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 제24장. 정업(定業)/ 7.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경계

작성일
2020-10-30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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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5] 제24장. 정업(定業)


7.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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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歸路)는 언제나 가는 길보다 가깝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세 사람도 서두를 필요가 없어서 성운사를 나서면서 천천히 산천의 경계를 감상해도 되었다. 올 적에는 마음이 약간 바빴던 것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초행길인지라 주변의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기도 했었다. 이제 풍광(風光)을 즐기면서 마차에 앉아서 지나치는 풍경을 즐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이 춘매가 물었다.

“근데, 오빠~!”

춘매의 말에 우창이 돌아다 봤다.

“그 뭐랬더라... 유위? 그게 뭔지 이해가 안 되네? 설명을 좀 해 줬으면 좋겠어.”

“아, 선업에도 물들지 않고, 악업에도 물들지 않으려면 무위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던 게구나.”

“맞아~! 난 그게 무슨 뜻인지를 정확하게 모르겠어. 안개 속에서 사람을 보는 것처럼 어렴풋하기는 한데 명쾌한 오빠의 설명이 필요해.”

“아니, 지금 이 멋진 자연의 풍경을 즐기는데 그 이야기를 꼭 물어야만 했더란 말이야? 하하하~!”

“오빠는 당연히 잘 알고 있는데, 내가 모르면 우리의 대화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나도 알고 싶단 말이야. 아까 원명대사와 대화하는 말을 들으면서 못알아 들어서 많이 답답했거든.”

우창도 궁금한 것은 못 참는데 춘매도 딱 그랬던 모양이다. 문득 염재를 바라봤다. 그도 흥미가 있다면 이야기를 해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집에 가서 춘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염재는 우창이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를 얼른 알아챘다.

“스승님, 사실은 제자도 그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자세히 설명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풍경도 감상하면서 말씀해 주시면 귀담아 듣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제야 두 사람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마차에서 말을 하니까 말의 움직임에 따라서 적당히 흔들어주는 것도 이야기하기에 장단을 맞추는 것 같아서 색다른 분위기였다.

“우선, 유(有)나 무(無)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데 문제없을 것으로 봐서 그 뒤에 붙어있는 위(爲)의 뜻에 대해서 먼저 설명하는 것이 좋겠네. 이 글자를 분석해 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지. 그 이야기는 집으로 가서 나누도록 하지.”

그러자 염재도 열심히 말을 몰았다. 풍경을 보는 우창과 춘매는 여유롭지만 염재도 이미 전에 왔었던 길인지라 새로울 것이 없어서 앞만 보고 서둘러서 집까지 도착했다. 집에 오자 춘매가 시원한 음료를 가지고 우창의 점술관으로 와서 셋이 마주하고 앉았다. 우창이 곰곰 생각하더니 종이에 그림과도 같이 생긴 글자를 하나 썼다.

265 할위전자

그것을 본 춘매가 물었다.

“어? 이건 글자로 보이긴한데 무슨 자야? 위(爲)자?”

“맞아, 누이가 잘 짐작한 대로 그 글자야 물론 이것은 고대에 사용했던 전자(篆字)인데 나도 예전에 위(爲)를 생각하다가 찾아봤던 적이 있어서 문득 생각이 나는 대로 그려본 거야. 그러니까 약간 다를 수도 있겠지.”

“그야 상관없어. 오빠는 항상 옳으니까. 호호호~!”

“자, 아래쪽에 있는 모양을 봐? 무엇으로 보여?”

춘매가 가만히 보고는 말했다.

“음, 잘 모르겠네. 양인가?”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 그런데 양이라기엔 꼬리가 너무 길잖아?”

“그렇구나. 꼬리가 이렇게 길고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것은 호랑이가 떠오르는데?”

“내가 봐도 그래. 그렇다면 아래의 동물 모양은 호랑이로 보면 되겠지?”

“응, 비슷해. 그 위에 있는 것이 문제네.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내가 보기에는 왼쪽 위에 있는 것은 동물들이고, 오른쪽에 있는 것은 사람으로 보여. 이게 맞는다면 무슨 뜻일까?”

“아니 잠깐~!”

“응? 왜?”

“이게 사람이라는 것은 언뜻 봐서 인(人)을 닮았으니 그렇다고 하겠지만 왼쪽의 이것은 동물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아닌가? 너무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것 같아서 말이야. 다른 것으로 볼 수는 없나 하고. 호호호~!”

“전혀 안 닮았어?”

“그야 뭐, 오빠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할 수는 있겠지만 왠지 언뜻 그렇게 보이지는 않아. 그렇지만 이런 것은 어차피 암시라고 한다면 보이는 만큼 해석하면 되는 거니까 그냥 설명을 듣는 것이 좋겠네. 호호~!”

“비슷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게 읽히면 또한 그 사람의 몫이니까. 하하~!”

“알았어. 그렇다면 음... 호랑이 밥인가?”

“옳지~! 잘 생각했어. 호랑이는 동물이든 사람이든 다 먹이로 삼을 수가 있으니까 그렇게 해석을 해 보는 거야.”

“그건 말이 되네. 그러니까 위(爲)는 호랑이가 사람이나 동물을 잡아먹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그야말로 서문(書文)보다 언문(言文)이네. 와우~!”

“그건 또 왜지?”

“글자만 봐서는 뭔지 모르겠는데, 오빠가 그럴싸한 설명을 붙이니까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는 뜻이야. 글자보다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훌륭하다는 거지 뭘. 호호호~!”

“누이도 이에 대해서 동의한다면 다음 이야기는 매우 수월하겠군.”

염재와 우창이 춘매가 따라준 수정과를 마셨다. 우창이 목을 축이고 말을 이어갔다.

“위(爲)는 ‘한다’는 뜻과, ‘된다’는 뜻이 있으니까 두 가지로 해석을 하는 것이야.”

“그야 뭐 비슷한 말이잖아? 하는 거나, 되는 거나, 생각해 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지 싶은데?”

춘매가 그렇게 답하자 다시 우창은 염재에게 물었다.

“염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자의 생각도 사저님의 말씀과 같다고 봅니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한다’는 것은 지금 뭔가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호랑이로 치면 동물을 잡아먹을 것인지, 사람을 잡아먹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먹을 것을 선택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것을 다시 꼭 먹이와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행위(行爲)와 연계(連繫)시켜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왼쪽의 동물을 선택하는 것은 악업(惡業)이고, 오른쪽의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은 선업(善業)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호랑이처럼 보이는 것의 선택에 달렸다고 봐서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어느 것을 선택하든 모두가 가능하다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감당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습니까?”

우창이 염재의 말을 듣고 맞장구를 쳤다.

“멋지군~!”

그러자 춘매도 말했다.

“우와~! 염재의 생각이 그렇게 깊은 것이었어? 놀랐네~!”

“제자의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그렇게 선악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호랑이의 몫이고 그것은 인간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그 마음에 어떤 것을 택하든 온전히 자신의 마음인 것이지요. 선악의 선택도 원점에서 본다면 이와 같아서 극히 미세(微細)하거나 사소(些少)한 일로 인해서 선택된다고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제방(堤防)의 둑이 무너지는 것은, 작은 개미의 구멍에서 비롯한다는 말과 같지 않을까 싶어서 해 본 생각입니다.”

“맞는 말이네. 계속하시게.”

우창이 동의를 해 주자 염재의 말이 이어졌다.

“이것은 인과(因果)로 본다면 인(因)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위(爲)에는 인(因)이 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지 싶습니다. 이것이 ‘한다’는 뜻의 할위(爲)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제대로 잘 이해했네. 그리고 설명까지도 잘했어. 매우 흡족하군. 그렇다면 다음에는 될 위(爲)에 대해서도 설명해 볼 텐가?”

“스승님의 칭찬을 들으니까 제자가 제대로 물어볼 곳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묻고는 싶은데 답을 얻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염재로부터 문답의 이야기가 나오자 춘매가 우창을 보면서 웃었다. 이미 얼마 전에 이야기를 나눈 문답의 이야기가 생각나서였다. 염재가 자신감을 얻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될 위의 ‘된다’는 것은 인과에서 과(果)에 해당한다고 보겠습니다. ‘무엇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성(理性)은 원인(原因)이 되고, 감정(感情)은 결과(結果)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생각하는 것은 원인이고, 행동하는 것은 결과라고 할 수도 있으니 결국 위(爲)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보는 것은 타당하겠는지요?”

“물론이네. 매우 잘 정리했어.”

우창이 자신의 말에 동조(同調)하자 염재도 신명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행위(行爲)가 되고, 그것을 유위(有爲)라고 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행위는 실행하는 의미가 되므로 이해하기 쉽지만, 범위가 좁아질 수가 있는데, 유위라고 하게 되면 행위를 하기 전 단계의 형태까지도 모두 포함을 할 수가 있으므로 넓은 의미로 쓰인다고 하겠습니다.”

“맞는 말이네. 오히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깊이 파헤치는 것 같아서 좋아. 하하~!”

“고맙습니다. 스승님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더욱 좋아집니다.”

춘매도 염재의 풀이에 대해서 칭찬을 했다.

“나도 동감이야. 멋진 해석을 들으니까 위(爲)에 대해서 아리송하게 생각되었던 것이 명료해졌어. 그래서?”

“사저님께서도 도움이 되셨다니 큰 보람입니다. 그럼 계속해서 말씀을 드려 보겠습니다. 모든 유위는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생겨나는 원인과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번뇌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음양에 치우치지 않은 관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을 유위에 대비해서 말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무위(無爲)가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더라도 의식에 새겨두지 않으면 인과율(因果律)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될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도인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 있던 춘매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아 맞다~!”

“어? 무슨 생각이 났어?”

우창이 묻자 춘매가 대답했다.

“왜 전에 원명 스님을 만났을 적에 전생에 오빠가 어머니였고, 내가 아들이라고 했잖아. 나는 전생을 기억하는데 오빠는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를 묻자, 스님이 말씀하셨지?”

“뭐라고 하셨나 잊어버렸는데?”

“스님의 말씀에 오빠는 어미가 할 일을 했기 때문에 이번 생의 기억 속에 새겨지지 않아서 잊어버렸는데 아들은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했잖아? 지금 유위와 무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그 생각이 나서 말이야. 이것으로 그 상황을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춘매의 말에 우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같은 말이네. 더구나 왜 유위에 머무르지 말고 무위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이해가 되는군. 그렇다면 보시(布施)로 말하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도 같은 말이겠는 걸.”

“무... 무슨 보시?”

“무주상보시라는 것이 있거든. 혹 염재는 이런 말을 들어 봤나?”

“예,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내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에도 유주상이 있고, 무주상이 있다는 말을 들어 봤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상의 보시는 ‘내가 무엇을 베푼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베푸는 것을 말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승님의 전생으로 말한다면 어머니는 무주상보시를 한 것이고, 아들은 유주상보시를 받은 셈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자 춘매가 다시 물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다시 설명해 줘.”

춘매가 이해를 못하자 우창이 춘매를 위해서 다시 설명했다.

“보시가 무슨 뜻인지는 알지?”

“그야 내가 갖고있는 것을 되돌려 받겠다는 생각이 없이 누군가에게 베푸는 거잖아?”

“맞아. 어머니가 아들에게 밥을 해 먹이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무주상보시가 되겠지? 그리고 ‘내가 배가 고픈 우창에게 밥을 해 먹였네.’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것이 유주상보시인거야.”

“아, 그러니까 밥을 해 먹였으나 밥을 해 먹였다는 생각이 없이 그냥 베푸는 것이 무주상보시란 말이야?”

“바로 그 말이야.”

“그렇구나..... 그런데?”

“뭐가 그런데야. 보시한다는 생각으로 보시하면 유위가 되는 것이고, 그러한 생각이 없이 보시하면 무위가 된다는 말이잖아. 아무런 대가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흐름에 따라서 밥때가 되어서 밥을 했고, 밥을 하고 보니까 밥을 먹을 사람이 있어서 같이 먹었을 뿐, 밥을 했다는 생각, 밥을 먹인다는 생각,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없으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최상(最上)의 보시라는 말이지. 이제 이해가 되었어?”

“이야~! 진리의 세계는 단순하고도 참 복잡하구나. 이제 겨우 이해를 하고 보니까 순전히 도둑놈 심보잖아?”

“어? 무슨 말이야? 도둑놈이라니?”

“얻어먹고서도 얻어먹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니까 말이지. 호호호~!”

“아, 그게 또 그렇게 되나? 하하하~!”

“물론 농담이야. 잘 알아들었어. 그러니까 유위보다는 무위가 높은 단계이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깨달음으로 인해서 도달하게 되는 것이니까 억지로 흉내를 내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닌 줄을 알고 열심히 공부해서 번뇌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잖아?”

“옳지~! 깜짝 놀랐잖아. 난 또 누이가 무엇을 잘못 이해했나 하고 말이지.”

“가끔 오빠를 놀라게 하는 것도 내 즐거움 중에 하나니까. 호호호~!”

말을 듣고 있던 염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오늘은 늦었으니 공부는 내일 하면 어떻겠습니까? 위(爲)자 하나만으로도 머릿속이 가득 찬 것 같아서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내일 다시 공부하러 와서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래도 되겠는지요?”

“아, 그야 물론이네. 내일부터는 누이가 기본적인 것을 안내해 주기로 했으니까 일찍 와도 되네. 어느 정도 공부가 되면 또 둘이 함께 공부하면 될 테니까 열심히 하게.”

“사저님께 공부한다니 또한 행복합니다. 명쾌한 가르침을 기대해도 되겠습니다. 오늘은 너무 행복하고 즐겁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럼 제자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편안히 계십시오.”

“그래 염재도 잘 가게나~!”

우창과 춘매는 염재를 돌려보내고서 둘이서 마주 앉았다. 춘매도 오늘의 공부가 너무 심오해서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빠, 나도 머리가 천근은 된 것 같아.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 하겠어. 오늘은 유위와 무위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행복했다고 적어놔야겠네.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은 수지가 맞았는데 오빠는 손해만 봤지?”

“그게 무슨 소리야?”

“맞잖아~! 오빠는 가르침을 주기만 했으니까.”

“지금 누이가 나의 무주상보시를 유주상보시로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야?”

“어? 그건 또 무슨 가르침이지?”

“나는 가르침을 베풀었다는 생각도 없이 대화하고 생각을 나눴을 뿐인데, 누이가 뭘 받았다고 생각하고, 내가 뭘 손해 봤다고 생각하니까 결국은 유위를 주고받았다는 말이잖아?”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참 내, 그냥 좀 듣고 넘어가면 안 되나? 꼭 그렇게 시시콜콜한 것까지 따져서 밝혀야 하나?”

“당연하지. 그게 내 일인걸. 만약에 내가 알고 있으면서 가르치지 않았다면 그것이 맘에 걸려서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유위가 되는 거야. 그러니까 전부를 다 털어서 전해주고 다시 빈 주머니가 되면 마음이 개운하고 홀가분해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임을 누이가 알까?”

“나도 어렴풋이나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겠네. 나도 앞으로는 유위에서 무위로 변화하는 기쁨을 누리도록 할 거야. 그러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지?”

“맞아. 공부해서 가득 채우게 되면 비로소 비울 수가 있는 거니까 말이야. 만약에 공부하지 않고 비울 수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고 봐야지. 그러니까 사람은 응당 공부하고, 깨닫고, 비우고, 자유로워지는 흐름을 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보면 되는 거야. 나도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야.”

“정말 오빠를 만나서 행복하네. 근데 이렇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도 유위잖아?”

“물론이지. 유위가 되지.”

“그럼 안 되는 거야?”

“당연하지. 안 되지.”

“그럼 너무 무미건조(無味乾燥)하잖아?”

“그게 도(十)야.”

“도는 무미건조한 거라고? 그건 너무 재미없는데.”

“재미를 찾으려면 도를 배우지 말고 노름과 춤과 노래를 배워야지. 도는 원래 맹물과 같이 담담(淡淡)한 것을 아직도 몰랐단 말이야?”

“참말로 그런 거야? 왜 행복을 느끼면 안 되는지 설명이라도 해 줘봐.”

“행복(幸福)하다는 것은 불행(不幸)함을 전제로 나온 말이거든. 그러니까 다시는 불행해지고 싶지 않겠지?”

“당연하잖아. 이렇게 행복한데 왜 불행해지고 싶겠어?”

“그러려니까 행복을 지키려고 하겠지?”

“그....런....가....?”

춘매가 얼른 이해되지 않는지 눈을 껌뻑이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것을 본 우창이 다시 설명을 보탰다.

“만약에 누이가 행복(幸福)한 것에 대한 원인이 내가 옆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럼 불행(不幸)하겠네.”

“그게 유위인 거야. 유위는 번뇌를 만들지. 내가 보따리를 만지는 것만 봐도 가슴이 철렁하고, 어디 나갔다가 늦어져도 가슴이 철렁하게 되지. 자신의 행복이 불행으로 변했을까 봐서 말이야.”

“우와~!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거였어? 놀랍다 놀라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그야 매우 간단해.”

“그러니까, 그 간단한 것 좀 알려줘. 나도 불행하지 않고 싶단 말이야.”

“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오늘을 즐기면 되는 거야.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즐기면 되는 거야. 그러면 남을 것이 없으니까 설령 내가 내일 보이지 않아도 또 어디론가 갔나보다 하면 되니까. 붙잡으려고 하면 유위가 되는 것이고, 붙잡아 봐야 내 맘대로 안 되니까 인연에 따라서 오든 가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된다면 상처를 받을 일도 없으니까 그것이 무위에 가깝겠지?”

“그나마도 무위에 가까운 거였어? 그런데 듣고 보니까 정말 오빠가 갑자기 내 앞에서 보이지 않으면 불행해지겠네. 그건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미 깊은 마음속에서는 그러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막상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순간적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결국은 자연의 이치란 무위에 가까울수록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좋은 방법이기도 하겠네. 잘 알았어. 오빠가 내일 보이지 않아도 안타까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배울 수가 있을 적에 열심히 공부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또 후회나 하고 있을 것이잖아? 후회는 유위보다도 더 못한 것이지?”

“맞아. 그렇게 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봐도 덤덤하고, 미운 사람을 봐도 담담한 수준이 되겠지? 그러면 비로소 무위에 가까워진다고 할 수가 있지 않을까?”

“뭔가 조금 미진한 감이 있었는데 이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 졌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도 알겠고, 어려운 이야기도 알아들을 수가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가벼워졌어. 이제 오빠가 언제 떠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오늘은 더욱 행복한 날이라는 것만 남게 되잖아? 호호호~!”

우창은 춘매의 깨달음이 기뻤다. 마음에 집착을 내려놓는 법을 깨달아 가는 것이 고맙고도 기특해서였다. 춘매가 즐거운 마음으로 저녁을 준비한다고 가고 나자 자신도 과연 제비 동굴을 떠날 적에 아무런 미련이 없이 바람처럼 움직여야 할 텐데 잘 될 것인지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안개처럼 피어올라서 창밖을 내다보면서 아직도 가야 할 공부의 길이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