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제35장. 우성암(牛聖庵)/ 3.공자(孔子)의 팔자

작성일
2022-12-2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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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제35장. 우성암(牛聖庵) 


3. 공자(孔子)의 팔자(八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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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여지없이 일정대로 기공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내용은 어제 하던 사마귀가 먹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자세로 버티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우창도 그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에 어제처럼 무턱대고 버티는 고목(枯木)의 마음은 사라졌다. 오히려 자연의 소용돌이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염원으로 손끝에 집중하고 다리의 떨림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한 시진이 지나자 쏟아지던 땀도 서서히 거둬지면서 오히려 통증이 완화되는 상쾌함이 다가왔다. 이것은 기대하지 못했던 상황이어서 오히려 고통 끝에 찾아오는 희열(喜悅)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통쾌(痛快)함이었다. 고통(苦痛) 속에서의 상쾌(爽快)함이라니. 이렇게 순식간의 변화에 대해서 오히려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우창의 표정을 본 지광이 말했다.

“과연 우성암의 기운은 다른 곳에서 한 달을 수련해서 얻게 되는 것을 단 하루 만에 내공(內功)을 쌓는 공덕이 있음을 알겠네. 하하하~!”

수련을 마치자 마음도 가벼워진 우창이 땀으로 범벅이 된 것을 시원한 암반수로 개운하게 씻었다. 그다음에 차를 마시며 경험한 내용을 그대로 기록하고 나자 저마다 씻고 난 대중들이 다시 평상에 모여서 담소하면서 고된 수련 후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재미가 특별했다. 그때 현지가 말했다.

“진 사부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는데, 공부 시간에는 오행을 공부하고 있어서 질문을 드리는 것도 애매하니까 지금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대체로 조용한 편인 현지가 이렇게 물었다. 물론 질문이야 우창도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좋아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무엇인지 물었다.

“무엇이든 물어보셔야지요. 말씀하십시오.”

현지는 우창보다 나이가 많아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현지가 궁금했던 것을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이뤄서 당대는 물론이고, 대대손손으로 영화(榮華)를 누리는 사람의 팔자는 어떤 모습일지가 궁금해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그러한 사람은 과연 팔자도 그렇게 좋을까요?”

현지가 이렇게 자신이 궁금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 염재도 손을 들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염재에게 물었다.

“염재도 궁금한 것이 있었나?”

“예, 염재도 같은 궁금증입니다. 가령 관성(關聖)으로 추앙(推仰)하는 관운장(關雲長)이 충심(忠心)으로 주군(主君)을 보필했던 것은 역사에 드러난 일인데 그의 팔자는 과연 어땠을지도 궁금했습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대중을 둘러보면서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름을 천추에 남긴 위인들의 삶과 그들의 사주팔자는 또 어떨지 궁금할 만도 하지. 그렇긴 하네만 아쉽게도 유명한 인물이라고 해도 사주가 정확하게 본인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으니 연구하기에는 좀 무리가 따를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말이네.”

“아, 그것도 그렇겠습니다.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옛사람의 생일이 명확하다는 보장도 없고, 그것을 기록하는 천세력(千歲曆)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사주와는 무관하게 스승님의 의견만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우창의 말을 듣고 싶다고 하자 비로소 말했다.

“유명인(有名人)의 삶과 팔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점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되네. 만약에 대성(大聖)인 공자(孔子)의 삶을 놓고 생각해 볼까? 그의 삶은 좋은 것인가? 아니면 나쁜 것인가? 염재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창의 질문에 염재가 곰곰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스승님, 제자의 생각으로는 공자는 만민이 성인으로 우러르는 것만 봐도 분명히 좋은 팔자를 타고났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또한 그래야만 명학(命學)의 존재가치가 있을 것으로도 여겨집니다. 과연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한 인물에 대해 평가할 때 좋고 나쁜 것만으로 단언한다는 것도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기는 하지. 사후(死後)에 사가(史家)들이 기록한 것이 과연 진실에 얼마나 가까울 것이며, 제자(弟子)들이 기록한 것도 마찬가지로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기록했다면 스승에게서 보게 된 허물조차도 또 얼마나 정확하게 기록을 남겼겠느냐는 생각을 해볼 수가 있겠지? 염재는 어떻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잠시 생각해 보니 참으로 생각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겠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공자를 옆에서 수행했던 제자들의 관점과 달리,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관점에서는 평생을 살면서 제대로 벼슬을 한 이력도 없고, 이리저리 떠돌았던 것을 기록할 것이니 실로 기록할 것도 없었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떠돌다가 고향에서 죽은 늙은이로 기록할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옳지~! 내 말이 바로 그것이라네. 그렇다면 제자들의 기록은 어떨까?”

“제자라면 스승을 우러러 존경하는 마음을 담았을 테니 또한 허물은 덜어내고 미화(美化)하였을 가능성도 있을 테니까 그 또한 진실에 가깝다고만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직접 확인하지 못한 고인의 삶을 팔자로 분석하는 것도 선입견이 작용할 여지가 있고, 더욱 큰 문제점이라고 하면 실제의 팔자가 아닌 것으로 논하게 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헛된 공론(空論)이 될 뿐이지 않겠나?”

“그렇겠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까 팔자로 명인(名人)을 논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헛된 분란만 일으킬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연구하고 신뢰한다고 주장하는 학문의 우월(優越)을 강조하기 위해서 견강부회(牽强附會)하기도 쉽겠습니다.”

염재가 우창의 말에 공감이 된다는 듯이 말하자 현지가 또 물었다.

“그렇다면, 스승님께서 공자의 사주를 설명하되 그 사주가 사실일 경우라면 어떻게 된다는 정도로만 설명하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공자의 삶과 무관하게 사주를 통해서 살펴볼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말이에요.”

현지의 말에 지광도 관심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은 나도 그러한 것이 궁금했었는데 잘 되었네. 어디 아우님의 풀이를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네. 하하하~!”

지광까지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현지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궁금했던 모양이니 그냥 넘어가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에 노산에서 공부하면서 고월(古越)에게 들었던 공자의 팔자가 떠올랐다. 그래서 종이에 적었다.

“내가 기록한 것에 의하면 공자는 양공(襄公) 21년, 「주정(周正) 10월 21일, 하정(夏正) 8월 21일 자시(子時)」는 기유(己酉)년, 계유(癸酉)월, 경자(庚子)일, 병자(丙子)시로 되어 있다네.”

이렇게 말하고서 사주를 적었다. 이미 기록되어 있어서 적는 것은 너무나 간단했다. 만약에 태어난 생일을 천세력으로 찾아서 적기로 든다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419 공자사주

우창이 적은 사주를 주의 깊게 바라보던 염재가 먼저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염재가 먼저 보이는 대로 풀이하겠습니다. 추금(秋金)으로 태어나 상관(傷官)이 과다(過多)합니다. 필요한 것은 연간(年干)의 기토(己土)가 되겠고, 기토가 필요로 하는 것은 시간(時干)의 병화(丙火)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관운(官運)은 없는 명식(命式)으로 보이는데 혹 그래서 왕사(王師)가 되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럴까? 강약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약한 것으로 대입해보면 되겠나? 아니면 저울질을 잘 해봐야 할까?”

우창의 말을 얼른 알아들은 염재가 다시 말했다.

“예? 스승님의 의견은 염재와 다르신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합니다.”

우창이 궁금해 하는 현지와 지광을 번갈아 보면서 염재에게 말했다.

“득령(得令)도 했고, 득세(得勢)도 했으니 강하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네. 비록 쌍자(雙子)의 설기가 심하다고는 하나, 쌍유(雙酉)의 힘도 그에 못지않은 데다가 유월(酉月)의 금왕절(金旺節)이지 않은가?”

“아,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월간(月干)에 계수(癸水)가 있으나 이것은 또 연간(年干)의 기토(己土)가 제어하니 균형을 이뤘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서 잠시 생각하던 염재가 다시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다시 살펴보니 그렇게도 판단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공자의 심성(心性)을 풀이해 주십시오. 참으로 궁금합니다.”

염재는 용신도 주용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공자의 마음이 어떻게 풀이되는지가 더 궁금하여 물었다.

“그런가? 하긴, 나도 공자의 마음이 궁금하다네. 그렇다면 어디 생각해 볼까? 이 팔자가 공자의 출생시가 맞는다고 전제한다면 공자의 일간(日干)이 경금(庚金)이니 어떻겠나?”

“당연히 경금(庚金)이니 독립적(獨立的)이고 주체성(主體性)이 강한 심성으로 볼 수가 있겠습니다. 과연 세상을 밝힐 등불의 지혜를 만들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등불은 사주에 있나?”

“예, 시간(時干)의 병화(丙火)입니다. 항상 남의 모범이 되려고 애쓴 흔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염재의 말에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던 우창이 다시 물었다.

“사주에 나타난 제자들은 많겠나?”

“제자의 십성(十星)은 무엇으로 대입해야 하는지요?”

“염재의 생각으로는 무엇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나?”

우창이 다시 염재에게 되물었던 것은 스스로 생각하면서 말해보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염재가 다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제자는 식신(食神)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건 왜 그렇지?”

“제자는 스승의 학풍(學風)을 그대로 물려받기 때문입니다. 물려받는 학문이 스승에게서 그대로 전달받는 것이라서 음양(陰陽)도 같다고 보면 일간(日干)의 식신으로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오, 그럴싸~하군. 그렇다면 이 사주에서는 식신이 보이나?”

“전혀 안 보입니다. 대신에 상관(傷官)이 셋이나 보입니다. 그렇다면 식신이 아니라 상관으로 봐야 할까요?”

“그럴 필요가 없지. 그냥 식상(食傷)으로 보면 될 것이네. 그러고 보니까 중년 이후에는 특히 상관(傷官)인 자수(子水)가 일시(日時)에 있는 것으로 봐서 많은 제자를 두게 될 인연이라고 하지 않겠나?”

“아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과연 이해됩니다. 그 모든 제자는 저마다 능력을 발휘해서 일문(一門)을 이끌만하다고 봐서 모두가 선생이니 그것도 자(子)와 무관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지(日支)의 자(子)는 안자(顔子)이고, 시지(時支)의 자(子)는 맹자(孟子)겠습니다. 그 외에도 주자(朱子)까지도 포함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염재의 말에 지광이 신기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놀랍군. 실제로 공자의 사주이든 아니든 그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염재의 풀이가 참으로 오묘하다는 말이네. 하하하하~!”

그러자 거산과 진명도 감탄하면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서 열심히 공부해서 이러한 추론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했다.

“과연 염재의 연구가 나날이 깊어가고 있군. 하하하~!”

“모두가 스승님의 자상하신 가르침 덕분입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주를 보면서 무척이나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바로 재성(財星)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겠습니까?”

“재성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되지 않겠나?”

우창이 다시 염재에게 묻자 염재도 이미 물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재빨리 답했다.

“재성의 유상(類象)은 결실(結實)입니다.”

“맞아, 그렇다면 공자의 삶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다고 생각되나?”

“제자가 알기에 공자는 56세부터 노(魯)나라를 떠나서 위(衛)ㆍ조(曹)ㆍ송(宋)ㆍ정(鄭)ㆍ진(陳)ㆍ초(楚)의 열국(周遊)을 주유(周遊)하면서 인도(仁道)를 크게 펼치고자 유세(遊說)하였으나 어느 곳의 제후(諸侯)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69세가 되어서 13년 만에 다시 고향인 곡부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이로 미뤄서 본다면 팔자에서는 무재(無財)여서 그러한 결과가 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거산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형님은 과연 글을 많이 읽어서 아는 것도 많군요.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는 몰랐습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알아야 근거(根據)를 댈 수가 있다는 것을 또 배웠습니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거산의 말에 미소를 지은 염재가 우창을 바라봤다. 자신의 의견에 어떤 답을 줄 것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시 염재의 학문은 대단하군. 아무리 애를 써도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귀향(歸鄕)하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되는군. 만약에 인시(寅時)시에 태어났다면 또 어떻게 되겠나?”

“인시면 무인(戊寅)시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편재(偏財)를 얻게 됩니다. 이것은 상관생재(傷官生財)의 형태가 되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년(晩年)에라도 반드시 이루게 될 암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실제로 대입했을 적에는 자시(子時)에 태어난 것이 맞겠다는 짐작을 해보게 됩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동의하면서 말했다.

“맞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염재가 잘 판단했군. 또 공자의 말에서 유명한 것은 ‘술이부작(述而不作)’이네. 여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려나?”

우창의 말에 염재도 이해가 된다는 듯이 답했다.

“맞습니다. 술이부작은 ‘풀이는 하되 없는 것을 만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고인의 가르침을 풀이는 하되 스스로 만들지는 않겠다는 것인데 과연 식신(食神)이 보이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오시(午時)에 태어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염재가 육갑의 순서를 곰곰 생각하고는 말했다.

“오시라면 임오(壬午)시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식신(食神)이 출현(出現)합니다. 만약에 이렇게 되었더라면 술이부작을 오히려 혐오(嫌惡)하거나 최소한으로 보더라도 술이부작에 대해서 아마도 ‘구태의연(舊態依然)하다’고 했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오히려 놀란 사람은 지광이었다.

“참으로 신기하군. 그러니까 고인의 삶을 역(逆)으로 대입해서 사주를 논하는 방법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오늘 듣고 보니까 그야말로 명리가(命理家)의 놀이 방법은 무궁무진하고 또 새롭다고 해야 하겠네. 어떻게 그런 방법이 가능하단 말인가. 공자는 성현의 글에 주석(註釋)을 붙이면서 십익(十翼)을 지었는데도 지은 것이 아니라 설명한 것이라고 했으니 식신(食神)의 의미가 그렇게 드러난다는 것도 참 신기하네. 하하하~!”

그러자 염재가 다시 말했다.

“그렇게 전해진 이면에는 아무래도 공자가 겸양(謙讓)으로 한 말일 수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쓴 것이 지은 것이 아니면 무엇이 지은 것이겠습니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짓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성현의 가르침을 부연(敷衍)해서 설명했다는 의미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한 것조차도 식신이 있었다면 아마도 ‘승현개작(承賢改作)’이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승현개작이라? 그러니까 그 말은 ‘성현의 가르침을 이어서 새롭게 고쳐서 짓는다’는 말인가? 일리가 있는 걸. 아무래도 식신은 자부심(自負心)의 느낌이 있는데 자신의 주장이 들어가게 되면 그것은 지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할 테니까 말이네. 하하하~!”

지광은 또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점입가경(漸入佳境)이로군. 또 다른 사람의 것도 찾아서 설명해보시게. 흥미진진하니까 말이네. 하하하~!”

우창은 지광이 재미있어하는 것을 보니까 기분이 좋았다. 비록 명리학의 이치는 아직 모르더라도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점차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은 분명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였다. 그래서 다시 염재에게 물었다.

“공자가 소년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있나?”

“예, 대략은 알고 있습니다. 공자의 부친은 숙량흘(叔梁紇)인데, 공자가 세 살이 되었을 적에 세상을 떠났고,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살다가 보니까 부들을 잘라다가 신발을 만들거나 덩굴을 걷어다가 바구니를 짜서 시장에 내다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으니까 그 삶의 나날은 고단했다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아, 그랬나? 그렇다면 연주(年柱)의 기토(己土)가 부담을 줬다고 봐도 되겠구나. 연간(年干)은 부친궁(父親宮)도 되는데 현실적으로 봐서 오래 살았더라면 도움을 주었겠으나 사주의 조짐으로 봐서는 생사와 무관하게 부친은 삶에 부담만 되었을 것이고, 모친궁(母親宮)인 연지(年支)의 유금(酉金)도 실제로 자수일지의 (子水)를 생하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봐서 어려운 모자(母子)가 서로 의지하면서 삶을 도모하는 정도로 해석하는 것은 어떨까? 자수가 월지에 있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네.”

우창의 풀이를 듣고 있던 지광이 다시 감탄하면서 말했다.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네. 사주의 구조를 전혀 모르겠으나 염재와 아우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틀림없이 서로 연관이 있겠다는 정도의 판단은 할 수가 있겠으니 말이지. 과연 여덟 글자의 운명은 성인도 비켜서 가지 못한다고 해야만 되는가?”

그러자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겼던 현지가 말했다.

“스승님, 보통은 운명을 벗어나려면 학문을 많이 하고 지혜를 기르면 된다고 하잖아요? 공자의 지혜를 갖고서도 그것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면 보통 사람이야 더 말을 해서 뭐하겠나 싶어요. 그러니까 팔자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요? 마치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지의 말에 진명도 한마디 했다.

“언니의 말에 저도 동감이에요. 더구나 팔자의 거미줄과 영계(靈界)의 거미줄과 산천에 얽힌 화맥과 수맥도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중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정말 신기하면서도 씁쓸하기도 하네요. 호호~!”

우창이 현지의 말을 듣고서 설명했다.

“맞는 말입니다. 다만,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다면 개선(改善)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 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타고난 천성을 고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므로 대부분은 숙명(宿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만약에 누구라도 약간의 노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가 있다면 팔자는 애초에 맞지 않는 것에 불과한 고인의 쓰레기가 될 따름이니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바꿀 수가 없기에 명리학을 익혀서 활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됩니다. 하하하~!”

그러자 현지가 다시 물었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실제로 운명을 바꾼다는 것이 공자와 같은 성현도 어렵다고 하면 명리학을 배워서 누구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요.”

이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어찌 생각해 보면 우창의 말에 대항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는데 이 정도의 말에 우창은 어떻게 답을 할 것인지가 궁금해서였다. 그러나 우창은 편안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당연한 생각입니다. 우창도 처음에는 그러한 마음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명리학은 안심부(安心符)의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존재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는 그러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예? 안심부는 무슨 뜻인가요?”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불안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묻는 사람에게 마음을 편안하도록 조언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정성주점의 여주인이 재혼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적에 우창의 조언을 듣고서 그러한 고뇌에서 벗어나서 마음이 홀가분한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아 참, 정성주점의 주인이 있었네요. 그것을 보면서 현지도 열심히 공부해서 그렇게 따뜻하고 마음이 포근하도록 감싸 줄 수가 있는 능력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은 이렇게 질문을 드리는 것도 과연 어떤 방법으로 중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가 있을 것인지가 궁금해서였는데 스승님의 그 말씀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네요. 명리학이 존재해야 할 목적은 이미 충분하고도 남아요. 호호~!”

비로소 웃음을 띠고 말하는 현지를 보면서 우창도 흐뭇했다. 과거에 그의 삶이 기구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어느 사이에 과거의 상처를 다 치유하고 학자의 길로 순탄하게 가고 있는 것이 고맙기도 했다.

“맞습니다. 오행의 이치를 배우는 것이야 누구나 노력으로 가능합니다. 다만 그것으로 손이 트는 것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할 것인지 나라를 구하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인지는 저마다의 역량(力量)에 달렸다고 하겠습니다. 하하하~!”

우창의 설명을 듣고 있던 진명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스승님, 손 트는 것은 무엇이고, 전쟁은 또 무엇인가요? 아마도 어떤 고사(故事)인 것으로 보이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설명해 주세요. 호호~!”

진명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이렇게 물었다.

“아, 그것은 고사가 맞아. 송(宋)나라에 대대로 더러워진 솜을 물에 빨아서 다시 새 솜으로 만들어 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가족이 있었는데 항상 물에다 손을 담그니까 겨울이 되면 손이 갈라 터져서 고통스러운데 다행히 손에 바르기만 하면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손이 트지 않는 신묘한 약이었다네. 하루는 그러한 약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남자가 찾아와서는 그 약을 만드는 비방(秘方)을 황금(黃金) 일만(壹萬) 냥을 내고서 사겠다고 하자 가족들은 이제야 좋은 운이 열려서 고생스러운 나날이 끝나는가 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비방을 팔았지. 그 남자는 그것을 배워서는 오(吳)나라의 왕을 찾아가서 약에 대해 말하자 그를 장군으로 삼아서 월(越)과 전쟁해서 크게 이겼더라네. 그래서 같은 약이지만 한 가족은 겨우 솜을 빠는 일을 면했고, 또 한 사람은 오나라의 대장군이 되었으니 그것을 말하는 것이라네.”

우창이 고사를 이야기해 주자 진명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과연, 같은 연장이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대용(大用)도 되고 소용(少用)도 된다는 것을 알겠어요. 진명도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크게 써서 많은 사람에게 안심부를 나눠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