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 제34장. 인연처(因緣處)/ 30.고슴도치의 인연

작성일
2022-11-2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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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제34장. 인연처(因緣處) 


30. 고슴도치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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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염재를 향해서 나직하게 말했다. 그것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아무래도 해석이 간단치는 않을 것이네.”

“그렇습니다. 스승님, 애초에 공부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지 오리무중입니다. 명쾌한 가르침을 부탁합니다.”

염재의 말에 진명이 기가 막혀서 말했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주 공부는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스승님께서 간단하게 풀이를 해 주셨는데 염재가 질문을 하니까 또 어렵다고 말씀하시니 진명이 듣기에는 그 말씀이 난해합니다. 무슨 말씀이 나올지 기대가 큽니다. 호호호~!”

우창이 진명을 보면서 웃고는 말했다.

“진명의 말도 맞고, 염재의 말도 맞네. 공부는 쉽게 생각하면 한없이 쉽기도 하지만, 또 어렵게 생각하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렵기도 한 것이니 말이네. 그래서 항상 쉼 없이 정진하는 것이기도 하다네. 하하하~!”

이렇게 말하고는 염재에게 말했다.

“염재의 안목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보이니 나도 기분이 좋군. 실로 경인(庚寅)에서의 인중병화(寅中丙火)를 논한다면 이미 진명이 명쾌하게 판단했으니 그것만으로 답을 삼아도 될 정도라네. 하하하~!”

염재와 진명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염재는 진명에게 그러한 안목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 진명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우창이 그렇게 말을 해서 놀란 것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눈만 껌뻑이면서 우창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우창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고슴도치의 사랑이라네. 하하하~!”

“예? 고슴도치의 사랑입니까? 음......”

염재는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진명은 자신이 말을 해 놓고도 그것이 사주에서 나올 수가 있다는 것이 마냥 놀라워서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우창이 다시 설명했다.

“만약에 남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손찌검을 할 수도 있는 것이 경갑(庚甲)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스승님.”

염재가 우창의 물음에 답했다. 그러자 다시 물었다.

“손찌검하는데 남편이 고슴도치 옷을 입고 있으면 어찌 될까?”

“그러면 손에 가시가 박히겠습니다.”

“이제 알겠나? 인중병화(寅中丙火)의 의미를 말이네. 하하하~!”

염재는 진명을 바라봤다. 그러한 말을 진명이 어떻게 했는지가 더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그러자 진명이 말했다.

“아, 염재가 놀랄 일은 아니야. 오행의 이치로 본 살핀 것이 아니라, 영안(靈眼)으로 슬쩍 그러한 풍경이 보여서 말을 했을 따름이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스승님께서는 사주를 보면서 그 의미를 간파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간담이 서늘해지네. 어찌 학문의 깊이를 속일 수가 있느냔 말이네. 놀라워라~! 호호~!”

진명의 말에 염재가 더 놀라서 말했다.

“아니, 사주에 나온 것을 영안으로도 본단 말인가요? 누나의 능력도 대단하시네요.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잖아요?”

“나도 매우 짧은 순간에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 그런데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어. 공부하면 항상 볼 수가 있는데, 영안은 보여주지 않으면 볼 수가 없으니 말이야. 그러니까 전혀 탐을 낼 일이 아니고, 오히려 공부에 장애가 될 뿐이네. 호호호~!”

진명의 말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영안으로 보면 고슴도치가 보이고, 간지로 보면 인중병화가 보이니 말이네. 하하하~!”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답답해진 것은 주인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놀라운 말씀들을 들으면서 감탄했어요. 그런데 해결책은 없는 건가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없으니 말이에요.”

우창이 그제야 주인의 마음이 답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은 미안한 감이 들었다. 학문으로 즐거운 것이야 공부하는 이들의 몫이고 모르는 사람이 궁금하게 한 것은 옳은 일은 아닌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였다. 그래서 해결책을 말했다.

“영안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신령께 기도하라는 것이겠고, 간지로 해결하는 방법은 혼인하지 말고 자유롭게 가끔 만나면서 대화하고 차를 마시면서 지내는 것으로 해결 방법을 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제야 주인의 안색이 밝아졌다.

“에구~! 진작에 그렇게 말씀해 주실 일이지요. 이제 머릿속의 구름이 말끔히 걷혔어요. 실로 그 문제가 마음을 괴롭혔거든요. 호호호~!”

주인의 말에 염재가 이해되지 않았는지 다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자세히 설명해 보시지요. 공부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이니 항상 실제의 상황을 통해서 익혀가는 것이 최선이니까요. 오늘 참으로 귀한 가르침을 배웁니다.”

“염재는 항상 진지하구나. 그래 잘 여쭈었네. 하하~!”

우창도 이렇게 거들자 여인이 비로소 말했다.

“실은 그 남자가 부자이기는 한데 이미 자녀도 있고, 자칫하면 돈이 많은 것을 내세워서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할 테니 자리는 탐이 나지만 그다음의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말이에요.”

주인의 말에 우창이 한 마디를 보탰다.

“아마도 그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재물로 아내의 자유를 움켜쥐려고 할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만약에 끼니를 이을 수가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면 물론 좋다고 하겠지만, 이미 이 정도의 객잔을 운영하는 상황에서는 절대로 발등을 찍을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더구나 앞으로의 풍경이 더욱 아름다운데 무슨 걱정이 되어서 혼인하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바로 그거에요. 그것만 확실하다면 절대로 혼인할 마음이 없거든요. 남정네의 품이 그리운 것도 아니어서 그런 문제도 담담하답니다. 그러니 오히려 귀찮게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도 생각해 봤어요.”

“말년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비록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만약에 남자의 사주를 봐서 궁합이 썩 좋다고 하면 또 생각해 볼 수는 있기도 하겠습니다. 혹 생일을 알고 있으신지요?”

주인은 그렇지 않아도 궁합까지도 살펴봤던지 또 한 장의 사주를 적은 종이를 꺼내 놓으면서 말했다.

“죄송스러워서 꺼내지 못했어요. 말씀을 해 주시니까 염치 불고하고 조언을 듣고 싶어요.”

모두 주인이 내놓은 사주를 찬찬히 살펴봤다.

414 정성여관궁합남

잠시 후에 우창이 말을 꺼냈다.

“괜찮은 사람입니다. 아마도 궁합을 보러 갔을 적에 처음에는 안 맞아도 노력하면 천생연분이라는 말을 했지 싶습니다만?”

우창이 이렇게 주인에게 묻자, 여인이 반색하면서 말했다.

“맞아요~! 천생연분이니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어찌나 강조하던지 마음으로 포기를 못 하겠더란 말이에요.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라 세 군데에서 같은 말을 했으니까요. 호호호~!”

그러자 염재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그러한 말을 한 이치는 무엇일까요? 제자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습니다. 궁합은 부담스럽다고만 생각되는데 어디에서 그러한 해석이 가능한 것인지 말씀해 주셔야 알겠습니다.”

염재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강호에서 논하는 궁합의 이치를 잠시 생각했을 따름이네. 이치와는 무관하니 배울 것이 아니란 말이지. 하하하~!”

“스승님께서는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다른 산명가(算命家)들이 어떻게 말을 할 것인지조차도 알고 계십니까? 이치를 궁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하였을 것인지조차도 판단한다는 것입니까? 참으로 놀랍습니다.”

“또한 별것이 아니라네. 주인은 소띠이고, 남자는 양띠지 않은가?”

“예, 그래서 축미충(丑未沖)이 되는 것은 알겠습니다.”

“속칭(俗稱) 이러한 조합을 겉궁합이라고 한다네. 또 다른 말로는 ‘띠궁합’이라고도 하지. 소띠와 양띠는 충살(衝殺)이 들어서 백년해로를 못 한다느니, 소띠와 말띠는 원진살(怨嗔殺)이 들어서 부부해로(夫婦偕老)가 어렵다고도 한다네.”

그러자 이번에는 진명이 말했다.

“그건 제자도 들어본 말이에요. 그래서 당연히 그런 것인 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

“그렇지. 그것은 논외(論外)로 하지만,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으니 얕은 지식으로 묻는 사람들에게 번뇌를 안겨주기에 십상이라고나 할까? 하하하~!”

“그런데 함께 살면 좋다는 말은 아마도 을경합(乙庚合)으로 인해서 나온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그렇습니까?”

“맞아, 간합(干合)을 보통은 좋은 인연으로 해석하는 까닭이지.”

“아,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처음엔 힘들어도 노력하면 좋은 인연이 된다는 말이 나올 수가 있었군요.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하하~!”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되었는지 염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에 궁금해진 사람은 객잔의 주인이었다.

“제가 듣기에도 합이 들어서 좋다고 했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 좋다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내심으로는 꺼림칙해서 선뜻 내키지 않았는데 오늘 제대로 설명을 들어야겠어요.”

“물론, 행복하게 잘 지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주만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지요. 다만 사주로만 말한다면 집착으로 인해서 보이지 않는 거미줄로 묶어놓은 듯이 힘들게 할 암시도 된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 현상은 의처증(疑妻症)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에 그 후의 일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하하하~!”

“에구 끔찍해라~!”

우창의 말에 주인은 몸서리를 치면서 말했다. 그러자 염재가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그런데 인연은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옳지, 그것이 보인단 말이지? 어디 설명해 보게.”

우창이 동조하면서 말하자 염재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믿고는 보이는대로 풀이했다.

“주인의 사주에서 일지(日支)에 편재(偏財)로 목(木)이 있는데 인연이 된 남자는 을목(乙木)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연이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구나, 남자의 일지에는 편관(偏官)으로 금(金)이 있는데 주인의 일간이 경금(庚金)이니 이것은 서로 인연이 있어서 만났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다시 말했다.

“아니, 인연이 있다면 좋은 것이 아닌가요?”

주인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잠시 말을 못 하고서 우창을 바라봤다.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말을 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 의미를 이해한 우창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인연은 그렇게 다가옵니다. 그다음의 문제를 염려하는 것일 따름이지요. 하하하~!”

주인이 다시 생각하더니 비로소 이해되었는지 말했다.

“아하~! 이제야 이해가 되었어요. 인연이 있다는 말이 반드시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네요. 비록 인연은 있으나 그 인연이 편하지 못할 것이라는 암시이니 흉한 인연이라는 뜻이지요?”

“맞습니다. 집착은 사람의 정신을 황폐하게도 하거든요. 보이지 않는 감시를 당하게 되면 살고 싶은 의욕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야 주인은 마음에 쌓였던 의문이 풀렸다는 듯이 밝은 얼굴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비로소 제가 무엇을 염려했었는지를 분명하게 깨달았어요. 오늘 도사님의 일행을 모시게 된 인연이 이렇게 마음을 가볍게 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오늘 저녁은 제가 내겠어요. 너무나 마음이 가벼워져서 날아갈 듯이 상쾌하네요. 호호호~!”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 진명이 주인에게 물었다.

“마음이 가벼워지셨다니까 축하해요~! 그런데 어떻게 결정하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에구 낭자께서 궁금하셨네요. 이대로 자유롭게 살면 될 일을 괜히 복잡하게 인연을 만들어서 고뇌에 쌓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가끔 찾아오면 차나 대접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상대로만 생각하려고요. 호호호~!”

그러자 진명이 다시 말했다.

“그게 바로 고슴도치 사랑이에요. 멀리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안방으로 들이지도 않는 것이니까요. 잘하셨어요. 호호호~!”

진명의 말에 주인도 잠시 생각하더니 공감했다.

“아, 그렇게 되네요. 정말 재미있어요. 저도 좀 한가하면 팔자 공부도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손바닥처럼 남의 인생을 들여볼 수가 있을까요? 참으로 신기한 것이 많겠어요.”

우창은 주인의 사주에서 시지(時支)에 식신(食神)이 있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당연히 마음만 먹으면 공부를 하실 수가 있습니다. 우선은 육갑을 외우면서 공부하시면 됩니다. 나이가 더 들면 남들에게 조언해 줄 만큼의 공부를 할 인연이 나타날 거니까요.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하하하~!”

“도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대로 믿겠어요. 그러니까 공부하는 것도 다 때가 있고, 인연을 만나는 것도 그와 같다는 말씀이네요? 참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하겠어요.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면 서로 행복하겠으나 불행한 인연을 만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니까 말이에요. 호호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인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저녁에 대접할 요리를 마련하라고 일러두고는 잠시 나갔다 온다고 하면서 밖으로 가는 것을 보고서야 우창도 쉬고 싶어서 방으로 올라갔다. 염재와 진명은 여전히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염재는 오행 공부를 몇 년이나 한 거야?”

“몇 년이라니요. 봄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겨우 반년 정도 되었나 봅니다. 물론 공무(公務)를 보면서 공부하느라고 마음만 바쁘지 별로 진전이 없어서 답답하기만 합니다. 하하~!”

“그랬구나. 공부하던 곳은 어떤지 궁금했어.”

“아, ‘오행원(五行院)’말입니까? 곡부에 있는 수도장(修道場)인데 그곳에도 많은 제자가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관음보살을 떠올리게 하는 자원 선생님의 안내와 춘매라고 하는 사저께서 오늘도 열심히 학문을 가르치고 있을 것입니다.”

“그 학당의 이름이 오행원이야? 이름도 참 좋구나. 무슨 뜻이야?”

“오행의 이치로 천하를 조화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스승님은 오직 오행의 이치를 바탕으로 삼고 연구하시거든요. 하하~!”

“나도 그곳에 가보고 싶네. 가서 함께 열심히 공부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모두 이름만 들어도 느낌이 좋아.”

“당연하지요. 유람을 마치고 함께 가시면 됩니다. 그렇지만 곡부에 계시는 분들은 이렇게 스승님과 같이 유람하는 것이 엄청나게 부러울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행복을 누리시면서 틈틈이 공부하시면 되지 싶습니다.”

“아, 그것도 그렇겠네. 정 사부께서도 가르침을 주시고, 또 틈이 날 때마다 넓은 세상의 이치를 가르쳐 주시니 그것을 배우는 재미가 좋아.”

“맞습니다. 땅의 이치와 보이지 않는 기(氣)의 이치는 정 사부께서 가르침을 주시고, 이치에 맞춰서 논리를 따지는 것은 진사부의 가르침으로 채우게 되니 이보다 더 완벽한 가르침이 없지 싶습니다. 오늘은 정 사부께서 고단하셨는지 안 움직이시네요. 하하하~!”

“그러셨나 보다. 그러고 보니 언니도 안 보이네. 푹 쉬나 보네. 호호~!”

“아직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니 산책을 나가볼까 싶은데 동행하시겠습니까?”

염재의 말에 진명도 그러고 싶었던 차에 잘 되었다 싶어서 둘은 동평호반으로 바람도 쐴 겸으로 나섰다. 호반의 공터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서 체조(體操)를 하거나 가볍게 걷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것을 구경하는 것도 활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호수에 일어나는 물결을 보면서 진명이 말했다.

“염재는 산과 물에서 무엇이 더 좋아?”

생각에 잠겼던 염재가 진명의 물음에 답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산은 산이라서 좋고, 물은 또 물이라서 좋은데 그중에서 더 좋은 것도 있습니까?”

염재의 말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여인들은 그렇게 시시한 말로 대화하는 거야. 호호호~!”

“아, 그런가요? 몰랐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이 있다고 하면 물이지 싶습니다.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에 녹음(綠陰)의 빛이 드리우면 그보다 더 싱그러운 것도 없지 싶네요. 하하~!”

“그렇겠네. 나도 그런 것이 좋아. 호호~!”

이렇게 별다른 의미는 없지만 가볍게 이야기하면서 걷고 있는데 옆에서 서너 명의 남자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귓가에 들렸다.

“딸이 행방불명되었으면 어떻게든 찾아보지 않고 무엇을 하는 건가?”

“난들 왜 알아보지 않았겠나. 이미 관아에는 알렸다네. 그런데 자기 딸도 아닌데 신경이나 쓰겠느냔 말이지.”

염재와 진명은 들리는 이야기가 신경에 쓰였다. 딸이 사라졌다는 말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아서였다. 딸이 없어졌다는 말을 한 사람의 행색을 살펴보니 평범해 보이는 50대 초반의 남자로 보일 따름이었다. 문득 진명의 영안(靈眼)이 궁금해진 염재가 조용히 말했다.

“누나, 저 남자의 후광(後光)은 어떻게 보여요?”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다시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잠시 훔쳐보고는 말했다.

“벌써 액운이 닥친 것 같은걸. 큰일이네.”

“그렇다면 저 남자의 딸은 이미 명을 다 했다는 말입니까?”

염재가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진명이 얼른 염재의 어깨를 쳤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염재도 입을 다물고는 진명을 바라봤다. 그러자 진명이 다시 말했다.

“아직 죽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아, 그렇지만 붉은 기운이 짙어지고 있는 것으로 봐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으로 봐야 하겠어.”

“아니, 좀 더 자세히 보세요. 어떻게 도움을 줄 방법은 없을까요?”

염재는 본능적으로 관원(官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백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다시 진명이 말했다. 그러자 옆의 남자가 하는 말이 들렸다.

“참, 오늘 낮에 주루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들어봤나?”

“주루에서? 모르겠는데?”

“말도 말아, 기가 막힌 도사가 출현해서 다들 세상에서 둘도 없는 구경을 하고 요리까지 얻어먹었다고 소문이 파다한데 그것도 몰랐나?”

“두문불출하고 딸을 찾을 생각만 하느라고 밖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정말 용하다면 혹 딸의 행방도 알아볼 수도 있지 않겠나?”

“아, 맞네. 마침 그 도사가 동평객잔에 머무르고 있다니까 저녁이나 먹고 찾아가 보는 것이 어떻겠나?”

“그렇다면 저녁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가보세. 밥이 문제가 아니지 않나? 어서 가서 물어봐야지.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데 어찌 일각이라도 머뭇거릴 수가 있단 말인가. 후유~!”

“그렇긴 한데, 조금 있으면 저녁밥을 먹을 테니 오히려 잠시 기다렸다가 찬찬하게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말이네.”

이렇게 말을 한 남자는 꽤 침착했다. 이렇게 설득하자 마음은 급하지만 기다렸다가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에 염재와 진명이 마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