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88) 귀향선
작성일
2021-07-0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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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반달(88) [24일(추가8일)째 : 6월 1일(화)]
귀향선(歸鄕船) 퀸제누비아호.
마지막 날은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온다. 그리고 놀 것은 다 놀았으니 이제 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만 남았다.
이제 남은 것은 모조리 꺼내어서 싸가야 할 단계이다. 귤은 그제 제주도의 제자가 방문하면서 들고 온 선물이다. 돌아가는 배에서 먹기로 하고 모조리 껍질을 깠다.
아침 뉴스에서는 한라산 벽이 또 떨어져 나갔다는 소식을 전한다. 어떻게 해 볼 수는 없지만 그렇게 진행되는 것이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대자연 소식임을 뉘라서 모르겠는가. 안타까워할 일도 즐거워 할 일도 아닌 그냥 하나의 현상일 따름이다.
그래서 허물어지기 전에 봐두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다. 가을에 윗새오름에서 남벽까지 가게 되면 그 무너진 파편들을 만날 수가 있겠거니. 세상에 영원한 것은 공(空)뿐이라는 것을.
언제나 처럼... 그렇게 늘어벌였던 짐들을 모두 가방에 주워담았다. 떠날 준비가 다 되었구나.
아침 저녁으로 반겨주었던 꽃들도 잘 있거라....
돌아갈 집이 있으면 유람(遊覽)이요
돌아갈 집이 없으면 유랑(流浪)이라
집에 있으면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고
돌아갈 시간이 다가와도 머뭇머뭇...
지금 마음이 딱 그 맘이다. 유랑은 서글프지만 유람은 신명나는 일이니 이것은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고, 또 다음에 다시 떠날 기약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전후로 24일을 떠돌면서 즐겁게 유람했던 나날들이 하나씩 명멸한다. 한 주만 더 있었다면 제주한달이 이뤄지는 건데, 뭔가 빠졌기에 또 다음을 기약할 수가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11월에 또 놀러 오는 것으로 조용히 약속하면서....
건물공사는 거의 막바지인 모양이다. 가운데는 유리지붕으로 한다고 하더니만 그 뼈대를 오늘 올릴 모양이다.
마무리까지는 못보고 가는 구나. 다음에 또 오게 되지는 않을 게다. 왜냐하면 머물 곳은 많고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그다드하우스를 떠났다.
호연 : 이번에는 한라산을 사가려고요.
낭월 : 그러렴. 얼마나?
호연 : 17도 한 상자, 21도 한 상자를 갖고 갈까 합니다.
낭월 : 맛이 뭐가 달라? 난 그게 그거던데.
호연 : 전혀 다릅니다. 다들 한라산 드리면 좋아합니다.
낭월 : 아, 선물용으로 사용할 계획이구나. 그것도 좋지.
연지님은 아이들 선물로 귤과 과즐을 사신 모양이다. 낭월은 별로 살 것이 없다. 그냥 빈둥빈둥 사는 것을 구경이나 하면 되었을 뿐.
화인은 언제나 잘 한다. 짐을 실을 때는 특히 더 잘 한다. 깔끔하게 정리하고는 끝났음을 알릴 때쯤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도 안다.
여객선터미널로 가는 중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제 저녁이 마지막 만찬인가 했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오늘은 또 뭘 먹게 될까...
정식이구나.
이것은 아마도 고등어로 보인다. 기어이 고등어회를 먹어야 제주도를 떠날 수가 있겠더라나 뭐라나. 이제 긴꼬리도 먹었고, 고등어도 먹었으니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은 것인지 모르겠군. ㅋㅋ
터미널에 일행을 내려놓고 화인이 차를 배에 실러 갔다. 그 시간 조차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멀거니 앉아서 시계만 보는 것은 나중에 90살 쯤 되었을 적에 많이 할 수 있을테니까. ㅎㅎ
13시 40분에 출항하는 퀸제누비아호를 탈 예정이다.
빙빙 돌아보고 있는데 화인이 셔틀버스로 돌아온다.
잠깐이라도 헤어졌다 만나면 반가운 법이다. ㅎㅎ
요렇게 해 봐라.
조렇게 해 봐라.
1시가 되기 전에 배를 타러 나갔다.
이동은 버스로 한다.
여객선이 입항하고 있는 모양이다. 차량의 바퀴를 감은 체인을 풀어야 할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배가 완전히 정박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리온제주호는 녹동항에서 제주항으로 오가는 여객선이지 싶다.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일만 잘 하면 모두가 편안한 나날이 될 것은 당연하지.
일일이 표를 확인하고 사다리를 오른다.
일행들이 배에 오르는 것도 쩍어놓고.
아래에서 그것을 찍고 있는 낭월도 호연이 찍어놓는다.
어? 선장님 전용 사다리가 없네? 제주항의 대접이 목포항만 못한 모양인가? 아니면 이미 승선한 다음에 사다리를 치웠거나.
걱정이 많은 호연이 항상 일행을 챙긴다. 낭월이 올라오는 것이 확인되고서야 움직이는 것도 그런 셈이다.
위로 올라가서...
우리 방을 찾았다.
짐들을 내려놓고 휴식의 자세로 돌아간다.
바깥풍경도 한 번 내다 보고.
귤과 시원한 맥주로 여행담을 나누기도 한다.
배가 출항하는 것을 안에서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갑판에서 멀어져가는 제주도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한라산이 듬직하다.
완전히 멀어지는 것을 보고는 낮잠모드로 들어갔다. 한 숨 자 두면 오후가 즐겁다. ㅎㅎ
바깥 풍경을 보면서 담소하는 모습이 여유롭다. 날씨는 화창하고 바다는 잔잔하다. 배의 여행길에 이보다 더 좋은 날씨는 없을 게다.
3시에 일어났다. 저 멀리 추자도가 보일 무렵이다.
이제부터는 다도해의 풍경이랑 놀면 된다. 시야는 먼저번 보다 더 좋구나.
항로는 추자도의 오른쪽으로 운항하는 모양이다. 지도와는 다른 것에 무슨 까닭이 있지 싶기는 한데 물어볼 곳이 없네.
지도의 항로는 분명히 왼쪽으로 통과하게 되어 있는데 말이다. 그랬으면 오후의 햇살을 정면으로 받은 추자도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으로 인해서 투덜거려 보는 것이다. ㅋㅋ
놀고 있는 삼각대를 끓어다 일이나 시켜야 할 요량이다.
주변의 풍경을 보면서 뱃전을 거니노라면 세상 좋은 시간이다.
저 말리 포구가 나타난다. 어디인지 궁금하면 지도를 보면 되지.
아, 진도항이구나. 진도는 대충 스쳐갔던 기억만 난다. 한가롭게 돌아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로군. 언제 그런 시간도 만들어 봐야지.
진도항도 커지고 있구나. 공사가 크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쉬러 들어갔던 호연과 화인이 지루했던지 바람쐬러 나왔다.
웃어도 웃는게 아닌 호연의 표정은 무서워서이다. 주체를 할 수가 없는 고소공포증인 모양이다. ㅋㅋㅋ
"어! 조심해요~! 떨어지면 큰일 난단 말야~!"
연출같은 진심이다. ㅋㅋㅋ
에라 모르겠다. 점프나 하거라~! 그렇게 놀다가 들어갔다. 또 다시 혼자가 되어서 바닷바람을 즐기면서 여유롭다.
무인도로 보이는데 산책로는 만들어 둔 모양이다.
작도도....
저 멀리 진도대교도 보이고...
사장교였구나.
유달산. 해상케이블카. 목포대교가 연달이 나타난다.
목포대교를 통과해서 목포항으로 들어간다.
화인 : 차로 가게 내려오세요.
낭월 : 걸어서 나갈란다. 먼저들 차로 가거라.
화인 : 그럼 밖에서 봐요.
낭월이 갑판에서 머무른 것은 배를 대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어차피 차보다 내가 먼저 나가게 될테니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배가 정박하는 모습은 동영상으로 담아도 좋지 싶어서 폰을 꺼냈다.
다들 열심이구나. 함께 하니 모두가 편리한 나날이 되는 모습이다.
느긋하게 내려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차를 만났다.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구나. 그것도 호연에게는 다 잡혀진 일정이었던 모양이다.
설렁탕이 맛있는 집이란다.
어련하시려고. ㅎㅎ
뜨끈한 국물로 든든하게 저녁을 먹고는 집으로 향하는 네비를 켰다.
목포톨게이트를 지나는 것을 보고는 카메라를 껐다.
(여행이 끝났습니다. 동행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