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

작성일
2007-09-1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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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접근을 해볼 학문이 바로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이다. 이 자평명리학은 지금으로 부터 약 500 ~ 600년 전 쯤에 기본 골격이 형성된 사주학이라고 생각되는데, 특이한 점은 태어난 날을 중시해서 본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도리어 많은 문제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름지기 좀더 발전시켜서 나머지 학문인 의학(醫學), 법학(法學), 교육학(敎育學), 심리학(心理學), 물리학(物理學), 화학(化學) 등과 같이 무궁한 발전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시대순으로 대가들을 나열해 본다면




【戰國時代】낙록자(珞琭子), 귀곡자(鬼谷子)가 있었고,




【漢代】사마계주(司馬季主), 동중서(董仲舒), 동방삭(東方朔), 엄군평(嚴君平)이 이름을 떨쳤다.




【三國時代】제갈공명(諸葛孔明), 관로(管輅)가 있었으며,




【晉代】갈홍(葛洪), 곽박(郭璞)이 있고,




【南北朝】위령(魏寧), 도홍경(陶弘景)이 있다.




【唐代】원천강(袁天罡), 일행(一行), 이필(李泌), 이허중(李虛中)등이 있는데, 여기서 이허중이라는 분은 천하에 유명한 당사주를 만들었던 분이라고 전한다. 이 당사주는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 적중율에 있어서는 자평명리학에 견줄바가 아니므로 쳐다보지도 않지만, 당시로써는 대단히 획기적인 자료였다고 보아진다.




【五代】진희이(陳希夷), 서자평(徐子平) 등이 있는데 여기서 진희이라는 분은 마의상서(麻衣相書)를 저술한 관상(觀相)의 대가요, 서자평은 너무나 유명한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의 시조격이라고 하겠다. 기실은 여기서 명리학(命理學)이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되는데, 옛적에는 사주를 보고서 운명(運命)을 예언할 적에 年柱의 干支를 위주로 하고 日柱와 月柱의 간지는 보조로 삼고서 오행의 생극(生剋)과 쇠왕(衰旺)을 대입해서 사람의 길흉화복을 점쳤으나 왕왕 맞지 않는 자가 많았다.

이점을 항상 주의깊게 관찰하던 자평선생이 사주팔자는 日干을 위주로 하고 다른 글자들을 보좌로 해서 풀어야 한다는 이론을 세워놓았다.




【宋代】주렴계(周濂溪), 소강절(卲康節), 서대승(徐大升) 등이 이름을 날렸는데, 특히 여기서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오대시절(五代時節)의 ‘서자평이론(徐子平理論)’을 계승한 서대승선생의 ‘사람이 태어난 日干을 주체로 삼고 다른 간지의 오행을 보조로 삼는 방법’을 활용해서 사람의 운명을 예언했던바, 단지 이론적으로 기초를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잘 적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써 이 방법이 허망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중국명리학문이 발전할게 되는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는데, 그로부터 일천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수없이 많은 사주의 대가들이 배출되었고 저술은 또한 수풀처럼 많다. 그래서 지금은 상당히 성숙한 학문이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이러한 연유로 현재까지도 이 사주학을 자평명리학이라고 일컫게 되는 인연이 생겼다고 본다. 그리고 이분이 이야기한 오행은 단순히 서로 생조(生助)만 한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는 진일보한 중화론(中和論)을 전개하게 되는데, 이 이론은 앞으로 배우게 된다.




【明代】유백온(劉伯溫), 만육오(萬育吾), 장남(張楠) 이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여기서 유백온 선생은 저 유명한 기문둔갑비급대전(奇門遁甲秘笈大典)을 저술한 기문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분은 기문의 대가이면서도 자평명리학에 아주 심오한 이론을 전개하였던바, 그 책의 이름이 만고에 빛나는 적천수(滴天髓)이다. 현재의 모든 영양가 있는 명리서들은 이 적천수의 이론을 어떤 형태로던지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러한 획기적인 이론서는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장남이라는 분은 명리정종(命理正宗)이라는 책을 통해서 서균(徐均)이 지은 연해자평(淵海子平)의 분명하지 않은 부분을 좀더 명확하게 보충했다고 보인다. 수년 전에만 해도 명리학을 공부하려면 어떠한 책을 보는게 좋은가? 라고 질문을 하면 대개의 선배들은 연해자평을 스스럼없이 추천했다.

그러나 기실 알고보면 추천하는 자신도 연해자평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분이었다. 그만큼 권위가 있는 서적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겉만 번지르르했을뿐 실속이 없는 다분히 이론전개적인 의미에 그 가치를 두는 정도로 대우를 받는다. 이제는 명리입문서로써 연해자평을 추천하는 일은 없어야 겠다.

그리고 장남의 저서라고도 하고 만육오의 저서라고도 하는데, 엄청난 분량의 내용을 갖고 있는 삼명통회(三命通會)가 있다. 책만 구해 놓고서 하도 엄청난 분량으로 인해서 감히 들여다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아직도 벼르고만 있는 책 중에 유일한 명리서이다. 명문당에서 번역한 책으로 삼명통회가 있지만 분량을 보건데 극히 일부분에 한해서만 번역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면 이 책을 전부 번역하기로 든다면 아마도 열권은 되어야 할 정도로 대단한 분량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한권으로 충실한 번역이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淸代】자평명리학이 꽃을 피운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이 학문의 골격을 완성하고 그에 따르는 실험도 상당히 방대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당대에 이름을 날리고 또 후학을 위해서 훌륭한 저서를 남긴 분으로써는  진소암(陳素菴), 심효첨(沈孝瞻), 임철초(任鐵樵) 등이 유명한데 어느 하나도 소흘히 할 수가 없는 이름들이다. 그 중에서 진소암 선생은 명리약언(命理約言)이라는 조그마한 책자를 남겼다. 생전에 정승을 지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당당하게 사주책을 남긴 용가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그렇게 꼬장꼬장한 성품의 소유자라서인지 현재까지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육친론(六親論)에서 나를 생해준 오행이 父母라는 원칙론을 고수하기도 한다.

심효첨 선생은 자평명리서의 기본골격이라고 할 수있는 자평진전(子平眞詮)을 남겨서 후학들이 기본골격을 잡는데 매우 유익한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자평진전은 전 5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질서있게 실속적으로 군소리를 빼고 비합리적인 이야기도 걸러가면서 명확하게 이론을 전개한다. 여기서 특별한 점은 월지의 비중을 매우 크게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주 전체에서 가장 강한 오행을 용신으로 삼은 후에 일간과의 대립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연구한 면도 보인다.

임철초 선생은 적천수에 주석을 달았다는것 만으로 이름이 유명하다. 스스로 책을 지어도 지을 수 있는 안목의 소유자였는데, 당시까지 난해한 이론전개로 인해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적천수에 주해를 달아서 부활시킨 공로는 새로이 책을 저술한 것보다도 더욱 존경을 받게 된다.

철초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적천수라는 보옥이 땅속에 묻히게 되었을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라. 나중에 인연이 있어서 이 책을 접하게 된다면 아마도 스스로 철초선생님의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 것으로 믿는다.

이렇게 주석을 달았던 책은 나중에 출판이 될적에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라는 이름과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라는 다른 이름으로 출판이 되었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고 보면 된다.




【近代】청대의 꽃을 먹고 자란 학자들이 열매를 수확한 시대라고 보아도 되겠다. 여기서 비로소 자평명리학의 진가를 발휘하도록 한 학자들이 선대의 자료를 배우고 자신들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삼아서 명리학의 완성을 보려고 노력했던 시대일 것이다. 그 중에서는 어느 누가 더 공로가 많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모두 대단한 자료들을 발표했는데, 서낙오(徐樂吾), 원수산(袁樹珊), 위천리(韋千里), 日本의 아부태산(阿部泰山) 오약평(吳若萍-俊民), 양상윤(梁湘潤), 화제관주(花堤館主), 하건충(何建忠), 등등의 기라성 같은 대가들이 모두 명리학의 발전에 공헌을 해왔다.

이 중에서도 서낙오 선생은 그야말로 자평명리학의 기강을 바로 세운 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저서와 평주를 남겼다. 특히 낙오선생이 찾아내서 주를 달았던 궁통보감(窮通寶鑑)은 원래의 이름이 난강망(欄江網)이었다는데, 궁통보감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활시켰다고 해도 되겠다. 낭강망의 저자는 여춘대(余春臺)라는 이름의 소유자로 되어 있는데, 무슨 일을 하고 언제 살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위의 화려한 대열에 끼지도 못하지만 궁토보감이라는 이름의 책이 존재하는한 이 이름은 함께 보존될 것이 틀림없다.

궁통보감은 현재 명리학계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3대 보서(寶書)로 공인되다시피 했다. 그 외에서 전천수를 출판하면서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라는 이름을 달았던 본인이기도 하다. 아울러서 징의에서 약간의 도움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적천수보주(滴天髓補註)를 편찬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자평진전평주(子平眞詮評註)도 낸 것을 보면, 영양가가 있다고 생각한 서적들은 모두 손을 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그래서 근대의 대가 중에서는 첫손가락에 꼽아야 될 것으로 본다.

또 원수산 선생은 명리탐원이라는 책을 저술해서 고래로 많은 이론과 학설을 집대성하여 누구던지 어디에서 어떠한 말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데 유익한 서적이 되었다. 그리고 명보(命普)라고 하는 사주모음집을 저술했는데, 이 속에는 중국고래로 많은 명사들이 망라되어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찾느리고 아마도 무진 애를 썼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가 하면 위천리 선생은 실제로 사주를 감정한 자료를 공개하기로 정평이 나있기도 하다. 그의 고고집(呱呱集)은 사주를 보는 요령에 대한 힌트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명학강의(命學講義)라는 책은 명저로 꼽히는 서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日本태생인 阿部熹(阿部泰山)선생도 명리학에 대한 많은 저술을 했다. 특히 적천수상해(滴天髓詳解)라는 3권의 서적은 대만의 무릉출판사에서 출판되었는데, 적천수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궁리를 한 내용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아부태산 전집이 있을 정도인 것으로 봐서 자평명리학에 정통한 학자인 것으로 손색이 없다.

또 빼어놓을 수 없는 분 중에 한분은 화제관주(花堤館主)라는 이름으로 책을 남긴 분이다. 이 책은 명학신의(命學新義)라는 책인데, 여기서 심리학자 융 박사의 이론을 대입하고 있는 장면은 가히 백미(白眉)라고 하겠다. 이렇게 용기있는 임상과 대입의 노력으로 명리학은 이제 심리학(心理學)의 영역까지 포함하는 대단한 학문이 된 것이다. 물론 의학은 적천수에서 포함되었기에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모험적이라면 모험적인 실험정신으로 후학이 뜻을 이어서 연구한 논문있으니 하건충(何建忠)선생의 팔자심리학(八字心理學) 두권이다.하건충 선생은 바로 이 화제관주의 명학신의를 바탕으로 삼아서 전후편의 2권으로 출간되었는데 사람의 마음을 팔자상에서 추리하고 정리하려는 노력은 정말 존경심이 절로 우러러난다고 하겠다. 이 팔자심리학은 앞으로 많은 연구꺼리를 제공하고있다. 너무 이론적인 면에 치우친 감이 있지만, 예전에 자평선생이 이론으로 제시한 일간 위주가 결국은 확실한 이론으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더라도 아마 여기서 나올 팔자와 심리학에 대한 연결고리는 대단하다고 할만 하다. 본인도 이 팔자심리학을 보면서 좀더 힘써서 연구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준민(吳俊民) 선생의 명리신론(命理新論)도 대단히 훌륭한 책으로 꼽힌다. 두권이거나 혹은 세권인데 내용은 같다. 출판사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듯 하다. 이 명리신론은 공망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이 이색적이라면 이색적이다. 신살이라는 것 중에서 비중이 크다고 하는 空亡에 대해서 다루지 않은 것을 보면서 정말 생각이 많은 학자라는 마음이 든다.

이렇게 하나하나 임상을 해가면서 비합리적이거나 별로 효용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이론들을 제거해 나가다 보면 그야말로 속 고갱이만 남을 것이 분명하다. 사실은 어서빨리 이러한 시간이 와야 명리학이 가일층 발달하게 될것이다.




󰋮韓國에서의 子平命理學




한편 한국에서는 어떤가? 이렇게 중국의 학자들은 각기 독특한 이론들을 전개해가면서 발전시키거나, 고전적인 학문의 이론들을 임상하고 경험한 자료를 공개하고 있을즈음에 한국의 명리학자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뭣을 했길래 이렇게 명리학이 사회적으로 미신적인 대우를 받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토정 이지함 선생이 이름을 떨쳤지만, 이분이 연구한 영역은 수리학 분야이고 자평명리학은 아니니 언급할 것이 아니고, 모두들 형이상학적인 철학에만 연구를 한 나머지 정작 인간의 운명을 궁리하는 명리학은 아녀자들의 당사주를 찾는 정도로써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체면을 중시하던 양반사회에서 점술 나부랭이(?)나 공부한다고 하면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해서 혼자만 배워서 응용하고 공개적인 저술은 하지 않았을 것도 같다. 일제시대에는 그저그렇고, 해방 이후에 몇몇 쟁쟁한 선생님들이 등장을 했다.

대전에서는 박제완 옹이 명리요강(命理要綱)이나 명리사전(命理辭典)이라는 책을 저술하셔서 명리서적이 거의 불모지이다 싶은 시기에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셨다. 그런데 이 책의 가격이 대단히 높아서 가난한 학자는 냉큼 구입을 하기가 망설여지는 것도 어쩔수 없다. 부산에서 제산 선생은 부부의 띠를 귀신같이 알아 낸다고 해서 세인을 놀라게 했지만, 결국 저서가 한권도 전해지지 않으니 후학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법하고, 오직 임상시험을 방대하게 하셨던 이석영 선생님은 사주첩경(四柱捷徑)이라는 명리학원의 교재가 전해지니 이 책이 그래도 한국의 명리학 연구서적으로써 자랑을 할 만한 유일한 한국의 명리서적이라고 할만 하겠다. 그리고 입문서로써는 다소 난해하지만 상당히 정리를 했다고 보는 사주정설(四柱精說)이 법조인이었던 백영관이라는 필명으로 나와서 많은 명리애호가들의 갈증을 달래주었다고 보아진다.

다행히도 이즈음에 이러러서는 대단히 많은 서적들이 범람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한국 명리학의 춘추전국시대를 보는듯 해서 흐뭇한 감도 있다. 아마 앞으로는 틀림없이 한국의 명리학도 중국의 학문에 비해서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미롭게 발전을 할 것으로 보지만 아직은 약간 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드림으로써 명리학의 현주소를 대략이라마 이해를 하도록 해본다.

명색이 대가라고 하시는 분들도 출판하시는 서적을 대하면 견강부회로 짜집기를 한 것이 적지않게 눈에 띄인다. 또 일본에서 출간된 책을 약간의 수정만 해서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출판하는 그야말로 저작권을 침해하는 책도 있다고 들린다. 이러한 것은 아직도 구태의연한 서적들이 먹혀들기 때문이라고 본다. 독자들의 수준이 이러한 쓰레기들을 분별할 정도만 된다면 이런 책들은 발을 붙일 곳이 없을 것은 당연하고 그렇게 된다면 명리학의 서적은 날로 그 진가를 발휘하는 책이 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