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차(茶)에서 도(道)를 찾은 사람들

작성일
2014-07-09 15:5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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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차에서 도를 찾은 사람들


 

차를 마시는데 도가 있고, 술을 마시는데도 도가 있다고 한다. 술을 마시는 도는 주도(酒道)이고, 차를 마시면 차도(茶道)가 된다. 그리고 세상만사에는 모두 도가 있으니 여기에서 말하는 도는 그야말로 길도이다. 길을 의미한다는 이야기이다. 차를 마시는데는 차를 마시는 법이 있다는 이야기이니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서 생사를 벗어나서 대 자유를 얻는 해탈을 논하는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정도로 이해를 하면 충분하겠다.

1. 한국하면 초의선사(草衣禪師)


초의선사

한국에서 차를 논하면서 초의선사를 빼놓으면 많이 서운타고 하실 것이다. 그래서 초의선사에 대해서 조금은 언급을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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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에 앉아 계시는 초의대선사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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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선사가 왜 대흥사에 앉아 계시느냐면, 사실은 대흥사의 산내 암자인 일지암이 초의 선사가 거주하던 암자이다. 그런데 관광객이 일지암까지는 잘 가지 않으니까 초의선사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대흥사의 한쪽 켠에다가 동상을 마련한 것이 아니겠는가 싶은 생각을 해 봤다. 자세한 내막은 낭월도 모른다. 그럼 일지암(一枝庵)은 어떻게 생겼느냐.....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사진이 나오는데 가져다 쓰기가 께름칙하니 각자 관심이있으시면 찾아서 보시기 바란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깐.....

초의선사는 차를 많이 사랑하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동다송(東茶頌)』이라는 책과 『다신전(茶神傳)』이라는 두 권의 책을 남기셨다.

동다송

 

다신전

자세한 내용을 알고자 한다면 또한 관련 책을 보시라고 할 수 밖에 없겠다. 왜냐하면 낭월에게는 이 두 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상식으로만 알아둬도 될 것 같아서 자료까지 찾는 수고는 생략하고자 한다. 여하튼 차를 통해서 매우 깊은 경지에 도달하셨던 것으로 알려졌고, 차와 선(禪)이 둘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셨다니까 불이(不二)의 경지에 도달하셨던 것으로 짐작을 해 본다.

초의 선사에게 늘 차를 보내 달라고 보챘던 사람으로, 그는 아예 호를 차산(茶山), 아니 다산(茶山)인 정약용 선생도 있다. 유배생활을 하도 많이 하시다가 보니까 강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마침 대흥사와는 멀지 않은 거리였던지라 차를 얻어먹기가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네이버 지도로 보면 불과 30여키로 밖에 되지 않는다. 70~80십리이다. 물론 예전에는 길이 험했을 것을 감안한다면 100리길 정도로 봐줄 수도 있겠다.

대흥사

이렇게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을 돈독한 우의를 자랑하면서 살으셨다고 전한다. 여하튼 차에 대해서는 초의 선사를 꼽을 수가 있다면 기본적으로 한국의 차인에 대한 예의는 갖췄다고 봐도 되지 싶다.

2. 중국하면 육우(陸羽)


한국에 초의 선사가 있다면 중국에는 육우 선생이 있다. 그는 733년에 태어나서 804년에 사망했다는데 연대로 봐서는 당대(唐代)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초의 선사는 녹차를 연구했다면 육우 선생은 중국의 광범위한 지역을 순방하면서 연구한 자료를 모아서 『차경(茶經)』을 저술했는데 이로 인해서 중국에서는 그를 차성(茶聖), 혹은 차신(茶神)이라고 까지 칭송한다.

육우상

 

육우차경

당대에는 책을 이렇게 죽간으로 만들기도 했던 모양이다. 종이가 귀해서이다. 그래서 한문으로 책(冊)도 죽간을 엮은 것으로 본따서 만들었다는 설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여하튼 육우에 대해서도 그냥 상식으로 알아두면 충분할 것이다. 더 깊이 이론적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각자 알아서 연구해 보시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으로 봐서 이렇게 소개만 하는 것이 낭월의 안내이다.

차에 대해서 도가 터서 차의 경을 썼으니 그만하면 차인들에게 존중을 받아서 마땅하다고 하겠다.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차를 논하고 시를 남겼겠지만 과문한 낭월에게는 그러한 것을 추적하는 것도 버거운 일인지라 이렇게 대충 이름만 거론하고는 후다닥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학자들 간의 견해에는 초의선사도 다신전을 쓰면서 육우의 다경을 많이 참고했다고 하니까 영향력은 많이 미쳤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3. 일본의 센리큐(千利休)


센리큐에 대해서는 낭월도 전혀 모른다. 여하튼 차에 대해서 논하려면 한중일을 거론해야 뭔가 있어 보일 것 같아서 검색을 해 보니까 일대차성(一代茶聖) 센리큐(千利休-1522~1591)라고 나와서 그런 사람이 있나보다 싶은 정도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면서 또 한 수 배우는 것이니 나쁠 것은 없다. 혹 아는가 일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면 이런 것을 언급함으로 해서 이야기를 부드럽게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센리큐

센리큐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까 찻사발에 대한 이야기와 차의 시조라는 말은 나오는데 무슨 책을 썼다는 이야기는 얼른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냥 일본에서 차의 신으로 존중받고 있는 사람은 센리큐라는 사람이구나 하고 이해하는 정도로 만족하면 되지 싶다. 그가 창안했다는 것은 '초암차(草庵茶)'라고 하는 말차 형식이라고 한다.

찻사발

 

와비차완

그가 개발했다는 것이 와비차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초암차(草庵茶)인 모양이다. 사진은 와비차를 마시는 찻사발이다. 한국에서 만든 찻사발을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을 보면 김시습과 연관이 있다는 설도 부정만 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싶다. 자료를 검색하다가 걸려든 내용이다.

김시습-1

일설에는 조선시대의 김시습이 초암차의 시조라고도 한다. 이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자료로 봐서는 매월당 김시습이 경주 남산의 용장사 초암에서 창시를 한 것으로 후에 일본의 대덕사의 고승인 일휴선사에게 전해졌다고 하는데 그 시기가 세조 9년(1493)이라고 하니까 1522년에 태어난 센리큐가 그것을 배웠다면 또한 일리는 있다고 하겠지만 이러한 문제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도 될 것이다.

어쩌면 일본 사람들도 이러한 것을 인정하는지 아니면 외면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만약에 부정하고 싶다면 매우 기분나쁠테니 일본 사람들에게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대략 알아본 동양 삼국의 차에 대한 도사들이다. 이렇게 정리하면서 낭월도 공부를 하고 있으니 함께 나누면서 차를 즐긴다면 또한 나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간단히 소개를 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