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 제24장. 정업(定業)/ 6.인연(因緣)의 두 고리

작성일
2020-10-25 05:48
조회
1070

[264] 제24장. 정업(定業)


6. 인연(因緣)의 두 고리


========================

“사저(師姐)님 염재입니다~!”

꽤 이른 시간인데 말발굽 소리가 멈추더니 염재가 마차에서 내리면서 마침 밖에 나와 있던 춘매를 보고서 인사를 했다.

“아 염재가 왔구나. 반가워~!”

“편히 지내셨지요? 오늘부터 공부하려고 아침을 먹고는 서둘러서 스승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래 잘 왔어. 들어가 봐 안에 계셔.”

염재가 안으로 들어가자 우창이 책을 읽고 있다가 반겨 맞았다.

“스승님 문안드립니다.”

“염재인가. 어서 오시게나.”

“오늘은 날씨도 참 좋습니다. 바람도 산들거리며 불고 있어서 더위가 주춤한 것처럼 보이네요. 어디 나들이라도 하시려면 제자가 모시겠습니다.”

마침 춘매가 들어오다가 그 말을 듣고는 반색을 한다.

“와~! 잘 되었네. 오빠, 성운사가 궁금했는데 가볼 생각 없어?”

“성운사?”

“아 그 스님이 주지를 맡아야 한다는 절 말이야.”

“맞아, 한번 놀러 오라고 했는데, 누이가 마음이 그쪽으로 동했으면 가볼까?”

“나야 좋지~! 얼른 준비할게.”

“아니, 준비랄게 뭐가 있어? 그냥 훌쩍 떠나면 되는 거지. 그런데 한참 가야 할 텐데?”

우창의 말에 춘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염재가 모신다잖아. 마차는 뒀다 삶아 먹으려고? 호호호~!”

“마차?”

춘매는 염재가 타고 온 마차가 타고 싶던 차에 바람을 쐬러 가지 않겠느냐는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한 번도 타보지 못한 마차를 오늘에서야 타보는가 싶었기 때문에 우창이 행여 딴소리라도 할까 싶어서 얼른 입을 막고 방향을 잡았다.

“염재가 마차를 대령하고 있잖아.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어서 준비하고 가보자고. 호호호~!”

모처럼 나들이에 신이 난 춘매였다. 우창도 문득 원명 대사를 만나면 염재의 전생 이야기를 듣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의했다. 어쩌면 염재에게도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되겠지 싶었다.

“아마도 성운사까지 50리 길은 될 거야. 그러니까 걷는다고 하면 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걸리겠지만 마차를 이용한다면 여유롭게 다녀올 수가 있겠어.”

두 사람이 준비하기를 기다렸던 염재가 마차에 올라서 출발할 준비를 했다. 한참을 기다려서 춘매가 마차에 오르자 천천히 출발했다.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싱그러웠다.

“오빠는 마차를 타 봤어?”

“타 봤지.”

“그랬구나. 나만 못 타봤었네. 오늘 소원 하나 풀었어. 호호호~!”

그러자 염재가 한마디 거들었다.

“스승님께서 제남부(濟南府)에서 곡부(曲阜)로 오실 적에 모셨던 관원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곡부까지 모셔다드리고 왔는데 오가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셔서 지루한 줄도 모르고 잘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께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으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 그랬군. 나도 생각이 나네. 하하하~!”

“그런데, 성운사에는 어떤 인연이 있으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일전에 순행을 돌다가 들려봤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길도 잘 알고 있었는데 마침 성운사를 가고 싶으시다고 해서 내심 반가웠습니다.”

“별것은 아니네. 예전에 찾아오셨던 대사님이 계셨는데 마음이 동하면 놀러 오라고 한 것이 생각났지.”

그 말에 춘매가 거들었다.

“성운사에 주지로 가는 스님이 내게 와서 안마를 받고 오빠에게 점괘를 봤잖아. 오대산 스님인데 법력이 보통이 아니셔. 아마 염재에게도 어쩌면 귀중한 말씀을 해 주실지도 몰라. 호호호~!”

“아, 그렇습니까? 사저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염재도 기대가 됩니다. 이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풍광을 즐기면서 한 시진 반을 달리니까 일주(日柱)문이 앞에 나타났다.

「성운사(星雲寺)」

일주문을 지나서 다시 한참을 들어가자 절의 입구가 보였다. 하마비(下馬碑)에서 마차를 묶어놓고는 세 사람은 대웅전으로 향했다. 그러자 방문자를 안내하는 지객승(知客僧)이 일행을 보고는 다가왔다.

“나무아미타불~! 혹 일이 있어서 오신 시주님들이십니까?”

그 말에 춘매가 공수를 하고서 말했다.

“예, 주지 스님을 뵙고자 찾아왔어요.”

“혹, 사전에 어떤 약속이 있으셨는지요?”

그 말에 우창도 공수를 하고서 답했다.

“지나는 길에 놀러 오라는 원명 대사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마침 접객실에 계시니 안내를 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일행은 지객승을 따라갔다. 어느 전각 앞에서 안에다 대고 말했다.

“주지스님, 지객입니다. 시주님들이 뵙고자 찾아와서 모셨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잠시 후 안에서 동자승이 문을 열고는 들어오시라는 말을 하자 지객승은 물러가고 세 사람은 동자승의 안내를 받아서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응접실에는 다른 손님들이 서넛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담소하다가 우창 일행을 맞이하고는 눈으로 인사를 건넸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원명이 우창과 춘매를 알아보고는 반겨서 일어났다.

“아니, 어인 일로 이렇게 먼 걸음을 하셨소이까? 잘 오셨소. 이리 앉으시오.”

“대사님 편안하셨습니까?”

“대사님을 오랜만에 뵈니까 더 좋아 보이시네요.”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는 원명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초면(初面)인 염재를 춘매가 소개했다.

“스님, 이 사람은 우리를 데려다주느라고 동행한 인연이에요. 좋은 말씀 부탁드려요.”

“잘 오셨소이다. 참 좋은 인연이오~! 자, 여기 과일과 차를 드시면서 천천히 이야기 나누시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미리 와 있던 사람들과도 간단히 인사를 나누도록 했다. 아마도 성운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재가불자(在家佛子)들인가 싶었다.

“말씀을 나누시는데 불쑥 찾아와서 불편하게 해드렸나 싶습니다.”

우창이 인사치레로 말을 하자 모두는 그렇지 않다는 듯이 인사를 받았다. 그러자 이미 중요한 이야기는 다 나눴는지 그들이 자리를 일어나는 바람에 잠시 소란이 일었지만 이내 네 사람만이 남게 되었고, 동자승이 차를 우려서 따라주는 일을 하느라고 분주했다.

“대사님께서는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새로운 자리를 맡으셔서 여러 가지로 심신이 고단하셨지 싶습니다.”

“아, 우창 선생의 덕분인지 큰 어려움이 없이 잘 수습이 되어가고 있소이다. 급한 불은 대략 끈 것으로 보이고, 이제 마무리만 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지 싶소이다. 그런데 이 젊은 시주님은 초면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려. 허허허~!”

그러자 염재가 계면쩍게 허리를 굽히고는 자기를 소개했다.

“대단한 기억력이십니다. 달포 전쯤에 그 문제로 인해서 현령(縣令)을 모시고 함께 방문했던 통판(通判)인 도대림(陶大臨)입니다. 이렇게 오늘은 평복을 입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셨습니다.”

“아, 그랬었구료. 복잡하게 실타래처럼 얽힌 성운사의 일들을 명쾌(明快)하게 풀어냈던 통판이었는데 알아보지 못했으니 미안하오이다. 잘 오셨소. 그런데 또 이렇게 인연들이 되신 것을 보니 반갑소이다. 허허~!”

“대사님께서 공명하게 일을 밝히시고자 하는 바람에 관헌(官憲)에서도 어려움이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숨기고 거짓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무척이나 복잡할 일들인데도 쉽게 풀어가니까 오히려 빨리 해결이 되지 싶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당시에 대사님을 뵙고서 따로 조용한 시간을 얻어서 법문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인연으로 귀한 자리에 함께하는 홍복(洪福)을 누리니 뭐라고 표현할 말이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선연(善緣)이오~! 허허허~!”

원명이 염재에 대한 느낌이 좋았다는 것을 말하자 염재도 그에 대한 느낌을 말했다. 그 말에 요즘 인연공부를 나름대로 잘하는 춘매가 물었다.

“스님, 염재에 대해서 선연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인지 설명을 듣고 싶어요. 인연법은 참으로 신기하거든요. 호호~!”

춘매의 말에 원명이 말했다.

“좋은 인연끼리 만나서 다시 좋은 씨앗을 만들게 되니 그것이 선연이라는 것이오.”

“그럼 악연은 어떻게 되나요?”

“악연? 아, 인연의 선악(善惡)을 물었던 것이오? 그것은 비유하자면 웃음과 분노로 말을 할 수가 있겠소이다.”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궁금해요.”

“인연은 흡사 강철로 만들어진 고리와 같소이다. 하나의 고리가 또 하나의 고리로 이어지는 셈이오. 그런데 인(因)이 있어야 과(果)가 있으니 그 인이 선하게 심어진다면 과는 또한 어떻게 되겠소?”

“그야 당연히 결과(結果)도 선하게 열매를 맺게 되지 않을까요?”

“맞소이다. 마치 웃는 사람 옆에 있으면 덩달아서 웃음이 나와서 전염(傳染)이 된단 말이오. 그러니 웃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혼자서 화를 낼 수가 있겠소?”

“그건 어렵겠는걸요.”

“그래서 화가 났던 사람도 같이 덩달아서 웃게 되는 것이 바로 선연(善緣)이라는 것이오. 반면에 화(火)를 내는 사람들 옆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웃으려고 해도 웃을 수가 없을 것이오. 왜냐면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오. 같이 화를 내거나 그 자리를 떠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오. 그래서 점점 화가 커지게 되는 것을 일러서 악연(惡緣)이라고 하는 것이오.”

원명이 너무나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자 춘매가 바로 알아듣고 말했다.

“아항~!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까 너무나 이해하기가 쉬워요. 그렇다면 선은 선을 부르고 악은 악을 부르는 것이라고 해도 될까요?”

“물론이오. 낭자가 잘 이해하셨소이다. 허허허~!”

“그러니까 염재에게 선연이라고 하신 말씀은 적어도 오빠나 제가 선연의 고리에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호호호~!”

“당연하오. 중생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만으로도 이미 선연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이니 점점 자라서 온 세상을 뒤덮게 되기만을 바랄 따름이오.”

“그런데, 왜 악연의 고리는 없어지지 않을까요? 다들 나쁜 짓을 하지 않고서도 잘 살아갈 수도 있잖아요?”

춘매가 이렇게 말을 하자 우창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원명의 설명을 듣기 위해서 귀를 기울였다. 원명도 우창을 바라보고 미소를 짓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야 우창 선생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다만 빈승에게 물었으니 간단히 답을 하리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은 음양(陰陽)의 이치로 만들어진 것이오. 햇살이 비치면 필연적으로 그림자가 생기게 되는 것과도 같다고 하겠구려.”

“그럼 빛이 없으면 되잖아요?”

“그런 세상도 있긴 하오. 무색계(無色界)의 중생들은 빛과 어둠이 없는 곳에서 살고 있으므로 상대적인 개념이 없소이다. 그러나 이 땅은 욕계(欲界)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으니 수행을 잘해서 무색계로 가는 수밖에 없겠구려. 허허허~!”

“무색계라니요? 색이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부처님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싶기는 한데요.”

“아,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오. 영혼들이 모여서 있다고 생각해 보시오. 영혼은 빛을 의지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가 있소이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는 필연적으로 피할 수가 없는 명암(明暗)의 양면(兩面)이 있으나, 무색계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있으니 선연과 악연의 구분도 필요가 없는 것이오. 이런 이야기는 우리와 무관한 것이니 이 정도만 하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욕계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원명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문득 궁금한 마음이 생겨서 물었다. 특히 춘매가 제대로 대화를 풀어갈 수준이 아직은 미흡하다고 판단한 것이기도 했다.

“대사님, 욕계(欲界)라면 욕망의 세계라는 뜻입니까?”

“그렇소이다. 맘에 드는 것을 보면[色], 소리를 듣고 싶고[聲], 들으면 향기를 맡고 싶고[香], 향기를 맡으면 그것을 먹고 싶고[味], 또 먹으면 즐기고 싶은[觸] 것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고 하겠소이다.”

우창의 물음에 답하는 원명의 말을 듣고 춘매가 말했다.

“와~! 뭐가 그렇게 복잡해요?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대사님의 말씀은,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아, 빈승이 어렵게 말을 했나 보구려. 맞소이다. 그렇게 쉬운 말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줘서 고맙소이다. 허허허~!”

대사가 칭찬하자 춘매가 합장(合掌)을 하고는 다시 말했다.

“아니에요. 제 수준이 그렇게밖에 안 되니까 어떡해요. 호호호~! 그런데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선연으로만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도 정업(定業)인가요?”

“오호~! 정업을 아시오? 맞소이다. 상대적인 구조로 만들어진 이 세상에서는 어차피 그럴 수밖에 없소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떠나서 살아가는 사람은 도인이라고 하는 것이오. 선연과 악연은 항상 상대적인 입장에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도인은 그 중간에서 자신의 길을 가는 까닭이오.”

원명의 설명을 듣자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 춘매가 다시 말했다.

“아항~!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도인이 되고자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선한 인연이라도 맺으려고 하는 것인가요?”

“맞소이다. 그렇게 이해하면 틀림이 없겠소. 허허허~!”

“악연의 고리를 끊는 방법도 있을까요?”

“그야 물론이오.”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 방법이 궁금해요. 그래야 누군가 악연의 고리를 끊고자 하면 알려 줄 수가 있을 테니까요.”

“별것도 아니오.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악의 고리는 끊어지는 것이오. 그리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남을 괴롭히는 것과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모두 악한 것이니 이것만 알면 악연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모두 알게 된 것이오.”

“엄머~! 그렇게 간단한 거였어요? 저는 또 부처님의 법문이라도 3년간 배워야 가능하다고 하실 줄 알았거든요. 호호호~!”

춘매가 이해를 한 듯이 격앙(激昂)이 된 목소리로 말하자 우창이 조용하게 원명에게 물었다.

“대사님, 혹 그러한 의미를 담은 싯귀를 들어 볼 수가 있을까요? 시(詩)로 된 구절을 들으면 기억하기가 좋아서 말입니다. 분명히 그러한 말이 있지 싶어서 여쭙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묻자 원명이 붓을 들어서 시를 한 수 썼다.

264 칠불게송

“소승은 꾸미는 법을 몰라서 글씨도 볼품이 없으니 양해 바라오. 이 게송(偈頌)은 과거(過去)의 모든 부처가 남긴 말이라고 하니 기억해 둬도 나쁘지 않을 듯싶어서 써 봤소이다. 하하하~!”

글씨를 본 춘매가 말했다.

“아니에요. 오히려 소박해 보이는 대사님의 필체가 더 마음에 와 닿아요. 그런데 무슨 뜻인지는 풀이를 해 주셔야죠. 호호~!”

“뜻이야 우창 선생이 풀어보시구려. 하하~!”

우창이 의미를 잘 이해하는지 알아보려고 넌지시 풀이를 권했다. 우창도 사양하지 않고 해석을 했다.

제악막작(諸惡莫作)
제선봉행(諸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

모든 악은 만들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이 깨끗하다면
이것이 모든 부처의 가르침일진저

이렇게 풀이를 한 우창이 원명을 바라보자 원명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소이다. 다만 이것은 중근기(中根機)를 위한 설법이오. 이 단계를 넘어가면 선악(善惡)의 경계(境界)도 무너지지만 그것도 이러한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도달하는 경지려니 싶어서 드린 말씀이오. 하하~!”

이렇게 우창이 풀이한 뜻을 듣고서 춘매가 말했다.

“아니,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잖아요?”

“원래 부처의 가르침은 이같이 여반장(如反掌)이오.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다는 말이외다. 허허허~!”

“정말이네요. 그렇다면 선연의 고리를 맺는 방법도 알 것 같아요. 모든 선한 일을 하면 되겠네요. 남을 즐겁게 하고 자신도 즐거우면 되는 것이죠?”

“허허허~! 낭자의 말은 절반만 맞는다고 해야 하겠소이다.”

“예? 대사님의 말씀을 그대로 뒤집은 것인데요? 설명해주세요.”

“남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 약간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말씀이오. 옛날 주(周)나라에 포사(褒姒)라는 여인이 있었소이다. 그녀를 사랑했던 서주(西周)의 마지막 왕인 유왕(幽王)이 포사를 기쁘게 하려고 거짓으로 봉화를 올려서 제후들이 주나라를 구하러 바삐 달려오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웃는 것을 보고서는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다가 정작 오랑캐가 쳐들어와서 급하게 봉화를 올렸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소이다. 제후들이 몇 차례나 속았기 때문이오. 그래서 서주는 망하게 되었던 것이니 남을 즐겁게 한다는 것은 완전한 말이라고 할 수가 없겠소이다.”

“그런 일도 있었어요? 그건 정말 안 되는 일이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요?”

“간단하오. 남을 괴롭히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고,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악의 고리는 멀어지고 선의 고리가 가까워지는 것이라오.”

“아하~! 그러니까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였네요. 비슷한 것처럼 생각이 되었는데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확연(確然)하게 알겠어요.”

그러자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우창이 말했다.

“대사님의 말씀을 이해하기에는 유위(有爲)는 악의 시작이고, 무위(無爲)는 선의 시작이라고 이해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맞소이다. 우창 선생은 그 이치를 깨달았구려. 허허허~!”

“아닙니다. 언젠가 들었던 말이 떠올라서 말씀드린 것이었을 뿐이지요.”

“무슨 말을 들으셨길래?”

“아, 도인의 삶은 ‘배가 고프면 먹고, 졸음이 오면 잠든다’는 말이었습니다.”

“틀림없는 말이오. 이후로 우창 선생은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오. 허허허~!”

춘매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염재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부터 이번 나들이에서 궁금했던 것이 염재의 전생이었는데 선연(善緣)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그 이야기가 뒷전으로 밀려버렸던 셈이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방향을 전환하려고 대사에게 말했다.

“대사님, 일전에 뵈었을 적에 말씀해 주신 숙명통(宿命通)으로 인해서 너무나 신기한 경험을 했잖아요. 그런데 오늘도 자비를 베푸셔서 염재의 전생에 얽힌 인연을 풀어주시면 좋겠어요. 혹 뭔가 보이면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호호~!”

그러자 원명이 염재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춘매에게 말했다.

“도 통판은 전생에 선연을 많이 지은 사람이 분명하구려. 후광이 밝은 빛인 것으로 봐서 가는 곳마다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될 것이니 전생을 살펴서 무엇을 하겠소이까? 허허허~!”

춘매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자, 귀뜸이라도 해 주고 싶어서 다시 물었다.

“스님, 혹 염재의 전생에서 기녀(妓女)의 모습이 보이는지 궁금해서 여쭤봤어요. 어떤 느낌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러지 않아도, 희미해지는 잔상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거의 사라져서 지금 살펴봐야 별다른 이야기를 해 줄 것이 없구려. 어떻게 해결을 했는지나 들어보도록 합시다. 나는 그것이 더 궁금하오.”

원명의 말에 세 사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춘매가 얼른 나서서 정황에 대해서 대략 설명했다. 꿈속에서 고통받았던 일이며, 우창과 앵화루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숨도 쉬지 않고 설명하자 원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만히 듣다가는 춘매의 말이 끝나자 비로소 말을 꺼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구려. 지금 통판 나리의 숙명(宿命)이 언뜻 보여서 한마디 하려고 했더니 이미 사라져가고 있는지라 어찌 된 일인가 싶었소이다. 정황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소이다. 허허허~!”

그러자 춘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스님께서 해 주실 말씀이라면 그 외의 가르침도 듣고자 합니다. 어쩌면 우리와의 얽힌 인연이라도 있을지 모르잖아요? 실은 그게 더 궁금하기도 하고요. 호호~!”

“낭자는 그것이 더 궁금하셨소? 그러나 그 외의 그림은 보이지 않으니 내가 달리 드릴 말씀은 없을 듯하오이다. 비록 호기심은 이해가 되지만 억지로 없는 것을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선연의 씨앗을 이렇게 심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앞으로 멋진 그림을 만들어 보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오. 허허허~!”

“아, 제가 대사님을 괴롭혀 드렸네요. 죄송해요. 쓸데없는 호기심이 넘쳤어요. 좋은 인연으로 만났으니 잘 가꾸도록 노력하겠어요. 그런데 대사님의 일이 잘 해결되었다니까 또 머지않아서 오대산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그렇소. 실로 빈승은 이렇게 번거롭게 사판(事判)을 보는 것이 맞지 않소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려고 일의 마무리를 봐가면서 다음 주지를 청하도록 할 참이었소.”

대사의 말을 듣던 춘매가 다시 물었다.

“대사님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사판은 무슨 뜻인가요? 주지의 일을 하는 것이 사판인가요?”

“사판은 판사(判事)라고 해도 무방하오. 일을 맡아서 사리(事理)에 따라서 분별(分別)하여 해결하는 것을 말하오. 빈승은 그러한 일이 즐겁지 않고 오히려 번거로우니 어서 산중으로 달아나고 싶은 것이라오. 허허허~!”

이번에는 우창이 물었다.

“사판(事判)이 있으면 이판(理判)도 있습니까?”

“물론이오. 산중에서 수행하면서 이치를 궁리하고 판단하는 것이 이판이잖겠소? 그러니까 사념(思念)이 안으로 향하면 이판이 되고, 밖으로 향하면 사판이 되는 것이라고 하겠소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오대산으로 가서 수행하셔야만 이판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비록 성운사에서 주지직을 하시면서도 마음에 움직임이 밖으로 향하지 않는다면 또한 산중에서 수행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사(理事)에 자유로울 수가 있다면 우창 선생의 말도 맞는 말이기는 하오. 다만 아직 이치를 궁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니 어쩌겠소이까? 그래서 이치를 다 깨닫고 그것을 밖으로 펼칠 때가 된다면 비로소 어디에서 머물더라도 자유로운 삶이 되오.”

“아, 우창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더라도 실제로 반연(絆緣)에 부딪게 되면 어쩔 방법이 없겠습니다. 과연 대사님은 수행승이시네요. 그렇다면 다음에 대사님을 뵈려면 오대산으로 가면 되겠습니다.”

“물론이오. 물론 내일은 아직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단언을 할 수가 없을 따름이오. 허허허~!”

그러자 춘매가 다시 물었다.

“아니, 오대산으로 가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말씀이세요?”

“지금 계획은 오대산으로 가는 것이오. 다만, 가야만 비로소 가는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일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부탁한 주지가 오기를 거부할 수도 있고, 오대산으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거나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수도 있으니 어찌 내일 오대산에 있을 것이라는 단언을 하겠소이까? 허허허~!”

비로소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한 춘매가 말했다.

“잘 알았어요. 그러니까 오대산으로 가실 것이라는 말씀이네요. 그다음의 일은 모를 뿐이라는 거죠?”

“허허허~! 맞소이다. 행여라도 수천 리 길을 걸어서 오대산에 갔는데 원명은 이미 죽고 없다는 소식을 접하면 그것이야말로 빈승이 미안한 일이 아니겠소이까? 그래서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오.”

그러자 우창이 거들었다.

“대사님의 말씀이야말로 무위(無爲)에 가까운 것이네요. 오늘 참으로 소중한 것을 배웠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담소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갈한 절간의 점심을 얻어먹고는 다시 귀로에 나섰다. 원명이 절의 입구까지 나와서 세 사람이 떠나는 길을 전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