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9.기반(棋盤)의 묘리(妙理)

작성일
2022-09-30 05:29
조회
845

[403]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9. 기반(棋盤)의 묘리(妙理)


========================

천천히 구경하면서 말을 몰았던 탓에 한 시진이 지나서 사시초(巳時初)가 되어서야 동평호(東平湖)의 나루터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부두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2층의 유람선이 있었고, 입구에는 뱃삯을 받는 낭자가 손님들에게 홍보를 겸한 안내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양산박이 있는 취의도(聚義島)로 가는 배가 떠납니다. 배를 타시고자 하는 유람객은 미리 선비(船費)를 준비해 주세요. 뱃삯은 10전(錢)입니다. 배를 타실 분은 준비해 주세요~!”

그 모습을 본 우창이 문득 궁금해서 낭자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낭자, 이 배를 타고 가면 양산박이 있습니까?”

“예~! 양산박으로 갑니다.”

“옛날 호걸들이 살았던 그 양산박 말입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낭자가 뭘 좀 알고 있는 손님이라는 듯이 반색하면서 말했다.

“그럼요~! 양산박의 호걸들은 활동 무대가 넓으나 근거지인 취의도를 중심으로 활약했다고 해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자 낭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실은 호걸들이 활약한 취의루(聚義樓)라는 이름의 산채(山寨)가 있는 양산박은 여기에서 서남향(西南向)으로 양산현(梁山縣)까지 80여 리를 가야 해요. 다만 그곳으로 가봐도 108호걸(豪傑)이 떠난 다음에 산채는 모두 허물어져서 별로 볼 것이 없고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에는 여기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이곳을 양산박이라고 하는 거죠. 배를 타고서 취의도로 가면 볼거리와 먹거리들이 많으니까 유람 삼아서 둘러보세요. 호호호~!”

낭자의 설명을 듣고는 호기심이 가득해 보이는 현지와 진명이 여태까지 배를 타보지 못했다는 말에 함께 배를 타기로 했다. 반드시 양산박이 아니면 또 어떠랴~ 싶기도 했다. 그냥 즐거우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뱃놀이를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 말과 마차는 옆의 객잔에 부탁했습니다.”

말을 맡기고 돌아온 염재가 우창에게 말했다.

“그래 잘했네. 그럼 어디 뱃놀이를 즐겨 볼까?”

이렇게 말하고는 일행과 함께 배에 올랐다. 배는 놀잇배답게 호화찬란하게 만들었고 내부에는 식당까지 갖춰져 있어서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호수를 둘러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이 저마다 식탁을 하나씩 차지하고는 풍광을 즐기는 모습들이 보기에도 여유롭고 좋았다. 염재도 배를 타기 전에 전망이 좋은 위층에 자리를 예약해놓은 덕에 편안하게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즐겼다. 배가 출항하자 미리 준비한 연극단(演劇團)에서 수호전(水滸傳)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 시작되었다. 위층에서 그것을 내려보면서 호걸들의 무용담(武勇談)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섬에 다다르자 연극도 그 시간에 맞춰서 끝났다. 모두 섬에 내려서 상징적으로 만들어 놓은 수호지의 등장 인물과 또 그들의 이야기들을 꾸며놓은 것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았다. 초기에 왕륜을 제거하고 두령이 되었던 탁탑천왕(托塔天王) 조개(晁蓋)를 비롯하여 화화상(花和尙) 노지심(魯智深)이며, 이들의 우두머리였던 급시우(及時雨) 송강(宋江)이며, 삼국지의 장비를 떠올리게 하는 흑선풍(黒旋風) 이규(李逵), 가장 빼어난 지식인사로 꼽히는 옥기린(玉麒麟) 노준의(盧俊義)는 물론이고, 완씨 삼형제 등의 동상들이 이야기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우창도 천천히 둘러보고는 나무 그늘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호수를 보면서 동평호를 스쳐 지나간 호걸들의 풍경을 상상하니 느낌이 아련했다. ‘산천은 그대로인데 인걸(人傑)은 간 곳이 없다’는 옛 시를 떠올리면서 세상의 무상함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봤다.

염재는 그 사이에 일행들과 같이 주변을 둘러보러 가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옆을 보니까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창은 바둑에 대해서는 잘 몰랐으나 관심은 있어서 언제 기회가 되면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바둑을 두는 옆으로 가서 조용히 앉아서 구경하게 되었다.

두 노인은 여행하는 모습은 아닌 것으로봐서 아마도 섬에서 사는 듯했다. 어쩌면 옛날의 풍경을 연출하느라고 날마다 이렇게 유람객이 배를 타고 오가는 길목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로만 들었던 바둑두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 신기했다.

우창을 힐끗 본 노인이 다시 바둑에 집중하느라고 우창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몰입하더니 큰 바둑판이 흑백의 돌로 가득 채워지고 난 다음에서야 돌을 다시 거둬서 통에 담으면서 우창을 다시 바라봤다. 그제야 우창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재미있는 놀이를 하십니다. 하하하~!”

“젊은이는 바둑을 좀 아시나?”

한 노인이 점잖은 말로 우창에게 응대했다. 그러자 우창도 다시 말했다.

“아닙니다. 처음 보는 것인데 무엇인지는 몰라도 질서가 있어 보여서 넋을 놓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좀 배워 보려나?”

노인이 말을 걸어오자 우창도 흥미가 동해서 재빨리 대답했다.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쉽게 배울 수가 있습니까? 물론 배울 수가 있으면 배워보고는 싶습니다.”

“배우고 싶으면 배우면 된다네. 그게 무슨 어려운 일이겠는가? 허허허~!”

“그러시다면 가르쳐 주십시오. 힘써 배워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대신에 술과 밥은 사야 하네.”

“그야 당연하지요.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한 노인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자네는 제자를 거두게. 나는 들어가서 낮잠이나 자려네.”

우창은 괜히 자기 때문에 노인들의 흥을 망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그것을 알기라도 한 듯이 일어나던 노인이 말했다.

“아, 젊은이 전혀 신경을 쓸 일이 아닐세. 마홍은 바둑을 두는 것보다도 가르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까닭이니 잘 배워 보게나. 허허허~!”

이렇게 말을 남기고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우창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잠시 어색하게 앉아있으니 노인이 알아서 설명해 줬다.

“자, 이 앞에 정좌하고 앉게.”

우창은 마홍(馬弘)이라고 불린 노인이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자 노인은 책상다리로 편하게 앉으라고 한 다음에 우창이 그렇게 앉자 비로소 말을 시작했다.

“바둑을 왜 위기(圍碁)라고 하는지는 아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혹 위(圍)를 봐서는 둘레를 에워싸는 놀이라서인가 싶기는 합니다.”

“맞았네. 그래서 위기라고 한다네. 또 다른 말로는 난가(爛柯)라고도 하는데 그 말은 들어봤겠지?”

“아, 그 말은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동굴을 발견하고 들어갔더니 두 노인이 바둑을 두다가 흘낏 보고서 대추를 먹으면서 하나씩 세 번을 주는 것을 받아먹었는데 한 노인이 ‘그만 집에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해서 도끼를 집었더니 자루가 그사이에 썩어버렸다고 하는 고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그렇다네. 그만큼 빠져들게 되는 놀이라는 뜻이겠지? 그래서 다른 말로는 난가지락(爛柯之樂)이라고도 한다네. 그런데 어쩌다가 여태까지 배우지 못했더란 말인가. 허허허~!”

“인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인연이 닿았으니 약간이라도 배워 보고자 합니다. 부탁합니다.”

마홍이 우창을 살펴보고는 바둑판을 가리켰다. 바둑알은 우창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통에 담았기 때문에 텅 빈 기반(棋盤)만 있었다. 우창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마홍의 얼굴만 멀뚱하게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무엇이 보이는가?”

“아, 예. 기반이 보입니다.”

“그런가? 잘 보게. 그리고 또 무엇이 보이는가?”

마홍이 다시 묻는 것을 보고서야 원하는 답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우창이 다시 바둑판을 들여다보자 줄이 보였다.

“예, 줄이 보입니다.”

“몇 줄인가?”

이렇게 물을 줄은 몰랐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세어보니 열아홉 줄이 서로 종횡(縱橫)으로 겹쳐 있었다. 가로와 세로가 모두 같은 19줄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바둑판의 줄은 19줄입니다.”

“그렇군. 서로 교차하는 곳에 알을 놓는 것이라네.”

“알겠습니다.”

“바둑판은 무엇으로 만들었나?”

“그야,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바둑판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겠나?”

우창은 마홍이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묻는 것이 무척 맘에 들었다. 그야말로 자기의 생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홍이 묻는 대로 계속 답을 했다.

“이것이 네모로 생긴 것에도 상징이 있습니까? 바둑을 두려면 바둑판이 필요하고, 장기를 두려면 장기판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상징도 있으니 내가 묻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나저나 아직 젊은이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군.”

“아, 예. 소생의 이름은 진하경입니다. 우창이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그래, 우창이라 좋군. 우창은 놀이를 비우고 싶은가? 아니면 이치를 배우고 싶은가?”

“물론 놀이를 배워야 하겠습니다만, 그보다도 먼저 이치를 알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바둑판의 뜻부터 설명해야 하지 않겠나? 허허허~!”

과연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서둘러서 바둑알을 놓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이치를 알고서 놀이한다면 그것도 이사(理事)의 논리에 부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바둑판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사각의 나무에 줄이 그어진 것만 보일 따름이었다.

“가르쳐 주십시오. 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바둑판은 지도(地道)라네.”

“예? 땅의 이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나무가 누런색으로 되어 있으니 땅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왜 사각(四角)으로 되어 있는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야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이치를 따랐기 때문이라네. 하늘은 둥글어서 끝이 없고, 땅은 하늘 아래에 반듯하고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도로(道路)와 수로(水路)가 엇갈려 전개되고 있다네. 허허허~!”

노인은 우창이 맘에 드는 질문을 했다는 듯이 신명이 나서 풀이하며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그것을 보자 우창도 유쾌해졌다.

“그렇다면, 혹 사각(四角)인 것에도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 사각으로 된 것은 춘하추동(春夏秋冬)을 나타내기 때문이라네.”

마홍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깜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 나무토막에 줄을 그어놓은 놀이판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자연의 이치가 그 안에 깃들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흥미는 동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왜 춘하추동이라고 하는 것인지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기반(棋盤)이 지도(地道)라면 춘하추동(春夏秋冬)은 천도(天道)가 아닙니까? 이것은 뭔가 서로 맞지 않는 이치로 보입니다만.....”

우창의 말에 마홍은 부쩍 흥미가 동한다는 듯이 옆에 있던 호리병을 기울여서 술을 두어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우창은 오행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노인의 입에서 오행이라는 말이 나오자 내심 반가웠다. 오행에 대해서라면 나름대로 석달열흘을 말한다고 해도 다 못할 만큼의 지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예, 다행히 오행에 대해서는 약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둑판에도 오행의 이치가 있습니까?”

“어찌 오행의 이치만 있겠나. 음양의 이치도 있다네. 허허허~!”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 이치를 좀 알고 싶습니다.”

“지금 배우고 있지 않나?”

“아, 맞습니다. 그러니까 바둑판은 땅의 이치가 되고 춘하추동은 하늘의 이치가 된다는 말씀이신지요?”

“아닐세~!”

“예? 조금 전에는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만....”

“그대는 시공(時空)의 이치를 알듯 싶네만?”

마홍이 이렇게 우창을 보면서 물었다. 잠시 무슨 뜻인지 헤아린 다음에 이해를 한 대로 말했다.

“예, 어르신께서 물으신 뜻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공간(空間)은 땅의 이치로 기반(棋盤)이 되고, 시간(時間)은 하늘의 이치로 볼 수가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렇다네. 시간은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화하니 일음일양(一陰一陽)이 아니겠나? 반드시 낮이 지나고서야 밤이 되는 이치는 그야말로 천도(天道)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우창은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다시 가다듬고 머리를 비웠다. 이야기의 전개로 봐서 이것은 바둑을 빙자한 도담(道談)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인(奇人)을 만났을 적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서 하나라도 배우지 못한다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하! 그래서 흑석(黑石)이 놓이고 나서야 비로소 백석(白石)을 놓을 수가 있는 것이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완전히 천도(天道)에 부합한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음선양후(陰先陽後)의 이치에도 완전히 부합하여 조금도 어긋남이 없겠습니다. 참으로 오묘한 이치가 그 안에 있음을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창은 이렇게 말하면서 감탄했다. 그러자 마홍이 빙그레 웃으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매우 만족스럽다는 표정이 만면(滿面)에 배어 나왔다.

“맞아! 지도(地道) 위에서 천도(天道)가 변화무쌍(變化無雙)하게 전개되는 것이라네. 허허허~!”

“참으로 오묘(奧妙)합니다. 땅은 가만히 있고 하늘은 움직인다는 동정(動靜)의 이치에도 부합됩니다. 바둑판에서 천지의 이치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그렇다면 인도(人道)가 또 어디엔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혹 바둑을 두는 사람을 두고 하는 의미가 되겠습니까?”

“옳지~! 천지(天地)는 무심(無心)하게 있으나 그사이에 인간(人間)이 개입해서 쓸모있는 일도 하고 헛된 일도 하는 것이니 이것을 기리(棋理)라고 한다네.”

“기리라고 하시면 바둑을 두는 이치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서 무심(無心)한 반석(盤石)에 유심(有心)한 인성(人性)이 만났으니 이것 또한 음양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천지(天地)는 하나이고 사람은 둘이니 이 또한 인간은 서로 더불어서 살아가야 한다는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네. 허허허~!”

우창이 잠시 생각하고는 다시 물었다.

“어르신께서 쓸모 있는 일과 쓸모 없는 일을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또 무슨 의미인지요?”

“그야 기리에 따라서 돌을 잘 놓으면 보람이 있는 일이 되고, 탐욕에 사로잡혀서 무리수(無理數)를 두게 되면 허망(虛妄)한 결과를 만나게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헛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냔 말이네. 허허허~!”

“아하~! 그렇게 해서 천지인(天地人)을 구비(具備)하게 되는 것이로군요. 왜 식자(識者)들이 바둑을 애호하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삼재(三才)와 음양(陰陽)은 알겠습니다만, 오행의 이치도 이 안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나?”

마홍의 너무도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도 잠시 생각하고는 다시 물었다.

“혹 기반(棋盤)은 토(土)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 그렇게 찾아가다 보면 오행도 만나게 되는 것이라네.”

마홍은 뭔가 통한다는 듯이 신나서 답을 했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곰곰 생각해 보고는 다시 말했다.

“땅 위에서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춘하추동(春夏秋冬)입니다. 그러니까 바둑판에서도 춘하추동이 나타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가 춘이고 어디가 하가 되는 것입니까?”

“그야 정할 나름이지. 어디에서 시작해도 상관이 없다네.”

“예? 그건.....?”

우창이 의아해서 마홍을 바라보자 마홍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어느 계절에 출생했나?”

“사월(巳月)에 태어났으니 초여름입니다.”

“그렇다네. 혹자는 봄에 태어나고, 혹자는 가을에 태어나지. 그러니 어디가 봄이든 무슨 관계가 있겠나. 그냥 태어난 그 계절부터 시작되는 것이 삶이 아니냔 말이네. 허허허~!”

“아하~! 그렇군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느 계절부터 시작이 되었더라도 결국은 사계절(四季節)을 순환(循環)할 것은 틀림이 없다는 말씀이지요?”

“옳거니~! 뭘 좀 알아듣는군. 허허허~!”

“이렇게 상세하게 가르침을 주시는데도 못 알아듣는다면 바보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우창도 재미있는 마홍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서 같이 웃으며 말했다. 마홍이 다시 물었다.

“한 계절은 몇 개월인가?”

“그야 춘삼삭(春三朔), 하삼삭(夏三朔), 추삼삭(秋三朔), 동삼삭(冬三朔)으로 각기 계절마다 삼 개월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달은 몇 일인가?”

“큰 달은 30일이고, 작은 달은 29일입니다. 그렇지만 보통은 30일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맞아. 30일을 기준으로 하면 되네. 그렇다면 한 계절은 90일이 되는 것이 맞나?”

“그렇겠습니다.”

그러자 마홍은 바둑통에서 검은 바둑알을 한 움큼 집어서 바둑판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