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 제30장. 정신(精神)/ 24.신계(神界)의 명암(明暗)

작성일
2021-11-30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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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제30장. 정신(精神) 


24. 신계(神界)의 명암(明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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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우창이 입을 열었다. 모두 우창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내 생각에는 말이네. 세상의 모든 이치가 오행 안에 있다고 여기면서도 오행의 밖에서도 이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네. 다만 그 이치를 오행으로 끌어들여서 설명하고자 할 따름이지. 그러한 것에 대해서 모두 벽돌을 착착 쌓듯이 아귀가 맞아떨어지게 설명을 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쉽겠는가만 실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분명히 또 다른 오행 외의 이치나 존재가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거지.”

우창이 이렇게 말을 하면서 대중을 둘러봤다. 그때 대중 가운데 한 제자가 손을 들었다. 우창이 무슨 일이냐는 듯이 눈짓을 하자 그가 말했다.

“스승님, 제가 과거에 겪었던 이야기를 해도 되겠는지요? 이러한 경험은 아무나 할 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이러한 기회에 말씀을 드리고 그 의미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그러자 우창이 크게 반겼다. 바로 그러한 이야기가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여부가 있겠나.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예, 제자는 황균(黃均)이라고 합니다. 올해 서른둘입니다. 이렇게 스승님의 회상(會上)에서 귀한 가르침을 들으면서 자연의 이치에 대한 핵심을 듣게 된 것을 불보살의 가호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오, 그런가? 그야 인연의 이치이지 않겠나. 여하튼 모두 궁금할 테니 그 이야기부터 들어보도록 하세. 어서 말씀하시게.”

우창이 독촉하자 황균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제자들도 귀를 기울이느라고 숨소리만 간간이 들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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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균(黃均)도 여느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청운에 뜻을 품고 과거(科擧)에 급제하여 벼슬을 구하고자 학문에 전념하다가 어느 날 눈앞에 핏빛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의 나이는 20세였다. 처음에는 잠을 잘못 자서 그런가 싶은 생각도 했으나 시간이 경과 할수록 엷게 보이던 핏빛은 점점 더 짙어졌고, 결국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야말로 세상은 온통 붉은 천지였다.

아무래도 눈에 탈이 났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유명하다고 소문이 난 의원을 찾아다니면서 치료에 힘을 썼지만 1년의 세월이 흘러갔어도 전혀 차도가 없었다. 처음에는 자신하고 고치겠다고 하던 의원도 시간이 지나도 생각했던 대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자 스스로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만 인정할 따름이었으니 이것은 인간의 의술로 고칠 수가 있는 병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만 오랜 경험을 쌓은 의원 단 한 사람은 눈동자 안에 혈관이 터져서 피가 고인 것이라고 했을 뿐이었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앞이 보이지 않으니 스스로 할 수가 있는 것은 전혀 없었고, 살아있는 몸이라서 먹고 마시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명하다는 기도처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기도라도 하다가 해결이 안 되면 삶을 하직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는 남들이 눈이 보이지 않아도 잘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수소문을 한 결과 어느 노승에게 하소연하게 되었고, 그가 안내해 준 곳이 동해의 보타낙가산(補陀落迦山)이라는 곳이었다. 노승의 말에 의하면 그곳에는 관세음보살이 상주(常住)한다는 말과 함께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하면 소원을 하나는 이룰 수가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 다른 것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고, 그 말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동해의 보타도(普陀島)를 찾아가는 길은 사물을 보지 못하는 황군에게는 그야말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도착한 머나먼 곳이었다.

겨우 도착한 보타산을 오르면서 그는 눈병을 고쳐서 하산하거나, 아니면 죽어서 내려오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다행히 눈도 멀고 돈도 없는 기도객(祈禱客)에게도 숙식(宿食)은 제공되었다.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에 대한 감사할 겨를도 없이 그날부터 100일 관세음보살 기도를 시작했다. 계절은 이미 가을의 끝자락인 시월(十月)이었고, 비록 남방인 보타도(普陀島)였지만 겨울의 호된 바람은 바위 아래에서 기도에 전념하는 황균의 얇은 옷자락을 매섭게 파고들어서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추웠지만 그래도 물러날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떨면서 기도하는 것을 딱하게 여긴 주지승이 누더기를 가져다 입혀주는 바람에 동사(凍死)는 면할 수가 있었다. 다만 남들이 보기에는 두 눈이 멀쩡한 사람이 앉아서 오매불망(寤寐不忘)으로 관세음보살만 소리높여 외치고 있으니 오가다가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연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두어 달을 견디면서 열심히 기도했으나 정성이 부족했음인지 병세는 전혀 차도(差度)가 없었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진 그는 잠도 앉아서 자면서 하루를 오직 기도에만 전념했다. 그러자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도 그가 기도하다가 쓰러지게 될까 봐서 걱정하면서 먹을 것도 챙겨주고 보살펴 줬으나 그의 간절(懇切)한 열정(熱情)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도해도 아무런 감응이 없자. 회의심(懷疑心)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과연 기도를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은 존재하는 것이며, 비록 그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한가롭게 이 바위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나를 쳐다보기나 할 것이며, 누구나 기도한다고 해서 모두 소원이 이뤄지는 것도 아닐 것이라는 마음이 엄습하면서 두려움도 함께 찾아왔다.

비록 생각은 그렇게 하루에도 열두 번을 뒤바뀌었으나 기도는 멈추지는 않았다. 실로 그것을 하지 않고서 다른 무엇을 할 수가 있으랴. 이러나저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들끓어 오르는 두려움과 번뇌를 잠재우는 데는 도움이 되는 듯도 했다. 그렇게 하기를 두어 달째도 절반이 지났다. 그날도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를 피해서 바위 아래의 움푹 들어간 곳에서 기도하다가 살짝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비몽사몽(非夢似夢)에 그는 바닷가를 어렸을 적에 함께 자랐던 친구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소문에 듣기를 이 부근의 초옥(草屋)에 과거에 큰 벼슬을 했던 어느 존귀한 분이 기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친구, 여기까지 왔으니 유명한 분이 계신다는데 찾아뵙고 인사라도 드리고 가세나.”

황균의 말에 친구도 별다른 이견이 없어서 그곳을 찾아갔다. 길은 언덕길이었고, 돌로 쌓은 계단이 한참 전개되다가 작은 언덕 아래에 초막(草幕)이 나타났다.

“저, 실례합니다. 어르신을 잠시 뵙고자 합니다. 계시는지요~!”

이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자 머리가 반백(半白)인 노인이 앉아있었다. 그러자 황균은 높은 어른을 뵈러 왔으니 정중히 인사를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절을 세 번 했다. 이것은 스승님을 뵐 적에 올리는 최고의 불교식 절이었다. 왠지 그 어르신의 풍모가 불교의 고승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행한 친구는 절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었다. 그렇지만 황균은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찾아주셔서 고맙군. 자 이쪽으로 앉게나.”

“고맙습니다.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초로의 노인이 앉으라고 권하는 곳은 창문이 있는 곳이었는데 밖에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밝은 곳이었다. 노인과 마주하고 앉았더니 그가 말했다.

“그래 혹 무슨 어려움은 없고? 이 부근에서는 그래도 내 말이 먹힌다네 그러니까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도 되네.”

“예. 실은 작은 걱정이 있기는 합니다. 거주지를 옮기고 싶은데 관청에서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황균이 품에서 문서(文書)를 꺼냈는데, 그것은 의원에서 발급한 실명(失明)에 대한 소견서(所見書)였다. 이것은 지난해에 포도청(捕盜廳)에서 군졸(軍卒)을 선발하여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훈련하려고 징집(徵集)할 적에 필요해서 발급(發給)을 받은 문서였다. 물론 그로 인해서 병졸(兵卒)이 되는 것은 면제(免除)받게 되었는데, 우연히도 그 문서를 꺼내어서 보여주게 되었다. 그러나 노인은 문서는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물었다.

“그 문서에 죄를 지었다는 내용이 있는가?”

“내용에 그런 말은 없습니다.”

“또, 무엇이든 하면 안 된다는 항목도 있는가?”

“없습니다. 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건 내가 해결해 줄 수가 있겠어. 허허허~!”

“예. 어르신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다가 누군가 흔드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뜨니까 꿈이었다.

“아니, 이 추운 날에 혹 별고나 없는가 싶어서 와 봤더니 무슨 잠꼬대를 하고 있군. 괜찮은 거지?”

항상 황균을 걱정하면서 돌봐주던 절의 아주머니가 이른 시간에 새벽기도를 하러 나왔다가는 황균이 걱정되어서 찾아왔었던 모양이다. 항상 뭔가 먹을 것이라도 있으면 챙겨주던 분이었기에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아주머니셨군요. 별일 없습니다. 살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 무슨 좋은 꿈이라고 꾸셨어? 기도를 열심히 하면 꿈에 관세음보살을 만나기도 하거든. 좋은 일이 있기를 기도할게.”

여인의 말에 황균이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앗, 관세음보살이라고? 그러니까 꿈에 본 노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을까? 설마.... 그래도 혹 관세음보살이셨다면? 하필이면 주거 이동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면서 왜 의원에서 발급해 준 실명 소견서를 보여드렸을까?’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확실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면 예쁜 여인이 하얀 옷을 걸치고 옆에는 동자가 시중을 드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쁜 조짐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렇게 또 이레가 지나갔다. 그리고 놀라운 일은 그때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온통 빨간색이었던 천지가 차츰차츰 옅어지면서 처음에는 눈앞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더니 날이 거듭되면서 저만치에서 오는 사람의 얼굴도 선명하지는 않았으나 남녀인지는 구분이 될 정도로 보였다가, 이레가 지나고 나자 멀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까지도 구분될 만큼 또렷하게 보였다. 기도를 시작한 지도 90여 일째가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법당에 있는 불경의 글자가 보이게 되자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100일의 마지막 3일을 앞두고서는 눈을 가렸던 붉은 장막은 말끔히 사라졌고 다시 예전처럼 또렷한 풍경을 볼 수가 있었다. 항상 봤던 풍경이지만 상상으로만 그렸던 보타낙가산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오자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관음보살상에서 무릎이 벗겨지는 것도 잊고서 절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늘 돌봐주던 여인이 오늘따라 황균의 태도가 이상했던지 다가와서 말했다.

“무슨 변화가 생겼지? 내 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이 사뭇 다른걸.”

“예, 보살펴 주신 덕분에 관세음보살님의 가호가 내리셨나 봅니다.”

“아니, 왜? 눈병에 효험이 나타나고 있는 거야?”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 나았습니다. 이제 아주머니의 모습도 생생하게 다 보입니다. 볼에 검은 점이 있으셨네요. 하하하~!”

“젊은이가 웃는 모습을 처음 봤네. 처음에는 세상이 온통 꺼질듯한 모습으로 왔었는데 오늘 보니 마치 잃었던 태양이라도 얻은 듯이 환하게 밝아졌잖아. 축하해요. 정성이 지극하니까 관세음보살님이 가피(加被)를 내리셨네.”

“맞습니다. 기도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추운 겨울을 아주머니 덕분에 잘 견딜 수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모두가 인연인 것을. 마무리 잘하고 가서 잘 살아.”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고 떠난 여인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이름이라도 물어 둘 것을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냥 가슴속에다 담아두기로 했다. 아마도 그 여인이야말로 관세음보살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100일 기도를 마치고 하산하게 되었다.

◆ ◆ ◆ ◆ ◆ ◆ ◆ ◆ ◆ ◆


 

긴 이야기를 마친 황균이 우창에게 합장하고 말했다.

“이렇게 관세음보살님 전에 기도하여 가피(加被:소원을 이룸)를 입은 덕에 오늘은 오행원에서 자연의 이치를 배울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만, 바로 어제 겪은 듯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혹시라도 병(丙)의 신명(神明)과 연결이 되는 이에 참고가 될 수도 있으려나 싶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창은 황균의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서 깊은 공감이 되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다가 나온 느낌이었다. 다른 제자들도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이 듣고 있었다가 황균이 이야기를 마치자 말했다.

“오호~! 그러니까 정화(丁火)의 열정(熱情)으로 기도하니까 그에 상응(相應)해서 병화(丙火)의 빛으로 화답(和答)했다고 봐도 되겠는걸.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그대가 직접 겪은 이야기라서 더욱 생생하군.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는데, 꿈에서 본 그 노인은 도대체 누구셨을 것으로 생각해야 할까?”

“스승님, 실은 제자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과연 그 노인은 관세음보살님이셨을까요?”

“글쎄, 나도 뭐라고 단언을 할 수는 없겠네. 이에 대해서는 내가 말하는 것보다도 황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겠네. 아무래도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나보다는 더 많은 생각을 했을 테니까 말이네.”

우창이 황균의 의견을 묻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자도 처음에는 그 노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까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그건 왜인가?”

우창이 의외라는 듯이 묻자. 황균인 다시 말했다.

“관세음보살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으나 무엇인가 특별한 존재가 분명히 이 땅에서 열정을 갖는 수행자나 간절한 염원으로 발원하는 사람과 더불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황균의 말을 듣자 우창이 놀랍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렇게 생각된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나라에는 임금이 계시지만 백성은 그러한 말만 들었을 뿐이고 실제로는 임금을 전혀 볼 수도 없는 것과 같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무슨 뜻이지?”

“말씀을 드리자면, 비록 백성들은 임금을 향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염원하더라도 막상 임금은 그것을 알 바가 없습니다. 다만, 왕을 대신하는 지방관(地方官)이 곳곳마다 있어서 그들이 민심(民心)을 살펴서 그들이 원하는 바가 뜻과 같이 이뤄지기를 바라면서 뜻에 왕의 뜻을 펼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오호~! 참으로 흥미로운 말이네. 그래서?”

“마치 태양은 하나이지만 그 빛은 곳곳에 비춰서 저마다 일을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겨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했습니다.”

“일리가 있는걸.”

“제자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옥황상제나 아미타불이나 성황당의 신령님이 모두 다른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은 인간의 염원을 이뤄주는 일을 위해서 봉사하는 신령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옥황상제와 아미타불이 둘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냥 제자의 어리석은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암시를 불경에서 찾았습니다.”

“불경이라니? 어떤 경에서 말인가?”

우창도 불경에 대해서는 약간의 상식이 있었던지라 황균의 말에 관심이 생겼다. 우창의 물음에 황균도 생각한 바를 자세히 설명했다.

“인연이 있어서 『유마경(維摩經)』이라는 경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불이법문품(不二法門品)」의 대목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둘이 아니라는 말씀에 막혔던 답답한 것이 뻥~ 뚫리는 환희심(歡喜心)을 느꼈던 것입니다.”

“둘이 아니면 하나라는 뜻인가?”

“하나라면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고 했겠지요. 하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옥황상제와 아미타불은 그 맡은 바의 일이 다르니까요. 그러나 결국 그 둘을 대상으로 열심히 기도한다면 그 소원을 이뤄주는 존재는 옥황상제와 아마타불이 아닌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대가 기도하던 중에 몽중(夢中)에 만났던 노인은 관음보살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는 뜻인가?”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을 관세음보살이라도 해도 맞고, 또 관세음보살이라고 해도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맞거나 맞지 않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생각했지요. 오늘에서야 스승님의 병정화(丙丁火)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던 것에 대해서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뜻인가?”

“불빛이거나, 눈빛이거나, 햇빛이거나 그 모두는 태양에서 나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모든 선신(善神)이나 악마(惡魔)는 하나이기도 하고 또 둘이기도 하니 동시에 둘이 아니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음양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도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세상의 이치는 둘이 아니다’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서 빛과 그림자도 둘이 아니라는 이치를 생각하면서 모두가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신령(神靈)이 생생하게 존재하지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치 바위가 불에 타지 않듯이 없는 것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가? 어디 말을 해보게. 어떤 이치를 깨달았기에 그렇게 멋진 답을 얻었단 말인가? 나도 그 설명을 듣고 싶네.”

우창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어보자 황균도 자신이 생각했던 점에 대해서 우창에게 최대한 전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설명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음(陰)이 홀로 존재할 수가 없고, 양(陽)도 홀로 존재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둘이라고 해도 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생깁니다. 이것은 다른 체(體)가 아니라 같은 체의 변화일 따름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둘이라고 한다면 서로 분리(分離)가 되어버리는 이분법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 그러니까 옥황상제와 아미타불과 음양오행은 서로 같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것이라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그중에 어느 것이라도 모두 같은 곳으로 도달하게 되어 있으므로 아무 존재라도 붙잡고 열심히 기도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경(佛經)이든 도경(道經)이든 내용을 본다면 서로 다른 말이지만 의미는 또 둘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게 된 것도 이러한 것에 대해서 답을 구하려고 찾던 과정에서 얻었던 것입니다.”

“과연 황균이 얻은 깨달음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니까 실로 매우 이치에 맞는 설명이로군. 감탄했네. 그대와 같은 철학자가 오행원에 인연이 되었다는 것은 우창의 복이네. 내가 뭘 가르칠 것이 있는지 모를 지경이로군. 그대는 무엇을 더 배울 것이 있어서 이 무리에 동참하게 되었나?”

“제자가 깨달은 것은 기도를 통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믿음뿐이었습니다. 이제 스승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정(丁)이 있으면 병(丙)도 있어야만 하고, 선신(善神)이 있으면 또한 악령(惡靈)도 있어야만 한다는 약간의 이치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만 했었는데, 음양에 대한 스승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핵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행원과 인연이 된 것에는 평소에 항상 깨달음에 대해서 자상한 가르침을 주셨던 수경(水鏡) 사저의 진실한 마음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황균은 이렇게 말하면서 수경을 향해서 합장했다. 그러자 수경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황균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우창이 말했다.

“그대가 겪은 이야기를 우리는 수고로움도 없이 전해 들었지만 실로 느낀 바가 많았네. 고맙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수경이 손을 들었다. 항상 수경은 무엇을 묻고자 할 적에는 손을 들었다. 대중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우창이 수경에게 눈길을 줬다. 그러자 비로소 수경이 입을 열었다.

“스승님, 예전부터 항상 궁금했던 것이 있는데 이것을 지금 여쭤도 될지 주제넘은 생각이 될지를 몰라서 주저하고 있어요.”

“무슨 말이든 기탄없이 하는 것이 좋다네. 뭘 망설이는가? 하하하~!”

우창이 말을 해도 좋다고 하자 수경이 말을 이었다.

“실은 황균의 이야기는 신령(神靈)의 밝은 면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신령의 어두운 면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었죠. 왜냐면 그래야만 음양의 이치에 부합되는 까닭이에요. 이에 대해서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합니다.”

수경의 말에 우창이 미소로 답하고서 말했다.

“아하~! 그 말이었나? 그야 당연하지. 빛이 있으면 필연적(必然的)으로 생기는 것이 무엇인가?”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네. 병(丙)의 어두운 면은 신(辛)이라네. 그래서 상합(相合)이라고 한다네. 병(丙)이 없으면 신(辛)도 없고, 신이 없으면 병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라네. 깜깜한 밤에는 그림자를 찾을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되겠네.”

“그렇다면 악령(惡靈)은 신령(神靈)이 존재함으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란 뜻인가요? 제자의 생각에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점이에요. 왜 조물주는 선신(善神)을 만들었으면서 또 악령을 만들어서 인간을 고통에 빠지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거든요.”

“그것도 또한 둘이 아니라네. 그대가 태양을 향하면 밝은 신령을 만나게 될 것이고, 태양을 등지면 어둠의 악령을 만나게 되는 것이라네. 그것을 분류하면 선신(善神)과 악귀(惡鬼)가 되지만 이치를 알고 보면 그 둘도 또한 같은 몸에서 나온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네. 마치 육합칠극(六合七剋)의 치이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하하~!”

“그건 무슨 뜻인지요? 육합(六合)은 지지(地支)에서 합을 논하는 자축(子丑)이나 인해(寅亥)를 논하는 것이고 이미 스승님께서는 그러한 것은 논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갑자기 그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칠극(七剋)은 듣느니 처음입니다.”

수경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다시 차근차근 설명했다.

“뭘 그렇게 많이 생각하시나? 그럴 필요가 없지. 갑(甲)에서부터 기(己)까지는 몇 단계인가?”

“예? 갑을병정무기(甲乙丙丁戊己)이니 여섯 단계가 아닌가요? 아니 그래서 육합(六合)이에요? 그렇다면 갑(甲)에서 경(庚)까지는 일곱 단계라서 칠극(七剋)이겠네요?”

“맞아. 그렇게 간단한 것이라네. 하하하~!”

우창이 유쾌하게 웃자 수경이 다시 물었다.

“그건 생각해 보지는 않았으니 말씀의 뜻을 듣고 보니 간단한데 그것과 선신과 악신의 관계가 무슨 뜻인지는 전혀 가늠되지 않아요. 조금만 풀어서 설명해 주세요.”

“행운(幸運)과 불운(不運)은 자매(姊妹)라는 말은 들어 봤나?”

우창이 자원에게 묻자 자원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스승님, 혹시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은 말이 아닙니까? 행운과 불행의 신이 자매라는 말은 못 들어 봤으나 이치는 대략 짐작이 될 것도 같아요.”

“맞아, 같은 뜻이지. 어떤 수행자가 행운의 신을 만나려고 3년을 간절하게 기도하자 여신(女神)이 나타났다더군. 이 사람은 얼마나 고맙고 신났는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뒤에 있는 여신을 보고서 누군지 물었다네. 그러자 ‘그녀는 자기의 동생으로 불행의 신’이라고 하더라지. 그 말을 들은 수행자는 다시 말하기를, ‘동생 신께서는 잘못 오신 것 같습니다. 저는 행운의 여신만 뵙기를 기도했거든요.’라고, 그러자 행운의 신이 말했다네. ‘나를 받아들이려면 불행의 신도 같이 받아들이고, 불행의 신을 거부한다면 나도 그냥 갈 수밖에 없다네.’라고 말이지. 수경이 생각하기에 육합칠극과 이 자매의 이야기가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겠나?”

수경은 잠시 생각하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조금만 더 쉽게 설명해 주신다면 이해에 도움이 되겠어요.”

“아, 그런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그대는 중생(衆生)과 도인(道人)의 중간쯤에 머물러 있는 존재라네. 그대가 어둠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면 밝음으로부터는 한걸음이 멀어지는 것과 같다고 하겠지. 탐욕(貪慾)으로 한 걸음 다가가면 해탈(解脫)에서 한 걸음이 멀어지는 것도 같은 이치라네.”

“그렇다면 스승님께서는 밝은 쪽으로 다가가고 계신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될까요?”

“어찌 나 뿐이겠나? 그대들도 모두 밝은 쪽을 향해서 행군(行軍)하는 수행자들이라네. 하하하~!”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밝은 쪽을 향하지 않고 어두운 곳으로 향하는 것일까요? 아무리 가르치고 말려도 듣지 않는 것은 또 무슨 이치일까요?”

“그것이 바로 음양도리(陰陽道理)이고, 불이법(不二法)이고, 중생과 부처이고, 명암(明暗)이라네. 하하하~!”

“아무리 애를 써도 그러한 어둠의 존재들을 없앨 수는 없다는 뜻인가요?”

“당연하지 않을까? 만약에 세상에서 선신(善神)과 도인(道人)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악령(惡靈)과 중생(衆生)도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니 그것이 가능하다면 해결이 될 것이네. 하하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것은 불가능하겠네요.”

“그것이 이 땅이라네. 언덕이 있으면 골짜기도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니 이렇게 음양으로 이뤄진 곳이고, 음양으로 생멸(生滅)하는 곳이니 이 땅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그것들도 모두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다른 세상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물론이라네. 이 땅은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또 다른 세상에는 음양도 오행도 없는 곳인들 어찌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혹 그러한 세상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지요.”

수경이 이렇게 간곡한 말을 했으나 우창은 고개만 가로저으며 말했다.

“수경의 궁금한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나도 이 땅의 이치조차도 다 모르는데 어찌 이 땅 밖의 일에 대해서 알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궁금한 것은 궁금한 채로 놔두고서 오행의 공부나 하랄 밖에.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수경도 그 뜻을 헤아리고는 합장하고 말했다.

“스승님의 자상하신 가르침에 감사드려요.”

수경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미소로 화답했다.