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순례① 광화문전경

작성일
2019-04-2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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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순례① 광화문전경(光化門前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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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마음으로 '고궁기행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궁에 대해서 제대로 둘러 본 기억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지난 번에 창경궁 대온실을 둘러보면서 마음을 먹은 것이지 싶다. 그래서 모처럼 날을 잡아서 경복궁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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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어제 다 둘러 봤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창덕궁을 가기 전에 어제 미쳐 담지 못한 광화문의 전경을 일찍 담기로 하고 서둘러서 나섰다. 비록 특별한 이야기는 없더라도 광화문의 편액은 찍어야 경복궁 기행의 시작이 제대로 될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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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전(紀念碑殿)부터 시작하자. 그냥 무심코 지나가면서 '기념비각'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오늘 자세히 보니 기념비전이다. 대궐에 사용하는 전(殿)이었구나. 뭐 특별한 정보가 있을까.... 하고 둘러봤지만 울타리로 인해서 접근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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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문을 참고하면 대략적인 의미는 이해를 할 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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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만든 문의 태극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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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이름이 있었네. 만세문(萬歲門)이었군. 천만년토록 왕실의 역사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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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에는 거북으로 보이는 조각이 얹혀졌다. 너무 높아서 명료하진 않지만.... 대략 그렇게 봐도 되지 싶다. 거북은 장수동물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만세문과 잘 어울리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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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누가 썼다는 것인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기에 문에다가 이름을 넣었을까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 본다.

 

「영왕육세서(英王六世書)」


라고 쓰여있다. 그래서 영왕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서 자료를 뒤지니까 영친왕(英親王) 은(垠)이라고 한다. 하필이면 이름이 끝을 의미하는 '끝은(垠)'이란다. 그것도 무슨 조짐일까.... 싶기도 하다.  조선의 마지막이라는 조짐을 알았던 것일까...? 여하튼 그 영왕이 여섯 살에 쓴 글이란다. 이게 여섯 살 아이가 쓴 글이란 말인가? 참 믿기 어려운 필력이다. 기본만 쓰고 옆에서 싸부가 거들어 주진 않았을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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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각의 머리에는 중앙에 큼직하게 있는 꽃은 아마도 자두꽃이지 싶다. 조선왕실의 문양이기도 하므로 달리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지 싶다. 그냥 짐작이다. 그러고 보니까 올 봄에는 유난히도 장미과 꽃들이 많이 보인다. 그것을 자두꽃으로 마무리 하는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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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른쪽에는 「도로원표(道路元標) 」가 자리하고 있구나. 그러니까 조선의 중심점으로 모든 길의 기준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는 말이겠군... 어디..... 오른쪽에는 부산(釜山)부터 시작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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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釜山)  사칠칠천(四七七粁)
대구(大邱) 삼이영천(三二零粁)
목포(木浦) 사삼구천(四三九粁)
광주(光州) 삼삼이천(三三二粁)
군산(群山) 이육삼천(二六三粁)
전주(全州) 이삼사천(二三四粁)
대전(大田) 일팔삼천(一三八粁)
청주(淸州) 일오칠천(一五七粁)
인천(仁川)   사이천(四二粁)

그런데 이 '천(粁)'자가 생소해서 모처럼 사전을 펼치고 찾아봤다. 그랬더니 앞의 미(米)는 1m미자이고, 뒤의 천(千)은 1m가 1000번이라는 뜻이란다. 그래서 이 글자는 '일천미터천'자라는 것을 알았다. 참 재미있군. 그러니까 'km'라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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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상 앞에는 조선의 자랑거리가 놓여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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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는 「혼천의( )」가 놓여있다. 혼천의는 다른 말로 「선기옥형()」이라고도 한다. 천체의 운행에 대한 측정을 위한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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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이든 실물이든 그건 상품으로 봤을 적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의미를 판단하는데는 다를 이치가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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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권의 뒤에 자리하고 있는 혼천의이니 오히려 친숙한 물건이기도 하면서도 또 생소한 물건이기도 하다. 그 의미를 모르는 까닭이다. 이참에 좀 들여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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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이렇게 생겼다고 고인들은 생각을 하셨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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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팔수(二十八宿)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양새이다. 그리고 24절기도 함께 돌아간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천체의 운행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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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의 궁도 보이고.... 그 위에 있는 숫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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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은 한로이고, 10/23은 상강을 표시한 것이 아닌가 싶다. 태음태양력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달의 운행과 태양의 운행을 절충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인데 더 깊은 것은 모르니 여기까지가 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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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두리에는 12지(支)도 표시되어 있다. 더 이상 뜯어보다가는 머리에 쥐가 날 수도 있으므로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 물건으로 이동~!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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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측우기」이다.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를 측정하는 것이니 매우 단순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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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는 1자5치(45cm) 지름은 7치(21cm)란다. 무게는 11근. 정확히도 적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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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앙부일구(仰釜日晷) 」구나. 한 번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반갑다. 보통 해시계라고 하지만 그림자시계라고 해야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자가 가리키는 것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야 아무렴. 천동설이든 지동설이든 이해만 잘 하면 되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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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 지금의 시간은....?
묘시(卯時) 6각(角) 5분(分)이로군. 그렇다면, 시계로 환산하면.... 묘시는 7시부터 시작하고, 4각은 60분이니 8시라는 말이고, 1각이 15분이니,  60분에 2각을 더하여 30분을 보태니 8시 30분에다가, 다시 반각(半角)은 7.5분이니까 현재의 시간은 오전 8시 38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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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카메라의 시간 정보는 8시 4분으로 나오네? 이 오차는 뭐지? 아차! 해시계는 자연시이고, 폰의 시간은 표준시니까 자연시에다가 30분을 빼야지.... 그럼  08시 8분이라야 하는데? 어떻게 해서 4분이나 오차가 생기지?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해시계랑 논다. 그래서 또 재미있는 광화문 나들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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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자랑을 할 만한 것이 이렇게 세 가지라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되지 싶다. 그리고 자랑할 인물은 두 사람이로군.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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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광화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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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문이 닫혔다. 경복궁은 화요일이 쉬는 날이라서이다. 그래서 어제 서둘러서 경복궁을 둘러 본 셈이다. 물론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전개할 것이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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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는 해태상(獬豸像)이 있다.  본래 이름은 해치(獬豸)라고 하는데 어쩌다 해태가 되었더란다. 못된 사람이 그 앞에 서면 물어버린다고 해서 추상같은 법집행하는 동물이라고 알려진 것인데, 왕궁 앞에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올바르지 못한 인간이 이 문을 들어오게 되면 달려들어서 물어버리라는 뜻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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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에 세워놓은 또 하나의 의미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먹어서 잠재우라는 뜻이기도 하다는데, 아무래도 해치 본래의 뜻인 권선징악이 더 어울리지 않는가 싶은 생각은 든다. 그야 아무렴 워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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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가 생긴 모양이 불을 먹게 생겼어? 아니, 못된 놈들 물어버리게 생겼구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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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먹는 것이 목적이라면 정면으로 향하고 있어야지. 옆으로 있고 머리만 앞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은 들어오는 놈들을 살펴보겠다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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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두려워했다기 보다는 악을 혐오했다고 하자. 그게 왕실의 위엄에도 걸맞잖아? 막상 와서 보니까 이야기로만 듣던 것과 분위기가 달라서 내심 놀랍기도 하다. 이건 불을 막는 신이 아니라 못된 놈들 막는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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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교화하는 나라가 되소서....' 일 게다...

광화문에 대한 자료를 추적해 본다. 이 건물은 태조4(1395)년에 창건되었으니까 조선이 개국되면서 왕궁을 지었을 것이고, 왕궁을 출입하려면 궁문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했을 테니까 바로 만들었다는 것으로 보면 끄덕끄덕~

그러다가 임진왜란(1592)에 불타버리고 말았으니 원래의 모습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 후로 260년간은 궁문도 없이 살았더란 말인지.... 고종1(1864)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광화문을 세우게 되었지만 대원군의 뜻으로 복원하게 된 광화문도 편히 그 자리에 있지 못했더란다.

일제강점기(1927)의 조선총독부를 짓고서 광화문은 총독부의 건물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유로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버리는데 총독부 건물의 구조가 경복궁의 중심건물인 근정전보다 각도를 틀어서 지었는데 그 이유는 남산의 일본 신사를 바라보게 한다는 이유였고, 속뜻으로는 왕궁의 흐름을 비틀어서 조선의 정기를 없애려고 했다는 의미도 있었다.

건춘문의 북쪽에 있던 광화문이 한국의 전쟁을 치루면서 목조건물은 다시 불타버리게 되었는데 1968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은 것은 박정희 정권에서였는데 재료는 콘크리트로 지었고, 당시에 각도를 근정전에 맞춘 것이 아니라 총독부에 맞추다 보니까 3.5도로 틀어진 채로 복원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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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광화문을 복원하고 쓴 현판이다. 한글사랑도 좋지만 역사의식은 어느 수준이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현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 되어야만 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건물은 복원하고 현판은? 이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그냥 보고만 있었을 당시의 사학자들 마음은 오죽했을까..... 싶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한글로 광화문을 쓴 것에 대해서도 이론이 분분했다는 점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으니 당연히 한글로 해야 한다는 설, 한글은 한글이고 복원은 복원이니 그대로 한자로 해야 한다는 설, 한글로 광화문이라고 써봐야 어차피 한자의 광화문을 한글로 쓴 것일 뿐이라는 설까지... ㅎㅎ

그렇다면 낭월은? 물론 한자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왜냐하면, 한글숭배자들로 인해서 학교 교육이 한글화 되는 바람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서 유구한 문화의 단절을 가져왔고, 낭월의 세대는 한자맹(漢字盲)의 직접적인 피해를 본 세대들이기도 하다. 왜? 문자가 무엇이관대, 문자에 이념을 넣어서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쓰라고 강요한단 말인가.... 싶다.

그 바람에 고전을 한 줄도 읽지 못하는 지식인들이 넘쳐난다. 한자를 왜 중국문자라고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유교는 왜 논하고 불교는 뭔가? 문화는 문화이고 문자는 문자일 뿐이다. 영문이든 한문이든 국문이든 모두가 소중한 문화유산일 따름이다. 이제 다시 초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친다던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원래의 광화문은 현재의 위치에서 남쪽으로 14.5m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당장 그것까지는 어떻게 못 한 채로 2006년부터 철거작업에 들어간 공사는 3년 8개월의 기간을 거쳐서 2010년 8월 15일에 완공이 되었으니 현재의 모습에서 과거의 원래 광화문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는 알 길이 없이 다시 역사의 강물은 흘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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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광화문 현판 사진이 이렇게라도 있으니까 이것을 바탕으로 재현할 수가 있었다니 사진 한 장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이 글씨는 조선후기의 무신(武臣)인 임태영(任泰瑛)이 쓴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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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의 현판에는 유독 '화(化)'자가 많이 눈에 띈다. 化는 사람(亻)이 작은 칼(匕 )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그러니까 큰 칼은 사람을 죽이지만 비수같은 작은 칼로 글자를 새기면 문화(文化)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궁궐의 법도에 따라서 오문(午門)이라고 했었는데, 남향으로 자리한 왕의 궁으로 출입하는 문이라는 뜻이었을 것이고 이것은 중국의 자금성도 오문으로 현판이 붙어있는 것을 보면 일반적인 궁월의 방식이었던 모양인데, 정도전이 이름을 정문(正門)이라고 했다가 세종8(1426)년에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에서 광화문(光化門)이라는 이름을 지어 올린 것으로 지금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광화문의 뜻을 생각해 보면, 유광교화(儒光敎化)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공자가 세운 유교의 이념으로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이다. 조선시대에 광화(光化)는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만약에 고려시대의 광화문이었더라면 불광교화(佛光敎化)였을 것이지만 고려의 불교와 조선의 유교는 근본이 달랐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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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셋인 것은 중문은 왕의 문이고, 좌우는 신하의 문이라고 보면 되지 싶은데, 문마다 위에는 동물이 하나씩 있고, 그 위에는 팔괘로 만든 것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각각 문위의 팔괘가 서로 다르다. 그래서 또 눈길을 줘 본다. 중문의 위에는 불을 나타내는 리(離)괘가 중심에 있고 주변은 다른 괘가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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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문 위에는 손(巽)괘가 중앙에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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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는 곤(坤)괘가 중앙에 있다. 문 위에 배치한 것으로 봐서 붉은 모양의 문양은 이 괘상을 보호하는 의미로 보면 되지 싶다. 그렇다면 각각 어떤 괘로 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64괘의 뜻은 몰라도 이름이나마 알아둔 것이 이런 기회에 참고가 되기도 하니 뭐든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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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왕이 통행하는 문 위에 있는 괘상이다. 중앙에는 불을 나타내는 리(☲)괘가 자리하고 있고 그 팔방으로는 리괘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괘들이 배치되었다. 이름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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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괘가 갖고 있는 공통점은 모두 리괘가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밝은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의미와 광화문의 빛과 서로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은 짐작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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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의 문 위에 있는 괘상이다. 중앙에는 바람을 나타내는 손괘(巽卦)가 놓여지고, 그 주변으로 팔괘의 바람과 연관된 괘들이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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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바람과 연관된 풍괘(☴)들이 아래에 있는 주역의 괘상들로 배치되었으니 바람은 새로운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겠고, 맑은 바람이 들어와서 궁궐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미세먼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염원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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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왼쪽에 있는 괘상이다. 중앙에는 땅을 의미하는 곤괘(坤卦)가 놓여져 있고 그 주변으로는 하괘가 땅을 의미하는 곤(☷)괘로 된 여덟 개의 괘상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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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서 보듯이 각 팔괘는 모두 곤괘가 들어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요로운 땅이 되어서 온 백성이 배부르게 잘 먹을 수가 있는 것도 희망이고, 이 땅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불, 바람, 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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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불은 태양이니 빛이 없으면 만물은 생존할 수가 없음을 생각하고, 정신적으로는 밝음이 없으면 대명천지가 되지 못하고 암흑세계가 되고 말 것이므로 불의 의미를 밝음과 따뜻함으로 취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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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만민을 먹여살리는 토양이니 땅으로 인해서 생존할 수가 있으므로 이것은 삶의 터전을 의미하는 것이고,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을 의미하기도 할테니 그래서 땅을 선택한 것이라고 이해를 해 본다. 물론 국토의 의미도 땅이니 왕궁에 땅을 의미하는 괘상이 그려져 있다는 것도 의미는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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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공기이다. 그리고 만물을 변화시키는 바람이다. 바람은 끝없이 변화를 일으키면서 영원도록 지속하는 존재이다. 어쩌면 이러한 관념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어느 것도 모두 공자의 유산이다. 이것은 조선의 건국이념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고도 남게 한다는 의미에서 불교도가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또한 아픔이기도 하다.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사상으로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이고, 정도전이 그 중심에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불교도 수입품이고 유교도 수입품이니 어느 것이라도 순수한 국산은 아니다. 다만 통치에는 공자의 꿈이 깃들어 있다. 철학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꿈이었던 공자의 뜻을 이 나라에 실현하고자 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역사는 어땠을까..... 과연 유교의 이념으로 현실세계에서의 유토피아를 이룩했을까... 밖으로는 주변의 강대국들로부터 간섭을 피하지 못하고 안으로는 정권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600년의 역사를 잠시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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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붉은 점은 태양을 나타낸다는 말이 있는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태양은 열 개로구나. 열 개의 태양과 세 개의 괘상이 갖고 있는 의미는 여기까지만 알 수가 있으니 그 나머지는 또 다음기회로 미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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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인도의 사원에서 봄직한 동물의 형상이다. 용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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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하철을 타고 안국역으로 가기 위해서 고궁박물관 앞으로 가는데 출입문이 열린다. 어? 오늘은 문을 닫는 날인데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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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공사가 있어서 트럭이 들어가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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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이 들어가자 다시 문이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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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광화문에 대한 이야기도 마치게 되었다. 다음에는 경복궁의 풍경들을 담아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