 것인지 참으로 궁금했다.

“형님의 눈은 뭘 감출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 때로는 귀찮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하하~!”

“그야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지. 아우님의 얼굴은 내가 읽는다고 해도 나를 피곤하게 할 일은 없으니까 말이지. 하하하~!”

두 사람의 대화에 염재의 눈은 호기심으로 더욱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