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순례② 경복궁 근정전

작성일
2019-04-2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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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순례② 경복궁(慶福宮) - 근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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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光化門)을 통과하면 조선시대의 법궁(法宮)이라고도 하고, 정궁(正宮)이라고도 하는 경복궁(慶福宮)을 만나게 된다.

경복궁

 

경복궁의 안내도이다. 아직도 복원해야 할 곳이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잔디로 된 부분은 모두 건물이 있었던 자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문화재 복원은 이어질 것으로 봐서 또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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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전체적인 상황을 그려보는 것이 필요하다. 미로와 같은 궁궐들 사이에서 길을 잃게 되니 어디가 어디인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우선 둘러 볼 근정전(勤政殿)을 중심으로 확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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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광화문에서부터 시작이 되니, 광화문을 통과하는 것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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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밖의 풍경이다. 한복을 입은 사람은 거의 90%가 외국인들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고궁에서 그 당시의 옷으로 여겨지는 복장으로 둘러보는 재미도 괜찮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분위기도 아기자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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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는 3,000원인데 한복을 입으면 무료로 입장을 한다는 달콤한 조건을 충족하기에도 한복입기는 괜찮은 타협인 것으로 보인다. 그 바람에 고궁의 분위기도 살리면서 모두 즐거워하니 이것은 꽤 괜찮은 방법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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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를 올라가 보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해서 금휘에게 시켰더니 표를 찾아야 한다고 바삐 뛰어 다닌다. 그래서 자식 복이 있다고 해도 되지 싶다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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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를 교대하는 군졸이 깃발을 들고 교대하러 가는 모습이 마침 눈에 띈다. 저마다 자신의 몫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모습에서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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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지키는 사람과 사진을 찍느라고 즐거운 관람객들의 모습도 고궁을 나들이하는 모습의 한 풍경이다. 문득 타이페이의 중정기념당에서 병사들 교대식이 떠오른다. 그것은 근대의 모습이라면 광화문은 고대의 모습이니 세월감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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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을 지나다가 천정을 올려다 보니 봉황인지 주작인지 모를 한 쌍의 새가 여의주를 입에 물고 희롱하는 그림이 있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천정을 한 번 올려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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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깃으로 미뤄서 짐작컨대는 주작(朱雀)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쪽의 문이기 때문인데, 이 그림은 원래 있었던 것이라고 하긴 어렵겠고, 복원하면서 그려 넣었을 것으로 짐작만 해 본다. 왜냐하면 광화문과 연관된 자료의 흔적들을 봤을 적에 이러한 장면까지 고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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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홍예()에서 바라본 전면은 흥예문(興禮門)의 앞마당이고 옛날에 조선총독부()가 자리하고 있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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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에서 촬영한 사진이 아닌가 싶다. 광화문은 없고 흥예문 앞에 거대한 조선총독부가 자리잡고 있는 시절의 풍경이다. 총독부는 1910년부터 1995년까지 자리했던 침략수탈의 상징이었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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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허물어지기 전까지 이렇게도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더라는 이야기는 이제 역사 속에서만 찾아 볼 수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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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이 잘한 것 중에 하나는 "총독부를 뿌사뿌라~!"였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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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직한 광장을 바라보면서 조선총독부가 있었을 당시에 자세히 둘러보지 못했던 것을 조금은 아쉬워하는 마음이 들었다. 말하자면 현장감이 다소 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아시아 건축사를 생각해서 보관하자는 설도 있었다고 하는데 철거하기를 백 번 잘 했다고 보는 것은 건물을 보존한다는 것은 건축전문가들인 그들만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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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장의 교대의식에 동참할 사람은 참고하라고 안내판도 붙여놓았다.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체험이 되지 싶다. 다만 낭월은 바라보는 자이고 실행하는 자는 아닌 것으로 스스로 제한한다. 한 가지만 해야지 모두 다 하려면 하나도 제대로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줍어서 괜히 핑계를 대 보는 것이기도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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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안쪽에는 수문장청이 조촐하게 자리하고 있다. 위엄은 없는 모습이어서 원래도 이랬는지는 조금 의아스럽긴 하다. 그냥 형식적으로 마련해 놓은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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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장의 근엄한 모습이다. 궁전을 출입하는 모든 것을 통제하는 직책이니 상당한 책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봐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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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례문을 통과하면 궁전의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절로 보면 사천왕문에 해당하는 흥례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흥례(興禮)는 예절(禮節)을 흥왕(興旺)하자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물론 예(禮)는 남문(南門)이라는 의미도 되고, 이것은 남대문의 숭례문(崇禮門)과도 일맥 통하는 것으로 봐도 되겠다.

숭례 : 예절을 숭상하니
흥례 : 예절이 흥왕한다

이렇게 연결을 시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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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광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흥례문으로 들어간다. 궁궐의 여행은 건물만 볼 것인지 건물 뒤에 깃든 삶을 볼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물론 조선왕조의 치열했던 시절을 어찌 후대인이 이해를 할 수야 있으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집에서 살았군..''하고 고개만 끄덕인다는 것은 불탄 자리에서 못은 줍고 있는 것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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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례문을 지나면 근정문(勤政門)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삼문(三門)이 되는 구나. 광화문을 지나서, 흥례문을 지나서, 다시 근정문을 지나면 비로소 본전인 근정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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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문을 지나서 영제교(永濟橋) 에서 뒤를 돌아다 보니 광화문과 흥례문이 일직선으로 보인다. 만약에 광화문을 방향에 맞춰서 다시 짓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시선은 얻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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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기운이 직통으로 흥례문을 통해서 근정전까지 도달하는 것 같아서 시원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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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마당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위치에서 바라본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서 관람객들도 그늘이 좋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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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가면 이 화각으로 사진을 담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원하는 위치에서 미션을 수행했다. 비가 내리는 날에 이 자리에 서서 물이 흐르는 장면을 보게 되면, 물의 흐름이 아름답다고 한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오늘은 날씨가 쨍쨍하니 그것은 어려운 주문이 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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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문에서 다시 남쪽을 바라보니 흥례문과 광화문을 통과하는 일직선이 그대로 뻗어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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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근정전의 정면에서 북향한다. 옛날에는 양반(兩班)들이 이 자리에 서서 왕을 알현하게 되면 감개가 무량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잠시 떠올려 본다. 여기에서 양반이란 문반(文班)의 학자들과 무반(武班)의 장수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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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남향을 하고 앉으면, 왕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오른쪽인 동편에는 무반(武班)의 무신(武臣)들이 자리를 하여 시립하고, 왼쪽으로는 문반(文班)들의 문신(文臣)들이 자리하여 시립하게 된다. 그리고 그 품수는 정일품(正一品)부터 정구품(正九品)까지를 말하니 요즘의 9급공무원과는 좀 다를 것으로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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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홉 단계로 나눠놓고는 다시 3등급으로 구분하면 당상관(堂上官)에 해당하는 정일품, 종일품, 정이품, 종이품, 정삼품, 종삼품과, 당하관(堂下官)에 해당하는 정사품부터 종6품까지가 있고, 마지막으로 정칠품부터 종구품까지는 참하관(參下官)이라고 하니 참하는 종육품까지를 참상관(參上官)이라고 하는 것으로 인해서 나온 말이다.

언제 이렇게 조선왕조의 관직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봤겠는가 싶다. 이런 기회에 잠시 고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대궐에서 시간을 보냈을지를 생각해 볼 따름이다. 그러니까 역사공부는 이렇게 시간을 떠난 세월을 뛰어 넘어서 과거의 그 시간을 상상해 보는 재미로 추적해 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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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백관(文武百官)들이 왕의 앞에서 나열했을 장면도 생각해 본다. 그 왕이 머무는 곳은 근정전(勤政殿)이니 '부지런히[勤] 정사를 돌본다[政]'는 뜻으로 해석을 할 수가 있겠는데,  '돌본다'일까? 아니면 '돌보라'일까? 감히 신하가 왕에게 정사(政事)에 힘쓰라고 말을 할 상황이었을까? 그보다는 왕이 스스로 돌보겠다는 백성을 향한 다짐이 아닐까? 비록 그 편액의 제안은 신하가 했을 망정 그 집에 사는 주인의 마음이 그렇다는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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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품(正一品)과 종일품(從一品)이 왕의 자리에서 가장 가까이 있다. 그야말로 당상관에다가 일인지하(一人之下)요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는 권력의 실세만이 그 자리에 설 수가 있었을테니 영의정()을 비롯한 삼정승(三政丞)이 그들이다. 어쩌면 왕의 권력보다 더 실권을 장악했던 정승들도 있었을 것이고, 권력의 무상함을 뼛속깊이 통감하고 홀연히 자리를 떠난 정승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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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慶福宮)의 본전이다. 근정전(勤政殿)이니 부지런히 백성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이해를 하면 되지 싶다. 경복궁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아보니 시경(詩經)이 그 출처라고 전한다.

『시경(詩經)』의 「주아(周雅」편에
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  

술로써 이미 취하고 덕으로써 이미 배가 부르니
군자여 만년이 되도록 아름다운 복을 누리소서.

경복이 여기에서 따왔다고 하니까 복이 넘쳐서 영원토록 행복하기를 바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경복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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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의 주변에는 동물의 형상들이 많다. 대체로 형상은 해치의 모델을 바탕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해치를 볼때마다 올바른 정치를 하지 않으면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는 까닭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해서 수시로 물욕과 권력욕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해치에게 깨물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근신자중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라는 뜻이었겠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효과를 거뒀을지는 알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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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를 볼때마다 등골이 서늘했다면 이미 그는 선정(善政)을 베풀었을 게다. 그렇지만 한갖 돌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비웃으면서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른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이 스쳐지나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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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마당에 서니까, 건륭과 기윤과 화신이 떠오른다. 그 세 사람의 환상적인 콤비는 늘 음양중(陰陽中)의 삼태극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양편인 기윤과 음편인 화신, 그 중간에서 균형을 잘도 지킨 건륭의 시대야말로 천하태평의 시절이었을 게다. 조선시대를 관통하고 지나간 그들의 존재감은 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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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악한 해치 옆에는 또 이렇게 귀엽기조차 한 말의 형상도 있는 것이 의아하다. 12지의 동물을 의미하는 것인가 싶기도 한데, 그 표정이란, 당당한 적토마가 아니라 귀여운 망아지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앞에서는 부드럽게 하고 뒤에서는 칼같이 정리를 잘 해야 한다는 상징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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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닭인가? 아래는 말이고 위에는 닭이네... 닭은 새벽을 깨운다. 어둠에 잠든 조선의 백성들을 새롭고 맑은 정신으로 다시 깨어나게 하라는 뜻이었을까? 물론 순간적으로 사주쟁이의 버릇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말은 오(午), 닭은 유(酉)인데 그 두 동물이 난간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면 반대쪽은 혹 자(子)인 쥐와 묘(卯)인 토끼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기 때문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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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도대체 뭘 기대한 겨? 아무리 그래봐야 조선왕조는 간지(干支)가 아니라 팔괘(八卦)가 정치이념이라니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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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학이겠어...
그럼?
봉황이겠지...
여기에 봉황이 왜?
그것도 그렇네.....
그럼 뭐지?
주작이지 뭐....
주작이면 광화문 홍예의 천정에 있는?
그렇지...
모양이 많이 다른데?
음.... 그냥 학으로 하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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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이 조선왕국의 중심인 근정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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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네 곳의 궁궐이 있지만 그 대표적인 곳이 경복궁이고 그 중심에 있는 근정전이기 때문이다. 편액의 테두리도 특별히 화려하여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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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문양으로 둘러싼 액자인데 문득 눈에 띄는 글자가 보인다. 엉? 이건 또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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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잘라내기를 할 적에 소니의 고화소 카메라의 공덕이 무량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아무리 잘라내도 여전히 선명한 그 화면을 유지한다는 것은 풀프레임의 센서가 갖고 있는 능력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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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卍)자를 디자인한 한 가운데에 선명하게 그려놓은 범어의 '옴'자. 이건 아무리 봐도 유교의 의미와는 해당이 없는 불교의 상징 중에서도 핵심인 글자이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유교를 바탕으로 통치하지만 부처의 가호를 빌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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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오른쪽에는 역시 유교의 핵심인 태극과 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유불선(儒佛仙)의 나라인 조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근정전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테두리를 유교와 불교의 가호로 지켜달라는 뜻일 수도 있지 싶다. 이러한 흔적을 찾는 것이 과거로의 여행이 주는 묘미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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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상(龍床)이다. 임금님의 자리이다. 그래서 용이 앉는 자리이니 용상이다. 임금은 모두 용이 된다. 얼굴은 용안, 자리는 용상, 자식은 용종, 몸은 용체, 눈물은 용루이다. 실체하지 않는 동물인 용을 끌어다 붙인 것은 감히 지상의 동물로는 대비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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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blog.naver.com/sport_112/221494214582


조선의 왕조 계보이다. 일목요연하게 만들어 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왕들의 묘호(廟號)에는 조(祖), 종(宗), 군(君)의 이름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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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로 이 자리(다른 궁궐도 포함해서)에 앉아서 영욕의 세월을 보냈던 왕들의 이름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싶어서 자료를 훑어본다.

20190507_081252[조선태조 이성계 어진]


제 1 대 태조 [太祖, 1335~1408] 73세(재위-6년2개월)
제 2 대 정종 [定宗, 1357~1419] 62세(재위-2년2개월)
제 3 대 태종 [太宗, 1367~1422] 55세(재위-17년10개월)
제 4 대 세종 [世宗, 1397~1450] 53세(재위-31년6개월)
제 5 대 문종 [文宗, 1414~1452] 38세(재위-2년3개월)
제 6 대 단종 [端宗, 1441~1457] 16세(재위-3년2개월)
제 7 대 세조 [世祖, 1417~1468] 51세(재위-13년3개월)
제 8 대 예종 [睿宗, 1450~1469] 19세(재위-1년2개월)
제 9 대 성종 [成宗, 1457~1494] 37세(재위-25년1개월)
제 10 대 연산군 [燕山君, 1476~1506] 27세(재위-11년9개월)
제 11 대 중종 [中宗, 1488~1544] 30세(재위-38년2개월)
제 12 대 인종 [仁宗, 1515~1545] 30세(재위-9개월)
제 13 대 명종 [明宗, 1534~1567] 33세(재위-22년)
제 14 대 선조 [宣祖, 1552~1608] 56세(재위-40년7개월)
제 15 대 광해군 [光海君, 1575~1641] 66세(재위-15년1개월)
제 16 대 인조 [仁祖, 1595~1649] 54세(재위-26년2개월)
제 17 대 효종 [孝宗, 1619~1659] 40세(재위-10년)
제 18 대 현종 [顯宗, 1641~1674] 33세(재위-15년3개월)
제 19 대 숙종 [肅宗, 1661~1720] 59세(재위-45년10개월)
제 20 대 경종 [景宗, 1688~1724] 36세(재위-4년2개월)
제 21 대 영조 [英祖, 1694~1776] 82세(재위-51년7개월)
제 22 대 정조 [正祖, 1752~1800] 48세(재위-24년3개월)
제 23 대 순조 [純祖, 1790~1834] 44세(재위-34년4개월)
제 24 대 헌종 [憲宗, 1827~1849] 22세(재위-14년7개월)
제 25 대 철종 [哲宗, 1831~1863] 32세(재위-14년6개월)
제 26 대 고종 [高宗, 1852~1919] 67세(재위-43년7개월)
제 27 대 순종 [純宗, 1874~1926] 52세(재위-3년1개월)

태조부터 순종까지 총 통치 기간은  539년이구나.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하나의 왕조로 유지해 왔다는 것도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궁궐나들이를 하고서야 비로소 왕들의 이름이나마 살펴보는 게으름이라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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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상을 돋보이게 하는 닷집이로구나. 이렇게 보면 대웅전의 불단과 흡사하다. 용상이 불단을 본뜬 것인지, 불단이 용상을 본뜬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최상의 위엄을 이렇게 나타내는데 이것이 익숙한 것은 절간에서 생활했던 기억들의 잔재려니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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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부족해도 괜찮다. 카메라ISO를 4000으로 올려서 찍은 다음에 보정하면 이 정도의 그림은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음 카메라는 이소10만까지도 노이즈 없이 표현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 뿐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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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을 보니 그대로 음양오행이로군. 늘 변화하는 달과 해는 음양의 상징이고, 항상 그 자리에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다섯 봉우리의 산은 오행의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를 상징하는 것이려니 싶다. 음양오행론이 이렇게 용상의 뒤를 지키고 있다. 또한 자연의 이치를 어기지 않고 백성을 잘 보살피라는 뜻으로 그렸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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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는 얼마나 행복한 자리였을까......
이 자리는 얼마나 불행한 자리였을까......
이 자리는 얼마나 많은 공덕을 쌓은 자리였을까.....
이 자리는 얼마나 많은 죄업을 쌓은 자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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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을 살리다 보니까 바깥은 빛이 과다할 수밖에 없지만 주제가 근정전이니까 이러한 정도는 참아줄만 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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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도 흐르고,
강물도 흐르고,
역사도 흐른다.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지나온 나날의 풍경들을 회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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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시 10년이 더 지나면 보게 될 경복궁 복원도란다. 2030년까지 100%의 복원을 목표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니까 그러한 다음에는 다시 경복궁을 보러 가야 하겠다. 그때쯤이면 74세....... 될랑강...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