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 왜 선생님 책 대로 대입했는데 안 맞나요?

작성일
2016-10-07 07:41
조회
5525

[702] 왜 선생님 책 대로 대입했는데 안 맞나요?


 

 

_DSC0976

시월의 상쾌한 하늘을 보니 세상이 더욱 맑아 보입니다. 낭월이 살고 있는 계룡산의 풍경이 이런 것으로 봐서 다른 곳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겠거니..... 싶습니다. 좀 더 있으면 단풍잎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잖아도, 뭔가 한담을 한 편 써야 할 때가 되었는데..... 싶었습니다. 그런데 축착합착(築着磕着)이라고, 마침 어느 동영상 회원께서 한담꺼리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물론 질문 속에서는 고뇌의 흔적이 보여서입니다.

낭월의 책을 보면서 공부하고 있는데 신대운을 열심히 배워서 적용해 봤는데 맞는 것도 같고 안 맞는 것도 같고, 주운도 적용해 봤는데 또한 어긋나는 경우가 있고, 육친궁을 적용해 봐도 또한 안 맞는 경우가 많으니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해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한담을 읽으실 벗님의 생각도 이러한 소식들이 스치고 지나갔거나, 현재 그렇게 의문에 빠져 있거나, 혹은 앞으로 그렇게 될 상황이 보여서 이런 기회에 낭월의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한담에 딱 어울리는 주제일 수도 있겠딴 생각도 들고 말이지요. 말하자면 잘 맞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되는 셈인가요? 하하~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들이 너무너무 공감이 된다는 것입니다. 역시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주는 후학의 고뇌인 까닭인가 싶어서 안쓰러움이 스멀스멀 배어 나오기도 합니다. 마치 자녀의 성장통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문득 봉우 선생님의 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行行行裏覺)

가고가고 또 가다가 보면 그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또 행하다 보면 그 속에서 깨닫게 된다.

왜 봉우 선생님께서 이러한 글을 남기셨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제자들이 얼른 신선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데 왜 신선이 빨리 되지 않느냐고 얼마나 보챘을 것인지를 안 봐도 비디오로 선명하게 상상이 됩니다. 그래서 오죽 귀찮으셨으면 아예 글로 남겨서 공부가 왜 말씀하신대로 얼른 진전이 없느냐고 다그칠 때마다 이 글귀를 보여줬을 것이라는....

한 방향으로 길을 잡고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실행하는 자에게만 해답은 주어진다는 의미로 이해를 하면 되지 싶습니다. 그래서 무슨 공부를 하든지 10년의 세월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단기속성으로 해답을 얻고자 하면 그만큼 부작용도 따른다는 의미로 정리를 해 봅니다. 자평명리학도 예외일 수는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1. 잘 맞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낭월의 생각은 장 그렇습니다. 잘 맞는다는 말을 들을 때면, 참 이상하다 싶은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말이지요. 사주의 여덟 글자에 내포되어 있는 암시를 풀이했는데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던 사람이 손뼉을 치면서 기가 막히다고 할 적에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시스템이 그 안에서 작동하고 있기에 잘 맞는 것인가도 궁금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불가항력이 있어서 인간의 삶에 교묘하게 개입하여 정해진 통로로 끌고 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사실 이 자평명리학이 그러한 묘미가 없었다면 하루도 지속적으로 연구를 할 마음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바로 때려 치웠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가 없는 것은 참으로 미묘한, 아니 오묘한 그 무엇인가가 있음을 눈치 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입문하여 공부를 시작한 독자의 생각도 낭월과 같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낭월이 처음에 입문했을 적에 느낀 생각을 더퉈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봅니다. 저마다 자신의 노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하는데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적에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도 뒤따르게 됩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말이 되는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니~!

그래서 첨에는 반신반의로 시작된 공부입니다.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 생각해 보니,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현재진행형 임을 깨달았습니다. 여전히 신기하고, 여전히 의문스럽고, 여전히 어딘가는 맞지 않은 채로 그렇게 굴러가는 자평의 우주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벗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맞는 것이 신기하신가요?
틀린 것이 속 터지시나요?
그래서 책을 집었다 놓았다를 반복하시지는 않은가요?

낭월이 그래왔던 것처럼 이 공부를 하시는 벗님도 또한 그러하시려니 싶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정했습니다. 안 맞아서 의문스러운 것이 아니라, 맞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마음의 여유로움조차 없이 이 공부를 하신다면 아마도..... 오늘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으실 거라는 것을 단언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막연했던 환상이 사라지고 이치가 또렷하게 들어나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되네요.

 

2. 왜 팔자의 암시가 맞을까?


이 문제부터 생각을 해 볼까요? 적어도 이성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왜 맞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자연의 모습을 보이는 대로 이해한다면 당연히 맞을 턱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생각은 어떨가요? 노력한 만큼 거둔다는 인과론이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요. 즉, 숙명(宿命)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이것이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의 생각이라고 보는 것은 크게 틀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본다면 그렇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12톤 대형 트럭에 실어도 다 못 담을 만큼의 운명관련 서적들이 넘쳐납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문명국이든 후진국이든 모두가 같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온갖 불가사의한 일들을 풀어 낼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도입이 된 것이려니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도대체, 왜 운명의 암시가 맞는 것일까요? 물론 여전히 반신반의를 할 수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전생의 업연(業緣)에 의해서 이번 생의 삶을 꾸려갈 뿐이지, 그날 그 시간에 태어났다는 것으로 인해서 운명의 암시가 작용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식 숙명관이겠네요. 이렇게 저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떠나가는 것이려니 싶습니다. 맞나요? 하하~

만약에, 전혀 사주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공부를 한 사람인양 하고 앉아서 상담을 하면서 사주는 적지도 않고, 당신은 올해 모든 것이 안 풀려간다고 했다면, 그 적중율은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80%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구나 삶의 여정이 힘들고 지쳐서 찾아온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말임을 감안한다면 90%도 넘지 싶습니다.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오랜 시간을 상담실에서 사람들과 부댓끼면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이라면 눈치로라도 그 정도는 식은 죽을 먹는 일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오호~! 이거 점점 밥맛, 아니, 공부맛 떨어지는 이야기로 끌고 간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러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전히 이 공부는 해 볼만 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거니까요. 하하~

왜 맞느냐는 질문에 대한 결론은 낭월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씀드립니다만, 간지의 이치가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조차도 의문입니다. 왜 오늘이 병신년 정유월 임술일인지도 확신을 가질 수가 없는데 그것을 대입해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운명이 왜 맞는지에 대해서는 도저히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네요.

당연합니다. 논리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빅뱅으로부터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가 되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궂이 아니라고 할 근거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출발부터가 애매모호한 것이 형이상학(形而上學)입니다. 단언컨대, 모든 형이상학은 다 이 딜레마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
영혼은 있는가?
죽은 다음의 모습은 어떤가?
신은 과연 우주를 창조 했는가?
인간의 마음은 무엇인가?
사물에도 인간과 같은 마음이 있을까?

여기에 명쾌한 답이라고 내려놓은 백마강의 모래알 같이 많은 철학자들이 명멸했습니다만, 그 어느 것도 반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봅니다. 소크라테스나 공자나 모두 같은 선상에서 거론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말했지 우주의 이러한 구조를 설명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혹 우주를 말했더라도 그것을 증명할 방법도 없습니다. 일부 과학자들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람도 뭔가 모두를 다 설명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외의 경우야 일일이 열거를 할 수도 없지 싶습니다.

낭월도 이러한 선현들과 같이 삶의 모습의 실체가 궁금하여 파고 또  파지만 여전히 실체는 안개 속에서 손짓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상의 추적을 그만두기도 했다가도 그 무엇인가에 이끌려서 다시 흔적을 좆아서 어둠이 짙게 깔린 밤길을 재촉하곤 합니다. 아마도 벗님의 모습도 낭월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만.....

그러니까, 왜 운명의 예측이 어느 정도 맞느냐고요? 그러니까요. 낭월도 그 답을 얻지 못했다잖아요. 그러니 얻지 못한 것을 얻지 못했다고 해야지 얻은 척 하면서 얼버무릴 수는 없지 않겠느냔 말씀이지요. 낭월도 몰라요~~!!

그럼에도 공부하면서 방문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론 맞는 것도 같고 때론 빗나간 것도 같습니다만 그럼에도 충분히 활용할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삶의 모습을 설명하는 연장으로 이보다 더 나은 것도 없겠다는 생각조차 들기도 합니다.

그러니 비록 왜 맞는 것인지에 대한 원인의 설명을 명료하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목적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습니다만 그것은 어차피 학문의 여정이려니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과정에서 낭월만 믿고 따르다가 같이 구렁텅이를 방황하신 독자 님들께 죄송할 따름이라는 점입니다. 미안합니다만 낭월을 만난 것도 팔자려니~~ 하시고 맘 편히 연구하십시다. 하하~

 

3. 팔자가 없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


문득 어제 상담을 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낭월의 연구에 의해서 상담을 한 내용이 분명히 방문자에게 어떤 암시를 주고 방향을 모색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직업적인 만족도가 쏠쏠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이제부터는 팔자타령입니다. 낭월학당에서는 늘 이렇게 상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간지의 오행을 살펴서 기준을 정하고 방문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어제는 어머니와 아들이 방문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낭월 : 먼 걸음 하셨습니다. 

엄마 : 대중교통을 이용하니까 좀 많이 머네요.

낭월 : 아하, 차를 안 가지고 오셨군요. 그러시면 고생이 많으십니다.

엄마 : 더구나 상월에서 걸어왔더니 너무~ 멀었어요.

낭월 : 택시를 타시면 금방인데 걸으면 힘들지요. 고생하셨습니다.

엄마 : 몰랐지 뭐예요. 알았으면 고생을 덜 했을텐데 말이예요....

낭월 : 혹시 낭월의 책을 보셨는지요?

엄마 : 아니예요. 아는 분이 소개를 하셔서 오게 되었어요.

낭월 : 그 분은 공부를 하시는 분인가 보네요?

엄마 : 모르지요. 그냥 아들의 길을 알고 싶다고 했거든요.

낭월 : 아마도 그 분께서 길을 알려 주셨나 보네요?

엄마 : 그게 아니라 낭월 스님을 찾아가면 길을 안내해 주실 거라고만....

낭월 : 그래서 소개를 듣고 오셨군요.

이렇게 소개를 듣고 오시는 경우에는 상담자료에 깃발 아이콘(⚑)으로 표시를 해 둡니다. 바람에 떠다니는 소문을 듣고 온 것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공부를 하다가 오신 경우에는 연필을 잡고 있는 아이콘(✍)을 붙여둡니다. 철학원을 차려 놓고 영업을 하시다가 온 경우에는 태극마크(☯)를 붙이기도 하네요. 그냥 나름대로의 구분 표시입니다. 그러니까 이 상담사례는 깃발을 달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하~

엄마 : 이름을 소개 받으니까... 여자 이름 같아서.... 여자 분인줄 알았어요.

낭월 : 아마도 박주현 이라고 들으셨나 보네요?

엄마 : 맞아요~~!! 그런데 남자 분이어서 내심 놀랐어요.

낭월 : 아, 그러셨군요. 어려서 학교 다닐 적에도 많이 놀림을 받았습니다. 하하~

엄마 : 아들 때문에 많이 답답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낭월 : 그러시군요. 어디 살펴보면서 이야기 나눠 보십시다.

엄마 : 생일은 모년 모월 모일 모시입니다. (이미 화인이 적어놓은상태임)

 

[오주괘]         [아들의 사주]


庚乙辛丁丙       戊丙庚甲 33세. 김**
辰未酉酉申       戌申午子

어디, 공부를 좀 하신 벗님이시라면 사주의 분위기를 좀 살펴 보실랍니까? 보자.... 오월의 병화가 의지할 곳이 부족하니 용신은 연간의 목이 되겠고, 희신은 수가 되는 것으로 봐야 하겠다는 정도의 판단이 되셨을 것으로 봅니다. 오월의 당령이므로 강하다고 하지 않으신다면 말이지요. 그렇게 보는 관점도 있으므로 그것은 각자의 인연에 맡깁니다.

이것이 이 사람에게 주어진 숙명표입니다. 비록 대입해서 얼마나 잘 맞을런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 낭월의 연장사용 설명서에는 목운이 와도 별 수가 없겠다는 설명이 붙어야 할까 싶습니다. 강력한 토금의 힘들이 버티고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어찌 사람이 사주대로만 살겠습니까만서도 사주의 영향이 없다고 못한다면 가장 큰 문제는 인내심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사주 한 번 쓰윽~ 훑어보고 입을 열어야 합니다. 너무 오래 생각하면 의심하거나 불안해 하는 까닭입니다.

낭월 : 전공은 뭘 하셨는지?

아들 : 화학과를 나와서 석사과정 3년을 하다가 그만 뒀습니다.

'화학과'라는 말이 나온 순간 열심히 염두(念頭)를 굴립니다. '그건 궁리하는 연구소에서나 써먹을 연장이잖여? 궁리를 하려는 것은 시주의 식신들로 인해서이겠구먼. 물질의 구조와 변화에 관심이 가는 것은 편재의 성향이라고 볼 수가 있겠구먼. 이러한 구조들로 인해서 화학과에 관심을 둔 것은 가능 하겠어.....'

낭월 : 화학과는 써 먹을 곳이 극히 제한적이 잖여?

아들 : 맞습니다. 연구소에서 근무도 했는데 재미가 없었습니다.

낭월 : 군대는?

아들 : 제대하고 다시 복학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낭월 : 그만하면 공부도 할 만큼 했구먼.....

아들 : 그런데 길이 통 보이지 않습니다.

엄마 : 참 답답해서 죽겠어요.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대요.

낭월 : 본인은 전공과 무관하게 뭘 하고 싶은 겨요?

아들 : 뭘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낭월 : 아니? 그런 말이 어딧어? 뭔가 방향을 물으려면 기본이라도 있어야지.

아들 : 그래서 저도 고민입니다. 도무지 의욕이 나질 않으니 말이지요.

벗님께서 낭월이라면 어쩌시겠어요? 이 젊은 서른 세살의 아들에게 뭐라고 조언을 하시겠어요? 아마도 대부분 난감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낭월도 예외가 아닙니다. 일단 난감합니다. 그러나 경력자는 괜한 경력자가 아니라는 것. 이것을 믿고 버티는 것이기도 합니다.

낭월 : 어디 보자..... 점괘를 보니.... 의욕이 없을 만도 하시네....

엄마 : 어떻게 나왔길래요?

낭월 : 직장은 평생을 의지할 곳이 못 되니 마음이 불안정하고...

아들 : 맞아요~!

낭월 : 돈이라도 벌어보자고 해도 남들이 더 잘 하고 있으니.....

아들 : 그래서 뭘 해야 할지에 대한 의욕이 사라집니다.

엄마 : 어머! 점괘가 어떻길래요?

낭월 : 자신의 중심은 강한데 사회는 뿌리가 없이 흔들려서 그렇지요 뭐. 

물론 점괘는 오주괘를 말합니다. 강하고도 강한 신유일주입니다. 연월에 모두 신유금이네요. 주체가 너무 강해서 자만에 도달한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과거[연월]에 직장에서 일도 했습니다. [관살] 그러나 마음을 붙일 곳이 못 된다는 걸 알았겠지요. [병화와 정화의 무력함] 그래서 돈이라도 벌어볼 방법이 뭔가를 생각 했을 것입니다.[시간의 을목 편재]
그런데 자신의 연장은 화학과입니다.[컨닝] 이미 세상에서 돈을 버는 연장으로는 마땅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지요. 더구나 그 을목은 을경합이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너무나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정도면 신기하잖아요?

책은 지식이라고 했지요? 궁금하신 벗님은 바로 이전 한담[701편]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책만으로 공부를 하는 독자의 한계가 이 언저리입니다. 책에 나온 것을 적용시키려니까 제대로 맞을 턱이 없지요. 책은 어디까지나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응용은 지씨네 4형제 중에서 막둥이인 지혜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식으로 지혜가 감당해야 할 영역을 막으려니 여기에 맞추면 저쪽이 어긋나고, 저쪽을 겨우 꿰어 맞추면 이번에는 그쪽이 또 어그러져서 미쳐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공감이 팍팍 되시지요? 하하~

책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절대로 그런 책은 없습니다. 그야말로 책은 하나의 예문일 뿐이거든요. 결국은 자신의 것으로 소화를 한 다음에 푹 익어서 자기의 상표가 되었을 적에 비로소 책의 가치는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말하자면 술을 빗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겠네요.

밥, 물, 누룩을 섞습니다. 이것은 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식이고 책입니다. 이것을 뒤적뒤적 섞어서 항아리에 담아놓았다고 해서 바로 술이 되지 않습니다. 낭월의 《사주심리학》을 99번 읽었다고 해서 사주를 보면 심리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지식과 지혜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섞어서 아랫목에 놓고 담요나 이불로 둘둘 말아 놓습니다. 그러면 속에서는 점점 전쟁이 일어납니다. 뽀글뽀글, 꼬르륵꼬르륵, 부글부글, 와글와글......

그 과정은 아마도 자평법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모순과 환희와 의문들의 소용돌이와 같다고 봅니다. 정말 비유 하나는 기똥차게 잘 끌어다 붙이는 낭월이지요? 사실 이렇게 활용하는 요령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비유품에 다 나와 있습니다. 아, 그렇다고 해서 묘법연화경을 사러 가진 마세요. 그냥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니까요. 하하~

그런데, 사주의 간지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신 것은 언제부터 쌀을 인간이 먹기 시작했고 그것으로 술을 빗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게 궁금하세요? 물론 궁금해도 아무도 정답을 모릅니다. 농림부 장관이나 멘델 박사에게 물어봐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답만 나올 뿐입니다. 그래서 원인을 찾지 않습니다. 그냥 쌀이면 되었고 누룩이면 되었지요. 더 이상 알려고 하면 다칩니다. 마음을요. 하하~

책에 나온 것을 대입하는 것을 "쌩짜~!"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고구마 밭에서 군고구마를 찾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밥에 누룩 섞는 것을 보고 술을 달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책을 보면서 자신이나 가족의 사주를 대입해서 맞는다면 그것도 기적입니다. 물론 기적은 곧이어서 좌절을 가져 옵니다. 여기에서 맞는 것이 다른 곳에서는 안 맞으니까요. 그래서 미치고 폴짝 뛰는 것이 아니겠어요? 워워~~

아, 지금 상담을 하고 있는 중이지요? 깜빡 했습니다. 점괘를 풀이해 주니까 엄마와 아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는 것을 보면서 낭월은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후유~ 다행이다~~' 이런 느낌 아시지요? 이런 것이 책에 왜 안 나오느냐고요? 그러니까요. 낭월도 그런 책을 쓰고 싶습니다만 그것을 쓴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포기 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등산 지도에는 산돼지가 나온다는 표시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하~

엄마 : 그래서 미치겠는 거예요. 직장이 있어야 결혼도 할 거고....

낭월 : 이해 합니다. 엄마 입장에서야 애가 타서 재가 되셨겠네요.

엄마 : 맞아요. 그래서 아들의 길을 알려 달라고 애걸을 했더니만...

낭월 : 걱정 마세요. 아들의 길을 알려 드릴께요. 하하~

이런 때는 큰 소리로 웃어야 합니다. 우선 엄마의 조바심을 안심시켜 드려야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지요.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희망의 욕구가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찾아왔으니 만나야지요. 그래서 또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낭월 : 지금은 아무런 해답도 없는 시기네요.

엄마 : 그럼 워쪄요. 취직을 해야 한단 말이예요.

낭월 : 나이로 봐서는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하는데.. 운명은 쉬라고 하네요.

엄마 : 그러니까요. 그래서 길을 알려 달라고 왔잖아요. 

낭월 : 그런데 아들은 몇이예요?

엄마 : 예? (별걸 다 묻는다는 듯이...) 형이 하나 있습니다만....

낭월 : 그럼 하나 쯤은 출가를 해도 되겠네요.

엄마 : .......

아들 : ?????

용해지고 싶은 벗님께 묻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 사주를 보고서 할 수 있으시겠어요? 출가하라는 사주가 따로 있을까요? 그런 답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상담을 할 수가 있겠어요? 낭월이 귀신이라도 붙었을까요? 그야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논리적으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을까요? 가능하시다면 다음 이야기를 보시기 전에 궁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박도사 버젼을 접해 보고 느낀 생각입니다. 도사 버젼은 일회용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것을 그대로 외워서 자신도 써먹어 보겠다고 한다면, 십중팔구는 오류가 일어날 것이 빤하니까요. 뭐 그래도 십중1~2는 맞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요? 하하~ 글쎄요.

그러니까 이 아들의 사주를 낭월이 출가하라고 풀이했다고 해서 또 같은 사주의 다른 사람을 만났을 적에 써먹어 보겠느냔 말이지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셨지요? 그럼 나름대로 풀어 보시고 계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나는 길에 박도사님 에피소드입니다. 제자와 담소를 하는데 마침 찾아 온 남자를 제자가 가리키면서 '저 사람은 뭘 해먹고 살 사람이냐'고 물었더랍니다. 도사님 왈, '분뇨수거로 먹고 살 사람이구먼.' 실제로 그와 같음을 알고 모두 놀랐답니다. 신왕한 무진(戊辰)일주였습니다. 진토는 똥통이고, 계수는 똥물이고 을목은 똥덩어리랍니다. 멋지지요? 그렇다면 신왕한 무진에게 그것을 한 번 써 먹어 보실래요? 하하~

 

 4. 사주도 보고 현실도 보고 느낌도 보고....


세상사 모든 것을 노력만으로 풀어 낼 수도 없듯이, 사주만으로 풀어낼 수도 없습니다. 그것을 되도록 빨리 깨달으면 고통이 줄어들고 행복이 늘어납니다. 이 공부를 하시다가 중도폐(中道廢)하시는 벗님들이 안타까워서 드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기본 원리를 터득한 다음에는 스스로 자신만의 해결법을 찾아서 다시 생각의 집을 나와야 합니다. 그것을 재출가(再出家)라고 합니다.

도를 찾기 위해서 처음에 집을 나간 것은 초출가가 되겠네요. 그리고 수행을 하여 스님이 된 다음에는 다시 또 출가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 공부를 하려고 맘을 낸 것이 초출가(初出家)라면, 상담실을 열어놓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재출가에 해당한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재출가는 탄탄한 초출가를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것도 겸해서 말씀드립니다. 그냥 속성반에서 3개월 과정을 마쳤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6a6465449f3f11e3b4a6e0db5512b209

술 이야기를 하다가 말았습니다만, 부글대던 항아리가 어느 순간에 조용해 집니다. 그리고는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나옵니다. 이때가 바로 환희의 순간입니다. 공부해서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용수를 박고 한 국자 떠서 향과 맛을 즐길 자격과 때가 된 것입니다. 비로소~~ 공부의 고통이 사라지고 환희가 가득한 순간이 옵니다. 알딸딸~ 한 느낌에서 세상의 누구도 부럽지 않은 취중선(醉中仙)이 되는 것이지요.

이런 기쁨을 맛보지 못하셨나요? 그렇다면 좀더 누룩을 넣고 온도를 높이세요. 술이 되는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발효이고 발효를 위해서는 온도가 필요합니다. 온도가 없으면 밥은 밥, 누룩은 누룩, 물은 물일 뿐입니다. 여기에 따끈따끈한 온도가 추가 되었을 적에야 비로소 향기로운 농주가 되는 것이지요. 궁금하시면 시장에서 누룩을 한 덩어리 사다가 술을 빚어 보시던가요. 하하하~

벗님의 머릿 속에 들어있는 음양, 오행, 십성, 용신, 운세가 고온의 열정에 녹아서 한바탕 혼란을 겪고 나면 비로소 한 방울의 감로수가 될 것입니다. 그냥 책만 읽어서는 영원히 그러한 소식을 접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일러서 지혜(智慧)라고 합니다. 지혜는 지식을 먹고 발효한 술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혹시라도 술을 싫어하신다면.... 감주(甘酒)도 좋습니다. 밥이 남으면 엿기름을 버무려서 전기밥솥에 넣었다가 삭으면 끌여먹는 거 말이지요. 비록 누룩 대신 엿기름이 들어가는 것은 다르고 맛도 다르지만 이치는 하나입니다. 누룩은 밀기울로 만들고 엿기름은 통보리로 만든다는 것만 다를 뿐 그 역할은 같습니다. 자연의 이치가 너무나 재미있지요?

엄마 : 왜요? 아들이 출가를 했으면 좋겠어요? 

낭월 :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은 모르셨지요? 

엄마 : 어려서 무속인들이 아들을 어디에 팔아주라고 했어요.

낭월 : 그랬군요. 그래서 팔아 주셨어요?

엄마 : 젊어서야 그냥 웃어 넘겼지요. 원래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요.

낭월 : 그런데 지금 낭월의 말을 들으니 또 그 말이 떠오르셨군요?

엄마 : 맞아요. 그래야 할 운명도 있는가요?

낭월 : 김군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

아들 : 없지요. 그런 생각을 해 봤을 리가 있나요....

낭월 : 그럼 지금 해 보셔봐.

아들 : 그래야 겠네요....

낭월 : 여하튼 사주로 설명이나 해 줬으면 좋겠지?

아들 : 예, 그게 궁금합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러니까요. 왜 출가를 이야기 할까요? 그것은 당연히 일간 병화가 버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병신일주가 허약하면 모두 출가하느냐고 따지고 싶으시겠지만 참으시라고 합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렸으니까요. 그 사람의 사주는 그 사람 것이라서 그 사람에게만 해당을 합니다. 여기에서 출가라는 것은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 것에 불과합니다. 문득 그게 떠올랐습니다. '산에 가서 도나 닦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것을 육감(六感)이라고 해도 될까요? 오래 공부를 하다가 보면, 그리고 임상을 하다가 보면 가끔은 그런 황당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 느낌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있는 간지의 해석은 알아둬야 하겠네요. 해석을 못하면 무당이고 해석을 하면 학자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풀이를 했습니다.

낭월 : 본인은 오행이 뭐라고 했지?

아들 : 불이라고 하셨습니다.

낭월 : 불이 앉은 자리는 에너지가 넘치지?

아들 : 금이면 쇠에 앉아 있는데 어떻게 에너지가 넘치나요....?

낭월 : 아, 내가 잘 못 봤구먼 그럴리가 없겠지?

아들 : 그렇지요. 옆에도 금, 또 옆에는 흙이니까... 불은 약하다고 하겠네요.

낭월 : 그럼 뭐가 필요 하담?

아들 : 불은 나무가 필요하잖아요. 여기 목이 하나 있네요. [연간 갑목]

낭월 : 그럼 그게 양식이고 에너지고 연료구먼 그런가?

아들 : 예, 그렇게 봐도 되겠네요.

낭월 : 연료가 바로 옆에 있는 건가?

아들 : 아니지요. 떨어져 있다고 해야 되겠습니다.

낭월 : 그 중간에는 뭐가 있지?

아들 : 금이 있습니다. 금은 뭘로 이해하면 될까요?

낭월 : 바위라고 볼 수도 있을까?

아들 : 그것도 가능하겠습니다.

낭월 : 그렇다면 나무가 바위를 넘어서 나에게 올 수가 있을까?

아들 : 불가능 하겠습니다.

낭월 : 그럼 불은 금을 넘어갈 수가 있을까?

아들 : 그것은 가능하지 싶습니다.

낭월 : 왜? 어떻게?

아들 : 금은 불에 녹으니까요.

낭월 : 그럼 이 불이 살기 위해서는 저 금을 녹이는 수밖에 없을까?

아들 : 그렇겠는데요.

낭월 : 그래서~~!!

아들 : 예?

낭월 : 그래서 도를 닦으라는 이야기란 말이지~!

아들 : 도를 닦는 것이 금을 녹이는 것인가요?

낭월 : 불교 말로는 업장을 녹인다고 하지. 그게 금이고 바위야.

아들 : 그것을 녹이면 해결이 되는 거네요?

낭월 : 당연하지~!! 그게 이번 생의 화두(話頭)였구먼.

엄마 : 어디에서 누가 아들을 받아 주기나 하겠어요?

아들 : 왜 그 해석에서 반드시 출가를 해야 할까요?

낭월 : 앞으로 5년 간의 운에서는 나무가 없구먼.

아들 : 그러면 모든 일들이 안 풀리나요?

낭월 : 그럴 가능성이 많겠지. 그냥 세월만 흘러가겠지.

아들 : 출가를 하면요?

낭월 : 마음의 수행을 하게 되니 자신을 알게 되지 않을까?

아들 :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네요.

낭월 : 한 3년 잡고 살아보는 겨. 그러다가 맘에 들면 눌러 앉고.

아들 : 들어갔다가 맘대로 나와도 되나요?

낭월 : 누가 말리겠어. 그리고 들어갔다가 나오더라도 안 간것 보다는 낫지.

이 반응이 이해가 되십니까? 이미 엄마는 아들이 출가할 사찰에 대한 걱정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이지요. 참으로 가끔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펄펄 뛸 줄만 알았는데 두말을 할 것도 없이 누가 이 덜 떨어진 아들을 받아 주기나 하겠느냐는 걱정을 하고 있는 엄마의 마음이라니.....

이렇게 상식과 논리로는 풀리지 않는 일들이 상담실에서는 종종 풀립니다. 엉켰던 실뭉치가 풀려가는 느낌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비로소 뭔가 돌파구를 찾았다는 느낌일까요? 그래서 이야기는 다시 국면의 전환을 맞이했습니다. 어디로 출가를 하느냐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말이지요.

엄마 : 그러니까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낭월 : 그야 발길이 닿는 대로 가면 되지요.

아들 : 그래도 좀 막연하네요.

낭월 : 사주에서 뭐가 필요하다고 했지?

아들 : 나무요.

낭월 : 그럼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면 되겠네.

아들 : 절은 다 나무가 많지 않나요?

낭월 : 그건 아니지. 도회지는 건물이 많고 바닷가는 물이 많지.

아들 : 그렇긴 하네요. 그런 곳이 어디일까요?

낭월 : 속리산 법주사~!

아들 : 법주사는 어디 있어요?

왜 법주사냐고 또 묻고 싶으신 벗님을 위한 사족입니다. 법주사의 숲길이 문득 떠오르셨다면 다행입니다. 천년의 송림에 둘러쌓인 절입니다. 속리산의 법주사는 그야말로 숲이 아름다운 절이지요. 다만 바위가 많지 않아야 합니다. 있더라도 바위보다 숲이 월등히 많아야 한다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 남해 보리암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낭월의 주관이거나 영감에서 나온 판단입니다. 조계사만 아니라면 산골의 절이 어디인들 문제가 되겠느냐는 생각을 해도 되겠습니다. 특히 속리산이 떠오른 것은 정이품송도 한 몫을 합니다. 연간의 갑목은 오래 된 소나무라고 해도 되겠더란 생각이 났기 때문이지요. 이것도 모두 활용에 쓰입니다. 그야말로 지식과 상식의 집합체가 상담실에서 전개된다고 하겠습니다. 이쯤에서 도사 티 한 번 내 볼까요?

제자 : 아니, 싸부님 왜 남의 멀쩡한 자식을 출가시키려고 하십니까?

도사 : 멀쩡하긴 뭐가 멀쩡해? 세상에서 살고 싶은 의욕이 없다잖여~!

제자 : 그래도 그렇지요. 세상에서 잘 살아가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도사 : 그야 네 생각이지~~ 헐헐헐~~

제자 : 그래도 모자께서 반발하지 않고 수긍하시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도사 : 그것이 바로 도력이니라~ 알겠느냐~!

제자 : 제자도 옆에서 놀랐습니다. 남의 대를 끊을 일이 있느냐고 대들까 봐서요.

도사 :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허허허~

제자 : 그런데 왜 하필 속리산 법주사를 가라고 하신 겁니까?

도사 : 그야 사주에 나와 있잖여.

제자 : 제자가 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데요......?

도사 : 이 당달아 연간(年干)에 정이품 송이 안 보이느냐~!

제자 : 갑자의 갑목 말씀이군요. 이제서야 보입니다. 에구(퍽퍽~)

도사 : 그래서 속리산이니라 헐헐~~

제자 : 외워놔야지. 연간 갑목은 속리산, 속리산 정이품송.....

도사 : 에구 저 멍청한 녀석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구 있으니... 쯧쯧

제자 : 예????

그나저나 그런 이야기야 누구라도 하겠다고요?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할 수가 있는 이야기를 해야지요. 물론 재미있는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우연과 논리와 학문과 영감과 경험들이 어우러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세상에 필요가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장자의 이야기가 귓가를 쟁쟁 울립니다.

엄마 : 법주사 라고요.....

낭월 : 엄마는 가 보셨어요?

엄마 : 그것 참 이상하네요.....

낭월 : 뭔가 떠오르신 생각이 있는가 보군요.

엄마 : 사실은 스님께 가보라고 소개한 분이 법주사에 계세요.

낭월 : 그래요? (우와~~!! 뒷걸음에 뭔가 하나 잡은 느낌)

엄마 : 실은 선방에 계시는데 인연이 되었거든요.

낭월 : 그럼 더 잘 되었네요. 그 스님을 찾아 가면 되겠어요.

엄마 : 받아 주실까요?

낭월 : 당연하지요. 그것이 인연인 걸요. 그 스님의 법명이...?

엄마 : 송산 스님이세요.(송 자만 실명임)

낭월 : 그럼 소나무 동산이로군요.

아들 : 정말요. 송은 소나무 松이겠네요.

낭월 : 뭔가 확~ 드는 느낌이 있잖여?

엄마 : 듣고 보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어쩜....

낭월 : 그럼 길은 찾아 드렸네요. 가고 말고는 본인의 맘이고~!

이야기는 그 후로도 조금 더 이어졌습니다만 하이라이트가 나왔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멈추기로 합니다. 상담은 이런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기억을 떠올려 보고 설명해 드린 것입니다. 이야기 속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러니까, 십성이 좀 덜 부합되고, 용신이 좀 덜 맞는 것 같아도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다 그 안에서 해결책이 보이더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밖에서 기웃거려서는 절대로 정곡(正鵠)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만큼은 확실하다고 보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혼란은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라는 것도요.

더러는 안 맞고, 더러는 잘 맞겠지요. 그러나 맞고 말고에 연연하시면 일평생 숨은 보물을 찾는 사람의 자리에서 서성이다가 말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일단 낭월의 책을 보시면서 사기는 안 당하겠다는 생각이 드셨다면 술이 익을때까지 진드감치 기다려 보실 용기와 배짱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기에 용기있는 자가 얻을 수 있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딱 어울리는 말이 떠오르네요.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不狂不及]'

는 말은 공부자에게 더없이 중요한 금언(金言)인가 싶습니다.

낭월의 책에 쓴 생각의 조각들은, 쌀과, 누룩과, 물이라고 보겠습니다. 여기에는 열기는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각자 인연이 있는 벗님들의 몫입니다. 열정이 없으면 영원히 자평법의 묘미를 얻을 수가 없을 것이고, 열정이 넘친다면 누구라도 반드시 간지의 변화에 눈을 뜰 수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맛있는 술 맛을 보실 요량이시라면, 열정은 부족한 상황에서 누룩탓, 쌀탓, 물탓을 할 일이 아니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재료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늘 느끼고 있으니 필요한 것은 그냥 믿고 가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기가 막힌 술 맛을 보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공부가 다 그럴 것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무엇을 이루든 그 과정에서의 열정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어떠셨어요? 이만하면 책대로 맞지 않는 것에 대한 이유의 설명으로 조금은 타당할까요? 물론 부족한 글주변으로 인해서 마음 속의 이야기를 모두 표현하지 못함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모쪼록 낭월이 바라노니, 이 상쾌한 가을에 낭월을 믿고 풍덩~! 자평의 늪으로 빠져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말씀을 남깁니다.

 

2016년 10월 7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