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 제32장. 장풍득수/ 10.무풍지대(無風地帶)

작성일
2022-04-25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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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제32장. 장풍득수(藏風得水) 


10. 무풍지대(無風地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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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이 이렇게 식당의 내부의 지기를 설명하자, 거산의 부친과 모친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거산이 그 자리에 얼른 의자를 갖다 놓았다. 그것을 보면서 지광이 말했다.

“아,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네. 이미 거산은 기감(氣感)이 가능하니까 언제라도 확인이 되는 까닭이라네. 축하하네. 하하하~!”

“오늘 참으로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요? 제자의 마음 같아서는 오래도록 여기에서 머무셨으면 좋겠습니다.”

“은혜랄 것이 뭐 있나. 이렇게 인연에 따라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또한 인생이라네. 모쪼록 열심히 공부하여 벼슬길이라도 찾아보도록 하면 되지 않겠나. 이제 가슴은 편안해졌을 것이고, 호두나무에 대해서는 처방을 알려준 그대로 하면 될 것이니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길 것이네. 하하하~!”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거산의 부모도 덩달아서 고맙다는 표정으로 연신 합장하고 모리를조아렸다. 그러자 지광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일행도 따라서 앉으며 지광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모았다.

그 모습을 본 지광이 말했다.

“이 지맥봉은 내가 지니고 다니는 것이라서 거산에게 선물을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네. 대신 편리한 방법을 알려 줄 테니 그대로 활용하면 될 것이네.”

“아,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그렇잖아도 지맥봉을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을까 싶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스승님께서 바로 읽으셨습니다.”

“물가에 가서 버드나무 가지를 살펴보게. 가능하면 윗쪽에 있는 가지 중에서 아(丫)자로 생긴 가지가 나와 있는 것이 좋다네. 나도 처음에는 그것을 이용했었는데 자꾸 찾기가 불편해서 이렇게 강철로 만들었을 따름이라네.”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궁금한 것을 다시 물었다.

“아니, 같은 버드나무인데도 위쪽과 아래쪽의 기능이 다르단 말씀이십니까? 거기에도 어떤 이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설명해 주시지요.”

“그야 간단한 이치가 아니겠나? 지상에서 가까이 있는 가지는 늘 습기를 받을 수가 있지만 위쪽에 있는 가지는 그렇지 못한 까닭이라네. 그래서 항상 수분에 간절한 마음이 있기에 이러한 가지를 사용하게 되면 아래쪽에 있는 것에 비해서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까닭이란 말이지.”

지광의 말을 듣고서야 우창이 탁자를 치면서 말했다.

“아니, 그렇게 간단한 이치조차도 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되니 참으로 우둔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을 원하는 것도 목이 조금 마른 사람보다 많이 마른 사람이 더욱 간절한 이치였구나. 하하하~!”

“그렇다네. 만법(萬法)은 귀일(歸一)이 아니던가. 자, 내일은 본격적으로 밖에 나가서 사용하는 법을 알려줄 테니까 일단 오늘은 쉬도록 하지.”

비로소 일행들은 저마다 침상에 들었다. 우창은 오늘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그냥 넘기면 행여 하나라도 잃게 될까 염려하여 기억이 나는 대로 꼼꼼하게 적어놓았다. 특히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실제로 체험했던 동굴에서의 기감은 참으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지맥봉의 신기한 작용도 관심이 컸으나 내일 다시 자세하게 이야기해 준다는 지광의 말이 기대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다음날.

우창이 일어나자 이미 식당에서는 탁자에 둘러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담소의 꽃을 피우고 있는 일행들이 보였다. 우창도 그 자리에 동석하자 지광이 우창을 보고는 말했다.

“아, 아우님도 기침하셨구나. 그렇다면 우리 새벽의 맑은 공기도 쐴 겸 밖으로 나가볼까?”

지광의 말에 모두 일제히 밖으로 나섰다. 주인 부부는 그사이에 아침을 준비하느라고 주방에서 칼질하는 소리가 들려 나왔다. 우창도 주방을 들여다보며 인사를 나누고는 일행을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아침의 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왔다. 문득 어제 들었던 바람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바람의 흉작용과 길작용에 대한 가르침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도 문득 생각했다. 많은 이야기를 적느라고 빠졌던 모양이다. 다시 정리하기로 할 요량으로 바람 이야기를 꺼냈다.

“형님, 어제 겪은 하루는 참으로 유익하고도 재미있었습니다. 아침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니까 다시 그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이에 대해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여쭙고자 합니다.”

“그래? 무엇이든 말씀하시게.”

“풍수의 풍(風)의 의미는, 장풍(藏風)이라고 했는데 실은 장풍의 의미가 단순히 바람으로부터 감춘다는 의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름이 그렇게 붙게 되었는지 설명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묻자 지광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과연 아우님의 탐구(探究)하는 열정(熱情)은 타의 추종(追從)을 불허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로군. 그만하면 만족을 할 만도 할 텐데 아직도 더 궁금한 것이 있다니 말이네. 하하하~!”

“예, 형님의 말씀대로 우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아무리 시시콜콜한 것이라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병이 있나 봅니다.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이미 염재와 거산도 옆에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염재는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듯이 더욱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우창이 다시 말했다.

“바람은 오행으로 목(木)입니다. 땅은 오행으로 대입하면 토(土)가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목이 토를 생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이고, 또 토를 극하는 경우는 어떤 상황인지가 궁금합니다. 이러한 것에 대해서 여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형님의 깊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우창이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지광도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음, 그렇게나 엄숙한 표정으로 물으니 나도 괜히 긴장되지 않느냔 말이네. 비록 질문은 그럴싸하나 답은 간명(簡明)하다네. 목생토(木生土)는 생기를 떠오르게 만들고, 목극토(木剋土)는 생기를 흩어버리는 것이니까 말이네. 이미 어제 해 준 이야기에 모두 포함되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네만.”

지광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물었다.

“맞습니다. 그런데 실로 궁금한 것은 바람은 지상에만 있는 것인지가 알고 싶습니다. 지하에서도 혹 바람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어?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어제 형님의 말씀과 지맥봉의 움직임을 보면서 지하에서도 목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잡아당기거나 떠미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오행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니 목이라고 하겠는데, 그 목이 지표에서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만약 우제가 생각한 것이 맞는다면 이미 지하에서도 토양과 토양의 사이에 바람이 흐르고 있을 것이고, 그 바람은 다른 말로 지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가령 동굴에서 떠오르게 한 것은 지상의 바람이 아니라 지하에서 올라오는 바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형님의 명쾌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정말 아우님의 추론(推論)은 소름을 돋게 만드는군. 나도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그 이치를 깨달았는데 이렇게 바로 질문을 할 줄은 몰랐군. 그러니 논리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기감이 안 된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 거지. 하하하~!”

“그렇다면 기특한 생각을 한 것은 맞단 말씀이지요?”

“물론이네. 바람은 지상풍(地上風)과 지하풍(地下風)뿐만이 아니라 수중풍(水中風)도 있고 인중풍(人中風)도 있으니 어디에나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는 화중풍조차도 말이네.”

“예? 수중풍은 물속에도 바람이 있다는 의미이고, 인중풍은 사람 속에서도 바람은 일어난다는 의미로 알겠는데 화중풍은 무슨 뜻입니까?”

“아, 화중풍(火中風)이라네. 불 속에서도 바람은 있어야만 불이 타오를 수가 있다는 말이네. 그러고 보니 무풍지대(無風地帶)는 없다고 해도 될 것이네.”

“정말로 오묘(奧妙)합니다. 바람에 대한 이치가 이와 같음은 미쳐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형님을 만나서 개안(開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왕이면 바람이 없는 곳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음양의 이치에도 부합이 될 테니 말이지요. 참으로 바람이 없는 곳은 없겠습니까?”

“글쎄..... 아무래도 아우님께 어떤 생각이 있는 듯하니 그 이야기를 들어보세. 바람이 없는 곳은 어디일까?”

“형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떠오른 것은 무념무상(無念無想)이었습니다. 이곳이라면 바람이 없지 않을까요?”

“뭐라고? 무념무상이라고 했나? 참으로 놀라운 통찰력이로군. 인정함세.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무풍지대로군. 하하하~!”

지광이 통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심오한 이야기인 줄로만 알고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었던 거산조차도 우창의 말에 감탄하면서 말했다.

“정말 놀랍습니다. 제자도 세상 공부를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연의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문득 고리타분하다는 느낌이 들었을까요? 공맹(孔孟)을 배워서 충효(忠孝)를 실현한다고 한들 무풍지대에서 한적하게 지내느니만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산의 말에 염재가 답했다.

“거산이 내게 물은 것은 아니지만 관리(官吏)로써 한마디를 거든다면 관리의 책임을 수행하면서도 무풍지대에 머물 수가 있을 테니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봐.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연으로 씨앗을 심었다는 것이고, 나중에 언제라도 한마음이 동하면 뛰어들 수있는 것이니까 지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보겠네. 어떤가? 지금은 부모님의 기대도 있으니까 말이야.”

“아 형님의 말씀이 사려 깊습니다.”

“나를 보면 알지 않겠나. 때가 되면 이렇게 소중한 스승님을 만나서 귀한 가르침을 받게 되니까 아직은 세상 공부를 더 한다고 해도 후회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하는 말이지 뭘. 하하~!”

“잘 알겠습니다. 더 인내심으로 견디면서 다음 기회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귀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젊은 제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지광이 지맥봉을 꺼내자 이야기를 멈추고 옆으로 모여들었다. 오늘은 또 무슨 비법을 배울 것인지에 대해서 이목을 집중한 채로.

“자, 잘들 보시게. 이 지기(地氣)와 지맥(地脈)은 의미가 다르다네. 그래서 지기봉(地氣棒)이 아니고 지맥봉(地脈棒)인지를 알아야 한다네. 지기는 청기(淸氣)와 탁기(濁氣)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지만 지맥(地脈)은 수맥(水脈)과 구분하는 말인 까닭이라네.”

그러자 우창이 다시 지광에게 물었다.

“지기가 지맥이라고 생각했는데 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확연히 다른 뜻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지맥은 무엇이고 수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금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어렴풋이나마 짐작은 되는데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지 싶습니다.”

“물론이네. 항상 기본기(基本技)가 중요하고 기초(基礎)가 튼튼한 건물은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네. 비단을 짠 것과 같이 정기(正氣)와 사기(邪氣)가 얽혀있다고 했으나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지맥과 수맥이 얽혀있는 것이라네. 우선 말이 길어질 테니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군. 처음에 의도했던 것과 달리 내용이 단순하지않은 방향으로 전개가 되니 말이네. 하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염재와 거산이 지광과 우창이 앉았던 자리에 가서 먼저 앉았다. 기운이 좋은 곳을 스승님께 양보하겠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지광과 우창도 그 뜻을 이해하고는 미소를 짓고 그대로 편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지광이 말없이 그림을 하나 그렸다. 어쩌면 그림이라고 할 것도 없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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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의 붉은 주사와 먹을 써서 줄을 그어놓은 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형님의 그림을 봐서는 흡사 붉은 실과 검은 실로 비단을 짜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붉은 주사(朱砂)로 그린 선(線)은 지맥(地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먹으로 그린 선은 수맥(水脈)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굵기가 서로 다른 것도 무슨 의미가 있지 싶습니다.”

“과연 척 보면 안다더니 아우님의 관점은 머뭇거릴 틈이 없군. 보고 이해한 그대로네. 선의 굵기가 다르게 표시한 것은 지맥이나 수맥의 굵기, 그러니까 넓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말했군. 하하~!”

“그렇다면 선의 넓이에 따라서 길흉의 작용도 비례(比例)한다고 보면 되는지요? 이치는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만.”

“맞아. 때로는 1촌(寸:3cm)에서 또 때로는 10장(丈:3m)이 넘기도 하다네. 지맥이 이와 같다면 다행이지만 수맥이 이렇다면 반드시 피해야 할 곳으로 봐도 될 것이네.”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땅의 아래에 그와 같은 구조가 그물망처럼 펼쳐져 있다는 것이 참으로 오묘하기도 합니다.”

“알고 보면 그렇다네. 축지법(縮地法)을 운용할 경우에도 이러한 것을 정확하게 알고 난 다음에서야 비로소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라네. 축지법을 통탈하는 사람이 희소한 것도 천부적으로 타고난 능력과 피나는 노력으로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 테니 말이네.”

“그렇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는 기를 잘 보게 될 가능성이 많을 수도 있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네. 어릴 적에는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가 드물게나마 있으니까 말이네.”

“순수한 사람의 마음이라면 더 잘 볼 수도 있겠습니까?”

“그건 다른 문제라네. 수행하면 그 방면으로 발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더군. 도가 높은 고승도 기감은 전혀 모르는 경우도 흔한 일이니까 말인데. 다만 몸의 감각이 발달한 사람과 정신의 수준이 발달하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

“그렇겠습니다. 일리가 있겠습니다. 저마다 주어진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맞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좋은 것은 모두 다 하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탐욕이 된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틀림없는 말이지. 그래야 서로 더불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혼자서 살 수가 없다면 저마다 주어진 능력을 계발(啓發)해서 상호보완(相互補完)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뜻이고 신의 계획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거산은 지신(地神)의 축복(祝福)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하하하~!”

그러자 우창이 다시 말했다.

“맞습니다. 우제가 보기에도 거산은 아마도 가장 빠르게 축지법을 터득할 수가 있을 것으로 봐도 되지 싶습니다. 참으로 부러운 능력을 타고났으니 그것도 아마 전생에 지은 공덕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 명학(命學)에서는 전생(前生)은 보이지 않나?”

“당연하지요. 명학의 시작은 출생 후가 되고, 끝은 사망 전까지입니다. 그 이전과 이후는 명학의 접근을 불허(不許)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 처음 알았네. 하하~!”

“그나저나 형님께서 그려주신 지기의 그림을 보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오, 그래? 그게 뭔가?”

“붉은 선은 지맥(地脈)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렇지.”

“그리고 검은 선은 수맥(水脈)이라고 하셨습니다.”

“맞아. 그렇게 보면 되지.”

“의미는 알겠는데 이름이 좀 이상합니다.”

“그래? 정말 아우님의 말은 긴장해야 한다니까. 어서 말해보게.”

“지맥이라고 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수맥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보니까 지맥이라는 이름이 어째 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러는가?”

“단순합니다. 음양의 관점일 따름이니까요. 만약에 수맥의 상대라면 지맥이 아니라 화맥(火脈)이라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뭐라고? 화맥(火脈)?”

“그렇지 않습니까? 수맥과 화맥이라면 그 상대적인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지맥과 수맥이라고 하니까 뭔가 어색한 느낌과 함께 땅의 지기(地氣)와 혼동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또 수맥도 지맥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호~!”

“말이 되는 것입니까? 생각은 해봤으나 그것이 이치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형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지광이 진심으로 놀랐는지 한동안 우창을 바라보면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정말 놀랍군. 나는 이러한 방법으로도 볼 수가 있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아우님이 그 경계를 허물어버리는군. 놀라워~!”

“별것도 아닙니다. 단순한 음양관(陰陽觀)으로 살폈을 따름이니까요. 그래도 형님께서 기특하게 여겨주시니 마음은 기쁩니다. 하하하~!”

“물론이지. 지금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라네. 오랫동안 땅을 공부했으면서도 어떻게 그런 단순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네. 과연 아우님은 내게 보물이 틀림없네. 하하하~!”

“형님의 연구에 젓가락 하나라도 하나 보탰다면 영광입니다.”

“정말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오늘 확연(確然)히 깨닫게 되었으니 젓가락이 아니라 대들보를 하나 들이밀었다고 해야 할 모양이네. 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그러자 염재도 한마디 거들었다.

“제자도 진 사부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까 뭔가 선명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역시 음양의 이치는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제자도 눈이 활짝 열린 느낌입니다. 정말 스승님들과 함께 있으면 끊임없이 진주알과 같이 영롱한 가르침들이 쏟아지는 느낌입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부럽다는 듯이 바라본 거산이 말했다.

“거산도 그 길에 동행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입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제자가 절대로 스승님들께 불편한 존재가 되지는 않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거산이 이렇게 말하자 아침상을 차리던 거산의 부모님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우창은 원래 마음이 모질지 못했다. 지광이 딱 잘라서 거절했으니 다시 뭐라고 말은 하지 못하고 지금의 거산이 어떤 마음인지도 이해가 되는지라 그냥 미소만 지었다. 그러자 지광이 거산을 보고 말했다.

“이보게 거산, 내가 동행을 만류한 것은 우리를 따라다니면 미래의 삶을 망치게 되는 나쁜 물이 들까 봐서 그런 것인데 그렇게 말을 하면 내가 책임지지 못한다고 해도 후일에 나를 원망하지 않겠나?”

지광의 말에 거산의 부모님이 뛰어나오면서 황급히 말했다.

“제발 저 못난 놈을 좀 데리고 다니면서 세상 공부를 많이 시켜 주신다면 우리는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연신 허리를 굽히는 것을 본 지광이 결심한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가는 데까지 동행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를 믿고서 맡겨 주신다니 행여라도 잘못된 길로 들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거산이 기쁜 표정으로 지광에게 합장하면서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거둬주시니 최선을 다해서 두 분 스승님을 편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짐이 된다는 것을 느끼면 즉시로 곁을 떠나겠습니다.”

이렇게까지 결심을 말하자 우창과 지광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거산이 제자의 예로 삼배(三拜)를 올렸고, 두 사람도 말없이 절을 받았다. 그러자 염재가 거산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이제 거산과 동행하게 되었으니 내 말동무가 생긴 셈이어서 나야말로 고맙다고 해야 하겠어. 서로 부족한 것을 탁마(琢磨)해서 스승님들께 실망은 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해 보세.”

그러자 거산도 염재의 손을 꼭 쥐었다. 두 사람은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창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끊어진 말을 이어갔다.

“지맥(地脈)은 화맥(火脈)으로 이름을 바꿔서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수맥(水脈)과 화맥의 이치를 좀 더 배워야 하겠습니다.”

“하여튼 아우님의 열정은 아무도 막지 못할 것이네. 하하하~!”

지광은 기분이 좋아서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자 아침이 다 준비되었다는 주인의 말에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정성으로 차린 아침 밥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