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도산서원

작성일
2019-02-23 16:43
조회
1352

안동(安東) 도산서원(陶山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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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도 더 된 모양이다. 주마간산격으로 도산서원을 해질녁에 후다닥 둘러본 것이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으니 언제 차분하게 둘러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 영주 나들이를 한 김에 둘러보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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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입구에 세워 놓은 도산서원 배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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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도를 보면 옹기종기 모여있는 풍경이 정감있게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도산서원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기도 하다고 들었다. 좁은 땅을 최대한 활용한 서원으로의 특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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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사진만 반듯하게 찍으면 된다. 읽는 것은 나중에 사진을 보정하면서 읽어보면 된다. 지금은 시간도 이미 많이 늦었으니 이렇게 또 얼렁뚱땅 넘어갈 상황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애써서 천천히 마음을 다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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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를 내란다. 그래 입장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관람료를 내야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들 밥을 사묵지. 사진이 흔들렸군. 맘이 바빴던 모양이다. 다시 정자세로 나오다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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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1,500원이군. 괜찮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깐. 대신 내가 낸 입장료로 관리를 잘 해 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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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 산길이 아닌 것은 천만다행이다. 평평한 오솔길을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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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알기 도우미의 집」인 걸로 봐서 안내소인 모양이다. 이러한 것을 이용할 줄 모르는 것을 보면 아직도 진지한 탐방객은 아닌 모양이다. 그건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자세히 나오는데 뭐하러 사람을 귀찮게 하겠느냐는 생각도 없진 않다. 이나저나 월급은 나올테니까 밥줄이 흔들릴 일도 없으니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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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호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서 있는 비석이라고 해야 하나.... 멋들어지게 써 놓은 글씨가 눈길을 끈다. 이런 것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좀 더 조사해 봐야 한다. 도대체 뭐라고 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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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구나. 참 좋은 말이구먼. 앞의 네 글자 중에서 가운데의 두 글자는 대략 알아 보겠는데 앞의 한 글자는 도무지 모르겠고, 두번째 글자는 노나라노(魯)자가 아닐까 싶은 짐작만 해 본다. 세번째 글자는 갈지(之)자임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예전에는 윗상(上)인가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 그 정도는 안다. 물론 다른 글자를 몰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터넷에는 다 있으니깐.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찾아보면 된다.

도산 서원 입구에는 공자의 77대손이자 마지막 연성공이었던 쿵더청 박사가 도산 서원을 방문해 전서체로 남긴 추로지향비가 세워져 있다.

뭔 설명이 이려? 쯧쯧... 그래도 괜찮다. 「추로지향」이라는 네 글자를 얻었으면 이미 목적은 달성했기 때문이다. 다시 검색 타닥타닥~~~ 쿵더청은 공덕성(孔德成)이었군.

「추로지향(鄒魯之鄕)」이란 뜻이 나왔다. 추(鄒)는 맹자의 고향인 추나라를 의미하고, 노(魯)는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를 의미한다. 그리고 향(鄕)은 고향이라는 말이니까 풀이해서 말한다면, '공맹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향'이라는 정도의 뜻이 되겠군. 좋은 말이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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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뒷면에도 글자가 있으려니 싶어서 서원을 다 둘러보고 나오다가 다시 뒤로 가봤더니 이러한 글이 쓰여져 있군. 뭐라고 썼나.....

「이 전서(篆書) 추로지향과 가는 해서(楷書)는 공자 77대 종손 공덕성 박사가 도산서원 원장 재임시에 쓴것이다. 예로부터 예안과 안동을 추로지향이라 일컬은 것은 멀리 중국의 공자와 맹자가 살고 있던 노(魯)와 추(鄒) 두 나라에 비한 것이며 이 말은 성인이 살고 있던 고장이란 뜻이다. 해서의 국역은 다음과 같다. 경신(1980)년 12월 8일 삼가 도산서원에 나아가 퇴계선생 신위에 배알하고 강당에 올라 끼치신 원규를 읽고 흠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하여 이를 돌에 새겨 기록하다. 곡부공덕성은 쓰다.」

그러니까, 1980년에 중국의 곡부(曲阜)에서 고향을 지키면서 살고 있는 공자 77대 손인 공덕성이 도산서원의 원장으로 추대되어서 왔다가 남긴 글이라는 말인 모양이구먼? 어떻게 중국 사람이 도산서원의 원장으로 추대 될 수가 있지? 아마도 공자를 조상으로 둔 인연으로 '명예 도산서원 원장'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 짓은 많이 하니까. 그래도 너무 저자세잖여? 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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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샷을 찍을 때면 문득 생각나는 책의 제목이 떠오른다. 《그 섬에 내가 있었다》라는 이름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낭월은 2019년 2월 21일에 도산서원을 가는 길에 있었다」라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한 장 남겨 둔다. 그것도 흔적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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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호의 물 가운데 잠긴 섬이 동그마니 귀엽군. 그 위에는 정자인가? 비각인가? 그래서 다시 두리번 두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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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단(試士壇)」이란다. 저 자리에서 시험을 본 모양이구먼. 안동댐으로 인해서 그 자리가 수몰되는 상황인지라 높이 쌓았다는 이야기구나. 여튼 그림은 괜찮아 보인다. 그럼 되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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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쌓는 것이니 좀 넓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랬다는 생각은 살며시 든다. 기왕이면 다리도 하나 멋드러지게 놓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포함해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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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잔잔하여 물무늬도 예쁘다. 비록 뿌연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지만 이 정도라도 보여주는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감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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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는 도산 선생이 산책하던 곳이었던 모양이다. 이름도 멋진 천광운영대란다. 저쪽에는 또 천연대가 있다고? 역시 학자는 산책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운동이 아니라 산책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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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운영대의 반대쪽, 그러니까 도산서원의 왼쪽으로 가는 산책길이라는 이야기이다. 우선 주변을 둘러보고 서원을 보자는 생각으로 천연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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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대에서 봐도 전망은 대동소이하다. 옛날에는 낙동강이 흘러갔겠거니 그러니까 강변에 멋진 공간을 마련하고 후학을 가르쳤던 퇴계 선생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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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봐도 이렇게 중간에 위치에 대한 정보 하나쯤 넣어주면 더 친절해 보여서 그것을 보고 배웠다. 좋은 것은 배워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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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대라고 표지석을 세워뒀구나. 이에 대한 설명도 살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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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러니까 시경의 구절에서 따와서 천연대였구나. 설명이 없으면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이름이로군. 그냥 '하늘이 만들어 준 연못'이라고 생각하는 정도.... 이렇게 좌우로 산책길을 둘러봤으니 본전으로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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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의 전경이다. 터가 참 좁기는 하다. 학복은 넘치셨는데 땅복은 부족하셨던게야. 그러니 이렇게 좁은 곳에 올망졸망하게 집을 짓고 살으셨지. 뭐 검소해서 그렇다고 해두는 것으로 얼버무리면 되겠지만 좁기는 좁다. 하긴, 그래서 넓어 보이게 하려고 건물들과 담벼락으로 장애물을 많이 만들었다는 설도 있기는 하더구먼시나..... 여튼 좁은 것이 아쉽다는 표현의 다른 방법일 뿐이려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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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으로 가다가 문득 오른쪽을 보니 우물이 있다. 우물에는 물이 있나를 봐야지. 퇴계 선생께서 드셨을 우물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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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冽井)? 이름이 특이하군 어디 설명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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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 역경 수풍정(水風井) 괘의 '정렬한천식(井冽寒泉食)'에서 따왔단 말이구나. 설명을 봐서는 '우물은 마을이 떠나도 옮겨가지도 못하고, 퍼내어도 줄지 않는다.'는 말인가 본데.... 뭔가 이상하잖여? 그 뜻이 아닌 것 같은디.... 아무래도 못미더우면 주역 책을 보면 되는 거지. 대산 선생의 풀이에 나올테니깐. 어디....

구오(九五)에 나오는 말이구나. 「맑고 차가운 샘물을 먹는다」는 뜻이다. 무슨 설명을 멋대로 해 놨구먼. 그냥 있는 그대로 글자만 풀어놨으면 될 것을 말이다. 그래서 안내판은 믿을 것이 못된다니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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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은 반듯하게 찍어줘야 혀. 증명사진이니깐. 나중에 또 누군가 이 사진이 필요할 수도 있잖여. 그럴 적에 반듯하게 찍어놓지 않으면 사용하기에 불편할 수도 있단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박주현」까지 꼭 넣어 달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넣어주면 고맙고, 사용하겠다고 하면 더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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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연지야, 물은 보이나?
연지 : 응, 물이 보이네~! 맑아 보여.

한자로 우물정(井)의 형태로 바깥 틀을 만들었던 것을 보면 퇴계 선생도 한자의 형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계셨던가 싶기도 하다. 낭월도 한자 뜯어먹는 재미로 공부하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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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과 함께 우물 바닥이 나왔으면 싶어서 모종의 수단을 강구했다. 다만 그 방법은 설명하지 않을 요량이다. 각자 그 자리에 가서 보면 어떻게 했는지 충분히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야 아무리 설명해도 모른다. 물론 알 필요도 없겠지만. ㅋㅋ

우물을 들여다 보니 또 떠오르는 글자가 있다. 丼, 이게 무슨자인지 아는 사람은 글자 줏어먹는 재미가 뭔지를 아는 분인 걸로. 퐁당정(丼)인 것을 아는 벗님도 계실게다. 우물에 두레박이 들어가니 나는 소리가 "퐁당!"하고 나기 때문이겠거니.... ㅋㅋㅋ

그나저나 「천중천(泉中天」이네, 우물 안에 하늘이 있으니까 말이지. 아마도 외출하고 돌아온 선비들이나, 서원을 방문한 손님들도 우선 여기에서 맑고 차가운 샘물로 목을 축이고 손을 씻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어정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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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서원으로 발을 들여놓을 찰나! 문 위를 살펴보니 편액이 없네. 이렇게 섭섭할 수가. 적어도 주역과 논어를 공부하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에 이름표가 붙어있지 않다니 이것은 퇴계 선생의 실수가 아닐까? 그래서 낭월이 퇴계 선생을 도와드리기로 했다. 나와라 포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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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선생님 어때요? 그럴싸 한가요?
퇴계 : 그러게, 없는 것보다 훨~ 낫구먼. 고맙네. 허허허~! 
낭월 : 뭘요. 그 정도야 간단한데요 뭘. 하하~!
퇴계 : 그런데..... 왜 음양문이고?
낭월 : 그야 주역은 음양을 바탕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퇴계 : 음양 이전에는 뭔데?
낭월 : 그야 태극(太極)이잖아요?
퇴계 : 그러니깐 말이다. 태극문이라고 하지 않구서.
낭월 : 예? 태극문이라고 할 걸 그랬나요?
퇴계 :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
낭월 : 그야 음양의 상대성을 지나서 선생님의 거주처가 태극인데요?
퇴계 : 아, 그런가? 그러니까 음양문을 지나면 태극이 나온다?
낭월 : 물론입죠. 헤헤~!
퇴계 : 자넨 뭐 하는 사람여?
낭월 : 그냥 풍경을 보면 사진으로 담으려고 안달복달하는.... 
퇴계 : 아, 그래? 여튼 잘 왔네. 천천히 둘러보고 가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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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문을 들어서니 한 여인이 풍경을 감상하고 있구나. 그래 지금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인연이로다. 지금 보는 것이 무엇이던 간에 마음에는 경건함이 배어있을 터이므로. 잘 오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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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밖의 풍경도 담아둔다. 위에서 보는 풍경은 또 다를 수가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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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여기에도 매화나무가 자라고 있었구나. 자연의 매화는 이렇게 아직 피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적어도 보름이나 한 달은 지나야 비로소 만개하지 않을까 싶다. 매화향이 가득한 서원의 뜰을 상상해본다.

그런데.... 지주목이? 이건 옮겨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야긴데? 왜지? 이렇게 오래 된 서원에 새로 나무를 옮겨심은 까닭은? 그야말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도 아니고 무슨 소식인지 사소한 것도 궁금하면 못 견디는 낭월이다. 다시 폭풍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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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깐..... 뭔가 그것이 그렇게 생긴 것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다니깐. 필시 이 금송이 여기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찍어둔 사진인데, 일이 그렇게 되어서 이렇게 되었구나....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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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주변과 조화롭지 못해서? 뭐 그렇다고 해 주자. 좋게 써놓는 것이 좋은 거니깐. 2018년 11월에 옮겨심었다잖여. 그럼 3개월 밖에 안 되었구나. 그렇다면 매화나무도 그 날에 옮겨 심고 자리를 잡으라고 지주목을 세워놓은 것과 맞아 떨어진다. 이러한 것에도 역사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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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이 뒷면에 들어가 있는 1000원짜리 지폐이다. 설마 한 장 정도는 있겠지... 싶어서 연지님에게 찾아보라고 했지만 1시간을 찾아도 못찾겠단다. 내일 다시 찾아보겠다고 해서 제자들 카페에 올렸다. '천원짜리 구폐를 찾습니다'라고 했더니 1시간도 되지 않아서 강릉에 사는 제자가 바로 카톡으로 보냈다. 참 빠르기도 하다. 고맙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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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이라고 된 글자 옆에 서있는 나무를 찾기 위해서이다. 이 나무가 일본의 천황을 상징하는 금송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 문제를 제기했고, 이것을 없애기 위해서 다시 신권을 찍는 사연이 생긴 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짐작만 해 본다. 나무가 무슨 죄가 있으랴만.... 우리 민족의 응어리에 또다른 희생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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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적에는 울안에서 자라다가..... 권력이 시커멓게 죽어버리니까 울 밖으로 쫓겨난 나무의 신세라니..... 인생무상이요, 권력무상이요, 초목무상이다..... 그것이 삶인게다.... 하고많은 나무 중에 왜 하필이면 금송이냐로 시작하면 또 이야기는 무한대로 길어진다. 그러다가 아산 현충사의 금송까지 이어지면 왜 그는 그렇게도 금송에 집착했을까를 생각하다가 보면 말이다. 신권을 만들면서 뒷면의 그림을 넣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말이 많지만 그것은 도산서원과 무관하므로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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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좁은 뜨락이 온통 매화나무와 목단이다. 꽃봉오리들이 점점 부풀어오르는 것을 보니 봄바람의 위력이 이미 당도해 있음을 알겠다. 문득 두향(杜香)이 떠오른다. 퇴계와 두향의 사이에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가 전한다고도 하는데 그 내막은 알 수가 없지만 예사롭지 않은 인연이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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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천원짜리.... 퇴계 선생이 얼마나 매화를 좋아하셨으면 이렇게 돈에다가도 매화를 그려넣었나 싶다. 그러니까 이렇게 도산서원의 뜰에도 매화로 가득하지. 그러니까 날 맑은 날에 또 한 마음이 동하면 매화가 필 무렵에 나들이를 한 번 더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2월의 보름달이 둥그렇게 월영교를 비추는 날에? 그것도 좋겠군. 그때쯤이면 매화는 이미 시들고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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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구권에서는 매화가 아니라 무궁화가 들어 있었군. 앞에는 무궁화 뒤에는 금송이라.... 왜 당시에는 매화를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것도 권력의 상징이었을까? 파고 들면 또 무슨 비하인드스토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기까지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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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짠~!!" 그러니까 그때쯤 대략 한 달쯤 지난 다음에 영주매화원, 아니 영주매화분재원의 밭에 옮겨심은 매화나무에서도 꽃이 피어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영주에 사는 제자에게 좀 가봐달라고 하면 되지 싶다. 그 정도는 기꺼이 전해 줄 인연이니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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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의 출입문이 나타난다. 좌우로 있는 정각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라니까 도서관이 되는 셈인가보다. 광명실이란다. 밝음이 좋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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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관하는 것도 참 중요하다. 각별히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습기가 차면 곰팡이가 피기도 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선비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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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문(進道門)이다. 도를 향해서 나아가는 문이고, 도의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도와 하나가 되는 문이다. 참 좋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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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문지방을 넘어가다가 문득 눈길이 머무는 곳에 삼태극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하늘태극 땅태극 사람태극이 삼태극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어우러져서 도와 하나가 된다는 의미일게다. 너와 나의 분별심을 내려 놓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마음으로 문을 들어서라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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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도산서원의 강당이 보이는데 문득 눈길을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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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북이 하나 대롱대롱~~ 아마도 스승님의 말씀이 있을 적에 고두(鼓頭)가 북을 둥둥 울렸겠지. 그러면 이방저방에서 학인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한달음에 모여들었을 상상을 해 본다. 옛 선현들의 흔적은 상상과 더불어 더퉈야 재미가 두배인 법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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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사는 롱패딩을 입은 여인이다. 도산서원의 이모저모를 들려주는 음성이 메조소프라노 톤이다. 울림이 있어서 노래를 듣는 것처럼 흥겹다. 그래서 노래로만 들리고 말로는 들리지 않아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하나도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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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당이라고 해야 하는 구나. 이름이 전교당이다. 법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뜻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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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보물210호로군. 보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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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기둥 위에다가는 대야에 물을 떠놨을게다. 누구나 강당에 들어갈 적에는 손을 씻으라는 뜻이겠거니 싶다. 그 옆에 네모난 것은 아궁이 뚜껑이겠지. 온돌방이라고 하니까. 아마도 날이 춥거나 선생님이 쉬면서 강의를 준비하는 곳이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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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에 앉아서 그 당시의 풍경을 또 상상해 본다. 많은 학생들이 앉기에는 좀 비좁아 보이기도 한다. 100명이 않을 공간은 안 되는 까닭이다. 어쩌면 도산서원에 입문하려면 줄을 기~일~게 서야 했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또 뒤적뒤적..(어딘가 있을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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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딱 20년 전의 어느날 저녁무렵에 연지님이랑 찍었던 기념사진이다. 아니, 10년도 더 되었거니... 했는데 십년이 뭐냔다. 20년이라잖여. 참 내... 당시에는 필름으로 찍어서 비싼 필름스캐너를 사서 이미지로 만들어 뒀더니 이렇게 쓰이는 구나. 그렇지 않으면 앨범을 찾아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말이다. ㅎㅎㅎ

미리 이 사진이 떠올랐더라면 다시 그 포즈 그대로 하고서 사진을 한 장 찍어 두는 건데 아쉽다. 이렇게 항상 시간이 지난 다음에 필요해지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20년이라.... 참 그 사이의 시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함께 흘러갔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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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시 20년이 지난 시간에도 함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맙게 다가온다. 사진에는 시간과 공간이 같이 엉켜 있음이다. 그 시절과 같은 공간이지만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함께 한다는 묘한 느낌..... 시간여행자가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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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님에게 10mm렌즈를 달아서 줬더니 이렇게 낭월이 담겼다. 위의 사진을 찍는 포즈는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겠다. 위의 사진은 16시 11분 49초이고, 이 사진은 11분 55초인 것으로 봐서 연지님을 찍고 시치미를 떼고 딴전을 피우는 순간 연지님이 찍었다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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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의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상덕사(尙德祠)가 있는 삼문(三門)이 있다. 내삼문(內三門)이라고도 한다. 근데 외삼문에 해당하는 진도문이 삼문이 아니라 일문(一門)이라서 그냥 삼문이라고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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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https://blog.naver.com/jbart/150017224310


고맙게도 낭월은 들어갈 수가 없는 상덕사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은 것을 찾을 수가 있어서 이렇게 고마운 마음으로 가져다가 아쉬운 공간을 채워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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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리는 없겠지만..... 행여나.... 하고 잠긴 문을 만져본다. 나그네는 가장 슬플 때가 문이 잠겨 있을 때이다. 더 이상 진행을 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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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달린 빗장은 아무래도 신형인가 싶다. 첨 보는 잠을쇠로군. 뭐 안 열리는 문을 부여잡고 하소연 해 본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냔 말이지. 일개 방문자의 부탁으로 문을 열어줄리도 없지 않겠느냐는 자기검열을 마치고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문이 열려 있었다면 들어가서 위패 앞에 재배라도 드릴 마음이 있었지만 나그네에겐 여기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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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올라온 김에 강당의 뒷모습이라도 담자. 억울하잖아.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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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진도문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보니까 경판을 담아뒀던 장판각(藏板閣)이다. 장판각은 경판이 나무로 되어 있기 때문에 통풍이 잘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바람이 슝슝 통하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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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고 안을 들여다 봤지만 '휑~!'하니 비었다. 아무래도 보관을 위해서 어딘가로 옮긴 모양이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최신식으로 보관하겠다고 모든 기술을 동원해서 새로 지은 판각에 시험삼아 보관한 경판에서 곰팡이가 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원점으로 되돌리는 바람에 건물을 지었던 건설사는 망했다는 설이 있었는데.... 그 건설사는 도진건설이었던가... 원 별 것을 다 기억하는 낭월이다. 아마도 당시에 해인사에서 살고 있을 때여서 그랬을 께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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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랬군...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겼다고.... 적지않은 자료이니까 잘 보관 해야지. 부디 곰팡이나 생기지 않도록 잘 이사 했기를... 그나저나 이사를 한 곳은 어디라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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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웃으로 갔네? 굳이 목판을 보려면 저곳으로 가보면 되긴 하겠구먼시나 그것도 자료 보존이네 뭐네 하면서 힘없는 백성은 들여다 보지 못할 수도 있지 싶어서 지레 판단하고 포기하는 것도 잘 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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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저곳.... 기웃... 기웃.... 뭐 그렇지... 이 말은 '그 밖에도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특별할 것도 없어서 그냥 생략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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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가 보이니 서원의 뜰이로군. 하얀 꽃닢이 사알짝 보이는 봉오리가 있어서 반가웠다. 이각대(二脚臺)이다. 완전자동이다. 높이가 맞지 않으면 자동으로 굽혀서 각도를 맞추니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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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로 봐서 한 달 이내로 피지 싶다. 이 정도면 보름 정도면 되지 않을까? 너무 일찍 왔군.... 내 배는 다음 배였는데 말이지. 이렇게 궁시렁거리면서 사진놀이에 빠져든다. 여행의 즐거움이다. 신원사보다 조금 늦구먼. 그래도 반갑다. 하얀 꽃닢을 본 것이 틀림없지? 아무렴~~~!!! 봤지. 봤고말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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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왼쪽으로 문이 난 곳을 따라 들어가보니 이번에는 꽤 그럴싸~한 건물이다. 아마도 중강(中講) 정도가 머무는 공간이지 싶다. 중강은 말하자면 부교수 쯤 되는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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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운정사였군. 기숙사란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공(工)자 형태로 지었다잖여. 工은 하늘과 땅 사이에 뭔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본딴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장인이 되라는 뜻일게고, 학문으로 성공하라는 염원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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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 운(雲)자를 어디에서 봤더라..... 기억이 가물가물..... 앗!! 생각났다. 화순의 천불천탑! 그려 운주사의 편액이 이렇게 생겼었지... 또 뒤적뒤적.....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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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은 사진도 쉽게 찾아보려고 이렇게 모조리 담아뒀다. 연도별로 정리하고 필름부터 차근차근 있는 자료는 모두 정리해놔서 대략 몇년도인지만 알면 쉽게 찾지만 그것도 생각나지 않으면 검색을 해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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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검색하면 짠~하고 나타난다. 그러면 2015년도의 폴드에서 2월 24일자로 가면 바로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근데 이게 도산서원과 무슨 상관이냐고 짜증을 내실 수도 있다. 그러나 낭월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것에 대한 정보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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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찾아보면 된다. 이 쌍운(雙云)의 구름운은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중국을 다 돌아다녀 본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서 만든 강희자전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구름처럼 많이 모인다는 뜻으로 이를운(云)을 두개 사용했을 수도 있지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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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것을 틈나는 대로 익히라고 시습(時習)이겠거니.... 그리고 피로가 쌓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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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칸의 관란헌에서 낙동강을 굽어보면서 쉬라는 뜻이겠군.... 그렇게 한바퀴를 다 돌고 입구로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전시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또 기웃기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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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 여기였군.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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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또 다른 골목으로 되어 있다. 참 미로같은 도산서원이다. 인정~~!!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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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진각(玉振閣)여? 이름이 뭔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 같긴 하구먼시나 설명이 안 보이네. 이름이 특이해서 또 자료를 찾아보니, 금성(金聲)이 나오고, 옥진(玉振)이 등장한다. 그럼 그렇지. 어딘가에 연유가 있기 마련인게다. 금성은 삼황이 음악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고, 옥진은 공자는 음악을 완성시킨 것이라는 설명도 보인다. 완성이라는 의미에서 옥진각인 걸로 잠정결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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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선생의 유묵이라는 이름으로 바람누각이라는 풍루(風樓)만 찍었다. 그 다음에 자료를 찍으려고 하다가 보니까 「촬영금지」팻말이 똭~하니 붙어 있어서이다. 하지 말라는 것을 굳이 하면 또 뭐하랴 싶어서 자료들은 찍지 않았다. 다만 이미 찍은 것이야 버리면 아까우니까 이렇게 한 장 써 먹는다.

그냥 우기고 찍으면 또 할 수 없을 것이고, 관리자가 CCTV로 보고 있다가 쫓아 나와서 촬영하지 말라고 하면 미안하다고 하면 되고, 그러면 이미 찍은 사진은 남아 있을 테니까 그것도 괜찮다는 속삭임을 못 들은 것은 아니지만....

휘익~ 둘러본 바로는 퇴계 선생의 사상과 목판본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상론에서는 주리론(主理論)을 성학십도(聖學十圖)와 함께 설명해 놨다. 그런데.... 말이다. 카니카지... 이걸 여기에서 읽어서 몇이나 기억하겠느냐구. 그러니까 사진으로라도 담아놓으면 나중에 이렇게 한가롭게 들여다 보면서 공부를 할 수도 있을텐데 왜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느냔 말이지. 낭월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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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퇴계 선생의 뜻이었을까? 다른 사람의 관람에 방해를 줘서 그렇다고 하면 플레시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정도의 안내문이면 충분한 거잖여? 이런 것을 두고 관료의 오만함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귀찮은게다. 모든 것이... 그래서 이렇게 팻말하나 붙여두고 하지말라, 하지말라 하는 것이다.

하긴, 대만의 고궁박물원도 옛날에는 촬영금지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플레시사용금지로 바뀌었더라. 도산서원은 뭔데!! 라고 생각하다가도.... 에고 말자. 자료는 찾으면 되는 것을 뭐하러 열을 올려서 피만 탁해지게 만드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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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학생백과에서 가져왔다. 이 정도만 알아도 되지 싶어서이다. 더 구체적인 것은 관련 자료를 보면 되겠지만, 낭월은 사실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주리론도 편중이고, 주기론도 편중으로 보여서이다. 그냥 이기음양론(理氣陰陽論)이라고 했으면 딱 좋겠는데 말이다. 그러면 음양불가분리론(陰陽不可分理論)으로 뭉치면 괜히 별 것도 아닌 걸로 싸움질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승기행기유상(理乘氣行豈有常)』


이거 한 방이면 끝난거 아녀? 「이치를 타고 기운이 흐르니 어찌 고정됨이 있으랴!」라고 설파한 경도(京圖) 선생의 《적천수(滴天髓)》만도 못한 이야기들을 하나 싶어서 시덥잖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제목만 놓고서 생각해 보는 촌부(村夫)의 지극히 편협한 생각이라는 것은 덧붙여 놔야 하겠다.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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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둘러보고 다시 밖으로 나오니 연지님은 이미 구경을 다 마치고 조용하게 호수를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겨있다. 속이 편하기로는 세상 제일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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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공기가 좀 맑아졌나? 뿌연 안개가 좀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말이다. 더구나 호수에 비친 시사단의 반영이 더 명료해져서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서넛이 오면서 떠드는 이야기가 들린다.

학생1 : 여기가 누구 사당이라고 했냐?
학생2 : 퇴계 이황 선생도 모르냐? 바보냐?
학생1 : 아 참 그랬지. 근데 퇴계 이황이 누구지?
학생2 : 난들 아냐. 현장학습으로 점수나 따러 왔는데 뭘.
학생1 : 그래도 기왕 왔으니 쬐끔은 알아가야 하지 안 하겠냐?
학생2 : 원래 퇴계는 율곡과 쌍벽을 이룬다잖여?
학생1 : 뭘로?
학생2 : 그 뭐라냐.... 일원론 이원론하고 배우지도 않았냐?
학생1 : 그래? 그럼 두 선생이 돈이야기를 한 모양이구나?
학생2 : 뭐라냐? 그게 왜 돈이냐? 멍청한 놈~!
학생1 : 왜 아니냐. 그래서 누가 이겼냐?
학생3 : 그야 율곡이 이겼지 그것도 모르냐?
학생1 : 율곡은 뭘 주장했는데?
학생3 : 그야 나도 모르지~!
학생1 : 근데 왜 그렇게 당당한 거냐?
학생3 : 얌마! 퇴계는 천원이고 율곡은 5천원이잖냐? 봐도 모르냐?
학생1 : 그런 거냐? 아....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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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러니까 다음 달쯤이라도 매화가 필 무렵에 혹시라도 날씨가 좋고, 여유가 되면 다시 한 번 찾아와서 하룻밤을 머물고 싶은 마음을 가슴에 품고서 도산서원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