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제34장. 인연처(因緣處)/ 27.눈과 손

작성일
2022-11-10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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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제34장. 인연처(因緣處) 


27. 눈과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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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의 대화가 무르익으니 마홍도 즐겁고 우창의 일행도 즐거운 밤을 지새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날이 밝자 모두 비로소 밤을 지새운 피로감이 스며들었다. 그러자 곤하게 잠을 잔 진명과 거산이 부두로 나가서 따끈따끈한 순두부를 사 와서는 시원한 순두부 탕을 만들어서 모두 속을 풀면서 아침을 해결했다. 우창도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마홍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살아갈 재밋거리를 또 두 가지나 얻어서 언제라도 무료함을 달래면서 벗들과 즐겁게 보낼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참으로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우창이 작별을 고하자 마홍도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야말로 모처럼 밤을 새워서 즐거움을 나눴으니 감사할 따름이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더라도 늘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끔은 삶을 즐기면서 공부에만 빠져들지 않는 것도 쉬어가는 요령이라네. 허허허~!”

“예, 잘 알겠습니다. 놀이도 공부처럼 하듯이, 공부도 놀이처럼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고맙군. 멀리 안 나가네~!”

이렇게 마홍과 작별하고 부두에 나가자 시원한 바람이 간밤의 쌓였던 피로를 모두 날려 보낼 듯이 상쾌했다. 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명이 우창에게 말했다.

“밤을 새워서 즐겁게 노는 모습이 어쩌면 공부하듯이 열심히 묻고 답하는 모습이 참으로 진지했어요. 어떻게 스승님은 놀이를 배우는데도 그렇게 열심이신지 놀랐잖아요. 호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웃으며 답했다.

“그야, 어디에서나 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접하다가 보니 그렇게 되는 모양이네. 무엇이든 인연이 닿아서 배울 적에 제대로 해 둬야 다음에 혹 기회가 오더라도 놀아볼 수가 있지 않겠어? 하하하~!”

“스승님 덕분으로 바둑과 마작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가 있었어요. 어디 가다가 마작판이 보이면 어깨너머로 들여다볼 정도의 수준이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호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수면(水面)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던 염재가 말했다.

“진 사부께서 열심히 파고든 덕분으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바둑에서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게 되었고, 마작에서는 인생의 이치를 배우게 되었으니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은 듯합니다. 마작은 장기(將棋)와도 비슷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장기와 마작은 패를 모두 늘어놓고서 진행하니까 말입니다.”

“아, 장기도 있었군. 그것은 미쳐 배울 틈이 없었구나.”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바둑은 말이 필요 없으나 마작은 말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자연은 말이 없으나 인간은 말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이치와 서로 통하지 않겠습니까?”

우창은 염재의 말에 웃었다.

“염재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생각하는 것과 참으로 흡사하니 아무래도 우리는 닮은꼴인 모양일세. 하하하~!”

“그렇습니까? 더욱 열심히 궁리하겠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바둑이나 마작에 빠져들면 공부에 소홀해질까 싶은 생각도 들어서 염려가 되기는 합니다. 하하~!”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어디에나 있는 도를 바둑을 둔다고 해서 발견하지 못할 턱이 없을 텐데 말이네. 하하~!”

“아, 그렇군요. 공부와 놀이가 둘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겠습니다. 무엇이든 분별하지 말고 도를 놓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하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첫배가 들어오고 유람을 나온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다시 빈 배가 되자 우창이 일행이 배에 올랐고, 섬에서 유숙(留宿)한 십여 명의 사람들도 모두 타자 배는 다시 출항했다.

출렁이는 물결에 따라서 배도 기분 좋게 흔들렸다. 한 시진 정도 지난 다음에 비로소 출항했던 부두에 배가 도착하자 이미 시간은 정오가 가까워졌고, 일행은 아침을 간단하게 먹었던 까닭으로 벌써 배가 고파졌다. 그러자 염재가 가까이에 있는 식당으로 일행을 안내하여 호수가 보이는 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것저것 넉넉하게 주문하고 술도 가져오라고 청했다. 음식이 하나씩 차려지자 모두 든든하게 요리를 즐기는데 한쪽이 시끌시끌했다. 우창이 바라보니 바로 지난밤을 새워서 공부했던 마작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지광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지광이 말했다.

“아서~! 꾼에게 걸리면 노잣돈을 다 털리는 수가 있으니까. 하하하~!”

마작을 치고 있던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대삼원(大三元)이다~!”

어제까지 들리지 않았을 말이 우창의 귀에 들어왔다. 대삼원이라니 이것은 마작판의 역(役)에서도 최고급(最高級)에 해당하는 난이도이기 때문에 특히 역만(役滿)이어서 마작의 역에서 가장 높은 점수인 13판에 해당할 정도로 귀족의 용(龍)이었다. 이러한 것은 말로만 전하지 실제로 나오는 것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것이라고까지 마홍이 말했는데 바로 옆에서 대삼원이 나왔단 말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자, 누구든 운을 시험해 보시오~! 오늘은 하 초시(初試)가 운이 풀리는 날이로군.”

이렇게 자기네들끼리 주고받는 말을 듣자 우창이 호기심이 동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마작판을 넘겨다 봤다.

411 대삼원

대삼원을 외친 사람의 앞에는 말로만 들었던 삼원패인 백발중(白發中)이 나란히 몸통을 만들고 만수패의 몸통과 남풍패의 머리가 놓여있는 것을 보자 직접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자 대삼원을 얻은 사람이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운이 기가 막히는군. 여기 식당에 계신 모든 분께 요리 한 접시와 술을 한 항아리씩 내리다~! 으하하하~!”

그 말에 모든 손님이 그에게 고마움을 포권하여 표시했다. 그러자 주인장이 우창에게 와서 말했다.

“손님도 마작을 볼 줄 아시나 봅니다. 괜찮으시면 재미 삼아서 한번 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은자 한 냥이면 됩니다요.”

은자 한 냥이라는 말에 또 마음이 동하자 다시 지광을 바라봤다. 이미 해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는 것을 알고 지광도 더 말리지 않았다. 조용히 우창의 귀에다 대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아우님이 오늘은 강호가 얼마나 넓은지를 깨닫게 될 날인 모양이니 어디 공부 삼아서 잘해보게. 하하하~!”

우창은 지광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주변은 이미 시끌시끌해서 조용히 하는 이야기는 남들에게 들릴 상황이 아니었다.

“아, 형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귀에 들어왔습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무슨 의미인지 듣고자 합니다. 하하~!”

“왜? 가서 붙어보지 않고? 하하하~!”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부터 들어봐야 하겠습니다.”

“어젯밤에 마홍 선생이 뭐라고 하시던가? 대삼원은 평생 마작을 해도 한 번 볼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희귀하다고 했잖은가?”

“맞습니다. 우제도 그 말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지금 바로 옆자리 마작판에서 대삼원이 쏟아졌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예? 그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운이 좋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허~! 아직도 모르겠나? 저들의 기술이 엄청나게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아우님이 알 방법이 없지. 하하하~!”

“그렇다면....?”

“당연히 기술이 좋아서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이렇게 술이나 얻어먹으면서 축하해 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라네. 하하하~!”

“그것이 무엇이기에 형님께서 그렇게도 경계하는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패산을 쌓아놓고 하나씩 던지는데도 기술이 있다는 말입니까?”

“눈으로는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는 일이긴 하지.”

“아니, 눈으로 봐도 모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아우님은 듣지도 못했나? 눈뜨고 코를 베였다는 말을 말이네.”

“그런 말은 들어 봤습니다만, 지금 그 말이 해당하는 것입니까?”

“기술은 눈으로 하는가? 아니면 손으로 하는가?”

“그야 손으로 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네 눈보다 빠른 것이 손이라네. 그 손의 날램을 당할 방법은 없다고 봐야지. 그래서 속임수가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 말이지. 하하하~!”

지광의 말을 듣고서야 우창은 깜짝 놀랐다. 어젯밤에 마홍으로부터 그렇게 열심히 마작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나 이러한 기술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눈보다 손이 빠르다는 것도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듣고 보니 과연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그렇다면 오늘 그것에 대해서 한번 보고 싶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도 못 말리겠다는 듯이 말했다.

“하긴, 아우님의 호기심을 무슨 수로 당하겠나? 그렇다면 은자 한 냥만 잃고 일어나겠다는 생각으로 해보시게. 하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자 마작판에 있는 한 중년의 남자가 우창의 식탁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선생께서도 마작을 아시는 듯하니 오늘 운을 시험해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대삼원이 터지는 행운의 날이니 그냥 지나치기도 아깝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

우창도 그 말에 동의하고는 마작판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지광이 시키는 대로 은자 한 개를 마작판의 가운데에 올려놓고서 대삼원을 터트린 사람에게 말했다.

“실은 마작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듣기에 눈보다 손이 더 빠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좀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 남자는 다시 말했다.

“아니, 그런 것도 있답니까? 그렇다면 내가 돈을 싸 들고 가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어디에 그런 달인(達人)이 있다고 합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보고 도리어 물었다. 우창이 난감해하자 지광이 그 사람의 귀에 대고 두어 마디 속삭였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펴지면서 말했다.

“아, 그러십니까? 산명선생(算命先生)께서 직접 경험해 보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보여드려야지요. 대신에 제 운명을 봐주시기로 약속한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은자는 거두셔도 되겠습니다. 하하하하~!”

이렇게 허락하자 우창도 고마움에 포권으로 예를 갖추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산명(算命)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니 약속하겠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패산의 오른쪽 위에 있는 패를 하나 집어서 우창에게 보여줬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팔만(八萬)패였다. 그리고는 다시 제 자리에 올려놓고서 우창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보신 패가 무엇이었습니까?”

“예, 팔만이었습니다.”

“틀림없이 잘 보신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분명히 팔만이었습니다.”

우창의 확답을 거듭 확인한 남자는 그 패를 다시 뒤집었다. 그러자 조금 전에 놓았던 팔만의 패가 어느 사이에 동풍(東風)이 되어서 나왔다. 우창은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러나 남자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우창에게 말했다.

“선생이 잘못 보신 것이겠지요. 이것은 누가 봐도 동풍이 아닙니까?”

“그,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제가 본 것은 분명히 팔만이었습니다. 참으로 귀신이 곡을 한다더니 딱 그런 기분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선생께서 그 아래에 있는 패를 뒤집어 보시겠습니까?”

우창은 그가 시키는 대로 조금 전의 패의 아래에 있는 패를 뒤집었다. 그러자 우창이 본 팔만이 거기에 있었다. 우창은 혼란에 빠졌다.

“어? 조금 전에는 위에 있었던 팔만이 어느 사이에 아래로 간 것입니까? 이것이 가능합니까?”

“눈으로 보셨으면서도 믿지 못하십니까? 으하하하~!”

그 남자의 의기양양한 말을 들으면서도 우창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자 지광이 말했다.

“아우님은 오행의 이치가 깊은 줄이야 오랜 시간을 연마한 힘으로 알았겠지만,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는 몰라서 그렇다네. 오히려 이러한 것은 기본적인 술수(術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놀라서 기절을 할 수도 있다네. 하하하~!”

우창은 그제야 지광이 왜 그렇게 만류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되었다. 자연적으로는 평생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는 대삼원도 손기술을 발휘하게 되면 하루에도 수십 번을 보게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선생은 달인이십니다. 이러한 장면은 듣지도 못했고, 더구나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참으로 놀라운 장면입니다. 도대체 어떤 기술을 사용하셨는지 천천히 보여 줄 수는 없겠습니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우창의 말을 가로막고 나서서 대신 말했다.

“아우님, 저마다 쌓아온 내공의 세월이 있으니 지금 이 선생이 말을 해 준다고 해도 아우님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네. 그리고 남의 기술을 그렇게 물으면 어쩌란 말인가? 혹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은자 1만 냥은 앞에 놓고서 삼배하고 여쭤도 될까 말까 하다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하하하~!”

그제야 지광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달은 우창이 남자에게 말했다.

“아, 무례했습니다. 호기심이 앞서서 선후를 분간치 못하고 실례를 범했으니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남자도 시원스럽게 말했다.

“아, 아닙니다. 다른 의미가 아니고 단순히 호기심으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개의치 마시고 제 운수를 좀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얼마나 많은 재신(財神)이 보살펴 주시려나 그것이 궁금합니다. 으하하하~!”

그제야 우창은 남자의 사주를 물어서 적었다. 이번에는 식당 내의 손님들이 우창의 탁자 주위로 모여들었다. 우창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글자도 강경하게 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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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팔자를 보니, 과연 신의 손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염재도 사주를 보자 더 반가워하면서 바싹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신의 손이란 월주(月柱)의 식신(食神)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맞아, 그것도 포함해서 연간(年干)의 경금(庚金)까지 연결된 것은 팔의 길이가 길다는 것이고 그래서 손의 재능이 탁월할 것으로 봐도 되기 때문이지. 다만 그 기술을 너무 사용하게 되면 자신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가 되겠지?”

“아, 그것은 아마도 용신이 되지 못하는 까닭인가 싶습니다만?”

“그렇지. 만약에 그 식신이 용신이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게도 그 기술은 인류를 위해서 쓰이지 못하고 작은 재주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겠네.”

이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하(何) 초시로 불린 남자가 말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누구든 나를 만나면 신기(神技)라고 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한단 말이오. 허 참 내~!”

하 초시는 못마땅한 듯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 우창이 다시 말했다.

“물론입니다. 하 어른의 능력이야 나무랄 데가 없는 능력입니다. 다만 생각해 보시지요. 그 조상이 점지해준 뛰어난 기술로 앞에 놓인 마작패를 귀신이 곡을 할 정도로 옮긴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그 손으로 새끼줄이라도 꼰다면 나무꾼이 산에 가서 나무를 묶기라도 할 텐데 말입니다.”

하 초시가 우창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마음이 상했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 기술로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이 부유하고 빈병걸인(貧病乞人)을 구제할 수도 있는 일이지 않겠소?”

“그것이 안타깝다는 말씀입니다. 하 선생의 팔자에 타고난 재물은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더 크니 남아있지를 않을 것이고, 그래서 항상 더 많은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 돈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게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주루(酒樓)에서 주머니에 돈이 있을 만 한 사람을 탐색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우창의 말에 움찔한 하 초시가 우창이 틀렸다는 듯이 큰 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그야 틀린 말도 아니오만 일진이 좋은 날에는 한판에 수백 냥씩도 벌어들인단 말이오. 이렇게 한 해만 해도 대단히 큰 재물을 획득할 수가 있으니 농사를 짓는 것에 비할 바가 되겠소?”

“맞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왜 마음은 공허하고, 항상 긴장된 순간을 보내느라고 심신은 지쳐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는지도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니, 그건 어떻게 아셨소?”

우창은 말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울타리처럼 둘러서서 무슨 말을 하는지 호기심으로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도 우창의 말과 하 초시의 표정을 번갈아 보면서 내심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것을 둘러본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소생은 손기술이 없어서 마작패의 위와 아래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 선생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불안한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릴 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조차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지는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으시는 손님들이 판단하실 수가 있지 않을까요?”

“참으로 감탄했소이다. 쉽게 번 재물은 쉽게 나간다고 하더니만 들어올 적에는 천금을 양손에 쥐고 주무르다가도 한순간에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 버리고 빈손이 되어서 끼니를 걸러야 하는 날도 부지기수인 것이 맞소.”

우창은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도록 기다렸다. 그렇게 말을 하더니 잠시 후 약간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따지고 보면 작은 주머니를 털어다가 큰 주머니를 채워주면서 살아온 세월이라고 해도 되겠소이다. 가끔 만나게 되는 신수(神手)에게 완전히 거덜이 나면 다시는 이것을 손에 잡지 않겠다고 맹세하나 그것도 작심삼일일 뿐이고 또 주변에 마작판이 벌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물이 구멍으로 빨려들어 가듯이 자리를 잡고는 패를 맞추고 있더란 말이오. 이것도 무슨 악업인가 보오.”

“과연 천중천(天中天)이 있다더니 그 말이 실감 납니다. 끝없이 속고 속이는 세계에서도 고수가 있어서 하수를 희롱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참으로 신기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미 선생도 신수(神手)라고 하겠는데 그러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신수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들의 능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겠습니다.”

“그래서 된통 혼이 나면 이제는 절대로 손에 잡지 않는다고 다짐하게 된다오. 그런데 오늘 아침에도 아내와 함께 딸의 혼사를 의논하다가 당장 거금이 필요하다는 말에 딱 그만큼만 벌자는 마음으로 판을 벌인 것도 대삼원으로 유혹해서 십여 판이면 그만한 돈을 모을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더란 말이오. 다른 날이면 재수에 옴이 붙었다고 하겠으나 오늘은 이렇게 팔자타령을 하고 있구려. 하하하~!”

“마작으로 번 돈은 마작으로 나가기 마련이니 지금이라도 그만두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과법에도 부합하는 것이고 이미 선생이 겪은 바에서도 어긋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우창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을 표했고, 하 초시는 당당하던 자부심에 큰 구멍이 뚫린 듯이 허탈한 표정으로 우창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듯한 모습이 배어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우창은 비로소 하고 싶었던 것을 설파(說破)했다.

“호칭에 초시(初試)가 붙는다는 것은 이미 과거도 보셨다는 이야기잖습니까? 그런데 학문의 인연보다는 손기술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재미를 붙이는 바람에 결국은 정도(正道)를 벗어났을 것입니다.”

“맞았소, 실은 취의도에서 그 영감을 만난 것이 실수라면 최대의 실수라고 해야 할 것이오.”

우창이 말을 들어보니 마홍을 말하는 것인가 싶었다.

“취의도라고 하면 마홍 선생을 말하는 겁니까?”

“엇? 그를 알고 계신단 말이오?”

“실은 어젯밤을 그 스승님과 함께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어른의 인품으로 봐서 사술(詐術)을 가르칠 분은 아닌 것으로 보였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 물론 그분이 가르친 것은 아니고요. 처음에 배운 것은 좋았는데 그것이 시작이 되어서 명인(名人)과 고수(高手)를 찾다가 보니까 헤어나지 못했던 것이지요. 하긴 누굴 탓할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하하하~!”

자조적으로 허탈하게 웃으며 말하는 하 초시의 표정이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우창이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