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 제23장. 전생록(前生錄)/ 2.육신통(六神通)

작성일
2020-08-25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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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2] 제23장. 전생록(前生錄)


 

2. 육신통(六神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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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은 우창이 차를 우려서 앞에 놓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흡사 돌부처가 앉아 있는 것 같은 무게감이 좁은 방안을 짓눌렀으나 우창은 오히려 그러한 무게감이 좋았다. 얼마 전에 명륜당에서 손헌을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무게감이 새로운 깨달음으로 안내할 압력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주 앉기를 기다린 화상은 말을 시작했다.

“내가 오늘 우창 선생의 열정에 감복(感服)해서 약간의 이야기를 해드릴 테니 그냥 웃어주기 바라오.”

“그럴 리가 있습니까? 기대하겠습니다.”

“육신통이란 ‘여섯 가지의 신통력(神通力)’을 말하는 것이오.”

“아, 원래 그런 뜻이었습니까? 귀신과 소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이름만 들어봐서는 그런 종류인가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여섯 가지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창은 더욱 흥미가 동해서 화상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첫째로는 천안통(天眼通)이오.”

“천안통이라면 천리안(千里眼)과 같은 것인가요?”

“천리안은 천안통의 초보 단계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오. 왜냐면 천안통은 하늘 위와 땅 아래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이지만, 천리안은 지상(地上)에서 전개되는 것만을 보는데 거침이 없기 때문이오.”

“이야~! 그런 것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습니다만, 직접 그러한 것을 수련하는 분은 처음 뵙습니다.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는 눈이라고 하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장애물에 상관없이 모든 것을 다 볼 수가 있다니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인지도 반신반의(半信半疑)하게 됩니다. 다음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둘째로는 천이통(天耳通)이라는 것이오. 이것은 눈으로 보는 천안통과 같은 뜻으로 이 세상과 저세상에서 나는 소리라는 소리는 모두 들을 수가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오, 세간에서 무인(武人)들이 사용하는 천리전음술(千里轉音術)은 초보 단계의 천이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오.”

“아, 전음술은 들어봤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을 적에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고 전하고자 하는 사람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가 아닙니까? 복화술(複話術)도 일종의 전음술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 그냥 장난이라고 보면 될 것이오. 전음술도 터득하려면 많은 수행이 필요한데, 천이통은 사람의 소리, 귀신의 소리, 동물의 소리 심지어는 식물의 소리까지도 모두 알아들을 수가 있는 것을 말하오. 다른 말로는 원음(圓音)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것도 수행을 통해서 얻을 수가 있는 것이오.”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興味津津)합니다. 다음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셋째로는 신족통(神足通)이 있소이다. 말하자면 축지법(縮地法)의 최종단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라오. 공간을 이동할 적에 유형(有形)과 무형(無形)의 존재들에 대해서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통과하여 몸을 이동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소이다. 여기까지의 세 가지를 전단계(前段階)라고 말하기도 하오. 그야말로 몸을 도구로 삼아서 능력을 극대화(極大化)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오. 수호전에서 신행태보(神行太保) 대종(戴宗)의 능력도 신족통을 수련하는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얻은 능력으로 보면 될 것이오.”

“상상을 초월하는 말씀을 들으니 과연 신기막측(神奇莫測)입니다. 오늘 대사님을 만나서 좁은 안목을 두 배로 넓히는 계기가 되겠습니다.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괜찮으시면 누이도 와서 같이 듣자고 하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소이까. 그러시오.”

우창이 얼른 나가서 춘매를 데려왔다. 춘매는 손님으로 온 화상이 떠날 줄을 모르고 있어서 이제나저제나 나가려나 하고 밖을 살피고 있던 차에 우창이 얼른 오라고 하자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서 젖은 손을 얼른 닦고는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넷째는 타심통(他心通)이라는 것이오.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오. 아까 보니까 우창 선생도 약간의 타심통을 발휘하는 것 같았소만.”

“예? 제가 무슨 타심통을 하겠습니까? 그냥 오행에 의한 심리분석에 약간의 경험과 공부가 있는 것을 활용하고 있는 잔재주에 불과합니다.”

“아, 그렇소이까? 오행의 이치로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구려. 흡사 빈승(貧僧)의 속을 들여다보는 능력을 터득하신 줄 알았소이다.”

화상의 말을 들어봐서는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서 어쭙잖은 능력은 태양 앞에 초라한 반딧불이의 불빛으로 여겨질 따름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쑥스러웠다. 그래도 약간의 능력이나마 알아준 것이 싫지는 않았다. 우창이 가만히 있자 화상이 말을 이었다.

“타심통을 하게 되면 모든 생물의 마음을 들여볼 수가 있는 능력을 얻게 되오. 심지어는 초목과 암석의 마음도 알 수가 있기때문에 이러한 것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자칫 큰 재앙이 되기도 하는 것이오.”

화상의 말에 춘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예? 어떻게 재앙이 될 수가 있단 말이죠? 그런 것을 알 수만 있다면 세상을 누비면서 좋은 일만 해도 평생 다하지 못할 텐데 말이에요.”

춘매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그러자 화상은 두 사람을 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가령 나무 아래에서 두 사람이 은밀하게 역모(逆謀)를 꾀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시다. 그 소리를 나무가 듣고서 타심통을 한 사람에게 전해 줄 수도 있소. 그래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의미는 또 다른 차원에서 천지간의 기밀(機密)을 누설(漏泄)한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하고 듣던 춘매도 비로소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이해하고는 더욱 흥미가 동했다. 듣느니 처음이고 상상조차도 해보지 못한 이야기가 화상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상이 타심통을 이야기하자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정말~! 끝내주네요. 손님에게 안마를 해 주면서도 이 사람의 마음과 만족하는 정도가 어떤지 항상 궁금했는데 그것을 얻을 수가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호호호~!”

춘매가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분위기가 삽시간에 밝아졌다. 두 사람도 춘매와 함께 한바탕 웃고서는 다시 이야기에 집중했다. 우창이 물었다.

“타심통을 얻게 되면 과연 재미있는 일이 참으로 많겠습니다. 그런 것은 참으로 부럽습니다. 하하~!”

“그러시오?”

“예, 그런데 그다음에는 또 어떤 것이 있는지가 더 궁금해집니다.”

“다섯째로 숙명통(宿命通)이 있소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존재의 태어나기 이전에 있었던 일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눈으로 본 듯이 알 수가 있는 것이오.”

그러자 춘매가 감탄을 했다.

“엄머머~! 그런 것이 있어요? 와우~! 그것은 정말 좋겠다. 항상 저의 전생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가 궁금했는데 숙명통을 얻게 되면 그것을 그려낸 듯이 볼 수가 있으니 얼마나 신기할까요? 그것이 제일 좋아 보여요. 호호~!”

그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다봤다. 흡사, 숙명통을 알면 오빠와 나의 전생에 대해서 가장 먼저 알아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우창은 그런 뜻도 모르고 마냥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숙명통을 하면 과거 전세(前世)의 풍경을 볼 수가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어찌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이 존재할 수가 있는지부터가 의아합니다.”

“그야 믿으면 있는 것이고, 안 믿으면 없는 것이니 아무도 강요할 수가 없는 것이오. 다만 빈승은 그러한 것이 있다고 생각할 따름이니 너무 다그치지 마시오. 허허허~!”

“일단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만, 우선 마지막의 여섯 번째 신통력(神通力)까지 듣고자 합니다. 이미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도 남은 그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여섯째는 누진통(漏盡通)이오.”

“예? 누진통이라뇨? 그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새어나가는 것[漏]이 다했다[盡]는 말이오. 여기에서 새어나간다는 것은 번뇌를 말하는 것이오. 번뇌는 정기(精氣)를 세어나가게 만드는 구멍인 까닭에 샌다고 말하는 것이오.”

“아하, 그런 뜻이었군요. 그런데 그것은 별로 신기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오. 그러나 오통(五通)의 선인(仙人)도 마지막 누진통을 이루지 못하여 자유를 얻지 못하는 것인 줄을 안다면 또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외다.”

“예? 그렇다면 신선도 마지막의 누진통은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렇소이다. 마지막 육통까지 모두 갖추게 되면 그를 일러서 불가(佛家)에서는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는 것이오.”

“아라한은 들어봤습니다. 듣고 보니까 과연 대단한 능력자가 아라한이었네요.”

“그렇소이다. 아라한이 되어야 비로소 남의 공양을 받을 수준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오. 그전에는 발우(鉢盂)를 들고 탁발(拓拔)을 하더라도 모두가 빚을 지고 업을 쌓는 일에 불과한 것인 까닭이오.”

“아, 그런 것이었습니까? 아라한은 나한(羅漢)과 다른 것입니까?”

“같은 말이오. 인도에서는 아라한이라고 하고, 우리는 나한이라고 하는 것이니 결국은 같은 대상을 말하는 것이오.”

“그 정도라면 불교의 최고 경지를 얻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라한은 곧 부처를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고 말할 따름이오. 허허허~!”

“예? 그 정도로 수행을 해서 자유로운 능력을 얻었음에도 아직도 멀었다면 아라한의 다음에는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우창은 상상하지도 못한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이것은 춘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창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 궁금해서 눈을 모았다. 두 사람의 마음을 알았는지 바로 이어서 설명을 했다.

“보살(菩薩)이오~!”

“예? 보살 말입니까? 보살이라고는 들어봤습니다만, 그렇게 높은 차원에서 머물고 계시는 분들인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렇소이다. 관음보살, 문수보살과 같은 보살이 아라한과 부처의 사이에 존재하는 성인(聖人)들이오. 참고로 오대산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머무는 곳이고, 동해의 보타산(寶陀山)은 관음보살(觀音菩薩)이 머무는 곳이라고도 하오.”

“그런데, 보살이 아라한보다 더 뛰어난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내 그럴 줄 알았소이다. 우창 선생의 질문은 날카롭기가 비수와 같구려.”

“죄송합니다. 궁금한 것은 참지를 못해서 해결해야 하는 버릇이 있는지라.”

“아라한까지 체득(體得)한 사람도 결국은 자신을 위해서 공부를 한 것에 불과한 까닭이오. 그러나 보살의 지위가 되면 비로소 자신을 잊고 남을 위해서 삶을 살아갈 이치를 깨닫게 되니 어찌 아라한 따위가 범접(犯接)하겠소이까?”

“아하....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과 남을 위해서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것의 차이였군요. 과연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오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소중한 가르침을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라한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것이 바로,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것이라오.”

우창은 처음 들어보는 화상의 말뜻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간단한 말이오. 위로는 도를 얻고자 하면서 아래는 중생을 교화하는 이를 말하는 것이오. 이것을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으로 비유하기도 하오. 자신만 타고 가는 작은 수레는 아라한을 위한 것이고, 많은 중생이 함께 타고 가는 큰 수레는 보살을 위해서 마련한 것이라는 뜻이오.”

그러자 춘매가 말했다.

“와우, 너무 심오한 이야기를 나누시니까 저는 머리가 지끈거리려고 해요. 다만 그중에서 숙명통의 이야기는 더 알고 싶어요. 스님께서는 숙명통에 대해서도 깨달음이 있으신지요?”

춘매의 말에 우창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한참 이야기가 물이 올랐는데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화상이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허허허~! 내 그럴 줄 알고 더 이상의 이야기는 줄이려고 했소이다. 이제 여시주께서 관심이 있다는 숙명통에 대한 이야기나 해 드릴까 하오. 허허허~!”

“고대하고 있었어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무엇보다도 저의 전생이 궁금해요. 전생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다가 이 땅에 태어나서 요 모양 요 꼴로 살아가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했거든요. 속 시원하게 말씀해 주세요. 호호호~!”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자신이 궁금한 것을 단숨에 쏟아냈다. 그 말을 듣고서 화상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우창은 춘매의 당돌함이 맘에 걸렸다. 이렇게 무례한 질문에 자칫하면 마음을 닫고 떠나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지가 걱정이었다. 그래서 춘매에게 핀잔했다.

“어허~! 누이가 그렇게 다그치면 스님께서 난처하시잖아. 천천히 말씀해 주실 텐데 왜 그렇게 조바심을 내는 거야.”

실은 우창도 자신의 전생에 관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순서에 따라서 천천히 풀어내야 공부가 꼬이지 않는데, 이렇게 거두절미(去頭截尾)를 하고서 본론으로 들어가게 되면 자칫 이야기의 흐름이 끊길까 봐서 걱정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기우(杞憂)였다. 화상은 이미 우창의 심중을 손바닥을 들여다본 듯이 꿰뚫고 있었다는 듯이 춘매의 다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천천히 흐름을 이어갔다. 우창도 비로소 안도했다. 마음이 쫄깃쫄깃했기 때문이었다.

“낭자께서 매우 직설적이라 맘에 드오. 다만 우창 선생은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구려. 허허허~!”

“역시 대사님의 혜안이 탁월하십니다. 누이의 마음도 이해가 되니 우선 숙명통에 대한 이치부터 듣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거절하지 않으셔서 너무나 큰 감동입니다. 그럼 숙명통의 의미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청합니다.”

“왜 그렇게도 숙명통에 관심갖게 된거요? 그 외에도 신기한 것이 많을텐데 말이오. 허허허~!”

화상이 춘매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춘매가 궁금한 점에 대해서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전생이 과연 있는 것인지조차도 의문이 한가득인데 그러한 세상에 대해서 현전(現前)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니 이런 기회에 그러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아서죠. 호호호~!”

그러자 화상은 춘매에게 물었다.

“낭자는 전생의 존재를 믿으시오?”

“예? 아니, 그건.... 당연히 있으려니.... 하잖아요? 그렇게 물으시면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그걸 물으세요?”

“먼저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숙명통이 무슨 쓸모가 있겠소이까? 전생에 대해서 무슨 말을 들었다고 한들 그냥 상상의 세계이거나 착각이라고 하면 또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냔 말이오.”

“와, 듣고 보니까 과연 옳으신 말씀이시네요. 사실 막연하게 전생이 있으려니.... 생각만 했어요. 실제로 전생이 존재한다고 확실하게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어쩌죠?”

“어쩌긴 뭘 어쩌겠소. 전생을 믿을 만한 기준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거나 더 궁리를 해 봐야 할 따름이지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소? 그것은 아무도 보여주거나 들려주거나 믿게 할 방법은 없다는 뜻이오.”

화상의 말을 듣고 있던 우창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아무래도 춘매가 그 의미를 답하기는 벅차지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창도 전생이 확실하게 있다고 하는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항상 중요한 것은 오늘의 이 순간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온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다만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가끔 해본 생각은 있습니다.”

“오호~! 그게 무엇이오?”

“만약에 전생도 없고, 숙업(宿業)이 없다고 가정(假定)한다면, 단순하게 그해 그날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에게 사주(四柱)의 네 기둥과 삶의 모습이 주어진다는 것은 아마도 무엇인가 설명할 수가 없는 어떤 힘으로 인해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다만 늘 궁금했었습니다. 오늘 대사님을 뵌 인연으로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해답을 얻고자 합니다.”

어느 사이에 우창의 호칭이 변했다. 처음에는 스님이라고 했다가 이제는 대사라고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전생의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온 호칭이기도 했다.

“알겠소. 보통 학자들의 생각이 그와 같다고 보면 될 것이오. 그렇다면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어떻게 수용할 것이오?”

“아, 그런 경우가 있다면 당연히 믿을 것입니다. 실로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정말 궁금합니다.”

“혹 달뢰라마(達賴喇嘛:달라이라마)라고 들어본 적이 없소?”

그러자 춘매가 얼른 답했다. 아까 화상의 물음에 답을 못한 것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야 알죠. 서장(西藏)에 있다는 고승을 말하잖아요?”

“오, 낭자가 잘 알고 있구려. 맞소. 그 달뢰라마는 다시 태어나서도 달뢰라마가 된다고 하오, 그러니까 수명이 다하면 몸을 버리고는 다시 새로운 몸으로 태어난다는 말이오. 이것이 믿어지오?”

춘매가 눈빛을 반짝이면서 답했다.

“와우~! 정말요? 어서 자세한 말씀을 들려주세요. 궁금해요~!”

“달라이라마의 환생에 대해서는 최고의 지도자들이 엄격하게 관리하고 심사하여 틀림없이 전생의 스승이라고 생각이 되는 아이를 찾았을 적에 비로소 인정을 해 주는 것이니까 믿어도 좋을 정도라고 하겠소이다. 물론 애초에 전생을 믿지 않으면 또한 의미가 없는 유희(遊戱)에 불과할 따름인 것은 매한가지라고 하겠소이다.”

우창은 화상의 말에서 상당한 신뢰감(信賴感)을 느꼈다. 그냥 믿으면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으면 공상(空想)의 한 조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표정과 말의 무게에서 신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정말 오늘 대사님을 뵙게 된 것은 전생에 관음보살께 향초를 올린 공덕이라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화상은 우창과 춘매가 자신의 이야기에 성의를 보이자 비로소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수명을 다한 달뢰라마가 환생했다는 것을 최고의 고승들 몇몇만이 찾아낼 수가 있다고 하오. 그렇게 되면 그 아이가 실제로 태어났는지를 찾아가서 확인하는 절차가 있는데 이때에는 평범한 라마들의 모습으로 탁발승을 가장해서 방문하게 되는 것이오. 왜냐면 행여라도 자신들이 전생에 모시던 스승이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부모에게는 큰 충격을 줄 수도 있는 까닭에 아이의 부모도 모르게 찾아가는 것이라오.”

이러하게 말한 화상이 잠시 말을 끊자, 우창이 공감을 표시했다.

“그렇겠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됩니다.”

“그 아기가 5세가 되기를 기다리면서도 수시로 찾아가서 환생한 달뢰라마가 맞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이어지게 되고, 어느 정도 확신이 드는 아이라면 비로소 정식으로 포달라궁(布達拉宮:달라이라마가 생전에 거처하는 사원)으로 데려와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오.”

그 말에 춘매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예? 그 어린 아기에게 무슨 시험을 치게 해요?”

춘매의 반응에 화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이미 도력이 높은 제자들은 모두가 환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일반의 제자들은 반신반의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소이까? 그래서 의례적(儀禮的)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려. 아이의 앞에 똑같이 생긴 요령과 염주를 늘어놓고는 하나를 집게 하는 것이오. 물론 그중에는 전생의 달뢰라마가 사용했던 물건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찾아내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오.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시험은 중지되고 다시 다른 후보의 아이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오.”

춘매가 얼른 말을 받았다.

“그야, 우연히 제대로 그 물건을 집을 수도 있잖아요?”

“물론이오. 그래서 총 다섯 차례의 시험을 겪어야 하오. 특히 마지막에는 자신이 육신의 삶을 마치면서 법을 전했던 가장 아끼던 제자를 찾아야 하고, 그것까지 맞추면 비로소 다음 대를 이을 지도자로 임명하게 되니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과정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외다.”

우창이 감탄을 했다.

“과연, 놀랍습니다. 그것은 전생에 자신이 사용했던 물건이나, 함께 지냈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절대로 통과할 수가 없는 시험이 분명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이미 고승들이기 때문에 매우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오. 그래서 일반의 평범한 아이가 환생한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봐야 할 것이오.”

춘매가 매우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아, 맞아요~! 그런 것이 필요해요. 특별한 영혼의 소유자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막 하던 참이었어요. 호호~!”

“만약에 전생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 중에서 전생의 이야기를 하는 아이와, 전생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태어난 아이가 전생을 말하는 경우가 있다면 어느 것이 더 신빙성(信憑性)이 있겠소이까?”

이번에도 춘매가 얼른 답했다.

“그야 당연히 전생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서 태어난 아이가 전생을 말하는 것이 더 믿을 만하겠네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춘매의 말에 화상은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빈승이 듣기에 서양에 산다는 사람들은 전생을 믿지 않고 다음 생만 믿는다고 하오. 아울러서 다음 생이라는 것도 딱 두 가지의 경우만 존재하오. 하나는 천국(天國)이고 하나는 지옥(地獄)이오. 그들에게 전생의 말을 하면 이단(異端)이라고 해서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고 간주하고 고통을 가하여 절대로 전생을 믿지 못하게 한다니까 그 분위기는 대략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오.”

“아니, 그렇게나 엄격하게 전생에 대해서는 말조차도 하지 못하게 하는데도 전생의 이야기를 한다면 참으로 놀라울 일이겠어요. 어서 그 이야기를 해 주세요.”

“서양에 있는 어느 나라(미국)에 있었던 일이라고 들었소. 사내아이인데 5살이 된 아이(루크 루엘만)가 엄마에게 늘 말을 했다고 하오. 자기는 전생에 어느 큰 도시(시카고)에서 화재로 죽은 여인이고, 당시에 나이는 30세라면서 이름까지 말하는(파멜라) 것을 듣고서 부모는 어린아이가 뭔가 잘못 듣고서 헛소리를 하는 것이겠거니 했다고 하오.”

우창도 화상의 말에 흥미가 동했다. 전생이라는 말조차도 들어보지 못한 지역의 사람에게서 태어난 아기가 자신의 전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말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화상의 말이 이어졌다.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다고 하오. ‘이곳은 너무 뜨거워, 죽을 것만 같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라는 말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하는 것을 들은 부모는 처음에는 흘려들었지만, 아이가 자꾸 반복해서 말하자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를 조사하기에 이르렀다고 하오. 심지어는 ‘큰 건물에 불이 나서 살려고 뛰어내렸다는 말도 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서양인들의 집은 높이 짓고 사는 모양이오.”

우창도 감탄해서 말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확인을 해 봤습니까?”

“그렇소이다. 자신은 전생에 피부가 검은 30세의 여인이었는데, 뛰어내린 것까지만 기억하고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까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고 하오. 그 말로 미뤄서 짐작해본 부모가 실제로 그 말이 맞는지를 확인했고, 그래서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자,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소이다. 이러한 말을 들으면서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생이 분명히 있다고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린아이가 꿈을 꾼 이야기라도 했을 것이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을 것이오.”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춘매가 말했다.

“스님의 말씀은 신뢰감이 들어서 믿고 싶어요. 그런데 저는 왜 전생에 대한 기억이 없을까요? 저도 응당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

춘매의 이유있는 항변(抗辯)을 들으면서 화상은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