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 제30장. 정신(精神)/ 7.흉화위길(凶化爲吉)

작성일
2021-09-05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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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제30장. 정신(精神) 


7. 흉화위길(凶化爲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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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것이 많은 오광은 집요했다. 좌중을 한 바퀴 둘러보니까 그들의 스승격인 남자는 열심히 궁리하고 있었고 이 남자는 머릿속이 많이 복잡해진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나머지 세 사람의 표정이 흥미로웠다. 어느 사이에 오광의 말에 빨려들었는지 다음에는 어떤 말이 나올 것인지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오광이 다시 소리를 약간 높여서 말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소생도 스승님께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았겠습니까. 바위가 금인데 왜 금이 아니라고 하시느냐고요. 그러자 스승님께서는 바위도 옛날에 불에 녹을 적에는 금이었다고도 하셨습니다.”

“뭐라고? 바위가 불에 녹기도 해? 이건 뭐 점입가경이로군. 아니, 어떤 바보가 그래 바위도 불에 녹는다고 말한단 말이며, 그 말을 믿는단 말이냐~!”

남자는 여전히 기세가 등등해서 큰 소리를 쳤다. 그러다가 다시 오광을 향해서 소리쳤다.

“아니, 그래 불에 녹는 바위가 어디에 있다고 망발(妄發)을 하더냐?”

“예, 화산의 용암(鎔岩)이라고 하셨습니다. 불에 바위가 녹아서 쇳물처럼 흘러내리다가 굳어진 것이 바위인데 그 바위는 다시 오랜 세월이 흐르면 흙으로 돌아가니 금생토(金生土)라고도 하셨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오광이 말을 할수록 사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우그러졌다가 하는 것이 옆에서 보기에도 우스꽝스러웠다. 오광이 이렇게 묻자 사내도 말문이 막혔는지 도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무슨 답을 기다려. 바위가 금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면 보나 마나 사기꾼이 틀림없는데 말이야. 스승님 그렇지 않습니까요?”

사내는 자신의 말에 확신을 줄 스승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스승은 그래도 완전히 생짜는 아니었다. 그는 우창에게 물었다.

“진 선생에게 묻겠소. 바위가 금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오?”

그러자 가만히 이야기만 듣고 있던 우창이 말했다.

“예, 미천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바위는 금이 아니라 토인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말씀하신다면, 금의 기준은 불에 녹여봐서 녹으면 금이고, 안 녹으면 아닌 것으로 보는 까닭입니다.”

우창의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이 없자 도사는 슬며시 화가 치밀었다. 이것은 아마도 날씨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암석이나 쇠가 금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것인데 황당한 궤변으로 선량한 제자들을 농락한단 말이오~!”

도사가 이렇게 말하자 아까부터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들의 일행 중에 한 사람이 말했다.

“소생은 왕량(王梁)이라고 합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한 가지 여쭙고자 합니다.”

자신을 왕량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이렇게 예의를 갖춰서 말했다. 그러자 우창도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십시오.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목(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목은 불에 타는가 안 타는가를 갖고서 기준을 삼습니다.”

그러자 뺨을 맞은 사내가 대뜸 말했다.

“불에 타면 목이고 불에 타지 않으면 토(土)란 말이오?”

“예 그렇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답하자 그 사내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몸에 있는 뼈는 그렇다면 불에 타니 목이오?”

“그렇습니다. 불에 태우면 목이 되고, 땅에 묻으면 토가 됩니다.”

“오행은 정해져 있는 것인데 뭐가 그렇게 오락가락한단 말이오?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맞소이까?”

사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우창이 조용히 말했다.

“원래 오행은 그렇습니다. 음양도 마찬가지듯이 말이지요.”

그러자 왕량이 다시 물었다.

“오행의 이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만 알아서 어찌 사람의 길흉화복을 맞출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잘 맞추지 못하는 것이 맞습니다.”

“아니, 그렇게 말을 해서 될 일입니까?”

“잘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최선일 뿐이고, 달리 무슨 말씀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면 스승의 노릇을 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제자를 가르친다고 해서 될 일인지를 여쭙는 말씀입니다.”

“왕 선생은 무엇을 알고 싶으신 것인지요?”

그러자 왕량이 말했다.

“찾아온 사람이 알고 싶은 것이 오행이겠습니까? 아마도 재물을 모을 수가 있는지, 모을 수가 있다면 얼마나 모을 수가 있는지, 또 모은 재물은 자식에게 잘 물려줄 수가 있는지, 또 그렇게 물려준 재산은 자식이 잘 관리하게 될 것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남의 말을 하듯이 하면 됩니까? 이렇게 물으면 어떻게 답을 할 것입니까? 오행만 이야기하다가 그냥 보낸다면 그 사람이 만족하겠습니까?”

“실로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아직 소생은 그러한 이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왕 선생은 그것을 아십니까?”

“당연하지요. 여태 공부한 것이 바로 그것이란 말입니다.”

“오호~! 정말 잘 되었습니다. 실로 그러한 것에 대해서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고견을 접하게 되나 봅니다. 귀한 말씀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아니, 사주에 재성(財星)이 있으면 부자가 되고, 없으면 빈자가 되는 이치도 모른단 말입니까?”

“소생은 그것을 잘 모르겠습니다. 어려서 부가(富家)에 태어났어도 성장을 하면서 운영을 잘못하였던지 조업(祖業)을 망하여 빈자가 되기도 하고, 어려서 빈한(貧寒)한 곳에서 자랐더라도 부유(富裕)하게 살기도 하고, 젊어서는 부자(富者)로 살다가도 나이가 들면서 패망(敗亡)하기도 하며, 반대로 젊어서는 신고(辛苦)를 겪다가도 나이가 들어서 부옹(富翁)으로 죽음을 맞기도 하니 어느 것이 부유한 것이고, 어느 것이 빈한한 것인지를 가늠할 기준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왕 선생은 이러한 것을 모두 소상하게 알 수가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승님께 그러한 비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 배우셨습니까? 소생이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앞으로 10년을 더 스승님께 심혈을 기울여서 공부한다고 해도 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야 저의 능력이 부족해서이지 스승의 탓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 훌륭하신 생각입니다만,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중한 인생의 황금기를 그렇게 혼동과 혼란 속에서 허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외람(猥濫)된 말씀입니다만 소생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표정이 하나같이 편안해 보이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왕 선생을 비롯한 도반들의 표정은 차마 제 입으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을 만큼 혼란스러워 보이니 이것은 제 선입견이려니 싶으면서도 제대로 공부들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긴 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그 점이 의아합니다. 허구한 날 오행 타령이나 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들으면서 편안한 것을 보면 스승의 언변이 화려해서 모두 최면술(催眠術)에 걸렸거나, 아니면 사리 분별도 제대로 못 하는 바보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광의 말을 들어보셨을 적에 어떻게 생각이 되십니까?”

“말이야 무슨 말인들 못 하겠습니까? 과연 무엇을 배워서 남들에게 무엇을 알려 줄 수가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진 선생은 무슨 비기(秘技)를 갖고서 방문자를 응대(應對)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실로 나에게는 비법이랄 것이 없습니다. 그냥 오행의 이치에 약간의 옷을 입혀서 적절하게 조언을 해 줄 따름이지요.”

“그렇다면 제 사주를 적어 볼 테니까 풀이를 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만족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자 왕량은 자신의 사주를 적었다.

325 왕량의 사주

우창은 왕량이 자신의 사주를 적는 동안에 오주괘를 가늠했다. 오늘의 일진(日辰)은 정축(丁丑)이었다. 미리 아침마다 일진을 보기 때문에 그것은 기억했다. 그리고 지금이 사시(巳時)이므로 을사(乙巳)시였다. 분주(分柱)를 가늠해 보니까 계미(癸未)정도면 적당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회중시계를 꺼내 보면 확실하겠지만 지금 그것을 꺼내면 또 설명이 복잡할 것으로 생각되어서 분주는 어림짐작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오주괘를 머릿속에 썼다.

325 왕량의점괘-1

우선 왕량의 사주를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오월(午月)의 을해(乙亥) 일주이니 일지(日支)의 해수(亥水)가 용신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학문의 길로 가는 것은 정해진 것으로 봐도 되겠다. 여기까지만 생각하고는 바로 말을 시작했다. 너무 오래 생각하면 보고 있는 사람들이 지루할 것을 배려한 까닭이다.

“왕 선생은 어려서 가정환경이 편안했다고는 하기 어렵겠습니다. 강호를 떠돌다가 학문에 관심이 생기셨네요. 실은 처음부터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그러다가 스승의 인연을 맺고 보니 공부하는 것이 너무도 좋아서 신명(身命)을 바쳐서 가르쳐 주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올해가 되자, 신미년(辛未年)이라서 마음에 불안함이 생기면서 공부에 대해서 회의심이 들기 시작하셨나 봅니다. 이렇게 배워서 답을 얻게 될 수가 있을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조바심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우창이 이렇게 말하다가 멈추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것은 숨을 쉴 틈을 얻는 것이기도 했고, 왕량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틈을 얻어서 점괘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점괘는 일간(日干)인 정화(丁火)가 을목(乙木)을 찾았으니 을목은 기문도사가 맞겠다. 그런데 신금(辛金)에게 맞은 것은 스승의 능력에 의혹을 품게 되었다는 것과 축미(丑未)가 충을 만난 것은 스승의 둥지를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을 짐작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시간(時干)의 을목(乙木)을 보자 어쩌면 우창이 될 수도 있겠다고 봤다. 이 을목은 사화(巳火)와 정화(丁火)를 생하고 있으니 제자들이 활발하게 모인다는 의미가 된다. 더불어 분간(分干)의 계수(癸水)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 항상 연구하고 스스로를 진화시키는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니 이 사람이야말로 공부를 할 인연이 깊어질 것으로 봐도 되겠다는 판단을 순식간에 내렸다. 그리고 생각한 대로 왕량은 우창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던 차에 오늘 오행원을 혼내러 간다는 말에 내심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혼을 내러 가는 것이지만 내심으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가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었고, 선생이라는 사람은 오행만 가르친다고 하면서 바위를 흙이라고 하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반드시 그 이치를 물어보려고 벼르고 있었겠습니다. 어떠신지요? 왕 선생의 생각과 거의 부합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그래도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왕량이 잠시 생각하면서 얼굴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화하는 것을 우창은 놓치지 않고 읽었다. 분명히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말했다.

“아니, 무슨 비법을 사용하셨기에 그렇게 마음을 후벼 파는 설명하시는 것입니까?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가신 것처럼 명쾌합니다. 놀랍습니다. 여태 이야기를 들어 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닿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왕량이 스스로 느낀 것을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자 그들의 일행은 물론이고, 오행원의 식구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오행의 이야기만 나눴는데 이렇게 심오한 이야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들어봤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도사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져서 이미 붉은빛으로 변해 있었다.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왕량이 감탄하는 말을 하는 것이 괘씸하기도 했다. 비록 풀이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더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화를 참느라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주변을 한바퀴 훑어 본 우창이 다시 왕량을 향해서 말했다.

“아는 것이라고는 오행뿐인지라 그 이치에서 약간의 변화를 읽었을 뿐입니다. 마음을 들여다보다니요. 어찌 그런 능력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냥 보잘 것도 없는 재주에 불과합니다.”

그러자 왕량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공부를 하면 깊은 철리(哲理)를 깨우칠 인연은 됩니까?”

“되고 말고요. 이미 전생부터 수행해 오신 인연이 있으니 반드시 큰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우창은 ‘내년이 되면 큰 성취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대로 가서는 10년이 지나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행원에서 공부하면 가능하다는 말은 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귀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왕량은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오늘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도 어서 현재의 도사를 정리하고 오행원으로 자리를 옮겨서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자 도사도 낌새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는지 우창에게 말했다.

“아니, 사주풀이를 한다는 사람이 돈을 언제 얼마나 벌어서 잘 살겠다는 말도 없고, 언제 가정을 이뤄서 아들은 몇이며 딸은 몇을 두고서 어떻게 살다가 임종은 누가 하게 될 것인지도 모른단 말이오? 그딴 사주풀이를 누가 못하겠느냔 말이외다. 그런 풀이들은 말짱 헛것이지 않소?”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소생의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니 어쩌겠습니까? 귀한 가르침을 주시면 경청하겠습니다.”

“결혼은 하겠소?”

“당연하지요. 현숙(賢淑)한 아내를 만나서 행복한 중년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왕량을 바라보자 왕량도 고개를 숙이면서 얼굴이 밝아졌다. 이렇게 말하는 것에도 필시 내막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더 캐묻지는 않았다. 항상 넘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까닭이었다. 그러자 도사가 다시 반문했다.

“아니, 처덕은 고사하고 일주의 을목(乙木)이 해수(亥水)의 사지(死地)에 앉아서 삶이 고단하게 된다는 것은 아시오?”

“도사께서 사지라고 하시면, 아마도 포태법(胞胎法:십이운성)으로 관하셨나 싶습니다. 소생은 우둔하여 포태법은 모릅니다. 오행으로 수생목(水生木)이니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아니, 만인(萬人)이 다 사용하는 포태법도 쓰지 않고 무슨 사주풀이를 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엉터리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겠소.”

“엉터리라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판단해서 오행의 이치가 아닌 것은 논하고 싶지 않을 따름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왕량도 그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다시 여쭙습니다. 진 선생은 왜 포태법을 믿지 않으시는지 그 연유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왜 포태법이 오행의 이치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우창은 왕량의 이러한 질문이 고마웠다. 그야말로 제대로 물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천천히 답을 했다.

“을해(乙亥)면 수생목(水生木)이고, 더구나 오월(午月)의 을목(乙木)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사지(死地)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일고(一顧)의 여지(餘地)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왕량은 자기도 모르게 도사를 바라봤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는 눈빛이었지만 도사는 왕량의 눈길을 외면했다. 아마도 내심으로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가 있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다시 우창을 향해서 말했다.

“왕량이 알고 있기로는, 정화(丁火)가 유(酉)에서 생(生)하고 화토(火土)는 같이 가는 운명인지라 기토(己土)도 또한 유(酉)에서 생합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되어 있는 공식을 헌신짝을 버리듯이 하면 많은 것을 잃게 되지 않겠습니까?”

왕량이 이렇게 묻자 우창이 또 미소를 짓고 답했다.

“화(火)의 길과 토(土)의 길은 엄연히 다릅니다. 화는 만물을 데우고 금을 녹이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토는 만물을 포용하고 물이 흐르는 것을 조절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화토의 운명이 같다니 그런 이야기는 아마도 2천 년 전에나 하던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그런 것을 거론한다는 것이 다시 미개(未開)한 관념으로 돌아가는 것일 따름입니다.”

“예? 그런데 어떻게 세월과 맞지도 않은 채로 포태법이 살아있습니까?”

우창이 다시 말했다.

“포태법은 살아있지도 않고, 생명력도 없습니다. 다만 어리석은 학자들이 그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고려하지 않거나, 혹은 문제가 있다는 것은 깨달았지만 감히 버린다는 용기가 없거나, 혹은 자신은 믿지 않으나 남들이 이야기하니까 그냥 자신도 타성(惰性)에 젖어서 사용할 따름이지요.”

우창의 말을 듣고서 잠시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꼼짝도 하지 않던 왕량이 우창에게 공수하면서 말했다.

“제가 그동안 뭘 배웠나 싶습니다. 처음에는 오행의 이치를 말씀하셔서 우습게 생각했는데 지금 하시는 말씀 한마디로 모든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목생화(木生火)의 이치가 무엇인지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왕량이 이렇게 묻자 이번에는 우창이 되물었다.

“선생은 그 이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러자 왕량이 순순히 자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것은 나무가 불을 살려서 활활 타오르니 목생화라고 생각합니다.”

“나무가 불을 살려준다는 것은 불에 탄다는 뜻입니까?”

“예, 바로 그 뜻입니다.”

“그렇다면 불타버린 나무는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까?”

“원래 오행의 생(生)은 상생(相生)이라고 했는데 한쪽이 소멸되는데도 그것을 두고서 상생이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우창의 말에 왕량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예? 그렇게 봅니까? 물론 상생이라는 말은 ‘서로 생한다’는 뜻이므로 한쪽이 소멸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선생께 묻습니다. 목생화는 무엇입니까?”

“불붙은 나무에 바람이 솔솔 불어주는 것입니다.”

“예? 바람이 목입니까?”

“그렇습니다.”

“처음 듣습니다. 왜 바람이 목입니까?”

“풍목(風木)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역경을 아신다면 손위풍(巽爲風)을 아실 것이고, 그것을 아신다면, 손괘(巽卦)는 음목(陰木)이니 을(乙)이라는 것도 아실 것인데 역경 공부는 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왕량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다시 여쭙습니다. 나무가 불에 타는 것은 오행의 어떤 이치입니까?”

“화극목(火剋木)입니다.”

“예? 화극목도 있습니까?”

“자연에 있는 현상이라면 오행에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화극금(火剋金)은 있어도 화극목이라니요. 완전히 예상 밖의 말씀이라서 얼떨떨합니다.”

“말에 매이지 말고 이치를 관하시면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래도 쉽지는 않습니다. 화극금이 있으니 화생금(火生金)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 이치는 어떻게 이해합니까?”

“광석(鑛石)을 용광로(鎔鑛爐)에서 녹이면 금은(金銀)과 동철(銅鐵)이 생겨납니다. 그것을 화생금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것은 쇠가 극을 받은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화극금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극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금속은 용광로를 만나야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니 극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지 않은가요?”

“음, 생각을 해 보니까 이치에 틀린 것은 없어 보입니다.”

왕량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은 다시 쐐기를 박았다. 이제 이쯤에서 끝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름철 다음에 가을철이 있는 것도 화생금의 이치가 엄연히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자연의 모습임을 아직도 모르신단 말입니까?”

이 말에 왕량은 완전히 우창에게 설복(說伏)을 당한 모습이었다. 잠시 그대로 생각하다가는 또 말했다.

“말씀을 듣고 보니까 화생금이 맞습니다. 놀라운 관법입니다. 과연 이 학당의 이름이 ‘오행원(五行院)’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도 그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알아야 할 것은 길흉화복의 이전에 오행의 변화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왕량이 감탄하면서 아예 공부 자리를 옮기겠다고 말하자 도사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다만 무슨 말을 하지는 못하고 왕량을 노려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왕량이 다시 물었다. 이미 그의 마음에서 기문도사는 사라진 지가 오래였던 까닭이었다.

“제가 올해에 공부가 되지 않아서 힘들 것이라는 해석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해묘미(亥卯未)로 인성(印星)이 되어서 공부가 잘된다는 해석을 할 수는 없습니까?”

왕량은 하도 공부가 되지 않아서 스승에게 물었을 적에 스승이 답을 해준 것이 떠올라서 그 말을 우창에게 짐짓 던져봤다. 어떤 답이 나오는지가 궁금해서였다. 우창도 그것을 눈치채고는 다시 말했다. 왕량은 이미 마음이 돌아 섰지만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서 질문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해묘미의 삼합(三合)은 명학(命學)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논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미토(未土)가 해수(亥水)를 극하는 것만 봅니다. 토극수(土剋水)가 되면서 감로수의 물길이 막혀버리게 되니 마음에서부터 답답하게 되고 천간의 신금(辛金)은 또 일간에게 편관(偏官)이니 그 마음에 커다란 돌을 하나 얹어 놓은 듯할 것으로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우창이 설명하는 말의 하나하나를 곰곰 새기면서 듣다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오호~! 과연 놀랍습니다. 이제야 제가 찾아다녔던 스승의 인연을 만났습니다. 오늘부터 오행원에서 공부하기로 하고 기문도사님께는 작별을 고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기문도사에게 작별의 삼배를 하자 다른 두 사람도 같이 절을 했다. 그러자 창피스럽기도 하고 화도 머리끝까지 솟은 도사는 간다는 말도 없이 자리를 차고 일어났고, 뺨을 맞은 사내도 노기 어린 눈길로 한 바퀴 둘러보고는 도사의 뒤를 따라서 나갔다. 잠시 어수선하던 실내는 이내 조용해졌다.

그러자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춘매가 손뼉을 치고는 말했다.

‘짝짝짝짝짝~~!!’

“와우~! 역시 스승님이세요. 오행검(五行劍)으로 오합지졸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알맹이를 거두셨으니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호호호~!”

조마조마하면서 숨을 죽이고 있던 춘매가 제일 먼저 환호했다. 그러자 자원도 웃으면서 말했다.

“재미있잖아? 호호호~!”

“에구, 재미가 다 뭐에요. 처음에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다고요. 좋게 끝이 났으니까 망정이지 아까는 언니가 칼이라도 뽑는 줄 알았지 뭐에요. 어쩌면 그런 목소리가 나긋나긋한 음성 속에 숨어 있었죠? 다시 한번 해봐요. 으악~ 소름 돋아요. 호호호~!”

“놀리지 말아, 순간적으로 강호를 누비던 시절이 떠올라서 괜히 겁을 준 거지 뭐. 사실 칼을 뽑을 상대라도 되면 좋았지. 호호호~!”

안산과 오광도 미소로 스승에 대한 무한신뢰를 보였다. 역시 가장 쉬운 것이 최고로 위대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우창의 내공에 대해서 놀라면서도 자신들도 그러한 상황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지금은 자신이 없지만 공부가 더 깊어지면 가능하겠다는 희망도 가져볼 수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