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 제34장. 인연처(因緣處)/ 24.취의도(聚義島)에서 하룻밤

작성일
2022-10-25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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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제34장. 인연처(因緣處) 


24. 취의도(聚義島)에서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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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배라고 하는 선장의 외침을 듣고서 우창도 그만 가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싶어서 일행을 둘러봤지만 모두 배를 탈 마음이 없어 보였다. 특히 진명은 마홍과 더 이야기를 나눴으면 싶은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서 우창이 마홍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자 마홍이 눈치를 채고는 말했다.

“왜? 오늘 하루 취의도에서 머물고 싶나? 머물 곳은 있으니 그럴 마음이 있으면 나를 따라가면 되네. 허허허~!”

마홍이 흔쾌히 말하자 진명이 반색하면서 말했다.

“어쩐지 오늘 밤은 취의도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르신께서 기꺼이 초청해 주시니 신세를 지고 싶어요. 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현지도 한마디 거들었다.

“정말이에요. 어쩐지 이곳이 오래전에 머물렀던 것처럼 편안해서 쉽게 떠나고 싶지 않았는데 마침 청해주시니 무척 고마웠어요.”

우창은 진명과 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마홍과 담소를 나누면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서 휘적휘적 걸어가는 마홍의 뒤를 따랐다. 1각(刻) 정도를 걸어가자 허름한 초막(草幕)이 나타났다. 인기척은 없었다.

“여기에 내 움막이라네. 모처럼 진객들이 찾아 주셨으니 비록 누추하더라도 대궐로 여기고 편히 하룻밤을 보내 주게. 허허허~!”

마홍이 권하는 대로 방에서 자리를 잡고 앉자, 저녁밥을 먹자고 하면서 이것저것 주섬주섬 내어놓는 마홍을 보니 밥은 아침에 해 놓은 것으로 보이고 반찬은 무와 배추를 소금에 절인 것이었으며 그나마 밥도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을 보던 진명이 현지와 함께 일어나면서 말했다.

“어르신께서 조용히 지내는 곳이라서 별로 먹을 만한 것도 없어 보여요. 언니랑 잠시 나루터에 나가서 몇 가지 간단한 먹거리를 마련해 올 테니까 시장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호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마홍도 말리지 않았다.

“그러시겠는가? 나야 좋지. 오늘은 식복이 열렸나 보군. 허허허~!”

비록 조그만 초막이었지만 내부는 꽤 넓어서 십여 명이 앉아도 될 정도는 되었다. 생활 도구는 간단했다. 침상과 탁자가 있을 뿐이었다. 노인이 혼자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조촐한 살림살이였다.

“스승님께서는 생활에 불편함은 없으신지요?”

아무래도 섬에서 제한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든 우창이 마홍에게 물었다. 그러자 마홍이 우창과 일행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야 생각할 나름이지 않은가? 고대광실(高大廣室)에서 고량진미(膏粱珍味)로 호의호식(好衣好食)한들 그 마음이 편치 않으면 그것은 가시밭길이 될 따름일 테니 말이네. 허허허~!”

이렇게 답하는 말에 우창이 오히려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있는 것을 보면서 없는 것을 평가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닦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부지불식(不知不識)의 망념(妄念)이 끼어드는 것은 어떻게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을 꺼내놓고 보니까 또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생겨서 다시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세간에 나가서 큰 뜻을 펼쳐서 많은 사람에게 지혜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하시진 않았는지요?”

“젊어서 한때는 그러한 마음으로 학업에 전념했던 적도 있고 과거도 봤지. 그러다가 그러한 것이 모두 뜬구름이라는 것을 깨닫고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삶의 즐거움만으로 충분하다네. 허허허~!”

“그렇다면 스승님의 낙은 무엇인지요?”

“아직도 그것이 보이지 않던가? 이제보니 내가 우창을 과대평가했나 싶기도 하군. 허허허~!”

“그 말씀은.....?”

“아, 이 사람아~! 무얼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나. 이렇게 지나가던 과객들이 누옥(陋屋)을 찾아 주는 것도 고마운데 하물며 맛있는 저녁을 마련해 주겠다니 여기에 더해서 젊은 기운이 넘치는 그대와 같은 사람들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여기에 무엇을 더 바랄 필요가 있단 말인가? 소동파의 시도 들어보지 못했나?”

“무슨 말씀이신지 듣고 싶습니다.”

우창이 그 시에 대해서 청하자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시를 읊었다.

 

《明月幾時有》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던가 

明月幾時有 把酒問青天
밝은 저달은 언제부터 있었지?
술잔을 들고 푸른 하늘에 물어본다.

不知天上宮闕 今夕是何年
모르겠구나 천궁에서는
오늘 저녁이 어느 해인지

我欲乘風歸去 又恐瓊樓玉宇 高處不勝寒
나도 바람을 타고 그곳으로 가고는 싶은데
옥으로 만든 누각이 높아서 바람이 춥지나 않을지 

起舞弄清影 何似在人間
벌떡 일어나 그림자와 춤을 추니
인간세계에서 사는 것보다 좋으랴! 

轉朱閣 低綺戶 照無眠
달빛이 붉은 누각을 감싸고
창문가로 살포시 내려와서
잠 잃고 서성이는 나를 비추는군 

不應有恨 何事長向別時圓
한이 있는 줄이야 나도 모르겠다만
무슨 일로 때때로 둥글어서 그 사람을 떠오르게 할꼬 

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 此事古難全
사람에게는 희노애락이 있다지만
저 달도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것이 있으니
사람이나 달이나 온전할 수는 없구나. 

但願人長久 千里共嬋娟
다만 바라는 것은 오래도록 살아서
멀리 떨어져도 고운 저 모습과 함께 하기를.

 

시를 읊고 난 마홍에게 우창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과연~! 멋진 시입니다. 세상사 잡다한 것들이야 어쩔 수가 없더라도 저 달처럼 허허롭게 속박없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문득 자질구레한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오늘 하루만을 살아가는 마홍의 진심을 본 것 같았다. 실로 사람들은 말로는 오늘을 산다고 하면서도 막상 마음의 한 자락에는 내일을 준비하는 일말의 불안감은 붙어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섬의 이름이 원래부터 취의도(聚義島)였습니까? 의미로 봐서는 전국에서 협객(俠客)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서 붙여진 별명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름 말인가? 원래 이름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붙여질 따름이라네. 그러니까 이름이 취의도이든, 도적들이 모여든다는 뜻으로 취적도(聚賊島)라고 부르든 무슨 관계가 있느냔 말이네. 이름은 이름일 뿐이지 않은가?”

우창은 연타(連打)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도대체 이 마홍의 내공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했다. 이와 반비례(反比例)해서 자신은 점점 더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야말로 우문현답(愚問賢答)에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그런 우창을 지그시 바라보던 마홍은 안쓰럽게 느껴졌는지 다시 말을 이었다.

“옛날에는 이 섬의 이름이 무영산(無影山)이었다네. ‘산에 그림자가 없다’니 그것이 훨씬 멋지잖은가? 허허허~!”

“그림자가 없는 산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아니, 원래의 이름이 그랬다니까, 그대는 왜 그리도 분별심이 많은지 모르겠군. 머리는 아프지 않은가? 허허허~!”

이야기의 흐름이 우창을 갖고 노는 듯한 느낌이 들기조차 했다. 그런데 자꾸만 이렇게 대들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렇게 하면 또 어떤 진리의 말이 튀어나올지가 더 궁금했고 그래서 우창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까닭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자연의 삼라만상은 물체가 있으면 빛을 받아서 반드시 그림자가 있기 마련인데 어찌 그러한 이름이 있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모순(矛盾)이 되는 까닭에 의아했는데 스승님께서는 오히려 멋진 이름이라고 하시니 의아합니다.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는 알만할 텐데 구태여 묻는 것은 동행한 제자들의 안목을 넓혀주고자 함일 테지? 그래서 남의 스승이 된다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기도 하지. 허허허~!”

마홍은 어느 사이에 우창의 체면까지도 세워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말에 가타부타할 필요는 없지 싶어서 미소만 짓고서 얼른 답을 하라는 듯이 마홍을 바라봤다.

“어디 우창의 말을 들어볼까? 그대가 생각하기에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견(愚見)으로는 그림자가 없다면 당연히 빛도 없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빛이 없다면 어둠만 있을 테니 산인지 물인지 알 수 없을 테니 그 이름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를 증명하는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가? 다시 물어야겠군. 빛과 어둠은 무슨 이치인가?”

“빛과 어둠은 음양의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빛과 어둠이 어디에서 만나나?”

“예? 그건....”

우창은 내심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빛과 어둠이 언제 만나느냐는 질문을 남들에게 하면서 답을 하던 자신이었는데 오늘은 도리어 마홍에게 역습당한 꼴이 우습기도 했으나 과연 이러한 질문을 받은 상대의 마음은 어떨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오늘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갑자기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아마도 무척이나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아닌가. 알만한 그대가 이런 질문을 하니 말이네. 허허허~!”

“빛과 어둠은 영원히 만날 수가 없지 않습니까? 빛이 어둠으로 다가가면 어둠은 사라지고 말 테니까요.”

“빛이 없으면 어두워서 산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빛이 없다면 어둠도 없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어둠이 없는데 왜 산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나? 그대의 말이야말로 모순에 빠진 꼴이 아닌가?”

“예?”

우창은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했다. 뭔가 말이 되는 것도 같은데 동의할 수는 없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가르쳐 주십시오. 어떻게 해서 그림자가 없는 산이 멋진 것입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물어야만 했다. 마홍의 현란한 말재간에 휘말리면 계속해서 끌려가게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창을 지그시 보던 마홍이 말했다.

“난 무영산에 살고 있다네.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이냔 말이지. 허허허~!”

“그러니까 그것이 왜 멋진 이름인지를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창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까?”

“분별심(分別心)에 머물러서 바라보는 까닭이지 뭘 모르긴 모르나? 허허허~!”

“예? 분별심이란 말씀이십니까? 그야 맞습니다. 음양은 원래 분별하라고 있는 것이니까요.”

“분별은 물질(物質)인가 마음인가?”

“물질도 마음도 모두 분별이 아닐까요?”

“과연 그럴까?”

“생각해 보면 산은 물질입니다. 그러므로 분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그 산이 물질로 된 산이 아니라면?”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봉래산(蓬萊山)은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산인가? 아니면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산인가?”

“그야 신선들이 산다는 동해의 어느 섬이라고만 들었습니다. 설마하니 봉래산이 실제로 존재하는 산이겠습니까?”

“그렇다면 봉래산의 그림자가 없어도 되겠나?”

“당연하지요. 실체가 아닌데 그림자가 있고 말고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옳지, 그러니까 봉래산은 무영산이라고 해도 괜찮다는 뜻이렸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선뜻 해 놓고서 순간 후회했다. 영락없이 마홍에게 말려든 꼴이라는 것은 말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봉래산은 무영산이라고 해도 되고, 무영산은 무영산이라고 하면 안 된단 말인가? 그것은 무슨 논리란 말인가?”

이번에는 마홍도 정색하고 물었다. 어디 답을 할 수가 있으면 해 보라는 듯이 우창을 바라보는 눈빛은 광채가 일 듯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모두 숨을 죽이고 우창의 답에 귀를 기울였다. 우창도 잠시 흠칫하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홍의 말에는 모순이 없다는 것만 깨달았을 따름이었다.

“제자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깊은 뜻을 이제야 헤아렸습니다. 그러니까 무영산은 봉래산의 다른 이름이었군요. 참으로 깊은 의미입니다. 하하하~!”

“오호~! 이제라도 알아들었으니 다행이지 뭔가. 허허허~!”

“막상 무영산의 이름에 대한 뜻을 알고 보니까 취의도는 참으로 격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역시 알아야 보이는 것이 맞습니다. 하하하~!”

“그러나, 취의도는 또 취의도대로 재미있는 이름이니 괜찮네. 구국(救國)의 충정(忠情)으로 자신의 하나뿐인 삶을 바치고자 했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니 그것도 또한 멋지지 않은가?”

“이 섬에서 그렇게 멋진 인물들이 활약했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또 감회가 새롭습니다. 항상 동경(憧憬)했던 인물들이었으니까요. 조금만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마홍이 말을 이었다.

“이 섬의 다른 이름은 호심도(湖心島)라고도 한다네. 그러니까 무영도에서 호심도로 바뀌었다가 다시 취의도(聚義島)가 된 셈이라고나 할까? 호심도는 아마도 호수의 가운데 있다는 의미일 테니 위치적인 뜻으로 보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겠군.”

“그렇겠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전해집니까?”

“역사적으로 본다면 역대의 왕조에서 항상 군사적인 요새(要塞)가 되어 왔다네. 전설에 의하면 양산박의 영웅인 조개(晁蓋)ㆍ오용(吳用)ㆍ공손승(公孫勝)ㆍ유당(劉唐), 그리고 완씨(阮氏) 삼 형제를 포함한 일곱 영웅이 주축이 되어서 관원의 억압을 피해서 여기로 모여들었지 않은가.”

“이름만 들어도 기억이 날 인물들이네요.”

“취의도로 이름을 바꾼 것은 이때부터였다네. 조개가 죽어서 이 섬에 장사를 지냈지. 섬의 위에는 원래 관음당(觀音堂)이라는 절이 있었는데 조개가 생전에 매화꽃을 무척 좋아했기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후인이 관음당의 이름을 장매사(藏梅寺)라고 바꿨다네. 허허허~!”

“아, 그런 사연이 있었습니까? 정말 현장에서 스승님으로부터 생생한 말씀을 들으니까 더욱 실감이 납니다.”

“그렇다네. 그래서 나도 이 취의도에서 그들의 무용담을 생각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곤 한다네. 허허허~!”

마홍의 말에 우창이 짐짓 반문(反問)했다.

“그렇긴 하겠습니다. 그런데 잘 몰라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수호전(水滸傳)』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모두가 세상에서 버림받고 살길을 찾아서 모여든 도적(盜賊)들이지 않습니까? 노지심(魯智深)을 봐도 그렇고, 모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어쩌다가 올바른 지도자 송강(松江)을 만났기 때문에 자신들의 길을 새롭게 개척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마홍이 말했다.

“아니, 그대의 견문이 보통은 넘는군. 허허허~!”

“과거에 태산의 도관에서 공부할 적에 만났던 벗들을 통해서 잡다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을 따름입니다. 비록 당송(唐宋)에서 활약한 무명의 사람들이 활약한 전기(傳記)를 모아놓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참으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오늘도 스승님을 통해서 이에 대한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이 기대됩니다. 고인의 치열했던 삶을 공부하는 재미는 참으로 크니까요. 하하하~!”

“의병(義兵)이란 원래 그런 거야. 저마다 쟁기를 끌며 논밭을 갈다가, 혹은 그물을 들고 고기를 잡다가 탐관오리들의 억압이 참을 수가 없을 지경에 달했을 적에 원성(怨聲)은 하늘에 닿고, 그래서 누군가의 지휘를 받으면서 자신을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 분연(奮然)히 일어나는 것이니까 말이네.”

“아, 그렇겠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한다고 해서 모두 떨치고 일어나진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108명의 호걸(豪傑)이야말로 멋지게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옳지~! 맞는 말이네.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구름처럼 모여들어서 세상을 구하고 악을 타도하던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가슴을 뜨겁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로 놀이판을 만든 사람도 있다네.”

“놀이판이라면 바둑이나 장기와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그대는 마작(麻雀)이라는 놀이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말만 들어봤을 뿐이고 실제로 본 적은 없습니다. 아쉽게도 태산이나 노산에서는 그러한 놀이를 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바가 없으니 오늘 새로운 견문(見聞)으로 안목을 넓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작이 어떤 놀이인지 궁금하기는 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저녁을 준비하러 나간 진명과 현지가 돌아오지 않자 염재가 마중을 나가더니 요리를 가득 안고 돌아왔다.

“아니 무엇을 이렇게 많이 들고 왔나?”

마홍이 이렇게 말하면서 입이 귀에 걸리자 진명이 말했다.

“아무래도 요리할 도구가 마땅치 않아 보여서 아예 만들어서 왔어요. 이제 즐겁게 드시기만 하면 되겠어요. 고량주(高梁酒)도 넉넉하게 사 왔으니 즐거운 만찬(晩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술에 약한 사람을 위해서 소흥주(紹興酒)도 마련했죠. 호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주섬주섬 벌여놓으니 십여 가지의 요리가 삽시간에 방바닥을 가득 채웠다. 변변한 탁자가 없어서 바닥에 자리를 깔고 준비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우창이 큰 사발을 가져다가 마홍에게 투명한 고량주를 한 사발 따라주고 저마다 잔을 받았다. 진명과 현지도 작은 잔으로 붉은 소흥주를 받아서는 잔을 들고 마홍을 바라봤다. 뭔가 멋진 말을 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자 그 뜻을 알고는 마홍이 잔을 들고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다시 모인 군웅(群雄)의 무운(武運)을 빌며~!”

이렇게 외치자 모두가 말했다.

“건배(乾杯)~!”

요리는 크게 기교를 부리지 않은 소박한 솜씨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 재료 본래의 풍미가 넘쳤다. 잉어와 자라는 물론이고, 동평호에서 얻을 수가 있는 수산물만으로도 이미 다양한 요리가 된 데다가 오리와 거위요리까지 푸짐하게 만들어 와서는 모두 시장하던 차에 배불리 먹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둠이 다가오자 등불을 밝혔다. 크지 않은 방안은 삽시간에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렇게 푸짐한 저녁을 마치고는 다시 차를 끓여서 입가심하면서 모두 마홍의 주변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홍의 이야기에 이미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우창이 말했다.

“수호전(水滸傳)의 영웅담(英雄譚)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놀이가 마작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선 그 놀이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바둑은 요순(堯舜)이 어리석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만, 그것을 다 믿어야 할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면 마작은 훨씬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니 누군가 만든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음, 그대의 장점은 항상 무엇을 하나 배우더라도 그 뿌리부터 파헤치는 것에 있군. 그냥 어떻게 놀이를 하는 것인지만 배우면 될 터인데 그것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도 알아야 속이 시원한 모양이니 말이네. 허허허~!”

우창이 이렇게 물어주는 것이 즐거웠던 마홍은 우창을 한바탕 칭찬했다. 그러니까 마홍은 자신이 말해 주고 싶은 것을 우창이 물어주니 그야말로 주객(主客)의 죽이 잘 맞았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우창이 다시 물었다.

“과연 스승님이십니다. 무엇을 물어도 탓하시기는 고사하고 이렇게 과찬을 해 주시니 오늘 밤은 왠지 지식 놀이에 잠을 잊게 되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마작을 만든 사람은 어떤 인물입니까?”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수호전의 108호걸에 대해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당시까지 유래하던 놀이인 당대(唐代)의 마조(馬弔)와 송대(宋代)의 추패구(推牌九)를 바탕으로 삼고 원대(元代)의 간호(看湖)를 섞어서 새로운 놀이를 창안했다네.”

“아니, 그렇다면 단순히 만든 것이 아니라 많은 궁리와 고심을 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놀이만 배워서 즐기는 것은 보통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유래를 추적하고 그 의미를 읽으면서 공부하는 것은 학자들의 몫이라고 할 수가 있겠군. 내가 나름대로 정리했지만 이러한 것도 누가 물어야 말을 해 줄 수가 있는데 아무도 묻지 않으니 혼자만 음미할 따름인데 오늘 그대를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으니 또한 좋은 인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허허허~!”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만, 그것은 우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귀한 가르침을 전해 듣게 될 줄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더구나 평소에 흠모하던 호걸의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으니 이보다 다행한 복이 없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일행을 둘러봤다. 지광은 말을 할 것도 없고, 거산과 염재도 이야기에 빠져든 듯이 눈을 반짝이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이러한 놀이에는 관심이 없었던 두 여인조차도 마홍의 재미있는 언변에 취해서 몰입하고 있는 것을 보자 적이 안심되었다. 아무래도 누군가 이야기가 지루하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도 부담스러웠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창의 마음을 헤아린 지광이 말했다.

“아우님, 참으로 귀한 말씀을 여기에서 듣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네. 이것은 순전히 아우의 덕택이니 나중에 후하게 한 턱을 내겠네. 하하하~!”

“형님은 마작에 대해서 좀 알고 계십니까?”

“대략 어떻게 놀이하는지는 알지. 그런데 오늘 그 유래까지 섭렵(涉獵)하게 된다면 더욱 깊은 이해가 이뤄질 테니 또한 좋은 일이랄 밖에. 하하하~!”

지광까지도 이야기에 재미있어하는 것을 본 우창은 다시 마홍을 바라봤다. 어서 이야기해 달라는 뜻이었다. 마홍도 차를 마시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멀리서 부엉이의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