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53) 이중섭거리

작성일
2021-06-08 06:16
조회
440

제주반달(53) [15일째 : 3월 22일(월)/ 1화]


이중섭의 거리


22-01 20210608-013

내일이면 목포행 배를 타야 한다는 생각이 슬슬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것은 오늘 아침에 가파도 여객선이 출항을 할 것이냐는 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210608_051437

새벽에 잠이깨자 기상상황부터 살폈다. 어제의 거센 풍랑이 밤사이에 잠들었는지가 궁금해서였다. 04시 35분의 기상상황을 봐서는 제주도가 참 애매하다. 제주도 근해에서도 가파도의 영역은 풍랑과 해제의 중간에 있는 상태로 06시의 예보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가능하고, 어쩌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기대하는 마음도 없을 수는 없지 않으냔 말이지.

20210608_051813

다시 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정보를 보니까 제주도 남부와 동부는 풍랑주의보가 모두 해제되었단다. 그리고 06시 이후에는 제주서부도 강풍주의보가 해제된다는 예보가 떴다. 그렇다면 오늘 운진항에서 가파도 배가 뜰 가능성이 있겠구나. 일단 유력한 것으로 보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풍랑주의보가 풀렸으니 정박했던 어선들도 저마다의 일터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풍경을 놓치면 두고두고 억울할 테니까 아무렴. ㅎㅎ

22-01 20210608-001

항구는 여전히 불을 밝혀놓고 분주하다. 이제 푹 쉬었으니 선원들도 좀이 쑤시지 싶기도 하다. 3일인가? 그야말로 황금의 연휴를 즐기지 않았느냔 말이지. 갑자기 활기가 넘치는 것을 보니 어제의 대정 앞바다에서 본 역동적인 파도가 다시 느껴진다.

22-01 20210608-002

날이 서서히 밝아온다. 오늘 아침에 저 배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풍경을 볼 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대감이 만땅이다. 그렇게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사이에 아니나 다를까. 배들이 하나 둘 열을 지어서 저마다의 어장을 향해서 나가는 모습은 엉켰던 누에고치가 풀려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임랩스 길이가 좀 짧아서 아쉽기는 하지만 들어오는 배들도 봤고, 나가는 배들도 봤으니 전부를 다 본 셈인가 보다. 영상이 짧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슬비가 내리는 바람에 카메라 보호 차원에서 더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여기까지만이라도 얻은 것도 복이지 뭐냔 말이지. ㅎㅎ

20210608_052858

배들이 다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08시에 다시 기상상태에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보는데, 이건 또 뭔가? 하필이면 다 풀렸는데 유독 대정 앞바다만 묶여있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고~! 아마도 오늘은 가파도행 여객선이 출항하기 어렵겠다는 불안감이 살짝 파도처럼 밀려온다. 전화~! 그렇지 전화를 해 봐야 하겠구나. 어제 적어놓은 전화로 걸었다.



위의 검은 줄에서 맨 앞의 ▶표를 누르면 녹음이 실행된다. 녹취보다는 녹음이 더 생생하지 그래. 그나저나 운진항에서도 답답하긴 낭월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할 이유는 없지 싶구나. 일단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서 오전에는 어제 마련한 제2안을 실행하기로 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중섭의 거리나 가볍게 둘러보자는 것이지.

22-01 20210608-003

매일 차를 대던 길가인데 이제야 제대로 살펴볼 요량이다. 아마도 낭월은 예술에 대한 관심이 자연풍경에 대한 관심보다는 덜한 모양이다. 실로 이중섭에 대해서 이름이야 생소하지 않고, 그의 소에 대한 그림도 여기저기에서 봤던 것도 같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림의 스타일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았을 게다. 끄적끄적 장난처럼 그렸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이제 잠시 그 흔적을 살펴볼 때가 되었지 싶다.

22-01 20210608-006

아, 이중섭 문화거리였구나. 그렇게 대단한 화가였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낭월이 이 방면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둘러본다. 걸어야 보이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늘 저녁에는 바삐 들어와서 자러 가느라고 못 보고, 아침에는 또 어디론가 바삐 떠나느라고 신경쓰지 않았던 것도 이렇게 천천히 걸으니까 또렷하게 보인다.

22-01 20210608-004

작가의 산책길은 꽤 길게 표시되어 있었지.

22-01 20210608-010

천천히 둘러보기로 든다면, 안내판에 나온 길만 따라서 걸어도 한나절은 족히 걸리지 싶다. 그렇지만 다른 것은 나중에 둘러보기로 하고 우선 주인공격인듯 싶어 보이는 이중섭에 대해서나 살펴볼 요량이었다.

22-01 20210608-005

항상 문이 열려있는 길가의 화원이다. 언뜻 봐도 종류가 다양한데 지금 화분을 살 상황은 아니므로 지나는 길에 풍경만 볼 따름이다.

22-01 20210608-008

음, 소가 있고, 달구지에 사람도 있군. 이것도 이중섭과 관련이 있는 것이겠거니.... 옆에 설명문이 붙어 있다.

22-01 20210608-007

이중섭의 '길떠나는 가족'을 송재경 자가가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을 한 것이었구나. 동과 철로 만들었다니까 상당한 공력이 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원화를 봐야 할 것이잖여? 그야 찾으면 나오겠거니....

길떠나는가족

이 그림이었구나. 원화에 충실했다는 것을 짐작하겠군.

22-01 20210608-011

이중섭 거주지는 바로 옆에 있었구나. 들어올 사람은 들어오라고 한쪽을 열어 둔 정랑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가 본다.

22-01 20210608-012

안내문이라도 봐야 대략 어떤 작가인지 이해가 되지 싶어서 들여다 본다. 불운한 시대였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환경이 나빴던 모양이고, 천재화가라는 것으로 봐서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피난을 제주도로 온 것으로 봐서 전쟁통에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1년 남짓 거주한 것이라면 이것은 생각보다 무척 짧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에 비해서 기념하는 것이 너무 호들갑스러운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22-01 20210608-020

마당가의 작은 정자가 있어서 그나마 덜 쓸쓸해 보이기는 한다.

22-01 20210608-013

집은 작아도 마당은 넓구나. 서귀포의 배려겠거니 싶다. 원래의 풍경도 이랬을 것이라는 상상도 조금 얹어서 생각해 보고....

22-01 20210608-014

역시 안내문이 잔뜩 붙어 있구나. 그 말은 별로 볼 것은 없다는 의미인 걸로. ㅎㅎ

22-01 20210608-015

그래도 서귀포에 거주할 당시에는 가족이 모두 같이 있었던 모양이네.

22-01 20210608-016

음..... 합장배례....

22-01 20210608-018

낭월 : 안녕하십니까.
중섭 : 뭐 볼 것이 있다고 예까정...
낭월 : 천재화가의 삶은 어떠하셨습니까?
중섭 : 사람 사는게 다 한 가지지뭘.
낭월 : 천명이 짧으셨습니까?
중섭 : 술을 따라 간 것이었지.
낭월 : 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중섭 : 고독이 데려 왔지.
낭월 : 고독의 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중섭 : 뿌리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군.
낭월 : 그럼요?
중섭 : 한 생각 사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낭월 : 그럼 양생을 하시지 않으시고요.
중섭 : 깨닫고 보니까 너무 늦었지 뭔가. 하하하~!

22-01 20210608-017

그렇다. 천재의 삶이기에 불운하고, 보이는 것이 너무 많아서 고독했을 게다. 그의 삶에 대해서는 오늘 얻은 정보가 전부이다. 일본인 아내와 두 아이들이었구나.... 겨우 나이 40에 세상을 떠나다니 이것은 아무래도 천재의 요절과 연관이 있을 법도 하다.

비제 : 36세
쇼팽 : 39세
슈베르트 : 31세
모짜르트 : 35세

우연이라기에는 참 공교롭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어쩌면 천재는 정신에 치우쳐서 몸을 관리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애초에 명을 짧게 타고 났기 때문에 남들보다 열 배의 일을 하고 나서 빨리 떠난 것일 수도.... 주로 예술계통에서 특히 이러한 현상이 많은 것을 보면 혹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가 싶기는 하다. 어쩌면 밤을 낮삼아서 굶기를 밥먹듯이 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예술에 심취하다가 보면 몸을 상하게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나름의 합리적인 타당성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22-01 20210608-021

연지님이 친정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기에 앉아보라고 했다. 최소한의 거주공간에서 머물면서 예술혼을 불태웠을 작가를 상상으로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럭저럭 얼버무릴 정도는 되지 싶었다. ㅎㅎ

22-01 20210608-023

쪽문으로 나가보니 돌이 깔린 골목길이 이어져 있었구나. 단장을 잘 했던가 보다.

22-01 20210608-024

햇살이 화사한 골목길의 분위기는 꽤 괜찮았다.

22-01 20210608-028

바로 뒤에는 이중섭미술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9시가 넘었으니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라갔다.

22-01 20210608-025

표지석에도 그림이 한 폭 붙어 있었구나. 이제 무슨 그림인지 알겠다.

「길떠나는 가족」

아내와 두 아들도 이제는 보인다. 힘찬 황소와 남자의 표정도 즐거워보이는 풍경이다. 그렇지만 구색은 맞는지 모르겠다. 이삿짐도 없고, 그건 가난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에 소는 한 마리 있었다는 것도 좀 어색하기는 하다. 이것은 예술가의 느낌이지 사실적인 다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ㅎㅎ

22-01 20210608-026

전시관에는 작품이 꽤 마련되어 있는 모양이다. 천천히 둘러봐야지.

22-01 20210608-029

미술관 건물도 아담하구나. 다른 곳에도 이중섭 미술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1년을 머물렀을 따름인데 이렇게 멋진 전시관을 마련했다는 것은 서귀포에서 그의 존재가 소중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지 싶다.

22-01 20210608-031

그런데, 안내문에서는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약간 찝찝하기는 하구나.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이 안 된다는 뜻인가? 그야 물어보면 알 일이지.

22-01 20210608-032

그런데 문이 굳게 닫혀있다. 아직 시간이 이른가 싶었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관이라고 써놨구나. 그리고 그 월요일이 오늘이라는 것을 생각하는데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평소부터 요일관념이 좀 약한 낭월이라서인 모양이다.

22-01 20210608-027

대체로 관람시설이나 고궁도 월요일은 휴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그제야 떠올렸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이 둘러볼 수가 있도록 일요일에 개관을 하는 대신 월요일을 쉬는 날로 정한 것은 이해가 된다. 여하튼 이러한 점에서도 낭월과는 아직 인연이 닿지 않는 것으로 보면 되지 싶다. 역시 보여주는 만큼만 보면 된다는 것이지. 그리고 많이 안타깝지는 않았다.

22-01 20210608-030

그 주변은 이중섭 공원이었던 모양이다.

22-01 20210608-033

전시관 앞에는 돌 작품도 하나 서 있구나.

22-01 20210608-034

작품의 제목이 「소의 말」인가 보다. 글자가 얼마 되지 않으니 읽어볼까?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누 ㄴ열고

기슴 환히 
헤치다

그러니까 소가 이렇게 말을 했다는 뜻인가?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아물아물하다. 소가 자신이라는 의미인가? .... 음.... 모르겠네. 뭔가 글들이 다 잘려나가고 몇 조각을 줏어서 늘어놓은 듯한 느낌도 들고.... 아무래도 낭월의 감성이 메말랐나 싶기도 하다.

22-01 20210608-035

섶섬이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라고 하니까 과연 앞을 내다 보고 그 것을 만나게 되는구나.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섶섬이라는 말이네. 이렇게 고인이 된 작가의 흔적을 얕디 얕은 지식으로 훑어보기에는 30분도 남는 시간이로구나. 다음 기회가 되면 전시관의 작품이라도 둘러보면 또 어떤 공감대가 생길런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