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 제28장. 오행원/ 8.의술(醫術)
작성일
2021-04-10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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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제28장. 오행원(五行院)
8. 의술(醫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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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이 설명을 이어갔다.
“자원이 아는 의술도 어찌 보면 단편적일 수밖에 없어요. 왜냐면 의원으로 전문적인 수업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이해하고 있는 만큼만 설명해 볼 테니까 아쉽더라도 다그치진 마세요. 호호호~!”
이렇게 미리 자신의 공부가 짧음을 말하는 자원이 오히려 듬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런 염려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자원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의술은 몸을 더 좋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려야 하겠어요. 따지고 보면 산술(山術)은 자연을 의지해서 지혜롭게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면, 의술은 아무리 발휘한다고 해도 원래의 상태로 돌리는 것이 목적이에요. 가령 태어날 적에 타고난 수명을 보약(補藥)을 먹고 장생불사(長生不死)를 한다거나 혹은 이미 건강한데 더욱 왕성한 힘을 얻겠다고 의술을 의지하는 것은 탐욕이라고 보면 될 거에요.”
그러자 춘매가 말했다.
“맞아요. 안마하는 것도 몸에 쌓인 독소(毒素)를 풀어주는 것이 목적인데, 안마를 받으면 정력(精力)이 더 좋아지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아요. 호호호~!”
“어쩌면 약간의 효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없는 것이잖아? 그래도 사람들은 더 힘찬 삶을 살고자 하여 욕심을 부리곤 하지.”
“언니의 말씀에 완전히 공감해요. 그러니까 비정상(非正常)인 것을 정상화(正常化)시키는 것이 의술이라는 것으로 한계(限界)를 정해야 한다는 말씀이잖아요? 그것은 하나의 학문을 대하는 것에서도 똑같은 이치라고 봐요. 그 학문의 영역(領域)이 어디인지를 먼저 가름하고서 그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기대하는 것은 무한대(無限大)이고, 역량(力量)은 유한(有限)하니 그로 인해서 공부하다가 좌절(挫折)하거나 분노(忿怒)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겠죠?”
“오호~! 동생이 공부의 이치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하고 있구나. 그럼 의술도 마찬가지로 동생이랑 이야기를 나누면 되겠다. 싸부나 사 선생은 중간에 도움 말씀이나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해주세요.”
그러자 춘매가 더욱 신명이 났다. 자신을 이야기 상대로 삼고 말하겠다니까 그렇지 않아도 존경스러운 마음이 자꾸만 생기는 자원에게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해진 까닭이었다.
“언니, 어서 말씀해주세요. 의술로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인지 더 알고 싶어요.”
“그래, 알았어. 그런데 동생은 의학(醫學)과 의술(醫術)의 차이는 알고 있겠지? 말하자면, 학술(學術)의 의미를 생각해 봤느냔 말이야.”
“알긴 하지만,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아는 대로 말한다면 의학(醫學)은 원리를 배우는 것이니까 음(陰)에 해당하는 것이고, 의술(醫術)은 배운 것을 시행(施行)하는 것이니까 양(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배우는 것이 이기법(理氣法)으로 본다면 이(理)에 해당하고, 환자를 만나서 시술(施術)하는 것은 기(氣)에 해당한다고 하겠네요.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게 이해하면 되지 잘했어. 지금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오학(五學)이 아니라 오술(五術)이니까 환자를 돌보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겠지?”
“아하~! 그런 것도 미리 정리한 다음에 설명하는 것이었어요? 정말 학문(學問)을 한다는 것은 항상 첫걸음부터 정확하게 정하고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호호호~!”
“학문이라고 했어? 학문이 뭐지?”
“학(學)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배울 학이죠. 문(問)은 물을 문이니까 모르는 것은 묻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모르면 물을 수도 없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알아야 질문도 한다는 말은 정말 딱 맞는 말이에요? 호호호~!”
“아, 모르는 것을 묻는 것도 문(問)이지만, 아는 것을 묻는 것도 문(問)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구나. 이제 문(問)의 의미를 한 가지 더 추가하렴.”
“예? 그건 무슨 뜻이죠? 처음 들어요. 아는데 왜 묻죠?”
“알아도 묻고, 몰라도 묻는다고 생각하면 맞을 거야. 호호호~!”
“와~! 언니의 말씀은 정말 깊이가 느껴져요. 알아도 묻는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아마도 제가 아직은 알고서 물어야 할 수준이 아닌가 봐요. 무슨 뜻인지 설명이라도 해 주세요. 그래야 이해를 하죠. 호호~!”
춘매가 ‘아는 것도 묻는다’는 의미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원이 설명했다.
“동생, 생각해봐. 안마하면서 발바닥의 반응점(反應點)을 만지면서 뭐라고 해?”
“예? 반응점이 하도 많아서 어디를 말하는지 몰라도 의미는 알겠어요. 가령 소화기(消火器)에 관련된 부분이 뭉쳐있다면 소화가 잘되지 않으시느냐고 묻게 되죠.”
“그러니까 동생의 말은 이미 소화가 잘 안 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묻는 것이었네?”
“어? 그렇네요? 왜 그렇게 말했지? 그냥 ‘소화가 잘 안 되시네요.’라고 해도 되는데 저도 모르게 물었다는 것을 지금 언니가 지적해 주니까 비로소 알겠어요. 그래서 알고서도 묻는다는 말씀을 하신 거군요?”
“맞아. 이것이 진정한 학문(學問)의 뜻이야. 이제 알겠지?”
“와~! 그렇게 사용하면서도 의미를 몰랐어요. 스승님께서 손님이 와서 앉으면 점괘를 뽑아놓고서는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였어요? 그냥 몰라서 묻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잖아요. 정말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만 보인다는 것이 딱 맞네요. 호호호~!”
“그것은 배운 사람의 두 가지 유형(類型)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하나는 단정(斷定)형이고, 또 하나는 미정(未定)형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어느 것이 더 생각이 깊어 보여?”
“생각해 보니까 아는 것을 왜 묻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단정하는 사람은 다른 변수는 전혀 없을 것으로 확신하는 것이고, 미정하고 묻는 사람은 그래도 만에 하나라도 다른 경우도 염두에 둔 것이잖아요? ‘살얼음 밟듯 한다’는 말의 뜻이 그 의미였나요?”
“옳지~!”
자원이 동의하자 춘매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말이 실감(實感)나네요. 학문의 뜻에는 그런 의미가 있었네요. 그렇지만 알고서 묻는 것은 확인하는 것이니까 생각한 답이 나오게 되어야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첫 번째의 학문(學問)은 배우고서 미진한 것을 묻는 것이니까 답을 모르는 질문(質問)이네요. 두 번째의 학문은 배우고서 확신한 것을 질문(質問)하는 것이니까 답을 알고서 묻는 것이네요?”
“그래, 잘 이해했어.”
“그러니까 이것은 스승님께서 ‘금이 뭐지?’라고 묻는 것과도 같은 말이잖아요?”
“맞아. 그 말이야.”
“아항~! 이제 잘 알았어요. 알고서도 묻고, 모르고서도 묻는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에요. 그 차이는 답을 알고 있느냐, 혹은 답을 모르고 있느냐의 차이네요. 이제야 학문의 의미를 잘 이해한 것 같아요. 그 외에 또 다른 학문의 뜻도 있을까요?”
“아냐~! 충분해. 그만큼 이해했으면 이제 의술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예 언니, 기대돼요. 몸에 대해서는 항상 관심이 많거든요. 호호호~!”
“물론 내가 의원(醫員)이 아니니까 깊은 이야기는 해 줄 수가 없지만, 그냥 상식(常識)의 수준(水準)에서 이해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크게 아쉽지는 않을 거야.”
“물론이죠.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해요.”
“의술은 심신이 불편한 사람이 의원(醫院)에 찾아오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겠지?”
“맞아요. 산술(山術)은 터를 알아보려는 사람이 찾아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명술(命術)은 자신의 미래가 궁금한 사람이 찾아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네요. 이것도 음양이에요. 호호호~!”
“그래? 그럼 누가 음이고 누가 양일까?”
“찾아오는 사람이 음이고, 의원(醫員)이 양이 되는 것은 명암법(明暗法)으로 보면 부합(符合)이 되네요.”
“그 반대로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오호, 이것이야말로 알고서 묻는 것이네요? 재미있다. 호호호~!”
“이제 그것도 알게 되니까 구분이 되지?”
“맞아요. 찾아오는 사람이 양이 된다는 것은 의원이 음이 된다는 말이니까 이것은 동정법(動靜法)으로 보면 맞지 않을까요?”
“어? 동생도 알면서도 묻는 방법을 쓰네? 호호호~!”
“배운 것은 자꾸만 활용해 봐야 하니까요. 그렇게 환자(患者)가 찾아왔다고 하면 의원은 어떻게 의술을 베풀죠?”
“그렇지, 어딘가 불편한 사람을 환자(患者)라고 하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해결해 봐야 할 것이 또 하나 생겼지?”
“아, 환(患)의 글자를 뜯어보라는 말씀이죠? 충(忠)이 더 심해지니까 환(患)이 되네요. 충은 중심(中心)인데, 환은 중중심(中中心)이잖아요?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충심(忠心)이 더욱 깊어지면 환자(患者)가 된다는 말인가요?”
“정말 신기하지? 그 좋은 충성심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지나치면 병이 된다고 하는 의미로 이해를 해도 될까요?”
“그래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나왔겠지?”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의미가 환(患)자를 보니까 바로 이해가 되네요. 건강과 질병의 차이는 결국 균형(均衡)을 이뤘느냐 치우쳤느냐의 차이네요? 이것은 용신법(用神法)이잖아요? 어머, 신기해라. 호호호~!”
“그래서 또 나온 말이 만법귀일(萬法歸一)이야.”
“만법귀일은 무슨 뜻이에요? 모든 이치는 하나로 돌아간다는 뜻인가요? 정말이지 하나만 제대로 잘 알면 모든 것으로 통하는 이치를 알게 된다는 의미가 거기에 있었네요. 명학을 공부했더니 의학에 대한 이치도 이해하게 된단 말이잖아요? 정말 이것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얻어진 것이네요.”
“그건 또 망외소득(望外所得)이라고 하면 돼. 호호호~!”
“아, 맞다~! 망외소득 이런 말도 자꾸 써 버릇을 해야 입에 붙는데 쓸 일이 없으니까 정작 필요할 적에 꺼낼 수가 없네요. 앞으로는 자주 사용해야 하겠어요. 사람이 달라 보이잖아요. 호호호~!”
“이런 것을 잘 알고 사용하면, 경제언어(經濟言語)라고 하는 거야.”
“엉? 그건 처음 듣는 말인데요? 무슨 뜻이에요?”
“같은 뜻을 전달하는데 열 마디의 말로 전하는 것과 한마디의 말로 전하는 것의 차이가 뭘까?”
“그야 같은 뜻을 전하는데 말을 많이 하면 시간과 힘을 소모(消耗)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 뜻이에요? 뭐랬죠. 경....”
“경제언어, 말도 경제적으로 해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거야. 인생의 100년을 산다고 해도 시간은 정해졌잖아? 그런데 같은 말을 열 배나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하게 된다면 평생을 통해서 낭비하는 것이 한두 해에 머물겠어? 그래서 고인들도 말을 간단히 하기 위해서 사자성어(四字成語)를 만들었고, 고사성어(故事成語)까지도 만들어서 단 네 글자 안에 긴 이야기를 담아두기도 했던 거야. 그러니까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런 것도 포함하면 더욱 효과적인 것이 되는 것이겠지? 가령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네 글자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전할 수가 있는지 생각을 해 봐.”
“와우~! 정말 그렇네요. 새옹지마의 뜻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말을 해 줘도 모르니까 다시 길게 풀어서 설명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모르면 배우는 사람도 시간을 낭비(浪費)하고, 아는 사람은 시간을 허비(虛費)하게 되니 남에게 폐(廢)를 끼친다는 것이, 어찌 물질적인 것에 머물겠어요? 와우~! 언니의 가르침은 스승님의 가르침과는 또 달라요. 답답한 저를 데리고 가르치느라고 얼마나 많은 낭비가 되셨는지 이해가 되지만 어떡하죠? 제가 모르니 말귀도 못 알아듣고 말이에요?”
“그래서 도반(道伴)이잖아.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인연이 되기로 했으니까 말이야. 만약에 공부하는 인연이 아니라면 이런 말을 왜 하겠어? 그냥 마주 보면서 웃고 말면 그만이지. 호호호~!”
“아하~! 도반의 뜻이 새삼스럽게 큰 모습으로 다가와요. 언니와 도반이 되어서 정말 행복해요. 부디 언니도 저만큼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당연하지. 가르치는 자는 보람을 먹고 살잖아. 이것이 보상이야. 그러니 즐겁지. 만약에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가르칠 곳이 없다면 배운 것과 배우지 않은 것과 차이가 무엇이겠어? 이렇게 줘서 즐겁고, 받아서 행복한 것이야말로 학문의 즐거움이지. 근데 어쩌다가 이야기가 이쪽으로 흘렀지?”
“환자(患者)를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되었어요. 호호호~!”
“그렇구나. 환자가 찾아오면 의원은 먼저 환자를 바라보겠지? 여기에서부터 진료(診療)가 시작되는 거야.”
“그건 알아요. 시진(視診)이잖아요? 얼굴의 빛부터 보면서 눈은 바로 뜨는지, 숨결은 균일한지 소리는 알아듣는지, 그리고 말은 제대로 하는지 등을 살피는 것이니까요.”
“맞아. 동생은 사진(四診)에 대해서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청진(聽診)과 문진(問診)과 촉진(觸診)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환부를 알아냈다고 하면 어떻게 치료해야 몸에 생긴 이상(異常)을 평상(平常)으로 되돌려 놓을 수가 있는지를 판단해야겠지?”
“맞아요. 병증(病症)을 살펴야죠. 증세(症勢)로 봐서 허증(虛症)인지 실증(實證)인지를 가리는 것부터 치료(治療)는 시작되는 것이겠네요?”
“옳지, 그렇다면 허실(虛實)도 안다는 이야기네? 어디 설명해 봐.”
아까부터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안산의 표정을 본 자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에서 설명을 좀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춘매에게 설명을 해보라고 말했다. 춘매는 그것도 모르고 자원이 묻자 신이 나서 설명을 했다.
“허증(虛症)은 정기허(正氣虛)잖아요. 아직은 병(病)이 되기 전의 증상(症狀)을 말해요. 가령 잠이 잘 오지 않는다거나,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는 등의 증상을 말하죠. 이러한 상황에서 의원을 찾아온다면 치유(治癒)는 더욱 간단하고 비용도 적게 들고 해결이 되죠.”
“그 단계를 넘기면 어떻게 되나?”
“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방치(放置)하게 되면 실증(實證)으로 옮겨가게 되고, 그때는 아프기 시작해요. 위가 아프고, 잠을 이루지 못해서 고통스럽게 되죠. 이것은 사기실(邪氣實)이라고 해요. 그렇지만 아직도 늦지는 않았어요. 긴급(緊急)하게 약을 써서 치유할 수가 있어요.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는 있으나 위험하지는 않은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와우~! 동생의 수준도 웬만한 의원의 뺨을 칠 정도는 되는걸. 대단해. 역시 관심이 있는 분야라서 연구도 많이 했구나. 호호호~!”
“어머, 그래요? 사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정식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그냥 주워들은 풍월이에요. 그나마 대략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어서 이렇게라도 말씀을 드릴 수가 있으니 그나마도 다행이네요. 호호호~!”
“꿩 잡는 것이 매라잖아. 알고 쓰면 그것이 자기 것이야. 정식으로 배우고 말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렇긴 하죠? 호호호~!”
“그렇다면 증(症)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까?”
“아, 맞다. 글자가 있으면 좀 뜯어봐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증(症)은 병들어 기댈 역(疒)에 바를 정(正)이네요? 그렇다면 병이 들어서 약에 기대기는 하지만 아직은 정상(正常)을 넘어서지 않고 있다는 뜻일까요?”
“맞아. 그렇다면 이제 병(病)에 대해서도 살펴봐야지?”
“그렇다면 병(病)은 병들어 기대는데 천간(天干)의 병(丙)이 왜 거기에 들어있죠? 그 생각을 못 했어요.”
“그래? 뭐가 문제야. 지금 생각해 보면 되지. 병(丙)의 뜻이 뭐지?”
“병(丙)은 빛이고, 광선(光線)이고, 드러남이고, 잘 보이는 것이겠네요. 여기에서 지혜(智慧)를 의미한다고는 보기 어렵겠죠?”
“물론이야. 그러니까 겉으로 봐도 확연히 알 수가 있을 정도로 진행이 되면 비로소 질병(疾病)이라고 하는 거야. 질(疾)에는 화살[矢]이 있으니 의(醫)에서 본 화살이 바로 그것이겠지?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큰일이라는 뜻이 포함된 것으로 보면 되겠고, 병(病)은 방금 말을 한 대로 증세가 확연히 드러났으니까 빨리 치료하라는 것이 질병에 깃들어 있는 뜻이네.”
“맞아요. 언니랑 이야기하니까 평소에 늘 하던 이야기도 뭔가 모르게 좀 있어 보여요. 호호호~!”
“그것은 대화의 즐거움이지. 이렇게 즐기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 모르듯이 자신의 지식창고에 가득하게 들어차게 되는 거야.”
“정말 뿌듯해요. 제가 알고 있었던 것도 전혀 쓸모가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춘매가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표정을 본 우창도 마음이 뿌듯했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 주는 춘매와 안산에게 신명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 자원의 모습에서 예전의 노산에서 느꼈던 풍경이 겹쳐지기도 했다.
“오늘 춘매가 자기 세상을 만난 듯하군. 무척 좋아 보이니 말이지. 하하하~!”
우창이 거들어 주자 춘매도 신이 나서 말했다.
“정말이에요. 스승님. 문득 옛날 파리괘를 무시했더라면 오늘 제 모습은 또 어땠을까를 생각해 봤어요. 정말 복이 많은 것이 틀림없어요. 호호~!”
그러자 자원이 물었다.
“파리괘는 또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궁금해하는 자원에게 춘매가 저간(這間)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자원도 배꼽을 잡고 크게 웃었다.
“아하하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말 인연이야~! 호호호호~!”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산도 웃으면서 말했다.
“어쩐지 연승점술관의 이름이 특이하다는 생각은 했습니다만, 스승님과 사매님의 그런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참 재미있는 고사(故事)입니다. 아마도 앞으로 오행원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그 이야기는 오래도록 전해질 것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한바탕 웃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시 정색하고 의술의 이야기로 들어갔다. 자원이 춘매에게 또 물었다.
“질병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는 어떻게 하지?”
“병이 있다면, 그 병이 겉에 있는지 속까지 침범했는지를 봐야 해요. 겉에 있으면 잡기도 쉽겠으나 속에 있으면 여간 복잡하지 않으니까요.”
“병이 겉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
“피부(皮膚)에서 치유할 수가 있으면 겉에 있다고 하나 봐요. 그러다가 육부(六腑)로 침범하게 되면 중간에 있는 것이고, 오장(五臟)까지 들어갔으면 이것은 깊이 들어갔으니 어쩌면 영영 돌이킬 수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야말로 위중(危重)하다고 해야겠네요.”
“그렇구나. 그 상황에 따라서 치유법은 같지 않겠네?”
“당연하죠. 병세(病勢)에 따라서 치료를 해야 하니까요. 상황이 가벼우면 침을 놓아야 하고, 좀 더 무거우면 뜸을 떠야 하는데, 더 심하면 약을 사용해야 하니 약을 쓰게 되면 병을 치료하기도 하지만 몸도 상할 수가 있기에 그 단계의 이전에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어요. 그리고 약에도 상중하가 있어서 가벼운 약은 몸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치료하지만 무거운 약은 몸에도 부담을 주는 것이니까요. 가령 비상(砒霜)을 써야 할 단계라면 몸에도 큰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병을 치료하려고 약을 쓰는데 몸이 상하기도 한단 말이지?”
“그야 약(藥)은 독(毒)이기도 하니까요. 결국은 약으로 치료한다는 것은 이독제독(以毒制毒)이잖아요.”
“어머, 동생이 이독제독도 아네. 호호호~!”
“어? 그게 신기할 일인가요? 그냥 알고 있는 말인데?”
“그러니까 말이야. 계속해봐. 호호호~!”
자원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춘매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춘매도 자원이 자기의 이야기에 몰입해 주는 것이 즐거워서 아는 것, 모르는 것을 모두 동원해서 이야기했다.
“실로 약은 반드시 독이 있어요. 독이 없으면 약이 되지 않는 것과 같으니까요. 꼭 필요한 독은 약이 되지만, 자칫하면 그 도를 넘어서 독이 되기도 해요. 그래서 꼭 필요할 적에는 비상(砒霜)도 약이지만, 필요치 않으면 산삼(山蔘)과 녹용(鹿茸)도 독이라고 하잖아요.”
“맞아, 멋진 말이네. 그렇다면 치료법에는 뜸, 침, 약의 세 가지가 되는 거네?”
“그렇죠. 여기에 특수한 경우에는 절(切)이 들어가는데 이렇게까지는 되기 전에 치료해야 하겠죠?”
“절은 또 뭐야?”
“절은 절개(切開)죠. 약을 써도 되지 않으면 피부를 가르고 속의 환부(患部)를 잘라내야 하니까요. 이것은 약을 쓰는 것보다도 더 위험하기도 해요.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어서 의원들은 여기까지 도달한 환자는 포기하고 집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이나 많이 드시라고 한다죠?”
“그럴 수도 있겠다. 괜히 다 죽어가는 사람 잘못 건드렸다가 덤터기라도 쓰게 되면 그것도 억울한 일이니까 말이야.”
의술의 이야기는 두 여인의 웃음소리와 함께 끝날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