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6.경극(京劇) 배우의 방문(訪問)

작성일
2023-03-25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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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6. 경극(京劇) 배우의 방문(訪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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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평소대로 우창은 산책하면서 현지와 담소를 나누다가 돌아왔을 적에 고윤화와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과 마주쳤다. 그러자 고윤화가 말했다.

“아, 도사님, 벌써 산책을 다녀오시네요. 새벽부터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한데요. 이분은 어제저녁에 우희(虞姬)를 맡았던 배우에요. 우리 객잔에 용한 도사님이 머문다는 말을 듣고서 뵐 수 있겠느냐고 찾아왔지 뭐예요. 오후에는 공연을 준비해야 하기에 이른 시간이지만 잠시 시간을 낸 것이라는데 어떻게 배려해 주실 수 있겠어요?”

주인 고윤화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배우를 바라봤다. 나이는 대략 40세 전후로 보였는데 저녁에 본 얼굴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그 사람이 맞나 싶은 정도였다. 분장(扮裝)의 영향으로 사람이 달라져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봤다.

“괜찮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예, 고맙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어요.”

마침 일어나서 씻고 나오던 염재를 만나자 상담을 준비하라고 했다. 방으로 들어간 염재가 여인에게 물었다.

“사주를 적겠습니다. 생일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생일을 몰라요. 생일이 없으면 안 되나요?”

염재는 여인이 하는 뜻밖의 말에 당황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몰라서였다. 그러자 우창이 뒤따라 들어오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진명을 좀 오라고 하지.”

염재가 얼른 나가서 진명의 방을 두드리자 진명도 이미 일어나서 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응, 동생이구나. 왜?”

“아, 누나 일어나셨네. 손님이 오셨는데 스승님께서 누나를 데려오라고 하셔서요. 잠시 가보시지요.”

“그래? 응, 알았어.”

우창이 부른다고 니까 총총히 방으로 왔다.

“스승님, 편히 쉬셨어요? 찾으셨다기에 왔어요.”

“아, 그래 이 손님의 고민을 좀 들어봐야 하겠는데 생일을 모르신다니까 진명이 수고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았지.”

진명이 여인과 마주 앉아서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말했다.

“어려서 부모님과 인연이 끊어졌네요. 이 땅에 태어나기 위해서 엄마의 몸만 잠깐 빌렸을 뿐이네요. 그래서 인연이 거기까지였어요. 안타까워하지는 마세요.”

“그런 건가요? 항상 부모를 원망했는데 그것도 인연이었다면 이제부터라도 원망하지 말아야죠.”

“전생을 잠시 봤어요. 바위가 있는 암자에서 도를 닦던 노승이 보였어요. 혹 이와 연관해서 꿈이나 느낌이 있으셨나요?”

진명이 이렇게 묻자 여인이 잠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멍하고 있다가는 말했다.

“가끔 그런 꿈을 꿔요. 그래서 혼자 살아서 그런가 했죠.”

“아, 그러셨구나. 내가 보기에 전생에 홀로 토굴에서 수행하면서 평생을 보냈어요. 그래서 늘 세속의 사람들이 희희낙락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부러워했었네요. 그래서 다음 생에는 다양한 삶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일념(一念)이 씨앗을 만든다더니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씨앗이 되었네요.”

“정말요? 그래서인가요? 새로운 배역(配役)을 할 때마다 설레고 즐겁고 그렇거든요. 신기하네요.”

“어제저녁에 공연한 패왕별희는 우리 모두 가서 관람했어요. 너무 잘하셔서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어쩌면 그렇게 실감이 나는 연기를 할 수가 있을까요? 보는 내내 연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진명의 말에 배우는 웃음으로 답했다. 진명이 다시 물었다.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우희(虞姬)에요.”

“예? 역할 말고 이름 말이에요.”

“그게 이름이에요. 단장님이 아예 이름을 그렇게 지어 주셨거든요. 그래서 이름까지도 같아서 더 애착이 가는 배역이기도 한가 봐요. 호호호~!”

“아, 그러셨구나. 알겠어요. 재미있네요. 호호~!”

“어려서부터 떠돌이로 살다가 보니까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 몸에 배었어요. 그러다가 패왕별희 연극단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미 20년을 그렇게 다른 사람의 삶으로 무대에서 살아가고 있죠.”

“그렇다면 재미있는 이 되겠는데 오늘은 무엇이 궁금해서 찾아오신 건가요?”

진명이 이렇게 상담하려고 한 목적을 묻자 여인은 비로소 정색하고서 말했다.

“실은 이렇게 살아가다가 보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부평초(浮萍草)처럼 떠돌다가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잊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觀客)은 재미있다고 박수치며 환호성을 지르지만, 정작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은막(銀幕)의 뒤에서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아닌 가짜가 그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해지곤 한답니다.”

“아, 그러니까 이제는 뿌리를 내리고 극중의 우희가 아닌 본인의 우희로 살아가고 싶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아요~! 그렇지만 이 일을 떠나면 또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을까 두렵기도 해요. 단장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호구지책(糊口之策)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래서 내심으로 한 살을 더 먹을수록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 마음이 생겨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듣고 싶었죠. 새로운 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 용한 점술가가 있는지를 수소문(搜所聞)해보곤 하다가 어제 문득 용한 도사님이 동평객잔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오늘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뵈었던 거예요. 그리고 만나 주셔서 감사하고요. 호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이 대략 어떤 상황인지를 이해하고는 나섰다.

“잘 알겠습니다. 인생의 전반부는 남의 삶을 대신 살았으니까 이제부터는 자기의 삶을 찾아보고 싶다는 열망(熱望)이 있으셨군요.”

“맞아요. 도사님의 말씀 그대로가 제 생각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은 회중시계를 꺼냈다. 그러자 염재가 얼른 눈치를 채고는 지필묵(紙筆墨)을 챙겨놓고 글씨를 쓸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어디, 염재가 점괘를 좀 적어볼 텐가?”

“예 스승님, 그리하겠습니다.”

염재가 시간을 보고는 점괘를 적어서 우창과 여인의 사이에 가져다 놓고 물러나자 점괘에 적힌 간지를 우창이 잠시 들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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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도 들여다보고는 놀란 듯이 말했다.

“어? 사주가 아니네요. 뭐죠?”

“아, 사주를 아십니까?”

“예, 같이 공연하다가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거든요. 점술관을 하다가 손님이 없어서 집어치우고는 공연하러 다니던 사람이 있었는데 틈이 나면 가끔 팔자 이야기도 해 줘서 대략은 알아들어요. 그러면서도 제 사주를 몰라서 안타까워하곤 했지요. 호호호~!”

“그러셨군요. 이것은 오주괘(五柱卦)입니다. 점괘라고 할 수가 있어요. 지금의 순간을 간지로 바꾼 거니까 따지고 보면 사주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하하~!”

우창은 의외로 간지를 알고 있는 여인을 만나자 흥이 나서는 음성이 살짝 높아졌다. 이것은 우창의 버릇이었다. 누구라도 간지에 대해서 이해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신명이 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우창만 빼고는 모두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처음 봐요. 이것은 어떻게 보는 것인지 조금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궁금합니다.”

우희가 관심을 보이자, 이번에는 공부 삼아 염재가 설명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려도 되지 싶습니다. 우선 가운데 있는 경금(庚金)을 위주(爲主)로 합니다. 사주에서의 일간과 같은 역할로 보면 되는 것이지요. 그다음에 월주(月柱)와 연주(年柱)는 과거의 흔적으로 살펴보고 시주(時柱)와 분주(分柱)는 미래의 상황을 추론하는 조짐이 되겠습니다. 일지(日支)는 물론 현재의 조짐으로 보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살펴볼 수가 있겠는데 우(虞) 선생께서 판단하실 수가 있다면 직접 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면서 우희를 바라보자 우희가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진정하고는 말하기를 기다렸다.

“실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생전 처음으로 들어보네요. 항상 계집애라거나 천한 계집이라거나 광대라는 말을 이름처럼 듣고 살았는데 오늘 그러한 말 대신에 선생님이라고 불리고 보니 왠지 아득한 옛날에 많이 들어봤었던 것만 같아서 마음이 푸근해졌어요. 고마워요. 호호호~!”

“그러셨습니까? 우리는 누구에게나 붙이는 호칭인데도 환경에 따라서는 처음 들을 수도 있겠네요. 참 신기합니다. 하하하~!”

“그럼 서툰 능력이지만 배운 대로 풀이해 볼게요. 혹 턱도 없는 풀이라면 바로 가르쳐 주세요. 저도 배우는 것은 무척이나 좋아하니까요. 먼저 일주(日柱)가 경진(庚辰)이네요. 편인(偏印)은 고독살(孤獨殺)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살아가는 나날들이 항상 고독했던가 보네요. 맞아요?”

염재에게 확인하듯이 묻자 염재도 답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고독하셨다는 말씀이네요? 배우는 화려한 직업인 것으로 봐서 언제나 찬사(讚辭)를 온몸으로 받으면서 신나게 사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 안에서는 또 온갖 기괴한 일들이 넘쳐나고 있으니까요. 그야말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화려한 고독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누구라도 그 속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전부를 알 수가 없나 봐요.”

우희가 이렇게 말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이 처연(悽然)해서 옆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 슬픔이 밀려올 지경이었는데, 풀이가 이어졌다.

“연월(年月)은 과거지사(過去之事)라고 하셨나요? 그렇다면 과거에는 잘 지냈다는 뜻인가요? 모두가 토금(土金)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봐서 일간(日干)인 경금(庚金)을 생하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보는 것이 맞나요?”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습니다.”

“예? 왜죠? 토생금(土生金)이 맞지 않나요?”

“토생금이 맞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는 토극금(土剋金)도 맞기 때문입니다.”

“아니, 제가 잘 못 알고 있었나요? 분명히 그 어른이 가르쳐 주기로는 화생토(火生土)하고 토생금(土生金)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하하하~!”

“이해가 되지 않네요. 선생님이 설명을 좀 해 주세요.”

염재는 난데없이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자 스승님 앞에서 쑥스러웠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하려다가. 이내 그냥 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호칭으로 마땅한 것이 없기도 해서였다. 초면에 이름을 부르라고 하기도 멋쩍었기 때문이었다.

“배가 고픈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분명히 토생금이 맞습니다. 그런데 배가 부른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도 토생금일까요? 아니면 그것은 오히려 밥으로 인해서 아이에게 고통을 줄 테니 토극금일까요?”

염재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서 눈을 깜빡이던 우희가 비로소 무슨 뜻인지를 알고서 무릎을 쳤다.

“아하~! 그런 깊은 뜻이 있었네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한쪽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뜻이잖아요? 과연 도사는 괜히 되는 것이 아니었네요. 감탄했어요. 호호호~!”

우희는 말귀를 들을 줄 알았다. 그것을 보면서 염재도 다시 기다렸다.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우희가 말했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모두가 나를 도와주고 있는 토금(土金)이지만 실상은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존재들이었다는 것이잖아요? 과연 여태까지 살아온 나날들과 완전히 부합되네요. 서로를 아껴주는 것은 다음 공연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거든요. 공연만 아니면 언제 봤느냐는 듯이 등을 돌릴 사람들 틈에서 살아왔으니까요. 참 신기하네요. 마음에 쌓였던 응어리들이 봄비가 되어서 녹아내리는 느낌이에요.”

우희의 반응에 염재도 신명이 나서 말했다.

“그래서 상담하면서 마음을 정화(淨化)하기도 합니다. 하하~!”

“정말 재미있어요. 또 살펴볼게요. 그러니까 지금은 일주(日柱)인 경진(庚辰)으로 본단 말씀이죠? 현재도 마찬가지로 또 토(土)가 있네요. 여전히 힘든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고 풀이하면 되는 것이겠죠? 그리고 진술충(辰戌沖)도 보여요. 일지충이 일어난 것은 이땅 저땅으로 떠돌아다닌다는 의미가 되나요? 이것은 완전히 제 삶을 꿰뚫고 있다는 느낌조차 들어요. 어쩌면 이럴 수가 있죠? 소름이 돋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팔을 보여주는데 과연 닭살 돋은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면서 우창이 말했다.

“하하~! 재미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제 슬슬 떠돌이를 끝낼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축하해야 하겠습니다. 하하하~!”

“예? 정말인가요? 진토(辰土)에서 그것이 보이나요? 끝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만 같은데 말이에요.”

“혹 지장간(支藏干)이라는 말은 들어 보셨습니까?”

우창의 물음에 우희는 처음 듣는다는 듯이 말하면서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싶다는 듯이 얼굴을 기울였다. 우창이 가까이서 보자 나이가 들어 보였던 얼굴보다 더 젊어 보이는 모습이어서 내심 깜짝 놀랐다.

“아니, 보기보다 더 젊으시네요.”

우창이 자기도 모르게 말하자, 이야기 소리에 조용히 나와서 곁에 앉아있던 현지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줬다.

“그건, 무대에 서느라고 분장을 많이 하다 보니까 피부가 상해서 그런 거예요. 나이는 아마도 서른 서넛 정도일 거예요.”

현지가 이렇게 말하자 우희가 답했다.

“생일은 몰라도 나이는 알죠. 올해로 서른넷이에요. 용케도 잘 알아보셨네요. 호호호~!”

대화를 나누다가도 이렇게 방향을 전환해서 긴장감을 풀기도 하는 것이 우창의 상담하는 형태였다. 다시 염재에게 설명해 주라는 뜻으로 염재를 바라보고는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러자 염재가 다시 설명했다.

“요즘 와서 겉으로는 같은 일상이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는 형상입니다. 자기를 찾겠다는 의식(意識)이 팽배(澎湃)하고 있었네요. 요즘 와서 부쩍 그러한 생각이 들었겠습니다.”

“어머나~! 어쩜~!”

너무 놀라서 말을 잊지 못하는 우희는 마치 속내를 들키기라도 한 듯이 깜짝 놀라면서 입만 벌리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하고 있다가 그 이유를 물었다.

“어떻게 그런 해석이 가능한가요? 혹 글자는 그냥 적어놓고서 신령(神靈)의 도움으로 제 속내를 들여다보고 계신 것은 아닌가요?”

“아닙니다. 단지 육십갑자의 마법이라고나 할까요? 하하하~!”

“정말 놀라워요. 단장(團長)이 알면 기절초풍할 일이지만 실제로 마음에서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너무 재미없고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점괘에서 그러한 것이 눈으로 본 듯이 소상하게 드러나니 참 신기해요.”

염재는 우희가 아직은 지장간의 이치를 모르고 있어서 자세한 설명을 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대략 이렇게만 말하고 시주(時柱)를 가리켰다. 그러면서 다시 풀어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조짐이 있는지 살펴보시지요. 하하~!”

“근데 좀 두렵네요. 대신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떨려서 못 들여 보겠어요. 혹 안 좋은 내용이 나올까 봐서요. 호호~!”

우희는 이미 오주괘에 푹 빠진 듯이 보였다. 염재가 거들어줬다.

“시주(時柱)는 기묘(己卯)입니다. 묘(卯)가 경(庚)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계시지요?”

“육친(六親)을 말씀하시나요? 그것은 정재(正財)라고 배웠어요. 재물이라고도요. 맞나요?”

“맞습니다. 다만 육친이라고 하지 않고 십성(十星)이라고 합니다만, 의미는 같습니다. 결실이 보이네요. 축하합니다. 하하하~!”

염재가 결실이라고 말하자 우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예? 정말이에요. 정재가 결실인 것은 이해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과연 제게도 가능할까요? 다시 한번 이해하기 쉽게 말씀해 주세요.”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시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염재가 그 마음을 알고는 다시 설명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일이 앞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조짐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될 것으로 보여요. 그것은 목극토(木剋土)의 작용으로 인해서 토(土)를 버리고 목(木)을 취하게 되는 까닭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배우의 일도 거의 막바지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니, 일자리가 사라지는데 축하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묻는 우희에게 염재가 다시 설명했다.

“그동안의 일자리는 답답했는데 이제 그것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일로 신나게 살아갈 날이 다가온다는 뜻이니 축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염재의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던 우희가 말했다.

“아하, 그런 뜻이었군요. 그야 바라던 바네요. 그런데 아무것도 할 줄을 아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새로운 미래를 만날 수가 있을까요? 문득 이것이 또 걱정이네요.”

“그렇습니까? 가령 전국을 유람하면서 가보지 않은 곳이 없겠는데 그러면서 방언(方言)도 배우지 않으셨나요?”

“방언이야 많이 알죠. 북경은 물론이고, 사천(四川), 복건(福建), 광주(廣州)와 길림(吉林)까지도 훑고 다녔으니까요. 그 세월을 떠돌아다니면서 수확이라면 각 지역의 말은 많이 배웠네요. 그렇지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보고 들은 것은 많겠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20여 년을 돌아다녔으니 그것은 적다고 못 하겠네요. 많이 보고 들었으니까요. 호호호~!”

비로소 우희는 자신에게도 남다른 것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는 듯이 웃었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예라고 하겠습니다만, 사람들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습니까?”

“그런 것이야 이미 옛날에 졸업했지요. 전혀 없어요. 위로는 왕과 아래로는 걸인들까지도요. 그러고 보니까 나름대로 헛되이 세월만 보낸 것은 아닌가 보네요. 일깨워주셔서 고마워요. 호호~!”

“만약에 저잣거리에서 마음이 답답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하소연한다면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누가 찾아와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들어주는 것이야 무엇이 어렵겠어요. 다만 누가 찾아오기나 하겠나 싶네요.”

우희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또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해보는 말이었다. 그것을 헤아린 염재가 다시 말했다.

“만약에 이렇게 오주괘를 적어놓고 설명한다면 어떻겠어요? 물론 사주를 적어놓아도 좋겠고요.”

“예? 어떻게 감히 그것까지 바랄 수가 있겠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말이에요.”

가끔은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 않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 우희의 마음이 딱 그러한 상황인 모양이다. 염재가 다시 분주(分柱)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분주도 살펴보실래요? 앞으로의 모습이 어떻게 전개되어서 마무리로 이어질 것인지 살펴볼 자리니까요.”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는지 다시 분주를 살펴보는 우희였다.

“분주라고 하셨나요? 다섯 번째 간지는 갑자(甲子)네요. 이것은 편재(偏財)와 상관(傷官)이에요. 편재는 뜬 돈이 되고 상관은 구변(口辯)이 된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맞습니다.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정말 진즉에 간지 공부라도 더 해 놨어야 했는데 이제 후회가 되네요. 아는 대로만 본다면 새로운 일이 전개된다고 봐야 할까요? 괜히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조심스러워요.”

“아전인수면 또 어떻습니까? 잠시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꿈을 꾼들 무슨 큰 문제가 될 것도 없으니까요. 하하하~!”

“역시 그랬군요. 너무 좋은 희망으로 살펴봤나 싶었어요. 선생님의 풀이를 듣고 싶어요. 내심 두려워서 조마조마하거든요. 호호~!”

염재는 우희의 심사가 이해되었다. 그래서 풀이를 강요하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설명해 줬다.

“저도 공부하는 제자인지라 자세한 것은 스승님께서 정리해 주실 것으로 생각이 되기에 믿고서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자신의 구재(口才)를 이용해서 의식주(衣食住)에 구애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결과를 봐서는 이전(以前)의 모습과 전혀 다른 형태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연월(年月)의 모습은 수동적(受動的)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시분(時分)의 보습은 그와 반대로 능동적(能動的)으로 자기의 삶을 만들어 가는 형태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결과가 원하시는 모습이라면 좋은 점괘가 되는 것이고, 원하지 않는 결과라고 한다면 나쁜 점괘가 될 따름입니다. 어느 쪽에 점(點)을 찍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판단하면 됩니다.”

염재의 설명을 듣고서야 얼굴에 화색(和色)이 돌면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야 당연히 제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요. 정말 그대로만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이야기가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던 고윤화가 다가와서 말을 끊었다.

“이런~!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도 진지하게 하고 계시느라고 아침을 차려놓은 음식이 다 식게 생겼어요. 이야기가 길어진다면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까 아침부터 들고서 이야기를 나누세요.”

주인장의 말을 듣고서야 우희도 자기 때문에 아침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는 일어나면서 말했다.

“정말 제 사정만 급해서 실례했어요. 가서 아침을 먹고 다시 올게요. 오늘은 정말로 얽혔던 문제가 한꺼번에 풀릴 것만 같아요. 호호호~!”

이렇게 말하고 우희는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갔고, 그제야 식구들도 주인이 차려 준 아침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