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샤인따라 만휴정

작성일
2019-04-06 06:04
조회
1010

션샤인따라 만휴정(晩休亭)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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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님들께 여행이야기를 할 때는 괜히 신명이 난다. 서로 무릎을 맞대고 화롯가에 모여 앉아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서 수다를 떠는 딱 그만큼의 재미라고나 할까? 읽음이 100이면 백 명의 친구들과 수다를 떤 셈이고, 1000이면 1천 명의 친구들과 수다를 떤 셈이니 이또한 신명나는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깔려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진부터 살펴보는데....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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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저녁에 겉모습만 봤고, 오늘 새벽에도 또한 먼 풍경만 본 스카이워크, 정확히는 「등기산스카이워크」의 속살도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에서 다리에 올랐다. 일행들은 재미있다고 했지만 여기에서까지 상세한 소개는 할 필요가 없지 싶어서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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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말씀드릴 수가 있는 것은, '과연~!!'이었다. 병방치, 오륙도와 비교해서 확실히 투명한 바닥으로 인해서 그림이 그럴싸 했고, 유리 판에 발을 내 딛는데 수학적으로는 '0.01초', 어학적으로는 '멈칫'의 망설임이 있었다는 것으로 그 느낌이 전달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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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에 개통했다니까 1년이 지난 상황이라서 유리가 아직은 맑았던 모양이다. 내려오는 길에 그 직선의 모습이 수평선과 대비를 이루고 있어서 문득 도(十)가 보여서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겼지만 아마도 다수의 벗님들은 '낭월의 억지'라고 생각하실 게다. 그래도 한 친구 정도는 고개를 끄덕이겠거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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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항에서 만휴정으로 다음 목적지를 삼았다. 처제들의 연령대로 봐서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로 데려다 주면 최소한 본전은 나올 것이라는 계산이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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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휴정까지는 93km의 거리에 1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이다. 미스터션샤인에 만휴정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나는 길에 들려보는 코스로 선택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다시 보는 것이 재미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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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휴정(晩休亭)이다. '느지감치 편안하게 쉬는정자'정도로 풀이를 하면 될 이름이지 싶다. 세상에서 해 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본 사람이 말년에 한가롭게 산천풍경을 즐기면서 사색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 정자에 머물렀던 사람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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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포장은 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는 충분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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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 싸부~! 사진 찍어 주세요~!
낭월 : 그게 그리 급했느냐?
화인 : 하모요~!
낭월 : 그래라 까짓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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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정자의 주인에 대한 정보가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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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백당 김계행(金係行) 선생이 주인공이었구나. 유진초이와 고애신을 주인공으로 알고 찾아오지만 그것은 미끼였다. 실제의 주인공은 김계행 선생이다. ㅎㅎㅎ

'독서와 사색'이라... 낭월의 꿈이다. 아니 현실이다. 날마다 책을 읽고 사색을 즐기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김계행 선생이 누리고자 했던 것을 낭월은 이미 즐기고 있었다는 것에서 공감을 느껴본다. 선생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 보자.




조선시대의 세종29(1447)년에 진사가 되어서 성균관에 입학해서 김종직과 교류했다니까 그야말로 엘리트 유생이셨구나. 출생연도가 1431년이니 16세? 아니, 16세에 진사가 되었단 말여? 참으로 대단한 지능을 가진 사내였구먼. 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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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호가 보백당(寶白堂)이란다. 하얀 것을 보물로 삼았다는 말인가보다. 하얀 것은 금(金)이고, 금은 주체(主體)이니 주체를 보물로 삼았다는 말인가.... 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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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때 대사간이 되어서 척신들과 싸우다가 포기를 한 것은 아무리 애를 써봐야 가망이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니까, 요즘 어느 정당의 형태가 또 오버랩된다. 그래서 벼슬을 버리고 안동의 풍산으로 낙향하여 보백당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짓고 학생들을 모아서 가르쳤더란다. 그래서 일명 보백선생이라고 불렸는데, 무오사화, 갑오사화에 연루되어 투옥되었지만 큰 화는 면했다니까 털어봐야 혐의점이 없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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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백당 선생이 남긴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4권 2책으로 연보, 시, 유성룡이 쓴 사애선생영모록, 유사, 행장, 묘갈명, 봉안문, 청덕사 상량문, 상량문 중건기 등이 실려있다고 한다.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새삼 삶의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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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초상화를 찾다가 혼자 '픽~' 웃었다. 청렴한 선생이 자신의 사후 모습을 그리라고 했겠느냐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이다. 그래서 제향을 모시는 사당인 묵계서원(默溪書院)의 편액을 초상화로 대신한다.

조용히 말없이(默)
흐르는 계곡만...(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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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펴보고 나서야 비로소 김계행 선생과 동행이 허락된다. 이 길을 거닐면서 생각하고 궁리하고 또 즐거워하셨을 모습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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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퉁이를 돌아서자 고아(古雅)하고 운치있는 정자가 나타난다. 만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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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전경을 담고 싶어서 위쪽으로 올라가 봤다. 과연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고 사색하기에 딱 안성마춤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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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위쪽으로도 완만한 길이 이어져 있구나. 한가롭게 혼자서 나들이를 했더라면 저만큼 올라가 보면서 선생의 그림을 그려 봤을텐데 함께 함의 부작용은 여지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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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하고 싶었던 것이었구나. 옳지 잘 어울린다. 러브해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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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러브하는 것을 훔쳐보면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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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만개한 꽃들이 고와서 기념샷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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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날에는 매미 소리 벗삼아서 목간도 하셨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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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마음에 담긴 사랑을 한다. 그리고 인파에 밀려서 들어가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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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보니까 다리가 꽤 길어 보였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얼마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후기에 있어서 이 사진을 하나 남기려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짧아도 '아주~ 기~일~게!!'보이도록 만들어 주는 렌즈가 있기 때문이다. 보이그랜더10mm이다. 쭉쭉 밀어버리는 마법을 갖고 있는 재미있는 렌즈이다. 왜곡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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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장 위의 암반에는 한 줄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위치를 주목하시라고 표시를 했다. 혹여 나중에라도 만휴정에 나들이를 하실 계획이시라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 번 위쪽으로도 둘러보라는 안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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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는 딱 열 글자가 적혀있다. 아마도 김계행 선생의 마음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열 글자로 담았던가 싶기도 하다. 서체는 일견 구양순체인가 싶다. 예전에 약간의 서예를 배운답시고 서실에 다녀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백짓장같이 얇디 얇은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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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잘 보일랑가 싶어서 사진을 나눠서 찍어 봤다. 바위에 새겨놓은 김계행 선생의 초상화였다.

吾家無寶物(오가무보물)
寶物惟淸白(보물유청백)

내 집에는 보물이랄것이 없소이다.
보물이라고 한다면 오직 청렴결백?

선생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구절인가 싶어서 잠시 그 자리를 배회했다. 청백리가 되고자 했던 마음이 여기에 담겨 있었고, 비로소 선생의 호가 왜 '보백당(寶白堂)'인지를 이해하겠다. 청렴결백()을 좌우명으로 삼고 몸소 그렇게 실천을 했기 때문에 연산군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천명을 누릴 수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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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를 살면서 얼마나 오래도록 이 정자에서 시간을 보냈을지도 생각해 본다. 느즈막한 나이에 한가롭게 쉬고자 하는 마음을 편액에 붙여놓고 세상의 복잡한 일은 내 모를 일이라고 말없이 전하고자 했던 흔적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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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만휴정인데 뒤쪽에는 쌍청헌(雙淸軒)이구나. 그러니까 처음에는 쌍청헌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가 나중에 바꾼 이름이 만휴정이었다고 했지? 얼마나 많은 유혹들이 찾아 왔으면 이렇게 정자의 이름에 붙여놔야 했을지를 생각해 본다. 누군가 찾아와서 한자리 하시지 않겠느냐고 하면 말없이 저 「雙淸軒」을 손가락으로 가르쳤지 싶다.

'두 개의 맑음'이 뭘까? 낭월의 좁은 소견으로는....

심청(心淸)하면
신청(身淸)하다

이 정도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심신의 음양은 모두 맑고자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곱씹어 본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쌍청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서 만휴정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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