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여행④ 전생(前生)

작성일
2017-03-21 06:20
조회
1739

큐슈여행④ 전생(前生)을 찾는다는 것의 의미


 

처음 큐슈로 여행지가 결정된 계기가 된 것이 있다. 어쩌면 전생의 인연일 수도 있는 우스키(臼杵)를 향했다. 일정의 처음에 넣은 것은 궁금한 것을 먼저 해결하고 나서 관광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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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정황과 그 중에 드러난 한 역사의 조각을 의지해서 살펴본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전생을 만나거나 기억의 한 조각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갖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그야말로 손톱만큼의 설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기억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티벳의 9세 라마 '앙뚜'가 한 말이 떠올라서이기도 했다. 환생라마로 인정을 받았는데 실제로 스승의 자리를 얻지 못하여 초조한 마음...

"나이가 아홉살이 되니까... 전생의 기억들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영상자료 소개]

영상을 소개하려고 유튜브를 찾아보니 그 사이에 재생이 막혀버렸군. 혹 관심이 있다면, MBC에 가서 다시보기를 돈 내고 시청해야 할 모양이다. 그래서 뭐든지 보일 적에 얼른 저장을 해 놔야 한다는 절대적인 인터넷의 진리이다. ㅎㅎㅎ

이말을 듣고서 문득 내 나이를 돌이켜 보니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여행이다. 그야말로 기억의 조각을 얻어도 좋고, 아무런 소득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것으로 이미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선 길이니 최소한 잃을 것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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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으로 안양사(安養寺)의 주지스님인 케이넨(慶念)이 낭월의 전생이라고 인증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다만 김경보 선생의 이야기와 낭월의 습성 등을 생각해 볼 적에. '어쩌면....'이라고 할 정도는 된다고 봐서 관심을 두었을 뿐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낭월한담 597편]을 참고 할 수도 있겠다.

우스키(臼杵)는 오이타(大分)현의 한 도시이다. 지리적으로는 히가시큐슈(東九州)에 속하는 곳이기도 하다. 기왕 관심을 가졌으니 조금 더 자세히 위치를 알아보려고 구글 지도를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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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사가 일본 말로는 안요지인 모양이다. 여하튼 우스키에 있는 위치는 확인이 되었으므로 네비에 주소를 입력하고는 찾아갔다. 두어 번의 골목길 순회를 한 다음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절의 주차장에 도착을 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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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키 강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구나. 나도 그런 곳에 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절 앞의 강변에는 조그만 목선을 하나 묶어 놓고는, 언제든 흥이 나면 그 배를 타고 어디로든 휭~하니 나들이 갈 수가 있는 그런 꿈이 아직도 있다. 그래서 예전에 천북의 어느 작은 조선소에 있는 배의 가격을 알아보기도 했었지. 그것을 한 대 사서 차에 매달고 다니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여하튼 뭐든 보이면 생각의 고리에 붙들어 매느라고 정신 없는 낭월이다. 그도 그럴만 한 것이 이렇게 강변에 안양사가 있다는 것으로 인해서 배에 대한 향수가 묻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비행기를 살 마음은 없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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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던, 안양사 일주문 앞에 낭월이 섰다. 기대를 크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조차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정유재란은 1597년에 있었고 여기에서 이순신 장군의 최후가 되기도 했던 시절이다. 지금으로부터 420년 전의 이야기이니 참으로 까마득한 옛날이다.

만약에......

김경보 선생의 말마따나 낭월의 전생은 왜군을 따라서 동행한 스님이었고, 군의관으로 동행했던 케이넨이 낭월의 전생 모습이었다면 지금 400년 전의 그 곳에 다시 육신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감회를 가져보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무수히 많은 왜장들이 있었고, 그들과 동행한 스님도 또한 무수히 많았을 것이므로 김경보 선생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낭월의 전생이 케이넨이라고 확정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알려진 자료를 바탕으로 삼아서 추적해 볼 뿐이다. 추적은 무슨.... 그냥 와 본 것이라고 해야 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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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앞에는 어느 사찰에서나 마찬가지인 묘지들이 거대한 규모를 이루고 있었다. 이 절이 생겨나면서 부터, 오늘 현재까지 많은 인연들이 존재했었다는 흔적이기도 했다. 어쩌면 저 많은 묘지 사이에 케이넨도 잠들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웃거렸지만 하도 많아서 찾아 본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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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게 피어있는 유채꽃이 이 계절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른 봄이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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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을 들어서니 고졸한 풍경이 나타난다. 절의 규모는 아담했다. 맘에 든다. 거대한 사찰의 번화한 모습이 아니라 조촐하게 본전과 부속 건물로 이뤄진 것에서 사세(寺勢)를 확장하려는 노력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케이넨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이것은 낭월도 마찬가지이다. 방문자들이 법당을 짓지 않았다고 할 때마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실감하지 못한 것인데, 그냥 의식주가 해결되면 그것이 내 집이라는 생각이 가득한 까닭이다. 법당을 지을 돈이 있으면 여행이나 다니겠다는 주의이기도 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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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주인공과 동일시 하는 현상이라고 하겠군. 무엇인가를 끌어다가 그럴싸 한 자기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치 대통령의 딸이 자신은 공주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낭월이 이렇게 환상여행을 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일은 아니라고 봐서 즐겨 된다고 본다.

마당에는 눈길을 끄는 돌다리가 있었다. 봐하니, 옛날에는 다리 아래로 물이 흘러갔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앗! 찾았다. 옛날에 찍은 사진으로 보이는 안양사의 돌다리다. 실은 2013년에 찾아봤던[낭월한담597화] 안양사의 자료에서 수집했던 사진인데 이렇게 쓰이기도 하는구나. 돌다리 밑으로 물이 흘러가게 되어있었던 것을 보면 정념스님 당시에는 당연히 물이 흘렀겠거니 싶기도 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이 끊기고 그래서 메꿨지만 다리는 그대로 뒀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또 동일시 하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낭월이 처음에 감로사를 만들면서 마당에다가 연못을 만들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였다. 마당에 연못이 있고, 연꽃이 피어있고, 잉어가 돌아다니는 풍경이 떠올라서였다. 그리고 다시 그 옆에서 물고기에게 밥을 던져주고 있는 자신을 상상했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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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그 증거가 있다. 물론 필름사진을 스캔한 것이기 때문에 날짜 정보가 없다. 보자.... 이 때가 도대체 언제냐.... 아마 줄잡아서 정축년 쯤일 게다. 여하튼 감로사에 터를 닦은 것이 벌써 20여 년이 지났구나......

처음에 계룡산 자락의 밭을 한 자락 구입해서 농가주택으로 시작한 무렵의 풍경이다. 그런데 마당에 뭐가 있다. 엑셀파이프와 물이 흘러나와서 젖은 것이 선명하다. 이미 처음에 터를 닦으면서 이러한 구상을 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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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뭘까? 누가 봐도 알 것이다. 연못이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바닥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자갈을 부어서 급조한 누가 봐도 편재끼가 무척 강한 쥔장의 공사임이 분명하다. 이 위에 안양사의 돌다리를 얹어 놓는다면......

맨날 연못만 만든다고 연지님에게 얼마나 혼났는지 모를 일이다. 기억하기만으로도 세 개 이상이다. 포크레인을 보면 연못을 만들고 싶고, 마당의 공간을 보면 또 연못을 만들고 싶어서이다. 오죽하면 아내의 이름을 연지(蓮池)라고 지었으랴~!

연지도 처음에는 아호 삼아서, 애칭 삼아서 불러줬는데 어느 사이에 그것이 이름이 되었다. 두어 달 전에 개명신청을 아예 해 버려서 어제 주민등록증을 찾아왔다고 한다. 재판까지 해서 이름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홍연지(洪蓮池)로 바뀌었으니 '넓은 연못'이 되어버렸다.

마당이 좁아서 넓은 연못을 못 만들었으니 물을 갈지 않아도 되는 아내를 아예 연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음모를 뉘라서 알까? ㅋㅋㅋㅋ

못 믿으시겠다고? 증거를 보여 달라고? 그러지 까이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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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서 그 연못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잠시 멍~한 충격을 받았다. 아마 케이넨 스님도 억지로 물을 끌어대어서 연못을 만들었을 게다. 나중에 제자가 절을 관리하면서 물을 대기도 귀찮고 모기도 창궐해서 아예 메꿔버렸을 것이고, 그것을 보면서 육신 잃은 케이넨은 마음아파 했을 것이고....

그래서 후신(後身)의 또 후신... (아마도 많은 시간이 흘러 갔으니까..... )인 청도 땅의 박주현으로 태어난 다음에도 그 아쉬움을 잊지 못하고, 자신의 땅을 얻게 되지 마자 즉시로 연못을 파고 있는 이 꼬라지라니..... 그래서 생전에 한이 있으면 안 된다고 했나 보다.....

지금은 감로사에 연못이 없다. 메꿨다. 그러니까 일종의 살풀이를 한 셈이다. 살풀이는 한풀이이다. 그렇게 구박을 받으면서 만들었던 연못에 물을 대야 하니 전기세가 많이 나오고, 물을 갈지 않으니 이끼가 끼고, 고기도 관리하지 않으니 죽어버리고, 여름이면 모기들이 발생해서 식구들이 고생하니..... 눈물을 머금고 없앴다.

그러고 보니, 연못을 없애버린 것까지도 너무나 닮았다. 어쩌면 케이넨의 생전에 연못을 메웠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도 해 본다. 아무래도 다음 생에는 아예 강변에 절을 지어야 할 모양이다. 그래서 물을 대지 않아도, 고기를 돌보지 않아도 저절로 물은 흐르고 고기는 뛰놀고 연꽃은 피어나는 그러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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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교(石橋)옆으로는 석등(石燈)이 있고, 그 끝에는 안양사에 대한 기록으로 보이는 비가 서 있다. 그리고 일본식 종각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들은 참으로 조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러한 구조물들은 400여 년전에 만들어 졌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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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길에 내용을 다 읽어 볼 수는 없는 일인지라, 일단 사진으로 담은 다음에 천천히 확대해서 읽어 볼 요량이다. 그리고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서 비문을 살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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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케이넨 스님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기념이니 그냥 담아 놓자. 언젠가 이 자료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료를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케이넨 스님도 같았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정유재란의 종군기록을 남기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혹, 벗님께서는 어쩌면, 전생의 한 조각이 떠오르지 않았느냐는 기대감을 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냥 생각 속에 있을 뿐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래서 혹 법당에 들어가서 불상을 대하면 뭔가 기억이 나지 않겠느냐는 일말의 희망을 아직도 놓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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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이다. 작지 않은 규모라고 해야 할지..... 크지 않은 규모라고 해야 할지..... 일본의 사찰에 대한 기준이 없다보니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담한 규모라고 보면 무난하지 싶다.

약간의 설램을 안고서 문을 열었다.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문을 열고 법당에 똬악~ 들어서면서,

낯이 익은 불상을 만나게 되고,

그 불상은 전생에 그렇게도 촛불과 향불을 피우면서 기도하던...

바로 그 부처임을 발견하는 순간....

그 자리에 앉아서 황홀한 전생으로 순간이동을 하여....

케이넨과 낭월이 둘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그런 상상이야 얼마든지 가능했다. 또 어쩌면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담았을 수도 있다. 여하튼 그런 생각과 상상이 뒤범벅이 된 채로 문을 밀었다. 일본 법당의 문들은 모두가 미닫이로 되어 있었다. 앞뒤로가 아닌 좌우로 밀어야 하는 형태이다.

그... 런.... 데.........

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다. 점점 힘을 가하는 손이 떨렸다. 매우 불길한 조짐이었다. 문이 열리지 않다니... 이건 또 무슨 조짐이람..... 바라보고 있던 통역 담당의 청원에게 말했다.

낭월 : 문이 잠겼네....

청원 : 어떻게 할까요?

낭월 : 옆에 유치원에 사람이 있더라. 한 번 물어 봐라.

청원 : 그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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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절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겠거니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라도 연결이 될 방법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는 것도 당연히 상식이려니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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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잠시 후에 교사로 보이는 여인이 나타났다. 대충 짐작과 청원의 통역을 참작하여 풀이한 대화의 내용은 이러했다.

청원 : 실례하겠습니다.

교사 : 예.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청원 : 실은.... 법당에 참배를 하고 싶은데 문이 잠겨서요.

교사 : 아하, 그러셨군요. 근데 지금 주지스님이 안 계세요.

청원 : 주지스님이 안 계셔도 좋으니까 참배를 할 수는 없을까요?

교사 : 잠시만요.....

하고서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또 말한다.

교사 : 죄송합니다. 지금은 문을 열어 드릴 사람이 없습니다.

청원 : 아, 그러십니까.....

낭월 : 한국에서 법당을 보려고 왔다캐라~

청원 : 실은 한국에서 왔습니다.

교사 : 아~~ 그러십니까?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주지스님이 안 계셔서...

낭월 : 언제 오는지 물어 봐라.

청원 : 그럼 스님께서는 언제 들어오실까요?

교사 : 일이 있어서 교토에 가셨는데, 주말이나.....

청원 : 아, 그렇습니까? 

낭월 : 그럼 전화번호라도 물어봐라.

청원 : 혹시.... 스님과 연락할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을까요?

교사 : 잠시만요.....

하고 들어가서는 메모지를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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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 이 번호로 전화 하시면 됩니다.

청원 : 고맙습니다.

교사 : 멀리서 오셨는데, 미안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일이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정작 법당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할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아쉬움에 한 바퀴 돌았다. 뒤쪽으로 가는 틈을 발견해서 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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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문이 있었고, 절의 식구들이 드나드는 문일 것이라는 짐작만 해 봤다. 물론 문은 잠겨 있었다. 그래서 담장 너머로 기웃거려 봤다. 그랬더니 아름다운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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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사진으로 봤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호, 그것을 보면서 또 환상 속으로 빠져 든다. 감로사에 와 보신 벗님은 아시겠지만 애초에 마당에다가는 자갈을 깔았다. 일명 '콩돌'이라고 하는 자잘한 자갈로 깔아놓은 것은 잡초 제거를 원활히 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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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새하얀 안양사의 그 자갈은 아니지만, 크기로 봐서는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안양사의 뒷뜰에서 자갈을 깔아놓은 정원을 발견하게 되다니.... 그래서 환상에 빠져든다고 한 것이다. 거 참..... 우연이었겠지만.... 우연이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서로 닮은 꼴이라고 우길만 한 흔적도 없진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핵심인 법당을.....

법당을 봤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주변을 서성이면서 생각에 잠겼다. 케이넨과의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노 화상이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낭월 : 저... 뉘십니까?

경념 : 너야~ 또한 나이기도 하고~

낭월 : 그러니까.... 케이넨?

경념 : 맞아. 지금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에서 살고 있지만 같은 공간에서 만난거네.

낭월 : 그렇구나~! 스님이 과거의 나였구나, 반가워~!

경념 : 근데, 어쩐 일로 여기까지 왔는고?

 낭월 : 어쩐 일이긴 인연따라서 과거의 흔적을 더듬어서 왔지.

경념 : 조선에서는 빚을 잘 갚고 있겠지?

낭월 : 그럼 나름 최선을 다 하고 있지. 근데 지금은 한국이라고 혀.

경념 : 아,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하긴.... 400년이 흘렀으니...

낭월 : 기억에는 없지만, 어딘가에는 흔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경념 : 당연하지, 습성은 바뀌기가 참으로 어렵거든.

낭월 : 주지가 없어서 법당에 인사를 못 하겠구먼....

경념 : 지금 주지는 내 16대 손자야. 육신의 인연이니 지금의 나와는 무관하겠군.

낭월 : 과거의 할아버지가 찾아온다고 나가지 못하게 했어야지.

경념 : 내가 일부러 보냈어.

낭월 : 그건 또 왜인가?

경념 : 지금도 여전히 노장(老莊)의 법문은 읽고 있겠지?

낭월 : 약간.... 왜?

경념 : 중요한 것은 과거인가? 지금인가?

낭월 : 그야 말인 둥~ 당근 지금이지~!

경념 : 손자를 경도에 보낸 것도 그래서라네.

낭월 : 뭐라고? 그건 또 무슨 뜻이지?

경념 :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를 뵈면 분명히 전생이 기억이 날 거잖아.

낭월 : 아니, 이렇게 불원천리하고 우스키에 온 목적이 뭔데~!

경념 : 생각해 봐, 그것도 부질없는 짓이란 것을 잘 알 텐데? 안 그런가?

낭월 : 그야 왜 모르겠는가만,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하하~!

경념 : 그런 것에 정신 팔지 말고 답답한 사람 하나를 구제하는데 신경 써.

낭월 : 그렇긴.... 하...지...?

경념 : 기억의 조각을 잡는다고 한 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냔 말이지.

낭월 : 그래도 재미있잖아?

경념 : 아직도 그놈의 호기심은 여전하군.

낭월 : 옛날에 경념 적에도 그랬나?

경념 : 말해서 뭘 하겠는가. 그나저나 조선... 아니 한국은 안녕하신가?

낭월 : 참, 정유년에 종군하면서 쓴 글은 읽었지. 당시에는 긴가민가 했는데...

경념 : 그래, 그게 네가 쓴 글이고, 내가 쓴 글이기도 하지. 

낭월 : 구구절절 조선인의 고통에 마음아파 하는 마음이 보였네.

경념 : 당연하지, 정유년의 경험은 이렇게 세월이 흘러서 약속을 지켰군.

낭월 : 약속이라니 무엇을 말인가? 

경념 : 일곱 번째의 정유년에 조선 땅에 태어나기로 한 약속이었지.

낭월 : 뭐, 뭐라고~~!! 그런 약속을 했더란 말인가?

경념 : 그랬다네. 지금의 내가 정유년에 태어난 것을 우연이라고 할텐가?

낭월 : 아니, 나도 뭔가 전생의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기는 했었지.

경념 : 그 동안은 중국에서 좀 놀았었지.

낭월 : 중국 어디에서 살았었나?

경념 : 운남에서 차를 마시면서 자연을 연구하고....

낭월 : 아하, 어쩐지 보이차가 입에 착착 감기더라니....

경념 : 그리고 역학과 명학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어서 공부 좀 했지.

낭월 : 뭐라고? 그래서 지금 내가 간지의 지옥에 갖혀 있었단 말인가?

경념 : 지옥은 무슨,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지도 모른단 건가?

낭월 : 사실 즐겁긴 하지.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짜릿찌릿할 만큼.

경념 : 중국에 있으면서 연구한 것들을 지금 다 정리하고 있잖은가?

낭월 : 그랬구나..... 이제 과거의 내가 왜 손자를 경도로 보냈는지 알겠군.

경념 : 그 뜻을 눈치 챘는가? 허허허~!

낭월 : 그대 마음이 내 마음인데 왜 모르겠는가.

경념 : 이제부터는 괜한 것에 신경쓰지 말고 도나 열심히 닦게.

낭월 : 알았네. 잘 있게~!

경념 : 잘 있긴 뭘 잘 있나. 자기가 자기에게 잘 있으라고 하는 바보도 있나?

낭월 : 아차차~~!! 그렇군 하하하~!

그렇게 생각에 잠겨서 법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경념의 생각을 읽으면서 약간, 아주 쪼오끔은 섭섭한 마음으로 안양사를 떠났다. 그리고 더 이상은 전생의 흔적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주어진 가족들과 제자들과 방문자들의 인연에 감사하면서 오늘을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스키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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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옆의 화단에서 하얀 수선화가 나그네를 전송한다. 연지가 좋아하는 수선화이다. 그러고 보면 연지도 그때부터 동행했던 것일까....? 비록 찾아보진 못했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즐기는 여유로움도 나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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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글을 올리고 마당가에 나가보니 감로사에서도 수선화가 피었다. 그것도 샛노란 수선화가 곱게도 피어나고 있었네. 딱 위도의 높이 만큼 늦게 피는 모습에서 또 뭔가 마음 한 켠이 애잔~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문득 평행이론(平行理論).....

그것이 생각난다.

과거의 수선화는 하얀 색으로....

현재의 수선화는 노란 색으로....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