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제30장. 정신(精神)/ 5.영원불멸(永遠不滅)
작성일
2021-08-25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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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제30장. 정신(精神)
5. 영원불멸(永遠不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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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이 말을 시작하자 모두 숨을 죽였다. 목이 마른 자원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대중을 둘러본 다음에 입을 열었다.
“사실, 명학(命學)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말일 수도 있어. 염재가 청하는 것은 명학자도 자연을 이해하는 철학자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나도 좀 황당할 수가 있지만 이렇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는 거니까 혹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넘어가면 되는 거야.”
자원은 여전히 춘매가 신경이 쓰여서 이렇게까지 말을 했는데 춘매도 그 뜻인 줄을 알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언니도 참 정성이세요. 잠시 무슨 뜻인가 했는데 염재가 관심을 보이니까 저도 정신이 퍼뜩 들었지 뭐에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해서라도 이해하도록 할게요. 호호호~!”
“영혼(靈魂)이 불멸(不滅)한다는 것은 믿어?”
“믿어요. 다시 태어난다는 것도 믿고요.”
“그렇다면 이야기는 훨씬 쉬워지겠네. 영혼이 불멸한다면 다른 존재도 불멸해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
“오호~! 이제 본론이 나오는가 봐요. 과연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될지 설레요. 호호호~!”
“가령, 나무가 불쏘시개가 되어서 불타게 되면 나무는 사라진 것일까?”
“그야 당연하잖아요?”
“나무를 태웠을 적에 더워지는 기운은 뭐지?”
“그야 나무가 불타면서 열기(熱氣)로 변했기 때문이죠.”
“맞아, 그 열기는 결국 나무가 변한 것이잖아?”
“아, 그건 맞아요. 나무가 불타지 않았으면 열기는 생길 수도 없죠. 그렇지만 그것을 나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말이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좀 달라질 수가 있어. 영혼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다음 생에 태어나는 이야기를 한다면 듣는 사람은 어떤 말을 할까?”
“영혼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허공의 뜬구름같은 이야기를 믿으라고 하는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겠네요. 아마도 그냥 웃고 말지 싶어요.”
“맞아, 지금 동생이 내 말에 보이는 반응과 같다고 보면 될거야. 호호호~!”
“어? 그런가요? 제 반응이 어땠길래요?”
“영혼(靈魂)의 불멸(不滅)은 믿지만 다른 사물(事物)의 불멸(不滅)은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잖아. 호호호~!”
“그렇지만..... 그건 좀 다르잖아요?”
“맞아, 다르다고 생각하면 다른 거야. 그런데 더 넓게 생각해 보면 영혼불멸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의식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지. 그러니까 누가 누구에게 강제로 믿으라고 할 수가 없는 거야. 다만 나는 영혼이 불멸이라면 다른 사물도 불멸이라야 맞는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말 어렵긴 하네요. 언니의 말을 믿고 이해하려고 해도 자꾸 문턱에서 걸리는 이 느낌은 어쩌죠?”
“괜찮아. 오늘 당장 이해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말이야.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만 알아둬도 다음에 생각할 자료가 되니까 무의미하다고는 보지 않아.”
“정말 그렇구나. 다른 비유도 있을 거잖아요? 비유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도와주세요. 꼭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단 말이에요. 호호호~!”
“동생의 마음은 알겠어. 그렇지만 영혼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증명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문제야. 그러니까 생각만으로 그렇게 믿어지면 믿고, 사물도 불멸한다는 말이 안 믿어지면 영혼만 믿는 것으로 생각해도 충분한 거야. 다만 언젠가 문득 그러한 생각이 떠오르면 비로소 내가 한 말을 떠올리면 되는 거야.”
“그렇게 설명이 어렵구나. 언니가 그 정도로 말씀을 한다면 더 강요하지 못하겠어요. 문득 든 생각인데 이렇게 이해를 해도 될까요? 가령 나무는 불타서 없어졌으나 그 나무의 성질은 어딘가에 떠다니다가 다시 나무를 만나서 부활(復活)한다고 볼 수는 없어요? 사람의 몸도 삶을 끝내고 땅에 묻히지만, 세월이 흐르면 흙이 되어서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그 몸에 있었던 영양분을 흡수하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죠.”
“와우~! 궁즉통(窮卽通)이라더니만 동생이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구나. 맞아~!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야. 중요한 것은 정신이나 물질이나 완전히 사라져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만 하면 된다고 보는 거니까 말이야.”
“정말요? 이게 말이 된단 말이죠? 그냥 생각이 나는 대로 말씀을 드려 본 것인데 그 안에서도 이치가 있었다면 정말 다행이에요. 호호호~!”
“무슨 소리야? 이치는 어디에나 있는 거야. 그래서 어제는 내 부모님이었지만 오늘은 곡식이 되어서 밥상에서 만난다는 말도 있는걸.”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오히려 이해가 될 수도 있겠어요. 무엇이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니까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이 더욱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호호호~!”
그러자 눈을 반짝이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광이 말했다.
“맞습니다. 영혼이 존재한다면 다른 모든 것도 존재하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그래야 이치에 부합이 되니까요. 물질(物質)이 사라져도 기본적인 활력(活力)은 어딘가에서 존재한다는 이치가 공감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해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우창이 말을 거들었다.
“내 생각에 우리가 너무 깊이까지 빠져든 것으로 생각이 되네. 여기에서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논하고 이해할 수는 없다고 봐. 그러니까 명학을 연구하면서 발생할 수가 있는 궁금증에 대해서만 논하는 것이 어떨까 싶군. 그러한 물질의 이야기는 물질종사(物質宗師)의 몫으로 놔두자는 말이네. 하하하~!”
그러자 자원은 우창이 생각을 정리할 틈을 준다고 생각하고 얼른 답했다.
“싸부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아요. 혼자서 궁리했던 것을 공개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비로소 깨달았어요. 호호호~!”
그러자 곰곰 생각하던 춘매가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도 맞아요. 그렇지만 이야기의 내용에 제한을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또 기발한 진리를 발견하기도 하니까요. 바위를 흙으로 보는 것이나, 뼈를 목이나 토로 볼 수가 있는 것조차도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얻게 된 것이잖아요.”
그러자 우창도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는 듯이 말했다.
“하여튼 춘매의 공부 욕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맞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그러다가 길을 잃고 미로(迷路)를 방황하게 될까 봐서 하는 걱정이지. 하하하~!”
“제가 신금(辛金)이잖아요. 참 신금(辛金)과 흑체(黑體)에 대한 설명도 해 주셔야죠. 경금(庚金)은 고체(固體)인데 신금은 흑체인 이유를 오광과 염재는 잘 모르잖아요. 호호호~!”
우창이 신금과 흑체의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하자, 이번에도 자원이 설명하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우창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는 것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기본적인 이야기는 내가 하는 것이 낫지 싶어서. 호호호~!”
그러자 춘매가 환영했다.
“언니의 설명이 당연히 더 좋죠. 신금에 대해서 설명해 줘요. 다시 들어도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더구나 언니의 설명으로 들으면 또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단 말이에요. 호호호~!”
자원이 춘매를 항해서 미소를 짓고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금(辛金)은 음금(陰金)이잖아. 그러니까 주체이면서도 음의 영역에서 작용한다는 말이지. 양은 밖에서 안을 향한다고 했으니까 음은 반대로 안에서 밖을 향한단 말이야. 그런데 흑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이지?”
“흑체는 검은 물체이니까 옻칠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맞아, 칠흑(漆黑)이라고도 하니까 칠이 가장 잘 어울리겠네. 왜 칠이 검은색이지?”
“칠이 왜 검은색이냐고 하시면 뭐라고 답을 하죠? 검으니까 검은색이잖아요?”
춘매가 자원의 질문이 어디에 떨어지는 것인지를 몰라서 이렇게 따지듯이 말하면서 어리둥절하자 염재가 대신 답을 했다.
“제가 답을 해도 되겠습니까? 검은색은 검게 보이기 때문에 검은색인데, 왜 검게 보이느냐는 말씀이라면 빛을 완전히 흡수(吸收)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춘매가 다시 말했다.
“빛을 흡수하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빛과 색의 작용에 대한 것을 봤던 기억이 나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무지개를 아시지요?”
“무지개야 알지. 비가 오고 나면 하늘에 가끔 나타나잖아. 그래서 누구라도 무지개를 보면 길상이라고 좋아하잖아. 그런데 무지개가 왜?”
“옛날 사람들은 무지개를 하늘에 사는 동물로 봤던가 싶습니다. 무지개를 글자로는 홍(虹)이라고 쓰는데 하늘에 사는 벌레[虫]가 만든[工] 것이라는 뜻이잖습니까? 아마도 많이 신기했던가 싶습니다.”
“아하, 그런거였구나. 그냥 예사로 채홍(彩虹)이라고 하는 것만 생각했지 옛사람의 마음까지는 살필 줄을 몰랐네. 호호호~!”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아지랑이도 문자로는 신기루(蜃氣樓)라고 하니까 신(蜃)은 이무기나 무명조개라는 뜻이 있으니 동물을 생각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고인들의 상상력이 참으로 재미있지 않습니까? 연유를 모르니까 그러한 생각으로 이름을 붙였으리라고 짐작을 해 봅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네. 그런데 그 책에서는 뭐라고 했는지 말해 봐. 나도 궁금하네.”
“그런데 그 책에서 하는 말을 보니까 벌레가 만든 것이 아니라 빛이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지개의 칠색(七色)은 결국 빛의 각도(角度)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 빛의 각도가 다르기에 그렇게도 화려한 색을 보여준단 말이야? 참으로 신기하네. 그런데 왜 검은색을 말하다 말고 무지개를 말하는 거야?”
“색은 빛과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빛을 연구하는 학문은 광학(光學)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는 빛의 속도나 확산하는 모양 등을 연구한답니다. 나중에 오행에서 화(火)를 논할 적에 언급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먼저 빛에 대해서 말을 하실 적에는 말씀을 드릴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그런데 검은색을 말하다 보니까 또 약간의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 그랬구나. 알면 말을 하시지 그랬어? 다음에라도 설명할 기회는 있을 테니까 미루기로 하고, 우선 검은색이 궁금해. 흑체의 의미를 알아야 하니까 말이야. 호호호~!”
염재는 춘매의 열정에 감동했다. 무엇이든 물고 늘어져서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오히려 설명하는 것도 흥이 났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심드렁하다면 말을 하면서도 재미가 없을 텐데 그럴 염려는 전혀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사저께서 궁금한 검은색은 빛으로 논하면 모든 빛을 흡수하여 검게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빛을 전혀 반사(反射)시키지 않아서 그렇게 보입니다. 그 말은 빛조차도 모두 빨아들일 만큼 흡입(吸入)이 강력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저의 말씀을 들으면서 신금(辛金)의 흡입하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하하하~!”
“맞아, 궁금한 것은 견딜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모든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검은색이 되고, 그래서 신금은 모든 것을 흡수하는 힘이 강하다는 뜻이란 말이지? 그럼 흰색은 그 반대로 보면 될까? 말하자면 모든 빛을 다 반사하면 희게 보인다는 말이 되지 싶은데 어때?”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흰색과 검은색의 실체입니다. 아마도 주체성(主體性)에서 외부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는 힘은 내재(內在)된 신금에서 나오는 것으로 봐도 되지 싶습니다. 물론 일간(日干)이 신금인 것과는 상관없이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모두 그러한 작용이 있을 것으로 본다는 말은 스승님께서 하셨습니다.”
“정말 신기하네. 내면의 주체는 밖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아들여서 살아가는 방법으로 응용을 한다는 말이잖아? 그러니까 학문을 통해서 공부하는 것도 결국은 신(辛)의 흡입력이 있어서 기억의 창고에 저장이 된다는 뜻이란 말이지?”
“맞습니다. 정확하게 이해하셨습니다. 그럼 광학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기로 하고 이만 자원 선생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고 합장하자 자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염재의 풍부한 상식으로 인해서 우리의 공부가 더욱 활기띄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 더구나 내가 모르고 있는 영역을 설명해 주니까 배우는 재미가 이렇게 쏠쏠할 수가 없네. 호호호~!”
춘매도 자원의 말에 동의했다.
“물론이에요. 언니조차 그 정도이니 저는 오죽하겠냔 말이에요. 호호호~!”
자원이 춘매의 말에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신금(辛金)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능력이 있다는 것과 염재가 말한 흑체의 연관성이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것을 보면서 하충 스승님의 통찰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 이제 신의 글자를 살펴보고 싶은데 우선 설립(立)이 위에 있고, 도(十)가 그 아래에 있으니까 이것은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전신(全身)으로 흡수한 것을 저장한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서 있다는 것은 분주하게 움직인다는 뜻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앉을 겨를도 없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지?”
춘매가 그 의미를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이네요. 언니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돼요. 서 있다는 것은 앉을 사이도 없이 어디로든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도 되잖아요? 그러니까 분주(奔走)하게 살아간다는 의미도 되네요. 그것도 팔자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가 있어요. 내가 이렇게 분주한 것이 좋은 것도 타고나서 그런가 봐요. 호호호~!”
“그럴 수도 있겠네. 호호호~!”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요. 경(庚)의 고자(古字)에서도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었는데, 신(辛)도 서 있다는 입(立)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냔 말이에요. 그러니까 금은 서 있다는 모습이란 말이잖아요. 주체성은 서 있을 적에 돋보이는 것은 아닐까요?”
춘매의 말에 자원이 답을 했다.
“와~! 동생의 말이 기가 막히네. 가령 사람이 두 발로 서 있으면 자존감이 살아나는데 그렇지 못하면 또 다르지 않겠어? 어린아이가 무엇인가를 잡고 일어서다가, 손을 놓고서 홀로 서서 우쭐대는 모습을 떠올려 봐. 그 기분을 경신금(庚辛金)에서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역시~! 언니의 가르침은 항상 바로 곁에서 보여주는 것만 같단 말이에요. 바로 이해가 되네요. 아기들이 두세 살이 되어서 홀로 서서는 가족들의 축복을 받는 모습은 낯설지 않아요. 과연 자존감은 그렇게 해서 홀로서기가 되어서 경(庚)이나 신(辛)이나 모두 서 있는 모습이 되었네요.”
“그게 다가 아니야. 누군가 방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비로소 자신의 일을 찾게 되었을 적에 뭐라고 해?”
“그러면 ‘홀로서기에 성공했다’고 하잖아요? 오호~! 역시 금은 주체성이 맞네요. 이렇게 알려주시니까 정확하게 그 의미를 깨닫겠어요. 더이상 보태고 뺄 것도 없네요. 호호호~!”
춘매는 자원의 가르침이 너무나 명쾌해서 더 바랄 것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해서 경신(庚辛)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보니까 자존감(自尊感)과 자존심(自尊心)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더 궁금해졌다.
“언니, 스승님이 예전에 말을 하실 적에, 경(庚)은 자존감이라고 하고, 신(辛)은 자존심이라고 했거든요.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미를 좀 쉽게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것도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기는 하겠네.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야 할 텐데 잘 되려나 모르겠어.”
잠시 말을 마친 자원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이 부분은 민감한 내용이어서 혹시라도 잘못 설명할까 싶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자존감은 안을 보고, 자존심은 밖을 보는 거야. 이것은 경금이 내성적(內省的)이고 신금이 외향적(外向的)이라는 것과 일치하는 관점으로 보면 되는 거야.”
“아, 그런 거예요? 그런데 춘매가 생각하기에 자존감은 남들에게 자신을 자신만만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에요. 이건 잘못된 생각인가 싶어서죠.”
“아, 그랬구나. 그런 생각도 할 수가 있겠네. 그것을 남이 보면 자부심(自負心)으로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남들이 보거나 안 보거나 상관없이 그냥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니까 자존감은 안에서 충만(充滿)된 느낌이라고 보면 될 거야. 그러니까 자존감은 가득한 것이고, 자존심은 빈약(貧弱)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호호호~!”
“아니, 자존감이 가득한 것은 알겠는데, 자존심이 빈약한 것이라는 것은 또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되지 않아요.”
“그런가? 둘 중에서 하나만 잘 이해하면 되는 거야. 자존감을 자루에 가득 담긴 쌀이라고 생각해봐. 가득 차서 든든한 모습을 떠올릴 수가 있을 거야. 가령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家長)이 봤다고 생각해봐. 남들이야 굶거나 말거나 자신은 가족을 굶기지 않게 되었다는 마음으로 든든하지 않겠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정말 이해가 쏙쏙 되네요. 그 마음이 이해가 되고 말고요. 그렇다면 자존심은 자루가 가득하게 차지 않은 것일까요?”
“맞아. 그래서 하나만 잘 이해하면 나머지 하나는 거저먹는 것이라고 했잖아. 호호호~!”
“비유는 이해는 되었으나 설명이 필요해요. 귀찮겠지만 설명을 부탁해요.”
“가족이 한 끼는 먹을 수가 있지만 두 끼를 먹기에는 부족한 쌀을 보면서 가장은 생각하겠지? 어디에 가서 또 양식(糧食)을 구해 오나... 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마음이 허전한 거야. 그리고 그 허전한 마음은 자존심으로 나타나게 되는 거야. 신금(辛金)은 항상 비어있는 자루와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미 자루가 가득 채워졌더라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욕심쟁이와 같지. 호호호~!”
“에구, 언니. 꼭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아요. 제가 그렇잖아요. 이미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더 받고 싶어서 확인하고, 이미 공부를 잘하고 있으면서도 더 잘하는 방법이 없는지를 찾고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는 제 모습이에요. 정말 음양의 차이가 이렇게도 뚜렷하게 나뉜다는 것이 신기해요. 호호호~!”
춘매가 이렇게 활발한 말을 하는 것도 자원의 영향이 컸다고 해야 하겠다. 자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의 마음도 열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창은 춘매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도 덩달아 흐뭇해졌다. 그래서 한마디 거들고 싶어서 말했다.
“아니, 이제 보니까, 춘매가 욕심꾸러기였구나. 그렇지만 이 순간부터는 욕심꾸러기를 벗어났으니 자유로움과 하나가 되었으니 축하해야 하겠어. 하하하~!”
우창의 말에 춘매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그건 무슨 말씀이에요? 제가 말을 했다고 해서 욕심쟁이를 벗어났다니요? 그건 마치 비웃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잖아요.”
“당연하지. 욕심이 욕심인 줄을 알면 욕심이 아니고, 욕심인 줄을 모르면 욕심에 빠져서 헤어나올 줄을 모르는 것이니까 말이야. 이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잊고 있는 것과 같은 거야. 하하하~!”
춘매는 우창의 말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자원이 다시 추가로 설명을 했다.
“동생이 너무 어렵게 생각했나 보구나. 간단해. 어린아이가 자기 손에 있는 과자를 보고서 행복하면 욕심이 없는 것이고, 자기 손에 과자를 들고 있으면서도 다른 아이의 손에 있는 것을 보면 욕심이 많은 거야. 그리고 ‘아, 내 손에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욕심은 사라지는 거와 같은 거야. 싸부의 말이 바로 그런 뜻이야. 이해가 되지?”
“아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이해가 되고 말고 죠. 정말 자고 일어나면 먹고, 먹고 나서는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는 먹기를 반복하니 이보다 행복할 수가 없어요. 무슨 복이 이렇게도 많은가 싶다니까요. 그나저나 또 밥을 먹어야 할 때가 되었어요. 오늘은 중복(中伏)이잖아요. 그러니까 복달임을 해야겠어요. 닭을 사다가 삼계탕(蔘鷄湯)을 끓일게요. 모두 공부하느라고 기력이 부족하실 테니까 황기(黃芪)도 듬뿍 넣고 푹 고아서 한 그릇씩 드릴 테니까 쉬고 계세요. 대신 공부 이야기는 하시면 안 되고요. 호호호~!”
춘매가 이렇게 말을 하고 일어나자 자원이 또 한 마디 던졌다.
“동생, 그게 바로 신금(辛金)이야. 호호호~!”
“어머나~! 정말이구나. 이해가 바로 되었어요. 무슨 이야기라도 좋으니까 말씀 많이 나누세요. 조금 전에 드린 말씀은 취소에요. 호호호~!”
“아니야. 같이 나가자. 나도 바람도 쐴 겸 장터 구경도 하고 싶어서 나가보고 싶어. 그래도 되겠지?”
“언니가 같이 가 주시면 마음이 놓이죠. 호호호~!”
춘매가 농담 삼아서 한마디 남기고서 자원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자원이 간단하게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두 여인은 깔깔대면서 장을 보러 나갔다. 여인들이 빠져나가자 흥이 식었다고나 할까? 모두 지친 마음을 쉬기로 하고 저마다 방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했다. 우창도 틈만 나면 생각이 나는 대로 열심히 기록해 놓느라고 분주했다.
그렇게 해서 춘매가 정성으로 마련한 삼계탕을 배불리 먹고 술도 한 잔 곁들여서 즐거운 담소를 하는 것도 공부 아님이 없었다. 오늘은 이렇게 쉬고 공부는 내일 또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