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제30장. 정신(精神)/ 9.지식(知識)

작성일
2021-09-15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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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제30장. 정신(精神) 


9. 지식(知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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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사시(巳時:09시).

저마다 부푼 꿈을 갖고 하룻밤을 보낸 제자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모두 열정이 넘쳐나서 정작 더위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춘매도 신명이 나서 점심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채운(彩雲)이 춘매를 도와준다고 주방으로 갔다가 쫓겨났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잘 알아, 그 마음만 받을 테니까 어서 가서 공부하고 이따가 먹고 나면 설거지나 도와주면 되는 거야. 알았지?”

“그럼 미안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죠? 호호호~!”

“물론이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오히려 미안할 일이지. 호호호~!”

“수고하세요. 채운은 공부하러 가요~!”

“그래, 열심히 해~!”

모든 제자의 눈빛이 반짝였다. 새로운 공간에서 기대가 되는 공부를 하게 된다는 것으로 인해서 무더운 날씨도 녹여버릴 정도의 열정이 넘쳐났다. 이러한 분위기를 느끼면서 우창이 자리에 섰다. 그동안에는 다섯 사람만 앉아서 공부했기 때문에 편안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제 청중이 40여 명이나 되고 보니까 아무래도 집중을 하도록 일어나서 이야기해야지 싶어서였다.

“자, 오늘도 즐거운 궁리의 시간을 가져 봅시다. 무엇이든 좋으니까 궁금한 것은 물으면 됩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물어도 됩니다. 다만 미리 손을 들어서 의사를 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고 좌중을 둘러 봤다. 그러자 군엄(君嚴)이 먼저 구령을 붙였다.

“오늘도 열심히 가르침을 베풀어 주실 스승님께 공수~!”

이렇게 말하자 모두 앉은 자리에서 공수하고 동음으로 외쳤다.

“스승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우창도 인사를 받았다. 군엄이 다시 말했다.

“스승님, 제자들이 바닥에 앉았으니까 스승님께서는 의자에 앉아서 말씀해 주셔도 되겠습니다. 편히 말씀해 주시면 제자들도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아,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

우창이 의자에 앉자 이번에는 수경(水鏡)이 손을 들었다. 우창이 말하라고 하자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을 편히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좀 든 제자도 있고, 어린 제자도 있습니다만 스승님께서 경어(敬語)를 쓰시면 우리는 마음에 불편함이 있습니다. 이점 깊이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간곡하게 말하자 우창도 평소에 했던 것처럼 나이보다 학문이 우선하는 것도 좋겠다는 기준이 생겼다. 우창도 이렇게 많은 인원을 상대로 강의를 한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다소 긴장이 되기도 했던 것인데 그것을 또 공부가 깊은 수경이 알아채고는 우창을 편안하게 했던것이다.

“실로 여태까지는 그렇게 해 왔지. 여러분이 갑자기 많이 찾아오는 바람에 어떻게 어투(語套)를 하는 것이 좋을지도 생각했는데 미리 알고 말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네. 그럼 그렇게 함세. 하하하~!”

이번에는 채운이 명랑(明朗)한 소리로 말했다.

“스승님께 여쭙습니다. 어제 기문도사께서 오셔서 분노하실 적에 스승님의 안색을 살폈으나 전혀 화를 내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요. 따지고 보면 스승님께서는 참으로 억울할 일인데 그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화를 내지 않으셨기 때문에 놀라웠어요. 여태까지 그러한 인내심을 갖는 스승을 뵌 적이 없었거든요.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사람을 인식하는 데는 눈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은 음성(音聲)의 영향이 적지 않다. 차분한 수경의 말과 활달한 채운의 말은 듣는 사람들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춘매도 요리를 준비하는 틈틈이 대청마루에 나와서 대화를 들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우창이 춘매를 보고 눈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아, 그것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어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는 까닭이지. 불경에 보면 제자를 1천 명이나 석가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배화교(拜火敎)의 교주가 부처에게 찾아와서 했다는 말이 떠올랐지.”

우창이 부처의 이야기를 하자 채운이 다시 말했다.

“스승님 무슨 말씀이신지 듣고 싶어요. 스승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 가르침이라면 분명히 좋은 뜻이 있을거에요.”

“그가 부처를 찾아와서 분노를 표출(表出)하자 부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네. 원래 분노는 일각(一刻)을 넘기가 어려운 것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지게 되어 있는 것이기에 혼자서 분노를 다 쏟아내기를 기다렸지. 그도 노발대발하다가는 화(火)가 누그러지자 물었다네. ‘아니,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데도 그대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구나. 위선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있느냔 말이다.’라고.”

우창의 말에 채운이 다시 말했다.

“와~! 어제의 상황과 흡사하네요. 부처님은 뭐라고 답을 했어요?”

“부처가 답하기를, ‘내가 화를 낼 일이 아닌데 어찌 화를 낸단 말이오. 난 다만 분노하는 그대가 안타까울 따름이오.’라고 말이지.”

“그 말을 들은 교주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요.”

“교주가 이렇게 말했다지. ‘아무리 그래도 화조차도 나지 않는단 말인가?’ 이렇게 묻자 부처가 다시 답을 했지. ‘내가 당신의 제자들을 내게로 오라고 유혹했다면 물론 미안할 일이겠으나 나는 그랬던 적이 없으니 미안할 것이 없소. 그리고 제자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배움을 얻고자 하는데 내가 그것을 말려야 할 이유도 없는 일이오.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얼마나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지를 말이오. 귀하가 잘 가르쳤고, 그것을 인연해서 또 내게로 왔다가 언젠가는 또 저마다의 인연을 따라서 어디론가 갈 것인데 그러한 것을 두고 화를 낼 일이 아니기에 그냥 듣고 있었던 것이오’라고 말했지.”

“와, 정말 부처는 다르네요. 그리고 스승님도요. 정말 어떻게 마음을 쓰고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셨어요. 어제 그것을 본 저희는 마음이 불안하기도 했는데 스승님의 담담한 대응을 보면서 참으로 깨달은 바가 많아요. 물론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물론이고요. 호호호~!”

채운이 쾌활하게 웃자 우창은 춘매가 평소에 말하는 것을 듣는 듯했다. 그래서 미소로 답하고 또 궁금한 것이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듯이 둘러봤다. 그러자 안산이 손을 들었다. 단출하게 공부할 적에도 과묵했는데 제자들이 늘어나자 미쳐 살필 겨를도 없었는데 손을 드는 것을 보고서야 지목했다.

“아, 안산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먼저, 스승님께서 말씀을 제자들에게는 낮춰서 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제의 공부에 이어서 그대로 진행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지나간 부분은 저희들이 후배들을 위해서 개별적으로 보완을 하면 되지 싶습니다. 아직 앞의 이야기가 있어야만 뒤를 이해할 정도의 난해한 내용은 아니기때문에 그렇게 해도 되지 싶어서 말씀드립니다.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안산은 역시 세상을 많이 살아온 연륜이 있었다. 공부의 방향부터 정확하게 짚고 가야 혼란을 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제 설명한 것은 금(金)의 심리(心理)를 설명한 내용이었으나 그것에 대해서는 안산은 물론이고, 자원도 후배들에게 설명을 해 줄 수가 있었기에 그대로 진행하도록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안산의 말에 신입 제자들도 궁금한 마음이 일어났다. 지난 시간에는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어제 기문도사와 대사형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맞춰보면 오행의 관법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인지 설레기조차 했다. 우창도 안산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말했다.

“앞에서는 금(金)의 마음을 공부했으니 각자 시간이 나는 대로 선배들을 통해서 보완하면 되겠네. 오행의 공부는 기본적인 형태를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변화에 대해서 공부한다면 그것으로 끝이라네. 그러니까 적어도 오행에 대해서는 생소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어서 수(水)를 설명할 테니 잘 듣고 궁금한 것은 언제라도 물어 주면 되겠네.”

그러자 채운이 다시 말했다.

“고맙습니다. 어서 말씀해 주세요. 우리가 저쪽에서 배운 오행 공부는 모두 다 해봐야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껏 오행의 생극(生剋)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단순히 오행의 생극이 아니라 오행의 마음을 설명해 주신다고 하니까 기대가 되어요. 호호호~!”

채운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천천히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이 40여 명이나 앉아 있었으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물은 아래로 흐르지만 수(水)는 위로도 흐른다네. 금(金)이 의(義)라면 수(水)는 무엇일까?”

“지(智)입니다.”

역시 채운이 빠르게 답했다. 자원도 활발한 채운이 우창과 대화하는 것을 들으니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 오히려 편해졌다. 자원도 우창의 설명을 기대했다. 어떤 방법으로 풀이를 할 것인지 오랜만에 들어보기 때문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듯이 두 사람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수(水)를 지(智)라고 한 이치가 뭘까?”

“스승님, 그냥 외우기만 했지 그에 대한 설명은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궁금하게 여겨보지도 않았죠. 오늘에서야 그 의미를 들여다보게 되네요.”

“학문의 길은 이와 같다네. 항상 배우고 의심하고 또 묻기를 반복하는 것이니까 말이지.”

“그냥 배우면 되는 것으로만 알았어요. 말씀해 주세요. 왜 수는 지(智)라고 했는지를 말이에요.”

“지(智)는 어떤 부수(部首)로 조합이 되었나?”

“부수를요? 그냥 지혜(智慧)를 의미한다는 것만 알지 부수는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도대체 저희는 무엇을 배운 것일까요?”

채운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사소한 질문조차도 답을 할 수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우창이 말했다.

“채운이 억울해할 일이 아닐세. 공부는 그렇게 모르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이니까 말이네. 하하하~!”

채운이 우창의 말에 위안이 되었는지 다시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智)는 화살 시(矢)와 입 구(口)와 날 일(日)로 구성이 되었어요. 크게는 알 지(知)와 날 일(日)로 볼 수도 있겠어요. 그렇지만 이것을 어떤 의미로 해석하는 것인지는 들어본 바가 없어요.”

채운의 말에 우창이 답을 했다.

“화살은 무슨 뜻일까?”

“화살이 활을 떠나면 가장 빠른 무기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빠른 것으로 해석을 하면 어떨까요?”

“오호~! 이미 잘하고 있지 않은가. 하하하~!”

“아, 이렇게 하는 것이었어요? 재미있어요. 호호호~!”

채운이 진심으로 우러나는 기쁨을 나타내자 우창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잘 가르쳐야 하겠다는 사명감이 샘물처럼 솟아났다.

“수(水)는 무엇인가?”

“예? 그야 물이지요.”

“물은 어떻게 생겨서 어떻게 작용하지?”

“흐르는 물은 아래로 흘러가는 것이잖아요.”

“물을 보면서 화살을 떠올릴 수가 있을까?”

“물이 폭포처럼 흐른다면 화살만큼 빠르다고 할 수가 있겠어요. 그렇지만 보통은 물이 빠르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잘되지 않아요.”

“그래? 세월은 빠를까?”

“빠르죠~! 화살처럼 빠르다고 하잖아요.”

“오호~! 채운이 내 의도에 완전히 빠져들고 있군. 하하하~!”

“예? 스승님의 의도에 빠져들면 잘하는 건가요? 호호호~!”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니 이것이야말로 칭찬일세.”

“다행입니다. 저로 인해서 혹 가르침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싶은 조바심이 조금은 있었거든요. 스승님의 말씀에 걱정하던 마음이 놓여요. 호호호~!”

채운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물었다. 이렇게 묻는 것은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이 없는 것인지를 점검하면서 모르는 것을 찾아서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우창의 방법이기도 했다.

“세월이 빠를까 흐르는 물이 빠를까?”

“와우~! 이러한 질문을 스승님께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와요. 진심으로 저를 위해서 가르침을 주시는 것만 같아서죠. 세월은 빠르다고 하는데 실제로 느낄 수는 없어요. 그래서 세월보다는 물이 더 빠르다고 해도 되겠어요. 그렇지만 화살이 훨씬 더 빠르다는 생각도 되네요.”

우창은 채운의 솔직한 표현이 맘에 들었다. 가장 답답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혹은 모르고 있는지 표현을 하지 않을 때라고 하겠는데 이렇게 반응이 빠른 제자와 대화를 나누게 되면 다른 대중들도 명쾌하게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비록 채운과 대화를 하고 있지만 듣고 있는 다른 제자들의 마음도 헤아리지 않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월이 무엇과 같다고 하지?”

“세월(歲月)은 유수(流水)같다고 하잖아요? 어?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흐르는 물이 빠르다는 뜻이잖아요?”

“왜, 이제야 지(知)에 화살이 들어있는 것이 이해가 되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지혜(智慧)는 지식이 쌓여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빠르다는 뜻이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죠. 와우~!”

채운이 감탄하자 우창의 설명이 이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이 뭘까?”

“예?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빠르겠느냐고요? 바람이 빠르겠네요. 거센 바람이 몰아치면 몸을 가눌 수도 없잖아요?”

채운의 답변에 우창이 미소를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그렇지만 바람보다 더 빠른 것이 있다면 그게 뭘까?”

“바람보다 빠른 것이 있어요? 화살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화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요. 호호호~!”

“오호~! 눈치로 때려잡아서 답을 찾아본다는 말인가? 하하하~!”

“왜요? 그것도 아닌가요? 음.... 세상에서 제일 빠른 것은 소문일까요?”

“아니, 그건 또 왜?”

“발도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잖아요. 그러니까요.”

“아, 그래서....? 글쎄 그것도 일리는 있네.”

“음, 답이 아니란 말씀이시죠? 근데, 스승님. 이렇게 활기가 넘치는 공부는 처음이에요. 어쩌면 이렇게 생동감이 넘칠 수가 있을까요?”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말을. 공부에 집중하시구려. 하하하~!”

“문득 그렇게 느껴져서 말씀드려 봤어요.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이 뭔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요? 세월일까요?”

우창은 채운이 어떻게라도 답을 찾아보겠다고 이것저것 찾아보는 것이 기특했다. 물론 답이든 아니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정은 항상 시행착오(試行錯誤)와 함께 흐르기 마련이다.

“모르겠어요. 스승님께서 원하시는 답은 못 찾으려나 봐요. 가르쳐 주세요.”

“일념(一念)~!”

“예? 일념이라고요? 한 생각이 빠르다니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걸요. 생각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빠를 수가 있죠?”

“나아가서 지식(知識)이기도 하지.”

“지식이라니요? 그것은 기억 속에 저장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처럼 화살처럼 움직이는 것이었나요?”

그러자 우창이 오광에게 말했다.

“오광, 어제 수박을 사 왔나?”

이야기에 팔려있던 오광이 깜짝 놀랐다. 갑자기 이야기하다가 말고 웬 수박이야기인가 싶어서였다. 그래도 우창이 물으니까 얼른 답을 했다.

“예, 스승님, 세 덩이를 사왔습니다.”

우창이 오광의 답변을 듣고서 다시 채운을 향해서 물었다.

“시장에서 수박을 사는 장면이 떠올랐나?”

“예, 오광이 말을 하자마자 바로 떠올랐어요.”

“그 떠오름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어디서 오다니요? 기억했죠.”

“기억은 지식인가, 아니면 지혜인가?”

“단순히 떠올렸으니 지혜라고 할 것은 없겠네요. 지식이에요.”

“지식을 꺼내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나?”

“예? 생각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거의 순식간이 아닌가요?”

“자, 다시 물을까? 바람이 빠를까? 아니면 기억이 빠를까?”

“그야 비교를 할 수도 없을 만큼 기억이 빠르네요. 오호~! 이제 알겠어요. 지(智)에 화살[矢]이 있는 이유를 이렇게나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네요. 정말 놀랍습니다. 스승님의 인내심은 세상에서 최고인 것 같아요. 호호호~!”

“하나를 배워도 제대로 배워야 다음에 다시 배울 일이 없으니까 말이네.”

“이렇게 기억하면 절대로 잊어버릴 수가 없겠어요. 그러니까 화살만큼 빠르게 말하는 것인가요? 지(知)의 입 구(口)자가 말이에요.”

“옳지, 하나를 알려주니 둘을 깨닫는구나. 잘하고 있군. 하하하~!”

“그렇게 가르침을 주시는데 이 정도도 모르면 어떡해요. 호호~!”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물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안다는 것은 화살처럼 빠르게 말을 하는 것이었네요?”

“설산(雪山)에는 설련화(雪蓮花)가 있다네.”

“설련화라면 꽃을 말하는 건가요?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아무리 생각을 하려고 해도 생각이 나지 않지?”

“당연하잖아요.”

“바로 그 당연한 것을 공부하는 것이 철학(哲學)이라네.”

채운은 우창의 말에 느낀 바가 있었던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아하~!”

“말해 보게.”

“말을 하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아는 것은 빨리 말로 할 줄도 알아야만 하는 것이고요. 모르는 것은 아무리 오랜 시간을 생각해도 알 수가 없는 것처럼, 아는 것은 또 오늘 바로 본 것처럼 바로 떠오르는 것이었네요. 가령 호박이라고 하면 호박이 떠오르는데, 이것은 호박을 알기 때문이죠.”

“옳지, 말을 참 잘했네.”

“그런데, 스승님. 지(知)의 아래에 있는 일(日)은 무슨 뜻일까요? 낮에 말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고, 해처럼 말을 하라는 것도 아닐 것이고, 이유를 모르겠어요.”

앞을 가르치면 그다음을 생각하는 것을 보자 우창의 마음이 즐거워졌다. 제대로 공부 맛을 알아갈 수가 있는 자질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글자 그대로 태양이야. 일광(日光)을 의미하는 것이지. 사실은 밝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겠지만, 아마도 고인들은 태양의 빛으로 밝음을 대신 한 것으로 보이네. 그렇다고 해서 광(光)을 넣는 것도 이상하지 않는가?”

“그렇겠네요. 광(光)보다는 일(日)이 낫네요. 이해가 되었어요. 그렇다면 오상(五常)에서 지(智)를 의미하는 것이 수(水)가 되는 이유는 바로 알고 있는 것을 저장하고 그것을 남들에게 명료하게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제자가 이해한 것이 맞나요?”

“맞아~!”

우창이 인정을 해 주자. 채운의 마음도 밝아졌다. 수(水)는 물이고, 물은 아래로만 흘러간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통쾌했다.

“그렇다면 물과 수의 차이는 뭘까요? 그냥 물 수(水)이므로 물과 수는 같은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지금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봐서는 서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다르지. 수의 속성(屬性)에 물과 같은 성향도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오행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된다네. 그렇지 않으면 방향이 항상 위에서 아래로만 되어 있다는 것에 갇혀서 벗어나기 어렵지.”

“그런데 지혜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잖아요?”

“어떻게?”

“스승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제자에게 전해주고, 다시 그 제자는 또 제자에게 전해주는 것이 마치 강이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옳지, 그리고 스승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깨달은 제자가 이번에는 스승이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을 가르쳐 줄 때는 역류(逆流)를 하게 되기도 하니까 일방으로 위에서 아래로만 흐른다고 생각하면 오류가 일어나게 된다네. 하하하~!”

채운은 우창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스승님, 제자가 어떻게 스승님이 모르는 것을 알 수가 있죠? 그건 괜히 어리석은 제자에게 용기를 갖게 해 주시는 말씀이죠? 왜냐면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이 되거든요.”

“어허, 채운은 속담 공부도 해야 하겠구나.”

“그런 속담이 있나요?”

“속담에 ‘80세 노인이 세 살 손자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이 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아, 들어봤어요. 그 말이 이 말이었던 거네요. 그냥 무심코 흘려들었지 이렇게 명확하게 응용한다는 것은 몰랐어요.”

“그것이 바로 지식은 위에서 아래로도 흐르고 아래에서 위로도 흐른다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역류를 하게 되면 비로소 스승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네.”

“예? 스승을 이기는 것이 불손(不遜)한 것이지 어떻게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말이 안 되는 말을 하면 불손이고, 이치에 합당한 말을 하면 보은(報恩)이 되는 것이라네. 그러니까 채운도 앞으로 열심히 정진해서 보은을 많이 하기 바라네. 하하하~!”

우창의 말에 채운은 가슴이 찌르르~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심통(心痛)이 일어났다. 일찍이 이러한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까닭이었는데 이것은 함께 입문한 다른 제자들의 느낌도 같았던 모양이다. 다들 숙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 우창도 새삼 사도(師道)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