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64) 방선문

작성일
2021-06-17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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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반달(64) [17일째 : 5월 25일(화)/ 5화]


신선이 산다는 방선문(訪仙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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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암을 둘러보고 다시 차로 돌아온 화인이 묻는다.

화인 : 사부님, 아직 숙소로 들어가기에는 이른데요?
낭월 : 숙소는 몇 시에 들어가게 되었지?
화인 : 오후 3시부터 가능하다고 했거든요. 아직도 멀었잖아요?
낭월 : 무슨 걱정이고, 방선문도 가봐야 하는데 말이다.
화인 : 방선문은 또 어딘가요?
낭월 : 용연계곡의 바위에 새겨진 시에서 자꾸 가보라잖여.
화인 : 잘 되었네요. 위치를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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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암에서 20여 분만 가면 되는구나. 그야말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라고 해도 되지 싶다. 상상하기로는 방선문에는 많은 시인들의 글이 중국의 태산에 올라가다가 만난 것처럼 줄을 지어서 있으려니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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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의 중턱에서 만났던 장면이다. 2004년의 여름이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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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도 잘 되어 있구나. 계속해서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남행을 하면 되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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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에 도착한 방선문의 입구이다. 열안지오름까지는 갈 계획이 없다. 방선문에서 고인들의 서향(書香)이나 느껴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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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선문이 자꾸 방문선으로 읽히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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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머무는 곳이라서 신선을 방문하는데 있는 문이라는 뜻이겠거니 싶다. 그러니까 이름은 하나의 석문(石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방선문계곡이라고 하면 갖춰진 이름이겠거니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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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아도 영구춘화(瀛丘春花)로 인해서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바위에 사람 이름이 쓰인 것은 볼품이 없지만 싯귀가 써있는 것은 운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일 수는 있지 싶다. 통일이 되고 나면 북한의 명승지 도처에 새겨진 문구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는 쓸데없는 오지랍.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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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는 유명한 글자들이 마중을 나와서 나그네를 반기는구나. 분위기가 벌써부터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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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처럼 서 있는 방선문(訪仙門)이구나. 친절한 설명까지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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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새긴 사람은 알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백거이의 장한가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말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모르겠군.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가? 장한가에 선(仙)자가 나오긴 하지.

樂風飄處處聞
忽聞海上有
其中綽約多
風吹袂飄飄舉

아무리 봐도 방선(訪仙)도 없고, 선문(仙門)도 없는 걸? 이렇게 없는 것을 괜히 백거이를 거론해서 방선문이 더 위대해 지는 것도 아닌데 이런 글을 왜 써놨는지 모르겠군. 장한가를 읽어 보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낭월이 모르는 또 다른 장한가(長恨歌)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다만.

제주사람들은 '들렁귀'라고 불렀다는데 그것은 오히려 정감이 간다. 그냥 그렇게 불렀다고만 적어놓았으면 될 일을 갖고서 일없는 백거이는 왜 불러와서는 낭월만 바빴잖아. 근거를 댈 적에는 한번 정도는 살펴보고 해야지 이렇게 돌에 새겨놓으면 오랜 세월을 그렇게 그 자리에 있을테니 고치기도 어렵지 않으냔 말이지. 용연계곡에 만들어 놓은 김영수의 시를 써놓은 것에서도 걱정이 되는 면이 적지 않더니만. 방선문이 문제가 아니라 백거이를 끌어다 판 것이 문제란 말이지 뭘. 하물며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글자에다.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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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써놨구나. 근데 뭐라고 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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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영구(登瀛丘)였구나. 그러니까 제주사람들이 말하던 들렁귀를 한자로 음을 바꿔서 등영구가 되었단 말이겠거니. 그래 방선문보다 훨씬 낫다. 어? 그런데 원문에는 구(丘)가 어떻게 풀이판에서는 구(邱)가 되었지? 이렇게 글자를 마구 바꿔도 되나? 邱는 땅이름이고, 丘는 언덕이라는 말인데?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음..... 이 글을 지으신... 누고. 홍중징 선생이 마음아파 하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제목부터 이렇게 나오면 내용인들 믿고 읽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여하튼 그래도 읽어보기는 해야지. ㅎㅎ

석두하연처(石竇呀然處)
암화무수개(巖花無數開) 
화간관현발(花間管絃發)
난학약비래(鸞鶴若飛來) 

돌구멍이 입을 벌린듯
바위꽃은 무수히 피고
꽃들 사이로 악기소리
난학이 날아오는 듯 

대략 이렇게 풀이하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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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선대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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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구경이나 할 일이지 왜 이런 것에는 자꾸 눈길을 줘서 스스로 일을 만드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렇다고 또 지나치기에는 자꾸 맘에 걸려서 말이다. 음식을 먹다가 몸에 걸리면 식체(食滯)이듯이, 글을 보다가 맘에 걸리면 문체(文滯)랄 밖에. 그래서 또 다른 해석은 없는지를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판독이 틀렸다는 자료를 찾게 되었으니 앞으로 제주도에서 표시된 마애명(磨崖銘)은 읽지 말아야 할랑강. 한 번은 실수지만 반복되면....? 애고 말자~!

 

환선대암각[인터넷자료 : 방선문의 원본석각] 


 물론 이해한다. 이렇게 생긴 글자를 탁본으로 뜬다고 해도 마모되어서 제대로 판독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을 말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 오류를 찾아내지 않느냔 말이다. 돌값과 조각값을 다시 지불해서라도 고쳐야 하긴 하는데 그것도 참 쉬운 일이 아니고, 이렇게 누군가 지나다가 한마디 하면 그냥 흘려버리면 만고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 그러고 보니까 글을 지은 사람이 김영수(金永綬) 선생이었구나. 방선문에 오언율시가 있다고 하더니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나 보다. 그런데 김영수의 수(綬)가 좀 이상하잖여? 원래 김영수의 수(綏)는 편안할 수인데, 여기에 써놓은 것은 인끈수잖여? 내용은 그만두고 이름조차도 이렇게 나오면 아예 대놓고 한자는 읽지 말라는 것인가? 뭘 어쩌라는 건지 알 수가 없구나. 그래서 읽을 흥미가 사라져버린다. 제목만 보고 넘어가자.

환선대(喚仙臺)라니 '신선을 부르는 대'라고. 그러니까 여기에서 신선을 부르면 그 말을 듣고 신선이 나탄난다는 뜻인 모양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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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선문계곡은 왼쪽으로, 참꽃산책로는 앞으로 가라는 친절한 안내판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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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곳에는 길이 막혔다. 친절하게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제주시장이 이렇게 위험하니 출입하지 말라는 안내문을 세워놨구나. 그 정도로 암벽들이 위험했단 말인가? 이런 문구가 길을 막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여하튼 위험하단다. 그러니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나는 가보겠다고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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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들이 다들 한 마디씩 한다. 가지 말라는 곳은 안 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둥. 그러다가 다치면 어디에 하소연을 하겠느냐는 둥. 그러나 그 말은 귓등으로 흘렸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다쳐도 내가 다치는 거니까, 그리고 믿었다. 바위가 그렇게 쉽게 굴러다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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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관문은 돌파를 했는데 그리고 나무계단을 내려가면서까지도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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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막아서는 경고판. 차마 이것까지 뚫고 지나갈 뱃짱은 없는 낭월이다. 얼마나 위험하면 이렇게까지 했겠느냐는 생각으로 타협을 했다. 그래서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까 여기에서 보이는 풍경이나마 담고 가자는 생각을 했다. 경고판을 봐서는 누구라도 첫번째 장애물은 넘어서 들어갔던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재차 붙여놓은 것이겠거니 싶기도 하다. 정말로 만에 하나라도 재수가 없어서 바위 하나가 굴러와서 그 아래에 깔리기라도 하면 그것을 위해서 기를 쓰고 넘어가는 것이 옳겠느냐는 이성적인 판단이, 기어이 내려가서 보고 싶은 감정적인 생각을 찍어 눌렀다. 그리고 뒤에서 연지님과 화인이 계속해서 외치는 말도 큰 영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어서 나오세요~! 큰일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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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와 판상절리가 잘 발달되어 있다잖여. 아쉽지만 걸음은 여기까지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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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은 물이 말라서 바위만 보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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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도 나무들이 가리고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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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명이 230 곳이나 된다니 걸음을 돌리기는 아쉽지만.... 또 백거이를 팔고 있군. 낭월도 참 문자충(文字蟲)병이 정도가 심한 모양이다. 그냥 지나치면 될 것을 말이지. 제주시장이 이 글을 볼 것도 아니고, 혹 본다고 해도 고칠 마음도 없을텐데 말이지. 신경쓰지 말자 말자 말자 말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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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게 석문인가? 선문(仙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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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돌구멍을 돌문이라고 하면 그것도 얄궂네. 내려가서 보면 더 커보일런지는 모르겠지만 규모로 봐서는 석문이라기에는 너무 빈약해 보이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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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의미로 방선문은 재미가 없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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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봐서는 벽에 글자가 있는 것도 같다만.... 여하튼 암석이 화강암이 아니어서 마모가 심한 것도 아쉬운 점이기는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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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기 서운해서 참꽃산책로라도 가보자는 심산으로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 본다. 참꽃은 경상도에서 진달래를 부르는 이름인데 제주에서도 참꽃이라고 하는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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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사이를 헤치고 계곡을 내려다 보니 고인 물에 낙엽이 수북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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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계곡과 마찬가지로 비가 오지 않으니 마른 계곡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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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보니 다리가 하나 걸려 있구나. 일단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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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길로 쭉 가면 열안지오름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름까지 갈 것은 아니고 다리를 건너가면서 계곡도 살펴보고 다리 끝에는 무엇이 보이는지도 살펴보자는 생각으로 다리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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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리를 건너고 보니까 골프장이 나타나는구나. 사람들이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도 보인다. 우물대다가 날아오는 공이라도 맞으면 억울하지 싶어서 얼른 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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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 들어와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이렇게 생겼구나.... 4는 네번째 홀이라는 뜻일게고, 거리는 506m인데 기본은 다섯 번을 쳐서 구멍에 공을 넣으면 된다는 뜻인 모양이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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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방이 있는 곳은 구멍이겠거니.... 얼른 둘러보고는 다시 다리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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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나서 돌아다 보니 골프를 치러 오는 사람들의 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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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차량의 길로 내려가면 우리 일행을 만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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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위에 펼쳐진 골프장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동하기에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니까 방선문에는 신선은 없고 골프를 치는 골선들만 있더라는. ㅋㅋㅋ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