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 제31장. 생존력(生存力)/ 3.한낮의 방문자(訪問者)

작성일
2022-01-10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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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제31장. 생존력(生存力) 


3. 한낮의 방문자(訪問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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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이 자못 엄숙한 표정으로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께서 신(辛)의 흑체(黑體)와 탐욕(貪慾)과 생존(生存)의 욕구(欲求)를 가르쳐주신 덕분에 더욱 심오(深奧)한 이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안 드릴 수가 없네요.”

그러자 우창이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어허~! 이러지 말라고 했지? 그냥 마음으로만 느끼고 이렇게 자질구레한 마음의 표현은 하지 말잔 말이네. 하하하~!”

“그래도요. 마음이 그렇게 말하라고 자꾸만 생각이 나잖아요. 호호호~!”

“정 그렇다면 그것도 흐름이라고 봐야겠군. 고맙네. 그런데 수경의 상식도 매우 풍부해서 도반들에게 큰 도움이 됨은 물론이고 나도 깨닫는 것이 많으니 과연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은 조금도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군.”

그러자 수경이 공수하면서 말했다.

“그야 스승님의 가르침이 알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흩어졌던 쇳조각들을 용광로에 넣어서 하나로 만드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에요. 스승의 열정이 없으면 이러한 것들조차 저마다 쓸모없는 조각으로 구석구석에 처박혀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들이 빛을 발하게 되니 또한 스승님의 공덕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자 채운도 말했다.

“와우~! 언니의 말씀대로 용광로라는 말이 참 좋아요. 정(丁)의 열정적이고도 불타는 용광로가 우리 학당의 한 가운데에서 이글거리고 타오르고 있는 것만 같아요. 호호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춘매가 점심을 준비하려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것을 본 수경도 춘매를 도우려고 뒤를 따랐다. 그러자 오늘 점심을 담당하기로 했던 대여섯 명의 제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우창에게 공수하고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면서 우창도 오전의 공부는 이 정도로 하고 여담이나 나눠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승님, 손님이 오셨어요~!”

밖으로 나갔던 춘매가 한 남자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우창과 제자들은 일제히 소리를 따라서 시선을 옮겼다. 중년의 남자가 춘매를 따라서 들어오다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잠시 쭈뼛거렸다. 춘매가 손님과 상담을 나누는 곳으로 안내를 했고, 잠시 후에 차를 준비한 춘매를 따라서 상담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제자들은 활발한 토론을 펼치느라고 웅성거렸다.

“어떻게 나들이를 하시게 되셨는지요?”

자리에 앉자 차를 권하면서 우창이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예전부터 선생님의 명성을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 실은 제 길을 아직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차에 명쾌한 가르침을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서 오늘 큰마음을 내었지요.”

“헛된 소문은 믿을 바가 되지 못합니다만, 궁금하신 점이 무엇인지는 들어보겠습니다.”

“예, 제 이름은 왕현재(王玄載)라고 합니다. 그동안 관원(官員)으로 미관말직(微官末職)을 얻었으나 과연 제 길이 맞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딸린 권속(眷屬)으로 인해서 마음대로 결행할 수가 없어서 마음속에서만 담아 뒀는데 오늘은 이에 대해서 허심탄회(虛心坦懷)한 말씀을 청해 듣고 싶어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우창은 남자의 행색을 살폈다. 소박해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평복을 입고 온 것은 어떤 선입견이 없는 조언을 듣고 싶었다는 짐작할 수 있었다. 봐하니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된 우창이 제안을 했다.

“잘 오셨습니다. 보시다시피 지금은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혹 괜찮으시다면 선생의 사주를 공개적으로 제자들과 함께 토론하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선생은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가 있을 것이고, 제자들은 실제의 상황을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소생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상담에 대한 비용은 받지 않고자 합니다. 어떻습니까?”

우창의 제안이 왕현재는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말했다.

“아, 예 좋습니다. 제 운명이 여러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해석이 될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그렇다면 같이 토론방으로 나갑시다.”

우창이 없는 사이에 삼삼오오로 토론하던 제자들이 우창과 손님의 등장에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앞으로 나온 우창이 제자들을 향해서 말했다.

“오늘 방문하신 왕 선생은 여러분의 학문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사주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감사의 박수를 부탁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환호성과 함께 우레같은 박수 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환영하고는 다시 조용해지자 자원이 나서서 왕 선생의 생년과 생시를 물어서 크게 적었다. 모두 제각기 사주를 적느라고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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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눈에 빛을 발하면서 열심히 받아적는 모습을 바라보던 우창이 말했다.

“지금부터 일각(一刻:15분)을 드립니다. 저마다 공부가 깊거나 부족한 대로 나름의 해석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고서 우창도 자원이 적어놓은 사주를 살펴보면서 오주괘를 찾아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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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사주를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그간 마음고생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지를 짐작하면서 내심 측은(惻隱)한 생각도 들었다. 남자도 긴장이 되는 듯이 연신 물을 마셨다. 그러자 춘매가 차를 가져다줬다. 우창도 차를 마시면서 오주괘도 살펴봤다. 점괘는 이야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우선 사주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만으로 많은 공부가 될 텐데 점괘까지 이야기한다면 과식(過識)으로 인한 혼란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을 염려한 까닭이었다. 일각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자, 시간이 되었습니다. 잘 살펴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오래 생각을 한다고 해서 해석이 잘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므로 보이는 대로 판단하면 됩니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설명을 해도 됩니다. 다만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말을 하고자 하는 제자는 미리 손을 들고 의사를 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창의 말에 여기저기에서 나름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제자들이 나오는 말을 일일이 답하면서 풀이를 진행했다.

“묘월(卯月)의 신금(辛金)입니다.”

“맞습니다.”

“신사(辛巳) 일주(日柱)입니다.”

“맞습니다.”

“간지합(干支合)입니다.”

“실령(失令)입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해묘(亥卯)가 합으로 목(木)이 되었습니다.”

“그건 무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지(地支)의 삼합(三合), 육합(六合), 방합(方合)은 논외(論外)로하는 까닭입니다.”

“사술(巳戌)로 원진살(怨嗔殺)입니다.”

“논외로 합니다.”

“식신제살(食神制殺)입니다.”

“식신제살격(食神制殺格)입니다.”

“식신제살까지만 논합니다. 격(格)은 논하지 않습니다.”

“정계(丁癸)충입니다.”

“수극화(水剋火)로 논합니다. 충(沖)은 불론(不論)입니다.”

“신사(辛巳)는 화극금(火剋金)입니다.”

“맞습니다. 다만, 지지에서 천간을 극하지는 않습니다. 천간에서 극을 받았다고 느낄 따름입니다.”

“그건 무슨 이치입니까?”

“간기지질(干氣支質)로 보는 까닭입니다.”

“사술(巳戌)은 화생토(火生土)입니다.”

“맞습니다.”

“사술(巳戌)은 술토(戌土)가 조토(燥土)라서 화생토가 아닙니다.”

“일리는 있으나 묘월(卯月)인 고로 반생(半生)으로 봅니다.”

“일간(日干)이 약합니다.”

“맞습니다.”

“용신(用神)은 시간(時干)의 무토(戊土)가 됩니다.”

“맞습니다.”

“술토(戌土)도 용신입니다.”

“또한 맞습니다.”

“사화(巳火)는 희신(喜神)입니다.”

“맞습니다.”

“연간(年干)의 정화(丁火)도 희신입니다.”

“아닙니다. 무술(戊戌)을 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토운(土運)이 가장 좋고 화운(火運)도 좋습니다.”

“맞습니다.”

“목운(木運)은 흉(凶)합니다.”

“흉한 것은 부담(負擔)이라고 완화(緩和)합니다.”

“목운은 부담입니다.”

“맞습니다.”

“자녀(子女)의 인연은 좋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관살(官殺)의 희신이기 때문입니다.”

“틀렸습니다.”

“그럼 왜 좋습니까?”

“시지(時支)의 자녀궁(子女宮)이 용신(用神)이기 때문입니다.”

“월지(月支)에 기신(忌神)이 있으니 형제는 부담입니다.”

“맞습니다.”

“연간(年干)의 부친(父親)은 부담입니다.”

“잘 해석했습니다.”

“연지(年支)의 모친도 부담입니다.”

“그렇습니다.”

“일지(日支)의 처궁(妻宮)은 합으로 유정합니다.”

“틀렸습니다.”

“일지의 처궁은 도움이 됩니다.”

“맞습니다.”

“일지의 처궁에 경금(庚金)은 경쟁심(競爭心)입니다.”

“그러나 미약합니다.”

“일지의 병화(丙火) 정관(正官)을 봐서 올바른 심성(心性)입니다.”

“맞습니다.”

“성품(性品)이 고지식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식신제살(食神制殺)로 투쟁(鬪爭)을 좋아합니다.”

“투쟁까지만 인정합니다.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간이 약한 까닭입니다.”

“묘목(卯木)이 사화(巳火)를 생하니 형제로 인해서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타당합니다.”

“해수(亥水)가 사화(巳火)를 충(沖)합니다.”

“중간에 묘(卯)가 있어서 무효입니다.”

“해수(亥水)가 월지(月支)에 있으면 사해충(巳亥沖)입니까?”

“수극화(水剋火)일 따름입니다.”

“재물인연이 부담입니다.”

“맞습니다.”

“사업은 권하지 않습니다.”

“타당합니다.”

“교육자(敎育者)를 권하고 싶어요.”

“이유를 말해 주십시오.”

“정인(正印)이 용신이고, 정관(正官)은 희신이며, 식신(食神)이 있으니 궁리를 할 수가 있는 까닭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답을 하자 우창이 고개를 돌려서 말을 한 제자를 살펴봤다. 이 정도의 답을 할 제자라면 이미 내공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에 익숙한 음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라보니 자원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쩐지 하루 이틀에 나온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자원이었다. 계속해서 저마다의 의견들이 이어졌다.

“재물복(財物福)이 좋습니다.”

“틀렸습니다.”

“월지에 재성이면 천복(天福)을 타고 태어난 것이 아닙니까?”

“전생의 빚을 지고 태어났다고 해석합니다.”

“왜입니까?”

“재성이 기신인 까닭입니다.”

“정인(正印)이 시주(時柱)에 있으니 말년이 좋습니다.”

“타당합니다.”

“인수(印綬)가 시에 있으니 무병장수(無病長壽)를 하겠습니다.”

“근거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수명(壽命)과 질병(疾病)은 사주 밖의 소식인 까닭입니다.”

“처는 정숙(靜肅)하겠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처는 부담스럽겠습니다.”

“타당합니다.”

“처를 존중(尊重)합니다.”

“맞습니다.”

“부모와 형제보다 처와 자녀의 인연이 좋습니다.”

“타당합니다.”

“아들은 둘을 얻었으나 장자(長子)는 약하고 차자(次子)는 단명하겠습니다. 다만 딸은 강합니다.”

“무슨 근거입니까?”

“아들은 편관(偏官)이고 딸은 정관(正官)이기 때문인데, 연간(年干)의 편관(偏官)은 극을 받아서 무력하고 일지(日支)의 정관(正官)은 목생화(木生火)를 받아서 강한 까닭입니다. 죽은 아들은 술(戌)이 자식(子息)의 고(庫)가 되는 까닭입니다.”

“논외로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녀는 시지(時支)에서만 논하는 까닭입니다.”

“젊어서는 삶에 변화가 많지만 나이 들어서 안정이 되겠습니다.”

“맞습니다.”

“관직을 갖더라도 나중에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타당합니다.”

“올해[辛未]는 현학(玄學)에 인연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辛)은 비견(比肩)이니 주체가 강화되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省察)하게 되고, 자신의 자존감(自尊感)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미(未)는 편인(偏印)이기 때문에 신비(神秘)로운 현학에 관심을 두게 되니, 음양오행(陰陽五行)과 노장(老莊)의 철학(哲學)에도 관심이 생기게 되는 까닭입니다.”

우창은 처음 듣는 음성이라서 누구인지 살펴봤다. 평소에 조용하게 이야기를 주로 듣고 있던 남삼(藍衫)을 입은 중년의 제자였다. 눈으로만 확인하고는 계속해서 문답을 이어갔다.

“잘 판단하셨습니다.”

“작년[庚午]에는 마음에 고통이 많았겠습니다.”

“타당합니다.”

“내년[壬申]에는 형액(刑厄)을 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무슨 이유입니까?”

“사신형(巳申刑)이 들어오는 까닭입니다.”

“논하지 않습니다.”

“내년에는 형제가 출세(出世)를 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임신년의 신(申)은 월지(月支)의 묘(卯)에게는 정관이 되어서 벼슬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지나친 확대해석입니다. 논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형제의 출세는 형제의 사주가 우선하는 까닭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제자들의 궁금하거나 보이는 것에 대해서 모두 끝이 났는지 조용해졌다. 아무리 많은 질문도 끝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자 우창이 대중을 보면서 말했다.

“여러분의 열정적인 이야기는 모두 서로에게 좋은 답이 되었을 것입니다. 더 물을 것이 없다면 본인에게 확인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창의 말에 모두 조용하게 방문한 남자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그가 확인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우창도 그에게 말했다.

“혹 제자들의 말 가운데에서 마음에 걸리는 내용이 있었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이제 이들이 말을 한 내용에서 맞는 것은 맞다고 해 주시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 부탁드립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왕현재를 돌아다 보자 기침을 한 번 하고서는 약간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깊은 학문과 진지함에 감동했습니다. 단지 여덟 개의 글자에서 이렇게도 재미있고 놀라운 해석이 나올 수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오히려 두려움까지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이치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춘매가 얼른 냉수를 갖다 줬다. 목이 마르지 싶어서였다. 사람의 심중을 헤아리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춘매였다. 오랫동안 손님을 상대했던 내공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이기도 했다. 그는 두 손으로 물 잔을 받으면서 인사했다.

“아,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타네요. 하하~!”

물을 받아서 조용히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제자들도 모두 귀를 기울였다. 큰 방은 숨소리만이 간간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