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2.남편의 인연(因緣)

작성일
2023-03-05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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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2. 남편의 인연(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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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의 뒤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온 여인의 자태는 매우 고왔다. 목례(目禮)하고는 우창의 앞에 다소곳하게 앉아서는 무엇부터 물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느라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본 진명이 말했다.

“아직도 멀었어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방 안의 네 사람이 모두 놀랐다. 여인이 놀라는 것이야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현지와 염재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을 봤기에 저리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인지부터가 놀라웠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듯한 여인이 진명에게 말했다.

“밑도 끝도 없이 멀었다니? 무슨 뜻인가요?”

“앞으로도 상복(喪服)을 열 번은 더 입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여태 입은 세 번의 상복으로는 아직도 멀었다는 뜻이지 뭐겠어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여인은 비로소 정신이 들었는지 준비해 온 은자 하나를 꺼내놓았다. 그래야 잘 봐줄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복채는 여기 있어요. 잘 좀 봐줘요. 젊은 낭자께서 봐주실 모양인데 기탄없이 말씀해 줘요.”

여인의 표정으로 봐서 집히는 바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한 우창이 진명에게 말했다.

“아니, 상복이라니 부모(父母)는 아닌 것 같고 무슨 상복을 말하는 건가?”

“그야 물론 부군(夫君)의 상복이지 뭐겠어요. 실은 아주머니의 일은 봐 드리고 싶지 않아요. 다만 꼭 보겠다고 기다리고 계셨으니 그냥 가시라고 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라도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냥 팔자대로 살면 될 테니 더 묻지 말아요.”

그러자 여인이 진명에게 바짝 다가앉으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든 귀담아들을 테니까 제발 말씀해 주세요.”

여인이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진명도 표정을 누그러트리면서 말했다.

“아주머니는 하루도 남자가 없이는 살 수가 없는데, 남자들이 처음에는 반겨서 함께 살기를 애원하나, 막상 함께 살게 되면 반년(半年)이 되기도 전에 명이 긴 남자는 밤이 되는 것이 두려워서 ‘떠난다’는 소리도 없이 도망가고 명이 짧으면 죽어서 관에 실려 나가야 하니 이렇게 기구한 운명이 또 있나 싶네요. 쯧쯧~!”

진명이 이렇게 말하면서 혀를 찼다. 그러자 여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고, 그것을 본 염재와 우창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아름다운 여인의 눈에 고인 눈물은 사내의 마음을 흔들어대는 태풍과 같았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여인이 말했다. 음성도 곱고 촉촉해서 쥐어짜면 물이 찻잔으로 한 잔은 나오지 싶은 정도였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이죠?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꼭 좀 알고 싶어요. 그래서 도사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는데 오늘에서야 그 소원을 이루게 되려나 봐요. 부디 제 고민을 해결해 주세요.”

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진명을 제외한 세 사람은 무척이나 궁금했다. 도대체 남편을 맞이하면 할수록 남편의 명이 짧아서인지 죽어버리거나 혹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서 며칠을 찾아 헤매기를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진명이 그것을 단번에 알아보고 말을 했으니 여인의 마음이 후끈 달아오를 만도 했다. 진명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알아요. 아주머니는 전생에 300년을 살았던 대망(大蟒)이었어요.”

“예? 대망이 뭐죠?”

“이무기 말이에요. 구렁이가 오래되면 머리에 뿔이 돋아나거든요. 그것을 이무기라고 해요. 다행히 여의주를 얻으면 용이 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전설일 따름이에요. 그러니까 오래 묵은 구렁이라는 말이죠.”

“에구머니나~ 징그럽게끔 웬 구렁이에요?”

“깊은 산에서 오래도록 살면서 도는 안 닦고, 음욕(淫慾)만 치성(熾盛)해서는 인간과도 관계를 한 벌로 이런 고통을 받게 된 것이니 모두 자업자득(自業自得)이죠. 세상에 우연은 없으니 말이에요. 호호호~!”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구렁이가 인간과 관계하다니요?”

여인은 괴이한 말을 하는 진명을 의혹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러자 진명이 다시 설명했다.

“뱀을 보면 징그럽나요? 아니면 친근한가요?”

“아니, 뱀을 보는데 왜 징그럽죠? 털도 없어서 깨끗하고 비단결 같은 피부는 또 얼마나 감촉이 좋은데요.”

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세 사람은 아연실색(啞然失色)했다. 보통은 뱀을 보면 징그럽게 여겨서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이 여인은 그것을 좋게 여긴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고 여인을 보자 말하고 있는 여인의 혀가 뱀의 혀처럼 보이기조차 했다. 진명이 그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

“아주머니는 전생에 구렁이로 살면서 소원바위에 기도하러 오는 여인을 희롱하여 능욕(凌辱)하고는 여인이 고통을 못 견디고 죽게 되면 또 삼켜버렸으니 그 죄업을 어떻게 하겠느냔 말이에요. 아주머니의 이번 생은 죽을 때까지 정욕(情慾)에 사로잡혀서 남자를 맞아서는 잠시 즐기다가 관곽(棺槨)에 담는 일을 반복해야 할 거예요. 그래서 아직도 멀었다고 한 거고요.”

“어머나~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해요? 전생이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황당한 말로 현혹(眩惑)시키나요?”

“현혹이라고요? 그럼 맘대로 하세요. 답답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아주머니니까요. 호호호~!”

이렇게 말을 한 진명이 입을 다물었다. 여인에게도 생각해야 할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짐작해서였다. 우창도 웬만하면 뭔가 거들고 싶기는 했으나 상담의 내용을 봐서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진명의 태도만 볼 따름이었다. 잠시 뜸을 들인 다음에 진명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업대로 송장을 치우다가 가시던가, 아니면 죄를 뉘우치고 업장을 소멸하던가 그 판단은 스스로 하시면 되니 강요하지 않겠어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여인이 갑자기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말했다.

“참으로 용한 낭자 도사님이시네요. 여태까지 어디에서 물어봐도 이러한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적이 당황했어요.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게 맞지 싶어요. 어쩌다가 꿈을 꾸면 깊은 산골에서 사는 저의 모습인 듯한 꿈을 꾸기도 했는데 그게 전생의 구렁이였던 자신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러면 이 업장을 어떻게 해야 씻을 수가 있을까요?”

“잘 생각하셨어요. 그렇다면 답을 알려 드리죠. 수우산은 아시나요?”

“그야 알죠.”

“수우산에 가면 우성암이라는 암자가 있고, 그 암자에는 화련 보살님이 계세요. 지극정성으로 보살님을 모시면서 조석으로 공양을 챙겨 드리고 지장보살 전에 100일 기도를 드리세요. 올겨울이 끝나고 기도를 마칠 때쯤이면 평생을 함께할 인연이 나타날 거예요. 물론 기도하는 도중에 남정네의 몸이 그리워져서 못 견딜 정도가 될 텐데 이것은 업력(業力)에서 오는 거예요. 마치 마약에 중독되었던 사람이 각고의 노력으로 겨우 치료가 되었는데도 다시 마약을 보면 마음이 요동(搖動)을 쳐서 손을 대지 않기가 어려운 것과 같아요. 그것을 견디지 못하면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이겨낸다면 욕정은 타오르는 불길과 같으나 기도의 힘은 불길을 꺼버리는 폭포와 같아서 능히 이겨낼 수가 있어요. 그리고 보통 집에서도 그렇게 기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땅의 이치를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우성암의 터는 참으로 강력한 금기(金氣)가 있어서 애욕의 불을 소멸시키는데 도움받을 수가 있거든요.”

이렇게 말을 하던 진명은 잠시 말을 끊고 여인의 안색을 살폈다. 여인이 귀담아서 이야기를 듣다가 진명이 말을 끊자 얼른 답했다.

“우암도 알아요. 그렇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어요. 그런데 저같이 죄가 많은 사람을 받아 줄까요?”

“그것은 아주머니의 정성에 달렸어요. 이것이 답이에요. 고난을 이겨내고 남들처럼 행복한 보금자리에서 한 쌍의 원앙이 되어서 백년해로(百年偕老)하거나, 아니면 또 그대로 남편을 북망산으로 보내 가면서 힘들게 살아가거나 그 결과는 온전히 아주머니에게 달렸어요. 그런데 관상을 봐서는 노력을 한다면 결과는 좋아 보여요. 만약에 필요하다면 서찰(書札)을 하나 써 드릴 수도 있고요.”

“자신이 없었는데 그래 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어요. 내일 당장 정리하고 올라가게요. 이렇게 사는 것은 정말 여인으로는 못 할 짓이거든요.”

여인은 비로소 미소지면서 말했다. 그 모습이 참 고왔다. 그러나 누가 알랴, 그 웃음 뒤에는 남자를 죽이고도 남을 정도로 넘치는 음란(淫亂)함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으리라는 것을. 진명은 간단하게 서찰 써서 여인에게 주고는 잘 이겨보기를 빌어 줬다.

 

화련(華蓮) 보살님 전.
여기 업장(業障)이 지중(至重)한 여인을 보냅니다.
보살님께서 잘 받아서 지도(指導)해 주세요.


진명 올림

 

염재가 얼른 아래로 내려가서는 봉투를 얻어와서 진명이 쓴 편지를 담아서 봉한 다음에 여인에게 건네줬다. 여인이 보물이라도 얻었다는 듯이 받아 들고는 고맙다는 말을 열 번은 더 하고서야 떠나갔다. 여인이 사라진 다음에서야 염재가 감탄하면서 진명에게 말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누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오늘 바로 목격하고 나니 참으로 놀랍고 든든하기조차 하네요. 연신 감탄했습니다. 하하~!”

우창도 한마디 했다.

“업장의 힘은 태풍의 소용돌이와 같고 바다의 풍랑과 같아서 그것을 벗어나고자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새삼 깨달았네. 하하~!”

다만, 현지는 미소를 짓고서 진명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동생, 수고 많았네. 숙명을 살피더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안내하면 괜찮은가 보네? 어때?”

“맞아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이제야 태옹 선사님이 무슨 걱정을 하셨는지 알겠어요. 인연법의 이치를 잘 사용한다면 아무런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진명은 또 그것을 배웠어요. 호호호~!”

이렇게 잠시 담소를 나눈 다음에 염재가 또 다른 손님을 데리러 갔다. 이번에는 30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수수해 보이는 모습의 여인이 염재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와서 우창 앞에 앉으면서 말했다.

“고명하신 어른을 뵙게 되어서 고맙습니다. 저의 고민을 좀 해결해 주셨으면 하고 뵙기를 갈망(渴望)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어요.”

여인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답례로 말했다.

“별다른 능력도 없는데 객잔 주인이 과장해서 기대감만 높여드렸나 봅니다. 여하튼 무엇이 궁금하신지 이야기나 들어보도록 하지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자들로 공부하는 사람들이니 괘념(掛念)치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그렇지 않아도 약간의 쭈뼛거림이 있었는데 그 말에 마음이 놓이는 표정을 지으면서 품에서 동전 열 닢을 꺼내어서 앞에 놓으면서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 죄송해요. 형편이 넉넉지 못해서 복채를 이렇게밖에 준비하지 못했어요.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 주세요.”

그러자 우창이 말했다.

“아닙니다.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형편이 어려우면 사례하지 않으셔도 괜찮으니까요. 이것을 마련하느라고 고생하셨네요. 그래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겠습니까?”

우창의 말에 여인은 고맙다는 듯이 합장하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헤아려 주셔서 고마워요. 실은 침실(寢室)의 궁합(宮合)이 궁금해서 여쭈러 왔어요. 누구에게 말을 할 수도 없는 일인데 도사님의 점괘가 하도 용하다기에 꼭 뵙고 말씀을 들어보고 싶었어요.”

우창은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다.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서 어떻게 답을 해야 할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현지가 나서서 해결했다.

“호호~! 젊은 여인께서 침실의 인연으로 고민하신다니 어쩜 좋아요. 달콤하고 행복한 잠자리라면 고민이라고 할 것도 없을 테죠? 어디 이야기를 들어보고서 답을 생각해도 되겠네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남편이 합궁을 원하지 않기라도 한가요?”

현지가 이야기를 받아 주자 여인은 현지를 보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남편은 합궁을 원하여 저녁마다 요구하는데 제가 그것을 받아 주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요즘은 남편이 밖에서 여자를 데려와도 참고 있는 여인의 마음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니까요. 이런 일로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이러한 말을 들으면서 우창은 내심 오늘의 일진이 궁금할 정도였다. 그리고 또 인생에서 여인에게 고민거리라고 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제외하고 또 얼마나 많은 것이 있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공부 삼아서 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여인의 성욕(性慾)이 담백(淡白)한 것도 고민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아주머니도 같이 합궁을 맞춰보고는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거죠?”

“예, 맞아요~! 이웃의 여인네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남의 말로 들리고 상상이 되질 않아요. 그래서 혹 이러한 것이 병이라면 어떻게 고쳐야 할지 궁금해서 꼭 좀 여쭤보고 싶었어요. 혹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여인의 말을 듣던 현지가 말했다.

“스승님, 이 문제는 현지와 단둘이서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여요. 다음 방문자와 대화를 나누세요. 잠시 다른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할게요. 호호~!”

이렇게 말을 하고 현지가 여인을 데리고 조용한 방으로 사라지고 나자 진명이 우창에게 말했다.

“과연 언니가 전생에 신목이었다는 것이 실감 나네요. 옛날의 여인네들은 어디에서 속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조용한 시간에 신목을 찾아와서는 온갖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의 힘든 것을 해소(解消)하곤 했었는데, 이제 또 그 고민을 듣고서 해결해 줘야 할 모양이네요. 그것도 인연이겠죠? 호호호~!”

“그렇군. 그러한 질문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해서 잠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느라고 당황했었는데 현지가 도와주니 고맙게 되었네. 하하~!”

우창이 멋쩍게 웃자 진명도 웃으면서 다음 손님을 만나보자고 했다. 염재가 다시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가서 다음에 만날 사람을 찾았다. 이번에 만날 사람은 모녀였다. 그래서 두 사람을 같이 방으로 안내했다. 우창이 반겨 맞았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들어오시지요.”

모친이 말했다.

“실례합니다. 실은 이 객잔의 주인이 집안의 조카딸입니다. 어찌나 입에 침이 마르게 도사님 말씀을 하는지 꼭 뵙고 싶다고 했더니 오늘 알려줘서 부랴부랴 찾아뵈었어요. 귀한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은자를 하나 내어놓았다. 아마도 객잔의 주인이 미리 일러뒀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지만 염재가 말없이 받았다. 그러면서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말씀하시면 됩니다. 무슨 걱정이 있으셨습니까?”

“실은 이 작은 아이 때문이에요. 나이가 과년(過年)한지라 혼처(婚處)를 찾아서 짝을 맺어야 할 텐데 마침 이웃에 괜찮은 총각이 있어서 그 댁 부모가 딸애를 달라고 하는데도 도무지 혼인할 마음이 없다고 하면서 다른 곳에 인연을 찾아보라고 거절했어요. 사람이 맘에 안 들어서 그렇다고 하면 다른 곳이라도 찾아보겠는데 아예 혼인할 마음이 없다고 하니 이보다 더 고민이 되는 일이 있을까 싶어요. 이 고민을 해결해 주세요. 공방살(空房煞)이라도 끼어서 그렇다면 살풀이라도 해야지 않을까 싶어요.”

모친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참 고민이 될 일이었다. 우창은 진명을 바라봤다. 이 모녀에게 해 줄 말이 있으면 지금이 그때라는 생각이 되어서였다. 그러나 진명은 아무런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보이는 것이 없다는 의미라고 생각한 우창이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혹 팔자에 무슨 조짐이 있을지 모르겠으니 어디 생일을 가르쳐 주시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염재가 먼저 모친이 알려주는 생일을 적어놓고 천세력(千歲曆)을 펼쳐서는 간지(干支)를 적었다.

433 정성동생

사주를 적어서 우창의 앞에 놓고는 뒤로 물러나서 잠시 명식(命式)을 들여다봤다. 우창이 염재를 바라보니 이미 나름대로 해석이 된 것으로 보이자 짐짓 위엄을 갖추는 듯하면서 물었다.

“염재, 어떤가? 혼인을 권하는 것이 좋겠는가?”

“스승님, 감히 말씀드리자면 혼인을 한다고 하더라도 평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니 이렇게 보는 것이 맞는지 조심스럽습니다.”

염재의 말에 우창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친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 보았는가 싶어서 제자에게 물어봐도 역시 마찬가지로 해석이 되는가 봅니다. 낭자는 가정을 꾸리고 살기에는 사주의 그릇이 너무 커서 남편의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팔자가 그렇게나 드센가요?”

“드센 것이 아니고 멋진 것이지요. 하하하~!”

우창은 특유의 온화한 웃음으로 모친의 혼란한 심사를 다독였다. 모친은 기대에 가득한 마음으로 답을 기대하다가 혼인의 팔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낙심천만(落心千萬)이었다. 그래서 우창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니, 계집애로 태어나서 여필종부(女必從夫)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좋은 팔자겠어요. 키울 적에는 그렇게 안 키웠는데 왜 그럴까요? 어떻게 하면 흉한 조짐을 풀어서 해소하고 좋은 신랑을 만나 혼인을 시킬 수가 있을까요?”

이렇게 애가 타서 말하는 모친과는 달리 옆에 앉은 낭자는 보일 듯 말듯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흘낏 본 모친이 또 애가 타서 말했다.

“인물이 남만 못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요? 도사님은 능력이 있으시니까 좋게 풀어주실 수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모친이 이렇게 말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진명이 말했다.

“어머니, 원하시는 말씀을 못 드리는 것을 용서하세요. 실로 이 동생은 전생에 고승(高僧)이셨어요. 그래서 사소한 세간의 인정(人情)에는 관심도 없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혼인하더라도 즐거움은 없고 힘만 들 뿐이에요. 어머니도 알고 계시잖아요? 틈만 나면 절간으로 출가하러 간다고 했는데 설마 그렇게 될까 봐 걱정하시는 거죠?”

“엄머나~! 이 젊은 여도사님의 실력이 스승보다 더 나으신가 봐요. 그렇게 콕 짚어내시니 말이에요. 맞아요. 그게 두렵답니다.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봐 주실 것만 같네요. 세상에 태어나서 남녀가 짝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것보다도 더 중한 것이 어디에 또 있겠어요. 그런데도 자꾸만 산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니 속이 터져서 죽겠잖아요.”

모친은 속이 터진다는 듯이 딸의 등을 때리는 시늉까지 하면서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 혼담을 넣고 있는 총각과 짝을 맺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이 보일 지경이었다. 이런 때는 방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창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스승님, 팔자를 봐서는 일부종사(一夫從事)는 불가능해 보이잖아요? 그보다도 혼처를 아홉 번이나 바꿔도 남편이 온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구혼불발격(九婚不發格)이네요. 예전에 말씀해 주셨던 그 오대산의 비구니 스님의 사주도 구혼불발격이었잖아요. 그래서 큰 사찰의 오백나한(五百羅漢)과 혼인하여 수백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중생을 교화하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이 사주로 봐서는 천불(千佛)과 혼인하여 수천의 중생을 제도(濟度)하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명의 말에 우창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수작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상황은 딸의 편을 들어야만 하는 모양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우창이 고개로 화답하자 진명이 다시 말했다.

“이 구혼불발격은 혼인하면 남자가 우연히 병을 얻어서 죽고, 자식이 태어나도 3년을 넘기지 못해요. 설마 모친께서는 그러한 지경이 되어도 혼인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진명은 내친김에 몰아쳐서 약간의 미련조차도 내려놓도록 했다. 이렇게까지 말하자 모친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지 혼인할 방법을 묻는 말에 힘이 빠지면서 다시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도저히 안 된다면 나도 포기를 해야지 어쩌겠어요.”

모친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었던 우창은 딸에게 말했다.

“가끔 꿈에서 큰 사찰에서 수행하는 자신을 보곤 합니까? 그 모습이 너무도 편안하고 깨끗해서 세상의 집착은 하나도 없으나 어머니의 마음이 걸려서 산중으로 들어갈 결행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맞아요. 어머니도 저만 의지하고 아들도 없이 외롭게 살고 계시는데 저마저 훌쩍 떠나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요.”

“아니, 출가해서 수행하고 나중에 어머니도 같이 생활하시면 더 좋잖아요? 결혼해서 사위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시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텐데 왜 엮어놓지 못해서 안달하신단 말입니까?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모친도 얼굴이 훨씬 밝아졌다.

“어디에서 뭘 하더라도 저만 행복하다면 뭘 더 바라겠어요? 역시 도사님의 풀이는 여느 점술가와는 다르네요. 잘 알았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딸애가 원하는 대로 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우창은 딸에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모친께서 허락해 주셨으니 맘에 드는 곳으로 출가하셔서 멋진 수행자가 되시고 또 길을 잃은 중생들에게 등불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열심히 수행하겠어요.”

이렇게 말하고는 다음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알기에 일어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현지가 여인과 같이 나와서는 방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인사를 하고는 떠나자 현지가 손을 흔들어 주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했던 우창이 물었다.

“어떻게 잘 해결이 되었나 봅니다?”

“예, 부부합방의 기술 몇 가지를 전수해 줬습니다.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네요. 현지도 오늘 밥값은 한 셈이죠? 호호호~!”

“아무렴요. 잘하셨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