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4]중국인은 불패(不敗)하고 일본인은 필승(必勝)한다.

작성일
2013-05-2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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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4화] 중국인은 불패(不敗)하고 일본인은 필승(必勝)한다.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아침부터 날씨가 화창하네요. 어제는 약간의 황사(黃砂)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것도 사라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상쾌(爽快)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증사강(曾仕强) 선생의 도덕경(道德經)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었습니다. 인상적(印象的)인 이야기가 있어서 또 강의(講義)를 멈추고 생각을 해 보게 되네요.

1. 중국인(中國人)은 불패(不敗)를 말한다.

  노자(老子)의 사상(思想)이 그렇고 중국인의 사상도 그렇답니다. 싸우지 않는 것을 최상(最上)의 목적(目的)으로 삼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손자병법(孫子兵法)에는 싸우지 않고 지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말을 하고 그것이 세계적인 병법서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그 유명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 동방불패이겠느냔 말이지요. 그러니까 성공(成功)에 대한 기준(基準)을 중국인은 50점으로 잡아놓는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선거(選擧)를 할 경우에 지지 않으려면 50%의 득표(得票)가 되어야만 가능합니다. 그것은 뭘 의미하겠습니까? 반드시 이긴다는 의미가 그 속에 들어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무섭다고 하는가 봅니다.

  오청원이라는 사람을 아시는지요? 일본의 바둑계를 평정했다고 할 수 있는 대만의 화교(華僑)입니다. 기다니와 바둑을 둔 이야기는 나름대로 바둑계에서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라서 낭월도 예전에 바둑에 빠져있을 적에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증사강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중국의 유명한 학자인 전목(錢穆)과 만나서 바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더랍니다. 중국인의 자존심(自尊心)을 살려 준 오청원에 에게 바둑을 절대로 지지 않는 방법이 있는지를 물었다네요. 그랬더니 오청원의 답변은 그런 법은 없다고 했답니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바둑판에서 절대로 지지 않을 방법은 있을 수가 없다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또한 도덕경의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물극필반(物極必返)의 이치에 따라서 이기면 질 수도 있는 것이고 또 지다가 보면 이길 수도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자 전목이 절대로 지지 않을 방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뿌샤(不下)~!”

이게 무슨 말인가요? 바둑을 두지 않으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바둑을 두지 않으면 불패(不敗)가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도덕경의 의미가 면면히 묻어나는 것 같네요. 패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패하지 않기 위해서 그냥 빈둥거리고 놀기만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상대가 노력을 하는 만큼은 해야 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 일 테니까요.

2. 일본인(日本人)은 필승(必勝)을 말한다.

  중국인과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고 할까요? 일본인은 반드시 이기는 것으로 목적(目的)을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인의 목표는 100%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60%가 된다면 그것은 실패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항상 공격적(攻擊的)인가 싶습니다. 요즘도 대단히 공격적인 정신을 갖고 있는 지도자를 만나서 우리가 좀 머리아프지요? 하다하다 안 되면 자살을 해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필승(必勝)의 사상(思想)으로 동남아 전쟁을 일으켰고 그래서 필패(必敗)를 했습니다만 또다시 필승의 망상(妄想)을 일으키는지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걱정스러운 면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일본에 대해서는 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으니 이만 줄입니다.

3. 공격자와 수비자의 결과는?

  한마디로 중국인은 수비(守備)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의미하는 국(國)자만 봐도 囗에 或을 넣은 것이고 보면 과연 얼마나 수비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겠습니다. 나라라는 것은 지키는 것이지 싸우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지요.

  싸움을 하는데 에너지 소비율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비하는 자는 30%의 힘이면 가능하지만 공격자는 70%의 힘으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어느 것이 현명한지에 대해서는 두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공격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궁지(窮地)에 몰렸을 경우에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일본열도(日本列島)는 항상 궁지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지키는 것이 공격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으니 누구와 싸워서 이기려고 하기 보다는 지켜서 지지 않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상(思想)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같이 경제불황(經濟不況)에서 자영업자(自營業者)들이 자꾸만 문을 닫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특히 베이비부머들이 퇴직을 한 다음에 개업(開業)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은 실패(失敗)로 끝난다고 하네요. 참 슬픈 일입니다. 실패와 불패(不敗)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요? 가령 빚을 내어서 개업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대출을 받아서 개업하는 속셈에는 6개월만 버티면 승산(勝算)이 있다고 계산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실행할 수 없는 계산법이니까요.

  만약에 3년이 지나야 손익분기점(損益分岐點)에 도달한다고 생각을 했다면 빚을 내어서 장사를 시작할 계산은 애초에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업하는 사람의 계산서에는 불패(不敗)의 셈법일까요? 아니면 필승(必勝)의 셈법일까요? 지지않는 것만으로는 유지가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면 이미 그 계산은 끝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당연히 필승이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수비자와 공격자의 관점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벗님께서는 이기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물론 어느 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손자(孫子)도 마지막에 어쩔 수가 없이 싸워야 한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말도 했으니까 말이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이겨야만 유지가 되는 장사를 시작하는 이상 반드시 패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도덕경에서 말하고 있음을 한 번 쯤이라도 생각해 보고 시작했으면 합니다.

[돌발퀴즈]

  자, 여기에서 퀴즈를 하나 내어 보겠습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 생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문] 지피지기(知彼知己)면?

     ① 백전백승(百戰百勝)    ② 백전불태(百戰不殆)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연히 답은 ②번이겠지요? 아니라고요? 그럼 ①번이겠군요. 그런가요? 그렇다면 앞의 글들은 그야말로 대충대충 읽으신 것이 되겠습니다. 이 내용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것인데 과연 백전백승이라고 했을까요? 아니면 백전불태라고 했을까요? 아, 태(殆)란 위태롭다는 뜻이므로 불태(不殆)라는 것은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 되겠고 이것은 불패(不敗)와 매우 유사(類似)한 뜻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답이 나왔네요. 그런데 왜 우리는 백전백승으로 알고 있을까요? 어디에서 이러한 오류(誤謬)가 생긴 것일까요? 시험삼아서 대만야후에 가서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쳐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아마도 백전백승이라는 말은 일본사람들이 한 말일 것이라는 짐작만 해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4. 한국인(韓國人)은 어디에 속할까?

  중국인과 일본인의 중간에 있는 한국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으로부터는 지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일본으로부터는 반드시 이기는 방법을 배울 수가 있는 것이 한국 아닐까요? 그래서 한국인은 가장 탄력(彈力)이 강한 민족(民族)이라는 우월감(優越感)도 슬쩍 가져본들 누가 탓하겠습니까. 하하~

  나보다 강자(强者)를 만나면 지피지기(知彼知己)하여 머리를 숙이면 됩니다. 그러면 불태(不殆)하지요. 그리고 나보다 약자(弱者)를 만나면 공격(攻擊)하면 됩니다. 그러면 또한 필승(必勝)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 참 재미있지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말은 한국인에게 딱 맞는 말일 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것은 양국(兩國)의 사이에 끼여서 시달림을 당하면서 저절로 터득하게 된 생존전략(生存戰略)이니 탓할 것이 아니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아니, 맘에 들지 않는다고요?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을 택하시렵니까? 강자? 아니면 약자? 둘 다 맘에 안 든다면 결론은 한가지입니다. 바로 도(道)를 선택(選擇)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도는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므로 한국인들은 선천적(先天的)으로 도에 가깝게 되어있다고 한다면 너무 자화자찬(自畵自讚)일까요? 하하하~

  이기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일본인의 근성(根性)을 갖고 계신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지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중국인의 뚝심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때로는 이기고 싶고 때로는 지고 싶지 않다고요? 그렇다면 분명히 벗님은 한국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문화가 파고 들어와서인지 몰라도 전국적(全國的)으로 지지 않으려는 사람보다는 이기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지요?

  시험이며 취직이며 하다못해 올림픽이라도 여하튼 이기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일본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혹 벗님께서도 필승(必勝)에 열광(熱狂)한다면 다시 한 번 도덕경을 생각해 보시라고 권하겠습니다.

5. 명리학(命理學)의 길도 다르지 않다.

  이제 이 필승(必勝)과 불패(不敗)의 의미를 공부하는 관점(觀點)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정진(精進)하는 것의 최종(最終) 지점(地點)에 도착했을 적에 우리는 무엇과 만나게 될까요? 여기에서 다시 필승(必勝)과 불패(不敗)를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벗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가령, 누가 찾아와서 내년에 사업이 잘 될 것인지를 물었다고 가정(假定)해 봅니다. 물론 내년의 운세(運勢)를 보니까 용신(用神)이 힘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歷歷)하다고 전제(前提)를 하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뭐라고 답을 해야 오늘 한담(閑談)의 명제(命題)에 잘 어울릴까요? 필승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불패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말의 영향력(影響力)은 또 어떨까요? 우선 필승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내년에 당신은 대박이 날 겁니다. 떼돈을 벌어서 저장을 할 곳이 부족할 것이니 창고라도 두어 개 더 지어두세요~!”

  이렇게 말을 했다면 해석법(解釋法)은 필승(必勝)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듣는 고객의 마음에는 기쁨으로 가득하겠지요. 이렇게 확실(確實)한 단언(斷言)을 해 주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는 뒤로 미루고서 우선 듣는 사람의 기분이 최상(最上)이라는 것은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식은요?

“내년에 당신의 운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력을 한다면 좋은 결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참으로 뜨뜨미지근한 풀이인가요? 이렇게 말을 했다며 불패(不敗)의 방식을 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듣는 사람의 심금(心琴)을 자극하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서 내심 ‘그런 말이야 누군들 못해......’라고 하면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은 필승(必勝)으로 말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노자(老子)를 너무 많이 읽어서 어느 사이에 승패동일(勝敗同一)의 수준에 도달해서 무관심(無關心)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여하튼 상담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어느 스타일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벗님은 어느 쪽이 더 맘에 드시는지요?

  여기에서 낭월은 후자(後者)를 택하고 있습니다. 물론 노자 때문만은 아닙니다. 상담을 해 주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하나의 진리(眞理)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해 두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人間)의 욕망(慾望)을 채울 호운(好運)은 없다.’는 신념(信念)이 자리를 잡고 있는 까닭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결함(缺陷)이 없는 운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욕망을 다 채워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본능(本能)이니까 말이지요.

  ‘운이 좋다’고 하면 환희용약(歡喜踊躍)을 합니다. 그리고 ‘운이 나쁘다’고 하면 급속우울(急速憂鬱)이 되지요. 그 사이에서 어떻게 말을 해 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앞으로는 또 어떻게 생각이 변화할 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의 생각으로는 ‘운이 나쁘다고 해서 세상이 끝난 것처럼 말을 할 필요도 없고 운이 좋다고 해서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상도(常道)의 이치에 타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상담실에서도 도(道)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선(線)에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지혜(智慧)로운 것이 아닐까를 생각하게 되네요. 그러기 위해서도 항상 지혜로운 선현(先賢)들의 가르침과 친근(親近)해야 하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노라면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생각 속으로 스며들 수도 있을 테지요.

 

  이렇게 화창(和暢)한 오전에 잠시 필승(必勝)과 불패(不敗)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보니 또 공부를 많이 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게 되네요. 벗님의 하루도 화창하시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3년 5월 21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