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 '지씨(知氏)'네 4형제

작성일
2016-09-14 15:31
조회
4354

[701] '지씨(知氏)'네 4형제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내일이 추석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완연한 가을의 계절로 변해가는 산천을 바라보면서 이 계절에 어울리는 생각을 해야 하겠다는 욕심을 부려 봅니다. 사색(思索)이라고 하는 거창한 문구도 떠올려 보구 말이지요. 그래가면서 삶의 유희를 즐기는 것이니까요. 동행하시려고 클릭 하셨네요?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선선한 바람이 부는 오솔길로 산보를 나가 보십시다. 하하~

찬바람 탓인지.....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식(知識)의 의미를 생각하다가, 또 지능(知能)의 의미도 생각하다가, 문득 지성(知性)에 대한 것이 떠오르더니 급기야 지혜(知慧)가 떠오르지 뭡니까~! 그래서 이름하여 지씨 4형제라고 해 놓고 한담을 찾아주시는 벗님들께 추석 선물이라도 하나 마련해 드리자고 너스레를 떨어 봅니다.

 

 

1. 제일 맏 형인 「지식(知識)」군


왜 지식이 맏형이냐고 물으시면..... 아무래도 지식이 맨 먼저 태어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만, 세상을 몇 년 살아 보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서 확실한 이유를 붙이기에는 다소 저어되는 맘이 있는 것도 사실이네요. 그래서 그냥 낭월의 맘이라고 해 둘랍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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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한 숨 자고 문득 서재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사진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주운 것입니다. 혹 오해 하실까봐서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쌓여 있는 책들을 바라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가 '지식'입니다. 지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들이라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지식을 전해주려고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고, 지식을 머금고 있는 보물과 같은 이야기들이 그 안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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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인연에 따라서 시나부로 사 모은 책들이 제법 쌓였구먼요. 그리고 그 중에서는 알토란 같은 진국을 우려먹고 또 우리고 있는 사골탕과 같은 것도 있고, 설렁설렁 훑고 쿡 쳐박아 둔 묵은지도 있고, 또 두어 페이지를 보다가 본전 생각이 나서 버리기는 아까워서 그냥 둔 것도 있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입니다만 책이라고 한다면, 저마다의 가치는 한 보따리씩 갖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열어서 꺼내 먹는 능력은 그 책을 잡은 손의 주인에게 있을 것으로 봅니다.

예전에, 어느 방문자께서 '낭월의 서재가 보고 싶다'고 해서, 뭐 서재랄 것도 없지만 그냥 책꽂이를 보여 드렸더니 열심히 폰으로 책들을 찍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뭐할라고 그러시느냐고 했더니 '스님처럼 지식인이 되고 싶어서입니다.'라고 하시잖아요. 그래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낭월에게 있는 책을 다 읽으면 낭월처럼 된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던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공부는 하고 싶은데 어떤 식으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를 몰라서 열정은 있고 방법은 모르는 조바심의 마음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여하튼 지식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배워서 남줄 수가 있으니까요. 모르면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지 않겠느냔 말이지요. 모쪼록 시간과 환경이 허락하는 한에는 최대한 지식을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중국에서는 지식을 쌓은 사람을 지식분자(知識分子)라고 합니다. 지식은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만 분자(分子)는 반동분자(反動分子)와 같은 느낌으로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불쑥 해 봅니다. 사전적으로 보면, '어떤 특성을 가진 인간 개체, 흔히 부정적인 관점에서 이르는 말'이라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니까 공산당에서는 말이 많으면 피곤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를 붙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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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분자로 검색을 했더니 이런 사진이 나타나서 붙여 봅니다. 내용은 아마도.... "지식분자들이여! 그대들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그것을 빤히 보기만 하고 어째서 감히 나서서 말하지 못하는가~!"인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지식인의 상식으로 봐서는 잘못 되어가는 현실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그에 대해서 잘못 되었다고 말을 해야 할 지식인들이 가만히 있으니 우리라도 나서야 겠다는 생각으로 삼은 제목인가 싶기도 합니다. 이 사진은 대만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잘못 된 줄을 안다고 해서 다 말을 할 수도 없는 일이기는 합니다. 괜히 입을 잘 못 놀렸다가 자기만 봉변을 당하고 물대포라도 맞아서 병원에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어봐야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지 못할 사람이 아닌 바에는 말이지요. 아마도 그래서 서로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면서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일갈(一喝)하는 의미가 아닐까 싶은 짐작만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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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지식은 다다익선(多多益善)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인 까닭이지요. 그래서 오늘도 고향에 가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는 학도들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집에서는 공부가 되지 않으니까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를 한다는데 아무래도 지식의 창고인 도서관에서 서신(書神)과 문신(文神)의 가호를 받으면서 공부한다면 뭔가 도움이 될 것은 사실이라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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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많이 읽을수록 좋다는 것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비록 그 책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허접한 이야기라고 할 지언정 말이지요. 누군가 책을 만들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종이값은 하는 것이 책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비록 나랑 맞지 않아서 재미가 없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또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TV를 통해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오히려 더 편리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물론 편리한 만큼 휘발성의 지식이 되기도 쉬운 모양입니다. 웬만한 것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자고 나면 잊어버리니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정보를 통해서 얻는 지식은 무시못할 만큼 상당한 것이라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방송은 절대로 보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 모두가 거짓이어서 삶에 도움도 되지 않고 지식에는 더구나 장애만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책에 대한 의존도는 상당이 높아서 늘 책을 끼고 살아가는 것이므로 충분히 이유가 있다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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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낭월은 방송에서 보여 주고 들려 주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그것이 교육방송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라면 눈여겨 볼만 하다고 생각하고 공자님의 말씀 마따나, '잠자는 것보다는 낫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듣자니 바둑을 두는 것에 대해서 누군가 공자님께 물었을 적에 '잠자는 것보다는 바둑을 두는 것이 낫다'고 했다면서요? 문헌에 나와 있으면 찾아 보겠는데 듣기만 한 이야기라서 사실인지는 확인을 못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공자님은 바둑과 같은 것으로 인생을 허비하는 것에 대해서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신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2. 둘째 형인 「지능(知能)」군


지식이 맨 처음에 태어난 녀석이라고 가정을 해 봤을 적에 그 다음에 태어난 놈은 지능일 것이라고 짐작을 해 봅니다. 지능의 뜻을 보면, '계산이나 문장 작성 띠위의 지적(知的) 작업에서, 성취 정도에 따라 정하여지는 적응 능력'이라는 군요. 적당한 의미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지식지수(知識指數)'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아도, '지능지수(知能指數)'라는 말은 늘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네요.

지능은 활용하는 능력에 따라서 구분이 된다는 의미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시험을 본다는 것은 지능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알고 있는 것을 얼마나 잘 엮어서 해답을 제시할 수가 있느냐는 능력을 보는 것이겠네요. 지능이 높고 낮은 것을 평가하는 것으로 지능검사가 있던가요?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라고 하면 적당하지 싶습니다. 보통 'IQ검사'라고도 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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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채널 tvN의 프로그램인 「문제적 남자」가 문득 생각나네요. 이 대단한 친구들은 지능이 얼마나 높은지, 저런 것에서 어떻게 답이 나오나..... 싶은 것도 척척 풀어내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른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물론 지능이 높은 벗님이 보신다면 아이들이 장난하는 것이라고 하실 수도 있지 싶기는 합니다만, 낭월의 눈에는 모두가 입신의 경지에서 지능을 활용하고 있는가 싶네요. 하하~

지능이 높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정치인들도 떠오릅니다. 어떤 말이 자신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늘 생각하면서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을 구분하느라고 진땀을 흘리는 것을 보면 때로는 측은한 생각조차 들기도 하네요. 때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지능을 발휘하고 또 때로는 자신의 일신에 대한 영달을 꿈꾸면서 지능을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여하튼 일반적인 수준을 훌쩍 넘기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개인적으로 만났을 적에는 그렇게도 명료하게 소신(所信)을 밝히고 대의를 위해서 무엇이든 모두 바칠 마음이 되어 있던 사람이 정치판에 들어가면 갑자기 돌변하여 조직의 세포로 변해버리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탁월한 지능이 아니고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이해를 하기에 과히 어렵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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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을 생각하면 뭐니뭐미해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알파고를 빼놓을 수가 없겠습니다. 영국을 대표해서 이세돌과 대결을 펼쳤던 알파고야 말로 지능의 결정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바둑을 두는 사람도 지능이 엄청 대단합니다만, 그것을 넘어선 곳에 도달한 알파고는 지능에 관한 한은 더 이상 논의를 할 필요가 없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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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님의 지능은 어떠신지요? 알파고가 비록 바둑을 두는 지능은 대단하다고 할지라도 단지 그것에 대해서만 갖고 있는 지능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각자는 자신의 영역에서 알파고 보다 월등한 지능을 소유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해도 되지 싶어서입니다.

그러니까, 지식을 습득한 것을 담아놓은 창고에서, 다시 취사선택(取捨選擇)하는 것이 지능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말하자면, 지식은 사전이고, 지능은 사전에서 필요한 단어를 꺼내어서 필요한 용도에 맞게 조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그냥 담아두면 지식이고 활용하면 지능이 된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 없이는 지능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라는 것이겠지요. 맏 형이 지식을 많이 모아놔야 둘째 형이 그 속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서 조합하게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삶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중요한 기본 중의 기본은 지식이라고 하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지식을 쌓아 놓기만 하고 그것을 재차 가공해서 물건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죽은 지식이라고 하게 됩니다. 지식도 살아있는 지식이 있고 죽어있는 지식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네요.

독자들 중에는 가끔 그럽니다. "스님 책을 다 읽었는데, 왜 스님처럼 풀이가 되지 않을까요? 도대체 책에 밝혀놓지 않은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 틀림 없지요?"라니..... 그래서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할 말이 없어서 멀뚱멀뚱 합니다. 분명히 책에다 써 놓은 대로 연구하고 궁리하면 그 가운데에서 해답을 찾게 될 수가 있으련만, 마음만 급해서 읽어 놓은 곳에 보석이 묻혀있다는 생각을 못하시는가 싶어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미 적지 않은 독자들께서는 책에 써 놓은 대로 공부하고 익해서 지능화(知能化)시켰다는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으로 봐서 분명히 책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으니 하는 말이지요. 모두가 책을 읽어도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책이 문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이러한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근거는 나름대로 책을 읽고 철학원을 차려서 상담에 잘 활용하고 있다는 감사의 메일이 간간히 날아오는 것으로 봐서 해 보는 생각입니다. 물론 보람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공부를 '지식으로만 생각하는 독자'와 '지능으로 연결시키는 독자'는 구분이 되겠더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비단 사주 공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한 것이겠네요. 이렇게 지식의 동생인 지능은 분명히 한 단계의 진화를 한 것으로 봐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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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추석특선영화라고 보여주는 「미쓰 와이프」를 봤습니다. 재미있더구먼요. 스토리는 황당하지만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비록 몸이 바뀌었지만 예전에 배워 놓은 법률의 지식은 그대로 지능으로 전환되어서 난관을 타개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지식과 지능의 관계를 생각해 봤던 것이기도 합니다.

 

3. 세째 형인 「지성(知性)」군


지능의 동생은 지성입니다. 왜냐하면 지능이 없이는 지성도 나올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지식에는 '분자'를 붙여놓은 중국인도 지성에는 '미(美)'를 붙여 줍니다. 지성에는 아름다움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일까요? 사전부터 찾아 봅니다.

지성(知性) :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 작용. 넓은 뜻으로는 지각이나 직관(直觀), 오성(悟性) 따위의 지적 능력을 통틀어 이른다.

네이버에서는 지성을 넣으면 지성인이 나타나는데, 대만 야후에서는 지성미가 나오네요. 이것도 나라마다의 특징인가 싶기도 합니다. 사전의 뜻을 정리해 보면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활용하는 능력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서 새로운 인식을 탄생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예술가나 시인과 같은 새로운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에게 붙여주면 적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지능은 지식의 취사선택이라고 한다면 지성은 있는 것에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영역에서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제자에게 가르친 것은 지식이었는데, 그 제자가 배운 것을 활용을 하다가는 전혀 가르쳐 주지도 않은 이야기를 불쑥 할 적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지성의 영역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성(性)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울러서 능(能)과 비교를 해 볼 수도 있겠네요. 물론 여기에 식(識)도 같이 생각해 본다면 그것도 재미있겠습니다.

배워서 아는 것[識]을 
열심히 활용하다[能]가
문득을 본질을 알게 되는[性]것.

이렇게 요약을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성(性)에는 성품(性品)이라는 뜻이 들어있고, 성품에는 본질의 바탕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무리한 대입이라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본질의 바탕을 알지 못하고서는 예술의 작품이 나오지 못한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본질을 꿰뚫는 것을 통찰(洞察)이라고 하나요? 사물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관찰력을 말합니다만,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도 보이고, 자연의 변화에 대한 의미도 깨닫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비로소 학자(學者)나 예술가(藝術家), 작가(作家), 음악가(音樂家) 라고 할 수가 있겠다는 이야기가 되네요. 예술가들에게는 예술의 철학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하니까요. 작가도 작가의 철학이 있습니다. 정치를 하더라도 이 정도가 되었을 적에 비로소 정치가(政治家)라고 할 수가 있을 모양이네요. 그 이전에는 정치인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정치가는 정치에 대해서 일가를 이뤘다는 의미로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정치가로 누굴 꼽을 수가 있을까요? 낭월의 과문한 지식으로는 중국 청나라의 건륭(乾隆)을 생각해 봅니다. 만주족과 한족의 사이에서 기가 막히게 줄타기를 했던 그의 정치수완이야 말로 과연 정치로 일가(一家)를 이뤘다고 봐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 하지 말고 우리 나라에서 찾아보라고요? 하하~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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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석학의 해박한 지식분자인 기윤(紀昀)과, 탐욕으로 쌓아놓은 재물이 황제보다더 많았다는 화신(和珅)의 사이에서, 교묘하게 그들의 지력과 탐욕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과연 보통 사람의 영역을 뛰어 넘는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러한 경지의 정치가라면 지성인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음악에 통달한 사람은 베토벤이나 모짜르트를 생각해 봅니다. 물론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긴 합니다. 쇼팽도 음악에 관해서라면 본성을 꿰뚫은 사람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영감이 가득한 작품으로 인해서 후대인의 삶은 더욱 아름다운 선율로 마음의 힐링을 삼을 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낭월도 작업하는 곁에서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는 행복은 그러한 이들의 영감이 불러온 결과물로 인해서 일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지성은 당대 뿐만이 아니라 후대에서 더욱더 빛이 나는 것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예능(藝能)이라는 말은 조금 낮은 단계의 수준에 해당하는 사람을 부르는 호칭인가 싶기도 합니다. 기능인도 그렇고 능력자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능(能)은 익숙하게 잘 하는 것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어서 달인(達人)이라고 부른다면, 성(性)은 기본적인 지식과 지능을 넘어서서 본질을 꿰뚫어서 새로운 것으로 창조하고 도약하는 영역인 까닭일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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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본성(本性)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준이 된다면 세째 형의 수준에 버금간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수행승들은 견성(見性)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요? 성품을 보는 것이 견성인데 견성이 인생의 모든 일을 다 마치는 것으로 생각하고 선방(禪房)에서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매력덩어리인가 싶습니다.

도대에 성을 보는 것이 왜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요? 그럴만 하기에 일생의 사업으로 삼고 두문불출하는 것일테지요? 도인께서는 분명히 말씀을 하셨거든요. '낯을 씻다가 코를 만지는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닌 모양인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 되어서 그리도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일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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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도 소중히 생각했던 것이 성(性)입니다. 글자를 분석해 보면, 마음[心]이 태어나는[生]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그 마음은 세상에서 한 번도 발견한 적이 없는 자신의 세계에서 얻게 되는 것이려니..... 싶습니다. 새로운 마음이 다시 태어나는 의미로 보면 적당하겠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목숨을 걸고 구할 만한 가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견성(見性)은 각 방면에서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하는 이들에게는 항상 열리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자칫 불교적인 용어라고 해서 거부감을 갖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 실체를 보게 된다면 그것을 일러서 견성이라고 할만 하겠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세계에서 큰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지 않겠냔 생각을 해 봅니다.

매 순간순간마다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도 견성일 것입니다. 견성은 항상 옆에 있는데 너무 위대한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높은 다락에 모셔놓아서 만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여하튼, 세수하다가 코 만지는 것이라고 했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하하~

 

4. 막내 인 「지혜(知慧)」군


이렇게 식이, 능이, 성이를 거쳐서 마지막으로 낳은 자식이 혜(慧)가 됩니다. 물론 지혜(知慧)는 지혜(智慧)와 같이 쓴다는 것을 확인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씨(知氏) 사형제의 이야기라고 해도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하기 전에 알아 봤던 것이지요. 다만 지(智)로도 쓴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앞의 삼지(三知)와는 상당히 다른 놈이 태어 났기 때문에 조금은 색다르게 이름을 붙였다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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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는 세 개의 글자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글자에 대해서 어떤 풀이가 있는가 싶어서 자료를 찾아 봤습니다.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정설(定說)인가 싶습니다.

慧의 위에 있는 예쁠 봉(丰)의 두 자는 하늘의 일과 국가의 일을 의미한다. 가운데의 고슴도치 계(彐)는 돼지머리를 의미하여 집안의 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래의 마음 심(心)이니 가정이나 국가나 천하의 일은 모두 마음 위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뭔 말인가요? 세상의 모든 일들이 마음 위에 있는 것인 줄을 알고 마음을 다스리면 된다는 의미일까요? 글자의 풀이만으로는 그 의미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살짝 듭니다. 그러니까 지혜의 혜는 '가정과 나라와 세상을 잘 헤아리는 마음'이라고 정리를 해서 고개만 끄덕끄덕 합니다.

특히 이 글자는 불교에서 좋아하는 글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여섯 가지의 수행 과정에서 마지막인 단계에서 「지혜바라밀(智慧波羅密)」을 논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좋아하는 글자인지를 알만 한데 이것의 범어로는 반야(般若)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과 지혜바라밀은 같은 말이지요. 머리 아프시다고요? 그러시겠습니다. 이 정도로 줄이는 것이 좋겠네요. 하하~

참, 지(知)를 써도 되는데 특별히 지(智)를 쓴 것에 대해서 간단히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태양과 같이 밝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는 뜻을 추가했으리라는 짐작입니다. 일(日)은 그렇게 밝디 밝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왈(曰)이 된다면 이것은 또 지혜로운 이야기를 하는 모습으로 수용을 해도 문제가 없지 싶습니다.

4형제 중의 막둥이인 지혜는 지성의 단계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할 참입니다. 그야말로 적당한 사자성어를 사용한다면, '대오각성(大悟覺醒)'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醒)을 첨 보신다면, 술을 깬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술을 깨는 것이라고요? 그 참.... 느낌이 묘합니다.

술을 깬다면? '술에 취해서 사는 것이 인생의 삶'이라는 이야기겠네요. 그리고 그러한 온갖 잡다한 삶의 풍경들은 취중에 씨부렁거리는 하찮은 것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취중에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중얼거렸던 것인데 술을 깨고 보니 그러한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지혜야말로 수행의 마지막 단계라고 한다면, 앞의 식이와 능이와 성이가 모두 마지막에 만나는 곳이 바로 혜네 집이라는 것도 알 것 같습니다. 네 단계를 떠올리다가 보니 문득 금강경의 구절이 또 떠오르네요. 금강경에는 네 단계의 수행 과정을 설명해 놨거든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단계가 그것인데 물론 여기에서 설명하지 않으니 염려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네 단계가 있다는 것만 말씀드릴라고요. 하하~

여하튼, 열심히 공부하고 궁리하고 사유하다가 보면 지혜의 벼락이 머리 속에 지진을 일으키고 벼락을 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이전에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고, 또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는 경지가 있는 모양입니다.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대략 짐작해 보니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찮은 것이라는 말은, 목숨을 걸고 지킬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일게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말은, 도인의 삶이 '밥먹고 잠자는 것'이라는 서산 대사의 말씀이 떠올라서 해 본 생각입니다. 낭월은 가만 생각해 보니까 지능은 형편없는 것 같고, 지식은 쪼매 모아 놓은 것으로 지성인냥 흉내를 내고 있는 단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지혜의 세계는 안개 속에서 미지(未知)인 채로 숨어 있다가 이따금씩 무재개로만 보여져서 그 세계를 상상하고 있는 존재...... 아마도 그런 정도의 수준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올 가을의 해맑은 태양빛을 도움 삼아서 문득 한자락의 빛을 볼 수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5. 그들 네 형제의 부모는 누꼬?


형제들 이야기만 하니까 그 사이에 글을 읽은 독자께서 부모는 왜 없느냐고 하시네요. 카톡이 날아 왔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부모도 추가합니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말이지요. 하하~

부친은 지천명(知天命)이고 어머니는 진인사(盡人事)입니다. 엥?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소리를 표절했다고요? 맞습니다. 저작권이 소멸된 좋은 말은 자꾸만 사용해야 그 가치가 더욱 커진다고 봅니다. 하늘의 뜻을 아는 이가 아버지이고, 진심전력(盡心全力)으로 힘쓰는 것이 어머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네 형제들이랍니다. 하하~

뭔가 쪼매 이상하다고요? 원래는 '진인사 대천명(待天命)'인데 지천명으로 왜곡을 시키면 되느냐고 하시는 말씀이시겠지요? 그렇구먼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지식입니다. 낭월은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지능.... 흐흐~

1. 천명을 기다리는 자는 중생이고
2. 천명을 알고있는 자는 부처니라.

그리하여. 대천명을 지천명으로 바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눈치 채셨다면 이미 고수이시고, 뭔 소린지 몰라서 멀뚱멀뚱 하신다면.... 아직은 쪼매 더 궁리하셔도 더 행복한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

그리고 이 네 형제의 부모는 낭월과 벗님의 부모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혈통을 이어 받아서 열심히 정진해서 천명을 알아 자연에 순응하고 지혜로운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그럴싸하게 마무리 할 요량입니다. 왜 딸은 없냐고요? 그럼 이야기가 너무 커지잖아요. 에구~~!!

벗님의 오늘은 어떠신지요? 부디 멋진 소식을 얻으신다면 낭월에게도 쪼매~만 나눠 주시기를 바랍니다. 깨달음의 순간은 언제라도 찾아 온답니다. 밭을 일구다가 돌맹이에 괭이가 부딧치는 소리에서도 오고, 기왓장을 대숲에 던져서 대나무에 부딧쳐 나는 소리에서도 올 수가 있다는 군요.

그렇다면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 셔터가 끊어지는 소리에서도 문득 큰 깨달음의 순간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망상으로 추석 전야를 맞이합니다. 모쪼록 알찬 추석의 한가위가 되시고 사유의 순간으로 깨달음이 석류 알처럼 톡톡 터지는 병신년의 가을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6년 9월 14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