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봉정사

작성일
2019-04-06 18:39
조회
1318

안동 봉정사(鳳停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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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휴정에서 나온 일행이 배가 고프다고 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그렇게 훌쩍 지나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점심은 안동의 명물인 간고등어와 안동찜닭으로 메뉴가 정해지는 것을 보면서 묵묵히 따라갔다. 그러면 되었다. 만고 편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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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안동간고등어가 명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찜닭이 스얼쩍~ 한 다리 끼여들었던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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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그려놓은 그림으로 대략 안동의 간고등어에 대한 설명은 다 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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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가 좀 커 보이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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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점심을 먹고는 지난 달에, 아니 저 지난 달이구나. 2월 23일에 안동나들이에서 매화랑 도산서원을 둘러 봤을 적에 월영교도 같이 봤지만 벚꽃이 필 적에 다시 올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이 그 때이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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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벚꽃이 필 마음이 없어 보인다. 마음이 없진 않을텐데 한파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바람에 못 피는 것일 게다. 안타깝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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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월영교의 기대감은 스르륵~ 녹아버린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자연의 흐름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올해 다시 벚꽃보러 오기는 어렵지 싶으니 후일을 기약해 봐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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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교에 다녀 감 '

됐다. 다 봤으니 다음은 하회마을이다. 일단 그렇게 예정은 했지만, 날씨가 갑자기 음산해지고 여기에 더해서 냉풍까지 불어대는 바람에 봄 기분으로 가볍게 입고 나온 일행들이 다른 곳은 없느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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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왜 없겠누. 낭월가이드의 일정표에는 2안 3안이 줄을 지어 있다니깐. 그래서 방향을 잡은 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얼마 전에 결정이 난 안동의 봉정사(鳳停寺)를 제시하자 모두가 동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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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부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느낌이 물씬 난다. 일설에는 유네스코로 지정을 받는 것이 괜한 돈놀이라는 말도 없진 않았지만 뭐 그건 상관없다. 잠시 들려보는 것이야 어려울 것도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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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등불을 밝히는 산이 천등산(天登山)이고, 봉황이 머무는 절이 봉정사(鳳停寺)이다. 하늘의 등불은 태양일까? 아니면 달일까? 더 많은 별들일까? 그건 알 길이 없다. 어딘들 해와 달이 비추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런 이름은.... 쪼매.... 의미가 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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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영화를 한 편 찍었었나 보다. 천등산이 어떻게 생겼나 싶어서 검색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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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걸~! 천등산이 수두룩~하게 나타난다. 이름이 같다고 해서 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다. 완주천등산, 충주천등산, 안동천등산, 고흥천등산, 부여천등산까지 최소 다섯 개의 천등산이 남한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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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는 부산 범어사에서 참배를 온 차량들이 가득하다. 다행히 차량은 절까지 올라가도 된단다. 걷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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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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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천등산 봉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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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규모가 있는 사찰에는 다 있다는 안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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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봐둔다. 봐야 모르기 때문이다. 실은 이 사진도 다 둘러보고 내려오다가 이야기에 쓰려고 찍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 둘러 본 다음에 보는 조감도는 눈에 들어온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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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고친 것은 國寶 第311號(국보 제311호)이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보물로 지정이 되었다가 언젠가 다시 재평가 되어서 국보로 승격이 되었던 모양이다. 여기에서는 대웅전이 그렇다는 이야기겠고.... 그나저나 여긴 의상대사네? 전국을 다니면서 풍광이 좋은 곳은 모두 의상대사가 잡은 터라고는 하지.... 어디 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랑강... 천등산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해서 딱 걸렸다.



[자료출처] https://blog.naver.com/moowon0112/221261627097


★★ 의상대사(義湘大師)와 천등산(天燈山) 미녀★★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의 높은 스님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천등산 깊은 골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던 무렵의 일이다.




어느 날 저녁, 의상 스님이 천등산 중턱에 있는 바위에 앉아 염불을 외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 여인이 나타났다.


이 세상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그 여인은 몸 뒤에서 후광이 내비쳤다.


의상의 젊은 가슴은 갑자기 두근거렸다.


"누구십니까?"


​"저는 천제(天帝)의 명으로 이 세상에 내려온 여인입니다.


부족하지만 스님의 반려가 되어 섬기고 싶습니다."


그 목소리는 새가 지저귀는 것 같았다.


의상의 가슴은 더욱 쿵쾅거렸다.


의상은 믿음의형인 원효대사가 한 말을 떠올렸다.


'불도를 닦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여자를 조심해야 하느니라.'


그래서 의상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나는 아직 수행하는 몸입니다.


그대와 인연을 맺기 어려우니 물러가시오."


"아무리 수행 중이라도 스님과 저는 남자와 여자 사이입니다.


젊은 우리들이 사랑을 맺은들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저의 이 애달픈 가슴을 스님의 우람한 팔로 힘차게 껴안아 주세요."


그러면서 여자는 막무가내로 파고 들었다.


의상은 황급히 여자를 밀어냈다.


"안됩니다.


수행을 방해하지 마세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의상은 어지러웠다.


여자의 짙은 살 냄새와 농익은 아름다움이 강하게 부딪쳐 왔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스님 옆에서 바위 위에 불을 켜고 음식 시중이라도 들게 해 주세요."


의상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느 덧 밤의 적막이 산기슭을 덮었다.


하늘과 땅이 칠흑의 어둠으로 휩싸일 때가 돌아 왔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여자의 후광이 등불처럼 바위 위를 내비쳤다.


의상은 그 하늘의 등불로 불경을 읽고 여자가 갖다주는 천상의 음식을 먹으면서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원효대사가 그곳을 찾아왔다.


"형님, 저는 매일 밤하늘 선녀의 도윰으로 저 바위 위에 등불을 켜고 천상의 음식을 먹으면서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라며 자랑했다.


그런데 이날 밤에는 여자가 등불을 켜지도 않고 음식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의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원효대사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등불은 안 켜지고 음식도 나오지 않을걸세.


난 이만 가 보겠네."


"형님, 오늘밤은 좀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이 세상에 그런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다고."


원효대사는 의상이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고 돌아갔다.


그러자 곧 여자가 음식을 가지고 왔다.


의상이 원망하듯 물었다.


"왜 이렇게 늦었습니까?"


"오는 길에 머리 여덟 개 달린 신(神)이 길을 가로막고 못 가게 하잖아요.


그래서 늦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의상은 여자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으흠, 그랬었구나."


여자는 요괴였다.


불도가 깊은 원효대사 앞에는 감히 나타나지 못했으나, 대사가 가버리자 의상을 유혹하려고 예쁘게 꾸미고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아직 수행이 부족하다.


원효 형님에 비하면 발 밑에도 못 간다.


요괴 하나 꿰뚫어 보지 못하다니 한심하지 않은가!'


머리 여덟 달린 신(神)이란 원효를 지키는 호법신장이고, 요괴가 범접을 하지 못하도록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의상은 그 후부터 깊이 뉘우치고 헛된 욕심과 오만을 엄하게 누르는 수행을 했다.


경상북도 예천에 있는 천등산(天燈山)이란 산 이름은 이때 의상스님이 등불 아래에서 수행했기에 붙여진 것이라 한다.








등불의 이야기와 천등산과 의상과 원효까지 한 방에 끝내버린 이야기구나. 유사한 이야기버전 1,2,3이 있지만 여기에 끌어다 붙여서 전해지는 설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블로그 운영자의 넓은 식견에 감탄을 한다. 의상은 맨날 여난을 만나고, 또 원효는 여복을 만난다. 그리고 만나기만 하면 맨날 의상을 꾸짖는다. 두 사람의 콤비는 세기를 초월해서 유머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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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자동차 길이 있지만 옛길은 여기를 통해서 오르게 되어있다. 돌계단의 허술함이 암자의 티를 풀풀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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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인대사(能仁大師)가 창건했구나. 능인대사가 누구지.... 하면 또 검색을 한다.




[천등산(天燈山) 봉정사(鳳停寺)]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있던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주었으므로 '천등산 '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또한 그 봉황이 학이되어 산으로 날아갔는데 그 산이 지금의 학가산이라 한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 호인 극락전, 보물 제55인 대웅전,보물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이 있다.특히, 고려태조와 공민왕, 최근 영국의 여왕이 다녀가기도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이번엔 또 능인대사 버전이 있었구나. 서로 다른 듯 비슷한 이야기들은 한 번만 써먹어야 들통이 나지 않는다. 그나저나 영국의 여왕까지 다녀간 절이라니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소문이 잘 난 사찰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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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경내도는 오히려 카카오지도가 더 보기 쉽네. 다음지도가 카카오지도로 변했구먼. 전체를 조망하는 것도 동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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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길을 밝혀 줄 등불이다.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은 천상에서 주는 에너지를 받는 도시락이다. 태양광전지를 이렇게 활용하고 있구나. 하긴 기로등도 이런 식으로 만들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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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그러고 보니까 이것이야말로 천등(天燈)이잖아? 하늘이 등불을 밝혀주는 거니까 말이지. 이게 새월이 천년을 흘러가고 보니까 또 다른 천등이 전설을 이어가는 모습이 오묘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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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대웅전으로 들어가느라고 정작 입구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것을 이렇게 나중에서야 알게 되기도 한다. 허나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만세루(萬歲樓)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뒤로 미뤄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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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이다. 봉정사의 주건물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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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311호로 지정이 되었지만 원래 표시한 비는 아직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둔 모양이다. 보물55호라고 새긴 돌이 제 기능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게 두다니 이건 게으름의 결과라고 밖에 볼 수가 없지 싶다. 보물과 국보의 차이를 알아 봤더니, 기념할 만한 것에다는 보물을 지정하고, 나중에 더욱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으면 국보로 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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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절이 아니고,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것이 이채롭다. 산속에 있는 절간이라는 뜻인 모양인데 뭐 특별히 산속이랄 것도 없는데 이러한 이름이 붙어있는 것은 좀 의아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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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불은 석가모니불의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고, 좌관음보살 우지장보살로 배치를 한 구조이다. 「두산백과」의 설명에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라고 했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설명이다. 고쳐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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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의 옆 모습이 웅장하게 보인다. 고색창연하여 그야말로 산중사찰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은 인정을 해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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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이다. 처음부터 국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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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앞에는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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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점이 없어서인지, 국보는 고사하고 보물도 아닌,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82호라고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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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은 고려시대 건물로 국보15호로 1962년도에 지정이 되었으니 처음부터 국보였던 것으로 봐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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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의 주불이니 당연히 아미타불이겠거니.... 인증샷을 찍고 보니까 위의 닷집이 돋보인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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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집을 포함해서 한 장 더 찍었다. 봉정사의 고마운 점이라면 「사진찍지 마시오」나 「촬영금지」의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문구가 붙어있으면 괜히 심적피고인이 되어서 찝찝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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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보고서 사진으로 담으려고 준비하고 딱 자리를 잡으면 여지없이 보이는 표시가 있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남의 관람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 지켜줘야 하겠지만 어떤 곳에서는 전혀 그럴 필요도 없는데 그냥 폼으로 붙어있는 것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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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웬만하면 이렇게 플레쉬사용을 제한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다. 조용히 감상하는 곳에서 플레쉬가 번쩍이는 것이 민폐인 것은 틀림 없다. 물론 원한다면 낭월의 카메라는 소리없는 촬영도 가능하다. 소니r3이나 m3은 무소음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촬영금지는.... 좀 가혹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웬만하면 좀 완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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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의 옆 모습과 대웅전의 옆 모습 느낌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고려시대의 건물이라고 하니까 오랜 격동의 나날들을 잘도 견딘 모습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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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극락전의 왼쪽 언덕 위에 외따로이 삼성각이 자리잡고 있는 곳까지는 올라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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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은 세 분의 신을 모셨다는 뜻인데, 거의 99%는 중앙에 칠성님, 보는 사람 관점에서 오른쪽에 나반존자, 왼쪽에 산신님이 자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반존자는 석가모니 시절에 성문제자로 계셨던 분이라고 전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나반존자의 기도처로는 청도 운문사의 사리암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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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 사진을 찍고 아래를 보니 꽃이 보인다. 어? 이건 현호색()? 그렇잖아도 현호색 꽃이 궁금했는데 여기에서 조용히 피어있었네. 반갑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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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이름도 참 특이하다. 양귀비과라고 하니까 독성이 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것은 뜯어먹지 않을 것이므로 해당이 없다.....고 생각했다. 양귀비과는 정확히는 앵속과(罌粟科)이다. 족보가 그쪽이라면 성분에서도 뭔가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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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능은 기혈을 잘 돌게 한다니까 유용한 약이기도 하겠는데, 검색을 하다가 보니까 부채표 활명수에 이 성분이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등장을 한다. 그래서 음식이 막혀 있는 것도 잘 통하게 해 주는 모양이구나..... '엉? 근데 이건 뭐지?' 그래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임신부에게서 위험할 수 있다는 보고가 나온 모양이다. 당연하지.... 약은 독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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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고 가방에 90mm매크로 렌즈는 챙겨 넣었는데, 가볍게 나오느라고 렌즈를 챙기지 않고 가방을 차에 뒀더니 접사가 불가능하다. 아~ 좋았는데... 그래서 최대한 당겨보기는 했지만.... 이미 그 용도가 아님을... 그래서 오늘의 현호색은 여기까지인 걸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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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영산암(靈山庵)이다. 영산암이라면 한자는 당연히 이렇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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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 사이로 오르는 계단 저쪽에는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분위기가 딱 산중암자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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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담한 암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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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입구에서 영화촬영지라고 하더니만 여기에서 촬영했구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했는데 한글설명에는 없고 영어 설명에만 1989년이라고 되어 있구나. 외국인에게 더 친절한 안내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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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입구가 우화루(雨花樓)구나. 봉정사는 만세루였고, 보통 큰 절의 입구 누각은 만세루라고 명칭을 붙이는데 여기는 '꽃비누각'이다. 설명을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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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암에서의 영산(靈山)은 영축산(靈鷲山)의 줄임말이고, 영축산에서 묘법연화경을 설법하실 적에 허공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하니까 우화루는 제격이라고 할만 하겠다. 다만 실제로 꽃비가 내렸다고 믿지 않아도 된다. 요즘같이 벗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바람이 건듯 불어 꽃비가 되기도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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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절집의 사정에 어두운 방문자라면 '왜 입구가 이렇게 좁을까?'싶을 수도 있겠다. 보통 키의 사람도 머리를 부딪치지 않게 주의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낮은 높이로 출입구를 만든 것에는 그 이유가 있으니.....

겉으로는, 부처님께 찾아가면서 마음을 낮추라는 뜻에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간다는 겸손의 의미이다. 물론 이것은 절간에 놀이를 하러 온 유생들의 불평에 대해서 마련된 답변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속으로는?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선비들이 거들먹거리고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이렇게 지었다는 설이 있다. 아마도 이것이 맞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고통을 겪은 산중 스님들의 말없는 반항이려니....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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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승려들에게 무시를 넘어서 멸시와 천대를 했던 그 시대를 살아가던 화상들에게 선비의 방문은 상전을 만나는 꼴이었고, 스님에게 하대하고 종놈 취급조차 서슴지 않았던 그들의 오만방자함을 생각하면 더 낮추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것도 세월이 흘러가니 하나의 이야기로 남아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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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가 곱게 피어있는 풍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 백화우(白花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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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흩날리는 것을 본 순간 얼른 우화로 앞으로 다가갔다. 하얀 눈은 검은 배경을 만나야 제대로 빛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화루의 현판이 배경으로 깔리면 이보다 더 적절한 타이밍이 또 있으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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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성공이다. 아니 그야말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이다. 석가모니는 설법하고, 허공에는 백화가 비처럼 쏟아진다. 와우~! 항상 사진복이 넘치는 낭월이라니깐. 이렇게 뿌리는 설화우(雪花雨)는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이내 그쳤다. 그야말로 세레모니였다.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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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암의 경내이다. 눈이 흩날리니 법당 문을 닫으시는 스님. 옛날 생각이 뭉클뭉클 솟아오른다. 그 시절....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불타는 사명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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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법당.... 현판도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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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전(應眞殿)이었네? 생각으로는 영산전(靈山殿)이 아닐까 싶었는데 응진전이란다. 응진전의 다른 말은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한다. 그럼 암자의 이름도 응진암이라고 할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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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불은 당연히 석가모니불이고, 주불의 관점으로 좌보처는 미륵보살, 우보처는 제화갈라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미륵보살은 들어보셨겠지만 제화갈라보살은 좀 생소하지 싶다. 그냥 그런가보다 해도 된다. 절집에는 부처도 많고 보살도 많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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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응진전 답게 오른쪽으로 모셔진 8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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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모셔진 8나한을 합쳐서 16나한전이었으니까 응진전이라는 현판을 사용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나한은 16, 18, 500으로 제각기 다른 숫자의 그룹을 하고 있기도 하다. 보통 영산전에는 16나한을 모시고, 소림사에서는 18나한을 모시고, 운문사와 같은 곳에서는 500나한을 모신다. 특히 500나한에 대한 이야기는 고찰에서 다양하게 전해지므로 심심하실 적에 검색해 보셔도 땅콩노릇은 하지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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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앞에서 내려다 보니 아담한 뜰이 한적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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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당의 왼쪽에는 승방이 있고, 그 앞에는 순둥이가 느긋하게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는 풍경이 절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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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옆으로 돌아가니 삼성각이 또 있네. 봉정사의 삼성각은 올라가기가 바빠서 그냥 지나쳤더니 여기에서 다시 뵙는구나. 여기는 들어가서 절이라도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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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어떤 분의 탱화인지를 이해하실 게다. 이것은 우리 조상님들의 우주론이다. 칠성은 북두칠성으로 천체를 논하는 것이고, 산신은 산의 제왕으로 지구인 땅을 논하는 이치인 까닭이다. 여기에 나반존자가 추가된 것은 불교가 이땅으로 들어와서 더부살이를 하는 풍경을 살짝 엿볼 수가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더 멋진 말을 만들어 낼 수도 있기는 하다.

우리의 자연관은 천지인(天地人)이다. 그래서 천은 칠성, 지는 산신, 인은 나반존자인 것이다. 그는 분명히 사람이고 사람을 대표할 만큼의 수행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주관이자 자연관이 고스란히 담아있는 삼성각은 삼원각(三元閣)이기도 한 셈이다. 뭐 말이 안 된다고 하기도 좀 거시기 하실테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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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의 화장실은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밤에는 볼일 보러 갈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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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다리의 이름이 능인교인 것을 보고서야 안내판의 능인대사가 능인(能仁)이었겠다는 짐작을 했다.

그렇게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사이에 안산과 인천에서 모인 처제들은 모두 출발을 했더란다. 원래 없으면 간 것이 우리의 무언법칙이다. 그러려니 한다. 그리고 그것이 좋기도 하고 그래서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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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를 한다는 안내판을 보니까 새롭게 확장하고 있는 분위기가 난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서 귀로를 서두른다. 봉정사는 지나는 길이라면 한 번 들려봐도 좋겠다는 소감을 남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