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2017③ 용정 윤동주

작성일
2017-07-05 06:31
조회
1712

중국2017③ 용정(龍井)과 윤동주(尹東柱)


 

 

_BDS0265

연길의 시간은 중국시간이 작용한다.

재미있는 것은, 129도에 해당하는 부산과 같은 경도 선상에 있으면서도 시간대는 한국의표준 시간보다 1시간을 늦춰야 한다는 것이다.

20170705_051849

그러니까 해가 뜨는 시간은 부산과 같은데 시간은 한 시간이 늦기 때문에 한국의 정오는 연길에서는 11시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폰을 켜면 알아서 시간이 늦춰진다. 문제는 사진의 위치를 저장하는 어플과 시간을 맞춰놔야만 몇 시에 어디에서 사진을 찍었는지가 맞춰지기 때문에 시작의 한 시간이 꼬인다는 점이다.

아마도 GPS가 멍때리겠지..... 같은 시간대에 두 가지 정보가 공존할테니까. 그래서 사진이 꼬인다. 혹 촬영위치를 저장하는 어플을 가동한다면 이러한 점으로 인해서 좀 피곤할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해야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사실, GPS는 그냥 사진에 기록된 시간의 순서대로 배열만 하면 그뿐이구나. 그렇다면 헷갈릴 것은 낭월 뿐이로군. 쳇~! 같은 시간대에 다른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해 봤다. 북경이나 서안으로 갔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렇거나 인간이 만든 것은 늘 혼란을 유발시킨다는 것. ㅋㅋ

_BDS0183

우린 연길 공항에서 10시 36분에 가방을 풀었다. 그런데..... 비행기가 연길 공항을 배회할 적에는 시간이 어떻게 되었을까?

_BDS0149

연길 공항에 접근할 적에 촬영한 주택 지역의 풍경이다. 시간표시는? 11시 06분이다. 엉? 그렇다면 똑똑한 카메라가 알아서 시간변경을 했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카메라는 바보이다. 그래서 공항에서 폰의 시간이 바뀜과 동시에 카메라의 시간설정도 한 시간을 늦춰줘야만 현지 시간에 맞게 조정이 된다.

카메라시간변경

다행히 중국은 하나의 시간대만 사용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어디를 가던 한 번만 맞춰놓으면 된다. 그런데 미국은 어떻게 하나 모르겠다. 세 개의 시간대를 운용하던가? 어디를 보니 다섯 개의 시간대가 있다고도 하고..... 그렇다면 계속해서 동서로 다니게 된다면..... 우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러지 싶다. 물론 낭월같이 복잡하게 사는 놈만. ㅋㅋㅋ

20170628_103731

이제 동화책을 주인에게 전달해야 한다. 주황색 셔츠를 입은 사내에게 전하기 위해서 그 무거운 책보따리를 들고 왔던 것이다. 80권이라던가.... 전집을 연길에 사는 저 남자의 아기에게 선물하기 위한 홍박사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이다. 오랜 인연으로 인해서 마음이 동했지만, 아기를 위해서 책을 준비한 것만 봐도 홍박사는 학자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물론 의학박사이다.

 

_BDS0204

혼자서는 중량초과로 인해서 갖고 올 수가 없고, 화물로 붙이자니 시간도 걸리고 비용도 많이 발생하는데 놀러 가는 일행들의 가방을 빌렸으니 그야말로 서로 좋은 작전이었다. 물론 무거운 수고 정도는 또 그만큼의 대가를 받게 되니 억울 해 할 것도 없다. 그것도 차차 알게 된다. ㅋㅋㅋ

_BDS0193

가방을 털어서 책을 모두 건네고서야 여정(旅程)이 시작되었다. 저 남자는 연길에서 무슨 연구소의 미생물이라던가....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척 봐도 무척이나 선량해 보인다. 그리고 다음에 또 만나게 된다. 여하튼 오늘은 일단 여기에서 작별이다.

_BDS0199

[길(吉) H · 19269]랑 동행하게 되었다. 어? 9269? 이건 화인이 전화 앞 번호인데? 그것도 참 묘한 인연일쎄. 앞으로 4일 동안 이용해야 할 차량이다. 여행사의 아는 인연을 통해서 기사를 붙여서 빌린 것이다. 18인승이다. 널널하게 타고 다니라고 아예 큼지막한 놈으로 준비한 홍박사의 손이 얼마나 큰지 대략 짐작이 된다. 그바람에 이동 중에 고단하면 언제든지 길게 누워서 잠에 취할 수가 있었다는 것은 덤으로 얻은 휴식공간이었다.

_BDS0212

연길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서 있는 구조물은 말이다. 천천히 조사하면 왜 말인지, 용이 아닌 이유가 뭔지도 나오겠지만 그냥 지나쳤다. 그것은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였다.

_BDS0216

시내의 풍경이 다가온다. 우리의 첫번째 행선지는 용정이란다. 아마도 처음으로 연길에 오면 들리게 되는 코스인갑다. '백두산을 보러 왔는데 용정이라니.....' 싶었지만 좁은 상식을 넓혀 줄 홍박사의 배려이겠거니 싶어서 그냥 맡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호용정

그런데 용정이라고 하면 연변의 용정이 아니라 항주(杭州)의 서호용정(西湖龍井) 밖에 몰랐다. 그만큼 연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모양이다. 도올 선생의 중국일기에서도 용정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것 같기는 하다는 정도......?

용(龍)을 중국에서는 용(龙)으로 표기한다. 이른바 간체자(簡體字)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중국만 이렇게 쓴다. 그래서 자칫하면 세상에 없는 글자를 만들어서 사용한다고 오해를 할 수도 있지만, 실은 고대로부터 사용해 온 글자 중에서 선별해서 간체화 시켰기 때문에 초서(草書)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용'자는 본 적이 없다고 우길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용-1

이렇게 중국에서 사용했던 글자들 중에서 용(龍)자를 모아놓고 살펴보면 된다. 어떤가? 여기에서 '龙'이 보이지 않는가? 아니, 그건 어린 아이가 龍을 쓴다고 한 것이 잘못 되어서 쓴 오자라고? 그것도 일리는 있다. 세상에서 단 하나만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렇겠거니 하는 것도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2

또 나타나면 이제 뭔가 그럴싸...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상하더라도 차차로 적응이 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연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세상만사가 모두 그렇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본다. 윤복희의 유행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처음에는 미니스커트가 무슨 옷이냐고 하고, 얄궂다고 하다가 점차로 적응이 되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겠거니.....

아니, 그래도 의심스럽다고? 뭐 그러한 의심은 괜찮다. 무엇이든 너무 쉽게 믿다가 사기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용-3

"짜~잔~~!!"

이라고 외치면 된다. 여기에 틀림없는 바로 그 '龙'이 보이지 않는가? 이쯤에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소통을 거부한 것으로 간주할 참이다. ㅋㅋㅋㅋ

그렇거나 말거나 차는 용정을 향해서 달린다. 

20170628_111552

셀카를 찍으면 영판 띨빵~한 바보가 된다. ㅋㅋㅋ 그래도 다들 귀경 가는 길이 즐겁기만 한 모양이다. 맨 앞자리는 항상 낭월이 선호하는 자리이다. 새로운 풍경을 가장 먼저, 그리고 명확하게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_BDS0220

윤동주 선생이라고 해야 하겠지....? 그 분이 소싯적에 다녔던 대성중학교이고 여기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곳이기도 한가 보다. 그런데..... 솔까말, 낭월은 윤동주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다. 기껏 생각하는 것은 윤동주와 서정주를 같은 사람인가.... 싶은 정도의 문학적 수준이다. ㅋㅋㅋ

그런데, 조금 관심을 갖고 살펴보니까, 두 사람의 존재감은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한 사람은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일신의 영달을 추구해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부역자라는 경계선이 뚜렷하게 족적을 남기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 어느 시인이 미당문학상을 준다는 것도 거부했다는 뉴스를 본 것이 문득 생각난다. 거부한 이유는 친일과 전두환을 지지하는 언행으로 인해서 얼룩진 사람의 이름으로 된 곳에 자신의 이름을 넣기 싫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럴만도 하다. 아마도 그 시인은 윤동주문학상이라고 했으면 기꺼이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을 꾸려 갔던 흔적이 남긴, 향기와 악취의 사이에서 후생은 또 고뇌한다. 권위가 있는 상이라면 물론 그도 받고 싶었을 것이지만, 그 이름이 맘에 걸렸나 보다.....

물론 낭월의 관점이라면 그냥 받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렇게 고고한 것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부하게 되면 그 동안 그 상을 받았던 사람들은 또 뭐가 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아쉬움이 남는 까닭이다. 앞으로도 그 상을 받게 될 사람들도 분명히 께름칙..... 할 게다.

둥글둥글 살아가는 인생살이라고 한다면 특별히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학문적인 문제로 충돌이 난다면 낭월도 양보를 할 마음이 없을 것 같다. 다만 이것은 애를 쓴 노력에 대한 기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직접 미당 선생이 주는 것도 아니고 기념회에서 주는 것이라면....... 에고~ 모리겠따~~!!

 

윤동주 시비가 나그네를 반긴다. 어디....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년 11월 20일

음......

사뭇 비장한 느낌이 감돈다. 난세의 소용돌이가 시인을 이렇게도 괴롭혔나 보다. 11월 20일의 용정은 얼마나 매서웠을까? 그 추위 속에서 덜덜 떨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봤으니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니..... 그 별은 분명 하늘의 별은 아닐 터이다. 자신이겠지.... 바람은? 왜놈들이겠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흔들리는 고통의 나날들을 견디려니 얼마나 추웠을까......

그는 어떤 삶을 살다가 갔기에 이렇게 기념관을 만들어서 기리는 것일까? 이렇게 인연이 닿으면 또 조사를 해 보면 된다. 무관심하게 스쳐지나 갔지만 문득 그의 흔적을 만나니 또 하나의 인연 끝이 이어지는 것임을.....

=======================================

윤동주. 1917년 12월 30일 출생. 1945년 2월 16일 사망.

네이버캐스트의 윤동주 소개(궁금하시면 클릭)

시 일 월 년 (양력)
ㅇ 丙 壬 丁
ㅇ 午 子 巳

=======================================

윤동주에 대해서 복사하는 것은 번거로울 따름이므로 궁금하신 벗님이나 낭월처럼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지식을 늘리려는 벗님은 네이버캐스트에 설명한 것을 읽어보시면 소상하게 알 수가 있겠다. 그래서 기록된 생일을 보고서 습관적으로 만세력을 뒤졌다. 선생의 삼주(三柱)는 어떠했는지 궁금해서이다.

아, 생일을 왜 양력으로 했느냐고? 그야 그해의 음력에서 12월은 30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양력이라는 확신을 가져도 되지 싶어서였다. 그러니까 태어나도 이렇게 빼박불가의 생일이면 사주 연구하기에는 얼마나 좋겠느냔... ㅋㅋ

그런데..... 불꽃처럼 살다가 사라지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해도 되지 싶은 사주가 나타났다. 무력한 겨울의 불이 일점 목(木)이 없으니.... 그 외로움과 함께, 불굴의 정신으로 버티는 병오일주의 강직함이 그대로 삶에서 읽혀진다고 해도 되지 싶다. 어? 그렇다면 서정주 선생은? 벗님도 궁금하실랑가......

===============================

서정주. 1915년 5월 18일 출생. 2000년 12월 24일 사망.

시 일 월 년 (음력)    시 일 월 년 (양력)
ㅇ 壬 壬 乙                ㅇ 己 辛 乙
ㅇ 辰 午 卯                ㅇ 酉 巳 卯

===============================

생일이 음력은 임진(壬辰)이고, 양력은 기유(己酉)인데, 임진의 강골틱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자알~ 처신했다면 현실의 판단에 밝았다고 봐서 양력의 기유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식신이 겹치니 다방면으로 머리 회전이 잘 돌아갔을 것이고, 월지의 정인은 상황에 따라서 적응하는 판단력이 빨랐을 것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두 선생의 사주가 참 달라도 많이 다르다. 물론 각자의 삶이 후대에 어떻게 평가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개의 문제로 삼기로 하고, 사주만 놓고 봤을 적에는 외롭고 고독한 윤동주의 사주보다는 따뜻한 초여름에 태어난 기유가 훨씬 나아보이기는 한다. 죽은 다음보다 지금의 상황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음직도 하다.

_BDS0224

유적을 잘 살려 놓았다. 당시 건물을 활용해서 기념관으로 쓰는 모양이다.

_BDS0231

인증샷은 필요하다. 그때 그 자리에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ㅋㅋㅋ

_BDS0232

애국하는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판단했나 싶다.

_BDS0234

방문한 날짜를 보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_BDS0238

이것을 다 읽을 겨를은 없다. 물론 사진이라도 찍어놓으면 나중에라도 볼 수가 있는데....

_BDS0239

무슨 마음인지 사진도 찍지 말라고 써 붙여 놨다. 그래서 별로 찍은 사진이 없군. 찍지 말라는 것을 보기 전까지만 찍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_BDS0242

이것은 허락을 받고 찍은 사진이다. 돈이다. 기부금이라는 이름으로 방명록에 서명을 하면 돈을 내야 하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_BDS0240

처음에는 방명록을 보고서 그냥 이름을 적었는데 문득 마지막 칸을 보고서 그만 펜을 놓았다. 당연히 '남기고 싶은 말씀' 정도를 쓰는 곳이겠거니.... 했는데, '기부금'이라는 제목을 써놔서였다. 물론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지만..... 만약에 그 칸의 용도를 미리 봤더라면 이름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칸을 비워놨더니, 호연이 채워넣는다. 저 손은 호연의 손이고, 금액도 호연이 적은 것이다. 무슨 마음으로 쓴 것이? 2만원인가? 그럼 인민폐 100원?

_BDS0244

용정의 이치에 밝은 홍박사가 100원을 내서 그렇게 적은 모양이다. 그래도 뭔가 강요에 의한 기부금은 씁쓰레~하다. 분홍 티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배가 고파 죽겠다고 하면서도 설명을 해 준다. 그리고 조건부로 설명을 해 드릴테니 성의껏 기부해 달라는..... 음.....

그렇구나..... 싶었다. 그것도 또한 관광이니깐, 뭐 윤동주의 이름 석자를 울궈먹든.... 말든.... 그것은 사업의 차원이라고 하면 되겠다. 그래도 기부금 통의 이름은 근사하다.

윤동주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해
의연하는 고마운 분들의 성금은
대성중학교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쓰입니다.

물론 좋은 말이다. 다만, 그것이 추모하기 위해서 낸 돈도 있겠지만, 이렇게 기부를 가장한 압력으로 뜯어내는 것이라면.... 이것은 선생을 욕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문득 들었다. 이것이 연변에서 받은 첫 인상이라면 더욱 더....

_BDS0245

그 옛날의 풍경을 떠올리면서 잠시 책상 앞에서 앉아 보기도 하고,

_BDS0255

텅 빈 칠판을 우주삼아서 별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도 되어 보았다.

_BDS0271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기도 하고,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또 많은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기도 하는 것은 산수로 풀어서 될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그것이 역량이겠거니....

후에 윤동주는 감옥에서 사망하고, 실험실의 아바타가 되어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본 것도 같다. 그야말로 불꽃처럼 살다가 산화한 불행한 시대의 지화상이라고 해야 할까 싶다.

_BDS0273

우선 배가 고프니까 점심을 먹고 우물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 선택된 것은 순이냉면. 한자로는 순희냉면(順姬冷面) 이라고 쓰고 한글로는 순이라고 썼으니 각자 알아서 읽으면 되겠다. 한글로 순이라고 할 요량이면 한자는 이(伊)를 쓰는 것이 보통이겠고, 한자로 희를 살리려면 그냥 순희냉면이라고 하면 될 것을 또 괴이하게 꼬아놓았다.

연변을 다니면서 느낀 것인데, 말은 분명히 조선어가 들리는데 막상 말을 해 보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간판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조선인듯 중국이고, 중국인듯 조선인 묘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 연변이었다.

_BDS0276

11시 43분이면 12시 43분이고 배가 고플만도 하겠다. 이미 식당에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전문인 냉면을 시켜놓고 테이블을 살펴 봤다.

20170628_114558

각자의 몫으로 놓인 것은 컵과 접시와 잔이었다. 그리고 돌아다니는 내내 식당에 가면 이러한 세트를 만날 수가 있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국가규격으로 식당에서는 이렇게 준비하라는 명령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_BDS0281

드디어 푸짐한 냉면이 나왔다. 면발은 누르스럼한 것이 아마도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매우 부드러웠고 찰기도 있었다. 맛은 시원하니 먹을만 했고, 계란도 후하게 통으로 넣었다.

20170628_120443

마침 갈증도 나던 차에 시원하게 배를 불리고 흐뭇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밖에 나오니까 주차해 놓은 승용차의 뒷창에 써놓은 글이 보여서 또 한 장 찍었다.

20170628_122528

지나는 길에 이러한 것을 부탑고 또 한 참 수다를 떨 수도 있는 이야기 소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낭월은 이야기꾼이다. 카메라는 이야기의 재료를 만드는 장치라고 생각해도 되지 싶다. 그래서 고화질의 화질보다는 기능성의 렌즈가 더 맘에 드는 것이다.

20170705_091617

이렇게 항상 준비태세로 카메라에 연결되어 있다가 언제 어떤 환경이라도 바로 거침없이 그 상황의 이야기를 담아 주니 이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는 것이다. 카메라 카페에서는 화질이 떨어져서 못쓴다는 말도 하지만 그런 것은 귓등으로 흘려버린다. 왜냐하면, 고화질로 사진을 찍어서 어디에 전시라도 할 요량이라면 몰라도 그럴 일은 거의 없을 뿐더러 또 그러한 장면이라면 잠자고 있는 렌즈가 있으므로 그걸 쓰면 되는 까닭이다.

소니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렌즈를 16-300으로 하나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무게가 조금 더 올라가더라도 그러한 렌즈라면 구입을 할 생각이 다분하다. 그러나 아마도 렌즈도 장사이니 그러한 물건을 만들 리는 없다고 봐야 하지 싶다.

비록 배낭 속에서는 70-200GM이라는 좋은 렌즈가 있지만 그것을 꺼내진 않는다. 비싸기도 하려니와, 첫째로 무겁다. 둘째로 70mm는 이야기를 담는데 너무나 좁은 화각이기도 하다. 그래서 카메라 캡으로는 24-240이다. 24mm면 웬만한 이야기는 다 담을 수가 있다. 그리고 제법 멀리 있는 것도 240mm면 끌어 올 수가 있으니 이보다 더 적절한 도구는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앗! 여신수(女新手)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엉뚱한 길로 샜군. 낭월의 이바구가 장 이렇다. ㅋㅋㅋ 글자대로만 풀이하면 '여자의 새로운 손'이 되겠다. 그리고 주어는 '신수'에 있다고 본다면, 신수는 초보라는 뜻이다. 신수(新手)는 초보이고, 이수(二手)는 중고이다. 서로 연관이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셨다면 오해라는 점을. ㅋㅋㅋ

그럼 여성 초보라는 뜻이로군, 그 아래에 쓰인 글귀도 읽어 보자.

부탁하노니, 널리 보살펴 주세요.
만약 급하시다면 날아서 지나가 주세요.
감사합니다.

아, 뭐, 용정 이야기에 용정에 대한 글만 써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깐. 그냥 오가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여행담이지 않겠느냔 뻔뻔함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주워다가 끼워 넣는다. 이런 것도 아는 사람에게는 싱거운 이야기일 뿐이지만, 한자에 관심이 있고, 더우기 그 뜻에 관심이 있는 벗님이 한 분 정도는 계시리라고 봐서 수다를 떤다. ㅋㅋㅋ

다음에 들릴 곳은 용정의 지명이 유래된 발상지인 용정에 가본단다. 용정은 용우레라는 이름의 우물이라고 하는 군.

_BDS0286

우물 입구에는 혁명의 용정이라고 큼지막하게 석비를 세워 놨다.

_BDS0287

중문으로도 써 놓고.

_BDS0305

조선 글로도 써 놨다. 여기에서 구태여 한글이라고 하지 않고 조선 글이라고 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글은 두음법칙의 적용을 받는데 조선 글은 두음법칙이 없이 소리나는대로 초성이 'ㄹ'이면 그대로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한글과 조선 글의 차이를 기준하고 이름을 그렇게 붙이기로 했다.

겸해서 한글의 두음법칙은 망할 법칙이라는 반발심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조용히 자신에게만 속삭인다. 이것은 다시 국민투표에 붙여서라도 되돌려야 하는데 기득권이 그러한 것에 관심이 없으니 고쳐지기를 바라는 것은 요원하지 싶다.

이(李)를 '이'로 읽을 것인지, 아니면 '리'로 읽을 것인지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두음법칙을 무시하고 자신은 리씨라고 주장한다. 리선근 박사 같은 경우라고 하겠다. 그러니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두음법칙만 없어졌으면 참 좋겠다. 고로 다시 말하면,

용정은 한글이고,
룡정은 조선 글이다.

그럼 북한 냄새가 나게 왜 조선글이냐고 할 벗님도 계실지 모르겠다. 불론 북한에서도 조선 글을 사용하기 때문에 북조선이라고 해도 문제는 없을 게다. 다만 조선시대에 썼던 글을 조선 글이라고 하는 의미라는 것을 말씀드린다.

_BDS0288

바로 그 우물이다. 용정.

안을 들여다 본 사진은 선택하지 않았다. 그 사정은 직접 가셔서 보기 바란다. 아마도 들여다 본 사진을 올린다면 속이 편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만 하면 대략 미뤄서 짐작을 하실 게다. ㅋㅋㅋ

_BDS0291

우물 옆에서는 나무 그늘을 차양삼아서 화투 놀이에 빠져 든 동네 할무니들의 풍경과, 카드 게임에 몰입하는 동네 할부지 들의 풍경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전개되어 있었다. 그러한 모습과 함께 어디에서도 맡을 수가 있는 담배의 연기가 감돌고 있었다. 중국의 담배 풍습만 본다면 아마도 20년 전의 한국 모습을 연상해도 되지 싶다.

_BDS0313

그야말로, 노래로만 들어 봤던 일송정(一松亭)이다. 거대한 돌에 멋지게 새겨놓은 일송정이다. 노래는 선구자였나? 어디.... 가사를 좀 찾아 보자....

============================

1절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2절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 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3절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마음 길이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 

그렇구나..... 일송정의 푸른 솔이라.....

어? 해란강? 맞아 강줄기가 보였는데....

_BDS0318

자, 이것이 일송정이다. 노랫말에 따라서 지은 것인지 원래 일송정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것을 복원한 것인지는 알 바가 없다. 그리고 소나무가 하나 있어야 하겠군. 그것도 정자 앞에 하나 있었다.

_BDS0331

누가 봐도 소나무 한 그루가 분명하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에서 부터 있었던 나무라면 좀 작지 않은가 싶기는 하다. 여하튼 정상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고 일송정이 있으니 일단 그 나무라고 우길 자료는 된다고 하겠다. 그리고.... 해란강....

_BDS0326

저 뒤로 흐르는 강이 해란강이라고 홍박사가 알려 줬다. 한자로는 해란강(海蘭江)이다. 바다와 난초가 어떻게 조합이 된 것인지는 상상불가이다. 다만 여진족들이 모든 강물은 흑수로 흘러 들어간다고 해서 해란 또는 해랑이라고 불렀다고 하니까 한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소리를 적어놓은 것인가 싶은 짐작만 해 본다. 해란강은 흘러흘러서 결국 두만강으로 연결이 되는 것을 지도에서 확인해 봤다.

또 가사에 나오는 용두레는 용정 우물을 말하는 것이므로 용정을 중심으로 말을 타면서 독립운동을 하던 누군가가 가사를 만들었다고 짐작해도 되지 싶다. 그리고 말이라고 하니까 연길 공항을 나오면서 봤던 말이 떠오른다. 아하~ 이 말이 그 말이었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뭐가 되었든 끌어다 붙여야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ㅋㅋㅋ

_BDS0350

일송정의 명패석에서, 아니 명패바위에서 쯔으기~ 뒤쪽으로 일송정의 지붕날맹이가 보인다.

_BDS0352

크기가 가늠이 안 될 때는 모델이 필요하다. 딱 요렇게만  해 놓으면 왜 표지석이 아니고 표지바위라고 해야 하는지를 바로 알아먹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스케일은 대륙이다.

_BDS0355

그리고 그 아래에는 용정찬가(龍井讚歌)를 새겼다.

백룡승천(白龍升天)
신비한 전설(傳說)
용드레우물에
무지개로 섰다

그 광휘(光揮)
해란(海蘭)에 비끼고
비암(琵岩)에 걸려
서전산야(瑞甸山野)를 비추니

천지정기(天地正氣)
인걸(人杰)에 용(龍)꿈을 선사하는
천혜(天惠)의 땅
성(聖)스러운 터 용정(龍井)

2004.4.20.

한자가 잘 안 보여서 맞게 썼는지 모르겠군. 그런데 한자를 찾아서 검색을 하다가 또 새로운 사실을 하나 이야기에 보태게 되었다. 그것은 예전에는 이 돌이 용정찬가가 아니었는데 2004년에 한글로 된 원래의 글을 지우고 한자를 섞어서 다시 새겼다는 이야기이다.

용정찬가

 

그러니까 말인즉, 이전에는 선구자가 새겨져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동북공정도 나오고 민족정기도 나오는 것은 모르겠지만 뭔가 여기에도 어떤 의도적인 왜곡이 있었다면 또한 씁쓰레한 이야기임은 틀림이 없겠다. 자세한 내용은 위의 기사를 클릭하면 나타나도록 링크를 붙였으니 참고 하시면 되겠다.

cjnews_196355_1[254861]

그러니까 이렇게 선구자를 새겨넣었던 것을 지우고서 용정찬가를 새기기 위해서 돌을 다듬어 놓은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니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_BDS0336

용정 시내를 배경으로 시원한 인증샷을 찍었으니 또 걸음을 재촉해야 하겠다. 아직도 몇 시간을 더 가야 북파의 숙소에 도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행은 모두 차에 올라서 계속 목적지로 향했다. 일단 용정을 떠났으니 용정 편은 여기에서 끝내는 것이 좋겠군. 그럼 다음 편에서 박두산 타령을 해 볼까..... ㅋㅋ

공항에서 용정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