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순례⑥ 창덕궁 인정전

작성일
2019-04-30 07:28
조회
971

고궁순례⑥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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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2019.04.22)의 강행군으로 경복궁을 다 훑어봤으니 고단하기도 하련만 그래도 새벽이 되니 가뿐하게 잠이 깨는 몸이 고맙기 한량없다. 만약 의욕이 앞선다고 한들 몸이 천근만근이면 구경이고 유람이고 모두가 귀찮을 따름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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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유람을 하고서 숙소인 아트리움호텔에 도착해서 한숨 푹 잤다. 새벽 6시부터 논산에서 여행길을 서두르느라고 바빴던 하루를 잘 버텨 준 몸에게도 휴식이라는 달콤한 선물을 베풀어 줘야 하는 것이 또한 음양의 이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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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휘 : 호텔은 어디에 잡으면 좋을까요?
낭월 : 창덕궁 가까운 곳이면 좋겠지.
금휘 : 탑골공원 부근이면 좋을까요?
낭월 : 말인둥~! 비싸진 않은감?
금휘 : 가격은 비싸지 않은 곳이네요.
낭월 : 그럼 잡어. 

그렇게 해서 3시 이후에 입실이 가능하다는 것도 확인하고는 그 시간이 되어서 깨끗하고 아담한 숙소에서 꿀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잠만 계속 잔 것은 아니다. 한숨 자고 나서는 광장시장에 가서 저녁을 먹고, 내친 김에 서울 야경이나 보자고 누구나 욕을 하면서도 한 번은 가본다는 롯데타워에 가보는 걸로 합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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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자 뿌연 미세먼지가 보였는데 역시 올라가 봐도 시계(示界)는 별로이다. 그런대로 마음에 점을 찍은 셈이니까 누가 63빌딩 봤느냐고 하면 봤다고 하듯이, 이제 롯데타워는 가봤다고 하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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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에서도 밖으로 나갈 수가 있는 공간이 있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하늘을 쳐다보고 사진 한 장 남겼다. 조리개도 활짝 열고 이소도 64,000까지 올려서 한 장 찍었다. 이렇게 타워를 둘러보고 나서는 언젠가 지나는 길에 꼭 가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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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DDP이다. 야구장에 딱 한 번 가 봤는데, 그곳이 바로 서울 동대문 야구장이었다. 야구장에 딱 한 번만 가 본 것은 큰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야구는 중계를 TV로 보는 것이라는 단순한 이치를 말이다. 그래서 그 후로는 야구장에 갈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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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야구장이 사라진 곳에 곡선으로 만든 건물이 생겼다. 그래서 한 번 구경가도 되겠다... 싶었는데 마침 숙소에서도 가까워서 귀가하는 길에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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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바퀴 돌아보니 디자인도 참 교묘하기는 하다. 다자이너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되었겠지만 그걸 따라서 구현한 사람들은 여간 고생을 하지 않았겠다는 쓸데없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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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샷. ㅋㅋㅋ
그렇게 간단나들이를 마치고는 다시 내일을 위해서 잠을 잤는데...
그 내일이 오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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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창문의 커텐을 열어보는 것은 여행지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날씨가 궁금해서이다. 다행히 햇살이 보인다. 특히 사진놀이에는 햇살의 부조가 지옥문에서 지장보살께 지팡이를 얻는 것보다도 더 고마운 일인 까닭이다.

서둘러서 아침을 먹고는 창덕궁의 개문시간인 9시까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다시 광화문을 찾았고, 버스를 타면서도 교통카드를 잘 찍었다. 전날에는 버스에 타면서 교통카드를 찍었기에 내리면서는 안 찍었더니 금휘가 벌금을 문다잖은가.

그래서 찝찝했는데 오늘 새벽에 검색해 보니까 환승을 할 경우에 그렇고 그냥 내리면 상관없다고 나와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촌놈 티를 안 내려고 종각에 내리면서 늠름하게 찍고 내렸다. 아무도 촌놈인 줄 몰랐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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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광화문을 다시 살펴 본 이야기는 고궁순례①의 광화문 편에 언급했으니 생략하거니와 그렇게 둘러 본 다음에 다시 경복궁역에서 안국역까지 지하철을 타게 되었고, 이제 그 안국역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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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9시에 일행과 창덕궁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역에 내리니 38분. 20분이면 충분하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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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많이 봐서 익숙한 앙부일구가 지하철 통로에 전시되어 있었다. 엉? 이건 무슨 컨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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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멈춘 해시계구나. 그렇지 고장난 벽시계만 멈춰있는 것이 아니고 해시계도 멈출 수가 있는 거지 뭐. 이렇게 지하에서 전등불을 받고 움직이지 않고 있는 해시계를 보면서 이러한 계획을 세운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해시계의 생명을 빼앗은 것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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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모형은 그럴싸 했다. 역시 한 번 가 본 곳과, 가보지 않은 곳의 감흥은 같을 수가 없음이다. 또 가봐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눈길이 머무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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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와 서도의 중간쯤... 그래 저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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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바위였구나... 근데 왜 낭월의 눈에는 백의관세음보살(白衣觀世音菩薩)로 보였지? 그야말로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만 본다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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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촛대로 보여?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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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 맞지 않아? 망원렌즈가 없어서 더 크게 뽑을 수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다시 가게 되면 반드시 800mm로 당겨서 찍어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 그래서 큼직하게 아크릴 액자에 담아서 책상 맞은 편에 걸어놓고 매일매일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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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역 3번 출구로 나가면 창덕궁은 금방이다. 시간은 6분 남았구나.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무리 바빠도 꽃을 보고 그냥 지나치면 화신(花神)이 서운타고 하시지... 그래서 또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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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사도사(司導寺)? 아니, 사도시? 한글을 잘못썼나? 한자가.... 이 글자는 절사(寺), 관청시(寺)로 이어져서 내시시(寺)까지 확장된다. 출가한 승려가 혼자 사니까 내시와도 연결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혹 잘 모르면 옛날 사도사가 있던 절터인 모양이다... 하고 지나칠 수도 있지 싶다. 문득 옛날 통도사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관람객1 : 여기가 통도사라네.
관람객2 : 통탁사라..... 잘 썼네. 대원군이 썼다고?
관람객1 : 무슨 소리 하는거야? 통도사라니까~!
관람객2 : 그래? 내가 보기엔 통탁사로 보이는데...?

이것이야말로 한자가 갖고 있는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래 통도사(通度寺)의 도(度)는 법도도이지만 헤아릴탁(度)도 되는 까닭인데, 관람객1은 그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고, 관람객2는 한문께나 읽었다고 나름 뽑내고 있는 꼴이었는데 뭐 유식을 자랑하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가끔은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주의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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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 3분 전에 창덕궁 정문에 도착했다. 일행인 연지님과 금휘는 이미 와서 표를 바꾸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예매를 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예매를 한 것은 혹시라도 정원초과가 되어서 후원을 입장할 수가 없을까 염려한 까닭이다. 후원의 보호를 위해서 인원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 자리에서 창덕궁 인증샷을 찍는데.... 뒤를 돌아다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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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란 여기를 말한다. 도로 보다 낮은 곳에 돌계단의 시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묻어버리지 않고 드러낸 것은 그나마 유물에 대한 존중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뒤로 갈 수가 없을 데까지 가서 담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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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완벽하다. 계단 위에 돈화문(敦化門)을 올려 놓으니 더욱 품격이 높아질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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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아저씨.....
도무지 움직이질 않으신다....
누굴 기다리시나.... 감동에 사무쳐서 움직인다는 것도 잊으셨나.... 입장시간은 다가오는데.... 마냥 기다릴 수도 엄꼬..... 할 수 없이 다가갔다.

"저... 실례합니다. 조금만....."

이라고 하면서 카메라와 돈화문을 번갈아 가리켰다. 무슨 뜻인지 얼른 알아차린 아저씨.

아제 :  (흠칫) あ~ すみません~!(이라고 했지 싶다. ㅋㅋ)
낭월 : 고맙습니다.


아마도 일본여행객이었던 모양이다. 듣자니, 중국인은 경복궁을 좋아하고 일본인은 창덕궁을 좋아한다더니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낭월이 사진을 찍고는 목례를 하자 그도 낭월이 찍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니까 명당자리를 알려 준 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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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편안한 돈화문 사진을 얻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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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시간이 되었다고 어서 오라는데 낭월은 아직도 해찰이 안 끝났다. 쌍권총, 아니 투바디를 하신 사진가 아제를 만났기 때문이다. 낭월의 행색이 꼭 저와 같을 게다. 낭월은 소니카메라 두 대에 하나는 12-24, 하나는 24-105렌즈를 달고 뛰어다니기 때문인데 차람새나 심지어 카메라 넥스트랩까지도 픽다자인의 제품이니 흡사 자화상이나 데자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다만 낭월은 백팩을 하나 짊어 졌고, 그 안에는 10mm렌즈와 100-400망원렌즈가 잠자고 있다는 것 뿐이다. 가볍게 나들이 나오시면서 쌍카메라를 들고 나왔으니 사진과 카메라를 좋아하시는 동료를 만난 것 같아서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그냥 반가웠다. 낭월의 주변에는 카메라에 미친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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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오늘도 사진복이 넘치셔서 맘에 드는 그림 많이 얻으시기를~~!! 이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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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화문의 잡상(雜像)은 일곱이로구나. 맨 앞에는 손오공이 점잖게 앉아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 어떤 잡귀나 요괴라도 들어오기만 하면 박살을 내 버리겠다는 도도함이 배어난다. 일설에는 맨 앞의 잡상이 삼장법사라고도 하는데, '삼장법사가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김홍식 교수의 견해는 타당해 보여서 손오공인 것으로 보자.

그 뒤로 손오공의 시종인 손행자매, 저팔계(준견), 사오정(준구)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에 서유기가 크게 유행한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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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잡상의 반대쪽에는 살아있는 잡상.. 아니 구상(鳩像)이 자리하고 있다. 마침 비둘기가 그 자리에 앉아줘서 그림이 되었다. 이것이 사진복이 아니고 무엇이냔 말이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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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특별관람 1회차이다. 10시까지 후원 입구에서 대기해야 한다. 그러니까 1시간 동안 부지런히 인정전을 훑어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저 94명 안에 우리 세 사람도 포함되었겠구나. 그 다음 시간은 영어로 안내를 한다는 뜻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외국인 용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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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소한 정보들은 나중에 사료적 가치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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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이 복원공사를 더 진행한다면 또한 당시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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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을 할 수가 있는 것은 해야지.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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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볼거리이고, 기행은 보면서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빠트리지 말고 챙겨놓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참고가 될 수도 있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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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휘 : 아니~ 이게 뭐예요~!
낭월 : 왜?
금휘 : 현장에서 표를 사는 사람들은 진작부터 입장을 하는데 예매자는 기다리잖아요.
낭월 : 원래 잡은 고기는 밥을 안 주는 법인겨. 하하하~!
금휘 : 성의가 없어 보이잖아요.
낭월 : 그럼 다음에는 현장에서 구매를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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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화문이다. 이미 들어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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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걸음 차이일 뿐이다. 난 걸음이 빠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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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기둥이 걸려있으면 공간감이 살아난다. 앞에 물체는 사진가 자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진 좀 찍어봤다는 사람들은 앞에 자기의 모델을 세워놓기 좋아한다. 지금은 돈화문의 기둥이 낭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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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돈화문을 통과했다. 어디를 가던 우회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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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이 많은 것은 나쁠 이유가 없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안내판은 다 둘러 본 다음에 보는 것이다. 참 희안하지.... 둘러보기 전에는 평면적인 안내판이, 둘러보고 나서 보면 입체적이 되니까 말이지. 그래서 '아는 것'과 '보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것이 맞는 말이다. 여기에서 '본다'함은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들어보는 것, 코로 맡아 보는 것, 혀로 맛보는 것, 몸으로 느껴보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그 모두는 보는 것(觀)에 속하기 때문이다.

보는 것도 여러 가지이다. 물체만 보면 견(見)이고, 의미까지 보면 관(觀)이다. 한걸음 더 들어가면 이번에는 장면이 확~ 바뀌어서 찰(察)이 되기도 한다. 과연 어디까지 볼 것인가는 자신의 역량에 달렸다. 견이든 찰이든 스스로의 몫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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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글이 지워졌나...? 했다. 알고 보니 점자안내판이었다. 음... 고궁에 점자안내판이라니.... 마음으로 보라는 뜻일게다. 눈으로는 보지 못하더라도 귀로 듣고 코로 맡아보고 가슴으로 느껴 볼 수는 있을 테니까.....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데 뭐하러 가느냐고 하는 사람과는 또 다른 세상을 알게 될 것이다. 눈이 전부는 아닌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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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북궐이고, 창덕궁은 동궐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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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크게 네 개의 권역인가 보다. 중심인 인정전, 그 옆의 대조전, 그리고 떨어져서 낙선재, 뒷산의 후원으로 나뉘는 구조이니 이야기도 그렇게 풀어가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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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문화유산은 조상자랑이다. 조상자랑을 하는 놈치고 변변한 놈이 없다고 하지만 문화조상은 자랑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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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화(敦化)는 '도탑게 된다'는 뜻으로 보면 되지 싶다. 광화(光化)랑 비교하게 된다. 광화는 빛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빛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자꾸만 도탑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돈화일까? 백성들의 삶이 여유로우면 그것이 도타운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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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거쳐 본 다음인지라 그림만 봐도 실물영상이 떠오른다. 벗님이 만약에 창덕궁을 둘러보지 않으셨다면.... 그냥 선으로 이어진 그림일 뿐이겠지만 둘러본 다음이라면 분명히 입체적으로 멋지게 자리잡은 궁궐이 그 안에 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것이다. 그래서 사진과 영상이 아닌 현장답사가 중요한 이유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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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첫걸음이다. 옛날에는 창덕궁이라고 하지도 않았었지.... 그냥 비원이라고들 불렀다. 일제시대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는 탓이었겠거니 싶다. 비원에 구경갔다가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그 돈으로 단성사에 가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남아있다. 지금도 저럼하진 않지만, 돈이란 것이 상대적인 체감이라서 당시엔 그것도 거금이었거나, 비원에 가봐야 절집을 옮겨 놓은 듯한 느낌으로 인해서 별로 흥미를 못 느꼈기 때문이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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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을 지키는 두꺼비인가? 마실나온 참새 두 마리가 수다를 떨고 있다. 바쁠 일이 없는 나그네에겐 이런 풍경도 재미있는데 지금은 좀 바쁘다고 재촉한다. 그래도 보이는 것은 스캔하고 지나가야지. 나중에 이야기를 만들 적에 잠시나마 미소를 짓게 만드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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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않는 곳에서는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훨씬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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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아래로 흐르는 물이 벽을 깍아내지 못하게 돌로 아무지게 쌓았구나. 천년은 거뜬하지 싶다. 물이 흘러갔으면 더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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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의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다. 문득, 근사하게 차려입은 수문장이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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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문(進善門)이다. 좋은 곳으로 나아가는 문이라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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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문을 들어서니 좌우로 회랑을 만들어서 뭔가 쌓아놓거나 어떤 행사를 할 수가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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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인정전(仁政殿)은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과 대응이 되겠다. 경복은 복(福)이고, 창덕은 덕(德)이니 복과 덕을 겸비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도 되겠다. 거리고 근정은 부지런히 정사를 돌보고, 인정은 어진 정사를 베푸는 것이라고 보면 뭔가 묘하게 서로 연관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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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주변이다. 그야말로 인정전 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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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맵에는 이런 버전도 있었구나. 몰랐네... 실감나는 구먼. 사람들이 점으로 보이는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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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호위청(扈衛廳)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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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원(尙瑞院)도 있다. 정삼품의 당상관이 일을 보던 곳이었던가 본데 내용물은 전혀 없고 휑하니 공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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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이는 문은 후원과 창경궁으로 통하는 곳은  곳이고, 일단 인정전부터 살펴봐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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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문(仁政門)으로 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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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仁)을 쓴 것은 동궐(東闕)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것은 동대문이 흥인지문(興仁之門)인 것으로 봐서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동서남북의 상징이니까 동궐에 인(仁)을 넣는 것은 정해진 공식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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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으로 백성을 다스리겠다는데 누가 싫다고 하랴. 어쩌면 태종이 형제의 난을 통해서 왕권을 잡았기 때문에 그러한 이미지를 바꾸는 의미에서 '나는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고 생각들 하겠지만서도 사실 어진 왕이거덩~!'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게고, '열심히 백성만 다스려야 하는 근정(勤政)은 아버지나 하시라'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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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국보(國寶)이다. 국보의 보물의 차이는 간단하다. 기념을 할만 한 구조물은 보물(寶物)이라고 하고,  그 중에서 특별히 국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국보가 붙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국보1호였던 남대문은 보물도 국보도 아니겠지? 그럴만한 의미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국민의 마음 속에서만 국보1호인 것으로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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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계석이 서 있는 것으로 봐서 왕이 신하들과 대면해서 정사를 진행하던 곳임은 알겠다. 품계석에는 정일품에서 정구품까지 있고, 그 사이에 종품은 종삼품까지만 있는 것은 아마도 약식이었겠거니 싶다. 이것은 경복궁도 그랬다. 그래서 종품(從品)은 당상관인 삼품까지만 자리를 줬던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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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서처럼 추녀로 하늘을 가리고서도 찍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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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계석을 중심으로 놓고 담아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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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25호이다. 그러니까 경회루는 224호였던가? 그랬지 싶구나. 국보를 이렇게 보러 올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불이라도 나면 큰일인데 잘 관리하겠거니.... 불도 너무 자주 나니까 그것도 은근히 걱정스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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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기왕이면 정일품으로 하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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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이름이 있었는데... 자기 얼굴이 물에 비친 것을 보고 달아나기를 바랬던 마음이 담긴 물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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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라서인지 이중으로 물통을 둔 것은 아래에서 귀신이 도망가지 않더라도 위에서는 도망가기를 바랬던 모양이다. 경복궁은 국보 223호이니 역시 소중한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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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 불귀신이 나올리는 없지 싶어서 인정전을 물항아리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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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상이다. 일월오봉산의 병풍은 그 자리에 지키고 있다. 음양오행은 조선왕조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 분명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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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가 양쪽에서 흘러내리는 것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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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상은 황금빛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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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상의 오른쪽에는 체크무늬로 된 마룻바닥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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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천정에 매달린 전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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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전기가 들어오는 시대에 설치했다는 의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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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각으로도 사진을 찍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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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정전을 나와서 진행하니 선정문(宣政門)이 나온다. 전(殿)인 걸로 봐서 여기에서도 왕이 무슨 일을 했지 싶다. 아마도 경복궁의 사정전처럼 왕이 집으로 퇴근하다가 잠시 들려서 신하들과 의논하던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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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이었구나. 814호라고 새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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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전은 인정전과 좌향을 같이 해서 지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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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모여서 국정을 논하던 곳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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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도 맞지 말라고 지붕을 덮었다. 신라시대에는 불국사에서 비를 맞지 않고 오릿길을 걸을 수가 있었다는데 궁궐에서 이 정도야 오히려 소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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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일이야 비가 오면 머뭇거리지만 국사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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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과 다르게 소박하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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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 대신들은 바닥에 앉기가 좀 힘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의자생활이 아니다 보니까 당연히 그렇겠거니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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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것은 용상이 침상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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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정사를 논하다가 피곤하시면 누워서 신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는 여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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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과 노랑 문양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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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의 금실로 짠 베 판 폭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암암리에 황제(皇帝)가 되고 싶었던 마음의 표현이었을까? 이렇게 황제는 중앙이고 중앙은 노랑색인데 노랑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 황금빛인 까닭이다. 이렇게 인정전 주변을 잘 살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