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42) 제주목관아

작성일
2021-05-18 20:35
조회
621

제주반달(42) [10일째 : 3월 17일(수)/ 2화]


제주목관아(濟州牧 官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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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혈을 둘러 본 다음에는 제주목관아를 둘러보는 것이 순서겠거니 했다. 제주목까지의 거리는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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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5분이면 도착하는 곳이구나. 관덕정(觀德亭)은 차를 타고 지나치면서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둘러보려면 그것도 작정을 하고 나서야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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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관덕정이니까 그렇게 부를 따름이지. 실은 이 정도의 규모면 관덕루(觀德樓)라고 해야 하는 거 아녀? 이름과 건물이 뭔가 따로 노는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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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오래 전에 지어진 건물인가 싶은 정도였는데 제주도 4.3사건을 알게 되니까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서 군중들이 분노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경찰이 말을 타고 가다가 6세의 아이를 밟았는데 얼른 말에서 내려서 사과하고 조치를 했더라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을텐데 그 경찰관이 그냥 지나쳤던 모양이다. 그것을 본 군중들이 분노하는 바람에 일이 걷잡을 수가 없이 커졌다니. 총을 쏘게 되고 사람이 쓰러지게 되고 그렇게 불이 붙게 되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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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사(濟州牧使)가 머물면서 제주를 다스리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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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관아의 건물에 대한 위치의 안내를 잘 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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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이 된 곳도 있고, 터만 남아있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발굴하고 복원을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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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는 1,500원이구나.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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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코로나 나리의 덕을 다 보는 구나. 무료입장이라니 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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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의 정문에 붙은 현판은 진해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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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루(鎭海樓)란 바다를 진압한다는 뜻이겠고, 제주도에서는 항상 바다와 싸워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이겠거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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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 안쪽에는 또 하나의 현판이 붙어 있다. 탐라포정사(耽羅布政司)로구나. 포정사는 중국에서만 쓰는 관직의 명칭인가 했는데 조선에서도 사용했었다는 것을 알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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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의 위에 있는 것은 법고인가 싶었는데 자료를 보니까 1699(숙종25)년에 묘련사에 있던 종을 구입해서 달아놓고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으로 사용했었더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종이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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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무리 봐도 법고(法鼓)로 보이는 걸? 눈이 잘못 되었나? 종이 어디로 가뿌릿노... 싶어서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까, 1847(헌종13)년에 제주목사 이의식이 종을 녹여서 무기와 놋그릇을 만들었더란다. 다음해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장인식이 오랜 역사가 있는 탐라에 종이 없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여 만호의 부자였던 장석좌에게 영암의 미황사에 있던 큰 종을 사들여서 다시 달았더란다.

그런데 왜 종이 없느냐면 일제강점기때에 온다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더란다. 아하~! 그래서 허전하여 북이라도 달아놨던 모양이구나. 도대체 왜놈들이 거지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매달아 놓은 종도 떼어가는 좀도둑일 줄이야 정말 몰랐군.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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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이하개하마(守令以下皆下馬)란다. '수령이하는 모두 말에서 내릴 것'이라니, 수령이면 목사도 말에서 내리란 말인가? 어디까지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란 말인가 싶어서 또 뒤적여 보니까 목사도 수령에 속한다는 말이구나. 그러니까 임금이나 관찰사 정도는 그냥 말을 타고 들어가라는 뜻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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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큰 사찰의 입구에도 하마비가 있다. 보통 조건을 붙이지 않고 '하마비(下馬碑)'라고만 써있다. 그것은 알아서 내리라는 뜻인가 싶기도 하고, 내리기 싫은 사람은 안 내려도 그만이지만 마음 속으로나마 쪼매~ 찝찝하라는 뜻인지도 모를 일이다. 절간 앞에 있는 하마비에는 다른 뜻도 있다. 그것은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이니 누구는 말이 되고, 누구는 소가 되었지만 그 불성은 같으므로 절에서는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이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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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안쪽에도 누각이 있다. 정면으로 보이니까 우선 눈길이 머물게 된다. 그래서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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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있는 정자는 귤림당(橘林堂)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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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뒤로는 귤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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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귤림당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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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밭에서 귤도 따 먹으면서 바둑도 두고 노래도 부르면서 휴식을 취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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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루(望京樓)였구나. 이해가 된다. 어서 빨리 제주도를 벗어나서 육지로 가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겠거니. 가능하면 한양도성으로 가기를 바라면서 망경루에 올라서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으려니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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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투호가 있었구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몇 개를 집어서 들어가기를 바라면서 던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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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놀았던 것을 제자리에 정돈해 놓고 다시 앞으로 전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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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마움을 표하는 누각이었던가? 그랬던 모양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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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의 아랫층을 활용해서 탐라순력도를 꾸며놨구나. 잘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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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을 잘 살펴봐야 구경 잘 했다고 소문이 나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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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상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탐라순력도인 모양이다. 공로를 남겼구나. 유배온 사람들을 두둔하다가 파직을 당했다니 강골이었던 게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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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런 자료들이 있어야지. 역사에 대한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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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반듯하게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항상 아쉬움을 남긴다. 삐뚜룸해서 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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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려나 싶어서 확대도 해 본다. 별방조점은 구면이구나. 별방진을 지나면서 살펴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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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품을 꼼꼼하게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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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뜯어가는 이름도 참 다양하기도 하네.

임금이 탈 어승마,
매년 공납하는 연례마,
특별한 용도에 쓰이는 차비마,
임금의 생일선물인 탄일마,
동짓달이 되면 바치는 동지마,
정월 초하룻날에 바치는 정조마,
연말에 각 목장에서 바치는 세공마,
흉편이 생겨도 바처야 하는 흉구마,
짐을 싣는데 쓰는 노태마란다.

그야말로 말을 가져가려고 붙여놓은 핑계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항목들이다. 그러니 제주도에 살던 사람들은 육지 것들이 예쁠 턱이 있었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어? 검은 소도 20마리를 바쳐야 했구나. 그건 얼마 안 되어서 다행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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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도 종류별로 진상을 했었군. 사서 먹을 일이지 그것을 진상품으로 또 빼았아 갔더란 말이구나. 그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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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것은 좋지. 옛날에 그림으로 묘사했던 곳을 사진으로 다시 담았으니 비교해 봐도 되겠다. 천지연에서도 그렇고, 여기 저기에서 봤던 조각들이 모두 여기에서 나간 것임을 알겠구나. 그렇다면 내용을 좀 살펴봐도 되겠다. 문화콘텐츠닷컴에 실린 내용을 옮겨와서 이해를 돕도록 해야 하겠다.

[이하의 내용은 문화콘텐츠닷컴의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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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 력 일 : 1702년(숙종 28) 11월 17일
• 순력내용 : 제주목사가 관하 각 관리의 치적을 심사
제주목사가 관하 각 관리()의 치적()을 심사하는 그림으로 하단의 기록에 의하면, 전최(殿)에는 마대별장()과 3부() 천총(), 9진()의 조방장(), 6사()의 파총, 성장() 8명, 초관() 30명, 교련관() 13명, 기패관() 94명, 도훈장()인 유학() 양유혁(), 각면() 훈장() 8명, 각면 교사장() 22명, 강유() 302명, 사원() 322명이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제주지방의 군대는 크게 속오군()과 마대()로 구분되었는데, 속오군은 3부() 6사() 30초()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부의 책임자는 천총, 각 사의 책임자는 파총, 각 초의 책임자는 초관이었으며, 마대의 책임자는 별장이었다. 도면을 살펴보면, 제주읍성 내의 관아건물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즉, 관덕정 북쪽으로 우연당(), 영청(), 상아(), 망경루()가 보이고, 이들 건물로 드나들기 위한 외대문()·중대문()·내대문()·후문()이 차례로 나타나 있다. 애매헌(), 군관청(), 군기고() 등도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관덕정 동남쪽으로는 제주판관과 관련된 관아건물인 목관()과 이 목관으로 통하는 외대문, 내대문, 군관청(), 민가()의 모습이 표시되어 있다. (출처:『탐라순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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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 력 일 : 1702년(숙종 28)
• 순력내용 : 취병담에서의 뱃놀이
취병담()인 용연은 영주십이경()의 하나로 용연야범()이라 하여 휘영청 밝은 밤에 용연을 찾아와 밤 뱃놀이를 즐겼다. 그래서 취병담에는 다른 명승지와 마찬가지로 목사·판관·유배인들이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바위나 절벽에 유람의 흔적을 남긴 기념비적인 마애명()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형상 자신도 이곳을 상당히 인상적으로 여겼던 것으로 생각된다. 취병담에서 남쪽을 향해 바라본 산의 지형이 상부 중앙의 백록담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그려져 있고, 취병담에 배를 띄워 놓고 기녀들과 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대천() 우측에 민가의 모습, 용두암 부근에서 해녀들의 잠수 작업광경, 연대의 위치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출처:『탐라순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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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 력 일 : 1702년(숙종 28년) 7월 13일
• 순력내용 : 우도 목장 내에 있는 말을 점검
우도 목장 내에 있는 말을 점검하는 것으로 마필수는 262필이며, 이들 말을 관리하는 목자()와 보인()의 수가 23명이다. 우도의 모습이 마치 동두()라 표기된 곳을 머리로 하여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포구와 어용굴()이 표시되어 있다. 어용굴은 신용()이 사는 곳으로 어선이 접근하면 대풍()·뇌우()가 일어나 나무를 쓰러뜨리고 곡식을 해친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당시 우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민가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우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이원조() 목사가 조정에 장계()를 올려 우도 목장의 개간을 허락 받은 1843년경부터의 일이다. (출처:『탐라순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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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 력 일 : 1702년(숙종 28년) 11월 초5일
• 순력내용 : 배를 타고 정방폭포를 탐승
폭포 위에 있는 소나무를 강조해서 그린 인상이 짙으며, 그 아래 정방연()에서 배를 타고 놀이를 즐기고 있다. 그림 하단에는 정방폭포의 길이가 80여 척, 너비가 5척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형상()의 『남환박물()』에 의하면 정방연()은 정의현에서 서쪽으로 68리에 있으며, 폭포 위에는 큰 소나무들이 있고 밑으로 바다가 있어 폭포가 바다에 직접 떨어져, 제일명구()가 된다고 하였다. (출처:『탐라순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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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 력 일 : 1702년(숙종 28) 11월 초6일
• 순력내용 : 천지연() 폭포에서의 활쏘기 시합
폭포의 반대편에 과녁을 설치하여 화살을 쏘고 있는 모습이다. 폭포의 좌우에 줄을 동여 메고 그 줄을 이용해 좌우로 이동하고 있는 추인(:짚이나 풀로 만든 )의 모습이 이채롭다. 이와 같은 추인은 주로 기병()들의 화살을 쏘는 표적()으로 주로 이용되었으나, 여기서는 과녁을 향해 쏜 화살을 상대편에서 추인이 꽂으면, 이쪽에서 줄을 당겨 추인에 꽂힌 화살을 건네받는 것이다. 천지연폭포의 길이는 50여척, 너비는 10여척이라고 부기()되어 있어 정방폭포에 비해 폭포의 길이는 짧으나, 너비는 그 배나 된다. 폭포의 좌우는 마치 깎인 봉우리가 서로 포옹하는 모습을 하고 있어, 마치 활에 화살을 당긴 형상을 하고 있다. (출처:『탐라순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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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 력 일 : 1702년(숙종 28) 11월 초6일
• 순력내용 : 중문 천제연 폭포에서 활쏘기 시합
대정 지경임을 표시하는 글자가 보이며, 천제연폭포를 상폭()과 하폭()으로 구분해 놓고 있다. 천지연 폭포에서와 마찬가지로 폭포의 좌우에 줄을 동여 메고 그 줄을 이용해 추인(:짚이나 풀로 만든 )이 좌우로 이동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인은 주로 기병()들의 화살을 쏘는 표적()으로 주로 이용되었으나, 여기서는 과녁을 향해 쏘은 화살을 상대편에서 추인에 꽂으면, 이쪽에서 추인의 메달린 줄을 당겨 추인에 꽂힌 화살을 건네받는 것이다. 폭포의 길이는 50여 척, 너비는 5척이라 부기()하였다. 상폭 서쪽 암벽에는 임관주()의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해온다. 즉, ‘천제연 열린 곳에 큰 폭포 흘러내려, 총석()으로 옮겨오고 깊은 못에 쏟아지네, 추인()은 화살을 지고 공중을 걸어가니, 제일 기이하고 볼만한 것이 이 사후()가 아닌가’란 내용이다. (출처:『탐라순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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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일행이 산방굴에서 배작()하는 광경을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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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 력 일 : 1703년(숙종 29) 4월 28일
• 순력내용 : 비양도에 생포한 사슴을 방사
부기()의 내용에 따르면 1702년 10월 11일 생포한 사슴을 1703년 4월 28일에 비양도에 방사()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무엇보다도 제주목 서면의 53개 마을 위치가 한 장의 그림에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제주읍성의 서문(西)에서 명월진에서 이르는 지형을 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해안의 지형, 봉수·연대의 위치, 애월진·명월진, 토성()의 위치가 잘 드러나 있다. 그 외 병문천(:)·대천()·무수천(:)·정자천()의 흐름이 보인다. 그리고 비양도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음을 그림으로 강조하고 있다. (출처:『탐라순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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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 력 일 : 1702년 (숙종 28) 11월 13일
• 순력내용 : 명월진 성정군의 훈련 모습과 말을 점검
순력 도중 명월에서 숙박하였다. 명월진() 내의 천()·별고()·서별창(西)등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고, 주변의 지형을 상세히 표기하였다. 즉, 우둔촌()과 수류천촌() 민가의 위치, 만조봉수(), 마두연대(), 배령굴(), 월계과원()의 위치등이 그것이다. 또한 명월진의 해안변에 위치한 논() 등도 그려져 있다. 그리고 명월진 내에 말을 점검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원장()과 사장()을 설치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부기()의 내용은 지방관 겸 중군() 제주판관() 이태현(), 명월진 조방장 강세건(), 성정군() 412명, 목자()와 보인() 185명, 말() 1,064필, 창고의 곡식 3,300여 섬이다. (출처:『탐라순력도』)

고맙게도 잘 정리를 했는데 아쉽게 딱 하나 산방배작에 대한 내용이 없거나 사라졌다는 것이 아쉽구나. 그런데 별방조점(別防操點)은 왜 포함되지 않았지? 그것은 또 다른 항목에 들어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내친 김에 그것도 하나 추가하자.

별방조점

• 순 력 일 : 1702년(숙종 28) 10월 30일
• 순력내용 : 별발성에서의 군사훈련과 성정군·군기·우마를 점검
별방진()·황자장()·지미봉수()·하도의탄리()의 민가, 연대의 위치가 상세하다. 별방진은 만조시(滿)에 바닷물이 흘러들어 오도록 되어있으며, 동창()·객사 건물의 위치를 엿볼 수 있다. 순력 중에 10월 30일은 이곳에서 머물렀다. 별방진의 조방장()은 김여강()이고, 성정군의 규모는 423명으로 화북성의 성정군 수효와 일치하고 있다. 황자장의 우마수는 흑우 247수(), 말 946필이며, 목자와 보인은 모두 187명이다. 별방진 내에 위치한 동창()에 보관되어 있는 곡식은 2,860여 섬으로 부기되어 있다. (출처:『탐라순력도』)

[네이버 지식백과] 별방조점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탐라순력도), 2006., 한국콘텐츠진흥원)




아마도 한 폭에다가 모두 담을 수가 없어서 간추렸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라도 그림에 대한 사연을 옮겨놓으니까 조금은 공부를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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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를 다 둘러보고서 윗층의 누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쪽으로 전망이 잘 보인다. 주변의 풍경을 봐하니 원래는 훨씬 넓었을 제주목이었을텐데 이런저런 세월을 겪으면서 많이 위축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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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집무실이었던 연희각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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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친절해 보인다. 고맙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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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의 이해를 돕느라고 마네킹이 열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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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문관의 복장으로 일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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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때로는 무관의 복장으로 일을 봤던 모양이다. 참 바쁘게 살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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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각(弘化閣)도 있다. 연희각이 안쪽에 있고 홍화각은 바깥쪽에 있는 셈이구나. 이렇게 전체적인 구조를 봐가면서 이해하면 대략적인 위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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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사와 방어사가 일을 보던 곳이란다. 아마도 목사의 직속휘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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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이 당당한 모습이다. 실무적인 일은 여기에서 다 처리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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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읽어보니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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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방의 향리들이 일을 본다니까 이들이 실세라고 봐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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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제주도민을 살게 할 것인지도 토론했을 것이고, 또 어떻게 하면 더 쥐어 짤 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토론을 했으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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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도에서 4번 건물에 해당하는 우련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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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을 파고 물을 담아놓고, 또 정자를 지었던 것은 경복궁의 경회루와 같은 이치였겠구나. 불을 끄기 이위해서 물을 비축해 놓는 것도 중요했을 테니까. 그런데 개구리들이 시끄럽다고 메꿨다니 참 재미있는 관리도 있기 마련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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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수련이 피어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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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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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화기애애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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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체계가 비교적 잘 정리된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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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협당에서는 또 그아래의 실무진들이 활약을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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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를 보좌하는 지위에 속한 사람들이 일을 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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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가 멋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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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곳도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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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상세하게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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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직책이라고 해야 할랑강... 관비들의 처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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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소품들이 점점 소박해 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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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켠에는 모아놓은 동자석들이 깔깔대며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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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지에서 모아놓은 무덤의 동자상들이었구나. 아이들은 모이면 잠시도 쉬질 않는다. ㅎㅎ

화인 : 싸부님은 재미있으세요?
낭월 : 재미있는 것만 보면 여행이 아니라 유희가 아닐까?
화인 : 재미없는 것을 왜 봐야 하남요?
낭월 : 그게 여정이라는 게다.
화인 : 여정은 재미없는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단 말씀?
낭월 :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화인 : 제주목은 처음 와봤어요. 생각보다 볼 것도...
낭월 : 나도 처음이짆아.
화인 : 여기 오실 생각을 왜 하셨대요?
낭월 : 아마도 제주도 첫나들이에 여기 오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게다.

화인 : 그럼 이제 제주도의 속살을 들여다 볼 때가 된 건가요?
낭월 : 옳지~! 내 말이~!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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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 배고파요~ 아직 멀었나요?
낭월 : 다 봤다. 고마 가자~!
호연 : 길만 건너시면 됩니다.
낭월 : 그래, 앞장 서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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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회랑 이것저것 시켰던 모양이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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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이었던 모양이구나. 골고루 있는 것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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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되었든 배부르게 먹어야 또 다음 일정이 즐거워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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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김에 커피도 한 잔 하면서 쉬었다.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