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가 목을 생한다(水生木)

작성일
2007-09-10 18:44
조회
6810

이제 水生木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물은 당연히 나무를 기른다. 나무는 물을 먹어야 살아나는 것이니, 천상 수생목은 나무가 물을 먹고 자라나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이해를 하는 것이 가장 빠르겠다. 더이상 말이 필요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인생적으로 볼적에는 수생목을 어떻게 볼것인지도 생각해봐야 겠다.

인생에서는 수생목의 이치가 참으로 만만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은 水의 차원에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어버리면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물이 목을 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적에 대략 두가지 정도의 수생목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 하나는, 물은 자신이 죽음으로써 나무를 생산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수생목의 이치로써 자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자식은 자신이 기른 것이니까 누가 봐도 그럴싸한 이치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또한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뭐냐면 어째서 목생화에서는 자신이 죽으면서 불을 생하는데도 그렇게 말을 하지 않고 수생목에 와서만 그렇게 대입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수생목보다는 목생화가 더욱 자신을 죽이고 불을 생한다는 이치에 합당할듯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견이 있다면 다음 생각으로 넘어간다. 다음의 생각이란 자신의 다음생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윤회의 사상이 대입되는 것이다. 윤회(輪廻)는 오직 자신의 다음 순환고리이다. 항상 주체가 자신이었다는 일관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수생목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써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인도의 윤회사상은 명리학에서도 그대로 대입이 되는 실마리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본인은 수생목의 이치에서 인간이 윤회를 한다고 본다. 이번생의 경험은 그대로 수에서 저장을 한 다음에 다음 생의 木으로 갖고 넘어간다. 이것이 다음생의 사주가 될런지도 모른다. 만약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사주라고 하겠지만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하고서 다른 동물이나, 천계에 태어난다면 그 영역들은 사주로써 기준을 삼을 영역의 바깥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마치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음파(音波)는 일정한 범위에 있는 파장이라고 한다.

가청(可聽) 주파수(周波數)는 20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 또는 싸이클이라고 한다. 소리에도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범위가 있듯이 사주학(四柱學)이 접근을 할 수 있는 것도 사람에 국한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水生木은 다음생으로 연결되는 고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윤회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믿지 않으시는 분은 다음생이라는 것보다는 후손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지만 본인은 분명이 다음생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수생목에 대한 의미를 여기에 비춰보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생목의 이유를 설명해 보았지만, 중요한 것은 오행(五行) 상생(相生)을 기억해 달라는 점이다. 이유야 어떤 것을 대입하던 상관이 없다고 본다. 자평명리학에서는 오행상생의 원리가 매우 중요하게 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