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제25장. 합리적 의문(疑問)/ 1.최초의 갑자(甲子)

작성일
2020-11-05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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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6] 제25장. 합리적 의문(疑問) 


1. 최초의 갑자(甲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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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시원하다 싶은 며칠이 지나자 폭염이 다시 시작되는 모양이다. 어제는 선선했던 느낌이라서 좋았는데 아침부터 푹푹 찌는 듯한 고온다습(高溫多濕)의 불쾌감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것도 자연의 흐름이니 받아들여야 하는 줄은 알면서도 적응은 잘되지 않는 우창이다. 이렇게 기분이 상쾌하지 못한 날을 보내야 하는 여름에는 독서가 최고이다. 책 속으로 피서(避暑)를 떠나는 것으로 더위를 피할 요량으로 책을 펼쳤다. 책이라고 해봐야 『滴天髓(적천수)』이다. 오로지 이 책에 들어있는 내용에 대해서 완전히 깨닫게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愛之重之(애지중지)하는 것이다.

“오빠, 오늘도 염재가 공부하러 오겠지?”

아침을 먹고 나자 춘매가 수박을 들고 와서 말했다.

“아마도 그렇겠지. 어디 누이가 잘 가르쳐 봐. 하하~!”

수박을 한쪽 들면서 우창이 춘매에게 격려했다. 아마도 짐작하건대 춘매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순간 말발굽 소리가 멈추고 염재가 내려서 문을 열었다. 춘매가 반겨 맞았다.

“염재 왔구나! 어서와~!”

춘매의 말과 함께 염재가 들어오면서 말했다.

“아, 사저님 편안하셨지요?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서 왔습니다.”

“그래 잘했어. 수박부터 한쪽 들어.”

“고맙습니다.”

춘매가 앉아서 수박을 베어 물다가 우창에게 물었다.

“근데, 오빠, 수박은 오행이 뭘까?”

오행을 궁리하게 되면 모든 것이 오행의 길로 지나가게 되어 있다는 듯이 또 생각이 나는 대로 물음을 던졌다. 우창도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이라서 잠시 생각해 보고는 우선 춘매의 생각을 들어보자는 마음에서 물었다.

“누이 생각에는 무엇으로 보여?”

 

“속이 붉은 것을 보면 화(火)가 아닐까? 싶고...”

“색은 오행에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그냥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만으로 충분하니까.”

“왜? 목은 청색(靑色), 화는 적색(赤色), 금은 백색(白色), 수는 흑색(黑色), 토는 황색(黃色)이라고 했잖아? 이제와서 색은 고려하지 말라니 무슨 말이야? 그사이에 뭔가 달라진 것이 있어?”

“때론 색도 보기는 하지만, 우선해야 할 것은 질(質)이기 때문이지. 실제로 작용하는 것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는 뜻이야.”

“아, 그럼 수박의 붉은색은 의미가 없는 거야?”

“속이 노란 수박도 있으니까.”

“그래? 그건 보지 못했는데?”

“남방에서 생산되는 수박에는 그런 것도 있어. 하하~!”

“그렇구나. 또 하나 배웠네. 그렇다면 수박은 물이 많으니까 수(水)라고 하면 어떨까?”

“말이 되지. 괜찮은 생각이야.”

“아, 그러면 목생수(木生水)가 되는 건가?”

“오~! 그럴싸 한 걸. 하하하~!”

“그런데 왜 여름에 열기를 받고 생산이 되었는데 화(火)가 아니고 수(水)일까?”

“그야 자연의 조화(造化)이니 내가 답을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는걸.”

“수박을 먹으면 몸에 어떤 작용을 할까?”

“수극화(水剋火)를 하겠지?”

“아하~! 그렇구나. 재미있네. 그래서 더울 적에는 수박을 먹으면 시원하게 느껴지는 건가?”

“맞아, 이렇게 작용에 대해서 궁리하면 훨씬 더 얻을 것이 많아.”

“그렇구나. 보인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대입해서 억지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네. 호호호~!”

“그러니까 같은 수박을 놓고서도 저마다 해석이 다를 수가 있는 거야. 하물며 보이지도 않는 학문의 세계에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 그래서 무수한 시행착오(試行錯誤)와 오류(誤謬)가 백출(百出)하고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진화(進化)하고 발전하여 문화(文化)가 되는 것이지.”

“알았어. 생각하고 또 생각하란 말이지? 호호호~!”

가만히 듣고 있던 염재가 말을 꺼냈다.

“스승님, 제자는 오늘 어떤 것에 대해서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염재의 말에 우창이 답을 했다.

“우선 누이에게서 기본적인 것을 배워보게나. 그다음에 또 진도(進度)에 따라서 공부하면 될 것이네. 더워지기 전에 시작하지.”

그러자 춘매가 염재에게 말했다.

“미리 말을 해 두지만, 내가 잘 가르친다고 할 수는 없어. 나도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까. 다만 기본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기초를 다듬는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해보자고.”

“예, 염재도 사저님의 가르침이 기대됩니다. 언제든지 공부를 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깍듯한 예의를 갖추는 염재가 춘매에게는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기본적인 내용은 전해 줄 수가 있으려니 했다. 공수하여 예를 갖춘 염재가 먼저 물었다.

“공부는 가르쳐 주시는 것을 배우면 되는지요? 아니면 염재가 궁금한 것을 여쭈면 될까요?”

“아, 질문이 있으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배웠어. 뭐든 물어봐.”

“그럼 여쭙겠습니다. 명학(命學)은 육갑(六甲)을 기본으로 삼고 연구하여 삶에 대입하고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까?”

“그야 당연하지.”

“그렇다면, 그 갑자(甲子)의 최초(最初)가 궁금합니다. 최초의 갑자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뭐, 뭐라고? 최초에 갑자를 누가 만들어? 그건.... 내가 배운 적이 없네. 아무래도 염재는 내가 지도할 영역을 넘은 것으로 보이는데?”

춘매가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우창이 나섰다.

“하하하~! 그러게. 누이 말대로 염재에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염재랑 같이 공부를 해야겠는걸. 매우 좋은 도반을 만났네. 하하하~!”

그러자 염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혹 염재가 사저님께 질문을 잘못 한 것은 아닌가 염려스럽습니다.”

염재의 말에 손을 내 저으면서 우창이 말했다.

“아니네. 매우 잘 물었네. 그 질문에는 내가 답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따름이네.”

“고맙습니다. 열심히 듣겠습니다.”

“최초의 갑자를 알고 싶은가?”

“예, 그렇습니다. 어제 귀가해서 육갑을 외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어보면서 문득 그 생각이 들어서 이 문제부터 여쭙고 싶었던 것입니다.”

“잘했네, 역시 염재의 이치를 추구(追求)하는 열정이 남다르다고 해도 되지 싶네. 하하하~!”

그러자 춘매가 한마디 했다.

“염재가 최초의 갑자를 물을 줄은 몰랐어. 기본적인 것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당황했지 뭐야. 염재로 인해서 내가 몰랐던 것을 배우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호호~!”

우창도 춘매의 말에 같이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최초의 갑자를 물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함께 공부할 좋은 인연이 되었다고 봐야지. 그럼 궁금한 것에 대해서 이왕에 물었으니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설명해 보겠네.”

“고대(苦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최초에는 갑자가 없었을 것이네. 그런데 황제(黃帝)가 세상을 다스릴 때 치우(蚩尤)라는 전사(戰士)와 격렬(激烈)한 전투(戰鬪)가 오랫동안 벌어져서 끝이 날 줄을 몰랐다네. 아무리 작전을 짜고 용병(用兵)을 해도 전쟁에서 이길 방법이 없자, 천단(天壇)을 쌓고는 하늘에 기도했다네.”

그러자, 우창이 잠시 수박을 한 입 베어 무는 틈에 염재가 물었다.

“황제라면 삼황오제(三皇五帝)의 그 황제(黃帝)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탁록(涿鹿)을 피로 물들였다는 그 전쟁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옳지, 잘 알고 있구나. 황제는 그 전쟁이 매우 버거웠던 모양이야. 오죽하면 천자가 자신의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하늘에 기도했을지 생각해 보면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지.”

“그렇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춘매도 옛날 이야기에 흥미가 동했다.

“우와~! 옛날 이야기잖아? 나도 그런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결과가 궁금하네. 호호호~!”

“황제가 간절한 염원을 담아서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하며 적의 무리를 이기게 해 달라고 하자 하늘에서 감응이 있었던 거야. 그래서 열 명의 천장군(天將軍)들을 내려보냈지. 그들의 이름이 바로 천간(天干)이 된,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야. 그들은 저마다 갖고 있는 기술을 연합하여 발휘하고 나서야 비로소 치우를 물리칠 수가 있었고 세상은 평화가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네.”

“그렇다면 처음부터 갑자(甲子)가 아니었다는 말씀입니까?”

“처음에는 갑자가 아니라 천간이었다는군. 그렇게 천하태평(天下泰平)이 되자, 하늘의 장군들은 할 일이 없어졌지.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하는 이들이 겨우 한 일이라고는 자기네들끼리 싸움을 하는 거야. 그러다가는 이웃의 백성들에게도 화가 미치는 것을 황제는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지. 이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부작용이었다네. 황제는 또 엉뚱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는 다시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네.”

이번엔 춘매가 더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하늘에서도 장군들이 사고를 치는 것을 걱정스럽게 보다가는 12천녀(天女)를 내려보냈다네. 열두 명의 천녀들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였다네. 장군들은 천녀를 보자 너무나 좋아했지. 그래서 저마다 순서대로 짝을 지었지. 갑(甲) 장군은 자(子) 천녀와 짝을 짓고, 을(乙) 장군은 축(丑) 천녀와 짝을 이뤘다네.”

그러자 춘매가 더 듣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뭐야? 하늘에 계신 상제(上帝)님의 계산은 왜 그래? 열 천녀를 보내야지 열둘을 보내면 어쩌라는 거야?”

“원래 상제님의 춘추가 13억6만 세라서 가끔 치매가 오기도 하셨다네. 하하하~!”

“하여튼, 그래서?”

“갑자부터 계유(癸酉)까지 짝을 짓고 보니까 술 천녀(天女)와 해 천녀(天女)가 짝을 못 찾게 되는 거야. 당연한 결과였지. 그러자 장군들이 협의한 결과 두 천녀는 다음 날에 짝을 맺어주기로 했다네. 그래서 첫날은 술해 천녀가 짝이 없이 보내고, 다음 날에는 술해에게 짝을 줬지. 그러니까 갑 장군이 술 천녀와 짝을 이루고, 을 장군이 해 천녀와 짝을 이루는 순서가 되었던 것이네.”

“그러면 둘째 날은 신(申) 천녀와 유(酉) 천녀가 독수공방(獨守空房)을 하게 되었겠네?”

“맞아, 그렇게 해서 여섯째 날이 되자, 비로소 모두 공평하게 행복한 밤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야.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다시 처음처럼 갑 장군과 자 천녀가 밤을 보내게 되는 것이지.”

이야기를 듣다가 춘매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아니, 언제까지 그렇게 하는 거래?”

“오늘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겠지?”

“뭐야? 그건 믿어도 되는 이야기야?”

“응. 난 그랬을 것이라고 믿어. 하하하~!”

“정말?”

“뭐, 안 믿어도 그만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하하하~!”

“오빠도 이미 그 말은 믿지 않고 있구나. 그렇지?”

“왜? 너무 표가 났어? 하하하~!”

“당연하지.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오빠가 그런 말을 믿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럼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누이가 말해봐.”

“무엇보다도 장군이니 천녀니 하는 말이 우습잖아.”

“오호~! 그게 우습다니 누이도 참 대단하다. 하하하~!”

“하늘에서 무슨 기도를 하여 장군이 내려왔다는 말이야? 그것도 옛이야기 책에서나 봄직한 말이고.”

“원래 옛날이야기 책에 나온 것이야.”

“아니, 지금 염재가 얼마나 진지하게 물어보는데 그렇게 옛이야기나 하고 있어서 되는 거야?”

“왜 안 돼?”

“말이 안 되잖아. 질문과 답변이 서로 꼬였어.”

“꼬이다니? 질문이 잘못되었던 것은 아니고?”

“엉?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옛날이야기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답이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답이 없다는 말일까?”

“그게 무슨 말이지? 이해가 안 되네.”

가만히 듣고 있든 염재가 무슨 뜻인지를 깨달았는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자가 생각하기에는 최초의 갑자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기에 이와 같은 우화(寓話)가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옳지, 염재가 바로 이해를 했네. 하하~!”

“그렇다면 최초의 갑자는 언제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까?”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은 확실하겠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흘러서 그 자료가 사라졌거나, 고의로 없앴다고 한다면 후대의 사람들은 그 출처나 연원(淵源)을 알아내기가 불가능하겠지?”

“맞습니다.”

“그렇지만 궁금한 것을 참을 수가 없는 나와 염재는 그냥 둘 수가 없으니까 어떻게든 그 이유를 찾아보려고 온갖 노력을 하겠고?”

“맞습니다. 연유를 모르면 신뢰감(信賴感)이 떨어지는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황제의 우언(寓言)은 누굴 위해서 만들어진 이야기일까?”

“아마도 조리정연하다기 보다는 남녀의 정사(情事)에 초점을 맞춰서 설명한 것으로 봐서 촌민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몽매(蒙昧)한 제자가 갑자의 연유를 묻는 것은 기특하지만 그에 대한 답을 해 줄 수가 없는 스승이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만들어서 해 준 것이 전해지고 또 전해졌을 것이네. 지금 이렇게 전해지듯이 말이네. 하하하~!”

“그렇겠습니다. 더구나 황제나 탁록이나 치우를 거론하여 역사성을 입혀서 긴가민가하게 만드는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겠습니다.”

그러자 춘매가 한마디 거들었다.

“뭐야. 난 처음에는 진짜인가보다 했잖아. 쳇~!”

“진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어.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까. 하하하~!”

“에구~! 됐네요. 호호호~!”

“스승님의 견해(見解)는 어떠신지를 여쭙고자 합니다. 분명히 이 점에 대해서도 궁리를 많이 해 보셨으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육갑(六甲)은 어디에서 왔을까?”

“육갑이 온 곳은 간지(干支)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간지는 간(干)이 우선일까? 지(支)가 우선일까?”

“아마도 간(干)이 우선이지 싶습니다.”

“옳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렇다면 간(干)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무래도 오행(五行)에서 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건 왜 그렇게 생각했나?”

“십간(十干)은 오(五)의 배수(倍數)인 까닭입니다.”

“음양에서 나왔다고 할 수는 없을까?”

“음양에서 나오려면 2, 4, 8, 16, 32, 64로 가야 하는데 십간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음양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왜 오행의 배수가 되었을까?”

“아마도 오행에 음양이 개입된 것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오호~! 재미있는 생각을 했군. 왜 오행에 음양이 개입하게 되었을까?”

“체는 불변(不變)하는데, 자연의 현상은 상변(常變)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는 음양의 모습으로 담기게 되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오행에 음양의 변화(變化)가 들어가서 십간(十干)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오행이 먼저일까? 아니면 음양이 먼저일까?”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그 연유까지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지 싶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체용(體用)의 뜻은 알고 있지?”

“그렇습니다. 체는 마음과 같고, 용은 몸과 같아서 마음이 흐르는 대로 몸이 따르는 이치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자 춘매가 얼른 나섰다.

“무슨 말이야? 몸이 체잖아? 신체(身體)인데. 그건 염재가 거꾸로 알고 있지 싶은데. 호호호~!”

그러자 우창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누이가 몸이 체라고 한 이유도 있겠지? 설명을 부탁해.”

“무슨 설명이 필요해? 몸이 있어야 마음이 몸을 따르지.”

“그런가? 몸이 마음을 부리는 것이라는 말이지?”

“당연하잖고.”

“우리가 어제는 어딜 다녀왔지?”

“갑자기 그것을 왜 물어? 당연히 성운사에 다녀왔잖아?”

“성운사에는 왜 갔지?”

“왜라니? 그야 원명 스님을 뵈러 간 거지.”

“그러니까 원명 대사님을 뵙고 싶었다는 건가?”

“물론이야. 뵙고 싶지 않았다면 뭐하러 그 먼 곳을 갔겠어.”

“그러니까 누이의 말은 몸이 갔기 때문에 대사님을 뵌 것이 아니란 말이야?”

“뭐라는 거야? 말귀도 못 알아들어?”

“아무래도 우창이 멍청한가보다. 그러니까 누이가 가르쳐줘봐.”

“당연히 마음에 스님을 뵙고 싶어서 몸이 간 거잖아. 그걸 말로 해야 알아?”

“그렇다면 마음이 먼저야? 아니면 몸이 먼저야?”

“마음이 일어나서 몸이 따른 것이잖아. 어? 그러니까... 마음이 체가 맞네. 맞아. 내가 잘 못 이해하고 있었네.”

“누이의 매력은 바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지. 하하~!”

“당연하잖아? 잘못 알고 있었다고 그것을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는 것은 배움의 자세가 아닌 줄은 아니까. 호호호~!”

춘매가 이해를 한 것을 보고서 염재가 다시 물었다.

“스승님의 말씀으로는 음양이 체인가 오행이 체인가 하는 점입니까?”

“맞아. 염재의 생각에는 어떤가?”

“제자의 생각으로는 오행이 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면 음양은 항상 변화하는 것이 본질인데 오행은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서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까?”

“잘 생각했군. 그게 맞아. 오행은 불변(不變)이고 음양은 상변(常變)이니까 서로 짝을 이뤄서 체용이 되는 것이라네. 하하하~!”

춘매는 처음 듣는 말이 생소했지만 계속해서 듣다가 보면 무슨 답이 나오지 싶어서 잠자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염재가 다시 물었다.

“스승님, 그렇다면 음양보다 오행이 먼저 출현한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나도 단정할 수가 없겠네. 왜냐면 자연의 순환은 음양인데 사람들이 순환을 먼저 생각했다면 이것은 음양을 먼저 인식(認識)했다고 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네. 다만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았을 적에는 당연히 오행이 체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네.”

“아, 제자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선후(先後)의 문제가 아니라 체용(體用)의 문제였던 것을 착각했습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뜻이 될 것이고, 뜻은 오행을 체로 하고 음양을 용으로 하면 된다는 것으로 정리해야 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옳지~! 잘 생각하셨네.”

“그렇다면 과거에 기록된 문서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염재의 접근하는 방법이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하군. 그렇게만 들어간다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네.”

“고맙습니다. 음양과 오행에 대한 위치를 잘 이해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많은 의문이 풀렸습니다. 선현의 생각은 흔적이 없고, 남은 것은 기록뿐이니 그 기록의 존폐(存廢)로 인해서 후학의 생각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쩔 수가 없으니 남겨진 것에서 조각을 찾아서 맞춰보는 것이 최선일 것이고, 여기에다가 합당한 논리를 덧씌워서 정리하는 것이 후학의 몫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흔적의 자료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우창은 핵심을 짚어가는 염재의 질문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갑자(甲子)의 근원(根源)부터 차근차근 찾아가려는 마음가짐이라면 엇길로 빠져나가지 않고 올바르게 오행의 이치에 도달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은 반드시 길을 찾기 마련인 까닭이다.

처음에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괜히 마음만 급해서 선불 맞은 산돼지 마냥으로 허둥대다가는 제풀에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것이 비일비재(非一非再)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한 것을 항상 봐왔던 터라 염재가 접근하는 방향은 핵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