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 제34장. 인연처(因緣處)/ 23.착수(着手)의 심리

작성일
2022-10-20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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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제34장. 인연처(因緣處) 


23. 착수(着手)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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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홍이 보여주는 그림을 살펴봤지만 우창은 생전 처음으로 접해보는 것이어서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언뜻 봐서는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그림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단순한 그림이 아니어서 무엇인지 궁금해서 물었다.

“스승님, 그건 무엇입니까?”

우창의 물음에 마홍이 답했다.

“이건 기보(棋譜)라네. 예전에 바둑을 두고 나서 수순(手順)대로 표기해 놓은 것인데 이것을 다시 바둑판에 늘어놓아 볼 테니까 어디 그대가 살펴보고 어떤 십성이 보이는지 말을 해보게나.”

이렇게 말하고는 바둑판에다가 검은 바둑알과 흰 바둑알을 교대로 바둑판에 늘어놓았다. 놓는 것으로 봐서는 일정한 수순(手順)이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100여 수가 놓이자 대략 어떤 흐름인지 알아볼 수가 있었다. 이것을 알아본 염재가 먼저 말했다.

“스승님, 이것은 제자가 말씀드릴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흑 돌을 집은 사람은 인내심으로 살얼음판을 가듯이 착실하게 한 수 한 수를 놓아가는 것으로 봐서 편관(偏官)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위기에 봉착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수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식신(食神)을 가미한 성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말을 한 염재가 한쪽의 세 점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착점 하나에 따라서 승패가 갈릴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장면에서도 전국(全局)을 읽는 안목이 탁월한 것으로 봐서 직관력(直觀力)이 있으니 이것은 팔자의 어딘가에 정인(正印)이 자리를 잡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놀랍게도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바둑판 위에서 십성끼리 서로 치고받는 정경(情景)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염재의 말을 들으면서 기보를 지그시 바라보던 마홍이 놀라는 표정으로 염재와 우창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우창에게 말했다.

“아니, 사자에게서 사자의 새끼가 태어난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 젊은 친구의 눈썰미가 여간 날카롭지 않군. 이로 미뤄서 그대의 깊이를 짐작할 수가 있을 것도 같으이. 허허허~!”

마홍이 염재의 추론(推論)에 놀랐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우창은 십성의 심리분석(心理分析)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어느 사이에 염재의 공부는 점점 깊어지고 또 넓어져 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염재가 마홍의 칭찬을 사양하면서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스승님을 따라가려면 백분지일(百分之一)도 미치지 못합니다만 그래도 약간의 진전이 있었다면 모두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이 분명합니다.”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마홍에게 말했다.

“만약에 염재의 추론이 타당하다면 그 상대인 흰 돌을 쥐고 바둑을 둔 고수에 대해서도 설명해보라고 하겠습니다. 제자는 바둑판의 정황을 잘 모르니 염재의 설명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우창이 염재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스승님의 말씀으로 봐서 염재가 제대로 설명을 잘한 것으로 생각이 되니 계속해서 말해 보게.”

우창의 격려에 염재도 기분이 좋았던지 칭찬에 공수로 답하고는 설명을 이었다. 마홍도 당연히 그렇게 해보라고 했다.

“고맙습니다. 변변치 못한 풀이임에도 불구하고 과찬하셨습니다. 다만 실제로 흑을 쥔 고인의 팔자를 알 수가 있었다면 확인하면서 공부하기에 더욱 좋았겠습니다. 혹시 그것까지 알 수는 없겠지요?”

염재가 이렇게 묻자, 마홍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닐세, 그의 생일은 내가 알고 있으니 어디 사주를 뽑아볼까? 내가 워낙 바둑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서 그 바둑을 둔 두 사람은 알고 있다네. 그는 바로 목부(木府)의 장문인이었으니까 말이네. 허허허~!”

우창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얼마나 바둑에 취미가 많으셨으면 생일과 사주까지도 알고 계셨단 말입니까?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간지를 찾아서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홍이 알려준 생일을 확인해서 찾은 사주는 다음과 같았다. 우창이 땅바닥에다 명식(命式)을 썼다.

407 목부 목곡실사주

우창이 적어 놓은 목부(木府)의 장문인 사주를 보던 염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자가 아무래도 귀신이라도 씌었나 봅니다. 사주를 본 듯이 말씀을 드렸으니 말입니다. 과연 노사(老師)님께서 왜 잘 풀이했다고 하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염재의 말에 우창도 감탄하면서 말했다.

“과연 그렇군. 스승님이 놀랍다고 하신 말씀이 괜한 칭찬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일지(日支)에 편관이 있었으니 당연히 치밀하고 조심스러운 기풍이었겠습니다. 그리고 시간(時干)에 정인(正印)으로 봐서는 직관력이 탁월해서 바둑을 두면서도 오랜 시간을 생각만 하지는 않았겠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더구나 월간(月干)의 비견(比肩)을 봐서는 자기의 주장이 확실했을 것이므로 한 문파의 장문인이 될 자격을 갖췄다고 하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염재의 설명을 부연(敷衍)하자 마홍의 눈이 더욱 커졌다. 마홍이 알고 있는 목부(木府)의 기풍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실리위주였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에 대한 의견은 없는지를 묻고 싶어서 말했다.

“그런데 실리를 추구했던 것은 말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사주에 나오는 것이 아니었나? 이것이 궁금하니 설명해 주시려나?”

우창은 마홍의 말에 대해서 다시 사주를 들여다보고는 설명했다.

“맞습니다. 목부의 장문인은 이미 뼛속 깊이 실리파(實利派)라고 할 것입니다.”

“아니, 정재(正財)가 연간(年干)에 있어서 그렇다는 말인가? 저렇게 멀리 있는데 그러한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지?”

“물론 그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일간(日干)의 을목(乙木)이 바로 정재인 까닭입니다. 아마도 이런 말씀은 들어보신 적이 없지 싶습니다. 하충(何忠)이라는 스승님께서 가르침을 주신 고서(古書)에서 찾았습니다. 그 책에 의하면 천간(天干)은 저마다 본질적인 성향이 있는 것으로 기록해 놓으셨거든요. 그래서 본질이 치밀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 그런 이치가 있었나? 참으로 놀랍군.”

마홍이 감탄하자 염재가 다시 말했다.

“맞습니다.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셨는데 제자가 잊어버렸던가 봅니다. 이제 말씀을 들으니 과연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염재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 마홍이 물었다.

“젊은 친구의 내공이 그리도 깊을 줄은 몰랐네. 그렇다면 흑의 상대방에 대해서도 설명해보려나? 그것도 궁금하군. 과연 잘 맞아떨어지게 될지 흥분이 된단 말이네. 허허허~!”

마홍이 이렇게 부탁하자 염재가 다시 바둑판에서 백이 응수(應手)한 것을 보면서 하나씩 설명했다.

“백을 잡은 고인은 기본적으로 무엇이든 포용하는 심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정인(正印)의 성향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어쩌면 일간(日干)의 가까이에 정인이 있지 않는다면 일간이 기토(己土)이거나 혹은 이와 비슷한 성향인 무토(戊土)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염재는 조금 전에 흑돌의 주인공의 일간이 을목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언급한 것이었다. 염재의 말에 마홍은 다시 눈이 커졌다.

“아니, 그렇게 보인단 말인가? 무엇을 보고서 그렇게 생각했나?”

마홍이 묻자 염재가 상변(上邊)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에서 이쪽으로 응수를 한 것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흐름을 놓지 않고 이어간 것으로 봤을 적에 일관성이 있어 보여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아, 그랬나? 계속해 보게.”

“아마도 이분은 떠돌이의 기질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해 봤습니다. 어디에서도 자신이 나설 자리라면 앞뒤를 안 가리고 검을 휘두를 것입니다. 다만 그가 검을 대신해서 바둑을 잡았기에 사람을 죽이는 대신 바둑알을 죽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칼을 뽑으면 서릿발이 맺혔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생각에는 걸림이 없었을 것입니다. 중앙 쪽에서 이렇게 씌워간 것을 볼 때 만약에 실패한다면 대마가 몰살할 수도 있는 위험한 수였을 텐데 태연하게 그것을 시도하였고, 마침내 성공한 것을 보면 임기응변의 수단이 뛰어났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상관(傷官)에 내공이 붙어야만 가능한 것으로 보겠습니다.”

“으음~!”

마홍은 말을 하는 대신에 감탄하는 소리가 나왔다.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싶었다. 생각만 할 뿐 다른 말이 없자, 염재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만약에 깊은 궁리가 따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수를 뒀다면 이미 형편없이 대마가 즉사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태연하게 돌을 놓을 수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각고(刻苦)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만분지일(萬分之一)이라도 생길 수가 있는 변화까지도 모두 궁리한 다음에나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식신(食神)이 없이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물론 객관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식(常識)을 뒤집는 수도 태연하게 둔 것으로 봐서 관가에서 벼슬은 못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자유로운 영혼이니 어쩌면 노사님께서도 이 분의 기풍을 부러워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하하~!”

염재가 시원하게 풀이하고는 맞으면 좋고 안 맞아도 할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말은 끝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이번에도 마홍은 그의 사주를 불러줬다. 그러자 우창이 목부의 장문인 사주 옆에다가 다시 그대로 적었다.

사주를 적어놓자 가장 먼저 놀란 사람은 염재였다. 일주가 기사(己巳)라니, 원래는 온건(穩健)한 형태라고 기억했는데 그래서 무사(武士)의 길로 가지 않고 기객(碁客)의 길로 갔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우창을 보면서 자신의 평에 대해서 가르침을 내려달라는 듯이 바라봤다. 우창도 내심 놀랐다. 염재의 공부가 어느 사이에 여기까지 도달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407-2

“염재가 항상 게으르지 않더니 이제 그만한 결실을 보여주는군. 내가 풀이한다고 해도 이보다 더 명쾌하게 풀이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니 여기에 더 얹어서 무슨 말을 하겠나? 하하하~!”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과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오부(吳府)의 장문인께서는 어떤 삶을 보내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염재가 그의 삶이 궁금해서 마홍에게 물었다. 그러자 마홍이 알고 있는 그대로를 염재에게 들려줬다.

“그분은 목부의 목 장문인과 바둑을 두면서 세상에 알려졌을 뿐이고 그 이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알 바가 없었네. 목부가 원래 바둑의 명가(名家)로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을 적에 한 떠돌이 낭인(浪人)이 찾아가서 대국을 신청했더라는 군. 그러자 가소롭게 여긴 목부의 관리자가 무례한 놈을 혼내주려는 목적으로 제법 손이 맵기로 소문이 난 아이와 둬보라고 했더라네.”

“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감히 장문인과 바둑을 한판 두겠다고 찾아왔으니 가소롭기도 했겠습니다. 그다음의 일이 궁금합니다.”

“바둑을 상대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感之德之)하라는 듯하던 사람들의 안색이 점차로 잿빛으로 변해가는 데는 그리 오린 시간이 걸리지 않았더라네. 급기야 대사형 급의 기력을 갖춘 제자가 나서서 상대하게 되었는데 역시 적수가 되지 못하고 100수도 지나지 않아서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다음에서야 비로소 하늘에서 기선(碁仙)이 강림한 것인 양으로 귀빈실에 모셔놓고는 서둘러서 목 장문인에게 통보하였더라네.”

마홍의 말에 우창도 흥미가 동해서 말했다.

“정말 간담이 서늘했겠습니다. 자신들의 스승만이 당대에 가장 뛰어난 천하제일의 고수인 줄만 알고 있다가 난생처음 접해보는 초식(招式)을 만나게 되었다면 그 경악했을 표정이 상상으로도 짐작이 됩니다.”

“그야말로 목부는 순식간에 소란의 도가니가 되었고, 괴걸(怪傑)이 나타났다는 말에 목 장문인도 서둘러서 귀가하게 되었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이 마주했을 적에 목 장문인은 이미 들은 바가 있었던지라 귀한 손님으로 대우하고는 음식을 내어서 접대하면서 내력을 물었으나 그는 바둑판만 바라보고 있으면서 바둑이나 두면 되지 그 나머지는 알아서 무엇을 하겠느냐는 표정이었겠지.”

“과연 그랬을 만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목 장문인도 일전(一戰)을 피할 수가 없었겠습니다.”

“피하는 것이 다 뭔가? 참으로 궁금해서 호기심 반 긴장 반으로 대국에 임했지. 그런데 바둑이 중반전에 접어들기도 전에 자신의 기세가 기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대경실색(大驚失色)했지. 생전 처음으로 만난 초고수였다는 것을 체험했으니 말이네. 옆에서 스승과 낭인의 대국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지켜보던 제자들의 마음은 더 말을 할 필요가 없었지.”

“그렇다면 목 장문인조차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우창이 묻자, 마홍이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목 장문인이 패배를 인정하자 기객(棋客)은 돌을 쓸어 담고는 다시 일국을 청하였네. 아마도 미리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목 장문인의 입장에서도 다시 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네.”

“그렇게 해서 그야말로 제대로 한판의 바둑이 두어졌는데 그날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져도 바둑은 끝날 줄을 몰랐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결말이 났는데 목 장문인이 두 집을 이겼다네. 그러자 비로소 문하생들도 안도하게 되었지. 겨우 주인의 체면을 지켰으니 말이네.”

“정말 그랬겠습니다. 그런데 낭인이 제대로 응수해 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주인의 체면을 세워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마홍이 답했다.

“마 장문인도 이미 절정의 고수이니 봐주고 말고는 바로 알아챌 수가 있지 않겠나? 그러니까 진력(盡力)으로 둔 다음에야 비로소 미세하게 두 집을 이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생전 처음으로 호적수를 만난 셈이었지. 그날 저녁에는 목부에서 큰 잔치가 열렸다네. 목 장문인도 너무나 기뻤으니까 말이네. 허허허~!”

“그건 이해가 됩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겠습니다.”

“그렇지, 제대로 기량을 펼쳐 볼 상대를 만났으니 말이네. 다음날부터 바둑 열 판을 두게 되었는데, 한두 판으로는 실력의 진면모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네. 그리고 그 마지막의 열 번째 대국(對局)이 바로 이 기보라고 전해진다네. 그야말로 명국(名局)이었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염재가 말했다.

“과연 그랬군요. 그야말로 마지막 대전이었네요. 어쩐지 기보에서 전운이 감돈다고 느꼈는데 그러한 내막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낭인은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목 장문인도 자연의 이치를 통찰한 사람인지라 왕에게 천거(薦擧)해서 자리를 마련해 주기를 청하고 정기적으로 어전대국을 두게 되었지. 왕도 바둑을 좋아했기 때문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

“그래서 오부(吳府)가 생겨났군요. 그렇다면 그의 성이 오씨였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네. 이렇게 되자 장안에 소문이 퍼지게 되었고, 바둑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돈이 많은 부자는 저마다 한 수를 배우겠다고 오부로 모여들었고, 그 세력은 목부와 비슷할 지경이었다네.”

“충분히 이해됩니다. 참으로 멋진 만남이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상대가 있어야 흥도 배가 되는 것인데 적수를 만나서 신나게 기력을 발휘하면서 위기에서 고뇌하는 시간을 보냈을 목 장문인도 행복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5년쯤 지난 후에 오 장문인은 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네. 소문으로는 곤륜산으로 들어갔다고도 하는데 이렇게 되자 그는 더욱 신비로운 사람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네.”

그 말을 듣고 우창이 말했다.

“아, 그래서 스승님께서도 오 장문인을 흠모하셔서 기보를 품에 지니고 계셨습니까? 지음(知音)이란 참으로 행운일 텐데 직접 만나서 수담을 나누고 싶으셨겠습니다. 하하하~!”

“왜 아니겠나. 그래도 인연이 닿지 않았으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네. 그리고 이렇게 멋진 작품을 펼쳐놓고 보면서 그의 기력과 품성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네. 그야말로 명화(名畫)를 감상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네. 허허허~!”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염재가 노인에게 물었다.

“바둑에 조예가 깊으시니 귀한 말씀을 주시면 마음에 새기고자 합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노인은 꾸러미에서 비단에 쓴 글귀를 펼쳐놓고서 말했다.

“아, 그런가?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글귀인데 마음에 들면 베껴놓고 가끔 읽어보면서 생각하는 것도 좋겠네.”

우창이 비단에 쓰인 글귀를 보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다.

407-3

사언절구(四言節句)로 된 십행(十行)의 글귀였다. 의미를 생각해 보니 대략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득탐승(不得貪勝) 이기는 것을 탐하지 말라,
입계의완(入界宜緩) 침입하려면 서서히 들어가라,
공피고아(攻彼顧我) 상대를 공격하려면 나를 돌아보라,
자쟁선(棄子爭先) 돌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취하라,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얻으라,
봉위수기(逢危須棄) 위험한 돌은 모름지기 버려라,
신물경속(愼勿輕速) 가볍게 두지 말고 신중하라,
동수상응(動須相應) 약한 말은 적에 기대어서 움직여라,
피강자보(彼强自保) 상대가 강하면 자신을 지켜라,
세고취화(勢孤取和) 세력이 외로우면 타협하라. 

“이것은 바둑에 임해서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 것인지를 경계(警戒)하는 글귀인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 지은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내용은 바둑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처세훈(處世訓)으로 삼아도 좋을 뜻으로 보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마홍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렇다네. 어느 대목이든 하나하나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염두에 둬야 할 가르침이라고 생각되어서 옆에 두고 기억하려고 한다네. 이것은 「위기십결(圍碁十訣)」이라고 하는데, 북송(北宋) 시대에 반신수(潘愼修)라는 국수(國手)가 지었다고 전하네. 아마도 단순하게 바둑을 두는 것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바둑을 빙자(憑藉)해서 삶의 지혜를 주고자 배려한 것이 아닌가 싶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겠습니다. 흡사 기풍(碁風)을 빙자해서 십성을 이해하는 방법과도 서로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네. 그래서 바둑을 두면서 삶을 음미하고, 삶을 살면서 자연을 음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바둑을 배워서 즐기는 것은 그야말로 정신적인 풍류라고 해도 되지 않겠나? 허허허~!”

“그렇겠습니다. 참으로 귀중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뱃사공의 외침이 들렸다.

“자, 오늘의 마지막 배가 취의도(聚義島)를 떠납니다. 배를 탈 사람은 어서 오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