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 제34장. 인연처(因緣處)/ 6.스승을 만날 팔자(八字)

작성일
2022-07-25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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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 제34장. 인연처(因緣處)


6. 스승을 만날 팔자(八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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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답을 하지 않고 미소만 짓고 있자 염재는 궁리를 해보라는 의미인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간지의 이치는 정미(精微)롭게 파고들지 않으면 거친 관점에서 깊어질 수가 없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있었다. 진명의 사주를 앞에 놓고 살펴보고 있는 염재였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염재가 비로소 우창에게 말했다.

389-1

 

“스승님께서 답을 주지 않으시는 이유는 스스로 생각해 보라는 뜻으로 알고 궁리해 봤습니다. 말이 안 되더라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오류가 있으면 바로잡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어디 생각한 대로 말해 보게.”

“제자가 생각하기에 병화(丙火)에게 인목(寅木)은 절대적입니다. 인목으로 인해서 병화는 자신의 역할을 감당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반면에 정화(丁火)는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하신 것을 참고한다면 수호신의 인연은 약하고 스승의 인연은 강력하다고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인목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녀의 인연은 도움이 되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제대로 이치에 맞는 해석이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아, 문제는 자녀의 인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가 조금 혼란스러워서입니다. 일간이 느끼는 부담감과 용신이 느끼는 고마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타당할지 궁금해서 여쭙고자 합니다.”

염재가 궁금한 점을 묻자 진명도 궁금했던지 눈빛을 반짝이면서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염재가 제대로 물었군. 오행의 이치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대입하면 되지. 자녀가 내 하는 일에 큰 도움을 줄 것이고, 심리적으로 본다면 자녀가 정관(正官)으로 목극토(木剋土)를 하는 관계가 존재하므로 직접적으로는 부담을 주는 것으로 대입하면 된다는 말이지.”

우창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염재는 여전히 미진(未盡)한 것이 있었는지 답변은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우창의 말을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본 우창이 이어서 말했다.

“아직 이해가 덜 되었나 보군. 가령 자식이 임금이라고 해볼까?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겠지?”

“그렇겠습니다. 임금의 부모라고 한다면 호의호식하며 부러울 것이 없는 나날을 보내게 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다면 또 생각해 볼까? 자식이 임금이면 만만할까 아니면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울까?”

“그야 여간 부담스럽지 않겠습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왕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구잡이로 행동을 할 것이고 그 결과는 자칫하면 큰 후환(後患)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옳지, 바로 그 점이라네. 자녀가 내 일에 도움을 주지만 심적으로는 부담스럽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라네. 그런데 만약에 시지(時支)에 식상(食傷)이 있는데 그것이 용신이라면 어떻게 될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이번에는 염재도 바로 이해가 된다는 듯이 얼른 말했다.

“그건 자식이 도움을 주기도 하고 마음으로도 편안하겠습니다. 아하~! 이제야 스승님의 말씀을 이해하겠습니다. 결국은 도움이 되는 것에 비중을 두면 되는 것이었네요. 잘 알겠습니다.”

염재의 말에 진명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어서 말했다.

“동생 덕에 내가 덤으로 공부하네. 무엇보다도 자녀의 인연은 크게 길하다는 말만 귀에 들어오는 것은 아전인수(我田引水)겠지? 호호호~!”

진명의 말에 우창도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도반은 동반성장(同伴成長)을 한다고 하지 않겠나? 잘 이해를 했으니 또 살펴보고 궁금한 것은 물으시게. 하하~!”

“예, 다시 궁리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염재가 또 궁리에 몰입했다. 그 순간은 누가 옆에서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한 장면을 진명이 감동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다시 생각을 정리한 염재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께 다시 여쭙겠습니다. 일간(日干)의 기토(己土)가 다시 축토(丑土)를 본 것은 지장간(地藏干)으로 본다면 비견(比肩)과 식신(食神)과 편재(偏財)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모든 것을 마무리까지 할 수가 있는 성향으로 봐도 될지요?”

“물론이네.”

우창이 동의하자 다시 이어서 물었다.

“그렇다면 식신(食神)은 스스로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서 해결할 수가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지요?”

“당연하지.”

“그런데 일간(日干)의 힘이 약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작용을 하게 될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인성의 작용에 따라서 일간은 운신(運身)의 폭이 정해질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마치 시지(時支)의 인목(寅木)의 존재에 의해서 용신의 힘을 저울질하는 것처럼 이것도 어떤 관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은 되는데 스승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런가? 병정화(丙丁火)의 인성(印星)은 용광로(鎔鑛爐)의 화력(火力)과 같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네.”

“아, 그렇다면 인성이 강(强)하면 화력이 충분하고, 부족하면 오히려 화력이 부족하다고 해석하면 되는 것입니까?”

“옳지~!”

“그렇군요. 이 사주는 좌우에 인성인 병정화(丙丁火)가 있지만 정화(丁火)는 무력하므로 실제로는 병화(丙火)의 화력만 도움을 주는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되겠습니까?”

“그렇다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염재의 생각이 정리되었던 모양이다. 그다음에는 막혔던 둑이 터지듯이 스스로 술술 풀어냈다.

“그렇다면 연료가 부족한 일간이 왕성하게 연구할 수가 있으려면 병정(丙丁)이나 사오(巳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움은 어떻게 받을 수가 있습니까? 혹 앞에 난로를 놓고서 불이라도 피워놓으면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까?”

염재의 말에 우창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네. 오직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은 두 가지가 있네.”

“아, 두 가지라도 있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 두 가지는 어떤 것입니까?”

“화(火)가 들어오는 해와 스승의 도움만이 완성 시킬 수가 있다네.”

우창의 말에 염재는 전율(戰慄)을 느끼듯이 몸이 떨렸다. 우창은 그러한 모습도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봤고, 진명도 놀라워서 내심으로 감탄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화운(火運)이 들어와서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스승의 도움도 그러한 효과가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 스승에게 열심히 공부한다면 진전이 없을까?”

“진전은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노력의 영역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명은 노력과 무관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까?”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진명도 공감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창을 바라보면서 답을 기다렸다. 염재의 말에 우창이 답을 했다.

“조금 전에 염재가 뭐라고 했나? 어떻게 해야 화(火)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겠느냐고 하지 않았나?”

“예,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말이네.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말에는 노력을 할 수가 있다면 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지 않았나?”

“아, 듣고 보니 제자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화운이 와서 뜻을 이루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고, 스승을 찾아서 공부하는 것은 노력해야만 되는 것입니까?”

“당연하지~!”

“그렇다면 그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완전히 같은 결과라네, 과정은 달라도 결과는 같은 것이지. 그래서 타고 나거나 노력하거나 원하는 바의 결과만 얻으면 되는 것이고, 운명을 공부하는 이치에도 올바른 노력을 찾기 위해서라네. 하하하~!”

우창은 염재가 중요한 것을 물었고, 그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으로 봐서 기분이 유쾌해서 크게 웃었다. 염재가 다시 생각하더니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하~!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숙명적(宿命的)인 것에 대해서만 생각해야 한다는 것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운명이란 고정불변(固定不變)이 아니라 수시가변(隨時可變)이라는 것이었네요. 오늘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때에 따라서 변하는 것에는 또 다른 요인도 있겠습니까?”

“오~ 예를 든다면 가령 어떤 것이 있을까?”

우창이 답을 주기 전에 염재가 생각해 보도록 유도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야기만 듣고 있던 진명이 말했다.

“진명이 생각하기에 혹시 공부를 할 수가 있는 환경을 찾는 것도 노력에 포함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맹자의 고거(故居)에서 봤던 맹모삼천(孟母三遷)의 가르침이 떠올라서 드리는 말씀인데 환경의 도움을 찾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오호! 누나의 생각이 맞네요~! 환경도 노력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으니 아직도 가야 할 길이 하염없이 멀었습니다.”

염재의 칭찬을 들은 진명은 기분이 좋아져서 계속 말을 이었다.

“오늘 정말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러니까 타고난 것은 십(十)에 5할이고, 환경이나 노력하는 것도 5할은 된다고 봐도 되겠네요. 그렇게 되면 숙명이라고 해도 극복(克服)을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요?”

진명의 말에 우창도 동의하면서 말했다.

“옳지, 바로 그것이라네. 가령 소연이가 신굿을 해서 조상신을 몸에 받아들였다면 무녀가 되었을 것이고, 그것도 운명이었을 것이네. 그런데 나와 형님을 만난 환경의 도움을 받아서 변화가 생겼는데 그것을 수용하고 노력하겠다고 결심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삶의 행로가 달라지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니겠나?”

우창의 말을 듣고서 염재가 다시 정리하면서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누나의 사주에서 시간(時干)의 철학궁(哲學宮)에 있는 병화(丙火)는 스승의 인연을 의미합니다. 스승의 자리에 정인(正印)이 있고, 그것이 용신이면서 그 스승의 내공은 공전절후(空前絶後)의 깊이를 간직하고 있으니 이러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동행하게 된 것일까요?”

염재가 우창에게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진명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정말? 내 사주에서 그러한 조짐이 있었던 거야? 그렇다면 만약에 병인(丙寅)이 아니고, 병자(丙子)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염재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염재도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아마도 그렇게 되었다면 스승을 만나기는 하더라도 스승의 공부는 미흡하기가 안개 같고 연기 같아서 잠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바닥이 드러나고 말게 되는 인연을 만나서 학문적인 진보(進步)도 얻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는 것이 아닐까요?”

“어머나, 정말이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까? 젊어서 만난 스승은 정화(丁火)라고 한다면 과거에 만났던 스승은 모두가 무력하고 도움을 받을 수가 없는 인연이었지만, 나중에 만나는 인연은 뿌리가 깊은 스승을 만나서 깊은 학문을 전수(傳受)하게 되는 것으로 말이야.”

“정말 하나를 알려드리면 둘을 깨달으시네요. 누나의 영감이 공부에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이 틀림없겠습니다. 하하~!”

“아니, 사주가 중요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시지(時支)의 글자 하나에 따라서 만나게 될 스승의 인연까지도 알아낼 수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지 뭐야. 그렇다면 다시 물어볼게.”

“예,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만약에 병자(丙子)시라고 하더라도 진 사부님과 같은 내공이 중후한 스승을 만날 수가 있다고 할 수가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만났다면 팔자의 암시와 같다고 할 수가 없지 싶은데 이러한 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가 궁금해서 말이야.”

“참으로 멋진 생각이네요. 시주(時柱)가 병인이라서 스승님을 알아본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병자(丙子)시였다면 스승님께서 가르침을 전해 주려고 해도 그 공부를 의심하거나 가볍게 여겨서 인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론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자 하느 마음만 있다면 같은 결과가 될 것입니다.

다만, 말씀드렸듯이 스승은 학문이 깊더라도 스스로 그 깊은 이치를 믿고 의지하여 따르지 않는다면 또한 무지한 스승을 만난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상대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같은 스승인데도 어떤 제자는 깊은 가르침을 얻고 만족하지만, 또 어떤 제자는 만족하지 못하고 인연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와~! 그럴 수도 있겠네. 정말 맞는 말이야.”

진명의 말에 염재도 흥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병자(丙子)시가 되면 학문이 심후(深厚)한 스승을 만나기도 어렵겠으나, 혹 만난다고 하더라도 깊이 공부가 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병인(丙寅)시이므로 밝은 스승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혹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번엔 스스로 밝은 스승을 찾아 나설 것이니 만날 인연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만난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염재의 말에 진명은 감동한 듯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때 밖에서 거산이 기척을 했다. 그래서 염재가 문을 열어주고 들어오라고 했다.

“스승님께서도 계셨네요. 편히 쉬셨습니까? 누님도 반갑습니다.”

거산이 들어오자 염재가 잠시 설명했다.

“거산은 아직 명학의 공부가 부족하여 지금 누나의 사주를 풀이하고 있지만 알아듣기 어려울 것으로 봐서 청하지 않았네. 다음에 공부가 되면 또 차차로 설명해 줄 테니까 지금은 궁금해도 조금만 참아. 하하~!”

염재의 말에 거산은 한쪽에 앉으면서 말했다.

“형은 거산의 작은 선생이신데 무슨 걱정을 하겠어. 앞으로도 공부할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알려주셔도 돼. 게으르지 않고 공부할 테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정 사부님이 보이지 않아서 여기 계신가 했는데 아니었군. 어디 다니러 가셨나 보네.”

염재에게 이렇게 말한 거산이 우창에게 말했다.

“그럼 말씀 나누십시오. 주변을 둘러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거산은 바로 나갔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염재에게 물었다.

“축중계수(丑中癸水)는 어떻게 보이는가?”

“축중계수는 편재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조바심이 있는 것으로 보겠습니다. 더구나 그 조바심의 뿌리는 깊어서 월주(月柱)와 연주(年柱)까지도 이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본다면 누나가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것은 부작용(副作用)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제자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판단이 되는데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까?”

“옳지! 맞아, 화(火)는 긍정적(肯定的)인 작용을 하기 쉽고, 수(水)는 부정적(否定的)인 작용을 하기가 쉬운 까닭이라네. 그래서 항상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독소(毒素)라고 봐야 하겠지?”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진명이 답을 했다.

“맞아요~! 스승님이 말씀하신 그대로네요. 무슨 일이든 조금 진행하다가 뭔가 마음에 부합이 되지 않으면 바로 포기하게 되는 마음이 생겼는데 그것도 이제 보니까 팔자의 영향이었다는 말씀이었네요. 여태는 그래도 괜찮았으나 앞으로는 인내심(忍耐心)으로 스승님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르도록 하겠어요. 이제는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아야 하니까요. 호호~!”

“암,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네. 그리고 오행의 공부도 한꺼번에 이루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염재가 많은 도움을 줄 테니까 열심히 배우도록 하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두 사람은 잠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자제하고 있을 적에 조식(早食)을 먹으라는 전갈이 왔다. 모두 식당으로 나가자 어느 사이에 지광이 돌아와서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형님은 새벽바람에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아, 잘들 쉬셨지? 어제 치우의 이야기를 듣고서 궁금한 마음에 묘를 찾아가 보고 왔다네. 그런데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천하의 맹장(猛將)이었던 치우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네. 아마도 그 위치는 잘못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그러니까 그대들은 구태여 그곳을 가볼 필요는 없겠더라는 말이네. 오히려 다음에 다시 확인할 기회가 있을 것이네.

지광의 말에 우창도 동의하면서 말했다.

“형님의 말씀이 맞겠습니다. 알려진 역사와 진실의 역사는 같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나저나 그 위치는 어디에 있던가요?”

“아, 문상(汶上)에서 남쪽으로 대략 50~60리는 되겠더군. 남왕진(南旺鎭)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네. 새벽에 잠이 깨어서 생각해 보니까 궁금해서 잠시 다녀왔다네. 하하하~!”

“아, 꽤 멀리 있었네요. 어제 주인장의 말만 들어봐서는 이 근처 어디쯤인가 싶었습니다. 하하~!”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진명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정 사부님께서 이 새벽에 거기까지 다녀오셨단 말씀이세요? 그게 바람이 아닌 다음에야 가능해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정 사부님은 바람이시거든요. 하하~!”

그러자 우창이 조용히 말해 줬다.

“형님은 축지법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네.”

그 말에 진명의 눈은 더욱 커졌으나 주변의 사람들이 있어서 말은 하지 않았다. 참으로 신기한 일도 다 있다는 듯이 고개만 갸웃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맛있는 아침을 먹고는 모두 더워지기 전에 보상사(寶相寺)를 참배하러 갔다. 거리는 숙소에서 1리도 되지 않았다. 편안하게 시원한 아침을 이용해서 둘러보니 웅장한 풍모며 규모를 봤을 적에 과연 송(宋)의 황제가 태산(泰山)으로 제사를 지내러 오가면서 들렸다는 말이 사실인 듯싶었다.

당대(唐代)에는 절 이름이 소공사(昭空寺)였다는데 송의 정종(貞宗)이 오가는 길에 잠시 머물면서 이름을 보상사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내력에 적혀 있는 것도 보였다. 절의 규모는 큰 마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규모가 엄청나게 컸고 상주하는 화상들도 수천 명은 되어 보였다. 그렇게 한나절을 구경하고는 다시 강변으로 가서 경항대운하의 모습을 보면서 강에서 잡은 생선으로 만든 요리를 먹으면서 망중한(忙中閑)을 즐겼다.

특히 갖가지의 형상으로 꾸민 선박들이 오가면서 정박하고 물건을 거래하는 모습에 소연이도 무척이나 재미있어했다. 아무래도 세상의 풍경을 접한 경험이 부족했던 탓이기도 했겠지만 어린 소녀의 감성으로 바라보는 진풍경은 넋을 빼앗기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