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7] 손발에 대한 이야기

작성일
2013-03-19 07:05
조회
5548
 
[제587화] 두서없이 생각해 보는 손발에 대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온 산천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습니다. 나무들이 눈을 키워가고 개나리는 어느 사이에 노란색이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상황이 되었네요. 그러고보니 내일이 춘분(春分)이네요. 봄이 한 가운데로 와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생각이 자꾸 손발을 맴돌고 있습니다. 손과 발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곤 하네요. 그냥 몸에 붙어있어서 필요할 적에 편리하게 사용하면 되는 '연장' 정도로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보다가 정리를 해 보자고 한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손은 양(陽)이고 발은 음(陰)이다.  

  이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세상 만물을 모두 음양오행으로 바라보는 낭월에게 비친 손발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손은 양에 해당하는 모습이고 발은 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여서 여기에서부터 생각을 해 봅니다.
 
  양은 겉으로 드러나는 성분이고 음은 안으로 숨기는 성분이라고 본다면 표리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발은 겉으로 드러나면 무례하다고 하고 맨발로 조상께 제사를 지내면 못 배운 자손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발은 감춰야 하는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손은 또 숨기면 비난을 받습니다. 서로 악수를 할 경우에도 장갑을 끼고 하게 되면 무례한 사람으로 취급을 할 수 있는 것도 생각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양적(陽的)인 사람은 손을 잘 쓰고, 음적(陰的)인 사람은 발을 잘 쓴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발을 써서 기술을 발휘하는 축구선수와 주로 손을 사용하여 운동하는 권투선수의 성향을 살펴보면 그 차이점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2. 손은 오행(五行)이고 발은 음양(陰陽)이다.

  이번에는 오행을 추가해 봅니다. 그렇게 되면 손이 오행으로 자리를 잡게 되고 발은 음양으로 자리를 정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손은 다섯 가지의 표현을 할 수 있는 손가락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손가락의 제각기 확실한 기능을 생각해 보면 바로 이해가 되겠습니다. 목의 엄지, 화의 인지, 토의 중지, 금의 무명지, 수의 소지가 그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제각기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도 오행의 절대적(絶對的)인 형태와 서로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발은 어떤가요? 발가락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고 엄지발가락을 제외하고는 두 번째 세 번째로 부르는 것이 일상적이라고 본다면 확연히 차이가 나는 면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행은 이성적입니다. 그래야 그 차이점을 찾아서 분류를 할 수가 있으니까요. 반면에 음양은 감정적입니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이 그대로 배어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음양과 오행이 서로 동떨어 진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손은 발에게서 음양을 배워서 둘이 되었고, 발은 손에게서 오행의 의미를 부여받아서 발가락이 다섯 개가 되었다고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자연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서 학습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도 자연에게서 배우기 때문에 물에서는 맑음을 배우고, 산에서는 묵묵함을 배우게 되지요. 그런가 하면 공기에게서는 허허로움의 집착없음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옹스님의 시에도 그러한 내용이 있지요.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보고 곳없다 하지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 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이렇게 자연으로부터 스승을 삼고 공부를 하였던 고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낭월은 손발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자꾸만 손발을 들여다 보고 있네요. 하하~! 근취제신이라고 했던가요? 가까이에 있는 것에서도 도를 찾아야 한다는 말씀에 항상 공감하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의 손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가져보는가 싶습니다.
 
 
3. 손은 뇌(腦)이고 발은 심장(心藏)이다.
 
  사실은 이 대목에서 손발타령을 하고 싶어졌던 것입니다. EBS의 원더풀 사이언스라는 방송에서 '제2의 뇌 손'이라는 제목으로 손에 대해서 연구를 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고개를 많이 끄덕였습니다. 그 동영상자료는 지대방의 심심풀이에 연결해놨으니까 혹 관심이 있으시면 살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겸해서 '놀라운 발'이라는 프로그램도 같이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래야 손발에 대한 공부가 일단락이 될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 방송을 보면 재미있는 그림이 등장을 합니다. 화면으로 저장을 했으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인간의 뇌에서 손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뇌가 느끼는 인체로 나타낸 그림은 얼른 봐서는 매우 기형적으로 보이기조차 합니다.
 

  
 
  그림을 보면 뇌가 생각하는 손은 이렇게도 거대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존에 필요해서이겠지만 입도 대단히 큰 모습이네요. 눈의 크기도 만만치 않지요? 과학자들의 연구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찾아서 알려주니까 이렇게라도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모른채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테니 말입니다.
 
  물론 다른 기관도 다 포함이 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뇌가 느끼는 기관으로 손을 생각해 보는 것은 또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흥미를 돋구게 됩니다. 그래서 손은 뇌와 연결이 되어 있고 발은 심장과 연결이 되어있다는 생각으로 확장시켜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가정(假定)을 해 놓은 다음에 꿰어 맞춰가면서 사유(思惟)를 확장시켜가면서 손발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4. 손과 뇌의 관계에 대한 생각
 
  무엇보다도 가설(假說)을 세워놓았으면 그것이 그냥 가설에 불과할지 아니면 실제의 모델이 될 수도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낭월의 연구과정에서는 가령 '역마살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가설을 세워놓은 다음에 그것이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은 역마살과는 무관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을 적에야 비로소 '역마살과 활동성의 사이에는 별 관계가 없다.'는 정설(定說)을 세우게 되고 그 다음에야 비로소 책에다가 그 이야기를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낭월의 연구실에는 많은 가설들이 '현재진행형'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특히 '대운의 존재'에 대한 가설도 그 안에 있고, '사주의 전생에 대한 연결작용'에 대한 가설도 있습니다. 흥미가 동하시는지요? 그렇다면 벗님께서도 나름대로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 가설을 세워놓고 궁리를 하면서 자료를 수집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론은 오랜 명리서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 가운데에서는 진리(眞理)도 많지만 허구(虛構)나 공론(空論)도 참으로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다시 뇌와 손의 관계로 돌아가서........
 
  우선 뇌가 죽으면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뇌가 살아나면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도 손이라는 정도는 이미 벗님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심장은 살아있어도 뇌가 죽으면 손의 기능도 완전히 정지가 되어버린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렇다면 손의 움직임과 기능에 따라서 뇌의 활성화에 대해서도 참고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되네요.
 
  어린 아이들에게 손을 많이 움직이는 장난감을 주게 되면 뇌가 빨리 발달한다는 실험자료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만 봐도 손과 뇌의 관계가 참으로 밀접하다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더 들어가서 아기가 막 태어났을 적에도 손아귀를 움켜쥐는 것을 보면 또한 뇌는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으로 봐도 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에 비해서 발은 영 형편없지요? 그후로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겨우 일어 설 수가 있으니 말이지요.

 
5. 손은 이성적(理性的)인 부분을 담당한다.

  뇌가 사고(思考)하는 기관이라는 것이야 누구나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또한 이성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도 타당하다고 하겠으니 이러한 것과 손을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는 것은 또 어떨까 싶은 궁리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손의 모양을 생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수상학(手相學)을 배우지 않아도 될 정도의 기본적인 이야기입니다.

   손이 크면 머리의 활동이 왕성하다는 말은 일리가 있을까요? 또 머리가 활발하게 기능을 하고 있을 적에는 손도 덩달아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특히 손가락이 길쭉길쭉하면 게으르다고 하지요? 그런데 몸은 게으르지만 머리는 활발하게 움직여서 이러한 형태를 학자형(學者形)이라고도 합니다.

   반대로 손가락이 짧으면 행동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몸을 써서 살아가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을 시켜보면 머리아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손가락이 무안 갯펄의 낙지 발처럼 길게 생긴 사람에게 마당가의 풀을 뽑으라고 하면 화를 내지만 책이나 읽으면서 글을 쓰라고 하면 또 좋아하겠네요. 그래서 다시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은 뇌와 손의 관계는 이렇게도 밀접할 수가 있겠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통도사에 있으면서 종범스님과 함께 머문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스님은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학승(學僧-학자스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손가락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참 길기도 한 손가락이구나......'라고 말이지요. 그러니까 그 분의 머릿속은 그만큼 깊은 곳까지 후벼파고 들어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수상학에 그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손가락이 길면 사유하는 타입이라는 정도의 가설은 유효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낭월의 부친께서는 일만 열심히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손가락의 마디가 짤막하고 두터웠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러니까 생각하는 것이 정밀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낭월한담을 즐겨 읽으시는 벗님들의 손가락은 긴 편에 속할까요 아니면 짧은 편에 속할까요? 아마도 낭월의 생각으로는 손가락이 짧은 경우에는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머리만 아프다는 생각을 하실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런 벗님은 한 번 왔다가는 다시 오지 않으실 것 같네요. 적성에 맞지 않으실 테니까요. 하하~

   말하지면 손가락이 긴(혹은 짧지않은) 놈이 써 놓은 글은 손가락이 긴 독자의 입맛에 맞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까지 파고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여하튼 뇌와 손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연관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힌트가 그 안에 가득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학자가 강의를 할 적에 손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자세히 의식을 모아서 살펴보면 잠시도 가만히 두질 않는다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방송에서 강연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지런히 손짓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그만큼 뇌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기도 하거든요.

  그렇다면 뇌가 굴러가다가 꽉 막혀서 움직이지 않으면 손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그야 당연히~!!! 손도 턱을 고이고 가만히 있겠지요? 하하~ 이렇게 생각의 꼬리를 쫓다가 보면 재미있는 생각들이 계속해서 또 꼬리를 물고 나타나곤 합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즐거움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그림처럼 손으로 턱을 고이고 있는 경우라고 한다면 왕성한 생각보다는 추억에 잠겨있는 모습이 더 어울린다는 말씀이지요. 이해가 되실까 하여 그림 하나를 찾아다 붙여 봤습니다. 참고 되시지요? 손이 움직이는 것과 가만히 있는 것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이런 손에서는 어떤 느낌이 날까요?
 
 
  느낌으로 봐서 아마도 자신있는 생각을 했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감이 넘치는 뇌의 명령에 의해서 손을 높이 치켜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보여줄 적에는 바로 필요해지는 것이 손이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말하자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억압할 필요가 있다면 뭔가 손을 불편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움직이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지요. 여기에 적절한 그림이 있네요.
 
 

 


 
  바로 느낌이 확~ 올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당신의 생각에 대한 자유를 구속하겠다는 느낌 말이지요. 전에는 이러한 모습을 봤을 적에 손으로 무슨 짓을 해서 도망을 칠까봐 수갑을 채우는가보다 싶었는데 이렇게 뇌와 생각과 손을 연결시켜놓고 보니까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네요. 일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손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뇌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억압의 효과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하튼 뇌의 활동과 손의 활동은 서로 같은 본질에서 나온 음양이라는 것이 분명하겠다는 결론으로 가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하다가 보니까 열 개의 손가락은 뇌를 움직이는 조종간과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러니까 뇌는 양(陽)이 되고 손은 음(陰)이 되어서 서로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경우에 손이 움직이면 뇌도 움직이고 또 뇌가 움직이면 손도 움직이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음이 동하면 양이 동하고 양이 동해도 음이 동하는 것이니 음양의 불가불리(不可不離)한 이치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럼 이쯤 하고서 발에 대해서도 조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6. 발은 감정적(感情的)인 부분을 담당한다.

   발은 심장에 연결되어 있는 음양의 관계로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감정의 본부에 해당하는 심장의 상태에 따라서 발에 그 영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심장이 활발하게 움직이면 발도 덩달아서 활발하게 활동을 할 것이고 심장이 힘이 없으면 발도 무기력해져서 축 늘어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손과 뇌가 정신적인 부분을 담당하듯이 심장과 발은 육체적인 부분을 담당하게 된다고 생각해 봅니다.

   건강을 위해서 손을 흔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발을 움직여야 할까요? 특히 심혈관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미 해답이 나와있다고 봐도 될 것 같네요. 여하튼 건강하려면 많이 걸어야 한다는 것은 정설(定說)로 봐도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몸이 피곤하면 발이 불편하게 되지만 손은 그닥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것도 생각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하체에 힘이 빠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도 하네요. 그것은 심장의 힘이 약해지면서 펌프질이 힘들기 때문에 심장을 도와서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종아리를 제2의 심장이라고도 하고, 발을 움직여서 아래로 내려 온 혈액을 위로 보내주면 심장의 부담이 적다는 것으로 일단 심장과 발의 연관성은 충분히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뭔가 불편해서 화가 나면 발에 걸리는대로 걷어차게 됩니다. 그것은 감정적인 표현이 되기도 하겠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푸는데 축구나 마라톤이 좋다고 하는 것도 감정에 쌓인 앙금은 손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발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대입을 해보니까 손과 발은 보통 사지(四支)라고 하지만 실은 전혀 다른 기능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겠습니다.

 

7. 건강을 위해서는 발을 쓰고, 총명을 위해서는 손을 써라.

  인간은 누구라도 건강에 대해서 무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건강을 걱정하게 된다면 발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방향을 잡을 수가 있겠습니다. 대만에는 발마사지를 하는 족저안마(足低按摩)가 참 많습니다만 육체에 쌓인 피로를 해소하는데는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여행 중에도 피로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찾아가곤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운동도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몸에 쌓인 피료를 해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활발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하고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물론 어린아이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되겠네요. 어린 아이가 가만히 누웠거나 앉아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탈이 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으로 이해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뛰어다니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하나마나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뛰놀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지혜로운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두뇌를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는 손을 열심히 움직여야 하므로 뭔가를 만들거나 조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심지어는 노인들의 뇌세포가 죽는 것을 막기위해서 하는 것이 고스톱이잖아요?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뇌는 왕성하게 운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항상 젊게 살아간다면 그것으로도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8. [假定] 십성(十星)과 손의 관계에 대한 가설

   자, 이제 가정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십성에서 식상(食傷)이 발달되어 있으면 궁리나 사교성에 능하다고 했으니까 그러한 사람의 두뇌 활동이 왕성하다고 하면 손의 크기(혹은 손가락의 길이)도 뭔가 다르지 않겠느냐는 가정을 세워봤습니다. 왜냐하면 두뇌의 구조가 아무래도 관인(官印)보다는 더 발달이 잘 되어 있지 않겠느냐는 궁리에 머무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생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은 아무래도 실패할 가설(假說)일듯 싶은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가까이에 식상이 넷이나 있는 사람의 손을 바로 확인해 봤지만 크다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체형에 따라서 변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이러한 논리를 대입시키려면 움직일 수 없는 실체가 드러나야하는데 말이지요. 그렇지만 가설로 생각해 보는 것은 혹 예외에 해당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해 보면, 두뇌의 활동능력에는 다양한 경우가 있습니다. 즉 창의력도 두뇌활동인 것은 분명하지만 기억력도 또한 틀림없는 두뇌활동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십성을 갖고서 그 사람의 손 모양을 유추(類推)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가정은 실효성이 의심스러우므로 일단 보류하는 것으로 봐야 하겠네요.

   특히 손이 큰 사람은 재성(財星)이 발달되어 있을 가능성도 생각을 해 봤습니다. 왜냐하면 손은 갈퀴와 같아서 긁어모으거나 움켜잡는 것도 갖고 있는 기능 중에서 큰 역할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손은 크고 두툼하지 않을까요? 반대로 글을 읽고 사유하는 사람의 손은 손가락이 길고 가늘게 생겼다고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보기에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손은 재물이 아니라 지능방면으로 발달되어 있고, 울퉁불퉁하고 손뚜껑을 떠올리게 되는 손은 지능의 방향이 재물을 모으는 쪽으로 발달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유효할 수 있는 가설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벗님의 주변에서 모델이 있으시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주를 알고 성향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델로 대입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9. 때로는 생각을 멈추는 것도 좋다.

   생각이 왕성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기는 합니다만 그것도 너무 강하게 움직이다가 보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칫하면 밤이 되어도 잠을 잘 수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적당히 써먹은 다음에는 뇌에도 휴식을 줘야 하는데 그것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손부터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손이 멈춰야 뇌도 활동을 멈추니까 말이지요. 

 

  이 아기가 편안해 보이나요? 촛불을 쳐다보다가 스르르 잠이 든 것 같기도 하네요. 마음에 평화가 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 것도 고단한 삶의 윤활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볼만 하겠습니다. 생각을 쉬고 나면 다시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 법이거든요.

   이렇게 손발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두서없이 해 봤습니다. 더욱 다양한 생각들이 섞여들어서 범벅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이만 정리하고 잠시 참선을 해야 할 모양입니다. 생각의 고리를 끊는 것은 또 참선이 제격이잖아요. 수갑을 찬 손과 다소곳하게 앞으로 모은 손은 움직이지 않는 것은 같을지라도 의미하는 느낌은 사뭇 다르지요? 그래서 자율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손도 많이 움직이고 발도 많이 움직여서 이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찌꺼기가 없는 건강한 나날이 되시기를 기원드리면서 이만 줄입니다.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처음 시작한지 3일 만인.............

                   2013년 3월 21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