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33) 혼인지

작성일
2021-05-08 20:36
조회
541

제주반달(33) [7일째 : 3월 14일(일)/ 3화]


온평포구에서 혼인지(婚姻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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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케포구에서 할망당을 둘러보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다음의 목적지는 온평포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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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좀 떨어진 온평포구까지는 20분 거리로구나. 그래봐야 또한 금방이다. 중간에 신풍포구, 주어동포구, 신산포구는 그냥 통과했다. 아무래도 오늘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바로 온평포구로 가는 것이 맞을 것으로 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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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평포구는혼인지마을로 소개가 되어 있구나. 온평을 찾은 이유는 삼성혈에서 시작되었다. 삼성혈과 연관이 되어서 전설을 마무리 하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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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의 지도에는 옛스러운 지명들이 빼곡해서 사진으로 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고지도에서 사용된 이름들을 그대로 써놓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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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평의 혼인지마을이 유명한 것은 삼성혈에서 땅을 뚫고 올라온 세 사람이 배필로 삼을 여인들을 여기에서 맞이했다는 것으로 인해서이다. 기록을 보면, 동쪽 바닷가에서 떠밀려온 함 속에서 나온 벽랑국의 세 공주를 맞이해서 각각 배필로 삼고 혼례를 올린 곳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음양(一丨)이 만나서 도(十)를 이룬 곳이니 참으로 의미가 큰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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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평리(平里)는 원래 열운이()라고 불렀고, 기록에 따라서는 열온이(), 열혼포(), 여온리(), 혼례(), 여을온(), 영혼포() 로도 불렸던 것을 보면 분명히 뭔가 사건이 있기는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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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이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있으면 찾는 발길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세 여인은 벽랑국(碧浪國)에서 목함 속에 들어있는 상태로 왔더라는데 이것은 좀 이상하기는 하다. 알도 아니고 다 자란 처녀들이 목함에 들어서 왔다는 것이 좀 신비스럽기는 하지만 그것도 하늘의 뜻이라면 또한 그렇겠거니 하면 된다. 그런데 벽랑국이 오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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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랑국은 전남 완도의 소랑도(小浪島)란다. 소랑도? 그렇다면 지도에서 찾아봐야 하겠구나. 벽랑(碧浪)과 소랑(小浪)이 뭔가 쪼매~ 닮기는 했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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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벽랑국이 나라라기에 웬만한 규모가 있는가 했는데 이건 뭐... 코딱지만한 쪼맨한 섬이잖여? 그래도 나라였더란 말이지? 그러니까 공주겠지....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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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무래도 세 여인들이 사기를 친 건가? 54세대에 남자 55명 여자 55명으로 총 110명이 살고 있다는데? 이건 또 뭐지? 뭐 어쨌든 여자인 것은 분명했으니까 공주면 어떻고 노비면 또 어때? 서로 찍을 이뤄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아무렴. 그래서 축하를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홀아비로 늙어 죽을 뻔 했잖느냔 말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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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그녀들이 가축들도 싣고 왔으니 완전히 로또 맞은 거지. 로또는 돈만 되지만 사람을 얻었으니 로또보다 더 신나는 일이라고 해야 하겠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세 명이 왔는지도 참 신기하다. 네명이 왔거나 두 명이나 혹은 한 명이 왔더라면 갈등이 한바탕 일어났을 뻔 했는데 말이지. 그래서 또 천만다행이다. 하긴 지금도 소랑도에는 남자 55명 여자 55명이라잖은가. 그것도 참 신기하네. 언제 한 번 가봐야 하겠다. 소량도라... 그런데 과연 소랑도에 가면 배턱에다라도 벽랑국의 공주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는 안내문이나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래야 앞뒤가 그럴싸하게 맞을텐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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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나는 이렇게 생긴 공주를 맞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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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나는 또 요렇게 생긴 아내를 얻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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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을나도 이렇게 생긴 아내를 얻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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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다는 말없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로 무심하게 해조음만 들려줄 따름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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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맞이해서 제주도로 간 것이 아니라 신혼방을 마련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혼인지(婚姻址)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그들의 신혼방을 보러 혼인지로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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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걸어갔을테니 도보로 거리를 따라가 본다. 1.8km이고 28분 거리로구나. 대략 30분 걸렸을 것으로 보면 되겠다. 물론 우리는 차로 이동해야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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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지라고 자리가 보존되어 있으니 전설이 여기에서 마무리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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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혼인지(婚姻池)구나. 한글로는 같아도 하나는 땅이고 하나는 연못이다. 역시 물이 있어야지.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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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루알을 몰라서 찾아보지 못했구나. 아쉽군. 그것은 다음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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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시가 한 수 적혀 있구나. 이런 것은 들여다 봐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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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가? 무슨 라가인데 저게 무슨 자인지 초면이네.....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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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탁자였구나. 처음 보네 부탁()한다고? 그러니까 원래는 乇이 었는데 말로 부탁하게 되면서 託이 된 모양이구나. (끄덕끄덕~) 그러면 탁라가(乇羅歌)라는 말이네? 이건 또 무슨 뜻이지? '라를 부탁하는 노래?'라니.... 혹 탐라를 부탁하는 노래를 말하나? 탐라를 왜 부탁하지? 그래서 머리에 새로 돋아난 물음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폭풍검색으로 들어간다. 이 글을 쓴 사람이 김종직()이로구나. 이 사람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까? 그냥 넘어갈까? 살펴볼까? 이렇게 할까 말까 할 적에는 알아보는 것이 정답이다. 그냥 둬도 두고두고 께름찍하기 때문이지 뭘.

김종직은 1431년에 태어나서 1492년에 떠났는데 영남의 사림파의 영수였다니까 보통 사람은 아니었구나. 그가 제주도에는 벼슬살이하러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시를 한 수 남길 정도의 문장가라고 하니까 시가 또 궁금해진다. 이번에는 탁라가를 찾아봐야 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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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그렇지 이렇게 사전에도 이름이 올라 있었구나. 배움은 끝이 없다니깐. 김종직이 지은 시가로 제주도 지방의 풍토와 물산에 대해서 쓴 시로 14수가 전부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혼인지에 새겨놓은 시도 그 중의 일부를 발췌했단 말이구나.

 

탁라가(乇羅歌) 


당시정립시신인(當時鼎立是神人) 세 신인이 함께 제주도를 다스릴때
항려래종일출빈(伉侶來從日出濱) 해돋는 물가에 함께 와서 짝을 만났네
백세혼인지삼성(百世婚姻只三姓) 자손대대로 세 성씨가 혼인한 것은
유풍견설사주진(遺風見說似朱陳) 주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와 같네


주진(朱陳)이 뭔가 싶어서 찾아보니까  백락천의 시였구나. 그렇다면 또 언제 보게 될지 모르지만 붙여놓고 나중에 생각해 봐도 되지 싶다. 이런 것이 모두 문자욕(文字慾)이다. 글자만 보면 어떻게라도 회쳐 먹어보려고 달려드니 그야말로 욕심덩어리로군. ㅋㅋㅋ




朱陳村 :唐代 :白居易


徐州古豐縣,有村曰朱陳。去縣百餘裏,桑麻青氛氳。
機梭聲札札,牛驢走紜紜。女汲澗中水,男採山上薪。
縣遠官事少,山深人俗淳。有財不行商,有丁不入軍。
家家守村業,頭白不出門。生爲村之民,死爲村之塵。
田中老與幼,相見何欣欣。一村唯兩姓,世世爲婚姻。
親疏居有族,少長遊有羣。黃雞與白酒,歡會不隔旬。
生者不遠別,嫁娶先近鄰。死者不遠葬,墳墓多繞村。
既安生與死,不苦形與神。所以多壽考,往往見玄孫。
我生禮義鄉,少小孤且貧。徒學辨是非,只自取辛勤。
世法貴名教,士人重冠婚。以此自桎梏,信爲大謬人。
十歲解讀書,十五能屬文。二十舉秀才,三十爲諫臣。
下有妻子累,上有君親恩。承家與事國,望此不肖身。
憶昨旅遊初,迨今十五春。孤舟三適楚,羸馬四經秦。
晝行有飢色,夜寢無安魂。東西不暫住,來往若浮雲。
離亂失故鄉,骨肉多散分。江南與江北,各有平生親。
平生終日別,逝者隔年聞。朝憂臥至暮,夕哭坐達晨。
悲火燒心曲,愁霜侵鬢根。一生苦如此,長羨村中民。





그러니까 주진촌은 중국 강소성의 서주시(徐州市)의 풍현(豊縣)이라는 마을에 있는 조장진(趙莊鎭)을 말하는데 남녀가 서로 만나서 화목하게 살면서 아들 딸 낳아서 잘 키웠다는 이야기란다. 그러니까 그렇게 잘 살았다는 말을 길게 쓰지 않고 '주진'의 두 글자로 해결을 본 것이 역시 문장가임을 인정해야 할 모양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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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가에는 삼공주추원비(三公主追遠碑)가 서 있다. 기념비도 아니고 추원비라니 이건 도 무슨 말인가 싶어서 타이핑하는 손길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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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추모비나 같은 뜻으로 보면 되겠다. 괸히 논어에 나오는 문구를 끌어다 써놔서 뭔 소린가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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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신방을 차렸다고? 원 설마하니 이렇게 우중충한 곳에서 신방을 만들었을 리가 있나. 멋진 건물까지는 아니라도 공주를 모시는 방법이 이건 아니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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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삼성인은 태어나기도 땅에서 태어났으니까 혼인도 땅속의 굴에서 했다고 하는 것이 일맥상통하는 느낌도 없지는 않군. 그럴 수도 있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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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기에서 여섯 사람이 신방을 꾸몄다는 것은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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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이 있었구나.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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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0년 전이었구나. 참 오래도 되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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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이 아담하다. 그만하면 괜찮아 보인다. 다만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어서 아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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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주추원사는 삼공주추원비와 함께 짝을 이루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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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붉은 거북인가? 무리를 지어서 나뭇가지에 올라 해바라기를 하는 모습이 귀엽구나. 이렇게 둘러보는 사이에 시간은 점심 때가 되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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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성산읍에서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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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말전하고, 보말무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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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보말죽도 먹었지 싶기는 한데... 사진이 없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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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오전의 일정은 완전히 마무리를 지었다.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