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1.복인길지(福人吉地)

작성일
2022-08-2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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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1. 복인길지(福人吉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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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의 말에 모두 눈빛을 반짝이면서 귀를 기울였다. 우창과 염재, 그리고 거산은 지광의 능력을 이미 본 터라서 대략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화운룡부부와 진명은 신기한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관심이 더욱 커졌다. 소연은 아직 이러한 공부가 급하지 않으니 푹 자게 뒀다. 우창이 대중을 대신해서 질문자로 나섰다. 이렇게 되면 듣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까닭이었다.

“형님께서 자비를 베풀고 계시니 참으로 보살행이십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야 비록 알고는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나, 오늘의 인연을 봐서 말을 할 수도 있는데 이 댁 주인의 마음을 봐하니 이 정도는 베풀어도 되지 싶어서라네. 하하하~!”

“혹자는 뭘 물어도 천기누설(天機漏泄)이라고 해서 감추고 대가를 요구하기에 급급한데 말입니다.”

“그야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 않겠나? 만약에 수만금을 갖고있는 사람이 조상의 묘자리를 찾으면서 금옥만당(金玉滿堂)의 대대손손으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릴 자리를 찾아달라고 물으면 천기누설이라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하지. 하하하~!”

“그것은 이미 재물을 쌓아놓고 있는 자의 욕심은 채워주고 싶지 않겠다는 의미이십니까?”

“그렇다네.”

“그래도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서 돈을 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뭘 어째? 받아야지. 받아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그에게도 약간의 억지 공덕이라도 생기지 않겠나?”

“공덕이면 공덕이지 억지 공덕은 무엇입니까?”

“그야 본인은 맘이 없으나 자신의 쌓아놓은 재물을 꺼내어 빈민(貧民)에게 도움을 주게 하니 억지로 공덕을 쌓게 한다는 말이네. 하하하~!”

“아, 그런 뜻이었습니까? 하하하~!”

“내어놓을 줄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내어놓도록 하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라네. 그래서 거부가 탐욕을 부리면 아무리 명당을 잡아줘도 그 자리는 패망지(敗亡地)가 되기도 하니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을 누가 자기 마음대로 욕심을 부려서 거스를 수가 있단 말인가. 하하하~!”

“아, 그런 것이었습니까? 명풍수가 잡은 묘터의 후손이 망하는 이치가 있었던 것이란 말입니까?”

우창도 처음 듣는 이야기에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러자 지광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양균송(楊筠松) 선생이 구빈(救貧) 선생으로 불렸던 이유도 가난해서 끼니가 없는 사람에게 밥그릇을 채워주려고 노력하셨기 때문이라네. 그런데 억만금을 소유한 사람이 조상의 터를 더 좋은 곳으로 옮겨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야 의뢰자의 부탁을 받았으니 당연히 더 좋은 자리를 찾아줘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부익부(富益富)하고 빈익빈(貧益貧)하는 것은 끊임이 없지 않겠는가? 어찌 그것이 고르게 살아야 하는 자연의 이치와 부합이 되겠는가?”

“그래서 저마다 복분(福分)이 있다고 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우창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광의 설명이 이해되지 않아서 물었다. 왜냐면 스스로 타고난 인연대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지광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했다.

“문득 아우님에게 해줄 말이 떠올랐네. 어디 들어볼 텐가?”

“그야 이를 말씀이십니까? 오랜만에 형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같습니다. 어서 말씀해 주시지요.”

우창이 이렇게 청하자 모두 그 말이 궁금해서 지광을 바라봤다. 그것을 본 지광이 말했다.

“예전에 풍수지리에 통달을 한 절정(絶頂)의 고수(高手)가 있었다네. 보통 마을에서 일인자가 되면 진풍(鎭風)이라고 하고, 고을에서 일류가 되면 현풍(縣風)이라는 별호(別號)를 붙여준다네. 그런데 그 선생은 국풍(國風)이었지. 그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나?”

“아무리 그래도 형님보다야 아래겠지요. 형님은 도풍(道風)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우창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지광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가 어느 부호의 사후에 자신이 들어갈 길지(吉地)를 부탁받고는 땅을 보러 갔는데 너무나 좋더라네. 그래서 남을 주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머지 그 부근의 다른 적당한 땅을 짚어주고는 밤에 몰래 자기 부친의 유해를 옮겼다네.”

“그건 좀 욕심을 부린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가? 여하튼 그 국풍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라네. 그리고 얼마 후에 다시 다른 곳에서 땅을 봤는데 그곳은 먼저 본 것보다 훨씬 더 좋더라는 거야. 그래서 또 욕심을 부렸다더군.”

“어찌 국풍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아무래도 이름만 국풍이고 실은 탐풍(貪風)이었던 모양입니다.”

“어? 탐풍이라니?”

“탐욕스러운 풍수가라는 뜻이지 뭐겠습니까? 하하하~!”

“아, 난 또~! 하하하~!”

“그의 마음 씀으로 봐하니 필시 결과는 비참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만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나 들어 봐야 하겠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조상의 유해를 옮겼겠지요?”

“이제 아우님은 내 이야기의 꼭대기에 앉아 있나 보군. 맞아. 그렇게 부친의 유해를 아홉 번 옮겼다네. 그렇게 하고서는 또 잊어버리고 있다가 오랜 후에 다시 지나가다가 생각하니까 부친을 모셨던 생각이 나서 산소를 찾았더라네.”

“아니, 돌보지도 않을 조상의 유해를 그렇게 방치했단 말입니까?”

“뭐, 살다가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국풍이니 얼마나 바쁘겠느냔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인 효도는 해야 하는 것이잖습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고, 그가 다시 찾아간 부친의 산소는 가시덤불이 무성한 곳에 잔디도 없이 누워계시더라는 거야. 그래서 명당인데 이럴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 가시덤불을 제거하고 확인해 보니까 천하에 절손(絶孫)의 터였더라네. 그래서 피눈물을 흘렸다더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가 있습니까?”

“지안(地眼)은 그렇게 순식간에 암흑으로 보이기도 하고, 아예 엉뚱한 것으로 보여주기도 한다네. 풍수로 도를 깨달은 사람만이 느끼는 세상이기도 하네만. 보통 패철(佩鐵)이나 들고 다니면서 대충 보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니까 말이네.”

“그건 인정하겠습니다. 그렇게 피눈물을 흘리고서도 국풍의 노릇을 했습니까? 우제라면 하늘이 부끄러워서라도 패철을 던져 버렸을 것입니다만.”

“역시 그도 옛날에 탐욕으로 한 짓을 참회하고 그 후로는 국풍을 버렸다더군. 옛날에 들었던 이야기지만 항상 살아있는 듯이 생생하게 가슴을 후벼 파는 경구(警句)가 되어서 잊을 수가 없던 이야기라네. 하하하~!”

“과연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참으로 하늘은 벌을 내리는가 봅니다. 땅속을 들여다보는 눈이 열렸으면 만인을 위해서 공덕(功德)을 쌓으라고 준 선물일진대 그것으로 자신의 탐욕을 채웠으니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양구빈 선생의 뜻도 그러한 것에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왕궁(王宮)에서 아무리 뛰어난 풍수를 청해서 좋은 터에 선왕을 모셔도 그 나라는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도 소용없는 것인가 싶었는데, 어쩌면 탐욕으로 인해서 그러한 결과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 아우님이 참 말씀 잘하셨네. 내가 하나 물어볼까? 왕궁에서 풍수에게 명해서 명당길지(明堂吉地)를 찾으라고 하는데 임의대로 ‘왕궁에서 과한 복을 누렸으니 시신은 흉한 곳에 묻도록 해야 하겠군’하고 생각할 수 있겠나?”

“그랬다가는 왕실을 능멸했다고 삼족을 멸하는 화를 당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국풍과 아우님이 말한 도풍의 차이가 뭘까?”

“짧은 소견으로 말씀드리면, 국풍은 형상(形狀)을 보고서 터를 찾는 것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생김새를 보고서 그 사람의 내면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오호~! 그렇다며 도풍은?”

“우제가 드리는 말씀이 타당하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면 계속 말씀을 드려 보겠습니다. 도풍은 겉으로 보이는 형상도 보겠지만 그 내면에 깃든 지심(地心)을 보는 능력자라고 생각이 됩니다. 만약에 왕궁에서 승하(昇遐)하신 선왕을 묻을 왕릉을 찾을 적에는 그의 생전에 쌓은 덕행이나 악행에 잘 어울리는 땅을 찾을 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우 흥미롭군. 계속하시게. 하하하~!”

“생전에 악행을 한 왕을 명당에 묻으면 지신(地神)이 노하지 않겠습니까? 호두나무에는 호두가 달리고 참외 넝쿨에는 참외가 달리는 것이 옳으니까요. 인과의 이치가 자연의 도리라고 할진대, 당연히 그러면 안 되는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어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흉지(凶地)에 왕의 시신을 묻으라고 할 텐가?”

이번에는 오히려 지광이 답답하다는 듯이 답을 재촉했다. 그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아는 이는 또 그만큼의 고뇌가 따르는 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미녀인데 속에는 흉험한 속내를 품고 있는 여인을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감히 국풍이 잡은 자리를 누가 평하겠습니까? 그 정도로 완벽하게 보이는 곳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께름칙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흉한 땅인 줄을 알면서 시신을 묻으라고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해결책은 한가지 뿐이겠군.”

“예? 해결책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무엇입니까?”

“국풍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네. 허랑방탕(虛浪放蕩)하게 살다가 참으로 빈곤(貧困)하여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사람을 만났을 적에 한 자리 알려주면서 그렇게 산다면 또 무엇을 꺼리겠느냔 말이네. 하하하~!”

“그렇다면, 그런 분이 딱 형님이시네요. 정말 존경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합장을 했다. 그러자 이야기를 듣던 대중들이 자신도 모르게 우창을 따라서 합장하여 경의를 표했다. 그러한 모습에 오히려 어색한 지광이 쑥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왜들 이러시나. 그게 아니라네. 하하하~!”

“형님, 그나저나 화 선생의 집터는 어떻게 잡아주실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재산이 있기로 말한다면 치우천황을 섬기면서 마음이 부자이시니 가난하다고 하기도 어렵겠고, 겨우겨우 하루를 이어가는 모습이라고 하면 여유롭다고 하기도 어려우니 이러한 인연에는 어떤 터가 좋을지 궁금합니다.”

“하룻밤을 편하게 잔 인연으로 곳간에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아서 찾아오는 사람에게 넉넉하게 베풀 수가 있을 정도라면 충분할 것이네.”

“이렇게 말하면서 화운룡을 바라봤다. 그러자 화운룡이 말했다.”

“감히 그런 것조차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아내가 몹시도 힘들어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때로는 마을에 가서 밭에 김을 매어주고 얻어온 밥으로 하루를 살기도 하니까요. 이것이 마음 아플 따름입니다.”

과연 화운룡은 소박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라도 겨우 아내의 형편이 조금은 나아져서 마을에 일을 해주러 가지 않아도 될 정도만 얻을 수가 있으면 그것만으로 만족하겠다는 말을 들으면서 우창과 지광은 감동했다. 잠시 숙연한 침묵이 흐르고 나자 지광이 말했다.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지금의 집에서 대략 30보 정도가 되는 지점입니다. 여기에 집을 옮기시면 됩니다. 이렇게 좋은 자리가 아직도 비어있었다는 것은 화선생이 임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은 예의 그 지맥봉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내친김에 공부도 할 겸으로 지광에게 부탁을 했다.

“형님, 지맥봉으로 우리도 알 수가 있도록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침 소연이도 나왔으니 보기 드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개안(開眼)이 될 것은 틀림없을 테니까 말이지요.”

우창의 말에 지광도 순순히 품에 지니고 다니든 강철로 된 지맥봉을 꺼냈다. 이미 본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우창이 간단히 설명했다.

“이것은 형님의 비전절학(秘傳絶學)을 펼치는 도구입니다. 끝이 올라가면 화맥(火脈)이 흐르는 곳이고, 끝이 내려가면 수맥(水脈)의 안 좋은 기운이 서린 곳입니다. 물론 이 둘이 서로 잘 교차하는 것입니다만, 오늘은 특별히 형님께서 지정한 터이니까 과연 어떤지 거산(居山)에게 부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시연(試演)하려다가 지맥봉을 거산에게 넘겼다. 과연 우창의 말이 일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모든 사람의 눈길을 받게 된 거산이 쭈뼛거리면서 지맥봉을 들고는 지광이 시키는 대로 천천히 걸었다. 그러자, 지광이 가르쳐준 자리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30보는 모두가 지맥봉의 끝이 하늘로 향하고 있는 자리였다. 그것을 본 우창이 다시 설명했다.

“형님, 이러한 자리는 흔치 않은 곳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될 경우도 있습니까? 어쩌면 거산이 형님의 기운을 받아서 괜히 잘못 짚었을 수도 있을 테니까 결국은 형님께서 한번 돌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 지광도 그대로 따라 했으나 거산이 한 것과 완전하게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자 우창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이야~! 참으로 복이 있는 터에도 주인을 만나는 때가 있는가 봅니다. 이 터에 자리를 잡으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형님께서 그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창의 부탁에 지광이 우선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자리에 박아놓고는 말했다.

“현재의 자리는 겨우 밥만 얻어먹으면서 연명하는 자리입니다. 물론 그래도 화선생이 만족하였기 때문에 지낼 수가 있었지요. 다만 슬하에 자녀가 생기지 못한 것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곳으로 집을 옮기고 나서 한해가 지나면 옥동자(玉童子)를 얻게 될 것이고, 그 아이는 부모의 정기(精氣)와 땅의 지기(地氣)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나서 장차 가문을 크게 빛내게 될 것이니 잘 가르치시지요.”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화운룡의 아내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돌발적인 행동에 진명이 깜짝 놀라서 얼른 일어나서 부축해서 앉혔다. 그러자 부인이 말했다.

“어제 까치가 울기에 귀인께서 오시려나 보다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저희 가정에 복음(福音)을 내려 주시고 앞으로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말씀까지 하시는 것을 듣자 너무나 감격해서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동안 남편은 말을 하지 않았으나 아이를 원했던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지요. 오늘 당장 목수를 불러서 집을 옮겨달라고 해야 하겠어요. 갑자기 마음에 밝은 등불이 일천 개가 동시에 켜진 것처럼 밝아졌어요.”

부인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에 화운룡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내의 등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그것을 본 우창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옛말에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하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화 선생 덕분에 우리는 치우천황에 대해서 몰랐던 것을 공부했고, 선생의 부부는 더욱 화목한 가정을 누릴 수가 있을 테니 그야말로 서로 성공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부디 행복하시고 해로하시기를 바랍니다.”

우창의 말에 두 부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감동의 눈물이 햇살을 받아서 반짝였다. 아내는 아침을 준비하겠다고 들어갔고 화운룡은 하늘을 쳐다봤다. 눈물을 닦지 않으려는 자세였다. 그것을 모두 알고는 잠시 눈길을 돌렸다. 우창이 감탄하면서 지광에게 말했다.

“형님, 지학을 통달하시니 선행 공덕을 베푸는 것도 차원이 다릅니다. 명학은 겨우 한 사람의 길흉에 대해서 조언할 따름인데 형님은 한 가정을 순식간에 행복하게 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우제도 그것을 배울 날이 오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명학(命學)의 사정(事情)이지 지학(地學)의 사정은 아니네. 하하하~!”

“예? 무슨 뜻입니까?”

“명학은 한 개인의 삶을 논하면 되지만, 지학은 좀 더 넓은 상황을 살피는 것이기 때문이라네. 여하튼 그런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으니 생략하기로 하고, 중요한 것은 탐욕의 끝은 거부(巨富)가 아니라 타락(墮落)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알고 있으면 되겠네. 하하하~!”

지광의 말에 우창도 그 느낌이 전해졌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과연 지학의 범위는 광활합니다. 단순하게 길흉만 논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이치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줄은 몰랐으니 말입니다. 분수(分數)를 넘어가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이치를 오늘 새삼 깨닫습니다.”

“그런가? 그래서 항상 7할만 채워놓고 살라고 하지 않던가? 하하하~!”

“아하~! 그것이 바로 그러한 뜻이었습니까? 밥을 먹을 때만 조금 비워놓으라는 의미인가 했더니 그것만이 아니었네요. 하하~!”

“세상 만물은 차면 기울게 되어있으니 차오르기 전에 멈춰야 하는 것도 알아야 하는 것이라네. 하하하~!”

“아무래도 우제는 형님의 발치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가? 토끼는 귀가 밝고, 독수리는 부리가 날카롭고 호랑이는 발톱이 강하다는데 아우님은 그것을 모두 갖고 싶은가 보군? 하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그 이야기를 듣고서 모두가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과연 옳은 말이기도 했지만, 그 말에 우창의 표정이 가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창도 이내 정색하고는 말했다.

“과연 순간의 탐욕이 앞을 가렸나 봅니다. 반성합니다. 하하하~!”

“아닐세, 웃자고 한 말이라네. 당연히 도풍까지는 아니라도 젖은 자리와 마른자리 정도는 알게 될 것이니 열심히 공부하시게. 하하하~!”

“예, 잘 알겠습니다. 열심히 형님을 따라서 익히겠습니다. 하하하~!”

그러는 사이에 아침이 준비되었다고 화운룡의 아내가 불렀다. 그래서 모두 들어가서 정성으로 차린 아침을 맛있게 먹고는 아쉬워하는 부부를 작별하고 염재가 마차를 몰았다. 마차가 흔들리면서 나아가자 우창이 지광에게 말했다.

“형님께서 공덕을 짓는 방법을 보니까 참으로 흐뭇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 자리에 집을 지으면 자손이 태어나서 가정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맞겠지요? 아직도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의문이 남아있는 것도 같습니다.”

우창이 약간은 미안한 마음을 갖고서 물었다. 그러자 지광이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만약에 의심이 하나도 없다면 이미 학자가 아니라고 해야지. 당연히 그러한 마음도 함께 갖고 평생을 가게 될 것이니까 개의치 않아도 된다네. 그리고 그것이 항상 학문의 이면을 살피게 될 것이므로 더욱 단단한 건물이 될 것이네. 건물을 지을 적에는 무엇으로 짓는지 아는가?”

“그야 흙과 돌을 섞어서 차곡차곡 쌓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에 흙만 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비가 많이 오면 허물어지거나 습기가 차면 무너질 수도 있지 싶습니다.”

“마찬가지라네. 학자는 모쪼록 의심의 돌과 믿음의 흙을 조화롭게 섞어서 집을 지어야 오래도록 허물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라네. 하하하~!”

“아, 그런 것이었습니까? 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우제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은 오늘 새삼 깨달았습니다. 하하~!”

“그 자리를 구태여 이름을 붙이기로 한다면 ‘삼태기 터’라고 할 것이네.”

“삼태기라니요? 불타고 난 아궁이의 재를 담아버리는 것을 말씀하십니까?”

“맞아, 바로 그 삼태기지.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게 왜 좋은 터입니까? 곡식을 담는 소쿠리 터라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창의 질문에 다른 제자들도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광의 설명을 기다렸다. 그것을 본 지광이 웃으며 말했다.

“이름은 이름일 뿐이라네. 다만 설명하려고 붙이는 것일 따름이지. 눈을 뜨고서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구태여 설명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이름을 붙일 따름이라네.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름을 삼태기라고 붙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궁금합니다.”

“당연하지. 우선 치우릉은 아궁이와 같다고 봐야겠지. 사람들이 찾아와서 참배하니 그 열기가 아궁이와 같다고 할 테니 말이네.”

“그건 일리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아궁이에 불이 타고 나면 삼태기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까?”

“옳지! 이제 이해가 되었나 보군. 삼태기는 그들이 쌓아놓은 재화를 담으면 되는 것이라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도 끼니가 떨어져서 동네로 일하러 가야 하는 상황은 면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그야말로 그들 부부가 원하는 만큼이로군요. 그 정도로 명당이라고 하기는 좀 약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정도면 명당이 되고 탐욕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에게는 물론 만족이 되지 않겠지.”

“아무리 그래도 집이라도 번듯하게 짓고 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형님의 안목으로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텐데 좀 아쉽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건 모르는 말이네. 하하하~!”

지광의 말에 우창은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예? 설명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삼태기의 재를 탐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야 아무런 금전적인 가치가 없는 것을 누가 탐하겠습니까? 농부가 거름으로 쓰기 위해서나 모을 따름이지요.”

“바로 그 점이라네. 돈을 담는 광주리였다면 오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탐해서 빼앗고자 할 것이고, 심지어는 목숨을 해칠 수도 있지 않겠나?”

우창은 지광의 말을 듣고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띵했다.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하고 터를 잡아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형님! 그런 것까지 생각하셨습니까?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가? 원래 담장이 높은 집에는 도둑이 꼬이는 법이고 담장도 없는 집은 지나가는 거지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인지상정이라네. 소박한 부부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하고 오히려 재화(財貨)가 더 쌓이면 그것으로 인해서 번뇌가 생길 테니 어찌 도움을 줬다고 하겠느냔 말이네. 하하하~!”

지광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모두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광의 원모심려(遠謀深慮)에 감탄하면서 저마다 그 의미를 가슴에 깊이 아로새겼다. 이른 아침의 상쾌한 공기가 마차를 감돌다가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