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 제27장. 춘하추동/ 4.하절(夏節)의 시작

작성일
2021-01-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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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제27장. 춘하추동(春夏秋冬) 


4. 하절(夏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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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월(辰月)의 오룡(五龍)에 대한 이야기를 잘 정리한 춘매가 다시 염재에게 설명을 부탁하면서 말했다.

“다음에는 사월(巳月)의 이야기를 해 줄 차례인거지? 이야기를 들을수록 재미가 쏟아지는걸. 호호호~!”

“예, 그렇습니다. 사오미월(巳午未月)은 하절기(夏節期)에 속하고, 이 삼 개월을 하삼삭(夏三朔)이라고도 합니다. 그중에서 첫 번째로 입하(立夏)가 되니 이 말은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겠습니다.”

“아, 봄이 지나갔으니 이제부터는 여름철이기도 하겠네. 봄에는 자연의 모든 만물이 잠에서 깨어나서 한해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여름철에는 활발하게 성장하는 시기겠지? 입하에는 어떻게 삼후(三候)가 정해지는 거지?”

“입하의 15일을 나눠보면, 초후의 5일은 루괵명(螻蟈鳴)이라고 하여 청개구리가 소리를 내어 울게 됩니다. 다시 5일간은 구인출(蚯蚓出)이니, 지상이 따뜻해지자 지렁이도 땅속에서 밖으로 나오게 되고, 마지막의 5일은 왕과생(王瓜生)이라고 하여 쥐참외의 싹이 나오게 된다고 했습니다.”

“참 재미있네. 청개구리, 지렁이, 쥐참외가 나오네?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기록한 옛날 사람들이 참 대단하구나. 호호~!”

염재의 말이 끝나자 우창이 잠시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는데 춘매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서 설명해 달라는 것인 줄을 알고서 입을 열었다.

“누이가 절기 공부에 재미를 붙였구나. 참 바람직한 일이로군. 그렇다면 하루 중에서 가장 밝을 때는 언제일까?”

뭔가 그럴싸한 말이 나올 줄로 기대하고 있다가 너무도 당연한 물음에 의아한 춘매가 맥없이 말했다.

“그야 밝을 때는 낮이지 뭐 그런 질문을 왜 하는 거야?”

“아, 내 말을 자세히 듣지 않았구나. 물으면서 ‘가장’이라고 했잖아. 해가 있으면 밝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밝은 시진(時辰)은 언제일지를 생각해 보라는 거야.”

“음.... 모르겠는데. 그것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어. 어서 설명해 줘봐. 어쩌면 느낌으로는 사시(巳時:09시~11시)가 아닐까 싶기는 해. 왜냐면 지금 사월을 공부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하루 중에는 사시가 될 것이기 때문이지.”

춘매가 이렇게 답하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눈치도 실력이라더니만, 꼭 들어맞는 말이네. 하하하~!”

“그러니깐, 눈치로 대충 느낌은 알겠는데 문제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 답을 할 수가 없다는 거잖아. 예전에는 일단 답을 던져놓고 생각해 봤었는데, 이제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으면 답을 하지 못하게 되네? 아무렇게나 답을 하면 오빠가 곧바로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기 때문이잖아. 그래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건가 봐. 호호~!”

춘매의 불평아닌 불평을 듣자 미소를 지은 우창이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네. 그렇게 자꾸 생각해야 머리는 녹슬지 않거든. 사시(巳時)가 하루 중에서 가장 밝은 이유는 대기(大氣)가 맑기 때문이야. 오시(午時)가 넘어가면서 열기가 상승하게 되면 대기에는 수증기가 섞이게 되어서 점점 흐려지게 되는 까닭이지.”

“아니, 밝은 대낮을 이해하는데 수증기도 고려해야 하는 거야?”

“당연하잖아? 밝다는 것은 태양과 지상(地上)의 사이에 아무것도 없어야 할 텐데, 그 중간에 안개와 같은 것이 끼면 조금이라도 덜 밝아지는 것으로 봐야 하겠고, 먹구름이 낀다면 더 말을 할 나위도 없겠지?”

“와~!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 느낌이 전해지네. 그렇다면 한 해를 사람의 일생이라고 한다면, 사월에는 가장 밝은 시기라고 해도 되겠네?”

“옳지, 이제 하나를 배우면 둘을 생각하네. 누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늘어가는 만큼 나는 또 행복감이 증대하지. 하하하~!”

춘매가 우창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이 막 태어났을 때는 인월(寅月)이고, 아장아장 걷다가 뛰다가 할 시기는 묘월(卯月)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맞아, 그렇게 궁리하는 거야. 어디에다가 끌어다 붙여놔도 말이 되면 그것이 이치라고 하는 거지.”

“그렇다면 진월(辰月)은 뭐야?”

“왜? 진월에 대해서는 얼른 대입할 내용이 떠오르지 않은 거야?”

“아니, 어쩌면 자신의 길을 찾는 시기라고 하고 싶은데 그것이 맞는지 자신이 서지 않아서 머뭇거리게 되네?”

“누이는 지장간(支藏干)도 알잖아? 답이 얼른 보이지 않을 적에는 그 이치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때?”

우창의 입에서 ‘지장간’이라는 말이 나오자, 이번에는 염재의 눈이 커졌다. 그것은 또 무엇이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염재의 표정을 본 우창이 춘매에게 지장간을 설명해보라고 넌지시 부추겼다. 그 의도를 눈치챈 춘매가 염재를 향해서 말했다.

“염재가 지장간을 모르겠구나. 간단히 설명해 줄게. 자세한 것이야 나중에 알게 될 테니까 그냥 어떤 천간(天干)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만 외워놔. 우선 인목(寅木)은 3할(割:30%)의 병화(丙火)와 7할(割:70%)의 갑목(甲木)으로 되어있어. 묘목(卯木)은 10할이 을목(乙木)이고, 진토(辰土)는 계수(癸水)가 3할, 을목(乙木)이 2할, 무토(戊土)가 5할이야. 그래서 가장 많은 성분을 대표로 삼아서 진토(辰土)라고 하지만 실은 절반만큼만 토라는 것도 알아둬.”

춘매가 간단히 설명하자. 염재가 공수를 하면서 말했다.

“이유는 차차로 알아봐도 된다고 하시니까 그냥 외워놓기만 하겠습니다. 사저(師姐)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춘매가 염재에게 간단하게 설명해 주고는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오빠, 하루 중에서 진시(辰時)에는 오늘은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잖아? 진월에는 농부가 어디에다가는 콩을 심고, 또 어디에다가는 오이를 심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 되겠지?”

“맞아.”

우창이 주로 간단하게 답을 할 적에는 다음의 이야기를 하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춘매가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인생의 진월은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고 결정하는 시기가 되겠네?”

“옳지~!”

“말하자면, 글을 읽어서 선비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계수(癸水)를 선택할 것이고, 글공부는 따분하고 활발하게 뛰어다니면서 사업을 벌여서 많은 재물을 모으고자 하는 사람은 을목(乙木)을 선택하겠지? 그리고 다수의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갈 테니까, 농부의 자녀는 농사를 배우려고 할 것이고, 상인의 자녀는 상업을 배우고자 할 것이며, 어부의 아들은 고기 잡는 방법을 배우고자 할 것으로 보면 될까?”

우창은 제법 통변(通辯)이 되는 춘매를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잘 생각했네. 이렇게 진(辰)의 한 글자를 놓고서 하루도 생각해 보고, 한 달도 생각해 보고, 또 일평생도 생각해 보는 것이 바로 오행의 공부인 거야. 하나만 알면 하나만큼의 소득을 거두는 것이고, 셋을 다 알면 소득은 세 배로 늘어나는 것이겠지? 그래서 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저마다 얻는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셈이지. 그런데 계수를 글공부하는 사람으로 보고, 을목을 물건을 사고파는 것으로 설명한 것은 또 어디서 배웠어? 그건 가르쳐 준 적이 없지 싶은데 말이야.”

“그야 오빠가 가르쳐 주지 않았으면 밥하다가 솥에서 건졌겠어? 벌써 십성을 설명해 줬잖아. 계수는 결과물을 저장하는 것이라고, 글을 배워서 외우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계수가 아니고 무엇이겠어? 그리고 을목은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성분이라는 한 것은 이미 묘월의 을목(乙木)을 공부하면서 배웠잖아. 더구나 을목의 본질은 결실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결과에 마음을 두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하루에 결실이 나오는 것은 물건을 매매하는 것밖에 또 있겠어? 그러니까 이렇게 끌어다 붙였을 뿐이고, 실로 그 바닥에는 오빠의 주옥(珠玉)같은 가르침이 깔린 바탕에서 나름대로 이것저것 떼어다 붙인 것일 뿐이야. 호호호~!”

우창은 춘매가 이미 응용의 단계에 들어선 것을 보면서 내심으로 무척이나 기뻤다. 처음에는 하나를 알려주면 하나만 외우더니 이제는 배운 것을 분해하고 재결함을 하면서 전혀 다른 것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이 솟아났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다만 담담하게 말했다.

“누이의 성장이 보이는군.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네. 그대로만 하면 되겠어.”

“고마워. 모두가 오빠의 가르침 덕이야. 호호호~!”

“이제 인생에서 사시(巳時)에 해당하고, 사월(巳月)에 해당하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또 어떻게 지장간을 적용할 것인지도 설명해 봐.”

“와~! 이건 좀 어렵잖아. 사화(巳火)에는 3할의 경금(庚金)이 있고, 7할의 병화(丙火)가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오빠의 말을 종합해 본다면, 아무래도 경(庚)의 주체(主體)를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난데없이 사월에 금(金)을 말하려니까 왜 혀가 꼬이는 것이지? 호호호~!”

춘매가 난감해 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이 설명을 부추겼다. 뭔가 알 듯 말 듯 할 적에는 말을 해보는 것도 생각을 정리하는데 훨씬 유용하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마음대로 떠든다고 해서 아무도 누이를 탓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봐.”

우창의 격려를 받고서야 춘매가 말했다.

“에라~! 모르겠다. 말이 안 되면 오빠가 고쳐 줄 거니까. 그렇지?”

“물론~!”

“그럼, 말을 해 봐야지. 우선 경금(庚金)은 주체라고 했으니까 진월까지는 신체적(身體的)인 성장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아. 신체가 성장했으니까 다음은 정신(精神)이 성장하는 시기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돼.”

“와~! 다행이다. 그렇다면 사중병화(巳中丙火)는 경(庚)이 살아가야 할 바깥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세상은 명명백백하게 밝은 곳이어야 하니까 말이야. 다만 경금에게는 편관(偏官)에 해당하니까 고단한 곳일 수도 있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에는 규제와 책임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세상이 얼마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인지를 깨닫고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마치 쇠가 담금질로 더욱 강해지는 것과 같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오호, 놀라워~!”

우창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 말에 춘매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자신감도 생기자, 신이 나서 말했다.

“아하~! 오빠, 지금 말을 하다가 또 깨닫게 된 것이 있어. 왜 사화(巳火)에 경금이 있는지를 늘 의아하게 생각했었잖아. 그런데 지금 사월의 시기에 사람을 넣고 생각해 보니까 그 의미가 대낮처럼 밝아지는 것 같은 거야. 어쩌면 이럴 수가 있지?”

“그게 학문하는 재미인 거야. 묻다가 답하다가 공부하다가 보면 저절로 얻어지는 망외소득(望外所得)의 재미에 푹 빠져들게 되지. 하하하~!”

“정말이구나. 이것이 공부하는 맛이었구나. 여태 공부는 지루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 공부가 얼마나 말랑말랑하고 유연하고 향기롭고 오묘한 맛이 있는 밥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도 같아. 어쩜 좋아~!”

“그런 거야. 그게 공부의 맛이지. 하하~!”

“정말? 그래서 책벌레가 되는 거야? 한 줄을 읽으면 열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은 다시 백 가지 궁리로 이어지는 것이 맞아?”

“맞아.”

“그렇구나. 오빠는 진작부터 그러한 것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기다려 줬구나. 진심 고마워서 눈물이 나려고 해.”

“헛소리는 나중에도 할 시간이 많을 테니까 어서 진정하고 공부합시다. 하하~!”

“예전에 오빠가 사중경금은 화생금(火生金)이라고 할 적에 ‘그런가보다’하면서도 마음 깊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금은 불에 들어가면 녹는 것인데 어떻게 생하는 이치가 될 수 있느냐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야. 그런데 오늘 문득 그것을 깨달은 거야. 그러니까 사람의 정신은 세파에서 시달리면서 단련이 되어야만 밝아지는구나. 염재도 젊은 나이지만 관청에서 세상사의 온갖 사람들과 만나서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저리도 의젓하게 되어가는 것이구나. 이러한 것을 통해서 화생금의 이치가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것을 깨달았어.”

“옳지, 궁리를 매우 잘했어.”

우창의 진심어린 칭찬을 들은 춘매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제 사월(巳月)과 사시(巳時)와 인생을 같이 생각해 보니까 모든 것은 같은 흐름으로 저마다의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래서 하나를 알면 열을 깨우치는 것은 특별히 천재라서가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고 궁리한 사람에게는 늘 있는 일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사시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결정하면서 열심히 몰입하게 되는 열정의 시간인 거지.”

“매우 만족스러운 답이네.”

옆에서 춘매의 말을 듣고 있는 염재도 공부를 해본 사람인지라 춘매의 심경을 이해하는지 같이 감동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우창이 나서서 설명을 보충하면 되지 싶었다.

“시간을 타고 흐르는 길은 앞으로 갔다가 되돌아가서 무엇인가를 하고 다시 돌아갈 수가 없잖아? 그냥 앞으로만 갈 뿐이지. 그러나 학문의 길은 종횡무진(縱橫無盡)이야. 가로와 세로는 물론이고 과거와 미래를 누비고, 좌우로도 갔다가 오면서 그렇게 배우는 것을 입체적(立體的)이라고 하지. 여정(旅程)은 한 줄기의 실과 같다면 학문은 사방팔방과 상하를 모두 꿰뚫는 것이야.”

“맞아~! 오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완전히 동감이야. 호호~!”

사월에 대해서 이해를 한 것으로 생각한 우창이 염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입하(立夏)의 공부는 잘한 것으로 봐도 되겠네. 다음의 절기는 중기인 소만(小滿)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염재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볼까?”

이야기를 듣느라고 머릿속이 복잡했던 염재가 우창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소만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내용을 말했다.

“예, 소만은 만물이 점점 성장하여 자라고 있는 과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특히 맥류(麥類)는 완숙(完熟)을 앞두고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소만은 ‘거의 다 익어 간다’는 의미로 썼다고도 생각해 봅니다. 실로 농부의 사월은 고단한 철이기도 합니다. 곳간에 저장해 두었던 작년 가을의 결실은 거의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롭게 얻을 곡식은 아직 결실이 멀었는데, 밀과 보리는 겨우 알이 여물어가고 있으니 배가 고픈 가정에서는 이것을 베어다가 불에 구워서 끼니를 이을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소만(小滿)이라는 두 글자를 보면 배가 부르지 않은 백성의 모습이 떠올라서 가슴이 쓰리기도 합니다. 소만을 포만(飽滿)이라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염재는 천생(天生)이 틀림없는 목민관(牧民官)이로군. 하하~!”

“아닙니다. 관청에서 백성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맞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는 정상(正常)이 비정상으로 보이는 현상이 생긴다네.”

그러자 춘매가 말했다.

“그것도 음양의 이치가 아닐까? 세상이 어두워지니 작은 반딧불이도 빛나는 것으로 보이는 이치 말이야. 호호~!”

“왜 아니겠어. 하하~!”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짓던 염재가 말했다.

“제자가 더욱 열심히 수련해서 조금은 더 밝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미력(微力)이나마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래야지. 그렇게 될 것이네. 암~!”

“다시 삼후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만의 초후는 고채수(苦菜秀)라고 해서 들판의 씀바귀나 고들빼기를 뜯어 먹을 만큼 자란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배가 고팠던 사람들이 바구니를 들고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먹거리를 구하던 시절의 그림이기도 하겠습니다. 오죽하면 72후의 설명에 쓰디쓴 고들빼기를 수려(秀麗)하다고 했겠습니까.”

“오호, 공감이 되는 설명이로군.”

염재의 표정이 다시 살짝 어두워지면서 말했다.

“소위 말하는 보릿고개는 바로 이 시기가 되겠습니다. 보리는 익지 않았고, 곳간의 쌀은 완전히 바닥이 난 상황이겠습니다. 그래서 소만은 어쩌면 배를 채우지 못한다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배가 조금 부르다’는 의미로 해석을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배가 부르게 먹을 것이 없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다음은 중후의 미초사(靡草死)입니다. 이것은 냉이가 누렇게 시든다는 뜻입니다. 봄풀들이 생기를 잃는다고 보는 것은 이제 더 뜯어먹을 수가 없을 상황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꽃대가 올라오면 봄철 내내 죽이라도 끓여 먹을 수가 있었던 냉이도 먹을 수가 없으니까 그것도 시들었다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소만은 마음이 아픈 중기(中氣)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염재의 표정을 보던 춘매가 의아해서 물었다.

“염재도 춘곤기(春困期)를 겪어 봤어?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해서 그러한 것까지는 모르고 자랐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직접 겪지는 않았으나 주변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절후(節候)를 공부하면서 새삼스럽게 그러한 정황이 떠올라서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그랬구나, 염재는 바탕이 선인(善人)인 것으로 인정할게. 호호~!”

춘매의 말에 아니라는 듯이 손사래를 친 염재가 다시 말후(末候)의 뜻을 말했다.

“소만의 말후는 맥추지(麥秋至)라고 했습니다. ‘보리에게 가을이 왔다’는 뜻이니 비로소 보리에 떡잎이 진다는 의미입니다.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이제 보리가 누릇누릇하게 익어가고 있으니 자식들이 굶어 죽는 것은 면했다고 안도하는 농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거듭되는 삶의 고단함에 대한 말을 들으면서 춘매도 느낌이 있어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고 보니 소만은 참으로 가슴이 아픈 절기였네. 화창한 하늘의 해맑은 날씨만 생각했더니 속으로는 경금(庚金)이 불구덩이 속에서도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또 있었다는 것을 염재의 말을 듣고서야 깨닫네.”

“그래서 공부는 함께 하면 효과는 극대화(極大化)가 되는 거야.”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다시 물었다.

“맞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이렇게 많은 생각도 할 수가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소만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싶습니다. 혹 추가로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이미 염재가 의미하는 바를 모두 말해줘서 내가 추가로 얹어야 할 말은 없겠네.”

그러자 춘매가 문득 생각이 난 듯이 말했다.

“아참, 사월(巳月)을 말하면서 뱀에 대한 말은 없어? 진월(辰月)에서 용을 이야기한 것처럼 뱀 이야기도 해 줘야지?”

“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구나. 어쩐지 뭔가 허전하다고 생각했어. 하하~!”

“왜 사월이 뱀이지?”

“실은 사월이 뱀이 아니라 사화(巳火)가 뱀이라는 의미겠지?”

“둘러치나 메치나 같은 말이지 뭘.”

“나 참, 하하하~!”

“어서 뱀에 대한 이야기나 해줘.”

춘매가 재촉하자 우창이 설명했다.

“뱀은 대지가 따뜻해져야 왕성하게 활동하는데, 이제 뱀의 전성기가 된 거야. 시간으로 생각해 봐, 한낮이 되었으니 땅이 따뜻해져서 밤새 웅크리고 있다가 대지가 따뜻해지니까 서서히 활동하면서 먹이를 찾아다니는 시간이기도 하잖아? 어쩌면 농민들의 텅 빈 속과 뱀의 속을 대비했을 수도 있겠네. 하하하~!”

“겨우 그거야?”

춘매가 뭔가 성미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묻자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 또 있지. 뱀은 뭘 닮았지?”

“그야 용을 닮았지.”

“그래서 진(辰)의 다음에 사(巳)가 놓이게 된 것이기도 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얹혀서 간다는 뜻이야?”

“물어볼까? 갑기년에는 무슨 용이라고 했지?”

“갑기에는 무진(戊辰)이 되어서 황룡(黃龍)이라고 했잖아?”

“그럼 용의 흉내를 내는 뱀도 황사(黃蛇)인 기사(己巳)가 되는 거지.”

“황사라니? 누른 뱀이라는 말이야?”

“당연하지. 항상 용의 색을 따라서 등장하는 뱀이니까 용의 뒤에 있는 것이 오히려 매우 합당해 보이는걸. 하하~!”

“그런 뜻도 되겠구나. 잘 알았어. 호호호~!”

“사월(巳月)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주체가 세상의 단련을 받고 있다는 것을 누이가 깨달았다는 것이었네. 하하하~!”

“정말이야. 이러한 깨달음이 올 줄은 몰랐어.”

“깨달음이 오다니? 어디에서 오는 거였어?”

“오빠는 그것도 몰랐어? 우주에서 오는 것이잖아. 아 참, 또 빠진 것이 있다. 염재가 별자리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잖아.”

그러자 염재도 잊고 있었다는 듯이 얼른 말했다.

“맞습니다. 소만에서부터 하지까지는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의 쌍자궁(雙子宮)을 통과하게 됩니다. 쌍둥이자리라고 하는 별자리가 됩니다. 이제 뭔가 개운한 것이 모두 마무리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고마워~!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까 머리가 개운하잖아. 호호호~!”

우창과 염재도 마주 보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