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 제35장. 우성암(牛聖庵)/ 7.영웅지명(英雄之命)

작성일
2023-01-10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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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제35장. 우성암(牛聖庵) 


7. 영웅지명(英雄之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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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염재의 관심이 더욱 컸던 것은 이미 웬만한 사주라면 해석이 가능한 수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용히 성길사한의 사주를 살펴보고는 우창에게 물었다.

422-3

“이 사주가 그의 사주라는 말입니까? 사주가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영웅의 팔자가 모두 기구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삶은 비록 말의 등에서 세월을 보냈을지라도 즐거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우창을 바라봤다. 이러한 사주를 우창은 어떻게 해석하는 것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염재를 상대로 이야기를 꺼냈다.

“염재가 본 그대로네. 과연 이 사주가 성길사한의 사주인지는 나도 의심이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니까 일단 그런 것으로 알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네.”

“사주가 너무나 평화롭습니다. 천하를 누비고 다니면서 손에서 피비린내가 떠날 날이 없었던 사람의 사주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염재는 사주를 볼 줄 안다고 하는 것이지. 하하하~!”

“그런데 연주(年柱)와 월주(月柱)의 갈등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 궁금합니다.”

“오호~! 어린 시절의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네. 아마도 부모의 인연이 약해서 자수성가(自手成家)하는 형태로 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겠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연간(年干)은 월간(月干)이 누르고, 연지(年支)는 월지(月支)가 누르는 형상입니다. 그렇다면 경쟁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갖는다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왜 아니겠나. 그런데 이 사주의 용신은 어디에 있을까?”

우창이 용신을 묻자, 그것은 다른 제자들을 위해서 정리하려는 의도인 것을 염재가 파악하고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일간(日干)의 무토(戊土)는 진토(辰土)를 둘이나 두고 오화(午火)까지 생토(生土)를 하는 형국이니 매우 강하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잘 판단했네. 그렇다면 용신은 어디에 있나?”

“강자의설(强者宜洩)이라고 했으니 식상(食傷)을 보면 가장 좋다고 하겠습니다. 월간(月干)의 경금(庚金)이 용신이 되겠는데 세력을 봐서는 매우 강력해서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 형상입니다. 그래서 용신격(用神格)은 식신격(食神格)으로 보면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까?”

“정관(正官)은 어떻게 생각하나?”

“아, 연간의 을목(乙木)을 말씀하십니까? 물론 을해(乙亥)인 것으로 봐서 무척이나 강한 것은 볼 만 하겠습니다. 다만 경금(庚金)에게 묶여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봐서 이 사람은 정관을 용신으로 쓸 생각은 전혀 없을뿐더러 오히려 정관을 자기 발아래에 두고 마음대로 휘두르고자 할 가능성도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니 그야말로 제왕의 사주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멋지다고 생각했던가 봅니다. 과연 명진사해(名振四海)할 사주라고 봅니다. 이러한 사주라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이름을 사해에 떨칠 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물론 이 사주가 누구의 팔자라는 것을 알고 나서 추명(推命)하기 때문에 그러한 선입견이 개입했을 수도 있겠지만 누가 봐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네.”

“맞습니다. 시지(時支)에서부터 화생토(火生土)ㆍ토생금(土生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참으로 멋지다고 하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식신생재(食神生財)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실이 부족하겠다는 생각은 하게 됩니다.”

이렇게 대화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광이 말했다.

“과연, 영웅의 사주라고 할 만하다는 말이지? 내가 봐도 그렇게 풀이하는 염재의 견해에 동의하겠네. 그렇다면 성길사한의 사주가 맞는 것으로 봐도 되지 않겠나?”

“그래도 됩니다. 아니라고 할만한 이유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이 정도의 사주를 갖고 태어났기에 초원의 제왕이 되어서 중원까지도 두려움에 벌벌 떨게 했던 것이 가능하다고 하겠으니 말이지요. 하하하~!”

“그렇다면, 유방의 사주도 없어서 그렇지 만약에 있다면 이와 유사한 사주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모르겠습니다. 사주를 보기 전에는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으로 단정하지 않는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경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누구라고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우선 사주를 보고 판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옳지, 역시 아우님이네. 또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스승이 제자를 잘 가르치는 방법이니까 말이네. 그것은 어떤 사주인지 보여주게. 이름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해 보는 것도 좋겠네. 하하하~!”

지광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사주를 보자고 했다. 그래서 우창이 생각했던 사주를 적었다.

423 제갈량사주

조용한 중에 우창의 붓이 종이 위를 타고 흐르는 소리만이 적막을 깰 따름이었다. 지광도 기본적인 사주는 볼 줄을 알기 때문에 지그시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다만 자세히 풀이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침묵으로 감상을 하는 듯이 보였다. 잠시 후에 사주를 적어놓은 우창이 염재를 바라봤다. 일단 보이는 그대로 풀이를 해보라는 뜻이었다. 염재가 사주를 보고 느낀 것에 대해서 말했다.

“이 사주는 누구인지 참 궁금합니다.”

“그건 차차로 말해 줄 것이니까 우선 사주의 구성을 살펴보게나. 하하하~!”

“필시 유명인의 사주인 것은 분명하지 싶습니다. 왜냐면 스승님께서 기억하고 계실 정도라면 보통의 인물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보이는 대로 풀이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내심으로는 긴장이 되었다. 눈치를 보려고 해도 우창이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순전히 간지의 이치에 의해서 풀이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집중력은 더 증가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등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살펴보고는 입을 열었다.

“우선, 경금(庚金)이 사월(巳月)에 태어났습니다. 월령(月令)은 얻지 못했으나 진술토(辰戌土)가 있고 연주(年柱)에서 신유(辛酉)가 응원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매우 강한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이 정도라면 용신은 월간(月干)의 상관(傷官)이 되어도 충분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관격(傷官格)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결실을 의미하는 재성(財星)이 진중을목(辰中乙木)인데 그나마도 진술충(辰戌沖)으로 손상이 되었네요. 이것은 무척 안타까운 형상입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이렇게 보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었다. 우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그러자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 염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일지(日支)에 편인(偏印)이 있는데 용신이 아니기에 부정적인 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매사에 의심이 많을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여기에 진술충도 있는 것으로 봐서 의심의 수준이 일반 사람을 능가할 것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그것도 또한 가능한 해석이겠군.”

우창의 말에 염재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스승님께 여쭤봐야 할 것은 상관의 태도입니다. 계사(癸巳)의 월주를 살펴보면, 상관(傷官)이 편관(偏官)을 극제(剋制)하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것은 상관이 용신이기 때문에 능히 제어할 수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상관은 언변(言辯)에 해당하므로 이 사람은 설득(說得)하는데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을 것으로 해석하고 싶은데 이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능하네~!”

“젊어서는 입만 있으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겠습니다. 다만 노년(老年)의 상황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자신의 계획과 다르게 병술(丙戌)의 작용을 보면 기대를 할 것이 하나도 없을뿐더러 주변의 환경에 의해서 점점 위축(萎縮)되는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時)를 잘 타지 못한 사주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결국은 천하를 지배할 큰 뜻은 있었으나 유종의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한을 품은 채로 세상을 떠났을 암시로 살펴봤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너무 주제넘은 것은 아닐는지 조심스럽습니다.”

“잘하고 있으니 계속 설명해 보게. 하하하~!”

우창이 자신감으로 말해도 된다는 듯이 활짝 웃어주자 비로소 염재는 자신이 붙었는지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앞에서 말씀하신 칭기즈칸의 사주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칭기즈칸은 월간(月干)의 식신(食神)이 연간(年干)의 정관(正官)과 합이 되어 있었는데, 이 사주는 월간(月干)의 상관(傷官)이 월지(月支)의 편관(偏官)을 극하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렇게 되면 칭기즈칸은 관을 다스리고, 이 사주의 주인공은 관과 싸우는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풀이는 하지만 실제로 떠오르는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염재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그야말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최대한으로 파헤쳐서 말했다. 사실의 부합(符合)은 떠나서 그 정도로 풀이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한 사람의 이야기로 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우창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앞의 사주와 이 사주를 놓고서 비교를 해본다면 어떻겠는가?”

우창의 말에 염재가 다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앞의 칭기즈칸의 사주는 청(淸)하고도 강력(强力)해서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그러나 이 사주는 병(丙)ㆍ사(巳)ㆍ진술(辰戌)의 영향으로 인해서 아쉽게도 청귀(淸貴)가 부족합니다. 항상 어려움에 봉착(逢着)해서 난관을 타개(打開)하면서 살아야 할 조짐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한다면 차이는 크다고 하겠습니다. 당연히 앞의 사주를 1급(級)이라고 한다면 이 사주는 4급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많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우창이 이 사주의 주인공을 말했다.

“실로 이 사주의 주인공은 제갈량(諸葛亮)이라네. 과연 염재가 한 말과 함께 그의 삶을 훑어본다면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네. 하하하~!”

우창의 입에서 제갈량이라는 말이 나오자 놀란 것은 지광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지광이 우창에게 말했다.

“내가 단언(斷言)하건대, 이 사주는 제갈량의 사주가 틀림없네. 하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손을 들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기에 정 사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궁금해요. 역사에 무지한 제자를 어여쁘게 여기셔서 조금만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어요.”

진명의 물음에 대해서 우창이 설명했다.

“동한(東漢)의 말기에 세상이 혼란한 상황에서 위오촉(魏吳蜀)이 삼국정립(三國鼎立)하였던 시대를 역사적(歷史的)으로 기록이 된 것은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三國志)』이고 이것을 나관중(羅貫中)이 이야기로 풀어서 재미를 더한 것을 『삼국연의(三國演義)』라고 하지. 이 둘의 사이에는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어서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는 삼국지를 기준으로 생각하는데 일반 민중은 오히려 재미를 더한 삼국연의를 더 재미있어한다네. 여기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촉한(蜀漢)의 유비(劉備)와 관우(關羽)ㆍ장비(張飛)의 세사람으로 대표하는 도원결의(桃園結義)에 책사(策士)로 등장하는 제갈량이라네. 신기묘산(神機妙算)의 탁월한 능력으로 기문(奇門)이며 팔괘(八卦)를 운용하면서 기발한 방법으로 항상 난관을 타개하는 묘수를 보여주고 있어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크게 본다면 불운한 천재라고 해야 할 것이네.”

우창의 설명에 궁금증만 더한 진명이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언제 시간이 되면 제자도 한 번 공부 삼아서라도 읽어봐야 하겠어요. 예전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는데, 이렇게 공부하면서 새삼스럽게 역사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라고 해야 하겠어요. 호호~!”

우창이 진명에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지광을 향해서 말했다.

“형님의 생각에 우제도 동의합니다. 사주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기는 합니다만, 그중에서도 시주(時柱)의 의미는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인생의 기록에는 만년(晩年)의 상황이 매우 중요하게 남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성길사한과 제갈량의 삶을 비교해 본다면 과연 사주의 의미만큼이나 격차가 크다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설명해 주자 지광이 다시 말했다.

“내가 놀라는 것은 역사가(歷史家)의 손끝에서 부활(復活)한 이야기에 팔자(八字)가 부합된다는 것이었네. 만약에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이 자칫 잘못된 내용을 적어놓는다고 하면 후에 사주를 공부하는 사람이 그것을 역(逆)으로 추산(推算)해서 이상한 점을 찾아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참으로 기록이란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통해서도 그러한 것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언행(言行)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나 공자의 삶을 기록할 적에도 글을 쓰는 사람의 생각이 개입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가령 부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쓴다면 아무래도 좋은 점은 부각(浮刻)시키고 싶을 것이고, 부끄럽게 생각되는 부분은 삭제(削除)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테니 말입니다.”

“왜 아니겠나. 오행의 이치와 역사와 인생의 모습이 서로 어딘가에서 같이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묘하군.”

“그렇습니다. 특히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에 대해서는 그러한 현상이 더욱 강합니다. 가령 패망한 군주(君主)에 대한 기록은 후대의 성공한 군주에 의해서 기록이 될 수밖에 없기에 올바르게 기록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왕조(夏王朝)의 마지막 왕인 걸왕(桀王)은 폭군이었고, 주(周)가 세워지면서 멸망한 은왕조(殷王朝)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도 혼군(昏君)으로 기록해 놓았는데 실제로도 그랬을 수도 있으나 과연 그 모든 것이 사실이냐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지 않겠나 싶습니다.”

“오호~! 아우님의 역사관(歷史觀)은 객관적(客觀的)인 면이 있네. 기록된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말이지?”

“맞습니다. 특히 제왕(帝王)의 사주에 대한 풀이가 그렇습니다. 가령 궁궐에서 명리가(命理家)를 불러서 앞에 앉혀놓은 후에 왕의 사주나 태자의 사주를 풀이하라고 명했을 적에 과연 어전(御前)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주를 풀이한다는 것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명서(命書)에 기록된 것도 다 믿을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니까 제왕의 앞에서 기록하는 붓끝에서도 생사(生死)의 기로(岐路)가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 모여서 무슨 이야기라도 기탄(忌憚)없이 나눌 수가 있는 환경이 고맙기도 한 이유입니다. 하하하~!”

모두는 우창의 말에 깊은 공감을 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말을 할 수가 있고, 또 무슨 말이라도 심지어 스승에게 질문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조차도 이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이렇게도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느꼈기 때문이었다.

“자, 고인들의 사주 놀이는 이 정도로 하고 또 오행을 공부해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목극화(木剋火)의 이치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음..... 거산에게 물어볼까? 거산은 목극화의 이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가 있겠나?”

우창이 거산에게 묻자 거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스승님의 질문은 목(木)이 화(火)를 공격(攻擊)한다는 뜻입니까? 원래 목생화(木生火)로 목(木)이 화(火)를 생조(生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제자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어떤 상황이기에 목극화(木剋火)가 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아, 그런가? 그렇다면 목생화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도 되네.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는지 말해 보게.”

“목생화는 설명할 수가 있지 싶습니다. 목(木)을 나무라고 본다면 나무가 불타는 것으로 비유를 들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목(木)이 화(火)를 생(生)한다’고 이해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거산이 그 정도는 안다는 듯이 설명했다. 다른 대중도 거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또 물어야 할 문제가 생겼잖은가? 나무가 불을 생(生) 한다면 그다음에 나무는 어떻게 되지?”

우창이 다시 반문할 것이라는 생각지 못한 거산이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현지가 거산을 도와서 대신 답했다.

“실은 현지도 오늘 새벽에 스승님과의 문답을 통해서 목생화(木生火)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으니 거산을 위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현지의 말을 듣고서 거산을 비롯한 제자들이 모두 현지를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를 짐작해 보면, 그러한 현상 즉, 나무가 불을 붙이는 것은 어미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고, 이것을 자식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어미를 먹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오행의 생극(生剋)으로 대입한다면 화극목(火剋木)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자식들이 어미를 먹는 이치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만 자녀를 낳은 어머니의 관점으로 본다면 어머니도 살아야 어린 자식에게 젖을 먹여야 할 테니 목생화의 예로 적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현지가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거산이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목생화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행의 공부를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참으로 깊은 통찰력(統察力)이 없이는 깊은 이치를 모두 깨닫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스승님께서 오행을 연구하시면서 역사도 공부하시고 사물의 이치를 관찰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남들에게 설명해 주기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끌어내는 도구로도 꼭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우창도 거산의 말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거산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자가 생각하기에 처음에 물으신 목극화(木剋火)의 이치는 ‘바람이 불을 끄는 현상’으로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제야 절대적으로 목생화의 이치 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목극화의 이치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행의 맛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그런가? 참으로 다행일세. 하하하~!”

“유연(柔軟)하고 치우치지 않은 균형(均衡)의 사유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목극화도 있다면 목생화도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다. 불이 잘 타도록 바람이 살살 불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람이 불어주기도 하나 그렇다고 해서 바람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목(木)은 풍목(風木)이라는 이치와도 벗어나지 않으니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거산의 말에 우창이 동의하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잘 이해했네. 실로 오행의 생극이야말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현상(現象)을 모두 설명할 수가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보는 것이기도 하지. 그러다 보니 어제 생각했던 오행의 이치가 오늘은 달라 보이거나, 심지어는 잘못 생각했다는 것까지도 알게 된다네. 이제 거산도 그러한 방법을 깨달았으니 앞으로 공부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할 것은 틀림없다고 해도 되겠군. 축하하네. 하하하~!”

“참으로 스승님의 가르침이 오묘하다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오행의 생극에 대해서 연구하는 방향을 이렇게 잡아주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나 싶습니다. 스승의 은혜가 이와 같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말한 거산이 합장으로 마음을 표했다. 다른 대중들도 같이 합장하면서 마음이 같음을 나타내자 우창이 마주 합장하면서 말했다.

“자, 이해하셨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면 또한 안타까울 따름이니까요. 그렇다면 오늘의 공부는 이렇게 마치도록 하겠거니와, 내일까지는 목(木)과 오행(五行)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궁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합니다. 또 다른 질문이 있으면 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대중을 둘러봤다. 그러자 화련이 손을 들었다. 우창이 눈짓으로 무엇이 궁금한지 말씀하라고 했다.

“목(木)이 나무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오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바람도 목이었네요. 그렇다면 목이 의미하는 바를 다른 무엇으로도 대입이 가능한 것인지 알고 싶어요. 어느 정도의 한계를 정할 수가 있다면 추론하는데도 유용할 것 같아서 말이에요.”

“참 좋은 질문이십니다. 보살님의 궁금한 점은 다른 제자들도 궁금할 내용이니 몇 가지로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무ㆍ화초(花草)ㆍ바람ㆍ활동력(活動力)ㆍ춘(春)ㆍ동방(東方)ㆍ성장(成長)ㆍ소년(少年)ㆍ유아(乳兒)ㆍ청춘(靑春)ㆍ학생(學生)ㆍ청색(靑色)ㆍ시작(始作)과 같은 것이 있겠습니다. 혹 이 중에서 목(木)의 유상(類象)으로 대입하는데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말씀하셔도 됩니다.”

우창이 목을 추론(推論)할 적에 필요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 화련이 물었다.

“학생은 공부하는 사람인데 이러한 것도 목에 해당한다는 것은 참 새롭네요. 어떻게 이런 연결이 가능한지요?”

“학생은 의식(意識)이 굳어있을까요? 아니면 유연(柔軟)할까요?”

“그야 유연해서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요? 아, 그래서 목의 성장(成長)이나 바람과 연결이 되는 것이었군요. 이 외에도 많은 목의 유형이 있겠네요. 차근차근 생각하면서 또 모르는 것이 나오면 여쭙도록 해야 하겠어요.”

다른 제자들도 잘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