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 제27장. 춘하추동/ 3.오룡(五龍)의 조화(造化)

작성일
2021-01-1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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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제27장. 춘하추동(春夏秋冬) 


3. 오룡(五龍)의 조화(造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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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서 과일과 차를 마시면서 주변의 이야기로 담소를 하는데 춘매는 그런 시간조차도 아까웠던지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네. 호호호~!”

춘매가 다시 공부하자고 분위기를 전환하는 바람에 또 공부가 이어졌다. 그야말로 공부하다가 죽은 귀신이라도 씌었던지 밥만 먹으면 공부하는 이야기로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었다. 더구나 춘매는 안마소 앞에다가 「며칠간 비웁니다」라고 커다랗게 써 붙여 놔서 손님이 오가는 것도 신경을 쓸 일이 없으니 더욱 공부에 빠져들었다.

염재가 자세를 바로잡는 것을 본 춘매가 먼저 말했다.

“절기의 공부로 나도 자극을 받았는지, 어떻게 해서라도 무지함에서 벗어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 이 조바심은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조바심은 몰라도 공부에 대한 조바심은 나쁠 리가 없겠지?”

춘매가 우창을 보면서 말하자 우창이 답했다.

“세상에 나쁘지 않은 조바심은 없어. 하하하~!”

“어? 그래? 공부하는데 열심히 하는 것도 나쁜 거야?”

“물론이지.”

“그건 못믿겠는걸? 왜 그렇지?”

“고량진미토 소화가 되어야 몸에 좋은 것과 같은 거야.”

“그래? 그게 무슨 뜻이지?”

“앞에 배운 것이 완전히 이해가 된 다음에 또 뒤의 공부를 하는 것이 순서에 맞는 건데 조바심이 앞서면 배운 것이 채 이해가 되기도 전에 또 새로운 것으로 가득 채워 넣으면 가슴이 답답한 것이 흡사 밥을 급하게 먹어서 체한 것과 같으니 이것을 학체(學滯)라고 하는 거야. 하하하~!”

“우와~! 그것은 생각지도 못했네~! 알았어 소화시키고 또 배워야 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말이구나. 호호호~!”

“그래서 무엇이든 쉬엄쉬엄 하라는 뜻으로 행(行)인거야. 공부는 행(行)으로 하고 걸음도 행(行)으로 하는 거야.”

“행(行)은 오행에서 늘 듣던 말인데 그게 쉬엄쉬엄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야? 괜히 오행을 기억시키려고 오빠가 만든 거지?”

“척(彳)은 천천히 걷는 거야. 그리고 촉(亍)은 걷다가 힘이 들면 쉬는 거니까 오행공부를 하려면 천천히 하다가 또 쉬어가면서 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지 뭐야. 하하하~!”

“그래? 나처럼 후끈 달아서 몰아치고 싶으면 뭐라고 그래?”

“그것은 주(走)라고 하지. 달린다는 말이야. 바쁘게 뛰느라고 주변의 풍경도 볼 겨를이 없지.”

“공부를 빨리 달성하려면 그래야 하잖아?”

“물론 그렇게만 되면 좋지. 그런데 막상 목적지에 갔는데 오면서 본 것은 하나도 없어. 그렇게 되면 얼마나 삭막할까? 그렇게 한 공부가 재미있을까?”

춘매는 우창의 거듭된 설명을 듣고서야 어렴풋이나마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느낌이 왔다.

“우와~! 공부조차도 밥을 먹는 이치와 같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오늘 오빠의 설명을 들으니까 이해가 되네. 정말 중요한 것을 또 배웠잖아. 호호~!”

“그러니까 오늘 공부는 그만하고 쉴까?”

“아니, 지금은 안돼. 더 하고 쉬어도 될만큼 소화가 다 되었으니까. 호호호~!”

“그래? 그렇다면 어디 또 쉬엄쉬엄 가볼까?”

“응, 이제 진월(辰月)에 대해 공부할 차례야. 염재가 또 이야기를 해 줄테니까 또 귀를 기울여야지. 호호호~!”

춘매의 웃음소리가 분위기를 밝게 하는데 최고의 묘약이었다. 두 사람도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까닭이었다. 춘매의 독촉을 받고서 염재가 말을 시작했다.

“사저(師姐)의 열정이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그럼 진월의 시작인 청명(淸明)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청명은 맑고도 밝다는 뜻입니다. 자연에는 태양이 퍼져서 대지가 따뜻해지고, 하늘은 온후(溫煦)하다는 의미로 이해를 했습니다. 이제 농부는 농사를 시작하게 되니 만물의 생기가 뿌리를 내리는 계절이라고 보겠습니다.”

“왠지 느낌만으로도 맑고 밝게 느껴지네. 이름도 좋아.”

춘매가 염재의 설명에 장단을 쳤다. 다시 염재의 말이 이어졌다.

“청명의 초후(初候)는 동시화(桐始華)라고 해서 오동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또 중후(中候)는 전서화위려(田鼠化爲鴽)라고 해서 들쥐가 종달새로 변한답니다. 그 깊은 뜻은 제자도 알 방법이 없습니다. 끝으로 말후(末候)는 홍시견(虹始見)이라고 하니 하늘에는 무지개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청명의 삼후(三候)에 대해서는 생각이 나는 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 외에 더 자세한 이야기는 스승님께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염재가 말을 마치고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이 기다렸다가 말했다.

“들쥐가 종달새로 변했다는 것이 자연의 현상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버젓이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네. 다만 왜 그런 말이 나오게 되었을지를 생각해 보니까, 들쥐가 땅속에서 있다가 종달새가 날아가는 장면을 본 누군가가 그렇게 기록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군. 그러니까 짐작으로 써 놓은 글이 세월이 흐르면서 확증처럼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현실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으니까 짐작만 해 볼 따름이네. 여하튼 농부가 일을 시작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하루의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네. 묘시(卯時)에 저마다 자기의 방식대로 아침을 먹고는 하루의 일을 시작하는 것도 진시(辰時:07시~09시)이기 때문이지.”

우창의 말에 춘매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아, 그렇구나. 하루의 열두 시진(時辰)과 1년의 열두 달이 어쩌면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이 마치 솜씨 좋은 목수가 나무를 자르고 홈을 파서 짜 맞춘듯하네.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어.”

“맞아, 그래서 자연의 조화(造化)라고 하지.”

“그런데, 진월(辰月)이나 진년(辰年)은 용(龍)이 나오잖아? 띠에 나오는 동물을 생각해 보면 왜 모두 아는 동물인데 유독 전설에서나 존재하는 용이 들어있는지는 늘 궁금했는데 오늘 그 이야기를 듣게 되나 보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된 거야?”

춘매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우창을 보면서 물었다. 우창이 춘매의 궁금증이 재미있었는지 미소로 답하고서 설명을 했다.

“아, 누이가 용에 대해서 궁금했구나. 궁금하면 이야기를 해 줘야지. 어디 잘 들어봐.”

“와~! 진짜로 해 줄 이야기가 있는가 보네. 기대해도 되겠지? 호호호~!”

“용은 종류가 몇 가지나 될까?”

“종류라면 색깔별로 말하는 거야? 그야 청룡(靑龍), 황룡(黃龍), 적룡(赤龍), 백룡(白龍), 흑룡(黑龍)인가? 그럼 그것도 오행이란 말이잖아? 그런데 적룡이라고 하나? 왜 적룡이나 홍룡이라고 하지 않고 보통 화룡(火龍)이라고 하잖아?”

“아, 누이가 진(辰)을 보고서 용을 떠올렸구나. 적룡이라고도 하고 홍룡이라고도 하지만 같은 말이야. 그런데 느낌이 불을 내뿜는 화룡이 더 남방의 용처럼 생각되어서 그렇게 사용할 뿐이지.”

“그런 거야? 많이 알면 아무렇게나 말을 해도 알아듣는데 아는 것이 적룡인 사람에게는 홍룡이라고 하면 또 다른 것인가 하겠네? 그런데 왜 용이 다섯 가지로 되어있는지 궁금해.”

“그것은 육갑(六甲)에서 진(辰)의 위에 앉은 것이 다섯이니까 그렇지.”

“육갑은 알지. 진을 깔고 있는 육갑은 갑진(甲辰), 병진(丙辰), 무진(戊辰), 경진(庚辰), 그리고 임진(壬辰)이잖아? 그러고 보니까 정말 다섯이네.”

“맞아, 갑기년(甲己年)에는 무진(戊辰)진의 황룡이 나타나고, 을경년(乙庚年)에는 경진(庚辰)의 백룡이 나타나고, 병신년(丙申年)에는 임진(壬辰)의 흑룡이 나타나고, 정임년(丁壬年)에는 갑진(甲辰)의 청룡이 나타나고, 무계년(戊癸年)에는 병진(丙辰)의 적룡이 나타나게 되어있어. 이것은 60개월은 5년에 해당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그것을 누군가 일 없는 학자가 괜히 신비롭게 만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하하하~!”

“어? 그랬구나. 그래도 약간은 신비로워도 괜찮을 것도 같네. 그러니까 특별한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식(公式)이 그렇게 되어있다는 말이구나.”

“맞아. 잘 이해했네. 그러한 이치로 해서 진월은 다른 월건과 달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셈이지.”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 춘매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물었다.

“그런데. 갑년(甲年)에 무진(戊辰)월인 것이 뭐가 특별하지? 난 그게 더 이상한데?”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그건 의서(醫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운육기(五運六氣)의 이론이 개입되어서 그럴 거야.”

“오운육기는 나도 경락을 공부하면서 조금 배웠는데? 내 기억에 용이 나오는 것은 없었어.”

“그게 이론과 실기의 차이겠지. 누이가 배운 것은 실제로 운용하는 것일 테니까 말이지. 이론적인 것은 『황제내경(黃帝內經)』에 나오는 내용인데, 간단히 말하면, 간합(干合)과 연관된 것으로 인해서 질병을 사전(事前)에 예측하고 치료를 할 수가 있는 준비를 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어.”

“아직 병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무슨 병이 유행할 것인지를 미리 알 수가 있단 말이야? 그렇게만 된다면 의원으로서는 대단히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가 있겠네. 그래서 어떻게 한다는 거야?”

“긴 이야기를 모두 다 기억하지는 못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갑년(甲年)에는 토기(土氣)가 왕성(旺盛)한 해여서 그 영향을 받은 몸의 기관에 이상이 생길 수가 있고, 己年에는 반대로 토기(土氣)가 허약(虛弱)해져서 또 그로 인한 인체에 이상이 생길 수가 있으니까 이것을 미리 살펴서 치료를 준비한다는 거지. 다만 자세한 이야기는 나도 전문이 아니니까 이 정도만 하자고. 하하하~!”

“알았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나도 더이상 알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 호호호~!”

“중요한 것은, 따지고 보면 뭐, 중요할 것도 없기는 하지만 갑기년은 토운(土運)인데, 그 토가 진월(辰月)에 나타난다는 거야. 그것을 일러서 ‘숨어있던 용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

이야기를 듣고서 곰곰 생각하던 춘매가 말했다.

“아하~! 그러니까 을경년이 되면 금의 해가 되어서 진월(辰月)에는 경진(庚辰)의 백룡이 된다는 말이야?”

“맞았어.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야. 그렇지만 명학자(命學者)에게는 그냥 다른 달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월건일 따름이니까 달리 생각을 할 필요도 없는 거야.”

“그렇구나. 저마다 목적에 따라서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도 별다른 의미가 없이 취급되기도 하는 거니까. 호호~!”

“그런데, 이것도 잘 활용하면 나중에 사주의 명식(命式)을 작성할 적에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해 줘야 할까 싶네.”

“뭐든 편리하게 사용할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배워야지. 뭔데?”

“누군가 사주를 적었는데 그 사주가 잘못 적히게 된다면 해석을 아무리 잘 하더라도 남의 다리를 긁는 꼴이 될 수밖에 없잖겠어?”

“그야 당연하지. 그렇다면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있다는 거야?”

“응, 그것도 매우 간단하게 알아낼 수가 있지.”

“어떻게 하는 건데?”

“우선 육갑을 외워야 하는데 누이는 다 외웠잖아?”

“당연하지. 그건 진작에 외웠지. 오빠가 외우라고 했잖아.”

“그래 잘했네. 이제 그 공덕이 주어진다는 이야기지.”

“그럼 어서 알려 줘봐. 그것도 진월이 되어서야 알려주다니.”

“자 들어봐. 이와 같은 사주가 있다고 한다면 말이야.”

그러면서 우창이 사주를 하나 적었다.

280 오류사주

우창이 적은 사주를 들여다보던 춘매가 말했다.

“이 사주는 임자(壬子)일주네. 경진(庚辰)월에 태어났으니 사주도 좋아 보이는걸,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거지?”

춘매의 말에 염재도 가만히 들여다봤으나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 방법이 없어서 조용히 기다렸다. 우창이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본 다음에 설명했다.

“언뜻 봐서는 사주명식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그냥 간지를 모아놓은 것일 뿐이야. 왜냐면 이러한 조합의 사주는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 멀쩡해 보이는데? 이상하네...”

“자, 앞에서 내가 말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답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래? 묻지만 말고 스스로 답을 찾아내라는 말이지? 내 그럴 줄 알았어. 어디 보자.... 무진년(戊辰年)은 무계(戊癸)년이기도 하네. 그렇다면 무계년에는 적룡이 진월에 나타난다고 한 거지?”

“옳지~! 잘 기억했어.”

우창에게 확인을 한 춘매가 다시 곰곰 생각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적룡이면 병진(丙辰)이 된다는 것이잖아? 그런데...? 어, 이건 경진(庚辰)이네? 그러니까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이구나. 이게 맞는 거지?”

“맞아, 잘 찾았어. 그러니까 이 사주의 월주는 잘못되었던 거야. 병진(丙辰)월이거나 아니면 경신(庚申)월이라야 하는 거지. 이러한 것도 모르고서 열심히 풀이하고는 맞느니 틀렸는지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와~! 이렇게 그럴싸한 것에서도 오류가 있었네. 용의 조화를 몰랐다면 이러한 것은 죽었다가 깨어난다고 해도 알 방법이 없잖아.”

“그렇다면 어디 이 시주(時柱)를 바로 잡아 줘봐. 어디 얼마나 잘 이해했나 봐야지. 하하~!”

“어? 시주도 문제가 있었단 말이야? 어디.... 아, 그런데 시주에 대해서 보는 방법은 안 알려 줬잖아?”

“해결책은 이미 알려준 것이나 다름이 없어. 다시 언급한다면, 연(年)은 월(月)과 통하고 일(日)은 시(時)와 통한다는 것만 알려주면 되겠지?”

“아, 그렇구나. 그러면, 정임(丁壬)년은 청룡이라고 했으니까 정임(丁壬)일도 청룡이 되면 갑진(甲辰)이겠네? 갑진이면 어? 뒤로 가야 하는 거잖아? 그래서 육갑을 거꾸로 외우면 좋다고 한 거였구나. 인시(寅時)가 되려면 갑진, 계묘, 임인, 그래서 임인이라는 말이구나. 그런데, 적어놓은 것은 갑인(甲寅)이었네? 그럼 잘못된 것은 확인했고, 이것을 바로 잡으려면 임인(壬寅)시가 되거나, 아니면 갑진(甲辰)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 어때? 제대로 답을 찾은 것이 맞아?”

춘매가 비로소 잘 이해하자 우창이 다시 올바르게 적었다.

280 바르게적은사주

“맞아, 제대로 답을 잘 찾았구나. 이렇게 하는 용도로 사용하면 신속하게 사주의 명식에 오류가 있다면 간단하게 확인을 할 수가 있는 거야. 다만, 여기에서도 안 되는 것은 있지.”

“이렇게 확인하면 되지 싶은데 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월주(月柱)와 시주(時柱)는 이렇게 해결을 하면 되는데, 문제는 연주(年柱)나 일주(日柱)가 잘못되었다면 이것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생일을 알려주면 만세력(萬歲曆)으로 찾아볼 수가 있지만 간지로 말해 준다면 간단하게나마 이렇게 확인을 해 볼 방법이 있다는 것만 알아둬도 괜한 수고를 덜 수도 있으니까 참고로 알아두면 되는 거야.”

“정말 용에 대해서도 배울 것이 많았구나. 그럼 이제 제대로 다 배운 거지?”

“할 말이야 더 있으나 지금의 단계에서는 때가 아니라고 봐서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지. 하하하~!”

“그것만이라도 어디야. 정말 좋은 것을 배웠네. 그런데 염재는 아직 명식(命式)을 작성하는 방법은 모를 테니까 무슨 말인가 할 수도 있겠네. 조금 후에 그것도 배우게 될 테니까 차근차근 기초부터 익히면 될 거야.”

춘매가 이렇게 말을 하다가 보니, 스스로 공부가 꽤 된 것으로 생각되어 대견하다는 마음에 뿌듯했다. 지난겨울을 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이렇게 다시 여름이 되어서 스스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언제나 공부를 다 해서 사주를 척 보고서 이러쿵저러쿵하면서 방문자와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인지는 아직도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매의 위로를 듣고는 염재가 답했다.

“사저의 열정에 찬사(讚辭)를 드립니다. 저도 열심히 공부하면 어려운 명학도 손아귀에 움켜쥘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고 있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창이 다시 염재에게 말했다.

“그래, 청명이 지나면 곡우(穀雨)가 들어오나?”

“아, 맞습니다. 청명은 진월(辰月)의 절기가 되고, 곡우는 중기가 됩니다. 곡우의 뜻은 농사를 짓는 비가 내린다는 뜻인데, 가뭄이 들면 파종(播種)을 해도 싹을 틔울 수가 없을 테니까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데 마침 봄비가 내려서 곡식을 심도록 하는 관계로 ‘곡식을 심는 비’라는 뜻의 곡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내린 비로 논두렁을 다듬어서 물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논을 갈아서 못자리를 만들게 됩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 춘매가 말했다.

“그러고 보면 월령(月令)에 대한 것은 농가(農家)에서 매우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놓은 것으로 보이네. 그렇지?”

춘매의 말에 염재가 답을 했다.

“그렇게 보입니다. 곡우의 초후에는 평시생(萍始生)이라고 해서, 부평초가 연못에서 솟아오르고, 중후에는 명구불기우(鳴鳩拂其羽)라고 하여 비둘기가 깃을 치면서 울고, 말후에는 대승강어상(戴勝降於桑)이라고 해서 뻐꾸기가 뽕밭으로 내려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의 풍경을 5일 간격으로 담아서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춘매가 문득 별자리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서양에서는 곡우가 어떤 별자리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하지?”

염재가 춘매의 질문에 답을 했다.

“별은 밤하늘에 있으니 동양이나 서양이나 모두 보이는 것이 같습니다. 다만, 서양인들은 기준을 별자리에서 찾는 것이고, 우리는 지상(地上)의 변화에서 찾을 뿐이지요. 곡우(穀雨)에서 입하(立夏)를 지나서 소만(小滿)까지 천상(天上)에는 금우궁(金牛宮)이라고 하는 황소자리를 지나가게 됩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태양이 지나가는 길은 적도(赤道)라고 한다면서? 지구가 태양을 지나가는 길에 대한 이름도 있어?”

춘매가 다시 묻자 염재가 답을 했다.

“그렇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따라서 돌아가는 길을 황도(黃道)라고 합니다. 왜 황도라고 하느냐면 지구는 토(土)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그런데 우리 말로 황도니 적도니 하는 것을 보면 서양에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잖아?”

“물론입니다. 별자리를 말하려니까 서양의 이야기를 한 것이고, 우리의 역법(曆法)에서도 황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도와 황도가 만나는 곳을 춘분이라고 기록한 것도 있거든요.”

“그렇지? 어쩐지 천문학은 서양이 앞서고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이잖아? 그래도 위로가 되네. 호호호~!”

“실은 저도 모두 알지는 못합니다. 천문학의 세계가 하도 광범위하기에 최소한의 이해만을 위해서 그것도 잠시 스쳐 지나면서 들었던 이야기이니까 그냥 ‘그런 말도 있는가 보다’하는 정도로만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꾸 캐물으시면 입을 막고 도망을 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염재의 너스레에 두 사람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호호호~! 그런 염려를 왜 하는 거야. 그냥 간단하게나마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너무나 충분한 지식인 건데 말이지. 그리고 정식으로 필요하다면 천문학을 공부하면 되겠지만 아마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호호호~!”

“맞습니다. 곡우의 이야기를 하면서 천문도 배우고 절기도 배우는 알찬 공부를 하게 되어서 제자도 행복합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호호호~!”

두 사람의 말에 웃음을 짓고 있던 우창이 말했다.

“이렇게 해서 춘삼삭(春三朔)의 봄에 대한 절기를 이해했군. 춘절(春節)의 대표적인 절기는 무엇인지 알겠지?”

그러자 춘매가 얼른 답을 했다.

“그야 당연히 춘분(春分)이겠지. 밤과 낮이 같은 날은 봄철을 대표하는 절기가 되고, 또 춘분 일에는 적도를 태양이 지나가는 것이니까 말이야. 맞지?”

“그래, 틀림없이 잘 알고 있구나. 다음은 하삼삭(夏三朔)에 대해서 궁리를 해 볼까? 오늘은 춘하추동의 사계절에 대해서 완전히 뿌리를 뽑아야 할 모양이네. 하하하~!”

“정말이야, 내가 감사해야 하겠어. 오빠와 염재의 대화 속에서 즐거운 지식의 놀이에 빠져들게 되니까 말이야.”

춘매가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표현하자 염재는 공수로 화답하고, 우창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