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토가 수를 극한다(土剋水)

작성일
2007-09-1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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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와 수는 또 어떠한가? 흙은 물을 극한다. 물은 항상 흘러가는 것인데 토는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래서 토와 물은 그 성분이 상이한 연고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본다. 사이가 나쁘니까 극을 한다. 토의 진중함과 물의 유동적인 변화는 구분이 된다. 그래서 토는 물의 유동성을 극한다. 토가 볼적에 물은 항상 종을 잡을 수가 없겠기 때문일까?

원래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은 움직임이 심한 사람을 싫어한다. 그래서 항상 큰소리로 말한다. ‘제발 얌전하게 좀 있거라!’라고 이러한 이유로 해서 아마도 토는 수를 극하는 이치가 있다고 본다. 만약에 토의 입장에서 나무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물건이라면 굉장히 싫어했을법도 하다.

그렇지만 토가 수를 극하는 이치를 설명하면서 흙으로 둑을 막아서 물을 가두게 된다는 설명은 역시 인위적인 작업이 개입된 설명이어서 약간 찜찜한 느낀이 든다. 원래의 자연모습 그대로 설명을 하는 것이 누가 들어도 믿을만 하다는 생각을 할적에 뭔가 이해를 하는 방향을 바꾸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설명의 방향이 틀렸다고는 못한다. 사실 사회라는 것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인위적인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극수에서 댐이나, 둑에 대한 비유를 들었다고 해서 크게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발생한 가족적인 관계에 비한다면 사회는 참으로 인위적으로 서로의 이익에 의해서 모인 집단인 것이다. 그래서 인위적인 작업을 통해서 물을 다스린다는 설명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연모습에 의한 설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을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겠는가?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가령 물이 응고를 하려고 모이는데 토는 방해물로 작용을 한다. 물은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태산준령을 넘어갈 수는 없다. 그렇게 우뚝우뚝 솟아있는 산, 즉 토라는 성분은 물이 흘러가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을 흡수해버린다. 토는 물이 흡수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하류로 운반을 할 수가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흙은 물을 흡수해버린다. 그래서 아예 흘러가지도 못하게 한다. 이렇게 갖히게 되는 물은 썩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물이 썩는다는 것은 죽는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토는 수를 극한다고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생각해보면 인간사회에서도 그렇지만 자연계에서도 서로 약점을 보완하는 요령은 필요하다. 土가 만약에 水가 없다면 어떻게 나무를 키울 것인가도 문제이고, 토의 메마름은 생기가 없다. 아라비아 사막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삭막한가를. 그러기에 토는 물이 없이는 되지 않고, 그래서 물을 강제로 잡아두기 위해서 극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을 해보자. 물의 입장에서는 또한 토가 움직이지 않고 그자리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맘놓고 동서남북으로 분주하게 떠돌아다닐 수가 있는건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둘은 서로 미워하면서도 미워할 수가 없는 상극관계가 형성되는건지도 모르겠다.

또 어머니 이야기를 하자. 토의 극을 미워한 수가 자신의 자식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목이다. 목은 당연히 토를 극하게 되는 것이고, 목의 극을 받은 토는 다시 금을 생산하고, 금은 목을 극한다. 이렇게 서로의 대립은 앞으로 발전을 하면서 반복 속에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이치는 살벌한 현실사회를 꾸며가는 것이다. 어차피 사회는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