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나바위 성지

작성일
2017-10-05 11:17
조회
2471

익산 나바위 성지


 

언젠가 지나는 길에 짬을 내어서 둘러봐야지..... 했다.

논산에서 익산을 가려면 길가에 보이는 푯말이 있어서이다.

그런데 추석날 드디어 생전처음으로 성당 구경을 하게 되었다.

만경들판을 다녀오다가 요기하러 들어간 곳이 그 부근이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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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서 있는 팻말이다.

음... 팻말도 재활용을 했군. 배경에 나바위성지가 그냥 있는 채로,

덧씌워서 나바위성당으로 고쳤던 모양이다. ㅎㅎㅎ

김대건 신부 착지처. 착지처라니.... 이건 또 무슨 뜻일꼬.....???

둘러보면 뭔 뜻인지 해답이 있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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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聖地)는 성스러운 땅이라는 뜻일 게다.

그리고 천주교와 연결시키면...

박해로 인해서 성직자나 성도들이 탄압을 받아서 희생된 곳... 정도?

성당이라고는 가본 적이 없는 낭월의 기초상식이다.

이제 그 상식을 노루꼬리 만큼, 아니, 토끼꼬리만큼 보태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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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만 주로 많이 봤던 풍경이니 그것조차도 익숙하다.

푸른하늘 구름 듬성~! 높은 첨탑과 잘도 어울린다.

왠지 승천할 것 같은.... 설렘.... 어떤 풍경을 접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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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있는 꽃동산에는 맥문동꽃이 아직도 만발이다.

그리고 조각상은.....

아마도 짐작컨대, 돌아가신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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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늘어진 모습에서 사망후 부활전의 상황이 아닐까.... 싶은 짐작만 해 봤다.

여기에 이 조각상을 세운 뜻은 운영자의 마음인지....

아니면 원래 절에 가면 마당에 관음보살을 세워 놓듯이 성당의 공식인지는...

좀더 성당순례를 해봐야 답을 얻지 싶기는 하다.

아하, 안내도에 나와있네.

⑦피에타상

그랬구나. 그렇다면 성당에서는 꼭 있을 법한 조각상이려니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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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도는 처음에는 눈에 안 들어온다. 다 둘러보고 나가면서 봐야 제격인 까닭이다. 그러나 순서상으로는 맨 앞에 있는 것이 또 맞다. 이것도 일종의 딜레마라고 해야 할까보다. 여하튼 다 둘러보고 다시 보면 되니까 이렇게 당장은 영양가 없을 줄 알면서도 이 자리에 채워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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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면 본당을 만나겠다.

시계가 탑의 중간에 박힌 것을 보면...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곳이려니... 싶다.

공간보다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까?

우선 안내판부터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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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318호였군.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겠거니....

본당은 1897년에 세우고,
신축은 1906년에 시작해서,
1907년에 완공했다...

그렇다면, 본당은 어디 다른 곳에 있다는 말인가? 적어도 110년 전에 세워진 성당이라는 것은 알겠다. 건물도 100년이 지나면 나이를 먹은 값을 한다는데, 인간이 100년을 살고서도 나잇값을 못하면 되겠느냐는 생각이 슬며시....

내부에는 남녀를 구분하기 위해서 칸막이 기둥이 있는 것도 특색인 모양이다. 성당 내부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는지라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칸막이를 했었는데 막은 것은 제거하고 기둥만 남아있다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조화~! 좋지. 서양식과 한국식의 기법이 조화를 이룬다잖여.

성당 서북쪽 화산 언저리는 조선인 최초로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다른 신부들과 입국하면서 첫발을 내 디딘 날이고, 그것이 1845년 10월 12일이었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촛불행사를 한다고 써 붙인 현수막이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까 행사일이 며칠 안 남았군.

한때는 화산성당으로 부르다가 1989년부터 본래 이름대로 부른다니까 지금 부르는 나바위성당이라고 부른단 의미겠구나.

오호, 그러니까  '착지처'란 '도착지점(到着地點)'라는 뜻인가 보다. 중국에서부터 입국하면서 이곳을 통해서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되겠네. 요즘 말로 하면 밀항이고, 예전에는... 여권이나 비자가 있었나...? 그것이 궁금하네. 여하튼 성지가 된 것은 처음으로 김대건 신부가 배에서 내린 곳이라는 의미가 컸더란 말이네. 그러니까 여기에서 박해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그러니까, 도처에 원효대사 수행처라고 써붙이고 성지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보면 되지 싶다. 존경하고 싶은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후세인들에게 소중한 곳이 되고, 그래서 성스러운 곳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한 까닭이다.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곳이 아니었다는 것은 그래도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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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입구에는 높은 단위에 조각상이 있는데, 분위기로 봐서 예수님이신가 싶다. 하나님은 무형일테니 형상으로 만들었을리가 없다고 보면 '주'는 예수님이고, '주님'은? 그것도 또한 예수님일까? 왜 단의 명칭에 '주' 까지만 있고 '님' 자가 없는지도 궁금하다. 워낙 존귀한 분이라서 님은 없어도 충분히 의미전달이 된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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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직하고 정갈한 마당이 시원스럽다. 왼쪽에는 신부님 거처가 있는지 한 젊은이가 문을 두드리고는 '신부님~! 접니다.'하는 이야기가 카메라 밖으로 흘러 지나간다. 그 젊은이가 신부님을 찾는 순간, 낭월도 신부님을 만나 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사라졌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다음 대목이 연결되지 않아서였다.

"신부님, 차 한 잔 얻어먹고 갈 수 있겠습니까?"
"신부님, 신은 어디에 존재하십니까?"
"신부님, 오늘의 삶이 어떠합니까?"
"신부님, 지금 이 순간 행복하십니까?"

근데 사실 하나도 안 궁금하다. 그러니 만나봐야 괜히 바쁜 신부님만 난처하게 할 뿐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들었던 생각을 이내 내려놨다. 1초에서 120번 명멸하는 망상번뇌의 존재라니. ㅋㅋㅋ

이렇게 보니까 성당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한옥과 탑루의 모습이 뭔가 이질적이면서도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자꾸 보니까 점점 자연스럽게 보인다. 건물을 보면서 감상하는 것이 관광객의 본본인게다.

그러니까 이런 형식으로 된 성당이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바위 성당의 특징인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와의 색과 종탑의 색이 잘 어울려서 보기에 어색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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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사진이다. 젊은 남녀가 있어서 사진에 생기를 돋운다. 첨탑의 가운데 있는 것은 멀리서 봐서는 시계인가보다 싶었는데 막상 가까이 와서 보니 시계가 아니었나보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위아래의 문양과 서로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네 개의 정사각형이 모여있는 디자인으로도 보인다. 기왕이면 가운데도 ×자 형태로 하지 말고 +의 형태로 했었다면 더 잘 어울렸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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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옆에는 나바위 성당에 큰 공을 세운 분의 비가 서있다. 신부, 요셉 장약실 공훈기념비로군. 초대 주임이었는데, 이웃 주민들과 갈등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건물을 세우고 계명학교를 열어서 운영했으니 국가적 차원에서도 감사해야 할 일이구나. 참으로 진심어린 노력은 후대에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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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옆에는 비가 와도 뿌리지 말라고 회랑을 만들었나보다. 멀리 보이는 조각상은 몸에 밧줄을 칭칭 감고 있는데 마음에 짐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자유로워지는 공간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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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성당에 들어갔다. 아름대운 지구를 위해서 애쓰시는 성현께 잠시 들려본들 어떻겠느냔 생각이 들어서이고, 내부의 사진도 한 장 찍어야 하겠다는 사진기행의 목적도 포함해서 문을 열었다.

고~ 요~

성당 내부는 고요했다. 입구에서 남녀를 구분하기 위한 벽이 무슨 뜻인지 들어와 보니 알겠다. 원래 음양은 항상 부딪치면 불꽃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동안만이라도 서로 격리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이해를 해 본다.

다만, 왼쪽이 남자석인지, 오른쪽이 남자석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좌우로 나뉘어져 있었고, 중간에 기둥만 남고 벽은 사라졌으니 어디에서 기도를 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벽의 의미가 없어졌거나, 수준들이 높아져서 기도 중에는 이성이 장애물로 작용하지 못하는 단계가 된 것일 수도 있지 싶다.

문득 연암 선생이 떠올랐다. 처음 중국에 갔을 적에 생소한 환경을 보면서 나름대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아마도 이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전에 주어진 자료도 없고, 그냥 갑자기 낮선 장면을 만났을 적에 이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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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에는 신의 뜻을 전하는 예수님의 조각상이 엄숙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통스러운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을 얻었을 것인지를 생각하니 그 존재감이 더욱더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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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연지님에게 사진 한 장 찍으달라고 하고 자리에 앉았다. 원래 영화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손을 깎지끼고 앞에 올려놓는 것을 본 것 같아서 그렇게 잠시 앉아 봤다. 모자를 쓰면 실례일 것 같아서 벗었는데,

또 한 편 생각해 보면 여인네들은 흰 천을 쓰고 기도하는 것으로 봐서 모자를 쓰는 것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낭월 나름대로의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내 식대로 예를 갖추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범용적인 기준으로 상식을 삼은 까닭이었다.

물론 법당을 갔다면 더 볼 것도 없이 모자 벗고 삼배(三拜)를 했겠지. 다만 여긴 법당이 아니라 성당이다. 성당에서 삼배를 하는 것도 관리실에서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우스울 것 같아서 그것도 자중했다. 왜냐하면 입구에 CCTV로 녹화한다는 안내문자를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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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에는 고해소가 있다. 마음에 고민이 있는 신자들이 고뇌를 털어버리는 곳이며, 신부님과 면담하는 곳이라고 이해했다. 일설에는 비밀조직을 찾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마음의 번뇌를 치유하는 곳이 더 타당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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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당주를 뵙고는 뒤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다시 조각상이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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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예상한 대로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었구나. 성인의 자격을 얻어서 이름 앞에 성(聖)을 넣는 것인가 보다. 2007년에 세웠으니 10년이 되었구나. 형상이 참 앳되 보인다. 순교를 했다면 천주교 탄압으로 죽음을 맞이했단 말이지 않은가? 그래서 김대건 신부에 대한 자료를 찾아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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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21(순조 21)∼1846(헌종 14). 천주교 신부.



개설


본관은 김해(). 세례명은 안드레아. 초명은 재복(), 보명()은 지식(). 충청남도 당진 출신. 아버지는 김제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증조부 김진후()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순교하자, 할아버지 김택현()이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함에 따라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아버지도 독실한 천주교신자였으며,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1831년 조선교구 설정 후 신부 모방(Maubant, P.)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 최방제()·최양업()과 함께 15세 때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동양경리부()로 가게 되었다. 그 곳 책임자인 신부 리부아(Libois, N.)의 배려로 마카오에서 중등 과정의 교육을 마친 뒤 다시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하였다.


그 뒤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주교 페레올(Ferreol, J. J .J. B.)의 지시로, 동북국경을 통하는 새로운 잠입로를 개척하고자 남만주를 거쳐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땅에 잠입했으나 여의치 못하여 다시 만주로 돌아갔다. 그 동안에도 꾸준히 신학을 공부하고, 1844년에 부제()가 되었다.


그 해 말에 서북국경선을 돌파하고, 1845년 1월 10년 만에 귀국하였다. 서울에 자리잡은 뒤 박해의 타격을 받은 천주교회를 재수습하고, 다시 상해로 건너가서 완당신학교() 교회에서 주교 페레올의 집전하에 신품성사()를 받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같은 해 8월에 주교 페레올, 신부 다블뤼(Daveluy, M. N. A.)와 서울에 돌아와서 활발한 전교할동을 폈다. 1846년 5월 서양성직자 잠입해로를 개척하다가 순위도()에서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된 뒤 문초를 통하여 국금()을 어기고 해외에 유학한 사실 및 천주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임이 밝혀졌다.


이에 정부는 그에게 염사지죄반국지율()을 적용, 군문효수형()을 선고하고 9월 16일 새남터에서 처형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의 시체는 교인들이 비밀리에 거두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에 안장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수선탁덕(: 첫번째의 성직자라는 칭호)이라 불리는 김대건의 성직자로서의 활동은 1년 여의 단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한국인 성직자의 자질과 사목능력을 입증하여 조선교구의 부교구장이 되었고, 투철한 신앙과 신념으로 성직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천주교회는 그를 성직자들의 대주보()로 삼고 있다. 1925년 로마교황 비오11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고, 1984년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옥중에서 정부의 요청을 받아 세계지리의 개략을 편술하였고, 영국제의 세계지도를 번역, 색도화()해서 정부에 제출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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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부모님때부터 천주교 인연이 깊었구나. 15세에 프랑스로 중국으로 공부하러 다녔으니 젊은 나이에 불타는 사명감이 있었지 싶다. 죄명도 참 특이하다. '염사지죄반국지율()'이라니, '삿된 것에 물들어서 국법을 어긴 죄'라고 하면 되겠는데, 정사(正邪)는 이렇게 세월따라 지식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그 기준이 뭘까 싶다. 인간의 기준으로 구분한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세상을 하직한 나이가 불과 25세였구나. 교과서에서도 김대건 신부라는 이름은 늘 봐와서 그래도 50년은 더 살았겠거니 했는데 이것은 예상 외였다. 아무리 오래 사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까운 나이에 목숨을 버려야 했으니 꿈많은 젊은이를 생각하면서 문득 용정의 윤동주가 겹친다. 세월을 잘못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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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다고, 군문효수형()이라니, 해도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낭월만의 생각은 아닐 게다. 군대의 정문에다가 목을 베어서 매달았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적장(敵將)이나, 원수국의 황제(皇帝) 정도나 되어야 시행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무지몽매한 자들이 세상을 다스리면 이렇게도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구나.

하긴, 그들의 입장에서는 군주(君主)를 안 따르고, 천주(天主)를 따른다고 하니 분기탱천할 법도 했겠다. 얼마나 기기 막혔으면 이 젊고 열렬한 영혼의 목을 효수했으랴 싶은 생각을 해 보니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또 한 인물. 이차돈의 이름이 겹친다. 그도 불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대신들의 심판에 의해서 목을 베였지.....

1천년을 거슬러 오르내리는 긴 시간도 어리석은 인간들에게는 같은 공간의 반복되는 행위랄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지 싶다. 아마 앞을 1천년이 더 흘러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 것은 이미 종교재판을 한답시고 폭탄테러를 공공연하게 일으키고 있는 것만 봐도 어떻게 될 것인지 잠작이 되고도 남는다. 각설하고.

그렇게 형벌로 생을 마감한 김대건 신부를 몰래몰래 수습해서 매장한 곳이 안성의 미산리에 안장했고, 그 곳을 '미리내 성지'라고 부른다고 하니 다음에 그 곳을 지나갈 인연이 된다면 잠시 들려서 묵념이라도 해야 할 목적이 생기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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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부의 설명서 아래에는 여김없이 이 표시가 있다. 언제부터 이것이 궁금했는데 오늘 내침 김에 해결을 봐야 하겠군.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서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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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양은 '키로'라고 부릅니다.
그건 로마자로 p,x를 합친 것처럼 생겼지만 원래는 그리스어 문자입니다.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라는 말을 ΧΡΙΣΤΟΣ(Kristos)라고 쓰거든요.
여기서 처음 두 글자인 ΧΡ를 합친 겁니다.
이걸 키로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리스어로 Χ를 chi라,  Ρ를 rho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Chi Rho(키로)라고 부르는 거죠.

'그리스도'란 글자를 줄인 것이니 당연히 의미는 그리스도지요.
크리스마스를 X-mas라고 쓰기도 하는 게 이것 때문이니다.
그리스도의 그리스어 표기의 첫 문자인 X를 따서 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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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그랬구나. 친절하기도 하시지. 고마워요 지식인~!

주목(朱木)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지만, 김대건 신부는 '살아 25년 죽어 영생'을 이뤘을 것이니 너무 억울해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고인을 위로하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 안쪽으로는 또 하나의 조각상이 높은 단에 봉안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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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표에는 '평화의 모후'라고 쓰였다. 모후가 뭐지? 모는 母일 가능성이 많은데, 후는 后? 임금의 어머니? 그렇다면 성모마리아? 아마도 그렇지 싶단 생각을 하니까, 그냥 성모마리아라고 하는 것보다 이름이 좀 어색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앞을 보니 색색의 양초들이 어떤 것은 불타고 어떤 것은 꺼진 채로 행객을 맞이한다. 그 옆에 쓰여진 글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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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원을 내고 소원을 담아서 불을 켜도 된다는 안내문이었군. 절간에서는 연등(蓮燈)을 켜고 소원을 빌고, 여기에서는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빌고 기도하는 것이니 사람 사는 곳은 절간이나 성당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봐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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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불은 곱다. 그래서 촛불의 증명사진도 한 장 남긴다. 그것만으로도 작품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저마다의 소원을 불태워서 하늘에 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만 일본의 신사(神社)에서 본 것처럼 온갖 소원을 적은 표식이 없어서 정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오히려 좋아 보였다. 그 옆에는 친절한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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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모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또 눈길을 준다. 근데, 원래 화산에 암자가 있었다고? 하긴 그럴 수도 있지. 어디나 암자가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깐. 오죽하면 천진암도 암자이지만 천주교의 성지라고 하잖은가 말이다. 다시 더 읽어 본다.

음.....

스님의 입장에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보고 나가라'고 한 셈이니 황당했을 만도 했겠지 싶다. 당연히 문전박대를 했을 것이고, 그래서 난감했을 베르모렐 신부님의 마음도 헤아려 본다. 나름 성지의 인연이 있어서 성당을 꼭 지어야 하겠는데 조노무 화상이 틀어박혀서 비워 줄 생각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ㅋㅋㅋ

앗, 베르모렐은 요셉 장약실 신부를 말하는 거잖여? 입구에 공덕비, 아니 기념비를 세워놓았던 것을 떠올렸다. 성당의 터를 이룩했으니 그럴만도 했구먼. 불교식으로 하면 창건주인 셈이니까 공덕비 하나는 세워놓을 만도 했겠다.

그러니까 주변의 모진 반발의 갈등 속에는 이 화상의 반발도 포함되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그러한 과정이 없이 이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법이다. 그런데...... 화상이 떠난다고 했다니 과연 기도의 효험이 있었나보다.

근데.... 그 다음 구절이 참 불편하다. 매일 밤 스님의 꿈에 웬 여인이 나타나서 말을 했다는 것이 말이다.

"이 자리는 내 자리이니 이곳에서 빨리 나가거라~"

물론, 이 기록을 남긴 사람의 마음은 그 여인은 성모마리아였을 것이고, 그래서 화상과 싸워서 이겼다는 뜻으로 이렇게 적었는지는 모르지만, 과연 성모마리아께서 그랬을까 싶은 생각은 안 해봤더란 말인가? 이런 무례한 말이 어디 있겠느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다못해 빈 꺼적때기에도 먼저 온 사람이 있으면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밤마다 꿈에 나타나서 도닦는 스님을 괴롭혔다면 그게 천사일까? 악마일까? 과연 성모마리아의 행동으로 봐도 될까? 아니다.....

성모마리아가 아니라 신의 가르침을 펴려고 애쓰는 선묘낭자(善妙娘子)였을 수도 있겠다. 선조들이 이렇게 사기를 쳐놓으니까 낭월도 이런 장면을 대해서 뭐라고 큰 소리를 칠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참 내..... 그러니까, 의상대사가 영주 부석사를 창건하려고 갔더니만 화적떼들이 주거하고 있다가는 절 짓는다고 터를 내 놓으라고 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당연히 도적들도 뭔 미친 말뼈다귀 같은 소리냐고 호통을 치고 달려들었던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 그런데 살아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서 따라다니던 선묘낭자가 옆에 있는 바위를 높이 들어올려서는 올라갔다 내려갔다가 하는 바람에 도적들이 기겁을 하고는 바로 터를 내 놨다는 이야기는 벗님도 어딘가에서 들어보셨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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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채만한 바위가 머리 위에서 춤을 췄다니 기겁을 할 만도 하겠다. 규모가 느껴지지 않는 벗님을 위해서 인증샷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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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절의 이름도 부석사(浮石寺)잖은가. 그러니까 바위가 떠올랐다고 하면서 붙은 이름이고, 그 바위도 법당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서 다시 떠오를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선례가 있으니 그 여인이 화산에 공부하고 있는 화상에게 나가라고 했다는 것도 뭐라고 할 수가 없겠더란 말이다. 의상대사가 아니 선묘낭자가 잘못 했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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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멋지고 아름다운 평화의 모후님께도 합장배례하고.....

포근하게 성지를 감싸주는 소세 신부의 묘를 지나니,

기도하는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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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내리사 세상을 평화롭게 하소서~!"
"자비를 내리사 세상을 평화롭게 하소서~!"
"자비를 내리사 세상을 평화롭게 하소서~!"


조그만 석상마다 이렇게 기도를 하면서 산을 순례하는 것 같았다. 맑고 낭랑한 음성으로 간절히 나직하게 기도하는 매력이 나바위를 감돌아서 하늘에 닿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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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항상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의외의 장면을 만나기 마련이다.  나바위 성지에 마애삼존불이라니.... 문득 기도하다가 홀연히 떠난 화상이 겹치면서 뭔가 연관성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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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옆을 감고 돌아가니 과연 석벽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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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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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존불이라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지 주불도 흐릿한 것을 보면 팔힘도 없는 석수가 조각했거나 그 쫓겨난 화상이 쉬엄쉬엄 염불 하면서 꼬챙이로 파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니까 기념물이 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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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삼존불임을 확인했다. 금강을 굽어보면서 강을 따라 오가는 사람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조성된 불상이라고 하니 그럴만도 하겠다. 바로 앞이 금강인 까닭이다. 물론 지금은 나무숲이 우거져서 금강이 잘 보이지 않는다. 때론 풍경을 위해서 나무들이 없었으면 싶은 경우도 자주 있지만 어쩌다 들리는 행객의 마음으로 판단을 할 수도 없는 일이겠거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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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거대한 돌탑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득 태백의 정암사 수마노탑이 떠올랐다. 이렇게 유사한 느낌으로 겹쳐보는 것은 옛날의 킹콩영화에서 킹콩이 건물 다섯개를 보고서 자기의 살던 고향에 있는 다섯 산봉우리로 착각하고 오른다는 설정과도 유사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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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가 퍼뜩 떠올랐다는 이야긴데, 벗님이 보기에는 전혀 안 닮았다고 하겠지만 낭월은 문득 숲사이로 우뚝하게 나타난 탑을 보면서 이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어떻게 생긴 것인지 궁금할 벗님을 위해서 사진을 갖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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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바위,

너럭바위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만한 넓은 바위가 정상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인해서 나바위 성지가 되었던 셈이니 의미가 있다고 해도 되겠다. 그리고 좀전에 본 삼존불도 이 바위에 새겨진 것임을 대략 위치를 봐서 짐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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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러하듯이, 풍광이 좋은 곳에는 정자가 있기 마련이고, 누각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에도 금강을 굽어보면서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곳에 비를 피하고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정자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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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금정(望錦亭)이라, 錦은 금강(錦江)일테니 이름도 적절하다. 다른 말로는 밋밋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래 당연한 것은 미적찌근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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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드망즈 주교가 매년 6월에 여기에 와서 금강을 굽어보면서 피정을 하셨다잖여. 주교면 신분이 꽤 높은 분인가 싶다. 또 조사 들어간다. 최고 높은 분은 교황, 그 다음은 주교,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부라고 한다. 그러니가 주교는 중간 단계의 높은 신분이었구나. 여하튼 피정이 뭐지? 생소한 말이네. 오늘 이것 하나 배워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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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避靜)

정의


가톨릭 신자들이 행하는 일정기간 동안의 수련생활.



내용


성직자·수도자·신자들이 자신들의 영신생활에 필요한 결정이나 새로운 쇄신을 위하여 어느 기간 동안 일상적인 생활의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묵상·성찰·기도 등 종교적 수련을 할 수 있는 조용한 곳으로 물러남을 뜻한다. 피정의 장소로는 성당이나 수도원 또는 피정의 집 등이 이용된다.


피정은 그리스도교 훨씬 전부터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면서 기도하였던 일을 예수의 제자들이 본뜨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16세기 반()종교개혁 때 피정을 통한 신앙생활의 방법 등이 공식적으로 소개되자, 성 이냐시오 로욜라(StIgnatius of Loyola)는 그의 저서인 『영신수련(Exercitia Spiritualia)』에서 실제적인 피정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에 성 프란치스코 살레지오(StFranciscus Salesius)와 성 빈첸시오 드 바오로(StVincentiusde Paulus) 등이 피정의 강력한 옹호자가 되어, 1548년 교황 바오로 3세에 의하여 정식 인가되었으며, 1922년 교황 비오 11세는 성 이냐시오 로욜라를 ‘피정의 주보성인’으로 선포하였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피정을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 동안 머무르면서 지도자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피정의 집이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19세기부터는 성직자들을 위한 연례 피정제도가 실시되고 있는데, 교회법상 성직자들은 최소한 3년에 1회, 수도자는 1년에 1회 의무적으로 피정을 받아야만 한다.


피정은 참가자 수에 따라 단체피정과 개인피정, 또한 그 신분에 따라 성직자·수도자·평신도 피정으로 나누어지고, 평신도의 경우 나이·성별·직업에 따라 다시 세분화된다.


피정의 방법은 일반적으로 침묵 속에서의 묵상·성찰·기도와 강의 등으로 이루어지며, 때로는 현대적 방법인 만남(encounter)·대화() 등의 새로운 방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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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 내면의 성찰을 위한 홀로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 모양이다. 면벽수련이기도 하고, 동안거 하안거처럼 일정기간을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으로 정리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본당 옆에 피정의 집이라고 하는 팻말을 본 것 같은데, 이제 그 의미를 알고 보니까 번거로운 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니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라고 봐도 되겠다.

그러니까, 드망즈 주교는 금강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스렸다는 이야기란 말이지. 그렇다면 망금정은 다른 곳에는 없는 것인가 싶어서 다시 검색을 하다보니까 전남 장성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곳이 낭월산(朗月山)이라는 바람에 또 가봐야할 곳이 하나 추가되었다. ㅋㅋㅋ

낭월산

ttps://m.map.daum.net/actions/detailMapView?id=25194319

전남 장성군에 낭월산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발견하게 되었다. 마을 이름도 전남 장성군 삼계면 상도리란다. 상도리는 지금 낭월이 사는 곳도 상도리인데 이건 또 무슨 우연의 일치인가 싶어서 조만간 나들이를 해야 할 모양이다. 궁금하니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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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유적지에서는 증명사진이 필요하다. 정면으로 반듯하게 한 장 찍는 사진을 말한다. 복자(福者)도 교황청에서 주어지는 호칭인 모양이다. 김대건 신부의 삶과 신앙심에 대한 행위가 교계의 교훈이 될만 하니까 그 의미를 더욱 강화해도 될만큼 존중한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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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사진도 분위기를 전하는데 도움이 된다. 망금정과 순교비와 나바위가 어우러져서 삼중주곡을 연주하는 풍경이다. 성지란... 이런 느낌인가 보다. 싶은 생각을 하면서 화산의 뒤쪽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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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바위라고 하게 생겼다. 생긴 모양은 십자가가 아니라 메고 가는 십자가의 형상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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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중국에서 출발한 배가 천신만고 끝에 제주도를 거쳐서 강경포구로 들어와서 처음 닻을 내린 곳이란 말인가보다. 예전에는 금강이 이곳으로 타고 돌았다고 하니 100년도 안 된 세월에 강의 흐름도 바뀌었다는 말인가 보다. 아이들이 다이빙을 하고 놀았다는 그 풍경을 짐짓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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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이 이름을 붙였으면 도(十)바위라고 했지 싶다. 물론 정확하게 열십(十)자의 모양이 아니긴 하지만, 그냥 비슷하면 우기는 것이 신봉자들의 고집이니까 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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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가 성지가 된 뿌리를 보여주는 표지판도 의미가 있겠다. 착륙지점이라고 해도 이해는 되지만 상륙지점이 더 적합한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짐짓 들면서 내용을 읽어 본다. 왜냐하면, 착륙은 공중에서 땅에 내려올 적에 쓰는 말로 익숙한 까닭이다. 나중에라도 누군가 수정한다면 또한 잘 한 것이라고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라파엘 호가 천신만고 끝에 여기에 도달한 것도 하늘의 보살핌이라고 여겼지 싶다. 그나마도 3대 어시장으로 번잡했던 강경포는 자칫 사람들 눈에 띄어서 발각이 될까봐 화산의 나암포(羅巖浦)로 살며시 들어왔다는 것을 보면서 당시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전도활동을 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나암포라면 벌릴라에 바위암이다. 그렇다면 벌릴바위라고 하던지, 나암이라고 하던지 뭔가 짝을 맞췄어야 할텐데, 벌릴은 어감이 안 좋아서 '나'로 그냥 두고, 암은 '바위'로 바뀌어서 '나바위'가 되었구나. 지명도 참 재미있는 것이 많다. 너럭바위라고 해도 되는데, 나바위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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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를 돌아가니 또 하나의 안내판이 나타난다. 별로 볼 것도 없는데 웬 안내판인가 싶어서 그냥 지나치려다가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이 눈길을 보냈다.

'화산'의 유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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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쳤으면 아마 모르긴 해도 또 가야 했을 뻔.

어디 보자. 여김없이 등장하는 우암 송시열. 누가 뭐래도 조선시대의 거유(巨儒)임에는 틀림이 없었던가 보다. 그런데, 팔괘정에서 화산을 바라봤다고? 아니, 나암산을 바라보니 너무 아름다워서 화산(華山)이라고 했단 말이지? 그럼 화산이라는 이름은 우암 선생이 붙인 거네? 그렇다면 팔괘정에서 과연 화산이 보이는지 확인해야지.

"날아라 근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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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에 있는 팔괘정이다. 금강을 굽어보고 있는 정자인데 아무리 둘러봐도 편액 하나 안 붙어 있다. 난리통에 어디론가 달아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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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좋다. 팔괘정(八卦亭).

김장생이 임리정(臨履亭)을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치자, 옆에 살고 싶어서 이웃에 팔괘정을 지었다고 하니 스승을 동경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바위에 글자가 새겨진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미루기로 하고 화산이 보이는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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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저 멀리 또렷하게 화산이 보인다. 좌측중간에 보이는 검은 동산이 나바위이고 라암이고, 화산이다. 뒤로 올라가서 다시 망원으로 당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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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예쁘기도 하네. 동그란 것이 둥실둥실 원만하게 살라는 자연의 가르침인양 싶었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관금정, 아니 망금정도 보일 것 같은데.... 망원의 한계는 이미지줌으로 당기면 된다. 뭘 당기느냐고? 사진을 잘라낸다는 뜻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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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지붕이 보인다. 망금정이 틀림없으렸다. 옛날에는 나무를 베어다 밥을 해 먹었기 때문에 산이 휑~했을 테고 그래서 전망도 좋았겠는데 지금은 아무도 나무를 사용하지 않으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구마구 솟아나서 전망으로는 꽝이다.

이렇게 해서 우암 선생이 화산이라고 이름붙인 연유도 확인했다. 역사를 알면 풍경도 두 배로 즐길 수가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말이지 싶다. 그 바람에 다시 하나를 더 살피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득 논산에 있는 두 개의 학교가 떠올랐다. 대건중교등학교와 쌘뽈여자중고등학교이다. 이 두 학교가 모두 천주교에서 세운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바위 성지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의미가 더욱 심장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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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대건중고등학교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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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사람들은 아들을 낳으면 모쪼록 대건고등학교로 보내라고 했더란다. 그만큼 명문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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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딸을 낳으면 쌘뽈여고로 보내라고 했다. 또한 잘 가르쳐서 인물을 만들어 준다고 믿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게다.

그냥 쎈뽈인지 쌘뽈인지 구분도 없었는데, 사진기행을 정리하면서 확인해보니까 쌘뽈이로군. 왜 이름이 이렇게 생겼나.... 했더니 성바오로의 프랑스식 발음이 쌩뽈인데, 이것이 번해서 쌘뽈이 되었단다. 그럼 왜 하필이면 프랑스식이냐? 그야 김대건 신부가 프랑스에서 신부수업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근데 익산에 있지 않고 논산에 있는 까닭은? 그야 낭월은 모른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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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마지막으로 한 바퀴를 다 돌았다는 이야기이다. 사진에 나타난 시간정보는 거꾸로이다. 역으로 순행하고서 다시 순으로 배열했기 때문이다. 이점 참고하라고 언급해 둔다. 여하튼 성지순례를 잘 했다. 이렇게 둘러보는 맛도 괜찮구나. 싶다.

생전 처음으로 발을 디뎌 본 성당이고 성지이다. 둘러보니 그곳도 또한 사람이 살다 간 흔적만이 가득했었다는 소감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던 수녀의 낭랑한 음성이 귓가를 울린다.

"자비를 내리사 세상을 평화롭게 하소서~!"

"자비를 내리사 세상을 평화롭게 하소서~!"

"자비를 내리사 세상을 평화롭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