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 제31장. 생존력(生存力)/ 2.경쟁(競爭)과 투쟁(鬪爭)

작성일
2022-01-0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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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 제31장. 생존력(生存力) 


2. 경쟁(競爭)과 투쟁(鬪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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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그렇게도 이어지던 폭염이 잠시 주춤했다. 계절은 이제 바야흐로 장마철로 접어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커다란 빗방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렇게 험한 날씨도 공부의 열정은 막지 못했으니, 제자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시 오행원으로 모여들었다. 우창은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니 벌써 마음은 설레었다.

자신이 깨달아서 알고 있는 것을 모르던 사람에게 가르치는 일이 결국은 자신에게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는 나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에 저마다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찾아서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 질문의 포문(砲門)을 연 사람은 채운이었다.

“스승님 밤새 편안하셨지요? 소중한 가르침으로 설레는 하루를 맞이하게 된 것에 대해서 도반들과 함께 무한 감사를 드려요. 오늘은 겁재(劫財)에 대해서 여쭤볼 순서에요. 미리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순서에 맞겠죠? 호호호~!”

채운의 말에 우창도 동의했다.

“당연하지. 어디 오늘은 또 어떤 공부를 하게 될지 나도 설렌다네. 하하하~!”

“그럼 가장 먼저 ‘겁재(劫財)’라는 이름에 대해서부터 여쭙겠어요. 어제 알게 된 견(肩)을 통해서 그 어깨의 지게에 무거운 짐을 지고 꿋꿋하게 홀로 가야 하는 인생의 모습에서 이름의 의미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호호호~!”

“어디 밤새도록 궁리한 채운의 결실을 보여주게나. 함께 들어보세.”

“비견(比肩)에서 중요한 글자는 견(肩)이듯이 겁재(劫財)에서 중요한 글자는 겁(劫)에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어요. 왜냐면 재(財)는 재물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글자를 맞추기 위해서 붙어있는 것으로 보였거든요. 비견과 겁재를 두 글자로 줄여서 말을 할 적에는 견겁(肩劫)이라고 하잖아요. 물론 비겁(比劫)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견겁(肩劫)이 더 올바른 표현이라는 것도 어제의 가르침을 통해서 깨달았어요.”

“오호~! 궁리를 많이 했구나. 겁(劫)의 설명을 들어보도록 하세.”

우창과 모든 제자가 조용하게 채운의 설명을 기다렸다. 채운이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말했다.

“겁(劫)은 갈 거(去)와 힘 력(力)이 모인 글자에요. 거(去)는 토(土)와 사(厶)로 이뤄져 있어요. 이러한 글자들을 찾아보느라고 실은 간밤에 잠을 설쳤지 뭐에요. 호호호~!”

“그 글자가 사(厶)였나? 무슨 뜻이지? 나도 몰랐네.”

“이것이 참으로 재미있어요. 사(厶)에는 ‘사사로움’이라는 뜻과 ‘스스로 경영한다’는 자영(自營)의 뜻이 있는데 글자가 이렇게 생긴 이유는 팔을 굽혀서 안으로 끌어안는 모양에서 나왔어요. 이 글자가 나중에는 사사로울 사(私)로도 쓰였으니 사(私)의 고자(古字)가 되는데 또한 개인적인 의미가 되니까 본래의 뜻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고 봐도 되겠어요.”

“아, 그렇구나. 재미있는걸.”

“스승님께 칭찬을 듣고 싶어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는데 헛된 궁리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호호호~!”

“헛된 궁리가 다 뭔가. 그 안에 겁재(劫財)의 본래 뜻이 숨어있을 줄은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역시 채운의 궁리가 아침부터 감동하게 만드는군.”

“불민(不敏)한 제자의 궁리에 사려 깊으신 스승님께서 감동하셨다니 영광이에요. 격려의 말씀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행복한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호호호~!”

채운은 우창의 칭찬에 다시 신나게 설명했다.

“같은 뜻의 사사로울 사(私)를 보면 벼 화(禾)를 움켜쥐어서 품으로 끌어당기는 모습이잖아요. 이것도 역시 겁재(劫財)의 모습이에요.”

“그렇군. 그렇다면 비슷하게 닮은 법 법(法)은 어떻게 설명을 할 수가 있을까?”

“아, 그렇네요. 법에도 거(去)가 있으니 당연히 사(厶)도 있네요. 하긴 물 수(氵)에 거(去)를 붙인 것이니까 겁(劫)과 가깝다고 하겠어요.”

“그래서 나도 생각해 봤다네.”

“스승님께서 물으시니까 답은 해야 하겠는데 법(法)에 붙어있는 사(厶)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혹 이것은 겁재의 의미와는 무관(無關)한 것은 아닐까요? 스승님의 설명이 필요해요. 제자의 머리는 여기까지가 전부네요. 호호호~!”

“나도 생각하기를 법(法)은 물[氵]이 수로(水路)를 따라서 흘러가는 것으로 진리(眞理)로 삼았다고 여겼는데 오늘 채운의 말을 듣고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지.”

“스승님의 설명을 듣고 싶어요. 어떤 말씀을 해 주시더라도 그 내용은 세상에서 처음으로 말씀하시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더 궁금해요. 호호호~!”

“특별히 대단할 것은 없지. 그냥 생각이 나는 대로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라네. 우선 물[氵]과 흙[土]과 팔로 움켜쥔다[厶]는 세 가지를 조합해서 이해하게 되면 거(去)가 붙어있는 겁재(劫財)에 대해서도 이해를 할 징조(徵兆)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것이네.”

“맞아요. 그렇겠어요.”

“우선 거(去)를 주체인 흙[土]이 움켜쥐고 있는 것으로 봐야겠네. 그리고 움켜쥐고 있는 것은 바로 수(氵)가 된다는 말이네. 그러니까 흙[土]이 물[氵]를 움켜 쥐는[厶]것이 물이 흘러가는 것이고, 이것을 자연의 거스를 수가 없는 이치로 삼았다고 보면 될 것이네. 물론 그냥 ‘갖고 있다’는 의미보다는 빼앗는다는 느낌이 포함된 까닭에 ‘움켜 쥔다’는 느낌이 좀 다르군.”

“그러니까 흙이 팔로 감싸듯이 움켜쥐고 있는 것이 거(去)였네요. 갈 거(去)에 힘 력(力)을 붙이게 되면 어떻게 해석하면 될까요?”

“그것은 이미 채운이 생각해 봤을 테니 어서 대중을 위해서 설명해 주시게.”

“아, 제자가 생각을 해 본 것은 흙을 감싸 안는 힘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왕이 남의 나라를 침입해서 영토(領土)를 빼앗은 것이죠. 땅이 영토이니까요. 그래서 빼앗을 겁(劫)이 되었다고 보면 말이 될까요?”

“오호, 당연하지~! 멋진 궁리로군. 겁(劫)의 의미를 이보다 더 명쾌하게 풀어낼 방법은 없을 것이네. 더구나 땅을 빼앗는 것은 결국 재물(財物)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된다고 하겠네.”

“맞아요. 그래서 비견(比肩)의 의미와는 판이한 것을 깨달았어요. 어쩌면 같은 오행인데도 음양(陰陽)의 차이에 의해서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인지 놀랐어요. 호호호~!”

“사(厶)를 생각하다가 보니까 구름 운(雲)도 떠오르네. 구름이란 비를 머금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네.”

“아하~! 그것도 가능하네요. 겁재의 의미에 대한 글자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겁재의 성향(性向)과 심리(心理)의 구조(構造)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너무 궁금했어요.”

채운이 겁재(劫財)라는 글자를 다 이해했는지 이제부터는 의미에 대한 설명을 청했다. 우창도 이에 대해서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채운이 잊지 않았다면 겁재의 천간(天干)은 무엇이지?”

“그야 신금(辛金)이죠. 물질로는 흑체(黑體)가 되어서 무엇이든 흡수(吸收)하는 힘을 갖고 있고요.”

“옳지, 잘 기억하고 있군.”

“아하~! 그래서 겁재였네요. 흑체는 빛조차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움켜쥐고 있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와우~!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에요.”

“집을 짓는 사람이 벽돌을 짜 맞추고, 나무를 깎아서 문을 만들어 끼우듯이 오묘한 맛이 있음을 알겠지?”

“맞아요. 신기하게도 모든 이치가 한 곳을 향하고 있어요. 십성이 이렇게 재미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더 감탄하게 되는가 봐요. 호호호~!”

“흑체(黑體)와 겁탈(劫奪)과 빨아들이는 것이 어우러지니 이것을 겁재(劫財)라고 하게 되고, 재(財)는 사물(事物)이기도 하므로 역시 같은 말이라고 하겠군. 이렇게 비견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겁재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우창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채운이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답했다.

“비견을 자존감(自尊感)이라고 하셨잖아요.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힘이라고 하셨는데, 겁재도 결국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사물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비견은 정신적으로 높은 곳에 있는 것이고, 겁재는 높게 있는 정신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사물을 취하는 것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견겁(肩劫)의 역할은 존재감(存在感)이었네요.”

“오~! 좋군. 존재감이라니. 틀림없는 분석(分析)이라고 봐야겠네.”

“비견의 자존감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겁재의 사물을 취하는 능력이 뒤를 받쳐줘야 한다는 의미네요. 비견만 있으면 꿋꿋한 모습이 되고 겁재가 그 뒤에 있으면 그것을 유지할 수가 있는 물질을 갖춰주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어요.”

“비견이 없고 겁재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높은 정신세계는 생각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사물만 취하려고 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자칫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기 쉽겠네요. 마치 식물로 보면 칡이나 등(藤)과 같다고 하겠어요. 그러니까 비견은 품격(品格)이 되고, 겁재는 생존이 되어서 이 둘이 잘 어우러지면 어디에서도 잘 적응할 수가 있겠어요.”

“오~! 듣고 보니까 일리가 있는걸. 하하하~!”

우창의 칭찬에 채운이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사람의 몸을 놓고 생각해 보자면, 비견(比肩)은 뼈와 같다고 하겠어요. 겁재는 살로 본다면 말이에요. 뼈는 살이 있어야 건조(乾燥)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고, 살은 뼈가 있어야 형태를 유지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신(辛)은 살이 되고, 경(庚)은 뼈가 되네요. 강골(强骨)이라는 말은 경(庚)에게 어울리는 말이고, 근육이 풍성(豊盛)하다는 말은 재물을 모아서 살을 찌운 신(辛)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겠네요.”

“오호, 멋진 말인걸~!”

“정말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겁재의 의미에 대해서 이제야 비로소 뭔가 가늠이 되는 것을 느끼겠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열심히 듣고 있던 춘매가 손을 들었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보고 우창이 춘매에게 눈길을 주자 말했다.

“스승님과 채운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해서 머릿속에는 뭔가 떠오르곤 해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말씀드려 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비견은 생존(生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천기(天氣)는 코를 통하여 받아들이고 지기(地氣)는 입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겁재는 눈으로 보면서 취할 것을 찾고 귀로 들으면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본다면 이목구비(耳目口鼻)는 견겁(肩劫)의 존재를 지탱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난데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호호~!”

말을 하고서도 자신의 말이 이치에 타당한지는 자신이 없었는지 계면쩍게 웃으며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의 반응이 무엇보다고 궁금해서였다. 우창도 그 마음을 헤아리고는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일전에 무기토(戊己土)에 대해서도 코와 입을 이야기하더니 비견과 겁재를 말하는데도 또 코 입과 눈 귀를 말하니 참으로 가까운 곳에서 답을 찾는 신통력을 타고났나 싶군. 과연 자신을 살리는데 호흡과 음식이 필요하고 그 외에는 의미가 없겠는데 호흡하는 것이야 빼앗을 것도 없이 허공에 가득하다고 하겠지만 입으로 들어가야 할 음식물이야말로 어떻게 해서든 외부에서 구입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가까운 곳에서 답을 찾았다고 해야 하겠으니 또한 멋진 궁리가 틀림없지. 하하~!”

“한편으로는 생각이 누추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스승님께서 의미를 부여해 주시니 말이 되었나 싶기도 해서 기뻐요. 호호~!”

“아니지, 쉽게 구할 수가 있으면 남보다 먼저 획득하면 그것으로 내 것이 되어서 생명을 부지(扶持)할 수가 있지만, 그러한 것이 없다면 남이 소유한 것이라도 빼앗아야 할테니 이렇게 되면 투쟁(鬪爭)이 될 수밖에 없단 말이지. 투쟁에서 이기려면 신속하게 살펴볼 눈이 필요하고 뒤쪽에서 달려드는 적을 알기 위해서는 귀가 총명(聰明)해야 한단 말인데 이보다 더 간명(簡明)하게 겁재(劫財)를 위해서 이목(耳目)이 필요하다는 이치를 설명할 방법이 또 있겠어? 그래서 내가 감탄하는 것이라네.”

춘매의 말을 들으면서 채운이 오히려 감탄했다.

“아니, 그렇게 사유하는 방법도 있었다는 것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잖아. 이목(耳目)이 겁재(劫財)의 뜻에 따라서 존재한다니 감탄했어. 정말 대단한 추론(推論)을 듣고 보니까 춘매의 공부가 날로 깊어지는구나. 호호호~!”

“고마워요. 춘매도 언니의 열정어린 이야기를 통해서 깨닫는 것이 많아요. 어서 스승님과 멋진 대화를 나눠주세요. 호호”

춘매의 말에 채운도 칭찬과 격려를 하고는 다시 우창을 바라봤다. 그러자 분위기를 바꿔서 또 우창이 물었다.

“겁재는 심리적으로 자존심(自尊心)에 해당하는데, 왜 그럴까?”

“자존심은 물질적인 것으로 인한 열등감(劣等感)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비견은 정신적인 존재여서 스스로 우아(優雅)하게 살면 되는 것인데, 겁재는 남들보다 물질적으로 부족하면 샘이 난다고 하겠어요.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니 이것은 물질로 인해서 발생하는 자존심이라고 보면 되겠어요.”

“그렇다면 자존심으로 인해서 어떤 심리가 발생할 수가 있을까?”

“남의 것을 빼앗아서 자신의 창고를 채워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경쟁심(競爭心)이 생길 수밖에 없겠어요. 경쟁은 밖으로 향하는 것이니까 경(庚)이 내면을 살펴서 안으로 향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현상이라고 하겠네요.”

“아, 그것도 생각했구나. 그렇다면 밖으로 향하는 겁재는 어떻게 작용을 할 것인지도 생각을 해 볼까?”

“겁재의 작용에도 음양이 있겠죠? 긍정적(肯定的)인 작용은 생존(生存)의 힘이라고 해야 하겠어요. 어떤 환경에 놓인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몫을 찾아서 생명을 이어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니까요. 이것을 겁재의 긍정적인 면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요?”

“가능한 생각이네. 그렇다면 음적(陰的)인 면은 어떨까?”

“그건 더 쉬워요. 겁재가 생존하는 방법은 들에 있는 풀이나 강(江)의 고기를 빼앗아서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이죠. 즉, 남의 것으로 내 배를 불리는 거죠. 그러다가 보면 남의 손에 있는 것조차 빼앗고자 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가 자칫 힘이 강한 자를 만나게 되면 두들겨 맞을 수도 있겠죠? 그렇게 맞으면서 살다가 보면 힘이 부족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닫고서 힘도 기르게 되는 것으로 보면 어떨까요? 그래야 겁(劫)에 붙은 힘 력(力)의 역할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게 되겠어요.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 힘이 필요한 것이었네요.”

채운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깨닫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채운의 설명을 듣고 있던 우창이 채운의 이야기를 정리 삼아 말했다.

“아무래도 그러한 것은 재앙(災殃)을 불러올 수도 있을 테니까 겁재의 안 좋은 면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맞아요. 지금도 어떤 곳에서는 심한 기근(饑饉)이 들면 자식을 서로 바꿔서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러한 것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할 수가 있는 일이지 않을까요?”

“그렇게까지는 아니라도 어떻게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은 겁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겠네. 하하하~!”

“어쩌면 모태(母胎)에서 자리를 잡은 다음에 어머니로부터 온갖 영양분을 흡수해서 열 달 후에 태어나는 과정에서도 겁재가 작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뱃속 아기가 엄마의 몸에 대한 사정을 봐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아서 말이에요.”

“오호~!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인걸. 오로지 생존만을 생각하는 태아의 본능으로 살아나서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는 이치는 자명(自明)하네요.”

“아니,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뭔가 잘못 이해하고 있나요?”

“그게 아니라, 사람의 사주(四柱)는 언제 주어지는 것이지?”

“그야 고고성(呱呱聲)을 울릴 적에 주어지는 것이죠. 아하~! 이제야 무슨 말씀이신지 알았어요. 태어나기도 전에 겁재를 논하는 것은 이치에 타당하지 않다는 말씀이신 거죠?”

“맞아.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면 적당할까?”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어요. 사주가 있는 것은 인간이지만,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막론하고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사주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直結)된 일이기 때문이에요. 다만 그러한 현상을 사주에 끌어들여서 설명하는 것뿐이 아닐까요?”

“오호~! 깔끔하게 정리하시는군. 사주 이전에 십성의 작용이 있다는 이야기가 맞는 말이네. 하하하~!”

“사주와 관계없이 십성은 궁리하고 적용할 수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자연의 현상을 십간(十干)과 십성(十星)으로 대신 설명할 따름이라는 것도 오늘 깨달았어요. 이렇게 설명하다가 보면 또 망외소득(望外所得)으로 깨달음이 주어지기도 하네요. 이러한 것은 선물(膳物)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번뇌는 번뇌를 부르듯이 깨달음도 연속적(連續的)인 깨달음이라고 해야겠네. 연구하는 학자는 깨달음의 연속이 이어지고, 상업하는 상인은 돈을 벌 방법에 대한 깨달음이 연속으로 이어질 테니까 무엇이든 몰입해서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라고 해도 되겠네. 하하하~!”

“정말이네요. 그래서 두려워서 시작도 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주어질 깨달음의 선물도 또한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고 하겠어요. 호호호~!”

“맞아, 그리고 모든 존재의 내면에는 생존에 대한 욕구(欲求)가 있을 수밖에 없겠군.”

“아, 그 말씀이셨네요. 사람에 따라서는 물질(物質)을 획득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서 일생을 살아갈 수도 있고, 정신(精神)을 맑게 하는 것으로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갈 수도 있다는 말씀의 의미가 오늘에 다시 새롭게 되살아나네요. 예전에 어디에선가 그런 말씀을 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신적인 삶도 좋다지만 물질적인 풍요가 없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었어요.”

채운이 어느 정도 이해를 한 것으로 생각한 우창이 방향을 전환하고자 다시 물었다.

“그리고, 신(辛)의 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병(丙)인데 이 점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려나?”

“아, 병신합(丙辛合)을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 신(辛)이 병(丙)과 합하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혹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지 않겠나?”

“물론이에요.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모두 생각해 봐야지요. 실로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납득(納得)이 되지 않는 부분이기는 해요. 신(辛)이 겁재(劫財)의 성향으로 자신의 삶을 위해서 이익을 취하는 존재인데 무슨 연유로 광명정대(光明正大)한 밝은 빛과 합을 하려는 의미가 납득이 되지 않아서죠.”

채운이 알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경이 손을 들었다.

“스승님과 채운의 대화를 통해서 이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겁재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신(辛)이 병(丙)과 합하려는 마음을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어서 말씀드리고자 해요.”

“어디 수경의 생각을 들어보도록 하세.”

“병신합(丙辛合)의 이치는 안으로 움츠러드는 마음을 밖으로 내보내서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그 첫 번째의 목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합은 집착이기도 하지만 치우친 것에 대한 반성(反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에요. 만약에 신(辛)이 병(丙)을 취하지 않으면 영영 어둠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을 테니까요. 작용하는 모든 이치에는 음양(陰陽)이 있다고 했는데 병신합(丙辛合)에 대해서도 그러한 이론을 접목(接木)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러자 채운이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언니, 치우친 것에 대한 반성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야?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의미를 알려주고 이야기를 하면 더 좋겠어. 호호호~!”

“아, 그렇구나. 그 의미는 간단해, 밥을 먹는 것은 살고자 하는 것이잖아?”

“그야 그렇지. 맞아~!”

“그런데 밥을 먹어서 배가 부르면 계속 밥을 먹고 싶을까?”

“아니지, 배가 고플 적에야 어떤 음식도 맛이 있겠지만 이미 배가 부르다면 천하의 진미라도 쳐다보고 싶지도 않겠지. 배가 부르면 오히려 놀고 싶어지지 않겠어?”

“아하~! 그러니까 배가 부른 다음에는 음식을 원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음(陰)의 작용이구나. 그러니까 너무 많이 먹어서 복통이 생기게 된다면 후회를 하겠네.”

“맞아, 채운이 잘 이해했어. 마찬가지로 신(辛)이 물질을 탐하는 것은 신극을(辛剋乙)의 현상(現象)으로 작용(作用)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지. 오로지 물질만을 탐한다면 영원히 신극을로 끝이 나겠지만 여기에서 반작용이 움직이게 되는 거야. 꾸역꾸역 먹어서 몸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지 않겠어?”

“아, 그러니까 천하의 바람둥이도 가끔은 청정(淸淨)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하는 것과 같은 걸까?”

채운의 말에 대중이 모두 크게 웃었다. 채운은 이미 오행원에서 공부하는 도반들에게 없어서는 아쉽게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 다음에 다시 수경에게 물었다.

“언니, 문득 불경(佛經)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데 말을 해봐도 될까?”

“무슨 말인데? 당연히 들어봐야지. 어서 말해 봐.”

수경이 말을 해보라고 하자 채운이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오는 말인데,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말이 떠올라서 말이야. 언니의 말을 듣고 문득 생각해 보니까 양극단(兩極端)에 있을 것 같았던 두 존재가 그 구별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그러니까 바꿔서 말하면, ‘신즉시병(辛卽是丙)이요, 병즉시신(丙卽是辛)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느냔 말이지, 호호~! 처음에 이러한 구절을 들었을 적에는 산중(山中)에서 수행이나 하는 화상들의 말일 뿐이고 세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말이야.”

“오호~!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구나. 신(辛)은 중생심(衆生心)이고 병(丙)은 불심(佛心)이라고 한다면 이 둘은 서로 구분이 되면서도 또 떨어질 수가 없으니 중생즉불(衆生卽佛), 그러니까 ’중생이 부처‘라는 이야기도 이렇게 정리를 할 수가 있겠네. 채운의 말이 큰 깨달음을 줬네. 고마워.”

“아니, 그렇다면 탐욕의 본산(本山)이라고 할 수가 있는 신(辛)도 내면에서는 본질적으로 지혜(智慧)를 갈구하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이잖아? 와우~!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아무리 탐욕스러워도 변화를 할 씨앗이 그 안에 있다는 말이잖아?”

“당연하지. 베푸는 것에 인색한 사람도 어느 순간이 되면 그것을 벗어나서 베풀고자 할 수도 있는 거야. 그래서 평생을 악착같이 재물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사람이 죽음에 다다라서는 자신의 전 재산을 풀어서 빈민구제(貧民救濟)를 하고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병신합(丙辛合)의 오묘한 이치가 그 안에 있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수경의 말에 채운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부자들은 베푸는 것에 인색하고 끌어모으는 것만 집착하게 되는 걸까?”

그러자 수경이 웃었다.

“호호호~! 그 이치가 뭘까?”

“전혀 모르겠는걸. 거기에도 이치가 있었던 거야?”

“당연하지. 호호호~!”

“어서 설명해 줘봐. 언니가 생각하는 이치란 뭐야?”

“그야 흑체(黑體)가 되어서 빨아들이는 중인 까닭이야. 아직 명체(明體)까지 가지 못한 것이라고 봐야지. 즉 아직은 밥을 먹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어? 호호호~!”

“아, 그 말이었구나. 그러니까 먹을 만큼 먹어야 주변 사람을 위해서 내어놓네. 그렇다면 탐욕의 그릇에 따라서 정도(程度)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구나. 웬만하면 탐욕의 그릇이 너무 크지 않기만을 바라야 하겠네. 호호호~!”

“그래서 저마다 업력(業力)이 다르다고 봐야 하겠지? 여하튼 겁재(劫財)의 전후좌우(前後左右)와 상하(上下)까지도 모두 살펴봤다고 해도 되겠네.”

수정과 채운의 진리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우창도 미소를 지었다. 하나를 깨달으면 열 가지가 풀려나가는 진리의 오묘함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감탄하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대중을 둘러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