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74) 차귀도포구

작성일
2021-06-23 21:37
조회
608

제주반달(74) [20일(추가4일)째 : 5월 28일(금)/ 2화]


차귀도포구(遮歸島浦口)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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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를 갔다 오면서 멀미로 고생한 화인이 점심을 먹고서 물었다.

화인 : 오후에 차귀도유람선은 예약했는데요.
낭월 : 그런데 파도가 걱정이지?
화인 : 배는 다음에 타면 안 될까요?
낭월 : 안 될 일이 뭐가 있겠어? 취소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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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12시에 발표된 해상통보를 미리 봤기 때문에 강요하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다. 제주도 전 해상에 강풍특보를 보면서 무리하게 또 배를 태우고 싶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화인이 이렇게 물었으니 당연히 다음 기회로 미뤄야지. 배는 타지 않더라도 지나는 길에 둘러나 보고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 우선 차귀도포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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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해안을 가보고 들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그 도중에 차귀도포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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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귀도 포구는 잔잔했다. 그렇지만 방파제의 너머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예사롭지가 않았으니 또한 포구의 안과 밖의 모습이 사람의 마음과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뇌가 들끓으면 포구 밖이고, 번뇌가 없으면 포구 안이라는 것을 말이지. 그래서 생각이 많은 사람은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는 법이고 바람에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는 고요할 수가 없는 이치와 조금도 다르지 않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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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오징어들이 바람결에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을 보니 작은 포구의 정겨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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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어도」를 촬영한 곳이었구나.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이어도는 들어봤지. 이어도일 것으로 짐작되는 곳의 암초에 해군기지를 세웠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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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이 암초를 이어도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모양이지만 여하튼 이렇게 헬기가 앉을 공간을 만들어 놨으니 그건 잘 한 것으로 봐도 되겠다. 국토는 지키는 자에게 공덕이 돌아가고 국해(國海)도 뭔가 표시를 해 놔야 오가는 배들이 신경이라도 써줄 테니까 말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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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마라도에서도 남쪽으로 149km의 밖에 있으니 그냥 둘 수가 없는 곳임이 확실하단 말이지. 중국에서도 주장할 수가 없고, 일본에서도 주장할 수가 없다는 것은 아마도 세 나라의 국토에서 거리로 따지는 법이 있어서인 모양이다. 자세한 것이야 알 바가 없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그런 때는 재빠르게 잘 했다는 생각으로만 부조할 따름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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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에서 해양경찰서의 모습을 보면 위치를 표시하는 기분으로 사진을 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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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차귀도출장소가 아니라 고산출장소였네? 갑자기 웬 고산이 등장을 하나 싶어서 지명을 찾아보게 된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이유를 알아봐야 속이 시원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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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는 행정구역이 한경면 고산리였구나. 그래서 고산출장소가 되었다는 것을 속 시원하게 알았다. 이게 뭐라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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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이 없어도 한국인이라면 알아볼 정도의 경고문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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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에 글자는 새겨놓고 페인트는 넣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면 사진꾼들은 섭하지. 하얗게 해 놔야 선명하게 보일텐데 아마도 오래 되면 복구하지 않았다고 또 욕을 먹는 것이 싫어서 그냥 뒀을 수도 있지 싶기는 하다만 에구~! 천상 게으른 낭월이 읽어봐야 할 모양이다.

차귀섬의 호종단(胡宗旦) 전설

호종단은 송나라 복주(福州) 사람으로 고려 예종 때에 보문각 대제와 인조 때에 기거사인이 되었다. 고려에 귀화한 호종단은 제주 여러 곳에 고종달의 전설을 남긴 신비의 인물로 전해진다. 특히 탐라에 인물 배출을 끼리어 곳곳에 압맥(押脈)으로 산혈(山血)을 눌러 놓고 차귀 땅을 거쳐 중국 강남으로 돌아가려는데 한라산 호국신이 매가 되어 배의 돛대 머리 위에 감돌았다. 갑자기 북풍이 몰아쳐 고종달의 배를 쳐부셨으며 그는 섬바위 사이에서 죽었다. 돌아가지 못하게 차단하였다고 하여 차귀(遮歸)라고 불렀다. 조정에서는 그 영이(靈異)를 포상하여 호국신에게 식읍(食邑)을 하사하고 광양왕(廣讓王)으로 삼아 해마다 향폐(香幣)를 보내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조선조에 와서도 제주목으로 하여금 치제(致祭)하게 하였다.

고종달이 뭔가 해서 찾아보니 고종달이 호종단이란다. 그러니까 한자의 호종단을 적당히 바꿔서 제주도형으로 고종달이 된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제주도 곳곳을 다니면서 좋은 혈맥을 끊었다는 전설이 또 전하고 있구나. 중국에서는 호종단이라는 인물이 있는지가 궁금해서 야후대만에 이름을 넣고 검색해 봤다. 그랬더니 중국에서는 없고 고려사가 나타난다. 해당 부분을 보니까 다음과 같군.

高麗史74卷-志28-選擧2-科目2-崇奬之典-008

睿宗二年四月引見新及第皇甫許等. 四年二月引見新及第盧顯庸等賜衣酒. 八年三月引見新及第鄭之元等命左正言胡宗旦押賜酒食于閤門仍令釋褐. 十一年二月引見新及第金精等賜酒食于閤門仍令釋褐. 十一月新及第林許允等許令釋褐賜酒食及衣各一襲.

고려사에 나오는 내용으로 봐서는 제주도를 망쳐놓고 중국으로 도망가려다가 차귀도에서 죽었다는 말은 없는 것으로 봐서 그냥 그 마을에 전해지는 인물인 것으로 보면 되지 싶다. 네이버의 자료도 참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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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복주인()으로 태학()에 입학하여 상사생()이 되고, 뒤에 저장성[]에 있다가 상선()을 타고 고려에 들어와 귀화하였다.

예종의 후대를 받아 1111년(예종 6) 좌우위녹사 권지직한림원()·우습유 지제고()에 발탁되고, 1113년 좌정언을 거쳐, 1117년 기거랑()으로 『서경』의 무일편()을 강독하였다.


1120년 보문각대제()를 거쳐 1126년(인종 4) 기거사인()으로 궁궐에 난입한 척준경()의 군사를 타일러 무기를 버리게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종단 [胡宗旦]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오호~! 호종단(胡宗旦)이 떡하니 나오는 구나. 고려사의 자료를 찾아주니 고마운 네이버~! 귀화했던 사람인데 궁궐에서 큰 공을 세웠구먼시나 왜 이런 전설의 주인공이 되어서 몹쓸 놈으로 된 것인지는 알 바가 없다. 여하튼 없는 인물은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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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 앞에 보이는 섬들이 차귀도란 말이로구나. 호종단이 중국으로 달아나는 것을 차단해서 막을 차(遮) 돌아갈 귀(歸)를 써서 섬의 이름이 되었다는 말이로군. 그것도 그럴싸 한데 조정에서 그 공로를 인정해서 광양왕으로 삼았다는 제주도 수호신의 존재가 얼마나 고마웠을지도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서도 중국과의 이야기가 얽혀있었다는 말이로군. 몽고와 항쟁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고려사에는 그렇게 적어놨는데 후에 제주도에서 못된 짓을 하고 죽은 것은 기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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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자세히 보니 차귀도 앞에 배가 한 척 떠 있잖아? 저 배가 아마도 우리가 예약했던 2시 반에 출항한다는 그 배였던 모양인가 싶다. 그러니까 서둘렀으면 지금 저 배를 타고 차귀도에 들어갔을텐데 파도를 봐서는 안 타기를 잘 했다는 생각도 든다. 낭월은 괜찮은데 두 여인은 마라도를 다녀 오면서 나름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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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양도처럼 섬이 하나가 아니네. 지도를 다시 봐야 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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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지도에서는 앞의 큰 섬이 차귀도인 것으로 보인다. 주변의 섬들은 이름이 없구나. 그럴리가 없을텐데 싶어서 네이버지도를 확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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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어버지도가 조금 더 친절하군. 앞의 섬은 와도라고 써놨으니 말이지. 그래서 두 지도는 서로 비교하면서 확인하면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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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섬은 와도란 말이로군. 한자를 찾아주려고 해도 한자는 나오지 않은 섬이로구나. 그것은 낭월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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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여전히 거칠다. 제대로 바다의 맛이 난다는 뜻이다. 멋진 파도를 찍으려고 셔터도 수백 번은 눌렀다. 잔잔한 바다는 한 장으로 만족하지만 파도가 몰아치게 되는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을 기대하게 되는 것도 바닷가에서 놀이하는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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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손님들을 싣고 움직이는 것이 위태롭게 보인다. 낭월이 저 배를 탔어야 하긴 했는데 말이지. 아쉽구로.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아쉬워하면 뭐하노 말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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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잔잔해지면 또 놀러 오기로 하고 눈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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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본 고산리 유적이 있는 곳이겠구나. 문득 생각이 난다. 고산리가 나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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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바로 이 위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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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이야 모두 발굴해서 없을 테고. 암석층이 묘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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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해안절벽이 떠오른다. 비슷한 풍경이 비슷한 기억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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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문외한의 상식이 부족한 눈으로는 딱 여기까지이다. 고생대 백악기 그런 용어들은 머릿속에서만 맴돌 따름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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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패랭이꽃이 벼랑을 장식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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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반갑다. 흔히 볼 수가 있는 꽃은 아닌데 여기에서 보게 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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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 매표소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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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지도에서는 자구내포구라고 되어 있었는데 어쩌다 차귀도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구나. 그런 줄이나 알고 지나가면 될 일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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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자전거 행렬이 바삐 움직인다.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