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 제35장. 우성암(牛聖庵)/ 4.지수화풍(地水火風)

작성일
2022-12-25 17:46
조회
1021

[420] 제35장. 우성암(牛聖庵) 


4. 지수화풍(地水火風)


========================

우창이 새벽에 눈을 떴다. 주변은 칠흑같은 밤중이었는데 대략 봐서는 축시(丑時)쯤 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아직 천지는 암흑인데 잠이 깨면 그냥 누워있기도 시간이 아까워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곤하면 자고 깨면 일어나는 것이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고 몸에 순응하는 것이려니 하는 까닭에 잠이 깨면 일어나게 되는 것이 일상이다. 몸이 고단하면 늦게 깨기 마련이고 숙면(熟眠)이 되면 일찍 깨기도 하는데 어젯밤에는 참으로 깊은 잠을 잤던 모양이었다. 장명등(長明燈)을 밝혀놓은 마당으로 내려서자 동굴 입구에서도 밝은 빛이 새 나왔다. 문득 누군가 동굴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궁금한 마음이 생겨서 동굴로 향했다.

‘음, 누군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얼 하는 걸까?’

혹시라도 수행하고 있다면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조용히 들어갔다. 그러자 촛불이 켜진 빛에 지광과 거산의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밤에 잠도 자지 않고 기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우창도 적당한 자리를 두고 방석을 깔고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아서 조식(調息)에 들어갔다. 분위기에 따라서 공부하는 형태도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앉아서 명상하는 것을 보니 저절로 그렇게 따라서 행동하게 되기도 한다. 우창의 명상법은 간단했다. 시선(視線)은 코끝에 두고 의식(意識)은 단전(丹田)에 내려놓고서 들숨과 날숨을 지켜보는 기본적인 좌선이었다.

그렇게 앉아서 대략 반 시진이 지나자 갑자기 일어나고 싶어졌다. 어제도 기공을 수련했던 그 사마귀 자세가 취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일어나서 기본의 자세를 취하자 흡사 앉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편안한 자세가 되었다. 그대로 다시 한 시진이 흘렀다. 동굴의 입구에서 여명(黎明)이 스며들어왔다. 우창은 조용히 자세를 풀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석불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새벽의 안개가 짙게 깔린 풍경은 그야말로 선경(仙境)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공간과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도 명상(瞑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에 앉아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화련 보살이 아침 예불을 마치고 법당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인사했다.

“보살님 편히 쉬셨습니까? 풍경이 참 좋습니다.”

화련 보살은 늘 과묵했다. 조용히 미소를 짓고 뒤에서 경청하는 모습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는다고 해도 생각은 깊다는 것을 눈빛으로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었다. 우창의 인사에 합장으로 답을 한 보살이 돌바닥이 무너지기라도 할까 봐 염려하는 듯이 조용히 평상으로 다가와서 우창의 옆에 앉았다. 가볍게 움직이는 모습은 한 마리의 나비와 같았다. 잠시 그대로 앉아있는데 보살이 말을 꺼냈다.

“스승님의 오행에 대한 가르침은 감동적이에요. 날이면 날마다 기도하고 경만 읽을 줄 알았었는데 자연의 이치를 다섯 가지 이치에 놓고 생각한다는 것도 수행에 도움이 되겠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어요. 단순한 오행에서 깊은 이치를 볼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경만 읽을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문도 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지요.”

우창이 듣기에도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음성이었다. 그렇게 묵직한 느낌으로 말하는 것을 듣자 기쁨이 더욱 컸다. 마음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담아서 말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성으로 말하는 것은 진심으로 말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몇 마디의 말에서도 감동이 느껴질 수도 있었다.

“다행입니다. 변변치 않은 설명이 사유에 도움을 드렸다니 보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히 잘 살고 계시는 공간에 들어와서 소란을 피워서 혹 피해라도 드리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었거든요. 하하하~!”

“아니에요. 옛날에 지광거사가 오셨을 적에는 즐겁게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몸이 안 좋을 때는 기치료도 해 주시고 심심할 적에는 말벗도 되어 주셨으니까요. 보통 사람과는 사뭇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피해가 될 턱이 없지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리고 넓게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보살이 합장으로 답하고는 우창에게 물었다.

“자연의 이치에서 왜 기본적인 본질이 다섯 가지인지도 궁금했는데 이것도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다가 보면 알게 되겠지요?”

“실은 우창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고래로 전해지는 성현의 가르침이 다섯 가지인지라 그런가 보다 할 따름인데 만약에 누군가 여섯 가지라고 한다면 또 그런가 보다 했을 수도 있지 싶기는 합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화련 보살이 다시 물었다.

“오행이라고 하니 문득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에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예, 곰곰 생각해 봤으나 특별히 모순된 부분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혹 보살님께서 생각하신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우창이 다시 묻자 보살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뭘 알겠어요. 그냥 짧은 소견으로 반드시 다섯이어야 할 이유가 절대적인지 궁금했을 따름이에요. 다른 생각이 있어서 여쭙는 것은 아닙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언제라도 무슨 생각이 드시면 말씀해 주세요. 우창도 공부하는 학인(學人)인지라 자연을 보는 생각이 선입견에 가려서 미치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처음에 공부하는 사람이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 불교에서 말하는 사대(四大)는 아시는지요?”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예, 맞아요. 지수화풍은 넷으로 되어 있어서 오행과 서로 통일되는 방법이 없을까 싶은 생각은 해 봤어요.”

비로소 우창은 화련 보살이 무엇을 궁금하게 생각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불교의 가르침인 지수화풍과 오행의 본질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와 서로 닮은 듯, 또 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에 질문했다는 것이 이해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창이 늘 그것이 궁금했는데 오늘은 좀 자세히 알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오행원에서 오광을 상대로 물질적(物質的)인 오행의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생각났다. 우창도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화련 보살과 대화를 위해서 자신의 식견은 접어두고 물었다.

“잘 되었습니다. 늘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왜 지수화풍이라고 했는지 자세히 알고 싶었는데 혹 설명해 주실 수가 있으실지요?”

우창이 이렇게 묻자, 보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화련이 뭘 알겠어요. 경전을 보면 가끔 나오는 이야기에서 대략 그런 뜻이 아니겠나 싶었지요. 그래도 부족한 소견이나마 듣고자 하신다면 말씀은 드리겠지만 이것이 꼭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씀은 드릴게요. 그래야 마음 놓고 말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새겨서 듣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주장하세요. 그러다 보니까 몸에 대해서는 참으로 하찮은 존재라는 이야기가 많고, 몸에 집착하면 수행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로 이어지면서 때로는 가혹하다 싶은 정도로 몸에 대해서 고통을 주기도 해요. 심지어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서 고행(苦行)이라는 수행법이 있기도 하니까요.”

“아, 우창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고행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왜 몸을 괴롭히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거기에도 깊은 뜻이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생각을 말하자 보살이 문득 생각난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마녀(魔女)가 수행자(修行者)를 유혹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자태로 나타났더랍니다. 그러나 그 수행승은 마음이 동하지 않고 묵묵히 참선하고 있자, 마녀가 욕정이 동하지 않느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수행승이 말하기를.”

‘겉모습은 그럴싸하다만 피부를 한 꺼풀만 벗기면 그 안에는 피와 고름과 불순물로 가득한 것을 알고 있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겉모습에 취해서 미색에 빠지고 삶을 헛되이 탕진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본질을 알기에 전혀 마음이 동할 것도 없느니라.’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하네요. 스승님은 수행승의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되시는지요?”

갑자기 우창의 의견을 묻자, 잠시 당황했다. 준비하지 않은 질문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잠시 생각하고서 답했다.

“우창이 생각하기에는 신체와 정신의 관계를 끊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육신은 혐오(嫌惡)의 대상이고, 그래서 철저하게 배척(排斥)해야 하는 대상인 것으로 본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수행승의 혜안으로 봐서 마녀였기에 그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랬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실로 마녀라는 말도 선입견이 아닐까요?”

“그런가요? 무슨 뜻으로 선입견이라고 하시는지요?”

“마녀(魔女)라는 말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마녀가 있고 마왕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내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마녀라고 하는 것인지? 실제로 마녀가 나타나서 수행자의 정기(精氣)를 흡수하려는 목적으로 나타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자신의 망념으로 지어낸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우창의 말에 보살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과연, 스승님은 객관적인 견해를 갖고 계셨네요. 맞아요. 수행승에게 여인은 마녀에 불과하니까요. 오행의 관점이라서 그렇게 보신 건가요?”

“오행의 관점일 수도 있습니다만, 음양의 사상에서도 치우친 것은 흉상(凶想)으로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명학에서 추구하는 관점도 또한 오행(五行)의 균형(均衡)인 까닭이기도 합니다. 여인은 단지 여인일 뿐입니다. 마녀도 아니고 더구나 성녀(聖女)도 아닙니다. 비록 정신적인 세계에서는 큰 차이가 있을지라도 오행관(五行觀)은 있는 그대로를 올바르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우창의 말을 듣고 있던 보살의 눈이 커졌다. 그 마음에 변화가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창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선도(仙道)에서도 어떤 경우에는 젊은 여인을 취해서 음기(陰氣)를 흡입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도 오행의 이치로 보나 음양의 이치로 보나 모두가 죄를 짓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 말도 있나요? 처음 들어요.”

“극단적으로 여인을 도구화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껍질을 벗기면 고름 주머니가 된다는 이야기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마하니 그러한 이야기가 부처님의 말씀일까요?”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교단(敎團)에 여인이 출현하는 것을 매우 꺼렸던 흔적은 남아 있어요. 어쩌면 수행의 터전이 문란해질까 봐서 염려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 봤어요.”

“그런 말은 부처님이 했을 리가 없습니다. 만약에 실제로 석가모니께서 그러한 말을 하셨다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기탄없이 생각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 가장 좋아요.”

우창이 말끝을 흐리자 화련 보살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우창도 말을 이었다.

“보살님께 여쭙겠습니다. 부처님이 위대한 이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는 가르침으로 인해서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나, 동물이나 벌레까지도 모두 부처가 될 성품이 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생긴 모양은 저마다 다르더라도 생명의 가치는 모두 같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어요.”

“아, 그런 뜻이었습니까?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마도 당시의 인도라는 나라는 신분에 따른 차별(差別)이 극심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네 가지의 계급에 의해서 철저하게 구분이 되어 있고, 천민은 평민의 손을 잡아도 안 되고, 같은 자리에 앉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것은 자연의 이치에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큰 충돌을 일으켰을 수도 있겠습니다. 계급이 높은 사람에게는 노예들을 풀어주라는 말로 들렸을 테니 말입니다.”

“맞아요. 귀족의 가문에서 출가한 어느 제자는 새롭게 천민 출신의 이발사가 출가하자 싫어했다는 말도 있거든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말씀을 하셨을 거예요.”

우창이 그 말을 듣고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하~! 그랬군요. 참으로 대단한 용기와 큰 깨침이 아니라면 말하기 어려운 내용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인이라고 하셨다면 맞겠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이야말로 부처님의 위대한 점이라고 해도 되겠으니까요.”

우창의 말에 화련 보살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참, 스승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명학의 관점으로는 이러한 것에 대해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우창은 잠시 멈칫했다. 이러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지 싶어서였다. 그렇지만 이런 기회에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평명학(子平命學)의 기준은 오로지 인간만을 논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생각에 비하면 협소하기 짝이 없습니다. 다만 기준은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인 형편을 논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한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제왕(帝王)이라고 해서 다르게 해석하거나 혹은 특별히 우대하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것은 평등법(平等法)이라고 하겠어요. 사주만 있고 사주 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멋지네요.”

“그렇군요. 보살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겠습니다. 하하~!”

“명학(命學)이라는 이름의 앞에 자평(子平)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가요?”

“아, 명학의 종류가 많아서 구분할 필요가 있어서 붙이는 것입니다. 자(子)는 물을 나타내고 평(平)은 평평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미 이름에서도 평등사상(平等思想)이 알알이 배어있네요. 물처럼 평평한 이치로 인간의 업장(業障)을 저울질한다는 말이잖아요? 업장은 물에 비춰봐야 안다는 의미로도 들리네요. 생각해 보니까 참으로 오묘한 이름이에요.”

우창은 이렇게 말하는 화련 보살을 다시 쳐다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부처에게 향불을 피우고 기도하는 여인으로 생각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그 속에는 의연한 지혜로움이 그대로 배어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보살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러한 해석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멋진 해석이시네요. 하하하~!”

“그런가요? 실은 첫날에 오행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이미 그렇겠다는 짐작은 했어요. 나이도 많지 않으신 스승님께서 그렇게 치우치지 않은 관점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놀라웠는데 학문을 잘 선택하셨고 또 천성이 편협하지 않으셔서 바르게 수행을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이네요. 이렇게 인연이 되신 것에 대해서는 더 말을 할 필요도 없이 행운이라고 해야 하겠고요.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니까 생 바보는 면하고 살라고 도량(道場)의 신장(神將)님께서 눈이 밝으신 스승님을 불러오신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으니까요.”

조곤조곤 말하는 화련 보살의 음성이 마치 천상의 선녀가 노래를 읊조리는 것처럼 들렸다. 나이를 먹으면서 아름다워지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추해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공양하세요~!”

진명의 외침이 몽롱한 생각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아침이 준비되었던 모양이다. 그제야 일어나서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도 화련 보살의 이야기가 귓가를 맴돌아서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아침을 먹고 평상에서 차를 마시는 시간에 우창이 다시 물었다.

“보살님의 말씀이 여운을 남겨서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지를 않습니다. 지수화풍에 대한 설명을 더 들어보고 싶은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 찻잔을 들고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창과의 대화는 옆에서 듣는 것도 큰 수확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침 화련 보살이 반기면서 답했다.

“스승님의 사색에 약간의 기름이 된다면 더없이 기쁘고 고맙지요. 보잘 것도 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시니 말이에요. 얼마든지 말씀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말을 한 화련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듯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생각하고는 말했다.

“우선 지(地)는 몸에 있는 피부와 근육과 장기(臟器)와 뼈를 모두 포함합니다. 수(水)는 소변과 혈액과 눈물과 같은 것도 모두 포함하고요. 화(火)는 몸에 있는 따스한 온기를 말하고, 풍(風)은 맥박이나 심장이 뛰는 것과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말해요.”

“과연 그 말이 맞습니다. 명쾌하게 구분이 됩니다.”

“부처님의 말씀으로는 이러한 것이 거짓으로 잠시 모여서 몸이라고 하니 수행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여기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는 것을 염려한 것으로 이해해도 되지 싶어요. 어떤 사람들은 몸을 주인으로 알고 몸이 원하는 대로 안락(安樂)을 추구하다가 일생을 보내게 되니까 말이에요.”

“참으로 수행자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입니다. 몸에 집착하는 것도 병이니까요. 몸은 정신을 싣고 다니는 수레라고 할 수가 있는데 수레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밤낮으로 수레만 가꾸고 치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싶습니다.”

“맞아요. 이제 지수화풍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셨어요?”

“그렇습니다. 사대(四大)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대에 빠진 것이 하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 빠진 것이 있다니 그게 무엇인가요?”

“지수화풍만 있고 정신(精神)이 빠졌잖습니까? 아마도 정신은 수행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사대에는 포함이 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행에서 금(金)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보살이 다시 물었다.

“그런가요? 오행에서 목화토수(木火土水)와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대응(對應)한다는 말씀이시네요? 설명해 주세요. 궁금합니다.”

“목(木)은 풍(風)과 같습니다. 움직이는 것으로 대입합니다. 화(火)는 심장의 온기와 대응이 됩니다. 그것을 군화(君火)라고도 합니다. 또 토(土)는 근육과 골격을 모두 말하니 서로 같다고 하겠고, 혈액이며 침과 눈물 등은 수(水)에 대응이 되니 그대로 연결할 수가 있겠는데 금(金)은 대응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 있던 거산이 손을 들고는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자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인체(人體)의 골격(骨格)은 오행으로 볼 적에 금(金)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까? 자연에서는 암반이 금이고, 인체에서는 뼈와 치아와 손톱 발톱이 금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제자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까?”

거산이 이렇게 말하자 다른 대중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도 그것이 궁금했다는 뜻이었다. 대중을 둘러본 우창이 염재를 향해서 말했다.

“그야 보기 나름이지 않을까? 금으로 보면 금이 되는 것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백골(白骨)은 진토(塵土)가 된다고 하잖은가? 그렇다면 뼈와 살이 모두 토라고 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네.”

그러자 거산이 이해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맞습니다. 거산이 너무 좁은 의미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대입하니까 사대와 오행에서 빠진 하나가 무엇인지를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자가 듣기에 인도의 오랜 사상에는 오대(五大)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 그것이 무슨 뜻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우창도 그 말은 처음 듣는 것이라서 화련 보살을 바라보면서 혹 들어본 적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보살님께서는 들어보셨는지요?”

“예, 사대와 오대는 같이 사용하고 있는 말이기도 해요.”

“다만 사대는 불교에서 비중을 두고 말한다면 오대는 인도의 사상에서 논하는 것이라고는 하는데 학파에 따라서 인정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는 것까지만 알고 있어요. 아는 것이 부실하네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대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창이 다시 묻자. 보살이 말했다.

“저도 미처 그 생각은 못 했어요. 말씀을 듣고서야 생각이 나네요. 그것은 지수화풍(地水火風)에 공(空)을 더한 것입니다. 어쩌면 공은 마음심(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요?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드네요. 마음은 공과 같다고 하는 것도 떠오르고요.”

화련 보살의 말에 우창이 비로소 의문이 모두 풀리는 것같았다.

“정말입니다. 보살님의 견해는 참으로 심오하십니다.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으로 대입하니까 오행과 완전히 일치를 이룬다고 해도 될 정도로 유사합니다. 마음을 허공같이 집착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거기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오늘 큰 깨침을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하하~!”

우창의 말에 모두 화련 보살에게 합장했다. 보살도 마주 합장하면서 별것도 아닌 것으로 너무 호들갑을 떤다는 듯이 쑥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한 모습이 오히려 천진난만(天眞爛漫)해서 때 묻지 않은 산골의 소녀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공부할 시간이 되자 저마다 일어나서 각자 준비하고는 큰 방으로 모여서 자리를 잡았다. 우창도 앞의 단상(壇上)에 앉아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오늘도 오행 이야기를 할 참인데 이미 차담으로 나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준비를 마치고 우창의 말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서 설명했다.

“화련 보살께서 가르침을 주셔서 오행의 이치가 더욱 확고한 자연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아침입니다. 오늘은 금(金)과 공(空)의 연관성에 대해서 알았습니다. 경(庚)은 투명체(透明體)인데 공(空)도 투명입니다. 이렇게도 오묘한 이치가 고금(古今)을 관통(貫通)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지 모를 지경입니다.”

우창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대중도 모두 오행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푹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